호크마 주석, 시편 1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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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할렐루야 - 주지하다시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다. 이것은 이 시의 한 구성 부분이 아니라 표제어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본 시편은 각 행의 머리글자가 알파벱 순서로 되어 있는 답관체(踏冠體) 형식의 시인데 '할렐루야'의 서두 문자는 히브리어 알파벱의 순서상 다섯 번째이기 때문이다. 내가...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 이 부분은 히브리어 알파벱의 첫자인 '알렙'(* )으로 시작되고 있다. '감사하리로다'로 번역된 '오데'(* )는 '찬송하라'로도 번역할 수 있다(Calvin). 다윗은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감사, 찬송할 뿐만 아니라 회중에서 공적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해야할 것을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 이 부분은 히브리어 문자 '베트'(* )로 시작된다. 여기서 '회'에 해당하는 '소드'(* )는 다소 규모가 작은 사적인 회중을 가리키며, 공회에 해당하는 '에다'(* )는 보다 규모가 큰 공적인 모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동일한 개념이 두 번 반복된 것이며 의미상 '소드'가 이방 족속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둘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거룩한 회중이 소집된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다(Calvin).
전심으로 - 히브리어로 '베칼 레바브'(* - )인데 '온 마음으로'란 뜻이다(with my whole heart, KJV, RSV). '마음'에 해당하는 '레브'(* )는 인간의 지(知), 정(情), 의(意)를 포함하는 전 인격을 지칭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홍수 후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후 하나님은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여럿부터 악함이라"(창 8:21)고 하셨다.

=====111:2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 여기서 '여호와의 행사'란 세상 만물의 창조와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히브리어 원문상으로는 '크시니'에 해당하는 '게돌림'(* )으로 시작되어 히브리어 세 번째 알파벱 '깃멜'(* )이 문두에 놓였다. '게돌림'의 원형 '가달'(* )은 '강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잠언에는 사자가 가장 강하다고 말한다(잠 30:30). 이것은 또한 '용사'란 말로도 쓰인다(습 1:14).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 - 이 구절은 네 번째 문자인 '달렛'(* )으로 시작된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여호와의 행사를 갈망하는(즐거워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추구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이는 여호와의 행사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기쁨을 지닌 자들은 향후로도 동일한 은혜 받기를 갈망하여 그것을 캄구하며 묵상한다는 것이다. '즐거워하는'에 해당하는 '하페츠'(* )가 '(쾌락을) 즐기다'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의 쾌락을 구하는'으로 번역하나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그리고 '연구하는 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 )는 '추구하다', '연구하다', '조사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행사를 체험하기를 소원하며 지나간 행사들을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후기 히브리어에서는 '다라쉬'가 성경을 해석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미드라쉬'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하였다(Anderson).

=====111:3
그 행사가 존귀하고 엄위하며 - 이 구절은 다섯 번째 히브리어 문자인 '헤'(* )로 시작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에는 영광스러운 위엄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존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드'(* )는 '찬란함', '장중함', '활력'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하면서 모세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존귀'를 여호수아에게 줄 것을 명령하였다(민 27:20). 그리고 엄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르'(* )는 '명예로운 것', '찬란한 것', '영예'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하달', 즉 호화로운 생활이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5:14).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 이 어구는 여섯 번째 문자인 '와우'(* )로 시작되며 하나님의 존귀와 엄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공의를 통해서 그 찬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에 대해 영원토록 신실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신실하심은 부당하게 압제받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풀며 반대로 불의한 압제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편, '의'에 해당하는 '체데크'(* )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이고 바른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신명기에는 저울 추를 속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공정함'으로 번역되었다(신 25:15). 한편, 이 단어와 같은 어근을 취하는 아람어 '치드카'(* )는 '긍휼'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 바 하나님의 공의의 이면에 있는 자비를 엿보게 한다.

=====111:4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 이 말씀은 일곱 번째 문자인 '자인' (* )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직역하면 '그가 만들어 주신 기억은 기이한 일들을 위함이다'로서 하나님께서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즉 영원토록 명성을 떨칠 만한 일을 행하사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도 동일한 구언에 참여하게끔 하신다는 뜻이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기이한 일'을 유월절(Passover)과만 연결시키나(Luther, Hupfeld, Notscher), 구속사를 통해 드러난 여호와의 모든 행사들이라는 폭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한편 '기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케르'(* )는 출 17:14에도 등장하는데 70인역(LXX)은 출애굽기의 이 부분을 '오노마'(* ), 즉 '이름'으로 번역하였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 - 이는 여덟 번째 문자인 '헤드'(* )로 시작되며 '기이한 일을...기억케'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근거한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 '은혜로우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눈'(* )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인다. 일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판 둘을 다시 만들게 하신 후 그에게 나타나사 율법을 반포하시면서 자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계시하셨다(출 34:6).

=====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 이 구절은 아홉 번째 문자인 '테드'(* )로 시작한다. 여기서 '양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레프'(* )는 흔히 '먹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아마 답관체 형식상 '테드'에 맞추기 위해 굳이 이 단어를 택한 듯하다. 물론 이 단어가 '양식'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잠 31:15;말 3:10). 아마도 시인은 여기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출 16장;민 11장). 그런데 광야 시절의 이스라엘 백성은 대체로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거역하였다고 봄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강조하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은 진심으로 당신을 경외하는 자를 돌보신다는 진리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22:25;25:14;33:18;34:9;85:9;103:11;145 :19) 본문을 노래한 것이라고 본다.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 열 번째 문자인 '요드'(* )로 시작되는 구절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앞 구절에 대한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양식을 주시는 이유는 바로 언약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를 얻고 있는 것 역시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언약에 기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111:6
저가...그 행사의 능(能)을 저희에게 보이셨도다 - 이 구절은 열한 번째 문자인 '카프'(* )로 시작된다. 한글 개역 성경은 본절 전체를 뒤에서 해석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원문상으로는 '저가...기업으로 주사'를 결과의 뜻으로해석하고 있다. 즉, '저가 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사 그들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셨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He hath shown his people the power of his works, that he may give them the heritage of the heathen, KJV).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사 - 이 구절은 '라메드'(* )로 시작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하는 내용을 암시한다. 그들이 거룩한 땅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힘에 의해서 얻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적인 개입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111:7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 이 어구는 13번째 문자인 '멤'(* )으로 시작되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나 다 의롭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진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 )는 '확실함', '신실함'등의 뜻도 가지고 있는 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확실하고 바른 길이어서 신뢰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명령으로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가서 리브가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창 24:48).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 14번째 문자인 '눈'(* )으로 시작된다. '확실하다'는 말과 '진실하다'는 말은 원어상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법도는 진실하고 바르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야 마땅하며 그 법도를 따를 때 축복이, 따르지 않을 때는 징벌이 임함을 암시한다. '법도'의 히브리어 '피쿠드'(* )는 '지정되어진'이라는 본래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의) 명령', '계명', 특히 집합적으로는 '율법'을 뜻한다.

=====111:8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 15번째 문자인 '싸멕'(* )으로 시작되며, 직역하면 '영원히 영원히 확실하게 서 있고'란 뜻이다.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 16번째 문자인 '아인'(* )으로 시작되며 직역하면 '진리와 공평함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111:9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 본절과 10절은 각각 세 개의 어구로 이루어져 있다. 본 구절은 17번째 문자인 '페'(* )로 시작되며, 이 어구의 문두에 놓여 '구속'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페두트'(* )는 '몸값을 받고 석방하다'의 뜻인 '파다'(* )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구별', '구속', '구원' 등의 의미를 지닌다. 바로의 술객은 하나님의 재앙에 대해 바로에게 설명하면서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 간에 차별적으로 임하는 것이므로 굴복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권능'이란 말로 번역하고 있다.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출 8:19). 또 이사야는 이 말을 본절에서처럼 '구속'과 같은 의미로사용하고 있다.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사 50:2)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 이 문구는 18번째 문자인 '차데'(* )로 시작된다. 언약은 '맺다'는 표현으로는 주로 '자르다'는 뜻인 '카라트'(* )가 쓰인다(89:3). 그런데 여기서는 '명령하다'는 의미인 '차와'(* )가 사용되었다. 이는 본시의 특징인 답관체 형식에 맞추기 위한 시인의 의도를 읽게 함과 아울러,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언약이 주종 관계의 측면을 내포한다는 암시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언약을 세우사 호의를 나타내시지만 그것을 어기는 자에게는 징벌을 가하신다는 의미이다(anderson).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 이것은 19번째 문자인 '코프'(* )로 시작된다. 원문대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고 두려우시도다'는 뜻이다.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 20번째 문자인 '레쉬'(* )로 시작되며 동일한 표현이 잠 1:7;9:10에도 나온다. '경외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레'(* )는 '두려워하다'는 뜻을 내포하나(창 19:30;렘 26:21) 여기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며 오직 그분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Anderson). 시인은 하나님의 구속 행위와 그 계명들을 통해 드러난 당신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언급한 후, 이제 이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즉, 하나님을 진실되이 섬기고자 하는 자는 그분께 경외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며 또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VanGemeren).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 이 문구는 21번째 문자인 '신' (* )으로 시작된다. '지각'이란 뜻의 히브리어 '세켈'(* )은 '신중함', '통찰력'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잠언 기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곧 '슬기'라고 말하고 있으며(잠 19:11). '지혜'있는 자의 교훈을 생명의 샘에 비유한(잠 13:14).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 이 문구는 히브리어 마지막 문자인 '타우'(* )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송받을 것이며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찬소하며 사는 것보다 더 유익된 것은 없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즐겁고 경쾌한 분위기가 넘치고 있는 본시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를 회고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는 내용이 드러나  있다.
특별히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와 함께 미래에도 영원한 구원을 성취함에 대한  확
신이 선포된다.
   그런데 111-113편은 모두 '할렐루야'란 말로 시작한다. 본 시편은 여호와를 주심주
제로 삼고, 112편과 113편은 각각 여호와의 백성과 인간 세계 전반을 그 주제로  삼아
여호와를 찬양하는 시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본 시편과 112편은 소위 '알파벱  시'라
는 공통의 문학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22개의 히브리 알파벱 자모가
하나씩 순서대로 각 행을 이끌고 있다. 이 같은 알파벱 시의 형식을 취하는  시편에서
는 일관된 주제라든가 뚜렷한 사상의 흐름, 또는 논리의 전재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
이다. 그래서 대부분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익숙한 잠언이나 경구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시문학에서 이같이 독특한 형식으로 시를 짓는 목적은 공공  예
배를 위해 암기를 보다 수월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이해된다(그밖에 알파벱 시의 형식
을 취하고 있는 시편들로는 9, 10, 25, 34, 37, 112, 119, 145편등이 있다).
   알파벱 시의 이 같은 특징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크신 행사를 통해 나타난  하
나님의 은혜로우심'을 주제로 하고 있는 본시는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의 신앙을  가르
치고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저자가 어떤 종교 축제 때 회중을 위해(1절) 지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알파벱 시라는 형삭과 지혜 문학적 경구(10절) 등은 이 시가 포로기 이
후에 지어졌을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한편 본시는 시편의 분류로 볼 때 '찬양시'(hymn)로 볼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전심으로 찬송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행사를 찬양하고 있는 본시의 내용은  1 서론(1절)  2 하나님의 크신 행사(2-4절)   3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5-9절)  4 결론(1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시편의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분석, 음미해 보도록 하자.

                        1. 서론(111:1)
   아직 알파벱의 배열이 시작되지도 않은 첫절에서 시인은 아마도 성전일 것으로  생
각되는 곳에서 회중들을 향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환기시키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사실이 될 수 없으며, 단지 한  개인만이  즐기는
일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느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할 마음이 생겼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회중앞에서 공공연히 증겨해야 하는 이 같은  의
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크신 행사(111:2-4)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적 선언을 한 이후에 시인은 찬양의 내용에 대해서 세 가
지 측면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1 우주 만물)8:3;19:1;102:25)과 인간(104:24)을 지으신 하나님의 크고 기이한  행
사를 찬양한다(2절). 시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 된 것이므
로(104:24). 하나님의 행사를 즐거워하는 자들은 열심히 연구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러한 사실은 최근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과학적 탐구의 결과, 우주의  신비가  점점
더 풍부하게 밝혀진 데서 잘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것은(2절) 과학자들이나  예술가들
을 위한 훌륭한 헌장이 될 수는 있으나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
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롬 118-23). 하나님께서 자신
을 보이시는 것은 도덕적인 마음에 대해서이지 단순한 지식에 대해서가 아니며,  영혼
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과학적 지식 자체가 객관적으로 포착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2 하나님의 섭리적 행위에 나타난 권능을 찬양한다(3절). 시인은 하나님께서  존귀
와 엄위로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시며, 공의로 인간의 역사를 통치하시고  계심
을 높이고 있다.
   3 시인은 구속 행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롭고 자비로운 행사를 찬양한다(4
절). 여기서 나타난 '그 기이한 일'이란 바로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을 가리킨다.
유월절 사건 이래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라는 말은  이스라엘  신앙
역사에 있어 가장 탁월한 찬양과 감사의 내용이 되었던 것이다(103:8;출34:6). 아울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만찬 제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억
하라고 명령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고전11:23-26)

        3.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111:5-9)
   존귀하고 엄위하신 하나님의 행사를 찬양하던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돌보심에 대하여 찬미한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돌보시는가? 시인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을 지날 대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매일 먹이셨던 일을 회상하면서 일용할 양식의 공급자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5절). 그러나 시인은 단지 육신의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노해하는 물질주의자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시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영원토록 지켜주시는 성실하신 분이심에 대해  찬송한다.  이렇게 언약을 영원히 지키시는 하나님은 곧 진실하고 공의로우신 분이다. 그러므로 크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압축하여 시인은 "진실과 정의"(8절)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의와 진실을 나타내시며 말씀과 행위에  있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신다. 사실 하나님은 진실과 정의의 기준이시다(89: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만을 따르는 충실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4. 결론(111:10)
   다양한 각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던 시인은 이제 마지막에 이르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훈은 잠언의 전체 주제인 동시에 성경 전체를 통하여 드러나는 핵심적인 사상이다. 인가의 최대 행복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며 경배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말은 이스라엘의 예배, 의식, 도덕을 포괄하는 표현이었다. 경외함은  무서워함이  아니요, 마음속 깊이 순종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랑하고 종견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지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깨달음,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함에  대한 두려움 등이 내포되고 있다. 자신과 세계, 그리소와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  영적 지식과 인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지혜는 이 같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에서 잉태되어 그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 가운데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인생의 목표와 지식의 참된 목적으로 삼고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존경할 때 후화없는 삶이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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