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
새 노래 - '새로 지은 노래' 라는 뜻보다는 '날로 새롭게 북받쳐 오르는 노래','다함 없이 늘 새로운 노래'를 뜻한다 하겠다(33:3;98:1;144:9;사 42:10 참조).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끊임없고 아침마다 새롭듯이(애 3:22,23), 하나님께 대한 찬양도 늘 새로워야 한다는 의미이다(Anderson). 한편, 온 땅(* , 칼 하아레츠)은 그 위에 거주하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나 여기서는 시인이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3, 10절 참조).
=====96:2
그 이름을 송축하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이름이란 그 존재의 속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창 25:19-26 강해, '이름 짓기' 참조). 따라서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라는 깃은 그분의 속성을 알고 그분께 찬양을 돌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밝혀주는 대표적 이름으로는 '엘로힘'(* )이 있는데 이것은 만물의 창조주와 보존자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하고, 또 다른 이름 '엘 솨다이'(* ) 는 자연을 은혜로 복속시키는 능하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하며, '예화'(* )는 언약에 신실하신 은혜로운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그리고 '체바오트 예화' (* )는 조직화된 천군 천사들에게 옹위되시어 전 우주를 통치하는 전능하신 이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지칭한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이름들 및 그에 따르는 의미들은 풍성한데 이러한 것들을 더 풍성히 알고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그 내용이 더 풍성하고 깊고 올바른 찬양이 될 것이다(출 3:7-15강해, '하나님의 이롬' 참조). 특히 본 문맥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 , 예슈아토) - 문자적인 뜻은 '그의 구원'이다. 본 용어는 원래 위험 가운데 있는 그의 백성을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할 때 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좀더 근본적 의미의 구원, 곧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까지 암시한다. 따라서 본절이 하나님 찬양을 위해 초청하는 대상은 그 구원의 혜택을 받게 되는 모든 성도가 되겠다(Barnes).
=====96:3
영광(* , 카보드) - 본 용어는 뒤에 나오는 '기이한 행적'과 평행을 이루는용어로 사용되었다(9:1). 이 두 용어는 여호와의 창조사역(136:4 이하)과 그의 구원 사역(2절)을 찬양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66:2). 본절에서 저자는 여호와의 구원 사역 및 창조 사역의 경험을 세상 온 백성과 함께 나누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청하고 있다(사:66:18).
=====96:4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 '광대하시니'에 해당하는 '가돌'(* )은 주로 '크다'로 번역되며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묘사하는 말로도 많이 사용되었다(창 45:7;출 14:31;32:11;신 9:29;삿 2:7 등). 문맥상 하나님의 창조 사역 및 구원 사역, 바로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 이 같은 표현은 본 시편 기자가 다른 이방 신들의 존재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헛것이었음이 분명하다(5절). 이방 신들의 허탄함과 무용성에 관해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 절대적 무용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사41, 44장이다. 한편, 다신교적 배경을 안고 있는 이방 문서들 속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우월함을 인정하는 글귀가 발견된다(Kraus).그러나 본 시편 기자가 그 문서들을 참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비교가 아닌, 절대 참신이신 하나님을 강조적로 증거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다른 문서를 참조했다면 대상 16:25이 그 출처일 것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96:5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 열방의 신들은 인간이 만든 것임에 비해서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의 능력과 위엄을 온 세상에 드러내신다. 따라서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하고 있는데, 그 비교는 절대적이요 극한적 차이를 부각시킨다(Alexander).
=====96:6
존귀와 위엄(* - , 호드 웨하다르) - 이 한 쌍의 용어들은 왕적 권위를 묘사할 때 사용되곤 한다(21:5;45:3104:1;111:3).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세상의 왕을 수종드는 신하들처럼 왕 되신 하나님을 수종드는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보다 더 분명한 것은 존귀와 위엄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이다(Anderson). 다시 말해서 존귀와 영광의 진정한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 들을 하나님의 현현(顯現)에 관한 묘사로 보기도 한다(Weiser).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 본문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이곳 저곳을 방황하다가 드디어 다윗 성에 안착한 직후의 다윗의 찬양을 기록하고 있는 대목인 대상 16:27과 유사한 구절이다. 여기서 '능력'으로 번역된 '오즈'(* )는 역대 상의 기록과 동일하며, '아름다움'으로 번역된 '티프에레트'(* )는 그곳에서 '헤드와'(* ), 곧 '즐거움'으로, 그리고 여기서 '성소'로 번역된 '미크다쉬'(* )는 그곳에서 '마콤'(* ), 곧 '처소'로 각각 되어 있다. 이러한 약간의 변형은 본 시편 기자가 자신이 현재의 시편을 쓰는 시점의 상황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역대상의 내용을 바꾸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며, 그가 본 시편을 쓴 시점의 상황은 역대상의 기록 시점과 유사한 포로 귀환 이후의 성전의 재봉헌 무렵이라는 것 역시 추론케 한다. 여기에서 '능력'은 하나님의 처소가 능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아름다음'은 성전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곳임을 각각 암시한다(Barnes).
=====96:7
만방의 족속들 - '족속들'에 해당하는 '미쉬페호트'(* )는 원래 혈연적 유대로 하나가 된 친족을 가리킨다. 이 사실을 고려해 보면,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예배가 서로 관계없이 이곳 저곳에서 모인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와 애정을 나눈 가족처럼 강한 일치감을 갖는 자들에 의하여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호칭은 천상적 존재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29:1).
=====96:8
예물을 기지고 - 성전 예배 장면으로부터 취한 표현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자는 그분의 위엄과 영광에 걸맞는 예우(禮遇)와 자세로써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예물을 동반하는 것은 동방의 풍속을 반영해 준다. 동방에서는 왕에게 나아갈 자격을 얻었을 때 반드시 예물(선물)을 지참하도록 되어 있었다(45:12;68:29;72:10).
그 궁정에(* , 레하츠로타이우) - 직역하면 '그의 궁정들에'라는뜻이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여러 개의 뜰이 있었으며 특히 헤릇 성전의 경우 이방인의 뜰, 여인들의 뜰,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제사장들의 뜰 등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이제 기자는 이 모든 뜰을 개방하듯이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의 뜰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이 함께 뜰에 있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Davies). 아마도 이러한 복수형 사용을 통하여 저자는 미래에 있을 이방인의 복음 참여를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96:10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 새 시대가 열려서 참통치자되신 하나님께서다스리시기 시작할 때 초래될 현상 중의 하나가 소개되고 있다. 즉, 본절의 상,하반절을 통해 짐작하건대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성격까지 내포하는 바, 의와 공평으로 특징지워질(9:8;17:2;58:1;75:2;98:9;99:4 참조) 여호와의 완전한 통치를 암시한다(Kidner). 아울러 본문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해 우주 만물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굳게 서 있게 된 사실을 찬양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96:11
하늘...땅...바다 - 태고 이래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실체들, 곧 이 무생물까지도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 시대를 위한 찬양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있는 본문은 히브리 시 특유의 웅장함을 더해 주는 의인법적 표현이다(12절;사35:1;42:10;44:23;45:8;49:13). 여호와 시대의 도래 및 그의 왕국의 확립은 손상된 모든 피조 세계의 조화까지도 회복시킬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그 위대한완성을 고대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피조물의 고대(苦待)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맡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룻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19-21).
=====96:12
밭과...즐거워할지로다 - 지구 위의 많은 땅 가운데 특히 인간에 의하여 경작되고 있는 부분이 찬양대의 일원으로 초대되고 있다. 밭이 찬양할 내응은 그 소출의 풍성함, 아름다음 등이 될 것이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즐거이 노래하리니 - 밭이 즐거이 노래할 때 나무들이 노래한다는 것은, 밭과 나무가 마치 성가대가 서로 화답하는 찬양을 드리듯이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그 가지, 열매, 줄기, 잎사귀 등은 아름다움, 풍성함, 웅장함, 섬세함 등을 인하여 노래할 것이다.
=====96:13
임하시되(* , 바) - 직역하면 '임하고 계시다'이다. 이와같이 현재 진행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한 까닭은 마치 현재 그 눈앞에 나타나시듯 여호와의 도래를 좀더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래는 심판을 위한 도래이나 동시에 구원을 주기 위한 도래이기도 하다. 의와 신실의 심판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평화는 사 11:1-9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본 시편은 신정시(95-100편, theocratic psalm)중의 하나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시인은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과 모든 자연의 요소들에게 하나
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이방 신들보다도 위대하시며, 의
와 진리로 우주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본 시편은 다윗이 아삽에게 지어준 시(詩)인 역대상16:8-36의 일부분인 23-33절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이 사편의 저작자가 다윗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70인역(LXX)에서도 본 시편을 '다윗의 시'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대 역문(譯文)들
(Vulgate, Aethiopic)도 다윗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본시에서 자주 반복되는
저자라고 볼수 없다. 따라서 본 시편은 포로 이후에 성전이 재봉헌될 무렵 여호와의
통치를 찬양하는 어떤 시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96-99편은 각 시가
고유의 특별한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범주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
럿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찬양의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내용상으로
96-99편은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곧 96, 97편과 98, 99편이다. 이 사실은
두 부분이 동일한 길이(length)를 갖고 있는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제 두 부분의
내용적 유사성을 비교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
| | 새 노래 | | 하나님의 통치 |
| | 온 땅이 하나님을 | | 하나님께 |
| 96절| 찬양할 것 | 97절| 감사할 것 |
| | 세계에 대한 | | 시온 |
| | 하나님의 통치가 | | 거룩한 이름 |
| | 도래함 | | |
+-----+----------------------+-----+-------------------+
| | 새 노래 | | |
| | 온 바다와 | | 하나님의 통치 |
| 98절| 세계가 하나님을 | 99절| 하나님께 |
| | 찬양할 것 | | 찬양할 것 |
| | 세계에 대한 | | 시온 |
| | 하나님의 통치가 | | 거룩한 언덕 |
| | 도래함 | | |
+-----+----------------------+-----+-------------------+
또한 본시는 전체적으로 하나같이 찬양에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1창조
주와 이적을 행하는 자로서(1-6절) 2 세상과 거민의 현세적 통치자로서(7-10절) 3
모든 인간에 대한 다가올 재판관으로 선포하고 있다(10-13절). 이러한 내용의 본 시편
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징을 가기고 있다.
+-------------------------------------------+
| A. 우주적 찬양을 선언함(1-3절) |
| B. 하나님의 엄위하심(4-6절) |
| A'. 우주적 찬양을 선언함(7-9절) |
| B'. 하나님의 역할(10-13절) |
+-------------------------------------------+
특별히 본 시편의 내용을 가리켜서 칼빈(Calvin)은 메시야 왕국을 예언한다고 주장
하였다(10절). 그 근거로는 1 1-6절에서 메시야의 도래를 기쁨으로 전하기 위해서
'노래하라', '송축하라', '전파하라', '선포하라' 등의 표현이 강조되었다는 사실과
2 이방인을 포함한 전 우주적인 하나님께 대한 영광의 선포(7-10절)가 있다는 사실 3
메시야의 오심으로 만물이 새롭게 된다는 시실(11, 12절;롬8:19-22;계21:5)등에 근거
하고 있다.
이제 이와 같은 내용적, 구조적 특징에 근거하여 각 단락의 주요 사상과 교훈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주적 찬양을 선언함(96:1-3)
시편 기자는 온 땅(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한다
(97:1;98:4:100:1). 만민들은 새 노래로(33:3;98:1;144:9;149:1) 여호와께 찬양해야
한다. 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새로운 은혜를 받았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온 세계에 하나님의 구원과 행적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께 노래하라'(1, 2절)는 요청이 세번 반복되고 있는데, 특히
이것은 세 가지 명령과 대칭되고 있다. 곧 '송축하라', '전파하라', '선포하라'등의
언급이다.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새 노래를 가리킨다(144:9;149:1). 그렇
다면 이러한 새로운 찬양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행위와 능력으
로 드러날(3:2, 3;9:1)구원 역사의 새로운 상태이다. 이 새 역사에서 하나님께서는 악
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성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열방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해야 된다(3절).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인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것
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2:8;47:1, 8;138:4).
2. 하나님의 엄위하심(96:4-6)
하나님은 모든 이방 신보다 위대하시므로(95:3;97:9-1)1-3절에서 요구한 찬양을 받
으시기에 합당하다. 만방이 숭배하는 그 신들은 단지 우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며, 또한 그분의 전(성도)은 '존귀'와 '능력'을 특성으로 하고 있
다(29:2;96:7, 9).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영화로우시며
강하시다는 것이다.
특별히 본 단락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4절;48:1;145:3)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분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며,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신다(99:3).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의 다른 이방 신들은 그 존재가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들이다(5
절).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하늘을 만드셨기 때문이다(5b절).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이 하늘의 영역을 다스린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명백산 사실에 의해 부인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물 안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확실한
주권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장엄'(21:5;45:3,
4;104:1;111:3)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7절)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해냐하면 그분은 왕으로서(21:3), 창조주(시104:1-3)로서, 그분
이 만든 세계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만이 오직 참신
(God)이 시므로(95:3) 다른 모든 이방 신들은 거짓된 실체에 불과하다. 2 오직 한 분
이신 유일한 하나님이 진정한 존귀와 위엄을 지니고 계신 분이시다(창1:1;사
42:5;44:24).
. 하나님의 성소. '성소'는 세속적인 용도와는 관계없이 신(神)에 대한 경배의 장
소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의 시초는 족장들이 경배하던 장막이었는데,
언제나 신이 현현(顯現)하거나 또는 어떤 특별한 계시가 나타남으로써 예배 장소로 지
정되었던 곳이다(창12:7;26:24;28:16이하). 그런데 이 성소라는 말은 구약에서 '장막'
이나 '성전'을 나타내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의 성소를 나타낼
때에는 자주 쓰였다(사16:12;겔28:18). 성소에 대한 첫 언급인 출 15:17에 보면 하나
님께서는 당신의 구속받은 백성을 당신의 거처인 성소로 불러 모으시는데, 이것은 왕
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졸말론적인 성호(히8:5)는 땅위에 있
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하나님의 성소들이 단지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형(copy)
이며,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출25:8에는 성소가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처소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다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보면 중요시되는
요소는 하나님의 임재이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특
별한 성소는 필요치 않게 된다(겔11:16;요4:21, 23;계21:22).
3. 우주적 찬양을 선언함(96:7-9)
본 단락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을 돌리고 오직 그분께만 경배하라고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요청한다. 언젠가는 모든 존재가 왕되신 하나님께 절하게 될 터
인데(빌2:10) 그때에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관으로서 당신의 의로움을 온 천하에 드
러낼 것이다(92:1).
특별히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실행 조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
다. 즉 1 '예물'을 드림(8절) 2 성결한 생활로써 하나님께 봉사하고 경배함(9절)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9절)등이다.
특별히 본 단락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한는 데 있어서 새로운 사실을
제시한다.(29:1, 2). 곧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대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것이
다. 이러한 내용은 본 단락에서 세 번이나 강조되는 명령, '돌릴지어다'(ascribe)와
연결되고 있는데, 이것은 1, 2절에서 이미 세 번에 걸쳐 제시된 '노래하다'(sing)와
대칭이 되어 드러나는 것으로서,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수단(method)들을 제
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에 합당하게 드려지는 복종의 구체적인 표현을 원하신다.
특별히 이것은 성전 내에서 예배시 찬양과 제물을 드리는 방식으로 나타난다(20:3;사60:5, 6). 시인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을 찬양케 하는 수단으로써 모든 생활을 요구하고 계심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민족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고 있는데, 아브라함과의 연약에 있어서 암시되었던 내용(이방인 구원)을 좀더 명백하게 드러내 준다고 볼 수 있다.
본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세계로부터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 2 이러한 경배는 구체적인 형식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예배 순서를 통하여 당신의 존귀와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라신다.
4. 하나님의 역할(96:10-13)
모든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인하여 찬양해야 한다
(47:8;93:1;97:1;99:1;146:10).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통치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마침내 그분의 통치는 의로움으로 완성될 것이다(92:1). 동시에 시인은 자연에게 기뻐하라고 요청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와 '진실하심'으로 땅을 판단하려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 땅은 더 이상 지금처럼 구속의 날을 기다리며 신음하지 않을 것이다(롬8:20-22).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피조물들을 굳게 하심으로써 세워진다(10절;93:1). 11, 12절에서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이 바로 기쁨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하늘, 땅, 바다)은 하나님의 오심을 즐거워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하나님의 오심으로 인한 세상의 변혁을 무척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게 될 공의로운 심판을 기대하며, 기쁨을 가지게 된다(13절).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시인에게도 용기와 사기를 진작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신자에게 있어서 '의와 진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궁극적 통치의 실현에 대한 소망은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영광과 우상 숭배. 성경에 나오는 바 '영광'이란 용어는 주로 '하나님
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영광'은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으로서 하나님의 성품 중 어떤 일시적인 특징이 아니라, 그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02:15).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1:23에서 기록하기르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였다. 만약 하나님에게서 영광이 없어져 버린다면 이미 하나님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에게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영광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을 영광으로 삼아야 함을 의미한다(렘9:23이하). 이사실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서에는 '인간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영광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 이라고 함축적으로 요약하였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고 말씀하셨다. 칼빈(Calvin)은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 다른 신을 일체 섬기지 말고 오직 당신만을 섬기도록 요구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제2계명에 가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신 이유도 동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어떠한 형태의 우상에게로 결코 돌릴 수 없다. 우리가 실제로 형상화에 의하여 하나님을 표현하라고 시도한다면 하나님께 수욕을 끼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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