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76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6:1
유다에...이스라엘에 - 정치적으로는 솔로몬 사후(死後) 르호보암 시대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한 유다 왕국과 이를 제외한 10지파, 즉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계시하시고 관계를 맺으신 언약의 백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절의 두 왕국은 종교적 일체감을 갖는 하나의 민족임을 암시한다.

=====76:2
그 장막이 - '장막'은 텐트 형태의 이동할 수 있는 성소로서 종종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재의 장소로 상징되었다(출 25:8). 그러나 원문상으로는 '장막'(* , 미쉬칸)이 아니라 '초막'(* , 수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초막'이란 나뭇가지나 풀로 엮어 만든 가옥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것을 '장막'이라 한 것은 이 단어가 간혹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곳을 일컬을 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27:5;31:20). 살렘에...시온에 - '살렘'(* , 솰렘)은 예루살렘의 고대 명칭으로서 멜기세덱이 다스리던 성읍이었다(창 14:18;히 7:1, 2). 그후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정착시키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도시로 상징되었다. 또한 시온도 처음에는 다윗이정복했던 예루살렘의 남동부 언덕 혹은 요새를 가리켰지만 다윗이 법궤를 이곳으로 옮긴(삼하 6;12-19) 후부터는 거룩한 산(2:6), 주의 거하시는 곳(9:11) 혹은 하나님의산성이라 불리웠다. 본절에서 두 장소가 함께 언급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한 것이다.

=====76:3
거기서 - 이 말의 정확한 원문은 '솨마'(* , 황폐한)가 아니라 '헤'(* )가 없는 '솽'(* , 그곳으로부터)으로 해야 한다. 이 '솽'에 대해 혹자는 '거기'라는 말대신 '거기로 가는 도중에'(on their way there)로 해석하여(Alexander) 본절을 '저가화살과...거기로 가는 도중에 꺾으셨다'로 설명다. 여기서 '거기'의 정확한 장소는예루살렘에 아주 근접한 장소로 보는 것이 좋다(왕하 19:32, 33).
화살 - 여기에는 번역상 '불'(* , 레쉐프)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원문대로표현하자면 '불화살'이 정확한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의 해석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견해를 달리한다. (1) '불을 붙인 화살'(Harmond, Parkhurst), (2) '맹렬한 화살'(Walford), (3) 가나안 신화로부터 유래된 은유 형태로서 '번쩍이는 활'(NIV, EBC) 등이다. 이러한 견해를 종합해 볼 때 본문에서는 전쟁 무기를 암시하기 때문에 '적들의신속하고도 맹렬한 공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방패와...깨치시도다 - 본 구절은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전쟁을 언급하는데그 시기에 관해서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다(본 시편 강해를 참조하라). 우리는,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 군대를 하나님의 사자가 전멸시켰던 때(왕하 19:35)로 보기로 한다(Hengstenberg, Alexander, Calvin). 이 견해를 따르는 대부분의 학자들은아삽이 다윗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아삽의 후손이라고 이해한다. 또한 이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결정적 근거로는, 70인역(LXX)에 본시의 제목이'앗수르에 관해 지은 노래'(* , 오데 프로스 톤 앗수리온)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본 구절은 전쟁 무기를 통해 전쟁을 묘사한 환유법을 사용함으로 시적 분위기를 강하게 해준다.


=====76:4
악탈한 산 - 이 말에 대해서는 (1) 원문의 '타레프'(* , 약탈한)를 근거로 하여 압제하는 세력으로서의 '약탈을 일삼는 나라'로 보기도 하며(Calvin), (2) 70인역(LXX)의 '아이오니온'(* , 영원한)이란 말을 근거로 '영원한 산'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두번째 견해는 '타레프'가 '아드'(* , 영원한, 약탈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후자의 견해를 따르는 자들은 시편 기자가 주의 '전능하심'을 '영원한 산'에 비유했고(Kraus), 궁극적으로는 주의 거처가된 시온 산에 대해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Hitzig). 그러나 3절의 '전쟁'과 2절의 '시온'에 관한 업급을 비교해 볼 때 두 견해를 종합하는 것이 나으리라 본다. 즉,여호와의 공의의 심판이 시행됨에 따라 결국 여호와께서 '약탈을 일삼는 나라에서' 혹은 '약탈한 시온 산에서' 존귀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76:5
마음이 강한 자(* , 아비레이 레브) - '용감한 자', '마음이 완고한 자'란 뜻으로 본절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 적절하다. 좁은 의미로는 앗수르 왕의 완고한 마음(사 10:12-14)을 나타내나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던 앗수르 군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탈취를 당하여(* , 에쉬톨렐루) - '약탈하다'란 뜻인 '솰랄'(* )의 재귀형(Hithpael)으로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나타내는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해 학자들은 (1) '자신을 망하게 했다'로 해석하기도 하고(Harmond), (2) '강탈 당했다', '추방 당했다', '사라졌다'라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고려할 때, 본 절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징벌로 말미암아 약탈자들이 그들의 악행에 대한 대가로 그 자신들도 약탈자들이 그들의 악행에 대한 대가로 그 자신들도 약탈 당했음을 뜻한다.
잠을 자고 - 단순한 수면 상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강포한 자들의 죽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말은 앗수르 군대가 천막에서 잠자고 있다가 185,000명이 죽임을 당해 패망했던 사실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사 37:36). 자기 손을...못하도다 - 이 구절에 대해서 '그들의 손을 사용할 수 없었다'(Alexander)로 보기도 하고 '그들의 손을 찾지 못했다' 혹은 '손을 들 수 없었다'(Tyndale)라고 해석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대적들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패퇴 당해 공격이나 방어를 위해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된 상황을 나타낸다.

=====76:6
병거와 말 - 문맥과 시의 배경을 고려할 때 '병거 탄 자와 말 탄 자'를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혹자는 '탄 자와 말'이라고도 해석하는데 이것이 더 정확한 의미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산헤립 군대에 내려졌던 독종으로 사람뿐 아니라 말까지 다 죽었기 때문이다.

=====76:7
주 곧 주 - 대명사 '주'를 반복한 것은 그 의미에 대한 강조와 부연 설명으로서 '존귀한 자', '절대자'를 나타내며 '오직 하나뿐인 자'를 말한다.
경외할 - 원문은 '두려워하다'이지만 그 의미는 (1) '심리적 두려움(공포)에 대한 반응'(신 5:5), (2) '존경심을 갖춘 경의', (3) '예식이 동반되는 종교적 숭배'(왕하 17:32-34)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문맥상 (2)의 의미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서리이까 -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을 의미하지만 또한 의문문의 형태로서 감히 하나님 앞에 거만하게 서 있는 자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한데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서려는 자들이다.

=====76:8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성패(成敗)가 그분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이는 일방적인 종전(終戰) 선언이며 산헤립 군대를 전멸시킴으로 보여준 심판의 소식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산헤립 군대를 멸망시킬 때 우뢰를 동반했는데 이것이 판결의 선고로 비유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근거가 없다.
땅(* , 에레츠) - 단순히 가나안에 한정된 영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earth, whole world)을 의미한다.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으로는 하나님이 산헤립 군대를 전멸시켰을 때 그 소식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서쪽 아시아의 여러 민족에게까지 알려진 사실이 있다(대하 32:22, 23).

=====76:9
땅의 모든 온유한 자 - '온유한 자'란 '아느웨'(* , 낮은, 겸손한)로서 하나님에 대한 도덕적,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겸손하게 인내함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행 20:19)를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앗수르의 압제로 인한 피해자들과, 넓게는 세상의 모든 압제받는 자들을 암시하기도 한다.
구원하시려고 - 8절의 배경이 되는 말로서 적들을 심판하신 근본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그리고 구원하시려는 대상은 문자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과 압박받는 민족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앞 구절인 '땅의 겸손한 자들', 즉 영적인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온유한 자들' 즉 진정으로 경건한 유대인이나 이방인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76:10
사람의 노는...것이요 - 이 구절은 하나님의 적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의해 정복당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모든 행위, 심지어 하나님께 대항하는 적들의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하에 있음을 보여준다. 남은 노는...금하시리이다 - '남은 노'가 문자적으로는 '노한 사람의 나머지', '악인의 나머지'란 의미이지만 그 '노'를 (1) 사람의 노로 보았을 경우 '최고 극단의 노'(Luther), '최후의 노'(Flaminus), '남은 노력을 다 기울이는 노'로 해석되어, 본문은 '적들이 계속 노를 발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억제하신다'가 된다. 그러나 (2) 하나님의 노로 생각할 경우, 뒤에 나오는 '금하셨다'(* , 타흐고르)라는 말이 '허리에 두르는 것', '입는 것' 등의 의미를 갖고 대개 의복이나 무기를 휴대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45:3;사 59:17) 하나님이 허리를 동이시는, 즉 싸울 태세를 갖추시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남은 진노를 허리에 차실 것이다(혹은 예비하셨다)'로 해석된다. 특히 본문의 '주께서'라는 말을 연관시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하다.

=====76:11
서원하고(* , 니다루) - 일반적으로 '예물'을 의미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공적인 맹세'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원에는 맹세한 것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본시에서 기자가 '서원'을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받고 안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망각하여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어리석음 가운데 또다시 빠져들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사방에 있는 모든 자 - 해석상 (1) 하나님을 섬기는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 (2) 이스라엘에 근접해 있는 주변 나라들(Kimchi)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본 구절 뒤에 언급되는 '예물'(* , 솨)이란 말이 '피정복 나라들로부터 바쳐지는 공물(貢物)'을 의미하기 때문에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76:12
심령을 꺾으시리니 - '꺾으시리니'(* , 이브초르)는 '잘라내다', '축소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심령'(* , 루아흐)은 학자에 따라 (1) 용기, 담대함, 교만(De Wette, Hupfeld), (2) 진노의 연기(Delitzsch), 진노의 숨(Hitzig), (3) 생명(Tyndale)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브초르'와 연관시켜 볼 때 (1)의 견해가 적절하며 더 나아가서 (3)의 견해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발생하였던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공의론 심판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과 종말론적 심판을 다루고 있는 보시는 교회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 있다. 시인은 시온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찬양을 드리고 아울러 경배받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증거한다. 또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찬송하고 악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할지라도,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1-9절). 사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사람들의 악행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이용될 뿐이다(10절;잠16:4). 그러므로 본시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날을 대망하고 미리부터 찬송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10-20절).
 이 시가 쓰여진 역사적 상황은 아마도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의 산헤립 군대가 천사에 의하여 전멸된 사건을 기념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왕하19:35). 70인역(LXX)에도 본시의 제목이 '앗수르에 대한 노래'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본시의 내용 또한 그 사건과 매우 유사함으로 이러한 결론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승리를 찬양하는 본시는, 75편이 승리에 대한 확고한 예상을 노래한 내용인데 비해, 승리에 실현에 따른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그러한 승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언약 백성들이 경배를 해야 마땅하다는 '예배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시는,
 1 시온에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1-3절),
 2 야곱의 하나님의 승리(4-6절),
 3 하나님의 심판 시기(7-9절),
 4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촉구(10-12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분은 내용 자체의 동일성뿐만 아니라, 그 길이에 있어서의 적절함 대문이다. 또한 각 부분의 서두가 획기적인 전환을 제시함으로써 그구분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며, 마지막 10-12절은 이 시의 핵심적인 의미를 결론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제 본시의 내용을 네 단락으로 나누어 각각의 핵심적인 사상과 특징을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하여 보자.

 1.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엄위(嚴威)하심(76:1-3)
 본연에서 시인은 두 가지 특징적인 사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시온'에 대한 묘사이며, 또 하나는 '언약백성'에 대한 기술이다. 전통적으로 '시온의 노래'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본시는 여기서 '시온'을 언약 백성과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로서 소개하고 있다. 시온은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과 항상 관계하고 계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온을 통하여 자기 백성의 역사에 개입하시며(1절), 언약 백성은 이 시온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심을 확신하게 된다. 이처럼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시온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묘사하게 된다. 이처럼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시온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연은 언약 백성의 특징에 대하여,
 1 하나님의 계시를 받음(1절),
 2 하나님이 함께해 주심(2절),
 3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한 체험(3절)등으로 요약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셨다(사33:13).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이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 알려지셨다(3:8). 이제 시온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관계하실 때에 그의 장막을 살렘에 두신다(2절). 이제 시온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관계하실 때에 그의 장막을 살레에 두신다(2절). 이것은 시온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선택이다(46:4;68:15-18). 그러므로 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에 대해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에서 그의 언약 백성을 괴롭히는 악인들을 물리치시는 능력있는 분으로 그리고 있다. 사실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사31:4;38:13; 렘4:7;;5:6;25:30; 호5:14;11:10; 암1:2;3:8등등). 이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들의 무기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산이 부서졌다(3절;사14:25). 그러기에 살렘에 거하는 언약 백성들은 무조건적 은혜에 입각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구원함을 입은 것이다(호1:7).
 이 사실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을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그의 거처를 언약 백성이 거주하고 성고사 존재하는 시온에 두심으로써 자신을 알리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시온에서 계시된 내용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심으로써 그 영광을 만방에 전파 하신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게서 당신의 손을 펼치사 특별하신 방법으로 택한 백성들과 그들의 성(城)을 당신의 보호 아래 두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 야곱의 하나님의 승리976:4-6)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에 이어지는 본연은 산헤립의 군대가 하나님의 사자들에 의해 하루 저녁 사이에 멸절된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사37:36).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대적하고 택한 백성을 괴롭히던 자들을 명망시키신 하나님께 대해 찬양하고 있다. 특별히 시인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하나님을 칭송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1-3절에서도 이미 살핀 바와 같이 특별히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대적자를 철저히 깨뜨리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시온 산에서 자신을 알리신 하나님은 다름아닌 야굡의 하나님이시다(46:7,11). 출 15:1에서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게 '분노'하시는 분이시며, 어떠
한 자도 그분의 심판을 견딜수가 없음을 보여주신 바 있다.
 2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그의 엄위하신 말씀으로 혼돈의 물을 가르셨던 이시다(18:15;104:7-10;사17:13). 이제 바로 그 하나님이 심판자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의 심판은 반드시 효력을 드러낸다. 또한 창조주이신 야곱의 하나님은 '영화로우심'을 소유한 분이다. 이 '영화로움'은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위력의 현현(顯現)을 상징한다(단2:22;딤전6:16). 거만하고 약탈하는 세력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그러한 영광스러움만이 대적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5절ff).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시인은 이제 원수들에게 임한 재앙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마음이 강하고 억세며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지 그들은 탈취당하였고 모든 무장이 해제되었다(사63:3). 시인은 그들의 상태에 대해 잠을 자는 상태로 묘사하는데 이는 일종의 시적 표현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원수들의 운명을 제시해 준다(렘51:39,57). 이어서 5절 하반절에는 그들이 죽음의 마지막 고통스러운 단계에 이르러서 다시 일어나고자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자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상실할 것과 같이 '시온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대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대적자들의 무기를 철저히 파괴하셨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시인은 출15장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이전과 다름없이 지켜주신 결과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악에 대한 자세를 관찰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획하신 결정적인 시기에 당신의 공의(公義)를 드러내신다. 그때에는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도 철저히 파멸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대하면서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죄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때(76:7-9)
 앞에서 약속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어떤 한 시기에 공의로운 심판을 단행하신다고 선언한다. 7절에 있는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를 원어로 직역해 보면 "당신의 진노의 때부터는"인데, 시인은 4-6절에서 목도한 악인의 멸망이 결국 무엇을 의도하는가를 여기서 설명하고 있다. 대적의 진멸은 땅에 있는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데 이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발생할 것이다(9절).
 시인은 이어서 하나님의 면전에서는 이무도 그의 심판을 벗어날 자가 없음을 강조한다(7절ff). 그는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라는 수사학적인 질문(rhetorical question)을 통해서 심판과 관련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강조한다. 사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의 공의로운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이제 드러날 실만의 성격은 하나님의 공의가 기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심판을 선언하시는데 모든 땅 위에 있는 피조물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주목하게 될 것이다(8절).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특별한 권능으로서 방금 하늘에서 내리는 듯한 놀라운 성격을 가지며 악인을 평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8절;출19:9;대하20:29).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심판 절정은 땅 위에서 환난과 팝박 속에 있던 '온유한 자' 곧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온 따을 소유로 주시기 위해 결정적으로 개입하심으로써 그의 심판의 결론을 맺으신다. 마5:5에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이요"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야곱의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행하신 다양한 구원의 사실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시기가 되면, 그의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4. 하나님을 경배하라(76:10-12)
 본연은 본 시편의 결론인 동시에 요약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시인이 본 단락을 말하기 위해서 본시를 저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본연은 하나님께서 만미의 '경배의 대상'이라는 점을 아주 명확히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역사적 사실로 인하여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보편적 진리를 효과적으로 입증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노(wrath)를 제어함으로써(10절) 오히려 당신을 찬송케 할 어떤 환경을 조성시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행을 심판하심으로써 그의 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찬송케 하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은 두 가지 결과를 드러낸다.
 1 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히 경배를 받기 위한 하나님 당신의 목적이 성취된다.
 '서원하고갚으라'(11절)는 말씀은 바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며, 그 감사의 표시로 경배하라는 의미이다(사8:13).
 2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모든 열방들이 철저히 하나님께 굴복하며 순종하게 된다(대하32:22,23).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신다'(12절)는 철저히 열망의 지각(知覺)이나 통찰력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환난이나 고통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사52:13-15).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괴롭히는 방백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 만국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경외하게 된다.
 시인은 이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결단코 없게 될 것임을 소망하며, 하나님만이 진정한 승리자이신 것과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훈은 결국 본 시편 전체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악인들의 횡포도 결국 별 수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이용될 뿐임을 지적한다. 또한 아무리 악인이 발버둥을 칠지라도 하나님은 만인에게 찬양과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분임을 체험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상의 본시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교훈을 배울 수 있게 된다.
 1 잠16:4에 기록된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다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다."
 2 신자들은 비록 현재 주님을 위해서 핍박을 당할지라도 필경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개입하셔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3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백성들은 완성의 날을 바라보며 선취적(先取的)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이다.


Articles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