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7:1,2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 인자야 주 여호와 내가 이스라엘 땅
에 대하여 말하노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 "여호와 의 말씀이 또 내
게 임하여 가라사대". 14:2 해석 참조, "인자야". 2:1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
여라.
이 부분(1-2)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께서 유다 예루살렘을 최후로 바벧론 군대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실 것을 예고하심이다. 여기 "끝났도다"( =케츠 빠)란 말,
또는 그와 유사한 말이 여러 차례 나와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깝다고한다.
(1) 하나님의 시간 관념으로 보아 멸망이 가까움. 사도 시대에 사도들은 주님의 재
림이 가까왔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근 2,000년 후인 오늘까지도 주님은 아직 재림하시
지 않았다. 그러나 종말관(終末觀)에 있어서 끝이 가까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 관
념으로 주신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제한된 시간에 해야 할 일의 분량과 혹은 성질
(예컨대 회개해야 될 일, 혹은 실행할 일)을 보아서 그 기간이 짧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인류를 회개시키시는 큰 일로 보아 주님의 재림하시는 시점(時點)을
긴박하게 느끼신다. 그는 천년도 하루와 같이 짧게 보신다. 우리도 그렇게 느껴야 진
리에 합당하다. 비유컨대, 사람이 이 세상에서 70 년을 산다고해도 그 동안에 해야 할
가치 있는 일들을 생각하는 견지에서는, 70 년이란 너무도 짧은 세월에 불과하다. 무
지한 사람은 70년을 지리한 긴 세월로 보지만,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그 기간을 극히
짧은 것으로 여긴다.
특별히 에스겔의 처지에서 볼 때에, 예루살렘이 마지막으로 바벧론 군대에게 멸망
을 당할 일은 몇 해 남지 않은 긴박한 사건이었던 것인 만큼, 그 현재에 멸망이 임한
것과 같은 긴박한 느낌으로써 "끝났도다"라고 할만도 하였다.
(2) 에스겔이 상대한 이스라엘 민중은 다가오는 멸망에 대하여 너무도 무관심하였
다. 그들은 선지자의 경고에 냉담(冷淡)하였다. 비유컨대 그들은 취하여 깊이 잠든 사
람과 같았던 것이니, 그들을 깨우는 데는 극단적인 경고가 필요하였다. 그 극단의 말
("끝났도다")도 한 두 마디로는 안되고 거듭거듭 할 필요가 있었다. 에스겔의 이와 같
은 표현은, 기절하여 정신 없는 사람을 붙잡고 흔드는 것과 같은 감이 든다. 죄로 잠
든 인류를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참된 전도자의 방법이다. 이것은, 리차드 백스터 (Ri
chard Baxter)가 말한 것과 같이, 죽어가는 자가 죽어가는 자를 향하여 최후의 한 마
디를 전하는 것과 같은 전도(傳道)이다. 전도자는 강퍅한 자들도 버리지 말고 초긴장
(超緊張)의 활동에 의하여 그들을 깨우치도록 노력해야 된다.
겔 7:3,4
네 행위를 국문하고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내가 너를 아껴보지 아니하
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여기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심
판 원리 두 가지를 잘 알려준다. 곧, (1) 하나님께서 한동안(그 오래 참으시는 동안)
은 죄인들을 긍휼히 여겨 벌하지 않으시므로 그들의 소행여하(所行如何)에대하여 무관
심하신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필경 그들의 행위대로 따져(국문) 심판하시며 보응
하시는 한 날이 있다는 것, (2)죄인들이 범죄를 기탄 없이 행하면서도 오랫동안 하나
님의 벌을 받지 않으니, 그러나 그것이 무제한적으로 늘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이 천
벌을 받는 한 날이 오나니, 그 때에는 그들의 죄악이 "가증한 일"로 "나타나게"되어
사람들이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
라"(4 절 끝)란 문구의 의미가 그 뜻이다.
겔 7:5-7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났나니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이 땅 거민아 정
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
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 이 귀절들은 위의 2절 말씀과 유사하니, 그 해석을 참조하
여라. 에스겔은 자기의 전하는 말이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무도 중대한 것임을
최대 한도로 고조한다. 여기 "재앙"이란 말이 세 번 나오고, "끝이 났도다","일어났나
니", "임박하도다", "임하도다", "이르렀고"란 표현 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빠아(
)가 여섯번 나온다. 이렇게도 에스겔은, 그 마비된 듯이 감각 없는 민중을 깨워 일으
키려는 마음이 뜨거웠다.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이 문구는 히브리 원어로 헤드 하림( )이니,
산을 향하여 외친 때의 산울림을 가리킨다. 이것은, 거기서 사람이 응답하는 것이 아
닌 헛된 소리이다. 그러면 이 문구("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의 의미는,
선지자의 전하는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니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사 55:10-11 참조.
겔 7:8,9
이 귀절들은 실질적으로 앞의 3-4절의 중복이다. 그 귀절들의 주석을 참조하여라.
겔 7:10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다 -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다". 이말씀(
)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이 나누인다. (1) 바벧론 권세가 유다를 치기 위하여 일어
남을 비유한다는 학자들이 있고(Keil, Schumpp, Fisch) (2) 유다 정권(시드기야의 정
권)이 바벧론을 반역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는 학자들도 있다(Ewald, Lofthouse). (3)
알델스 (G. Ch. Aalder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이문구가 확실히 어느 세력을
지적하는지 우리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구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때에 유다 나라의 파멸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꽃 피며... 싹 났도다'란 말
은 속속히 오는 것을 비유한다"라고 하였다(Maar in het gehele verband zal het toch
wel het best passen er een aankonding van de naderende katastrofe in te zien, wa
arbij "bloeien" en "uitsspruiten" opbeeldrijke wijze de spoedige komst er van aa
nduiden.- Commentaar Op Het Oude Testament, Ezekiel l p. 139).
겔 7:11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 - 이것은 윗절의 설명이다. "포
학"은 유다를 칠 바벧론을 가리키고, "죄악의 몽둥이"는 유다의 죄악을 벌할 몽둥이를
가리킨다. 이렇게 바벧론이 제 3차로 예루살렘을 침공(侵攻)하는 날에는, 유다 나라는
전멸 상태가 되어 아무 것도 남을 것이 없게 된다.
학자들 중에는 이 구절이 풀기 어려운 난제를 포함한다고 한다. 스키너(Skinner)는
이것이 번역도 하기 어려운 귀절이라 하였고, 쿡(Cooke)은 여기서 만족한 뜻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위에 있는 우리 해석과 일치한 의미로 말하
였다.
겔 7:12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 바벧론이 유다를 점령하는 날에는, 땅을
샀던 사람도 그것을 버리고 사로잡혀 갈 것이니, 그는 기뻐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판 자는 자기의 땅을 팔아 없앴다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그도 사로잡혀
갈 것이니, 그 땅이 자기의 소유로 남아 있다 해도 버리고 가겠기 때문이다. 이것은,
환난을 당할 유대인들이 이제부터는 소유 개념 때문에 괴념할 필요 없고, 다만 그들로
서는 회개하는 것만이 급무(急務)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준 말씀과 유사하다(고전 7:29-31).
겔 7:13
판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 - 바벧론이
최후로 유다를 침략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간 뒤에는, 그 전에 유다 땅에서
땅을 팔았던 자가 다시 그것을 반환해 받을 길이 없다(유다 풍속에 전에 팔았던 땅이
원 소유주에게 돌아감). 그 이유는, 모두 다 바벧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둘아오지 못하
겠기 때문이다.
이는 묵시로 그 모든 무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도 돌아갈 자가 없겠고 악한 생
활로 스스로 강하게 할 자도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 - 곧, 에스겔이 전하는 묵시(예
언)가 그대로 성취되기 때문에, 토지를 판 자가 도로 찾지 못한다는 뜻이며(사 55:10-
11), 또한 악인들이 그 강퍅한 행위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 다 사로잡혀 간다는 뜻이다. 유다가 멸망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계시)은 그대로
성취되고야 만다. 악인들이 강퍅하게(스스로 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는 견
디어 설 수 없다. 그들이 강퍅해짐은 멸망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짓이며(시52:7), 발뒤
꿈치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은 망동(妄動)이다.
겔 7:14-17
여기서는, 장차 유다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로 말미암아 파멸됨이 그 민족의 죄 값
이라고 밝혀 준다. 우리가 이 귀절들을 읽어 보면, 유다 민족의 당할 환난이, 바로 그
민족의 죄에 대한 당연한 보응(報應)인 사실을 몇 가지로 밝혀 지적한다.
(1) 유다가 바벧론을 대항 하기 위하여 전쟁을 준비하였으나, 항전(抗戰)도 못해
보고 패망하리라고 함(14-18).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민족더러
바벧론을 대항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렘 21:8-9,38:1-3) 불구하고, 그 지도자들은 끝
까지 순종하지 않았다(렘 38:4-6). 이렇게 끝까지 순종치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필경 벌하신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 바벧론이 침략할 때에 많이 죽고(15절), 많이 도
망하고(16절), 모두 무력해지고(17절), 슬퍼하고("굵은 베로 허리를 묶음"), 두려워하
고, 실패(수치)를 당하고, 대머리(슬픔의 표시)가 되리라고 한다(18절). 하나님의 간
곡하신 권면을 끝까지 순종치 않고 고집을 세우는 자들은, 언제든지 그 고집하던 일
에 실패를 보되 산산히 실패를 보는 법이다.
(2) 유다 민족이 재물(은금)을 의뢰하고 교만하였으므로 필경 그것이 오 예물과
같이 취급되며 또 약탈 당할 날이 오리라고 함(19-22). 그때에 은과 금이 그들을 구
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 ( )란 문구(19절)가 의
미한 것 같이, 그 때는 그들이 그 죄악의 보응에 빠지는 때이기 때문이다(Calvin). 그
들은
"그은과금" - 곧,돈을 가지고 무슨 죄를 범하였던가? 그들이 돈을 가지고 자기
자신들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감사하지는 않고 도리어 교만하여졌다(20절 상반).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 경향이다. 사람이 돈을 가지면 교만해진다. 그들
이 돈을 가지고 (혹 금이나 은을 가지고)우상을 만들었다(20절 하반).
그들이 돈을 가지고 이렇게 두 가지 죄악을 범한 결과로 받는 벌은, 원수에게 약탈
을 당함과 더럽힘을 당함이다(21,22). "더럽힌"다는 말( =킬렐루)이 여기 세
번 나오는데, 이는 성소 혹은 성전의 보물들을 더럽힘을 의미한다. 그들이 은금을 우
상 만드는데 사용하였으니, 이제 그 죄값으로 그들의 성전(혹 성전의 보물)이 이방인
들의 손에 의하여 더럽힘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참되이 하나님을 섬기
게 하려고 성전이나 성전 보물들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상을 섬겼으니, 이
는 그들이 성결(聖潔)의 시설(施設)을 무시한 죄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죄악을 벌하시기 위하여, 성전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시어 그것을 더럽히도록 버려두신
다.
"은밀한 처소" - 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체푸니( )인데, 70인역( )에
의 하여 이것이 지성소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고, 탈굼(Targum)의 "내 장엄한 집 있
는 곳"( )이란 번역에 의하여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땅 곧, 유다 땅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Calvi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이것이 성전에 있는 보
물들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3) 그들이 포학한 행동을 행한 죄 값으로 이방인들의 침략을 당함(23-25)
쇠 사슬을 만들라 -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포악한 일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23절
하반), 이제는 죄인을 잡아 수갑 채워 가지고 재판소로 가듯이,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
에 부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이것이 그들의 포로 되어
가게 됨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이제 이렇게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은, 그들
의 포학한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다가. 그들의
죄악이 판영한 뒤에야 심판하시는 법이다. 롬2:4-5 참조. 23절에는, 그들의 죄악이 관
영하였다는 의미에서 "가득하고"( =말레아)란 말과 "찼음이라"( =말레
아)란 말이 나오는데, 이 두 가지 표현이 히브리 원어에서는 동일한 말이다.
그들이 포학하였던 죄 값은 결국 포학을 당함이다. 그것은 이방 바벧론의 침략으로
(1)그들의 집이 빼앗기고(24절 상반), (2) 성전이 더럽힘이 되고(24절 하반). (3) 평
화가 제거(除去)되며 (25절), (4) 환난 때에 유다의 지도자들은 무능해진다(26-27).
이 지도자들이, 환난 전에는 모두들 당당한 지도자들로 자처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레미야와 같은 참된 예언자와 맞서서 핍박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안하던 시절에 그들의 노름이었다. 이제 환난이 온 때에 그들은 속수무책(束手無
策)이다. 그들중 소위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에 난국을 당하여 "묵시"(
=카존)를 보지 못하며, 그들 중 장로들(다스리는 자들)은 지도 할계책("모략")을 내지
못하며, 군왕과 관리("방백")들은 두려워 놀람 뿐이다. 따라서 이들을 바라보던 백성
은 손이 떨림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들의 죄에 대한 정확한 보응이다. 그들이
선지자란 이름을 가지고 백성을 속였고, 인도자 또는 치리자란 이름으로 자기들의 영
광을 위해서 마음껏 날뛰었으니, 이제 그들의 처한 모든 환경에서 과거에 거짓된 자
들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하루가 오고야 말 것이었다.
겔 7:19-22
유다 민족이 재물(은금)을 의뢰하고 교만하였으므로 필경 그것이 오 예물과 같이
취급되며 또 약탈 당할 날이 오리라고 함(19-22). 그때에 은과 금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 ( )란 문구(19절)가 의
미한 것 같이, 그 때는 그들이 그 죄악의 보응에 빠지는 때이기 때문이다(Calvin). 그
들은
"그은과금" - 곧,돈을 가지고 무슨 죄를 범하였던가? 그들이 돈을 가지고 자기
자신들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감사하지는 않고 도리어 교만하여졌다(20절 상반).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 경향이다. 사람이 돈을 가지면 교만해진다. 그들
이 돈을 가지고 (혹 금이나 은을 가지고)우상을 만들었다(20절 하반).
그들이 돈을 가지고 이렇게 두 가지 죄악을 범한 결과로 받는 벌은, 원수에게 약탈
을 당함과 더럽힘을 당함이다(21,22). "더럽힌"다는 말( =킬렐루)이 여기 세
번 나오는데, 이는 성소 혹은 성전의 보물들을 더럽힘을 의미한다. 그들이 은금을 우
상 만드는데 사용하였으니, 이제 그 죄값으로 그들의 성전(혹 성전의 보물)이 이방인
들의 손에 의하여 더럽힘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참되이 하나님을 섬기
게 하려고 성전이나 성전 보물들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상을 섬겼으니, 이
는 그들이 성결(聖潔)의 시설(施設)을 무시한 죄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죄악을 벌하시기 위하여, 성전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시어 그것을 더럽히도록 버려두신
다.
"은밀한 처소" - 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체푸니( )인데, 70인역( )에
의 하여 이것이 지성소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고, 탈굼(Targum)의 "내 장엄한 집 있
는 곳"( )이란 번역에 의하여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땅 곧, 유다 땅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Calvi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이것이 성전에 있는 보
물들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겔 7:23-26
(3) 그들이 포학한 행동을 행한 죄 값으로 이방인들의 침략을 당함(23-25)
쇠 사슬을 만들라 -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포악한 일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23절
하반), 이제는 죄인을 잡아 수갑 채워 가지고 재판소로 가듯이,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
에 부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이것이 그들의 포로 되어
가게 됨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이제 이렇게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은, 그들
의 포학한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다가. 그들의
죄악이 판영한 뒤에야 심판하시는 법이다. 롬2:4-5 참조. 23절에는, 그들의 죄악이 관
영하였다는 의미에서 "가득하고"( =말레아)란 말과 "찼음이라"( =말레
아)란 말이 나오는데, 이 두 가지 표현이 히브리 원어에서는 동일한 말이다.
그들이 포학하였던 죄 값은 결국 포학을 당함이다. 그것은 이방 바벧론의 침략으로 그들의 집이 빼앗기고(24절 상반), 성전이 더럽힘이 되고(24절 하반). 평화가 제거(除去)되며(25절), 환난 때에 유다의 지도자들은 무능해진다(26-27). 이 지도자들이, 환난 전에는 모두들 당당한 지도자들로 자처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레미야와 같은 참된 예언자와 맞서서 핍박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안하던 시절에 그들의 노름이었다. 이제 환난이 온 때에 그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그들중 소위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에 난국을 당하여 "묵시"( =카존)를 보지 못하며, 그들 중 장로들(다스리는 자들)은 지도 할계책("모략")을 내지 못하며, 군왕과 관리("방백")들은 두려워 놀람 뿐이다. 따라서 이들을 바라보던 백성은 손이 떨림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들의 죄에 대한 정확한 보응이다. 그들이 선지자란 이름을 가지고 백성을 속였고, 인도자 또는 치리자란 이름으로 자기들의 영광을 위해서 마음껏 날뛰었으니, 이제 그들의 처한 모든 환경에서 과거에 거짓된 자들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하루가 오고야 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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