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3:1-3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 "인자". 2:1 해설 참조. 여기 "받는 것"(
)이란 문구가 70인역(LXX)에는 없다. 그래서 이것을 본문에서 제외시키는 학자들이 있
다(Cornill, Rothstein). 그러나 그들의 이와 같은 본문 취급은 지나친 것이니, 이런
문구는 렘 15:16에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먹듯이 받아 그것과 일체(一體)가
되다시피 체험하지 않은 자는, 참된 전도자가 될 수 없다.
내게 먹이시며( =와야아킬레니) - 이것은, 선지자가 순전히 피동적 자세
로 계시를 받음에 대하여 말하여 준다. 70인역(LXX)은, 그 윗말씀
"내가 입을 벌리니" - 란 말씀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여 주시는 것으로 표현한다.
곧, "그가 내 입을 열어주시니"( )라고 되어 있다.
"두루마리" - 책을 "먹"는 체험은 에스겔에게 있어서 계시(啓示)의 환상 중에서 된
일이니, 그 먹은 책은 물체로 된 것은 아니었다(G. Ch. Aalders).
겔 3:4-7
에스겔이 상대하고 예언할 민족은 말이 다름 이족(異族)이 아니고, 순종치 않는 유
다 민족이었다. 옛날부터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
다(욘 3:1-10). 은혜를 많이 받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방심하는 자는, 강퍅해지기
쉽다.
겔 3:8-11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진리에 굳게 서도록 은혜를 주시고 능히 강퍅한 유대
인들을 감당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선도자에게 힘을 주시지 않으면, 언제나 그는 실
패한다. 자력으로는 저 강퍅한 세상사람들을 이겨낼수 없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잠시
라도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어야 된다.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 이스라엘 백성이 강퍅하여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
므로, 하나님은 에스겔의 "이마를 굳게"하시겠다고 하신다. 곧, 겅퍅한 자들 중에서
끝까지 예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선지자의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는, 영전(靈戰)에 있어서 그의 세우신 사람들에게 강한 투지(鬪志)를 주시는 하나님
이시다.
겔 3:12-15
이부분에서 에스겔은, 그 맡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근심한다. 성령
으로 강화(强化)된 선지자라도 아직까지 인간적인 정서(근심)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였
다. 그것이 도리어 그를 겸손케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겸손을 잃으면
능력도 잃는 법이다.
에스겔이
"들어 올리" - 움은, 성령의 특수한 감동을 받은 상태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를 예언할 지방으로 옮겨 가시는 광경을 계시(啓示)한다.
"크게 울리는 소리",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바퀴" - 등은, 패역한 유대
인들을 상대로 예언할 에스겔을 뒷바침 해주는 하늘 세력의 위엄(威嚴)이다. 그는 이
소리를 들을 때에 큰 용기를 얻을 만하였다.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12절) - 이 문구는 이상해 보이나, 7
0 인역(LXX)과 다른 고대 역문(古代譯文)들에도 있다. 휘쉬(Fisch)라는 학자는, 이 찬
송이 생물들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 말씀(14절)과
"민답히( =마쉬밈=놀란 중에 침묵하고 지냄)칠 일을 지내니라" - 말씀(15
절)은, 그가 저 패역한 유대인들의 타락된 상태를 근심한 태도이다. 여기 "분한 마음"
( -카마)은 뜨거움(hert)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도, 자기 동족이 그리스도를 믿
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근심과 고통이 있었다. 그는, 동족을 위하여 그 자신이 저주
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하였다(롬 9:1-3). 선지자 에스
겔이 그렇게 근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때에 강퍅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기 때문이었다. 에스겔은, 생물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반면에, 유
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만 범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고 있음을 보았
다. 이런 두 가지 대조(對照)를 보는 에스겔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은 종종
이런 두 가지 대조를 보여주면서 독자(讀者)들의 각성(覺醒)을 일으킨다.
미카엘 그리피스(Michael C. Griffiths, df Overseas Missidnary Fellowship)는,
신자들 중에 하나님을 참으로 위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자의 대조를
보여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성경 장절들에 기록된 사실들을 들어 설교한 적이 있
다. 곧, "바나바는 밭을 팔아 그 값을 교회에 바친(행 4:36-37),반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소유 판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얼마만 바쳤고(행 5:1-2), 사도들은 그리
스도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 핍박을 달게 받는 반면에, 가말리엘은 말로써 수난 중의
사도들을 변호하면서도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에 투신하지는 않았고(행 5:38-39), 빌립
은 진실히 예수님을 믿어 권능을 행하는 반면에, 시몬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
의 일군이 되려고, 베드로에게 돈을 바치며 하나님의 권능을 사려고 하였다(행 8:4-1
9)"라고 하였다.
"델아빕" ( )은 바벧론의 어떤 지명인데 비옥한 땅이었던 듯하고, 이스
라엘 포로들이 거주한 곳이다. 히브리 원문에는
"그발강 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 란 말 다음에 "그들이 거기 유하더라"(
)란 문구가 있다. 어떤 히브리어 사본(寫本)에는 이 말이 없다. 따라서 이 문구(그들
이 거기 유하더라)는 본래의 원본(原本)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Toy, hans Schmidt, He
inisch, Herrmann, Cooke, Van Den Born, Schumpp, ziegler). 우리 한역도 이 문구는
번역하지 않았다.
겔 3;16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파숫군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함을 말씀한다.
영혼의 파숫군이 악인을 깨우치지 않으면, 그 악인이 망할 때에 그 피 값을 그 파숫군
에게서 찾겠다고 하신다. 그가 우리에게 그렇게 책임을 지우시는 이유는, (1) 그가 영
혼을 사랑하시기 때문임. 그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더 사랑하신다. (마 16:26).
그는, 구스 내시(內侍)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빌립을 가사로 가는 길에 보내셨
다(행 8:26). 그는, 많은 의인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함을 더 기뻐하신다. (2) 사람
만이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도할 자격자인 까닭. 하나님은 천사보다도 인간을 사용하신
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에게 남을 감동시킬 눈물도 있고 피도있고 고생
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격에는 책임이 따른다. (3) 내가 남을 깨우쳐 구원하는
일을 하면, 그것이 나의 영혼에 유익한 까닭, 남의 영혼을 위하는 일은 곧, 내 영혼을
위함이다. 히 13:17 에 말하기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
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
이" 사랑할 진리에서 살아야 된다.
또한 영혼의 파수군은, 의인이 잘못하는 것도 깨우쳐 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의인이 혹시 실수할지라도 그 실수 때문에 전에 행한 의(義)가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
는다고, 우리 본문은 말한다(20절). 그러므로 의인의 한 번 범죄도 크게 위험한 일이
다. 이것을 보면, 의인도 자기를 안전하게 보지 않아야 된다. 그도 늘 두려워 떨어야
된다.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이 말씀의 히브리 원문을 직
역(直譯)하면, "칠 일 후에 있으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있으니라"이다. 여기 "있으니
라"( =오예히)란 말이 두 번이나 나오므로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므로 크레
이추말(Kraetzschmar)이란 학자는, 16절 하반부터 21절 까지의 부분을 가리켜 선지자
의 사명 받은 본문에 대한 후대인의 확대(nachtraglische Erweiterung deg Textes der
Berufungssgeschichte)라고 하였다. 그러나 알델스(G. Ch. Aalders)는 말하기를, "우
리는, 16-21절을 선지자의 책임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로서 통일된 한 개의 문건(文件)
으로 보아야 안전하다" 라고하였다(Commentaar op het Oude Testament, Ezechiel I, 1
955, p. 77). 한스 슈미드트(Hans Schmidt)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여호돠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4:2 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 영혼(靈魂)들의 파숫군은, (1) 하나님의 말씀을 바
로 들어야 된다."내 입의 말을 듣고"란 문구가 그것을 고조한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서 이렇게 저렇게 변한 말이나, 혹은 다른 것과 섞인 말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
지 못한다. 곧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그대로가 영혼을 구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중에는 성경을 바로 해석하여 전하지 않고, 각기 제멋대로 성
경 말씀을 외곡 하여 자기의 사상을 전하는데 이용하는 자들이 많다. 그렇게 성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된다. "나를 대신하여" 한 말의 히브리 원어 밈멘니(
)는, "나로부터"란 뜻이다. 그것은, 전도자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해야 된다는 뜻이다(벧전 4:11). 이것은, 전도자가 자신을 거부하고 극히 낮아져서 하
나님의 기계가 되어 설교하는 처지를 말함이다.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기계라!"고
하는 자만심도 전혀 없다. 그는, 사도 바울과 같이 말씀에게 붙들려서 말하는 자이다
(행 18:5). (3) 영혼의 파숫군의 죄인들을 깨우쳐야 된다. 그 깨우침은, 그 죄인들로
하여금 외부적인 위험을 느끼도록하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과 및 그 결과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겔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 "악인에게"대하여 하나
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는 꼭 죽으리라"( =모드 타무드)고 하신다.
이런 엄한 말씀은 큰 죄, 또는 한 번만 범죄한 사람에게도 내리는 선고(宣告)이다. 우
리 선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작은 죄 같으며, 또 한 번만 범한 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더러 하신말씀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27)라고 하셨던 것이다. 죄는 많은 양
(量)으로써 영혼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 질(質)로써 영혼을 죽인다. 마치, 작은 불
씨가 화약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 불이 화약을 터뜨리는 질을 가진 것처럼. 죄는 비록
작아도 영혼을 멸망시킨다.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손에서 찾을
것이고 -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전하지 않음은 어떤 죄를 범함인가? (1) 영혼의 가
치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죄와, (2) 복음의 가치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죄이다.
로울란드 힐(Rowland Hill)은, 개인 전도를 열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미쳤다는 말을 들
었고, 부레나드(David Brainerd)는 꿈 가운데서도 늘 전도하는 꿈을 꾸었고, 신약 시
대에는 일반 신자들이 모두 다 영혼의 파숫군인데, 우리는 이 책임을 잘 감당해야 된
다.
겔 3:19
이 귀절에 대하여는, 행 20:26-27 을 참조하여라.
겔 3:20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
여기 "의인"은 외부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정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도 별수 없이
범죄할 때가 있다.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 문구는 가정법(假定法)
언사가 아니고 으례 그렇게 됨을 가리킨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흠잡힐 일은 별로 하
지 않을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믿을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그도 하나
님 앞에서는 늘 죄인이다. (1) 그는, 다른 사람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며, (2)
그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선을 행하며, (3)그는 외식(外飾)으로
의로운 체하기도 한다.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곧, 그가 한번 범죄하여도 전에 행한 "그의"(
=치데코다우= 그의 義들)가 무효가 된다. 이것이 이렇게 되는 것은, 신구약 진리에 부
합한다. 이것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
나니"(약 2:10)라고 한 말씀과도 부합한다. 갈 3:10 참조.
과거의 많은 의로운 행실들이, 그의 한 번 범죄 때문에 무효된다는 말씀에서 우리
가 깨달을 것은 다음과 같다. 곧, 과거에 많은 의를 행하였을 지라도, 그것이 영원한
가치 있는 구원의 의(義)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만
성립된다.
겔 3:21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 고전 3:15 참조.
겔 3:22
많은 해석가들은, 이 부분이 제 4장에서 시작되는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 예언에 대
한 서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그렇게 보지 않고 이때까지 말해 온바 에스겔의
사명 받음에 대한 결론이라고 하는 학자들이 있다(Hengstenberg, Skinner, ziegler, A
uvray, Van Den Born).이 학설이 옳다고 할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다.(1) 22
절에
"거기서" - ( =솽)란 말이 있으니, 그것은 그앞에 벌써 기록된 말씀(1-3장)가운
데 있는 어느 장소와 관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70인역(LXX)에는 이 말이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마소라 본문(주후 6-12 세기 까지에 학자들이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 사
본들에 의하여 그 독법을 알려준 본문)의 이 말을 무시할 수 없다. 코닐(Cornill)과
로드슈타인(Rothstein)은 70 인역(LXX)과 같이 이말을 제거(除去)하지만 그것은 지나
친 일이다. (2) 23절에
"여호와의 영광"( =케보드 예호와)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에스
겔이 그발강가에서 보던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22-27) 말씀은, 위에 벌
써 언급된 에스겔의 사명 받은 사건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3) 그리고 이 부분(22
-27)에 기록된대로 에스겔의 침묵할 시기(時期)와 또는 말할시기에 관한 하나님의 지
시와 같은 것이, 역시 이 부분이 선지자의 사명받음에 관련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겔 3:24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 이 말씀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그의 예언 활동이 중지된다는 뜻이라 하고, (2) 그는, 이제부터 공적(公的)으로
사역하지 않고 사적(私的)으로 상징적 행위에 의한 예언(4-5 장)을 할 것이라는 의미
라 하고(Cooke), (3) 선지자를 대적하는 자들의 박해 때문에 집에 있으라는 뜻이라고도한다. 이 마지막 해석이 옳은데, 그 정당성은 25 절이 잘 보여준다.
겔 3:25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 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 이 말씀은, 에스겔이 군중으로 말미암아 핍박 받을 것을 예언한다.
겔 3:26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하여 - 곧,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당분간 공적 예언 사역을 하지 않도록, 이스라엘에게 대한 책망의 말씀을 그에게 주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겔 3: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 임이니라 - 영혼의 파숫군의 유일한 사역도구(使役道具)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때에는, 차라리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어야 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으며(24절), "혀로... 입천장에 붙게" 해야 할 것도, 그는 말씀하셨다 (26 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는, 핍박자들(25 절) 곧, 패역한 자들에게 전도할 힘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지금도 하늘에서 직접 나타나는 하나니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직접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다가(혹은 듣다가) 그 말씀을 깨달을 때에 그것이 너무 달아서 하늘에서 현재에 내게 주신 말씀으로 확실히 믿어지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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