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
회복될 새 이스라엘의 땅의 경계와 외인의 분깃을 별도로 언급한 데(47:13-23) 이어 본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새 이스라엘 땅이 12지파에게 분배되는 과정을 기술한다. 이러한 본장의 땅 분배는 첫째 각 지파의 땅이 남북으로 질서있게 배열되었다는 점, 둘째 그 땅의 중앙에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진 거룩한 땅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여호수아 당시의 땅 분배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로 보아 본장의 땅 분배가 역사적으로 성취될 예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영새의 기업을 예표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이러한 땅 분배는 경계의 언급 순서와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부터 시작되며(47:15) 특징적으로 중앙의 거룩한 땅을 제외하고는 그 동서쪽의 경계만 언급되었을 뿐 남북간의 지파별 경계는 언급되지 않았다. 먼저 본절부터 7절까지는 북쪽 경계에서 그 땅의 중심부(거룩한 땅, 8-22절)에 이르는 일곱 지파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몇몇 지파(단, 유다, 베냐민 등)을 제외하고는 그 지파별 분깃의 배열에 대한 특별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극복에서부터...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 47:15-17의 반복으로 그곳보다 더 간략하면서도 명료하게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북쪽 경계를 언급한다. 이는 곧 경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지중해의 한 지점(47:15)에서 경계의 최북단인 하맛 지계(47:17)를 거쳐 북쪽의 경계와 동쪽의 경계가 만나는 다메섹 지계의 하살에논까지 이르는 것이다. 단의 분깃이요 - 최북단의 지역이 단 지파에게 할당된 것을 알린다. 본래 단 지파는 서부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을 차지했었으나(수 19:40-48) 사사 시대에 이를 아모리 사람에게 빼앗긴 후 북쪽의 산간 지역을 점령하고(삿 1:34-36) 그곳에 정착하였다. 이처럼 단 지파는 그들에게 주어진 원래의 기업을 유지하지 못한 것과 그들의 빗나간 신앙 때문에(삿 18장) 상대적으로 취약한 최북단에 위치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혹자는 본장의 땅 분배가 새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란 점에서 이전 행위의 시시 비비를 초월해 모든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위상을 가지며 그 분깃의 할당 또한 아무런 이유없이 공평한 제비뽑음의(47:22)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Hengstenberg).
=====48:2-6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지파의 땅 분배 기사이다. 여기서 아셀, 납달리 지파는 이전 땅 분배에서와 마찬가지로 북쪽 지역에 위치하게 되었다(수 19:24-39). 또한 이전 땅 분배 과정에서 반 지파씩으로 나뉘어 요단 동편(수 13:29-31)과 서편에 정착했던 므낫세 지파가 여기서는 통합되어 요단 서편의 땅을 그들의 분깃으로 받게 된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분깃에 관해서는 47:1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에브라임과 유다 지파의 분깃 사이에 르우벤 지파의 분깃이 할당된 것은 르우벤이 야곱의 육적 장자라는 사실에 기인된 듯하다(Delitzsch).
=====48:7
유다의 분깃이요 - 유다 지파가 야곱의 육적 장자된 르우벤 대신 거룩한 땅에 연접할 수 있었던 것은 야곱의 축복을 통해 메시야의 출생을 언약받은 영적 장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창 49:8-12). 또한 유다 지파는 베냐민 지파와 함게 반역한 북이스라엘 왕국에 동참한 10지파를 대항해 이스라엘 왕국의 정통성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타지파보다 신앙적, 역사적인 우월성을 가졌다. 한편 거룩한 땅을 분기점으로 북쪽과 남쪽의 지파 배열이 동등한 6:6의 비율로 정해지지 않고 7:5의 비율로 배분된 것은 완전수 '7'은 항상 대표저긴 수로, '5'는 그 '7'의 보충적인 수로 여긴 히브리적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Hengstenberg). 따라서 이러한 배분은 북쪽 일곱 지파 중에서도 대표적인 유다의 탁월한 위상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48:8
45:1-8에 언급된 예물로 드려질 땅에 대한 기사와 다소의 차이를 보이며 22절까지 기술된다. 한편 이 예물로 드려질 땅에 대한 언급 순서는 45장에서와 같이 거룩한 직무의 차서에 따라 제사장, 레위인, 성읍 기지, 왕의 순으로 열거된다(8-22절). 이를 도면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8:9
제사장에게 주어질 기업이 12절까지 언급된다. '예물로 삼을 땅'(* , 테루마)은 특별하게 여호와께 드리는 것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성별된 땅 모두를 지칭하는 8절의 '예물로 드릴 땅'과는 다르다. 그래서 영역 성경 중 NIV는 8절의 예물을 '특별한 선물'(special gift)로 9절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릴 예물'(offer to the Lord)로 분명하게 구분지어 번역한다. 더나아가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질 땅은 레위인의 기업과 같은 거룩한 땅(45:1 참조)일지라도 상대적으로 더 거룩한 땅이 된다(12절).
=====48:10
제사장의 기업에 대한 측량이 단순히 장과 광만으로 제시된 45:3의 측량보다 더 상세하게 언급된다.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 8절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중앙부로 언급된 성소의 위치가 좀더 구체적으로 지시된다. 곧 예물로 드려진 땅이 새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하며 제사장들의 기업은 그 땅 중에서도 또 다시 중앙에 위치했으며 끝으로 성소가 그 제사장의 기업의 중앙에 위치했다는 것은 결국 성소가 전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그들의 영적 구심점이 됨을 극명하게 강조하고 있다(8절).
=====48:11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 한글 개역 성경은 사독의 자손 중 특별히 선택된 제사장에게만 그 기업이 할당되는 것처럼 번역했으나 히브리 본문에서는 '사독의 자손'과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이 동격으로 언급되었다. 즉 사독의 자손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이란(the consecrated priests, the Zadokites, NIV)의미에서 그들 모두가 그 기업을 할당받게 됨을 보여준다(Delitzsch, Schroder).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44:10 주석을 참조하라.
=====48:12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 테루미야 미트 루마 하아레츠) - 본 구절을 직역하면 '예물로 드려진 것으로부터 예물로 드려진 것'으로 '온 땅'은 예물로 드려진 전지역을 가리키며, '예물로 드리는 땅'은 그 예물 중에서 특별하게 여호와께 드려진 제사장의 기업을(9, 10절) 가리킨다. 이는 이어서 언급되는 '레위 지계와 연접한 따'이란 구절로도 입증된다.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지니라 - 45:3에서 '지극히 거룩한 곳'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신 성소를 지칭했던 말인데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기업 전체에 대해 쓰여진 것은 그들의 기업 중앙에 성소가 위치하게 되며 그들의 직무 또한 성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48:13
제사장의 기업과 함께 거룩한 땅으로 명명되었던(45:1 참조) 레위인의 기업이 언급된다(45:5 참조).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 여기서 '따라'(* , 우마)는 원어상 '곁에', '마주 대하여'란 뜻으로 레위인의 기업이 제사장들의 기업과 바로 연접해 있음을 보여준다.
광이 각기 일만 척이라 - 여기서는 개역 성경의 '각기'(* , 콜)를 '모두' 또는'전부'란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그 구역의 장을 따라 남북간의 광이 모두 일만 척으로 일정하다는 의미이다(Kliefoth, Delitzsch).
=====48:14
레위인들이 받은 기업의 소유 규정이 제시된다.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 레 25:34 주석을 참조하라.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있어 그들의 첫 소산은 항상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보편적인 규정이 일반인들보다 특수한 위치에 있는 레위인들에게 재삼 언급된다는 것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 그 땅의 첫 소산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레위인의 기업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곧 첫 열매와 같은 성격의 이 기업은 결코 매매나 양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 기업이 이스라엘의 첫 열매처럼 여호와의 소유로서 그에게 드려지는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48:15
45:6에 기술되었던 성읍의 기지 지역이 본절에서 19절까지 다시 상세하게 언급된다.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 예물로 드려진 성읍의 기지가 '속된 땅'으로 모순되게 묘사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속된'(* , 홀)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문맥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거룩한 땅으로 성별된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에 비교해서 속됨 곧 상대적인 속됨을 말하는 것이다(Schroder).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 '거하는 곳'(* , 리모솨브)은 주거지(home, LB;houses, NIV)를, '들'(* , 미그라쉬)은 일반적인 경작지나 목초지를 가리킨다.
=====48:16,17
성의 척수는 그 중심부에서 사면으로 사천 오백 척에 이르며 그 성을 둘러 싼 들과 함께 모두 오천 척(성 4500척, 성의 들 250척+250척=500척)의 정방형 모양이 된다(8절 도면 참조).
=====48:18,19
거룩히 구별할 땅 -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에 대한 묘사이다(45:1 참조). 남아 있는 땅의...일만 척이라 - 여기서 '남아 있는 땅'은 곧 성과 성의 들을 제외한 성읍을 가리키며 이만 오천 척 되는 총 장의 길이에서 성과 성의 들의 장의 길이인 오천 척을 제외하면 그 성을 중심으로 동서편에 각각 장 일만 척의 성읍이 남게 된다.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 -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이견들이 제시된다. (1) 그 성읍이 이스라엘의 공동의 소유란 점에서(45:6) 열두 지파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성읍을 건축하고 인근에 있는 성전 봉사자들을 위해 그 땅을 경작함을 가리킨다(Havernick, Gesenius). (2) 이 땅이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과 연접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를 수비하기 위한 군인들을 가리킨다(Hengstenberg). (3) 그 성읍에 거주하는 일반적인 노동자를 가리킨다(Kliefoth, Delitzsch). 문맥상 (1)의 견해가 가장 적합한 듯하다.
=====48:20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 - 여기에 언급된 '예물'에는 8절에 포함되어 기술했던 왕의 기업이 제외되었다.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 여기서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곧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으로서 이들 지역이 성읍까지를 합해서 사방이 이만 오천 척인 정방형 모양이 된다는 의미이다(8절 도면 참조).
=====48:21
20절에 언급된 예물로 드려질 땅의 좌우편(동서편)이 왕에게 할당된 기업이 된다(45:7 참조). 한편 본절에 언급된 이만 오천 척은 그 기업의 광을 말한다.
=====48:22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 예물로 드려질 땅의 중앙에 위치한 제사장의 기업을 생략한 채 그 기업의 북쪽과 남쪽에 있는 레위인의 기업과 성읍의 기지만을 언급한 것은 이미 21절에서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는 구절을 통해 왕의 기업과 제사장의 기업 사이의 지리적 관계를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유다 지경과...사이에 있을지니라 - 동서쪽 위치와 함께 부가적으로 북쪽과 남쪽 경계에 의거한 기업의 위치를 밝힌다.
=====48:23-27
북쪽에 위치한 7지파의 땅 분배를 기술한 1-7절에 이어 다시 지파별 땅 분배가 계속되는 바, 여기서는 예물로 드려진 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5지파가 순서대로 언급된다. 그 나머지 모든 지파 - 곧 북쪽에 분깃을 받은 7지파를 제외한 5지파(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볼론, 갓)를 가리킨다. 베냐민의 분깃이요 - 북쪽의 유다 지파와 마찬가지로 베냐민 지파 또한 예물로 드려진 땅에 연접하게 된다(7절 참조). =====48:28
47:15 주석을 참조하라.
=====48:29
지파별 땅 분배를 결론짓는 부분이다. 제비뽑아...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 이스라엘의 이전 약속의 땅 가나안 분배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공평한 제비뽑기를 시도하게 하여 각 지파에게 만족할 만한 기업을 허락하셨다(민 26:56).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에 있을 기업의 분배 역시 하나님의 의로우신 방법에 의해 공평하게 결정될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공평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공평한 것임을 가리킨다. 단과 갓 지파의 최북남단 위치와 유다 베냐민 지파의 성소 부근 위치 등은 단순한 절대적 공평에 의한 우연 발생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판단하시는 공평의 결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사안인 것이다.
=====48:30
본서의 마지막 부분은 15절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부분으로 성읍 기지의 중앙에 위치한 성의 출입문들을 언급한다. 곧 이 출입문들은 성의 사면에 각각 3개씩 모두 12개가 있게되며 그 각각의 출입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2대문에 12지파의 이름을 명명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환상 기사가 수록된 계 21:12과 연관되어 있다(Delitzsch). 왜냐하면 본장의 새 성전의 성읍 역시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성취될 온전한 하나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48:31-34
에스겔이 어떠한 의도로 각 지파별 출입문의 명칭을 배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델리취(Delitzsch)는 북쪽부터 시작된 출입문의 지파별 명칭 순서를 땅 분배와는 다르게 장자에 대한 족장(야곱)의 축복이란 이스라엘의 전례적인 관습과 나이 순, 그리고 여호와께 대한 봉사의 직무 순에 따른 것으로 이해한다. 곧 성소를 향하고 있는 북쪽에는 레아의 아들들로서 장자인 르우벤과 영적 장자인 동시에 왕의 가계인 다윗의 선조 유다, 제사장 가계인 레위 지파가 언급되었던 바, 이들은 신 33:6-8의 모세의 축복에서도 가장 먼저 기술된다. 또한 동향한 문에는 라헬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의 이름이 나이순에 따라 나타나며(신 33:12, 13) 그녀의 여종 빌하의 장자인 단이 함께 언급되었다(32절). 한편 본문은 특징적으로 땅의 분배 때와는 달리 31절에 레위 지파가 삽입된 대신 두 몫의 기업을 받았던 요셉 지파(므낫세, 에브라임, 5, 6절)는 그 이름으로 하나의 문밖에 배정받지 못하였다. 남쪽의 문들은 역시 레아의 소생인 시므온과 잇사갈, 스불론이란 이름이 나이 순으로 언급되었다(33절). 끝으로 서쪽의 문들은 모두 첩의 소생으로서 실바의 아들인 갓, 아셀과 빌하의 차자 납달리의 이름으로 지정되었다(34절).
=====48:35
성의 출입문들이 12지파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는 것은 곧 그 성읍이 온 이스라엘의 공동의 소유인 것을 암시하는데, 이러한 성읍이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로 명칭되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새 이스라엘 공동체와 항상 함께하시리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한편 에스겔의 사역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그 날 후로는(* , 미욤) -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완성되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의 날인 동시에 본서에 기술된 모든 예언과 규정과 지침들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때를 가리킨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 원전상 본서는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란 뜻의 '여호와 삼마'(* )라는 단어로 종결되는 바, 이는 에스겔 선지자의 전사역을 함축하는 본서의 총괄적인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곧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목격한 여호와의 영광의 떠나심(10:18-22;11:22-24)과 다시 돌아오심(43:4)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새 성전에 거하시면서 다시는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리라 하신 약속으로 귀결되며(43:7) 결과적으로 그 모든 사역이 이 '여호와 삼마'로 종결되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삼마'는 원어상 '저기에', '거기에'라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바, 혹자는 여호와의 처소가 이 성읍이 아니라 그 지역과 엄밀하게 구분되는 성전이라는 점에서 이를 '저기에'로 해석한다(Havernick, Schroder). 그러나 이 성읍이 12지파, 곧 전이스라엘의 공동 소유란 점에서, 단순하게 여호와의 처소를 지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새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거기에'라는 해석이 더 적절하다(Delitzsch).
전장(47장)에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생명강의 환상과 땅의 분배라는 차원에서 묘사하였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분위기는 본장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아울러 하나님의 전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으로 절정을 이른다. 사실 저자는 지금까지 본서의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여부를 축으로 삼고 있었다. 즉,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성전에서 떠나가시는 것을 보았고(11장), 새로운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였으며(43:4;44:2),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성전에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35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말론적 회복은 물질적이거나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전공동체의 기업이며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의 임재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일곱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부분(1-7절), (2) 하나님에게 속한 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부분(8-22절), (3) 나머지 다섯 지파들의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23-29절), (4) 성읍의 출입구에 대한 할당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30-3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비평주의 학자들은 본장의 중간 부분(8-22절)을 후대에 삽입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지파들의 땅 분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문맥에서 갑자기 다른 내용이 중간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장의 땅 분배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땅을 중심으로 하여 먼 곳부터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장의 중간 부분이 12지파의 땅 분배에 대한 부차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거룩한 땅에 대한 분배의 내용이 12지파의 땅 분배에 대한 내용을 조정 내지는 통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거룩한 땅, 즉 성전이 있는 땅을 기준으로 하여 가장 먼 곳에 있는 단 지파를 시작으로 해서(1절)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다 지파(7절)로 그리고 다시 성전 남편 쪽에서 보았을 때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베냐민부터(23절)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최 남단에 있는 갓 지파(27절)까지 순서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의 내용은 후대에 서로 다른 내용을 편집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본서의 저자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된 새로운 질서를 땅 분배의 차원에서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지파들의 땅 분배는 이전에 있었던 여호수아 시대(수 13:8-17:18)와는 그 순서가 다르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시대의 땅 분배는 출생의 순서가 기준이었지만, 본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 속에서 각 지파들이 행해온 공과를 기준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반하나님적인 성향을 보여왔던 단 지파는 성전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된 것이다(창 49:16,17;삿 17,18장). 반면에 베냐민 지파는 분열 왕국 시대에도 유다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북이스라엘 지파들처럼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는 마땅히 그 행위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약의 종말론적인 교훈과도 일치한다(마 22:11;벧전 3:3-4).
1. 일곱 지파들의 땅 분배(48:1-7)
에스겔은 이스라엘 지파드리 소유하게 될 땅에 대한 경계를 기록하고 나서(47:13-23) 이제 본 단락에서는 지파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구체적인 땅 분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땅의 분배는 역사적으로 성취된다기보다는 영생의 기업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대한 예표이다. 성도는 마지막 날에 천국의 유업을 상속받아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단 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묘사하는 구절(1절)로 시작하여 각 구절들마다 지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여러 지파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탄생케 했던 야곱의 휴예들인데, 이들의 근원이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지파명 | 족 보 | 지 파 명 | 족 보 |
+--------+---------------------------+----------+----------------------------+
| 단 |야곱과 라헬의 시녀인 빌하 | 아셀 | 레아의 시녀 실바의 소생 |
| |로부터 출생 | | |
+--------+---------------------------+----------+----------------------------+
| 납달리 |빌하의 소생 | 므낫세 | |
| | | 에브라임 | 요셉의 아들 |
+--------+---------------------------+----------+----------------------------+
| 르우벤 |야곱의 장자 | 유다 | 야곱의 아들 |
+--------+---------------------------+----------+----------------------------+
이처럼 전통적인 지파의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본 단락의 중심적인 교훈은 땅의 위치는 차서를 두었으나 땅의 규모는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1-7절까지 동일한 양식으로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중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언급은 '동편에서 서편까지'라는 표현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매우 공평하다는 사실은 알려준다. 즉, 그 어느 누구도 땅의 크기를 제한하거나 초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평한 분배는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2. 거룩한 땅의 분배(48:8-22)
일곱 지파에 대한 땅의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7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성전이 위치한 하나님의 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사실 본장은 이 단락을 축으로 하여 이전 단락(1-7절)과 이후 단락(23-35절)이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땅의 중심부에 성전이 있으며, 좌우편에는 왕의 기업(21,22절), 북편에는 레위인의 땅(13,14절), 남편에는 성읍이 있음을 밝히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사독 제사장들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땅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부분(8-12절), (2) 레위인의 땅을 밝히고 있는 부분(13,14절), (3) 성읍의 규모를 소개하고 있는 부분(15-20절), (4) 왕의 땅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21,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의 거룩한 땅의 분배에 관한 묘사는 45장과 비교할 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이를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45:1-8 | 48:8-22 |
+----+-----------------+-------------------------+---------------------------+
| 공 |구 조 |제사장-레위 지파-성읍-왕의 순서로 땅이 분배됨 |
| 통 +-----------------+-----------------------------------------------------+
| 점 |규모에 대한 표현 |동일한 크기의 단위를 사용함 |
+----+-----------------+-------------------------+---------------------------+
| 차 |의 미 |그 땅이 하나님의 땅임을 |땅의 규모와 크기를 묘사하는|
| | |강조함 |데 집중함 |
| 이 +-----------------+-------------------------+---------------------------+
| |제사장의 땅에 |제사장 가문에 대한 언급 |사독 가문임을 구체적으로 밝|
| 점 |대한 표현 |이 없음 |히고 그 이유에 대한 역사적 |
| | | |평가를 기술함 |
+----+-----------------+-------------------------+---------------------------+
이러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본 단락의 중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사장의 땅 분배의 기준(8-12절) : 하나님의 거룩한 땅의 구분에서 제사장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에게만 땅의 소유를 허락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11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땅에 대한 분배의 기준이 지나온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지켜온 각 지파들의 신앙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시다(전 12:14;행 17:31).
(2) 레위 땅의 권리 제한(13,14절) : 제사장의 땅과는 달리 레위인의 땅에서는 엄격한 제한이 뒤따르고 있다. 즉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땅과 그 땅에서 나는 열매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 제한은 레위인들이 그 땅에서 살지만, 땅의 소유자는 오직 하나님임을 강조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성도는 자신의 모든 소유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깨닫고, 성실한 청지기로서 생활해야 할 의무가 있다(눅 12:42).
(3) 성읍의 땅의 역할(15-20절) : 성읍의 땅의 중심적인 역할은 백성들이 삶을 유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땅이지만, 동시에 백성들의 일반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생활의 터전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영과 육을 포함하는 전인격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성들은 성(聖)과 속(俗)에 대한 분리된 이원론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관점에서 신앙을 삶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문해질 것이다(합 2:14).
3. 다섯 지파들의 땅 분배와 성읍의 출입구(48:23-35)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있는 땅의 분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전 단락(8-22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나머지 다섯 지파들의 땅 분배와 성읍 출입구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특히 본 단락은 본서 전체의 내용을 결론짓는 부분으로, 땅의 분배와 성전에 여호와가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런 결론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다섯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23-29절), (2) 성읍의 출입구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30-3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마지막 부분인 성읍 출입구에 대한 문의 묘사에서 12지파의 이름이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는 것은 12지파가 하나님의 공동체의 대표가 됨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12지파가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대표되고 있는 것은 다른 여러 성경에서도 나타나는 바이지만, 요한 계시록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계 7:5-8). 특히 31-34절의 내용은 요한 계시록의 내용(계 21:12-17)과 상응하고 있는데, 이를 비교하여 도표로 만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겔 48:30-35 | 계 21:12-17 |
+---------------+---------------------------+--------------------------------+
| 구체적인 표현 |12지파의 이름이 동일하게 성전 문 위에 쓰임 |
+---------------+------------------------------------------------------------+
| 주 제 |새로운 성읍에 대한 상징적 묘사를 하고 있음 |
+---------------+------------------------------------------------------------+
| 의 미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묘사함 |
+---------------+---------------------------+--------------------------------+
| 표현의 차이점 |상징적 성격보다 사실적인 |좀더 완벽한 형태로 상징적 묘사 |
| |묘사를 함 |를 하고 있음 |
+---------------+---------------------------+--------------------------------+
| 구속 역사적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
| 차 원 |만 집중하고 있음 |묘사함 |
+---------------+---------------------------+--------------------------------+
이러한 종말론적인 계시의 완성을 성읍과 완벽한 재건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 단락의 중심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절정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이다(23-29절). 바벧론 포로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의 환상은 조만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일차적으로 성전의 재건과 성읍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가리킨다. 이 모습은 요한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과 새 땅의 강림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나라를 완성시키시고, 모든 성도들을 온전한 형태로 변화시키실 것이다(살전 4:17).
(2)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최종적 관심은 백성들 가운데 영원히 임재하는 것이다(30-35절). 본 단락의 마지막 절의 '여호와 삼마'라는 표현은 본서의 전체의 최종적 결론이기도 하며, 성전 재건과 땅의 분배의 최종적 목적이기도 하다. 즉, 구속 역사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며, 충만하고 생명력 넘치는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성전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신앙관을 교정시키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만들어준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온전히 자신을 계시하시며 자기 백성들과 완벽한 친교를 통하여(고전 13:12)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신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마땅히 평가를 받는다(고전 3:13-15). (2)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시 73:28). 성도들의 일차적인 간구의 제목은 자신의 삶의 평안이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이다. (3)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해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에스겔이 바벧론 포로의 와중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비록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부정적이지만 하나님의 미래의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날마다 묵상해야 한다(시 1:1-6).
회복될 새 이스라엘의 땅의 경계와 외인의 분깃을 별도로 언급한 데(47:13-23) 이어 본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새 이스라엘 땅이 12지파에게 분배되는 과정을 기술한다. 이러한 본장의 땅 분배는 첫째 각 지파의 땅이 남북으로 질서있게 배열되었다는 점, 둘째 그 땅의 중앙에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진 거룩한 땅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여호수아 당시의 땅 분배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로 보아 본장의 땅 분배가 역사적으로 성취될 예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영새의 기업을 예표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이러한 땅 분배는 경계의 언급 순서와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부터 시작되며(47:15) 특징적으로 중앙의 거룩한 땅을 제외하고는 그 동서쪽의 경계만 언급되었을 뿐 남북간의 지파별 경계는 언급되지 않았다. 먼저 본절부터 7절까지는 북쪽 경계에서 그 땅의 중심부(거룩한 땅, 8-22절)에 이르는 일곱 지파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몇몇 지파(단, 유다, 베냐민 등)을 제외하고는 그 지파별 분깃의 배열에 대한 특별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극복에서부터...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 47:15-17의 반복으로 그곳보다 더 간략하면서도 명료하게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북쪽 경계를 언급한다. 이는 곧 경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지중해의 한 지점(47:15)에서 경계의 최북단인 하맛 지계(47:17)를 거쳐 북쪽의 경계와 동쪽의 경계가 만나는 다메섹 지계의 하살에논까지 이르는 것이다. 단의 분깃이요 - 최북단의 지역이 단 지파에게 할당된 것을 알린다. 본래 단 지파는 서부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을 차지했었으나(수 19:40-48) 사사 시대에 이를 아모리 사람에게 빼앗긴 후 북쪽의 산간 지역을 점령하고(삿 1:34-36) 그곳에 정착하였다. 이처럼 단 지파는 그들에게 주어진 원래의 기업을 유지하지 못한 것과 그들의 빗나간 신앙 때문에(삿 18장) 상대적으로 취약한 최북단에 위치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혹자는 본장의 땅 분배가 새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란 점에서 이전 행위의 시시 비비를 초월해 모든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위상을 가지며 그 분깃의 할당 또한 아무런 이유없이 공평한 제비뽑음의(47:22)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Hengstenberg).
=====48:2-6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지파의 땅 분배 기사이다. 여기서 아셀, 납달리 지파는 이전 땅 분배에서와 마찬가지로 북쪽 지역에 위치하게 되었다(수 19:24-39). 또한 이전 땅 분배 과정에서 반 지파씩으로 나뉘어 요단 동편(수 13:29-31)과 서편에 정착했던 므낫세 지파가 여기서는 통합되어 요단 서편의 땅을 그들의 분깃으로 받게 된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분깃에 관해서는 47:1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에브라임과 유다 지파의 분깃 사이에 르우벤 지파의 분깃이 할당된 것은 르우벤이 야곱의 육적 장자라는 사실에 기인된 듯하다(Delitzsch).
=====48:7
유다의 분깃이요 - 유다 지파가 야곱의 육적 장자된 르우벤 대신 거룩한 땅에 연접할 수 있었던 것은 야곱의 축복을 통해 메시야의 출생을 언약받은 영적 장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창 49:8-12). 또한 유다 지파는 베냐민 지파와 함게 반역한 북이스라엘 왕국에 동참한 10지파를 대항해 이스라엘 왕국의 정통성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타지파보다 신앙적, 역사적인 우월성을 가졌다. 한편 거룩한 땅을 분기점으로 북쪽과 남쪽의 지파 배열이 동등한 6:6의 비율로 정해지지 않고 7:5의 비율로 배분된 것은 완전수 '7'은 항상 대표저긴 수로, '5'는 그 '7'의 보충적인 수로 여긴 히브리적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Hengstenberg). 따라서 이러한 배분은 북쪽 일곱 지파 중에서도 대표적인 유다의 탁월한 위상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48:8
45:1-8에 언급된 예물로 드려질 땅에 대한 기사와 다소의 차이를 보이며 22절까지 기술된다. 한편 이 예물로 드려질 땅에 대한 언급 순서는 45장에서와 같이 거룩한 직무의 차서에 따라 제사장, 레위인, 성읍 기지, 왕의 순으로 열거된다(8-22절). 이를 도면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8:9
제사장에게 주어질 기업이 12절까지 언급된다. '예물로 삼을 땅'(* , 테루마)은 특별하게 여호와께 드리는 것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성별된 땅 모두를 지칭하는 8절의 '예물로 드릴 땅'과는 다르다. 그래서 영역 성경 중 NIV는 8절의 예물을 '특별한 선물'(special gift)로 9절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릴 예물'(offer to the Lord)로 분명하게 구분지어 번역한다. 더나아가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질 땅은 레위인의 기업과 같은 거룩한 땅(45:1 참조)일지라도 상대적으로 더 거룩한 땅이 된다(12절).
=====48:10
제사장의 기업에 대한 측량이 단순히 장과 광만으로 제시된 45:3의 측량보다 더 상세하게 언급된다.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 8절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중앙부로 언급된 성소의 위치가 좀더 구체적으로 지시된다. 곧 예물로 드려진 땅이 새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하며 제사장들의 기업은 그 땅 중에서도 또 다시 중앙에 위치했으며 끝으로 성소가 그 제사장의 기업의 중앙에 위치했다는 것은 결국 성소가 전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그들의 영적 구심점이 됨을 극명하게 강조하고 있다(8절).
=====48:11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 한글 개역 성경은 사독의 자손 중 특별히 선택된 제사장에게만 그 기업이 할당되는 것처럼 번역했으나 히브리 본문에서는 '사독의 자손'과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이 동격으로 언급되었다. 즉 사독의 자손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이란(the consecrated priests, the Zadokites, NIV)의미에서 그들 모두가 그 기업을 할당받게 됨을 보여준다(Delitzsch, Schroder).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44:10 주석을 참조하라.
=====48:12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 테루미야 미트 루마 하아레츠) - 본 구절을 직역하면 '예물로 드려진 것으로부터 예물로 드려진 것'으로 '온 땅'은 예물로 드려진 전지역을 가리키며, '예물로 드리는 땅'은 그 예물 중에서 특별하게 여호와께 드려진 제사장의 기업을(9, 10절) 가리킨다. 이는 이어서 언급되는 '레위 지계와 연접한 따'이란 구절로도 입증된다.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지니라 - 45:3에서 '지극히 거룩한 곳'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신 성소를 지칭했던 말인데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기업 전체에 대해 쓰여진 것은 그들의 기업 중앙에 성소가 위치하게 되며 그들의 직무 또한 성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48:13
제사장의 기업과 함께 거룩한 땅으로 명명되었던(45:1 참조) 레위인의 기업이 언급된다(45:5 참조).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 여기서 '따라'(* , 우마)는 원어상 '곁에', '마주 대하여'란 뜻으로 레위인의 기업이 제사장들의 기업과 바로 연접해 있음을 보여준다.
광이 각기 일만 척이라 - 여기서는 개역 성경의 '각기'(* , 콜)를 '모두' 또는'전부'란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그 구역의 장을 따라 남북간의 광이 모두 일만 척으로 일정하다는 의미이다(Kliefoth, Delitzsch).
=====48:14
레위인들이 받은 기업의 소유 규정이 제시된다.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 레 25:34 주석을 참조하라.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있어 그들의 첫 소산은 항상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보편적인 규정이 일반인들보다 특수한 위치에 있는 레위인들에게 재삼 언급된다는 것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 그 땅의 첫 소산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레위인의 기업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곧 첫 열매와 같은 성격의 이 기업은 결코 매매나 양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 기업이 이스라엘의 첫 열매처럼 여호와의 소유로서 그에게 드려지는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48:15
45:6에 기술되었던 성읍의 기지 지역이 본절에서 19절까지 다시 상세하게 언급된다.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 예물로 드려진 성읍의 기지가 '속된 땅'으로 모순되게 묘사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속된'(* , 홀)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문맥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거룩한 땅으로 성별된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에 비교해서 속됨 곧 상대적인 속됨을 말하는 것이다(Schroder).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 '거하는 곳'(* , 리모솨브)은 주거지(home, LB;houses, NIV)를, '들'(* , 미그라쉬)은 일반적인 경작지나 목초지를 가리킨다.
=====48:16,17
성의 척수는 그 중심부에서 사면으로 사천 오백 척에 이르며 그 성을 둘러 싼 들과 함께 모두 오천 척(성 4500척, 성의 들 250척+250척=500척)의 정방형 모양이 된다(8절 도면 참조).
=====48:18,19
거룩히 구별할 땅 -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에 대한 묘사이다(45:1 참조). 남아 있는 땅의...일만 척이라 - 여기서 '남아 있는 땅'은 곧 성과 성의 들을 제외한 성읍을 가리키며 이만 오천 척 되는 총 장의 길이에서 성과 성의 들의 장의 길이인 오천 척을 제외하면 그 성을 중심으로 동서편에 각각 장 일만 척의 성읍이 남게 된다.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 -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이견들이 제시된다. (1) 그 성읍이 이스라엘의 공동의 소유란 점에서(45:6) 열두 지파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성읍을 건축하고 인근에 있는 성전 봉사자들을 위해 그 땅을 경작함을 가리킨다(Havernick, Gesenius). (2) 이 땅이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과 연접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를 수비하기 위한 군인들을 가리킨다(Hengstenberg). (3) 그 성읍에 거주하는 일반적인 노동자를 가리킨다(Kliefoth, Delitzsch). 문맥상 (1)의 견해가 가장 적합한 듯하다.
=====48:20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 - 여기에 언급된 '예물'에는 8절에 포함되어 기술했던 왕의 기업이 제외되었다.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 여기서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곧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으로서 이들 지역이 성읍까지를 합해서 사방이 이만 오천 척인 정방형 모양이 된다는 의미이다(8절 도면 참조).
=====48:21
20절에 언급된 예물로 드려질 땅의 좌우편(동서편)이 왕에게 할당된 기업이 된다(45:7 참조). 한편 본절에 언급된 이만 오천 척은 그 기업의 광을 말한다.
=====48:22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 예물로 드려질 땅의 중앙에 위치한 제사장의 기업을 생략한 채 그 기업의 북쪽과 남쪽에 있는 레위인의 기업과 성읍의 기지만을 언급한 것은 이미 21절에서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는 구절을 통해 왕의 기업과 제사장의 기업 사이의 지리적 관계를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유다 지경과...사이에 있을지니라 - 동서쪽 위치와 함께 부가적으로 북쪽과 남쪽 경계에 의거한 기업의 위치를 밝힌다.
=====48:23-27
북쪽에 위치한 7지파의 땅 분배를 기술한 1-7절에 이어 다시 지파별 땅 분배가 계속되는 바, 여기서는 예물로 드려진 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5지파가 순서대로 언급된다. 그 나머지 모든 지파 - 곧 북쪽에 분깃을 받은 7지파를 제외한 5지파(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볼론, 갓)를 가리킨다. 베냐민의 분깃이요 - 북쪽의 유다 지파와 마찬가지로 베냐민 지파 또한 예물로 드려진 땅에 연접하게 된다(7절 참조). =====48:28
47:15 주석을 참조하라.
=====48:29
지파별 땅 분배를 결론짓는 부분이다. 제비뽑아...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 이스라엘의 이전 약속의 땅 가나안 분배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공평한 제비뽑기를 시도하게 하여 각 지파에게 만족할 만한 기업을 허락하셨다(민 26:56).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에 있을 기업의 분배 역시 하나님의 의로우신 방법에 의해 공평하게 결정될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공평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공평한 것임을 가리킨다. 단과 갓 지파의 최북남단 위치와 유다 베냐민 지파의 성소 부근 위치 등은 단순한 절대적 공평에 의한 우연 발생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판단하시는 공평의 결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사안인 것이다.
=====48:30
본서의 마지막 부분은 15절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부분으로 성읍 기지의 중앙에 위치한 성의 출입문들을 언급한다. 곧 이 출입문들은 성의 사면에 각각 3개씩 모두 12개가 있게되며 그 각각의 출입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2대문에 12지파의 이름을 명명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환상 기사가 수록된 계 21:12과 연관되어 있다(Delitzsch). 왜냐하면 본장의 새 성전의 성읍 역시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성취될 온전한 하나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48:31-34
에스겔이 어떠한 의도로 각 지파별 출입문의 명칭을 배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델리취(Delitzsch)는 북쪽부터 시작된 출입문의 지파별 명칭 순서를 땅 분배와는 다르게 장자에 대한 족장(야곱)의 축복이란 이스라엘의 전례적인 관습과 나이 순, 그리고 여호와께 대한 봉사의 직무 순에 따른 것으로 이해한다. 곧 성소를 향하고 있는 북쪽에는 레아의 아들들로서 장자인 르우벤과 영적 장자인 동시에 왕의 가계인 다윗의 선조 유다, 제사장 가계인 레위 지파가 언급되었던 바, 이들은 신 33:6-8의 모세의 축복에서도 가장 먼저 기술된다. 또한 동향한 문에는 라헬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의 이름이 나이순에 따라 나타나며(신 33:12, 13) 그녀의 여종 빌하의 장자인 단이 함께 언급되었다(32절). 한편 본문은 특징적으로 땅의 분배 때와는 달리 31절에 레위 지파가 삽입된 대신 두 몫의 기업을 받았던 요셉 지파(므낫세, 에브라임, 5, 6절)는 그 이름으로 하나의 문밖에 배정받지 못하였다. 남쪽의 문들은 역시 레아의 소생인 시므온과 잇사갈, 스불론이란 이름이 나이 순으로 언급되었다(33절). 끝으로 서쪽의 문들은 모두 첩의 소생으로서 실바의 아들인 갓, 아셀과 빌하의 차자 납달리의 이름으로 지정되었다(34절).
=====48:35
성의 출입문들이 12지파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는 것은 곧 그 성읍이 온 이스라엘의 공동의 소유인 것을 암시하는데, 이러한 성읍이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로 명칭되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새 이스라엘 공동체와 항상 함께하시리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한편 에스겔의 사역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그 날 후로는(* , 미욤) -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완성되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의 날인 동시에 본서에 기술된 모든 예언과 규정과 지침들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때를 가리킨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 원전상 본서는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란 뜻의 '여호와 삼마'(* )라는 단어로 종결되는 바, 이는 에스겔 선지자의 전사역을 함축하는 본서의 총괄적인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곧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목격한 여호와의 영광의 떠나심(10:18-22;11:22-24)과 다시 돌아오심(43:4)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새 성전에 거하시면서 다시는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리라 하신 약속으로 귀결되며(43:7) 결과적으로 그 모든 사역이 이 '여호와 삼마'로 종결되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삼마'는 원어상 '저기에', '거기에'라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바, 혹자는 여호와의 처소가 이 성읍이 아니라 그 지역과 엄밀하게 구분되는 성전이라는 점에서 이를 '저기에'로 해석한다(Havernick, Schroder). 그러나 이 성읍이 12지파, 곧 전이스라엘의 공동 소유란 점에서, 단순하게 여호와의 처소를 지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새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거기에'라는 해석이 더 적절하다(Delitzsch).
전장(47장)에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생명강의 환상과 땅의 분배라는 차원에서 묘사하였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분위기는 본장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아울러 하나님의 전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으로 절정을 이른다. 사실 저자는 지금까지 본서의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여부를 축으로 삼고 있었다. 즉,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성전에서 떠나가시는 것을 보았고(11장), 새로운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였으며(43:4;44:2),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성전에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35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말론적 회복은 물질적이거나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전공동체의 기업이며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의 임재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일곱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부분(1-7절), (2) 하나님에게 속한 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부분(8-22절), (3) 나머지 다섯 지파들의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23-29절), (4) 성읍의 출입구에 대한 할당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30-3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비평주의 학자들은 본장의 중간 부분(8-22절)을 후대에 삽입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지파들의 땅 분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문맥에서 갑자기 다른 내용이 중간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장의 땅 분배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땅을 중심으로 하여 먼 곳부터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장의 중간 부분이 12지파의 땅 분배에 대한 부차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거룩한 땅에 대한 분배의 내용이 12지파의 땅 분배에 대한 내용을 조정 내지는 통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거룩한 땅, 즉 성전이 있는 땅을 기준으로 하여 가장 먼 곳에 있는 단 지파를 시작으로 해서(1절)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다 지파(7절)로 그리고 다시 성전 남편 쪽에서 보았을 때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베냐민부터(23절)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최 남단에 있는 갓 지파(27절)까지 순서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의 내용은 후대에 서로 다른 내용을 편집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본서의 저자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된 새로운 질서를 땅 분배의 차원에서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지파들의 땅 분배는 이전에 있었던 여호수아 시대(수 13:8-17:18)와는 그 순서가 다르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시대의 땅 분배는 출생의 순서가 기준이었지만, 본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 속에서 각 지파들이 행해온 공과를 기준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반하나님적인 성향을 보여왔던 단 지파는 성전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된 것이다(창 49:16,17;삿 17,18장). 반면에 베냐민 지파는 분열 왕국 시대에도 유다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북이스라엘 지파들처럼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는 마땅히 그 행위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약의 종말론적인 교훈과도 일치한다(마 22:11;벧전 3:3-4).
1. 일곱 지파들의 땅 분배(48:1-7)
에스겔은 이스라엘 지파드리 소유하게 될 땅에 대한 경계를 기록하고 나서(47:13-23) 이제 본 단락에서는 지파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구체적인 땅 분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땅의 분배는 역사적으로 성취된다기보다는 영생의 기업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대한 예표이다. 성도는 마지막 날에 천국의 유업을 상속받아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단 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묘사하는 구절(1절)로 시작하여 각 구절들마다 지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여러 지파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탄생케 했던 야곱의 휴예들인데, 이들의 근원이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지파명 | 족 보 | 지 파 명 | 족 보 |
+--------+---------------------------+----------+----------------------------+
| 단 |야곱과 라헬의 시녀인 빌하 | 아셀 | 레아의 시녀 실바의 소생 |
| |로부터 출생 | | |
+--------+---------------------------+----------+----------------------------+
| 납달리 |빌하의 소생 | 므낫세 | |
| | | 에브라임 | 요셉의 아들 |
+--------+---------------------------+----------+----------------------------+
| 르우벤 |야곱의 장자 | 유다 | 야곱의 아들 |
+--------+---------------------------+----------+----------------------------+
이처럼 전통적인 지파의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본 단락의 중심적인 교훈은 땅의 위치는 차서를 두었으나 땅의 규모는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1-7절까지 동일한 양식으로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중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언급은 '동편에서 서편까지'라는 표현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매우 공평하다는 사실은 알려준다. 즉, 그 어느 누구도 땅의 크기를 제한하거나 초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평한 분배는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2. 거룩한 땅의 분배(48:8-22)
일곱 지파에 대한 땅의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7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성전이 위치한 하나님의 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사실 본장은 이 단락을 축으로 하여 이전 단락(1-7절)과 이후 단락(23-35절)이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땅의 중심부에 성전이 있으며, 좌우편에는 왕의 기업(21,22절), 북편에는 레위인의 땅(13,14절), 남편에는 성읍이 있음을 밝히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사독 제사장들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땅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부분(8-12절), (2) 레위인의 땅을 밝히고 있는 부분(13,14절), (3) 성읍의 규모를 소개하고 있는 부분(15-20절), (4) 왕의 땅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21,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의 거룩한 땅의 분배에 관한 묘사는 45장과 비교할 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이를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45:1-8 | 48:8-22 |
+----+-----------------+-------------------------+---------------------------+
| 공 |구 조 |제사장-레위 지파-성읍-왕의 순서로 땅이 분배됨 |
| 통 +-----------------+-----------------------------------------------------+
| 점 |규모에 대한 표현 |동일한 크기의 단위를 사용함 |
+----+-----------------+-------------------------+---------------------------+
| 차 |의 미 |그 땅이 하나님의 땅임을 |땅의 규모와 크기를 묘사하는|
| | |강조함 |데 집중함 |
| 이 +-----------------+-------------------------+---------------------------+
| |제사장의 땅에 |제사장 가문에 대한 언급 |사독 가문임을 구체적으로 밝|
| 점 |대한 표현 |이 없음 |히고 그 이유에 대한 역사적 |
| | | |평가를 기술함 |
+----+-----------------+-------------------------+---------------------------+
이러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본 단락의 중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사장의 땅 분배의 기준(8-12절) : 하나님의 거룩한 땅의 구분에서 제사장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에게만 땅의 소유를 허락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11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땅에 대한 분배의 기준이 지나온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지켜온 각 지파들의 신앙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시다(전 12:14;행 17:31).
(2) 레위 땅의 권리 제한(13,14절) : 제사장의 땅과는 달리 레위인의 땅에서는 엄격한 제한이 뒤따르고 있다. 즉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땅과 그 땅에서 나는 열매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 제한은 레위인들이 그 땅에서 살지만, 땅의 소유자는 오직 하나님임을 강조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성도는 자신의 모든 소유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깨닫고, 성실한 청지기로서 생활해야 할 의무가 있다(눅 12:42).
(3) 성읍의 땅의 역할(15-20절) : 성읍의 땅의 중심적인 역할은 백성들이 삶을 유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땅이지만, 동시에 백성들의 일반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생활의 터전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영과 육을 포함하는 전인격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성들은 성(聖)과 속(俗)에 대한 분리된 이원론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관점에서 신앙을 삶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문해질 것이다(합 2:14).
3. 다섯 지파들의 땅 분배와 성읍의 출입구(48:23-35)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있는 땅의 분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전 단락(8-22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나머지 다섯 지파들의 땅 분배와 성읍 출입구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특히 본 단락은 본서 전체의 내용을 결론짓는 부분으로, 땅의 분배와 성전에 여호와가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런 결론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다섯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23-29절), (2) 성읍의 출입구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30-3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마지막 부분인 성읍 출입구에 대한 문의 묘사에서 12지파의 이름이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는 것은 12지파가 하나님의 공동체의 대표가 됨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12지파가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대표되고 있는 것은 다른 여러 성경에서도 나타나는 바이지만, 요한 계시록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계 7:5-8). 특히 31-34절의 내용은 요한 계시록의 내용(계 21:12-17)과 상응하고 있는데, 이를 비교하여 도표로 만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겔 48:30-35 | 계 21:12-17 |
+---------------+---------------------------+--------------------------------+
| 구체적인 표현 |12지파의 이름이 동일하게 성전 문 위에 쓰임 |
+---------------+------------------------------------------------------------+
| 주 제 |새로운 성읍에 대한 상징적 묘사를 하고 있음 |
+---------------+------------------------------------------------------------+
| 의 미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묘사함 |
+---------------+---------------------------+--------------------------------+
| 표현의 차이점 |상징적 성격보다 사실적인 |좀더 완벽한 형태로 상징적 묘사 |
| |묘사를 함 |를 하고 있음 |
+---------------+---------------------------+--------------------------------+
| 구속 역사적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
| 차 원 |만 집중하고 있음 |묘사함 |
+---------------+---------------------------+--------------------------------+
이러한 종말론적인 계시의 완성을 성읍과 완벽한 재건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 단락의 중심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절정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이다(23-29절). 바벧론 포로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의 환상은 조만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일차적으로 성전의 재건과 성읍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가리킨다. 이 모습은 요한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과 새 땅의 강림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나라를 완성시키시고, 모든 성도들을 온전한 형태로 변화시키실 것이다(살전 4:17).
(2)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최종적 관심은 백성들 가운데 영원히 임재하는 것이다(30-35절). 본 단락의 마지막 절의 '여호와 삼마'라는 표현은 본서의 전체의 최종적 결론이기도 하며, 성전 재건과 땅의 분배의 최종적 목적이기도 하다. 즉, 구속 역사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며, 충만하고 생명력 넘치는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성전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신앙관을 교정시키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만들어준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온전히 자신을 계시하시며 자기 백성들과 완벽한 친교를 통하여(고전 13:12)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신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마땅히 평가를 받는다(고전 3:13-15). (2)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시 73:28). 성도들의 일차적인 간구의 제목은 자신의 삶의 평안이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이다. (3)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해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에스겔이 바벧론 포로의 와중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비록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부정적이지만 하나님의 미래의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날마다 묵상해야 한다(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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