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본장은 36장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이스라엘 산'(36장)과 대조되는 '세일 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한다. 여기서 '세일 산'은 이스라엘의 소멸을 위해 끊임없이 그들을 적대시하고 괴롭혔으며(민 20:18-20;삼상 14:47;암 1:11), 이스라엘의 멸망을 조롱하고 즐거워했다(시 137:7). 에돔 족속을 지칭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러한 에돔에 대한 심판 예고는 이미 25:12-14에 언급된 바 있다. 본장에서 에돔에 대한 심판이 보다 구체적으로 재기술된 것은 이웃한 에돔의 제거가 이스라엘 회복의 전제인 고토 귀환의 필연적 선행 조건이라는 점에 기인된 것이다. 한편 에돔의 심판이 단순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잔악함과 우상 숭배에도 기인한다는 점에서 에돔은 근본적으로 구원의 반열에 동참할 수 없는 타락한 모든 이방 세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사 34장;63:1-6, Hengstenberg, Schroder, Delitzsch). 따라서 본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회복(36장)과 상극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방 세력의 멸망을 예시하는 것이다.
=====35:2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 '세일 산'은 아라바 동쪽 사해 남동부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에돔 족속의 거주지였던 까닭에 성경은 종종 이를 에돔 족속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창 32:3;민 24:18;수 24:4). 한편 '향하고'(* , 심)는 원어상 '(시선을) 주목하여 고정시키다'란 뜻이며, '쳐서'(* , 알라이우)는 '대적하여'(against)란 뜻인 바, 본 구절은 확고한 목적 아래 극단의 적대적인 감정을 가리조 주시한다는 의미로서 에돔의 필연적인 멸망을 암시한다.
=====35:3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 본 구절에 대해서는 33:28 주석을 참조하라.
=====35:4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 본 구절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병행 대구를 이루고 있다. '무너뜨리며'(* , 호르바)는 '가뭄'이란 일차적 의미와 함께 '황폐함', '황무함' 등의 뜻도 함축하고 있는 바, 본절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에돔의 성읍에 임할 심판이 극심할 것임을 암시한다.
=====35:5
에돔의 첫 번째 멸망 원인이 9절까지 기술된다. 옛날부터 한을 품고 - '한'(* , 에바)은 원어상 극단적인 '증오'(hatred, KJV)나 '적대감'(enmity, RSV)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옛날부터'(* , 올람)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의 멸망 원인이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극한의 적개심임을 밝힌다. 또한 그 적대감은 야곱과 에서(창 25:22;27:37-41) 이래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끈질기고 맹렬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띄 때 - 여기서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시기를 가리킨다(B.C. 586). 이는 이어지는 '죄악의 끝 때'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지된다(사 40:2, Delitzsch).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석가들은 이를 에돔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느 1:3에 나타난대로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보다 훨씬 후대에 일어난 에돔의 에루살렘 재파괴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 '칼의 권능'(* , 예데 하레브)은 문자적으로 '칼을 가진 자의 손'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던 바벨론 군대를 가리키며, '붙였도다'(* , 타게르)는 원어상 '나가르'(* )의 히필 미완료형으로 '(...에게) 넘겨주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이 이스라엘을 바벨론 군대에게 넘겨주었다는 의미로, 특별히 이스라엘 멸망의 책임을 에돔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에돔의 죄악상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35:6
본절에서 4번이나 연속적으로 반복된 '피'(* , 담)는 '에돔'(* )에 대한 문자적 병행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Delitzsch, Schroder).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 임 로 담 사네타) - 여기서 '임'은 원어상 조건절에서는 '만일'(if)의 뜻을, 부정사로 쓰일 때는 '...아닌'의 뜻을 각각 가리키는 바, 혹자는 후자의 견해를 취해 본 구절이 이중 부정을 통해 에돔이 피를 미워했다는 사실을 확증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Hengstenberg). 그러나 '만일'이 여기서는 '...이므로'란 의미로 스여졌다는 점과 본절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대, 본 구절은 에돔이 피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Delitzsch, Schroder). 또한 여기서의 '피'는 NIV의 번역대로 '유혈'이나 '살인'(bloodshed) 등을 지칭하는 표현이므로 본 구절은 에돔이 그러한 피흘리는 행위들을 즐겨 행했다는 의미로 유추할 수 있다. 피가 너를 따르리라 - 에돔이 즐겨한 피흘리는 행위에 대한 심판적 결과가 언급된다. 곧 이는 히브리인들의 동해 보복 사상에서 유추된 구절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한 자는 반드시 자신의 피를 흘리게 되는 심판적 형벌을 당하게 됨을 보여준다(창 9:6;출 21:23-25, Havernick, Schroder, Delitzsch). 한편 '따르리라'(* , 라다프)는 '사냥하다', '추적하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데, 그 따름의 집요함을 드러내는 말로서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피의 보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35:7
본절은 6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심판적 정황을 기술한다.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 여기서 '왕래하는 자'는 타지(他地)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왕래하는 모든 에돔 사람들을 지칭한다. '끊을지라'(* , 카라트)는 '자르다'란 일차적 의미 외에 '파멸시키다', '소멸시키다'란 뜻을 가지는 바, 모든 에돔 사람들이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 속해 있음을 밝힌다(Taylor).
=====35:8
본절에 대해서는 32:5, 6 주석을 참조하라.
=====35:9
5절부터 점진적으로 전개된 에돔에 대한 심판의 정황이 본절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멸망이라는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난다(29:11, 12 참조).
=====35:10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두 번째 죄과가 기술된다. 곧 에돔은 그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에 사로잡혀 분열 왕국 유다와 이스라엘의 치리권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동맹을 맺었다. 이 두 민족과 이 땅은...내 기업이 되리라 - 여기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모두 분열 왕국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키는 바, 에돔이 선민 이스라엘을 '두 민족'(* , 쉐테 하고임)과 '두 땅'(* , 쉐테 하라초트)이란 분리적 개념으로 명명한 것은 에돔이 그들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하나의 신앙 공동체가 아닌 각각의 민족으로 여긴 사실을 암시한다(Schroder). '내 기업이 되리라'(* , 야라쉬누하)는 '나의 소유로 취할 것이다'란 의미를 가지는데, 이처럼 소유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강한 정복 야욕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실로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에돔 족속들은 비옥한 땅 이스라엘에 대한 끊임없는 정복 야욕을 드러내었으며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이용해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에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 여기서 '거기'는 상반절의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을 지칭하는 말로서 에돔이 소유하려던 이스라엘 지역뿐 아니라 전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시한다. 한편 혹자는 '있었느니라'(* , 하야)를 현재형으로 보아 여호와께서 아직도 그곳에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하나(Kliefoth), 이는 문법상 과거형으로 당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게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Delitzsch). 또한 본절의 말미에 이러한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실제적 통치자가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강조함과 더불어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정복 야욕이 바로 그 통치자와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대적하는 심각한 죄악이었다는 것(Schroder, Havernick), 그리고 비록 지금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간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란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Delitzsch).
=====35:11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 2인칭으로 언급된 '네가'는 에돔을, 3인칭 복수로 언급된 '그들'은 10절에 언급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 곧 이스라엘 공동체를 각각 가리킨다. 또한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은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끊임없는 적대감의 내용을 드러낸 표현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내가 네게 행하여...때에'란 말과 함께, 같은 적대적 감정으로 에돔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로서(Delitzsch)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와 필연적인 심판의 시행을 강조하고 있다. 너를 국문할 때에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 - 여기서 '국문할'(* , 솨파트)은 원어상 법정적 용어로 '심판하다', '벌하다', '선고하다'란 의미를 가지는 바, 일반적인 유무죄의 판결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죄과에 대한 최종적인 형벌의 선고를 가리킨다. 한편 본 구절에서 '그들'은 에돔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반절의 '그들'과 같은 말로 선민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자와 해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시겠다는 의미이다.
=====35:12
이스라엘의 멸망이 있는 후 에돔의 행각에 대한 묘사와 함게 그에 따른 심판의 암시가 기술된다. 이스라엘 산들 - 곧 에돔 족속을 상징하는 '세일 산'(2절)과 대구를 이루는 말로 전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한다.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다(* , 라누 니트누 레오클라) - 문자적으로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어졌다'는 뜻이다.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자신들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호기(好機)로 여긴 에돔의 야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욕(* , 네아차)은 원어상 '경멸하다', '신성 모독하다'란 뜻을 가지는 바, 에돔이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그 멸망을 조소한 모든 행위들이 곧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한 종교적 차원의 극악한 범죄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모든 말들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을 에돔의 멸망과 황폐함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하실 것이란 뜻으로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 의지가 암시되어 있다.
=====35:13
입으로 자랑하며 - '자랑하며'(* , 타그딜루)는 모든 삶의 방면에서 '크게 되다', '초과하다'란 뜻을 지니는데, 이는 에돔의 극에 달한 교만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로 말한 것 - '여러 가지'(* , 하타르템)는 원어상 '속이다', '놀리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에돔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사실을 가리킨다.
=====35:14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 본 구절은 시간을 나타내는 불변사 '때'(* , 케)의 해석에 따라 다음 두 가지의 견해로 나뉘어진다. (1) 이 '때'를 전반절과 후반절의 동시적인 시간으로 해석하여, 온 세상을 위해 즐거움이 예비될 바로 그때에 에돔이 황폐하게 될 것이란 의미로 해석한다. 곧 에돔의 황폐와 온 땅의 즐거움은 단지 극적인 대조를 이를 뿐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Delitzsch). (2) '때'가 후반절의 사건 이후의 경과된 시간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여, 온 땅의 즐거움이 곧 에돔의 황폐로 말미암아 예비된 것이라는 전후 문맥의 연속적인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다(Hitzig, Schroder, Ewald, Kliefoth). 그런데 본절의 문장 구성상 에돔의 황폐가 온 땅의 즐거움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해석하기 힘들다. 따라서 (1)의 견해가 더 자연스러우며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도 적절하다.
=====35:15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 혹자는 이를 14절 내용과의 연속적 관계란 관점에서 여기서의 '네가'를 3인칭으로 보아 '에돔의 황폐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할 것이다'란 의미로 해석한다(Hitzig). 그러나 많은 학자와 역본들이 '네가'를 원문 그대로 2인칭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LXX, Vulgate, Delitzsch, Schroder) 본 구절은 '에돔이(네가) 이스라엘의 황폐를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에돔 또한 그렇게 황폐하게 될 것이다'란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무리가 - 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LB)은 이를 2인칭 단수(you)로 번역해 에돔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으나 히브리 본문에서는 분명히 3인칭 복수이므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제3의 타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전장(34장)에 이어서 본장은 에
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하고 있다. 특히 전장이 은유적 기법을 사용하여 이스
라엘의 희망적인 미래상에 대해 묘사(34:25-31)한 반면 본장은 에돔의 심판이 역사적
으로 성취될 것임을 기술한다. 또한 본장은 36장과 유상하게 예언의 대상을 '산들'로
묘사하며(2절;36:1), 에돔에 대한 심판을 이스라엘의 온전한 구원을(36장) 보증하는
전조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옛적부터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심판을 서술하고 있는 전반부(1-9절), (2)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지배하려는 에
돔의 욕심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0-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
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땅의 평화에 대한 예언이 구체적으로 에돔의 멸망을 통해 실
제적으로 성취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땅을 황무케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데, 특별히 독립된 4개의 진술을 사용하고 있다(3/5-9/10-13/14절). 이러한 진술들은
심판이 동일하게 에돔 땅에 행해질 것임을 묘사하지만 각자 독특한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다. 즉, 첫 부분에서는 (3절) 땅의 황무함에 대한 선언적인 진술, 두 번째 문단은
(5-9절) 옛적부터 있었던 에돔의 저대감에 대한 심판의 예언, 세 번째 문단은(10-13
절) 이스라엘 땅을 소유하려는 에돔의 의도, 네 번째 문단은(14절) 온 땅이 즐거월할
때 소외되어 고통을 당함 등이 중점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에돔의 심판은 필연적이며,
결과적으로 참하나님을 계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4,9,11,15절).
또한, 본장은 에돔에 대한 짧은 고소(5,10절)와 이에 대한 각각의 판결(6,9,11-15
절)이 뒤따르고 있다. 첫 번째 고소의 내용(5절)은 두 가지 원인, 즉 (1) 에돔이 이스
라엘에 대하여 뿌리 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점과 (2) 에돔이 다른 국가들과 공모
하여 이스라엘의 멸망에 협력한 사실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거민과
(6-8절) 성읍(9절)에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두 번째 고소는 이스라엘 전체를 에돔의
소유로 삼으려는 욕심에 관한 것인데, 이에 대한 판결로 하나님은 그들의 온 땅을 황
무케 할 것이다(10절). 이상에서 선지자는 에돔과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며, 결국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세력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1)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 행위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선지자는 전반부(1-9절)에서 에돔을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세력으로 묘사하다가, 후반부(10-15절)에서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으로(13절) 밝힌다.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와 하나님에 대한 적대는 동일한 의
미를 지니다. (2) 에돔의 심판의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 계시적 차원이
다(4,9,11,15절). 세상의 통치권이 오직 하나님에게 있기에 열방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다.
1.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에돔의 심판(35:1-9)
에돔에 임하는 심판이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리는 공식적인 도입
구로(1절) 시작하고 있는 본 단락은 현재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에돔의
심판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권적인 능력을 확인시
켜 주고 있다. 사실 에돔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증하는 가시적 증거로서 하나
님의 주권에 대한 선언인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에돔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는
전반부(1-4절), (2) 에돔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을 거민과(6-8절), 성읍에(9절) 대
하여 행할 것을 밝히는 후반부(5-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에돔을 의인화시킨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에돔의
'세일 산'을 인격적인 대상으로 표현하고(3절), 피를 흘리는 대상으로 묘사하며(6절),
인간과 동일하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나타낸다(7절). 이제 본 단락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과 에돔의 적대 관계는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5절). 야곱과
에서는 출생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가져왔다(창 25:22-34;27장). 또한 에서
의 후손 에돔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의 적대 세력으로 등장
했다(민 20:14-21;24:15-19). 그리고 사울(삼상 14:47), 솔로몬(왕상 11:14-22), 여
호사밧(대하 20:1-23), 여호람(왕하 8:21), 아하스(대하 28:17) 시대에도 계속적으로
갈등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에돔의 적대감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멸망의 시기(B.C.
589-586년, 5절)에 결정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 에돔은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6-9절). 에돔이 받는 심판의 모습들은 이미
에돔이 이스라엘에게 행했던 죄악과 동일하다. 에돔은 이스라엘에게 피를 흘리게 하였
으므로 동일하게 피흘림을 당하며(6절) 거민들을 죽여 여러 곳에 흩어 놓았기 때문에
동일하게 살육을 당할 것이며(7,8절), 성읍을 훼파하였기 때문에 성읍이 파괴당할 것
이다(9절). 또한 이러한 심판은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
으로, 발은 발로'(신 19:21) 보응할 것을 가리키는 모세 율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
처럼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고후 5:10).
2. 탐욕스러운 에돔에 대한 심판(35:10-15)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오랜 '적대감'(antagonism)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전 단
락(1-9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에돔의 욕심의 실체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에돔의
적대감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기업(10절)으로 삼으려는 욕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전
단락은 에돔의 본질적 성향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 본 단락은 그 결과에 대하여 언급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에돔이 이스라엘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밝히는
전반부(10-13절), (2) 에돔의 심판이 수치스러울 것이라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
부(14,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에돔의 심판의 이유에 대하여 삼중적(10,12,13,15절)으로 기록하
고 있다. 즉, 첫 번째는 에돔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려는 욕심에 대하여(10절),
두 번째는 에돔이 그들 스스로 자랑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욕한 점에 대하여
(12,13절), 세 번째는 에돔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15절) 등이다.
또한, 본문은 에돔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
님께서 이스라엘 땅을 황무케 한 것은(12절) 이스라엘을 정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인데,
이 사실을 에돔은 이스라엘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하는 무력한 신으로 하나님을 오해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에돔의 태도는 신성 모독의 범죄이며, 결국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에돔의 죄와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극도의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10절).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에돔은 항상 비옥한 팔레스틴에 대하여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
던 차에 이스라엘이 바벧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바벧
론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소유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강대한 바벧론
의 공격과 간교한 에돔의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지자는 여호와가 거기 있었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선택
된 백성은 어떤 경우에도 임마누엘의 경험을 하게 됨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애굽의 포
로 생활 속에서도(출 3:12),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 속
에서도(담 3:24-27;6:19-23), 바울이 유라굴로의 광풍이 대작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
었을 때도(행 27:14-44) 여전히 함께 계셨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환난을 보고 즐거워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12,13,15절).
저자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황무함을 자신들의 영토 확장의 기회로 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을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비웃고 즐거워하였다고 묘사한다(15절). 이러
한 에돔의 조소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돔이 행한 대로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돔이 행한 대로 심판하심으로써 당신
의 공의와 주권을 드러내는 것이다(15절).
(3) 에돔에 대한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다(15절). 에돔이 이스라
엘을 소유하려는 태도와(10절0 비웃는 자세(15절)를 보인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하나
님이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에돔의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고, 이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
이다. 실제적으로 암몬 족속(25:7), 모압 족속(25:11), 두로(26:6), 시돈(28:22), 애
굽(29:6) 등의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에 대한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은 대적들의 심판 속에 나타난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알
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다(5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지막 날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계 1:7). (2) 세상은 성도들을 자신의 통치권 안에 두려고 유혹하기 때문에(10절) 날마다 기도에 힘써야 한다(살전 5:17). (3) 성도는 환난의 시기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10절;합 2:4).
* 성경적 보응 사상과 동해 보복법의 차이점.
구약에서 '보응 사상'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출 21:23-25에 나온다. 이 표현은 수평적인 인간 관계에서 적용되는 규범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상대방이 한 만큼만 보복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구약의 보응 사상은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도 '동해 보복법'(Lex Talionis)이라는 명칭으로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구약의 저자가 동해 보복법에 영향을 받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해 보복법은 순전히 수평적 관계의 규범이지만, 구약의 보응 사상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었던 사랑과 긍휼의 수직적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분명하게 계시되어진다. 즉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는 구약의 정신을 더욱 승화시켜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랑과 희생의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마 5:38-48).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보응 사상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신 사랑을 수평적 삶의 영역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본장은 36장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이스라엘 산'(36장)과 대조되는 '세일 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한다. 여기서 '세일 산'은 이스라엘의 소멸을 위해 끊임없이 그들을 적대시하고 괴롭혔으며(민 20:18-20;삼상 14:47;암 1:11), 이스라엘의 멸망을 조롱하고 즐거워했다(시 137:7). 에돔 족속을 지칭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러한 에돔에 대한 심판 예고는 이미 25:12-14에 언급된 바 있다. 본장에서 에돔에 대한 심판이 보다 구체적으로 재기술된 것은 이웃한 에돔의 제거가 이스라엘 회복의 전제인 고토 귀환의 필연적 선행 조건이라는 점에 기인된 것이다. 한편 에돔의 심판이 단순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잔악함과 우상 숭배에도 기인한다는 점에서 에돔은 근본적으로 구원의 반열에 동참할 수 없는 타락한 모든 이방 세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사 34장;63:1-6, Hengstenberg, Schroder, Delitzsch). 따라서 본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회복(36장)과 상극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방 세력의 멸망을 예시하는 것이다.
=====35:2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 '세일 산'은 아라바 동쪽 사해 남동부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에돔 족속의 거주지였던 까닭에 성경은 종종 이를 에돔 족속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창 32:3;민 24:18;수 24:4). 한편 '향하고'(* , 심)는 원어상 '(시선을) 주목하여 고정시키다'란 뜻이며, '쳐서'(* , 알라이우)는 '대적하여'(against)란 뜻인 바, 본 구절은 확고한 목적 아래 극단의 적대적인 감정을 가리조 주시한다는 의미로서 에돔의 필연적인 멸망을 암시한다.
=====35:3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 본 구절에 대해서는 33:28 주석을 참조하라.
=====35:4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 본 구절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병행 대구를 이루고 있다. '무너뜨리며'(* , 호르바)는 '가뭄'이란 일차적 의미와 함께 '황폐함', '황무함' 등의 뜻도 함축하고 있는 바, 본절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에돔의 성읍에 임할 심판이 극심할 것임을 암시한다.
=====35:5
에돔의 첫 번째 멸망 원인이 9절까지 기술된다. 옛날부터 한을 품고 - '한'(* , 에바)은 원어상 극단적인 '증오'(hatred, KJV)나 '적대감'(enmity, RSV)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옛날부터'(* , 올람)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의 멸망 원인이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극한의 적개심임을 밝힌다. 또한 그 적대감은 야곱과 에서(창 25:22;27:37-41) 이래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끈질기고 맹렬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띄 때 - 여기서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시기를 가리킨다(B.C. 586). 이는 이어지는 '죄악의 끝 때'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지된다(사 40:2, Delitzsch).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석가들은 이를 에돔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느 1:3에 나타난대로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보다 훨씬 후대에 일어난 에돔의 에루살렘 재파괴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 '칼의 권능'(* , 예데 하레브)은 문자적으로 '칼을 가진 자의 손'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던 바벨론 군대를 가리키며, '붙였도다'(* , 타게르)는 원어상 '나가르'(* )의 히필 미완료형으로 '(...에게) 넘겨주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이 이스라엘을 바벨론 군대에게 넘겨주었다는 의미로, 특별히 이스라엘 멸망의 책임을 에돔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에돔의 죄악상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35:6
본절에서 4번이나 연속적으로 반복된 '피'(* , 담)는 '에돔'(* )에 대한 문자적 병행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Delitzsch, Schroder).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 임 로 담 사네타) - 여기서 '임'은 원어상 조건절에서는 '만일'(if)의 뜻을, 부정사로 쓰일 때는 '...아닌'의 뜻을 각각 가리키는 바, 혹자는 후자의 견해를 취해 본 구절이 이중 부정을 통해 에돔이 피를 미워했다는 사실을 확증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Hengstenberg). 그러나 '만일'이 여기서는 '...이므로'란 의미로 스여졌다는 점과 본절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대, 본 구절은 에돔이 피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Delitzsch, Schroder). 또한 여기서의 '피'는 NIV의 번역대로 '유혈'이나 '살인'(bloodshed) 등을 지칭하는 표현이므로 본 구절은 에돔이 그러한 피흘리는 행위들을 즐겨 행했다는 의미로 유추할 수 있다. 피가 너를 따르리라 - 에돔이 즐겨한 피흘리는 행위에 대한 심판적 결과가 언급된다. 곧 이는 히브리인들의 동해 보복 사상에서 유추된 구절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한 자는 반드시 자신의 피를 흘리게 되는 심판적 형벌을 당하게 됨을 보여준다(창 9:6;출 21:23-25, Havernick, Schroder, Delitzsch). 한편 '따르리라'(* , 라다프)는 '사냥하다', '추적하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데, 그 따름의 집요함을 드러내는 말로서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피의 보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35:7
본절은 6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심판적 정황을 기술한다.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 여기서 '왕래하는 자'는 타지(他地)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왕래하는 모든 에돔 사람들을 지칭한다. '끊을지라'(* , 카라트)는 '자르다'란 일차적 의미 외에 '파멸시키다', '소멸시키다'란 뜻을 가지는 바, 모든 에돔 사람들이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 속해 있음을 밝힌다(Taylor).
=====35:8
본절에 대해서는 32:5, 6 주석을 참조하라.
=====35:9
5절부터 점진적으로 전개된 에돔에 대한 심판의 정황이 본절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멸망이라는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난다(29:11, 12 참조).
=====35:10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두 번째 죄과가 기술된다. 곧 에돔은 그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에 사로잡혀 분열 왕국 유다와 이스라엘의 치리권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동맹을 맺었다. 이 두 민족과 이 땅은...내 기업이 되리라 - 여기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모두 분열 왕국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키는 바, 에돔이 선민 이스라엘을 '두 민족'(* , 쉐테 하고임)과 '두 땅'(* , 쉐테 하라초트)이란 분리적 개념으로 명명한 것은 에돔이 그들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하나의 신앙 공동체가 아닌 각각의 민족으로 여긴 사실을 암시한다(Schroder). '내 기업이 되리라'(* , 야라쉬누하)는 '나의 소유로 취할 것이다'란 의미를 가지는데, 이처럼 소유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강한 정복 야욕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실로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에돔 족속들은 비옥한 땅 이스라엘에 대한 끊임없는 정복 야욕을 드러내었으며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이용해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에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 여기서 '거기'는 상반절의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을 지칭하는 말로서 에돔이 소유하려던 이스라엘 지역뿐 아니라 전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시한다. 한편 혹자는 '있었느니라'(* , 하야)를 현재형으로 보아 여호와께서 아직도 그곳에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하나(Kliefoth), 이는 문법상 과거형으로 당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게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Delitzsch). 또한 본절의 말미에 이러한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실제적 통치자가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강조함과 더불어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정복 야욕이 바로 그 통치자와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대적하는 심각한 죄악이었다는 것(Schroder, Havernick), 그리고 비록 지금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간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란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Delitzsch).
=====35:11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 2인칭으로 언급된 '네가'는 에돔을, 3인칭 복수로 언급된 '그들'은 10절에 언급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 곧 이스라엘 공동체를 각각 가리킨다. 또한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은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끊임없는 적대감의 내용을 드러낸 표현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내가 네게 행하여...때에'란 말과 함께, 같은 적대적 감정으로 에돔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로서(Delitzsch)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와 필연적인 심판의 시행을 강조하고 있다. 너를 국문할 때에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 - 여기서 '국문할'(* , 솨파트)은 원어상 법정적 용어로 '심판하다', '벌하다', '선고하다'란 의미를 가지는 바, 일반적인 유무죄의 판결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죄과에 대한 최종적인 형벌의 선고를 가리킨다. 한편 본 구절에서 '그들'은 에돔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반절의 '그들'과 같은 말로 선민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자와 해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시겠다는 의미이다.
=====35:12
이스라엘의 멸망이 있는 후 에돔의 행각에 대한 묘사와 함게 그에 따른 심판의 암시가 기술된다. 이스라엘 산들 - 곧 에돔 족속을 상징하는 '세일 산'(2절)과 대구를 이루는 말로 전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한다.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다(* , 라누 니트누 레오클라) - 문자적으로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어졌다'는 뜻이다.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자신들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호기(好機)로 여긴 에돔의 야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욕(* , 네아차)은 원어상 '경멸하다', '신성 모독하다'란 뜻을 가지는 바, 에돔이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그 멸망을 조소한 모든 행위들이 곧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한 종교적 차원의 극악한 범죄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모든 말들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을 에돔의 멸망과 황폐함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하실 것이란 뜻으로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 의지가 암시되어 있다.
=====35:13
입으로 자랑하며 - '자랑하며'(* , 타그딜루)는 모든 삶의 방면에서 '크게 되다', '초과하다'란 뜻을 지니는데, 이는 에돔의 극에 달한 교만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로 말한 것 - '여러 가지'(* , 하타르템)는 원어상 '속이다', '놀리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에돔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사실을 가리킨다.
=====35:14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 본 구절은 시간을 나타내는 불변사 '때'(* , 케)의 해석에 따라 다음 두 가지의 견해로 나뉘어진다. (1) 이 '때'를 전반절과 후반절의 동시적인 시간으로 해석하여, 온 세상을 위해 즐거움이 예비될 바로 그때에 에돔이 황폐하게 될 것이란 의미로 해석한다. 곧 에돔의 황폐와 온 땅의 즐거움은 단지 극적인 대조를 이를 뿐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Delitzsch). (2) '때'가 후반절의 사건 이후의 경과된 시간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여, 온 땅의 즐거움이 곧 에돔의 황폐로 말미암아 예비된 것이라는 전후 문맥의 연속적인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다(Hitzig, Schroder, Ewald, Kliefoth). 그런데 본절의 문장 구성상 에돔의 황폐가 온 땅의 즐거움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해석하기 힘들다. 따라서 (1)의 견해가 더 자연스러우며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도 적절하다.
=====35:15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 혹자는 이를 14절 내용과의 연속적 관계란 관점에서 여기서의 '네가'를 3인칭으로 보아 '에돔의 황폐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할 것이다'란 의미로 해석한다(Hitzig). 그러나 많은 학자와 역본들이 '네가'를 원문 그대로 2인칭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LXX, Vulgate, Delitzsch, Schroder) 본 구절은 '에돔이(네가) 이스라엘의 황폐를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에돔 또한 그렇게 황폐하게 될 것이다'란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무리가 - 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LB)은 이를 2인칭 단수(you)로 번역해 에돔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으나 히브리 본문에서는 분명히 3인칭 복수이므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제3의 타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전장(34장)에 이어서 본장은 에
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하고 있다. 특히 전장이 은유적 기법을 사용하여 이스
라엘의 희망적인 미래상에 대해 묘사(34:25-31)한 반면 본장은 에돔의 심판이 역사적
으로 성취될 것임을 기술한다. 또한 본장은 36장과 유상하게 예언의 대상을 '산들'로
묘사하며(2절;36:1), 에돔에 대한 심판을 이스라엘의 온전한 구원을(36장) 보증하는
전조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옛적부터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심판을 서술하고 있는 전반부(1-9절), (2)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지배하려는 에
돔의 욕심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0-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
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땅의 평화에 대한 예언이 구체적으로 에돔의 멸망을 통해 실
제적으로 성취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땅을 황무케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데, 특별히 독립된 4개의 진술을 사용하고 있다(3/5-9/10-13/14절). 이러한 진술들은
심판이 동일하게 에돔 땅에 행해질 것임을 묘사하지만 각자 독특한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다. 즉, 첫 부분에서는 (3절) 땅의 황무함에 대한 선언적인 진술, 두 번째 문단은
(5-9절) 옛적부터 있었던 에돔의 저대감에 대한 심판의 예언, 세 번째 문단은(10-13
절) 이스라엘 땅을 소유하려는 에돔의 의도, 네 번째 문단은(14절) 온 땅이 즐거월할
때 소외되어 고통을 당함 등이 중점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에돔의 심판은 필연적이며,
결과적으로 참하나님을 계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4,9,11,15절).
또한, 본장은 에돔에 대한 짧은 고소(5,10절)와 이에 대한 각각의 판결(6,9,11-15
절)이 뒤따르고 있다. 첫 번째 고소의 내용(5절)은 두 가지 원인, 즉 (1) 에돔이 이스
라엘에 대하여 뿌리 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점과 (2) 에돔이 다른 국가들과 공모
하여 이스라엘의 멸망에 협력한 사실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거민과
(6-8절) 성읍(9절)에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두 번째 고소는 이스라엘 전체를 에돔의
소유로 삼으려는 욕심에 관한 것인데, 이에 대한 판결로 하나님은 그들의 온 땅을 황
무케 할 것이다(10절). 이상에서 선지자는 에돔과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며, 결국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세력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1)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 행위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선지자는 전반부(1-9절)에서 에돔을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세력으로 묘사하다가, 후반부(10-15절)에서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으로(13절) 밝힌다.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와 하나님에 대한 적대는 동일한 의
미를 지니다. (2) 에돔의 심판의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 계시적 차원이
다(4,9,11,15절). 세상의 통치권이 오직 하나님에게 있기에 열방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다.
1.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에돔의 심판(35:1-9)
에돔에 임하는 심판이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리는 공식적인 도입
구로(1절) 시작하고 있는 본 단락은 현재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에돔의
심판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권적인 능력을 확인시
켜 주고 있다. 사실 에돔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증하는 가시적 증거로서 하나
님의 주권에 대한 선언인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에돔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는
전반부(1-4절), (2) 에돔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을 거민과(6-8절), 성읍에(9절) 대
하여 행할 것을 밝히는 후반부(5-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에돔을 의인화시킨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에돔의
'세일 산'을 인격적인 대상으로 표현하고(3절), 피를 흘리는 대상으로 묘사하며(6절),
인간과 동일하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나타낸다(7절). 이제 본 단락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과 에돔의 적대 관계는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5절). 야곱과
에서는 출생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가져왔다(창 25:22-34;27장). 또한 에서
의 후손 에돔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의 적대 세력으로 등장
했다(민 20:14-21;24:15-19). 그리고 사울(삼상 14:47), 솔로몬(왕상 11:14-22), 여
호사밧(대하 20:1-23), 여호람(왕하 8:21), 아하스(대하 28:17) 시대에도 계속적으로
갈등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에돔의 적대감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멸망의 시기(B.C.
589-586년, 5절)에 결정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 에돔은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6-9절). 에돔이 받는 심판의 모습들은 이미
에돔이 이스라엘에게 행했던 죄악과 동일하다. 에돔은 이스라엘에게 피를 흘리게 하였
으므로 동일하게 피흘림을 당하며(6절) 거민들을 죽여 여러 곳에 흩어 놓았기 때문에
동일하게 살육을 당할 것이며(7,8절), 성읍을 훼파하였기 때문에 성읍이 파괴당할 것
이다(9절). 또한 이러한 심판은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
으로, 발은 발로'(신 19:21) 보응할 것을 가리키는 모세 율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
처럼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고후 5:10).
2. 탐욕스러운 에돔에 대한 심판(35:10-15)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오랜 '적대감'(antagonism)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전 단
락(1-9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에돔의 욕심의 실체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에돔의
적대감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기업(10절)으로 삼으려는 욕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전
단락은 에돔의 본질적 성향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 본 단락은 그 결과에 대하여 언급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에돔이 이스라엘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밝히는
전반부(10-13절), (2) 에돔의 심판이 수치스러울 것이라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
부(14,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에돔의 심판의 이유에 대하여 삼중적(10,12,13,15절)으로 기록하
고 있다. 즉, 첫 번째는 에돔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려는 욕심에 대하여(10절),
두 번째는 에돔이 그들 스스로 자랑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욕한 점에 대하여
(12,13절), 세 번째는 에돔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15절) 등이다.
또한, 본문은 에돔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
님께서 이스라엘 땅을 황무케 한 것은(12절) 이스라엘을 정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인데,
이 사실을 에돔은 이스라엘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하는 무력한 신으로 하나님을 오해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에돔의 태도는 신성 모독의 범죄이며, 결국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에돔의 죄와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극도의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10절).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에돔은 항상 비옥한 팔레스틴에 대하여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
던 차에 이스라엘이 바벧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바벧
론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소유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강대한 바벧론
의 공격과 간교한 에돔의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지자는 여호와가 거기 있었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선택
된 백성은 어떤 경우에도 임마누엘의 경험을 하게 됨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애굽의 포
로 생활 속에서도(출 3:12),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 속
에서도(담 3:24-27;6:19-23), 바울이 유라굴로의 광풍이 대작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
었을 때도(행 27:14-44) 여전히 함께 계셨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환난을 보고 즐거워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12,13,15절).
저자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황무함을 자신들의 영토 확장의 기회로 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을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비웃고 즐거워하였다고 묘사한다(15절). 이러
한 에돔의 조소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돔이 행한 대로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돔이 행한 대로 심판하심으로써 당신
의 공의와 주권을 드러내는 것이다(15절).
(3) 에돔에 대한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다(15절). 에돔이 이스라
엘을 소유하려는 태도와(10절0 비웃는 자세(15절)를 보인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하나
님이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에돔의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고, 이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
이다. 실제적으로 암몬 족속(25:7), 모압 족속(25:11), 두로(26:6), 시돈(28:22), 애
굽(29:6) 등의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에 대한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은 대적들의 심판 속에 나타난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알
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다(5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지막 날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계 1:7). (2) 세상은 성도들을 자신의 통치권 안에 두려고 유혹하기 때문에(10절) 날마다 기도에 힘써야 한다(살전 5:17). (3) 성도는 환난의 시기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10절;합 2:4).
* 성경적 보응 사상과 동해 보복법의 차이점.
구약에서 '보응 사상'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출 21:23-25에 나온다. 이 표현은 수평적인 인간 관계에서 적용되는 규범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상대방이 한 만큼만 보복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구약의 보응 사상은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도 '동해 보복법'(Lex Talionis)이라는 명칭으로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구약의 저자가 동해 보복법에 영향을 받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해 보복법은 순전히 수평적 관계의 규범이지만, 구약의 보응 사상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었던 사랑과 긍휼의 수직적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분명하게 계시되어진다. 즉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는 구약의 정신을 더욱 승화시켜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랑과 희생의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마 5:38-48).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보응 사상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신 사랑을 수평적 삶의 영역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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