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본절은 26, 27장에 이어 계속적으로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한다. 그리고 27장이 과거 화려한 두로 왕국이 이제는 패망케 되었음을 묘사한 것이라면 본장은 주로 두로의 멸망 원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28:2
두로 왕 -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 )는 문자적으로는 '지도자' 또는 '방백'등을 뜻한다. 이는 본절과 단 9:25, 26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왕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삼상 9:16;10:1;13:14;25:30). 이 단어를 근거로 혹자는 두로 왕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의 직임을 수행하는 것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Wycliffe).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두로 왕국이 당시 지방 자치의 성격을 띤 상업 국가였던 바, 그 왕을 상인 귀족 정치의 우두머리 정도로 묘사한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Kilefoth). 한편 A.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본 구절에 소개된 두로의 마지막 왕은 이토바알 2세(Ittobaal II, B.C. 585-573년경)라고 한다. 나는 신이라 - '신'(* , 엘)이란 직역하면 '전능자', '강한 자'란 뜻이다. 이는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했다(창 14:20, 22;35:3, 11;49:25;신 4:31;시 52:1, 5). 이 용어는 고대 셈족 계통의 족속들에게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가나안 족속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이같이 불러, 지고(至古)의 신으로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두로 왕이 자신을 '신'이라 함은 경제적인 부로 교만하여 자신을 최고 존재로 높인 행위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주요 이유가 된다(12-19절). 내가 하나님의 자리...앉았다 - 이는 두로 왕국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완전한 곳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Hengstenberg, Cooke). 이 사실은 14, 16절에도 암시되고 있다.
=====28:3
다니엘 - 유다 귀족 출신으로 B.C. 605년 여호야김 3년, 바벨론의 제1차 침공 때 끌려간 자이다(단 1:1-7). 그러나 그는 바벨론에서도 그의 신앙을 지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특히 지혜를 얻어 각종 꿈과 문제들을 해석, 해결하고 미래에 대한 일들을 환상 등으로 받고 알게 된다(단 2:1-45;4:4-27;5:1-28;6:1-8:27;10-1-12:13). 그러나 혹자는 본절에 언급된 다니엘이 고대 근동에서 발견된 라스 솨마라(Ras Shamara) 토판에 등장하는 인물(Dan'el)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나(Cooke, Wycliffe) 그 근거가 너무 희박하다(14:14 참조).
=====28:4
두로 왕은 자신의 지혜와 총명을 단순히 재물만을 얻는 데 소비하였다. 이는 그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을 단장하며 자신의 영광과 유익만을 위해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생활 자세는 음녀 바벨론이 자신만을 영화롭게 하며 살았던 것과도 비교될 수 있다(계 18:7-20).
=====28:5
두로 왕이 교만케 된 원인과 그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는 재물의 취득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지혜와 수단을 사용했는데, 이 재물은 결국 자신을 자고(自高)시키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28:6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 본 구절은 두로 왕이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보여준다.
=====28:7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 - '강포한'(* , 아리츠)은 '두려운 마음을 일게 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아라츠'(* )에서 유래된 말로 '두려운', '난폭한' 등의 뜻을 갖는다. 에스겔 당시 이들은 고대 근동 지방을 패권하였던 바벨론 군대를 가리킨다(7:21, 24;30:10, 11;32:11, 12). 하나님은 당시 바벨론 군대를 당신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종으로 사용하셨다(렘 27:6;43:10). 지혜의 아름다운 것 - 이는 두로 왕이 지혜로써 취득한 재물을 가리킨다.
=====28:8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 여기세어 '구덩이'(* , 솨하트)란 형식적 의미대로 단순히 당에 판 구덩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한 바 모든 자들이 사후에 가게 되는 음부, 곧 사후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26:20, Wycliffe, Cooke).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 - 이는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 왕국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스스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2절) 패망케 될 것임을 암시한다(27:27).
=====28:9
너를 살륙하는 자...너를 치는 자 - 이 두 가지 표현은 상호 병행을 이루고 있다.
=====28:10
할례받지 않은 자...하리니 - 이것은 매우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31:18;32:19, 21, 24). 당시 베니게 사람들은 할례를 시행했었는데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을 야만인으로 여겼다 한다(Herodotus). 그러나 이 표현은 그들의 관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었듯이, 두로 왕은 그 축복에서 제외되어 비참하게 될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는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시는 말씀이다.
=====28:11
이는 앞 부분(1-10절)에 이어 계속적으로 두로 왕의 교만과 멸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앞 부분이 경제적 부로 인해 교만케 된 두로 왕의 모습과 그 심판을 다룬 것이라면 본문(11-19절)은 두로 왕의 근본적 모습, 즉 그의 온전했던 과거의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에 근거하여 교만케 되고 심판받음을 열거해주고 있다.
=====28:12
애가 - 19:1 주석을 참조하라.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 아타 호켐 토크니트) - 본 구절은 본서에서 해석상 상당히 어려운 구절 중 하나이다. 혹자는 본 구절을 두로 왕이 두로를 그 당시 해상의 중심지로 이룩할 수 있었던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Ralph H. Alexander). 이와 유사하게 쿡(Cooke)도 본 구절을 '지혜의 완전함'으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6:14;27:3;애 2:15 등에서 이와 유사한 병행 구절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을 취하면 본 구절은 두로 왕이 완전한 지혜로 두로를 잘 이끌어 해상의 중심지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고 본다(Kliefoth, Delitzsch). 그러나 이와 달리 어떤 사람은 본 구절을 두로 왕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음과 그 사람에게 주어진 권세가 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Walter Eichrodt).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두로 왕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수행하는 사역자로 삼으셨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해석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첫 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28:13
하나님의 동산 에던에 있어서 - 혹자는 본 구절을 두로 왕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안에 머물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Eichrodt). 이 해석은 12절의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란 구절을 하나님의 사역자와 연관시킨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은 두로 왕이 누린 영광을 에덴 동산의 영광에 비유한 것으로, 그 영광으로 인해 그가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받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가 각종 보석으로 단장한 데서 잘 묘사되어 있다.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 - '소고와 비파'는 주로 예배애 사용되는 악기이다. 이런 악기가 두로 왕이 태어날 때 예비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암시한다.
=====28: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구룹임이여 - '그룹'은 하나님의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지키는 수호 천사이다. 두로 왕이 그룹에 비유된 것은 그가 하나님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역자임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내가 너를 세우매 - 이 표현 역시 두로 왕이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자신을 신격화 하는 어릭석음을 범했다.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 이는 두로 왕이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처소를 부와 권력을 근거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했다.
=====28:15,16
본문은 두로 왕의 변절에 대해 대조적으로 부각시킨다. 즉, 초기에 두로 왕은 순수하고 깨끗한 통치를 시행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자 교만해져서 공의를 무시하고 폭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 이 말은 두로 왕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잘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 그는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번영을 누리게 되자 교만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17절)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8:16
본문은 두로 왕의 변절에 대해 대조적으로 부각시킨다. 즉, 초기에 두로 왕은 순수하고 깨끗한 통치를 시행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자 교만해져서 공의를 무시하고 폭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 이 말은 두로 왕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잘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마침내 불의 가 드러났도다 - 그는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번영을 누리게 되자 교만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17절)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8: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 그에게 주어진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그가 무역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그는 그 무역이 앞으로도 번성하게 되어 자신이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계속 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건설한 두로 성은 난공 불락의 성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로 왕은 스스로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 그는 자신이 누리는 권세와 영광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했기에 더 이상 어떤 지혜도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영광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광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원함으로써 두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키되 모든 족속에게 수치거리가 되게 하심을 가리킨다. 두로가 이전에는 모든 족속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오히려 수치의 대상이 될 것이다.
=====28: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 본절은 두로의 교만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서 본 구절에 언급된 것은 윤리적인 부패와 상업상의 부패에 대한 것이다. 두로는 번영을 누리면서 온갖 죄악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번영했던 나라 어디에서든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지도 자들이 향락에 젖어들고 백성들도 타락한다. 이런 윤리적 부패와 함께 상도덕(商道德)도 문란해진다. 부패한 나라일수록 상도덕이 문란한 것은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부패는 어느 한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 '성소'를 단수로도 보나 여기서는 복수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단수로 읽을 경우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키나 복수로 읽으면 두로 왕이 세운 신전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는 말이 아니라(Cooke) 두로 왕이 세운 신전들을 통해서 온갖 부패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지적한 말이다. 여기서는 그 부패가 어떤 것인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신전 안에 신상들과 함께 자신의 상(像)을 두어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숭배하게 했을 것이다.
=====28:19
네가 경계 거리가 되고 - 본 구절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네가 두려움의 본보기가 되고'(LB). 즉 두로의 멸망을 보고 그를 아는 자들이 두려워하게 됨을 뜻한다. (2) '네가 무시무시한 종국에 이르게 되고'(RSV, NIV). 이 말은 두로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가공할 만한 종말에 이르게 됨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라호트 하이타'(* )가 (1)보다 (2)의 의미로 번역된다. 따라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두 번째의 의미로 다시 고쳐 읽어야 한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 두로는 느부갓네살의 13년간에 걸친 포위 공격에 의해 점령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Hengstenberg, Dreshler, Delitzsch). 그 후 두로는 바사 제국과 알렉산더가 이끄는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화려했던 옛 명성과 영광을 모두 상실해 버렸다.
=====28:20
두로의 죄악과 심판에 이어 시돈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이 선포된다.
=====28:21
너는 낯을 시돈으로 향하고 - 이에 대해서는 21:2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은 두로의 북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했으며 두로와 함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했던 도시국가다. 그렇지만 두로보다 해상 무역에 있어서 그 역할은 빈약했다. 시돈은 주신(主神) 에쉬문(Eshmun)을 비롯해서 많은 우상을 섬겼다.
=====28:22
시돈에 대해서는 특이하게도 그 죄악상이 언급되지 않고 단지 심판에 대한 예언만 주어지고 있다.
=====28:23
본절에는 하나님께서 시돈을 심판하시는 방법이 언급되었다. 즉 단순히 다른 나라의 침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염병'에 의해서도 심판을 당할 것이다. 시돈은 두로의 멸망 후 베니게의 도시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할이 바사 제국 통치 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B.C. 33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다.
=====28:24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주위의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와 바벨론을 상징한다.
=====28:25,26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그 회복은 하나님께서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24절)를 제거하신 후에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 이 말은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점이면서 동시에 회복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잇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될 것이다.
두로의 영광과 몰락에 대해 선포하던 앞 부분(26,27장)에 이어지는 본장은 두로 와
의 개인에 대한 책망과 시돈의 멸망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두로 왕은 자신의 경
제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이방의 명성을 얻자 신으로 자처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했다.
이러한 두로 왕의 교만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시고 비참한 결말이 임할 것임을
선언하셨다. 또한 시돈은 부정한 무역 거래와 우상 숭배로 인해 범죄했고, 아울러 이
스라엘을 범죄케 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1) 두로 왕의 멸망과 그 원인에 대해 선포하는 전반부(1-19절),
(2)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는 중반부(20-24절), (3)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는
후반부(25,2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에스겔은 자신들의 지혜
와 능력과 부귀를 의지하는 이방인들의 결국이 참담할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장은 두로 왕의 높았던 처지와(11-15절) 장차 멸망하게 될 상황(16-19절)
을 첨예하게 대조하고 있다. 두로 왕은 지혜로운 정치가로서 이상적인 왕국을 이루었
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의를 행함으로(15, 16a절) 철저하게 멸망하여 열방의 조소
거리가 된다(17절). 에스겔은 이와 같은 극적 대비를 통해 인간적인 영광의 무상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본장은 두로 왕의 영화를 묘사하기 위해 풍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에
스겔은 두로 왕을 아담에 비유한다. 두로 왕이 마치 에덴 동산과 같이 훌륭한 환경에
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보석으로 장식된 장소에 살았고(13절),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킨 '그룹'과 같이 영광스러웠으며(14절), 시온 산과 같이 거룩한 곳에 처소를
두었다(14절). 이처럼 저자는 풍자법을 사용하여 두로 왕의 영광이 마치 신적 영광과
비견될 정도로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멸망하게 됨을 언급함으로써 두로
왕도 일개 연약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명백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본장에 나타난 두로 왕에 대한 고발은 이스라엘에 가한 불의한 행동을 전혀 거론하
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차원에서 전개된다. 두로 왕은
자신을 신격화 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의 중심에 앉았다고 말했다(2
절). 사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왕을 백성들의 삶의 표상으로 받아들였으며, 어
떤 비판도 받을 필요가 없는 절대자로 인정하였다. 더구나 두로는 당시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경제 대국이었으므로, 두로 왕의 교만은 극에 달하였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과 같다고 자처하는 두로 왕의 교만을 결코 묵과하실 수 없으므로 심판하시는 것이
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잠 16:18).
이상과 같은 본장은 교만한 두로 왕의 패망(1-19절)과 시돈의 멸망(20-23절)과 이
스라엘의 회복(24-26절)이 들어있다. 이 세 단락은 외견상 별로 관련이 없는 독립된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돈은 두로와 연장선상에 있는 적대 세력으로서 멸망이라는
동일한 운명에 처해짐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회복은 원수들의 멸망이 택한
백성의 구원과 관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본장은 단순히 각 나라의 미래에 대
한 계시가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힌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사적 흐름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 교만한 두로 왕의 결국(28:1-19)
두로 전체에 대한 애가(27:1-36)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두로 왕 개인의 멸망에 대
해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막대한 부를 통하여 축적된 국력과 영화에 현혹되어 자칭
신으로 자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두로 와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시고
단호하게 심판하실 것임을 선언하신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두로 왕에 대한 멸망을
선언하는 전반부(1-10절), (2) 파멸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후반부(11-19
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에스겔은 두로에 대한 마지막 예언에서 '두로 왕'에 대한 애가(11-19절)를
소개한다. 이 내용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멸망이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는
선언이다. 특히 저자는 두로 와의 불의가 마치 에덴 동상 같은 상황(13,14절)에서 이
루어졌음을 강조함으로써, 불법 행위가 매우 커다란 반역인 동시에 환멸을 느끼게 하
는 행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나타난 핵심적인 교훈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속적인 성공은 교만으로 인도될 가능성이 높다(2-5절). 두로 왕은 자신의 부
와 지혜를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과 동등됨을 요구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성이 난공 불락의 요새이며, 교역을 통해 얻은 부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었다. 또한 자신이 당대 최고의 지혜있는 사람으로 평가(단
1:7;2:47,48;5:11,12)되던 다니엘보다 더욱 지혜있다고 오판하였다. 그 결과 피조물인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여 언청난 오류를 낳게 되었고,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
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2절)라는 말을 업수히 여기게 되었
다. 이처럼 가치관이 혼돈된 사회에서는 부와 지식과 능력이 과대 평가되어 하나님을
무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7-10절). 하나님은 두로 왕의 교만
(2,5절)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바벧론을 통해 징계하실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26:7-14). 바벧론은 강포한 나라(30:11;31:12;32:12)로서 두로를 공격해서 아름다운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왕을 구덩이에 빠뜨려 그가 신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에 지나
지 않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라고 착각하는 교만한 자는
철저히 징계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제일 싫어하시며 반드시 처벌하신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토바알 II세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되고 수치스럽게
죽음으로써 성취된다. 그는 '할례받지 않은 자'처럼(10절;32:30;삼상 17:26,36) 비참
하게 죽게됨으로써, 자신의 신격화 주장이 거짓임을 만천하에 알리게 될 것이다.
(3) 인간의 힘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상향을 만들 수 없다(12-19절). 두로 왕은
완전한 환경 속에 살던 아담에 비유되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온갖
부귀 영화를 다 누리며 살았다. 그의 영광은 천사와 방불했고(14절;창 3;24) 통치에
있어서도 성공적이었으며, 두로를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자신의 인간적인 지혜를 이용하여 불의한 방법으로 이득
을 취했다. 그 결과 온갖 보석으로 꾸민 왕궁에서 쫓겨나고(16절), 열왕들의 구경거리
가 되며(17절), 불 가운데서 파멸하게 된다(18절). 이처럼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이
상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화가 꽃 한송이보다 못한다
고 말씀하셨다(마 6:29).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시도
가 제2의 바벧탑을 건설하는 것임을 깨닫고(창 11:1-4), 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
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대망해야 할 것이다.
2. 시돈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28:20-26)
두로 왕에 대한 심판(1-19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부정한 무역 거래와 아스다룻
을 숭배하였던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고(20-24절) 아울러 대조적으로 열방 가운데 포로
로 사로잡혀간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로운 삶을 묘사한다(25,26절). 하나님은 택한 백
성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방 백성에 대해서는 심판하신다. 이러한 사실
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구속 계획을 준수하고(창 12:1-3;렘
23:6;32:37), 잘못을 뉘우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37:27,28).
한편, 에스겔은 여기서 시돈의 심판을 기술함에 있어서 구체적인 예증없이 간략한
선언적 진술만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시돈의 잘못도 두로와 동일하여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시돈은 두로의 자매 도시로서(렘
25:22;47:4;욜 3:4;슥 9:2;눅 6:17;10:13,14) 상호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고, 지리
적으로도 지중해 연안에서 불과 20마일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시돈은 두
로처럼 다른 나라와 무역할 때 많은 불법을 자행했으며, 여러 우상 중 아스다롯을 섬
기고 있었다.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에스겔은 시돈에 대한 심판 선언의 도입부를 두로
의 경우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1,11절;26:1;27:1)라고 일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 본문의 주도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돈에 대한 심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낸다(22-24절).
에스겔은 시돈에 대한 심판의 목적이 여호와를 계시하는 것임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시돈은 두로와 마찬가지로 베니게 왕국의 도시로서 많은 불법을 자행
했으며, 아합의 부인 이세벧을 통해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의 길로 끌어들었다(왕상
16:31-33).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힌 행위로서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
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돈을 심판하심으로써 공의를 회복함과 동시에 당신이 온 세계
의 유일한 통치자임을 증거하는 것이다(대하 20:6).
(2) 시돈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긍휼의 표현이다(2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악한 영향을 미쳤던 열방들을 제거함으로써 다시는 이스라엘에 고통이 없
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거듭 확인하게 만든다(렘
32:37). 하나님은 배도의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을 끝까지 인도하시고, 회개할 때 용서
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함으로써 자신의 거룩
함을 나타내시는 것이다(22,25절;20:41;36:23;38:16;39:27).
(3)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의 귀환과 평화를 약속하셨다(25,26절). 모든 나라들이
벌을 받는 와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아브라함(창 13:14-17;15:17-21)과 야곱(창
35:11-13)에게 약속된 땅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여 하
나님의 축복 속에서 평안과 번영을 만끽하게 된다. 그런데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
토로 귀환했지만(느 1:3), 실제로 평안히 거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본 예언은 하나
님께서 모든 대적을 멸하시고 악을 소탕하실 천년 왕국 시대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종말론적으로 모든 택한 백성을 구속하고, 영광과 환히 가운데로 이끄실 것
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하나님은 인간적
지혜와 힘을 신뢰하는 자를 낮추신다(약 4:6). (2) 하나님과 공등해지려는 마음은 자
신을 신격화하려는 왜곡된 시도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3) 지상 세계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4)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에게 영
광을 주는 반면 악인에게는 수치를 안겨준다.
* 개인의 책임과 하나님의 판결.
두로 왕은 교만(2,5,17a절)과 악행(15,16,18절)으로 인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17b,19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
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개념은 예레미야도 언급했지만(렘 31:29,30). 에스겔은
좀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여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공동 책임'(corporate responsibility)이라는 사상이 매우 발
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전체 이스라엘의 패배를 초래하게 된
다(수 7:1,5,11,12). 이처럼 이스라엘은 종종 한 사람의 죄악에 대해 연대 책임을 묻
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개인이 져야 할 고유의 책임을 제거해주지는 않는
다. 죄는 오직 자신만이 져야 할 짐이다. 에스겔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
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8:20)고 썼
다. 또한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여호와께 범죄하므로 그분께서 기근을 내려 사
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사람이 거기 있을
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을 건지리라'(14:13,14)고 했다. 이처럼 에스
겔은 구원의 개별성을 언급하며, 하나님 앞에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의 한계를 명백히
제시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죄가 회개한 죄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믿음에 입각하여 구원받음을 믿으며,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요 3:16).
본절은 26, 27장에 이어 계속적으로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한다. 그리고 27장이 과거 화려한 두로 왕국이 이제는 패망케 되었음을 묘사한 것이라면 본장은 주로 두로의 멸망 원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28:2
두로 왕 -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 )는 문자적으로는 '지도자' 또는 '방백'등을 뜻한다. 이는 본절과 단 9:25, 26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왕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삼상 9:16;10:1;13:14;25:30). 이 단어를 근거로 혹자는 두로 왕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의 직임을 수행하는 것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Wycliffe).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두로 왕국이 당시 지방 자치의 성격을 띤 상업 국가였던 바, 그 왕을 상인 귀족 정치의 우두머리 정도로 묘사한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Kilefoth). 한편 A.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본 구절에 소개된 두로의 마지막 왕은 이토바알 2세(Ittobaal II, B.C. 585-573년경)라고 한다. 나는 신이라 - '신'(* , 엘)이란 직역하면 '전능자', '강한 자'란 뜻이다. 이는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했다(창 14:20, 22;35:3, 11;49:25;신 4:31;시 52:1, 5). 이 용어는 고대 셈족 계통의 족속들에게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가나안 족속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이같이 불러, 지고(至古)의 신으로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두로 왕이 자신을 '신'이라 함은 경제적인 부로 교만하여 자신을 최고 존재로 높인 행위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주요 이유가 된다(12-19절). 내가 하나님의 자리...앉았다 - 이는 두로 왕국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완전한 곳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Hengstenberg, Cooke). 이 사실은 14, 16절에도 암시되고 있다.
=====28:3
다니엘 - 유다 귀족 출신으로 B.C. 605년 여호야김 3년, 바벨론의 제1차 침공 때 끌려간 자이다(단 1:1-7). 그러나 그는 바벨론에서도 그의 신앙을 지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특히 지혜를 얻어 각종 꿈과 문제들을 해석, 해결하고 미래에 대한 일들을 환상 등으로 받고 알게 된다(단 2:1-45;4:4-27;5:1-28;6:1-8:27;10-1-12:13). 그러나 혹자는 본절에 언급된 다니엘이 고대 근동에서 발견된 라스 솨마라(Ras Shamara) 토판에 등장하는 인물(Dan'el)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나(Cooke, Wycliffe) 그 근거가 너무 희박하다(14:14 참조).
=====28:4
두로 왕은 자신의 지혜와 총명을 단순히 재물만을 얻는 데 소비하였다. 이는 그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을 단장하며 자신의 영광과 유익만을 위해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생활 자세는 음녀 바벨론이 자신만을 영화롭게 하며 살았던 것과도 비교될 수 있다(계 18:7-20).
=====28:5
두로 왕이 교만케 된 원인과 그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는 재물의 취득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지혜와 수단을 사용했는데, 이 재물은 결국 자신을 자고(自高)시키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28:6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 본 구절은 두로 왕이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보여준다.
=====28:7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 - '강포한'(* , 아리츠)은 '두려운 마음을 일게 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아라츠'(* )에서 유래된 말로 '두려운', '난폭한' 등의 뜻을 갖는다. 에스겔 당시 이들은 고대 근동 지방을 패권하였던 바벨론 군대를 가리킨다(7:21, 24;30:10, 11;32:11, 12). 하나님은 당시 바벨론 군대를 당신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종으로 사용하셨다(렘 27:6;43:10). 지혜의 아름다운 것 - 이는 두로 왕이 지혜로써 취득한 재물을 가리킨다.
=====28:8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 여기세어 '구덩이'(* , 솨하트)란 형식적 의미대로 단순히 당에 판 구덩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한 바 모든 자들이 사후에 가게 되는 음부, 곧 사후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26:20, Wycliffe, Cooke).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 - 이는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 왕국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스스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2절) 패망케 될 것임을 암시한다(27:27).
=====28:9
너를 살륙하는 자...너를 치는 자 - 이 두 가지 표현은 상호 병행을 이루고 있다.
=====28:10
할례받지 않은 자...하리니 - 이것은 매우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31:18;32:19, 21, 24). 당시 베니게 사람들은 할례를 시행했었는데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을 야만인으로 여겼다 한다(Herodotus). 그러나 이 표현은 그들의 관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었듯이, 두로 왕은 그 축복에서 제외되어 비참하게 될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는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시는 말씀이다.
=====28:11
이는 앞 부분(1-10절)에 이어 계속적으로 두로 왕의 교만과 멸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앞 부분이 경제적 부로 인해 교만케 된 두로 왕의 모습과 그 심판을 다룬 것이라면 본문(11-19절)은 두로 왕의 근본적 모습, 즉 그의 온전했던 과거의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에 근거하여 교만케 되고 심판받음을 열거해주고 있다.
=====28:12
애가 - 19:1 주석을 참조하라.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 아타 호켐 토크니트) - 본 구절은 본서에서 해석상 상당히 어려운 구절 중 하나이다. 혹자는 본 구절을 두로 왕이 두로를 그 당시 해상의 중심지로 이룩할 수 있었던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Ralph H. Alexander). 이와 유사하게 쿡(Cooke)도 본 구절을 '지혜의 완전함'으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6:14;27:3;애 2:15 등에서 이와 유사한 병행 구절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을 취하면 본 구절은 두로 왕이 완전한 지혜로 두로를 잘 이끌어 해상의 중심지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고 본다(Kliefoth, Delitzsch). 그러나 이와 달리 어떤 사람은 본 구절을 두로 왕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음과 그 사람에게 주어진 권세가 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Walter Eichrodt).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두로 왕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수행하는 사역자로 삼으셨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해석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첫 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28:13
하나님의 동산 에던에 있어서 - 혹자는 본 구절을 두로 왕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안에 머물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Eichrodt). 이 해석은 12절의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란 구절을 하나님의 사역자와 연관시킨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은 두로 왕이 누린 영광을 에덴 동산의 영광에 비유한 것으로, 그 영광으로 인해 그가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받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가 각종 보석으로 단장한 데서 잘 묘사되어 있다.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 - '소고와 비파'는 주로 예배애 사용되는 악기이다. 이런 악기가 두로 왕이 태어날 때 예비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암시한다.
=====28: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구룹임이여 - '그룹'은 하나님의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지키는 수호 천사이다. 두로 왕이 그룹에 비유된 것은 그가 하나님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역자임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내가 너를 세우매 - 이 표현 역시 두로 왕이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자신을 신격화 하는 어릭석음을 범했다.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 이는 두로 왕이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처소를 부와 권력을 근거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했다.
=====28:15,16
본문은 두로 왕의 변절에 대해 대조적으로 부각시킨다. 즉, 초기에 두로 왕은 순수하고 깨끗한 통치를 시행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자 교만해져서 공의를 무시하고 폭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 이 말은 두로 왕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잘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 그는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번영을 누리게 되자 교만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17절)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8:16
본문은 두로 왕의 변절에 대해 대조적으로 부각시킨다. 즉, 초기에 두로 왕은 순수하고 깨끗한 통치를 시행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자 교만해져서 공의를 무시하고 폭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 이 말은 두로 왕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잘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마침내 불의 가 드러났도다 - 그는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번영을 누리게 되자 교만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17절)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8: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 그에게 주어진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그가 무역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그는 그 무역이 앞으로도 번성하게 되어 자신이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계속 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건설한 두로 성은 난공 불락의 성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로 왕은 스스로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 그는 자신이 누리는 권세와 영광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했기에 더 이상 어떤 지혜도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영광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광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원함으로써 두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키되 모든 족속에게 수치거리가 되게 하심을 가리킨다. 두로가 이전에는 모든 족속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오히려 수치의 대상이 될 것이다.
=====28: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 본절은 두로의 교만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서 본 구절에 언급된 것은 윤리적인 부패와 상업상의 부패에 대한 것이다. 두로는 번영을 누리면서 온갖 죄악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번영했던 나라 어디에서든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지도 자들이 향락에 젖어들고 백성들도 타락한다. 이런 윤리적 부패와 함께 상도덕(商道德)도 문란해진다. 부패한 나라일수록 상도덕이 문란한 것은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부패는 어느 한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 '성소'를 단수로도 보나 여기서는 복수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단수로 읽을 경우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키나 복수로 읽으면 두로 왕이 세운 신전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는 말이 아니라(Cooke) 두로 왕이 세운 신전들을 통해서 온갖 부패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지적한 말이다. 여기서는 그 부패가 어떤 것인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신전 안에 신상들과 함께 자신의 상(像)을 두어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숭배하게 했을 것이다.
=====28:19
네가 경계 거리가 되고 - 본 구절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네가 두려움의 본보기가 되고'(LB). 즉 두로의 멸망을 보고 그를 아는 자들이 두려워하게 됨을 뜻한다. (2) '네가 무시무시한 종국에 이르게 되고'(RSV, NIV). 이 말은 두로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가공할 만한 종말에 이르게 됨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라호트 하이타'(* )가 (1)보다 (2)의 의미로 번역된다. 따라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두 번째의 의미로 다시 고쳐 읽어야 한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 두로는 느부갓네살의 13년간에 걸친 포위 공격에 의해 점령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Hengstenberg, Dreshler, Delitzsch). 그 후 두로는 바사 제국과 알렉산더가 이끄는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화려했던 옛 명성과 영광을 모두 상실해 버렸다.
=====28:20
두로의 죄악과 심판에 이어 시돈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이 선포된다.
=====28:21
너는 낯을 시돈으로 향하고 - 이에 대해서는 21:2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은 두로의 북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했으며 두로와 함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했던 도시국가다. 그렇지만 두로보다 해상 무역에 있어서 그 역할은 빈약했다. 시돈은 주신(主神) 에쉬문(Eshmun)을 비롯해서 많은 우상을 섬겼다.
=====28:22
시돈에 대해서는 특이하게도 그 죄악상이 언급되지 않고 단지 심판에 대한 예언만 주어지고 있다.
=====28:23
본절에는 하나님께서 시돈을 심판하시는 방법이 언급되었다. 즉 단순히 다른 나라의 침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염병'에 의해서도 심판을 당할 것이다. 시돈은 두로의 멸망 후 베니게의 도시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할이 바사 제국 통치 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B.C. 33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다.
=====28:24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주위의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와 바벨론을 상징한다.
=====28:25,26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그 회복은 하나님께서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24절)를 제거하신 후에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 이 말은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점이면서 동시에 회복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잇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될 것이다.
두로의 영광과 몰락에 대해 선포하던 앞 부분(26,27장)에 이어지는 본장은 두로 와
의 개인에 대한 책망과 시돈의 멸망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두로 왕은 자신의 경
제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이방의 명성을 얻자 신으로 자처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했다.
이러한 두로 왕의 교만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시고 비참한 결말이 임할 것임을
선언하셨다. 또한 시돈은 부정한 무역 거래와 우상 숭배로 인해 범죄했고, 아울러 이
스라엘을 범죄케 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1) 두로 왕의 멸망과 그 원인에 대해 선포하는 전반부(1-19절),
(2)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는 중반부(20-24절), (3)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는
후반부(25,2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에스겔은 자신들의 지혜
와 능력과 부귀를 의지하는 이방인들의 결국이 참담할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장은 두로 왕의 높았던 처지와(11-15절) 장차 멸망하게 될 상황(16-19절)
을 첨예하게 대조하고 있다. 두로 왕은 지혜로운 정치가로서 이상적인 왕국을 이루었
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의를 행함으로(15, 16a절) 철저하게 멸망하여 열방의 조소
거리가 된다(17절). 에스겔은 이와 같은 극적 대비를 통해 인간적인 영광의 무상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본장은 두로 왕의 영화를 묘사하기 위해 풍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에
스겔은 두로 왕을 아담에 비유한다. 두로 왕이 마치 에덴 동산과 같이 훌륭한 환경에
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보석으로 장식된 장소에 살았고(13절),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킨 '그룹'과 같이 영광스러웠으며(14절), 시온 산과 같이 거룩한 곳에 처소를
두었다(14절). 이처럼 저자는 풍자법을 사용하여 두로 왕의 영광이 마치 신적 영광과
비견될 정도로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멸망하게 됨을 언급함으로써 두로
왕도 일개 연약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명백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본장에 나타난 두로 왕에 대한 고발은 이스라엘에 가한 불의한 행동을 전혀 거론하
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차원에서 전개된다. 두로 왕은
자신을 신격화 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의 중심에 앉았다고 말했다(2
절). 사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왕을 백성들의 삶의 표상으로 받아들였으며, 어
떤 비판도 받을 필요가 없는 절대자로 인정하였다. 더구나 두로는 당시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경제 대국이었으므로, 두로 왕의 교만은 극에 달하였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과 같다고 자처하는 두로 왕의 교만을 결코 묵과하실 수 없으므로 심판하시는 것이
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잠 16:18).
이상과 같은 본장은 교만한 두로 왕의 패망(1-19절)과 시돈의 멸망(20-23절)과 이
스라엘의 회복(24-26절)이 들어있다. 이 세 단락은 외견상 별로 관련이 없는 독립된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돈은 두로와 연장선상에 있는 적대 세력으로서 멸망이라는
동일한 운명에 처해짐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회복은 원수들의 멸망이 택한
백성의 구원과 관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본장은 단순히 각 나라의 미래에 대
한 계시가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힌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사적 흐름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 교만한 두로 왕의 결국(28:1-19)
두로 전체에 대한 애가(27:1-36)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두로 왕 개인의 멸망에 대
해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막대한 부를 통하여 축적된 국력과 영화에 현혹되어 자칭
신으로 자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두로 와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시고
단호하게 심판하실 것임을 선언하신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두로 왕에 대한 멸망을
선언하는 전반부(1-10절), (2) 파멸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후반부(11-19
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에스겔은 두로에 대한 마지막 예언에서 '두로 왕'에 대한 애가(11-19절)를
소개한다. 이 내용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멸망이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는
선언이다. 특히 저자는 두로 와의 불의가 마치 에덴 동상 같은 상황(13,14절)에서 이
루어졌음을 강조함으로써, 불법 행위가 매우 커다란 반역인 동시에 환멸을 느끼게 하
는 행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나타난 핵심적인 교훈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속적인 성공은 교만으로 인도될 가능성이 높다(2-5절). 두로 왕은 자신의 부
와 지혜를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과 동등됨을 요구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성이 난공 불락의 요새이며, 교역을 통해 얻은 부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었다. 또한 자신이 당대 최고의 지혜있는 사람으로 평가(단
1:7;2:47,48;5:11,12)되던 다니엘보다 더욱 지혜있다고 오판하였다. 그 결과 피조물인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여 언청난 오류를 낳게 되었고,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
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2절)라는 말을 업수히 여기게 되었
다. 이처럼 가치관이 혼돈된 사회에서는 부와 지식과 능력이 과대 평가되어 하나님을
무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7-10절). 하나님은 두로 왕의 교만
(2,5절)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바벧론을 통해 징계하실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26:7-14). 바벧론은 강포한 나라(30:11;31:12;32:12)로서 두로를 공격해서 아름다운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왕을 구덩이에 빠뜨려 그가 신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에 지나
지 않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라고 착각하는 교만한 자는
철저히 징계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제일 싫어하시며 반드시 처벌하신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토바알 II세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되고 수치스럽게
죽음으로써 성취된다. 그는 '할례받지 않은 자'처럼(10절;32:30;삼상 17:26,36) 비참
하게 죽게됨으로써, 자신의 신격화 주장이 거짓임을 만천하에 알리게 될 것이다.
(3) 인간의 힘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상향을 만들 수 없다(12-19절). 두로 왕은
완전한 환경 속에 살던 아담에 비유되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온갖
부귀 영화를 다 누리며 살았다. 그의 영광은 천사와 방불했고(14절;창 3;24) 통치에
있어서도 성공적이었으며, 두로를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자신의 인간적인 지혜를 이용하여 불의한 방법으로 이득
을 취했다. 그 결과 온갖 보석으로 꾸민 왕궁에서 쫓겨나고(16절), 열왕들의 구경거리
가 되며(17절), 불 가운데서 파멸하게 된다(18절). 이처럼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이
상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화가 꽃 한송이보다 못한다
고 말씀하셨다(마 6:29).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시도
가 제2의 바벧탑을 건설하는 것임을 깨닫고(창 11:1-4), 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
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대망해야 할 것이다.
2. 시돈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28:20-26)
두로 왕에 대한 심판(1-19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부정한 무역 거래와 아스다룻
을 숭배하였던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고(20-24절) 아울러 대조적으로 열방 가운데 포로
로 사로잡혀간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로운 삶을 묘사한다(25,26절). 하나님은 택한 백
성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방 백성에 대해서는 심판하신다. 이러한 사실
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구속 계획을 준수하고(창 12:1-3;렘
23:6;32:37), 잘못을 뉘우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37:27,28).
한편, 에스겔은 여기서 시돈의 심판을 기술함에 있어서 구체적인 예증없이 간략한
선언적 진술만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시돈의 잘못도 두로와 동일하여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시돈은 두로의 자매 도시로서(렘
25:22;47:4;욜 3:4;슥 9:2;눅 6:17;10:13,14) 상호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고, 지리
적으로도 지중해 연안에서 불과 20마일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시돈은 두
로처럼 다른 나라와 무역할 때 많은 불법을 자행했으며, 여러 우상 중 아스다롯을 섬
기고 있었다.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에스겔은 시돈에 대한 심판 선언의 도입부를 두로
의 경우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1,11절;26:1;27:1)라고 일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 본문의 주도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돈에 대한 심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낸다(22-24절).
에스겔은 시돈에 대한 심판의 목적이 여호와를 계시하는 것임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시돈은 두로와 마찬가지로 베니게 왕국의 도시로서 많은 불법을 자행
했으며, 아합의 부인 이세벧을 통해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의 길로 끌어들었다(왕상
16:31-33).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힌 행위로서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
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돈을 심판하심으로써 공의를 회복함과 동시에 당신이 온 세계
의 유일한 통치자임을 증거하는 것이다(대하 20:6).
(2) 시돈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긍휼의 표현이다(2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악한 영향을 미쳤던 열방들을 제거함으로써 다시는 이스라엘에 고통이 없
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거듭 확인하게 만든다(렘
32:37). 하나님은 배도의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을 끝까지 인도하시고, 회개할 때 용서
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함으로써 자신의 거룩
함을 나타내시는 것이다(22,25절;20:41;36:23;38:16;39:27).
(3)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의 귀환과 평화를 약속하셨다(25,26절). 모든 나라들이
벌을 받는 와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아브라함(창 13:14-17;15:17-21)과 야곱(창
35:11-13)에게 약속된 땅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여 하
나님의 축복 속에서 평안과 번영을 만끽하게 된다. 그런데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
토로 귀환했지만(느 1:3), 실제로 평안히 거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본 예언은 하나
님께서 모든 대적을 멸하시고 악을 소탕하실 천년 왕국 시대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종말론적으로 모든 택한 백성을 구속하고, 영광과 환히 가운데로 이끄실 것
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하나님은 인간적
지혜와 힘을 신뢰하는 자를 낮추신다(약 4:6). (2) 하나님과 공등해지려는 마음은 자
신을 신격화하려는 왜곡된 시도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3) 지상 세계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4)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에게 영
광을 주는 반면 악인에게는 수치를 안겨준다.
* 개인의 책임과 하나님의 판결.
두로 왕은 교만(2,5,17a절)과 악행(15,16,18절)으로 인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17b,19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
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개념은 예레미야도 언급했지만(렘 31:29,30). 에스겔은
좀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여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공동 책임'(corporate responsibility)이라는 사상이 매우 발
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전체 이스라엘의 패배를 초래하게 된
다(수 7:1,5,11,12). 이처럼 이스라엘은 종종 한 사람의 죄악에 대해 연대 책임을 묻
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개인이 져야 할 고유의 책임을 제거해주지는 않는
다. 죄는 오직 자신만이 져야 할 짐이다. 에스겔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
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8:20)고 썼
다. 또한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여호와께 범죄하므로 그분께서 기근을 내려 사
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사람이 거기 있을
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을 건지리라'(14:13,14)고 했다. 이처럼 에스
겔은 구원의 개별성을 언급하며, 하나님 앞에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의 한계를 명백히
제시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죄가 회개한 죄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믿음에 입각하여 구원받음을 믿으며,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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