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 35:1 주석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이제 에돔(세일 산)의 황폐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이스라엘(이스라엘 산)의 회복이 기술된다. 곧 34장에서 새로운 목자의 출현 예고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했던 선지자는 본장에서 새로운 땅의 회복과(1-15절) 선민의 궁극적 회복(16-38절)을 계속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그에 따르는 미래의 비전을 점층적으로 주지시키고 있다. 특히 본절에서 7절까지는 그 내용의 극적 효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에돔으로 대변되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고가 다시금 언급된다.
=====36:2
대적이 - 혹자는 전장에서 에돔이 모든 이방 세력에 대한 상징으로 쓰여졌다는 점과(35:1 주석 참조) 35장이 본장의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제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를 에돔에 국한시킨다(Delitzsch, Schroder). 그러나 이 말이 3절에서 '남은 이방인'으로, 5절에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으로 구별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대적'은 에돔을 비롯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이방 국가를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25:3, 8, 12). 옛적 높은 곳 - 이는 곧 1절에 언급된 '이스라엘 산'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칭한다. 실로 이 땅은 옛적 이스라엘에 주어진 약속의 땅인 동시에 영원한 소유가 보장된 땅이기도 하다(창 49:26;신 33:15, Delitzsch, Havernick).
=====36:3
그러므로(* , 라켄) - 이제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이방에 대한 심판의 확고함과 엄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심판 이유를 밝히는 이 말을 본절부터 7절까지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Ewald). 그들이 너희를...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 여기서 '너희'가 이스라엘을 지칭한다는 점과 '너희 사방'이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들'은 당시 근동 지역의 패자로 등장한 바벨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쉐리트'(* )는 '살아 남은', '최종적으로 남은'이란 뜻인 바, '남은 이방인'은 바벨론의 공격 뒤에 살아 남은 이스라엘 주변 이방 국가들의 생존자들임을 암시한다(Schroder). 한편 본절은 35:5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구절로 비록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바벨론의 식민지로 전락되기는 하였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철저한 쇠퇴는 그들에게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었다.
=====36:4
이스라엘 산들아 - 혹자는 산이 모든 땅을 비유한다는 점에서 본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모든 유력한 족장들로 해석하기도 하나(Schmieder), 본절의 주제가 이스라엘 땅의 회복이란 점에서 '이스라엘 산'은 '산들과...버린 성읍들'로 구체화된 이스라엘 땅을 지칭한다.
=====36:5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원전상 '그러므로'(* , 라켄)란 말이 문장 초두에 삽입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맹렬한 투기로...말하였노니 - 여기서 '말하였노니'(* , 디바르티)는 완료형으로 앞 구절들의 예언이 이미 이전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해 준다(25:5, 6;35장). 특별히 강렬한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말인 '맹렬한 투기'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도저히 모면할 수 없는 필연적이고 당위적인 것임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내 땅을 빼앗아...삼았음이니라 - 이제 하나님께서는 '내 땅'이란 말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소유자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심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주변 이방국들의 이스라엘 침략이 단순한 영토적 침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대한 침략인 동시에 나아가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도전임을 시사해 준다.
=====36:6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 여기서 '땅'이 그 일반적 용어인 '에레츠'(* )로 쓰여지지 않고 특별하게 '흙'이나 '농지'의 의미가 강조되는 '아다마'(* )로 쓰여진 것은 이 말이 함축적으로 '고향'의 이미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후일 성취될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진다(Schroder).
=====36:7
내가 맹세하였은즉(* , 아니 나솨티 에트 야데) - 문자적으로는 '내가 나의 손을 들었다'란 뜻으로, 히브리인의 관습상 서원이나 맹세를 위한 상징적 행위였다(20:5, 6).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 여기서 '자기 수욕'은 곧 이방국들이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모든 치욕 그대로가 그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바, 곧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당한 이방의 치욕을 직접 갚아 주시리란 의미이다.
=====36:8
이제 본격적인 이스라엘 땅의 회복과 축복이 앞 단락과의 극명한 대조를 암시하는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된다. 너희는 가지를..과실을 맺으리니 - 에돔에 내린 심판의 저주(35:3, 7, 15)와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땅은 풍성한 열매를 내고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소산을 제공할 것이란 의미이다. 혹자는 '가지'를 가축의 먹이로, '과실'을 사람을 위한 것으로 각각 해석하여 본 구절을 이스라엘 땅의 보편적인 회복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Hengstenberg).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 '그들의 올 때'는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땅으로 귀환할 때를 가리키므로 본 구절은 그때의 임박함을 보여준다. 혹자는 본 예언의 시기를 33장 예언의 지속으로 보아(33:1) 예레미야 예언에 언급된 70년 중 20년이 경과한 시기(1:2;32:1;33:21)로 생각한다(Hengstenberg).
=====36:9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 여기서 '사람'은 곧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고 심을 것'은 땅을 경작하여 농사를 지을 것이란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내용상 8절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토에서 땅을 경작하며 소출을 얻을 것이란 뜻이다.
=====36:10
그들로...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 본 구절은 땅의 농사를 언급한 9절보다 확장된 의미로서 그 당에서의 안정된 거주를 보증하고 있는 표현이다(Schroder). 한편 '빈 땅'(* , 헤하리보트)은 '황폐한 곳'이란 뜻으로 단순하게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전쟁의 결과로 폐허가 된 곳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곳에 건축한다는 것은 곧 재건(rebuilt, NIV)의 의미를 함축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대주제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36:11
너희 위에...번성하게 할 것이라 - 8절부터 시작된 축복의 단게적 발전으로 10절의 안정된 거주에 이어 그 거주민 곧 이스라엘의 새로운 번영의 축복이 기술된다. 한편 본 구절은 천지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창 1:28) 새로운 창조적 축복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그 축복의 정도를 강조하고 있다(Havernick).
======36:12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 로 토세프 오드 레솨클람) - 문자적으로는 '더 이상 유산되지 않게 하리라'란 뜻(왕하 2:19)이다. 그러나 '솨콜'(* )이 '여의다', '빼앗기다'란 뜻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자식들의 상실을 빗대어 한 말로서 그 의미가 특별하게 강조된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포로됨의 정황이 다시는 그 땅에 있지 않으리란 말이다.
=====36:13
너는 사람을 삼키는 자요 - 이 말을 학자들은 '가뭄과 기근으로 인한 백성들의 핍접'(Davidson, May), '땅의 황폐함으로 인한 맹수의 번식과 그로 인한 피해'(Cooke), '그 땅에서 일어난 전쟁과 학살'(Stalker) 등으로 해석한다. 여기서는 마지막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36:14
네 나라 백성을 제하지 아니하리라 - 이 표현은 약속의 땅이 다시 회복될 것이란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36:15
본절은 지금까지 언급된 땅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과 직결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게서 이렇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위함이다(22절).
=====36:16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회복 예고에 이어 선민(選民)들에 대한 회복이 기술된다. 먼저 21절까지 그 회복의 궁극적 이유를 밝히고 있다. 즉 선민의 회복이 결코 그들의 의로움이나 그들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멸망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이다(20:39;미 4:5;말 4:2).
=====36:17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 '더럽혔나니'(* , 예타무우)는 '(종교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오염이나 부정'을 가리키는 '타메'(* )의 미완료형으로 그 범죄 행위의 습관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가 습관적으로 저질러졌으며 그 땅 전체에 만연해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피의 유출은 생명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죄악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여자들의 월경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레 15:19). 한편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어 18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죄의 내용(...피를 쏟았으며)에 대한 문자적 병행의 의도로 보여진다(Schroder, Hitzig).
=====36:18
이스라엘의 죄목이자 하나님의 심판 이유가 제시된다.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 LB는 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murder)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살인'에만 국한된다기보다는 정치적 압제, 경제적 착취 등 이스라엘에 회행했던 모든 종류의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어지는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란 구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22:3, 6;33:25).
=====36:19
본절에 대해서는 22:15 주석을 참조하라.
=====36:20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 이는 19절에 기술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주변 이방 국가들을 가리킨다.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말한 자는 이방인들이지만 그 이름을 욕되게 한 궁극적 주체인 '그들'은 이방인들이(Kliefoth)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다(Delitzsch, Schroder).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은 일차적으로 선민으로 자처하면서도 갖은 행악을 서슴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죄악 자체 때문이었으며, 이차적으로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루어진 선민의 포로됨이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구원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신으로 비쳐져 멸시했기 깨문이었다(롬 2:24, Hengstenberg). 여호와의 백성이라도...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 고대의 신(神) 개념에 따르면 그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그 땅의 신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란 점에서 본 구절은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이방인들의 시각에 대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그들의 신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철저하게 버려진 자들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그 하나님조차 그들의 패망과 본토에서의 추방을 막지 못한 무능한 신으로 욕했던 것이다.
=====36:21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 '내가 아꼈노라'(* , 아흐몰)는 '내가 긍휼히 여겼다' 또는 '내가 가엾게 여겼다'란 뜻으로 지고한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혹자는 이를 '(내 이름을 위하여) 그들(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겼노라'고 해석하나(LXX, Havernick), 그보다는 문맥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거룩한 이름)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심으로 다시는 당신의 이름이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실 것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Rosenmuller, Schroder).
=====36:22
내가 이렇게 행함은...위함이라 - '내가 이렇게 행함'은 이후 38절까지 구체적으로 전개될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38절까지는 16-21절의 내용을 더욱 심도있게 제시하는 단락으로 하나님의 사역(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과 그 사역의 목적(당신의 영광을 드러냄)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 모든 열방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일개 민족신에 불과하신 분이 아니라 전지 전능하신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하셨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사역을 위한 하나의 통로로 사용된 것이다.
=====36:23
그들의 목전에서...나타내리니 - 여기서 '그들의 목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사실을 목도하고 더불어 그 이름을 욕되게 말했던 이방인들의 목전을 가리킨다(20:41;28:25). 그런데 혹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책임의 소재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이차적으로는 이방에 있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대상으로서의 '그들'을 보편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포괄하는 이중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Hengstenberg, Schroder). 그러나 본절에서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 대명사가 명백하게 이방인들을 가리키므로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열국 사람이...알리라 - 하나님의 사역 목적을 보여준다(22절 주석 참조).
=====36:24
본격적인 구원 사역의 내용이 전개된다. 본절은 그 첫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토 귀환이 예고된다. 취하여 내고...모아 데리고 - 이 두 표현은 원어상 모두 강제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강조하고 있다.
=====36:25
맑은 물로...정결케 하되 - 이는 속죄 제물을 태운 재를 넣어 만든 제사용 물을 그 속죄의 대상에 뿌리는 이스라엘의 정결 의식에서(민 8:7;19:9) 인용된 구절이다. 이러한 제사 의식이 모든 죄된 요소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정결의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Delitzsch, Hengstenberg). 또한 이는 죄의 정결이란 측면에서 신약 시대의 물세례를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행 19:3). 한편 혹자는 '맑은 물'의 이러한 제의적 용도를 배격하고 단지 오염된 것을 씻어낸다는 일반적인 물의 특성에 국한시켜 해석하나(Schroder, Havernick), '맑은 물'의 '맑은'(* , 타호르)이 원어상 '(의식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깨끗한, 순결한'이란 뜻을 가지며 특별히 성경에서 레위인의 정결에 관련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다.
=====36:26
회복 내용의 점진적 전개로 고토 귀환, 죄의 정결에 이어 이스라엘의 내적 갱신이 기술된다.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은 단순히 귀환과 죄사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갱신까지 이르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새 영...새 마음 - 성경의 용례상 '영'(* , 루아흐)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내적 본질로(살전 5:23), '마음'(* , 레브)은 인간의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인성의 좌소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 두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어 앞에 '새'라는 형용사가 첨가된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새 언약 백성의 반열에 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렘 31:31).
=====36:27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 '내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의 용례상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란 점에서(사 42:1;44:3;59:21;욜 2:28) 본 구절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야 시대의 시작임을 보여준다(37:14;39:29).
=====36:28
내 백성이...되리라 - 성경을 통해서 일관되게 제시되어온 하나님과 그에게 속한 백성 사이의 언약 체결의 주제가 다시금 반복된다.
======36:29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 '모든 더러운 것'은 17, 18, 20, 21절 등에 나타난 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 또한 '구원하고'(* , 호솨티)는 문자적으로 '완전하다', '돕다', '보전하다'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을 그러한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함은(25절) 다시는 그 죄악의 심연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Delitzsch).
=====36:30
본절에 대해서는 34:27, 29 주석을 참조하라.
======36:31
스스로 밉게 보리라 - '밉게'(* , 쿠트)는 원어상 그 기본 의미가 '베어내다'인 바,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이전 행악에 대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는 일차적 의미 외에 그 죄를 베어냄, 곧 회개의 의미까지를 내포한다(레 26:40, Delitzsch).
======36:32
본절에 대해서는 22절 주석을 참조하라.
=====36:33
땅의 회복(1-15절)과 선민의 회복(16-32절)의 총괄적인 결산이 36절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창조 당시의 에덴과 같은 낙원의 성취와 관련있다(사 11:6-9;51:3;욜 3:18;암 9:13-15). 성읍들에...건축되게 할 것인즉 -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36:34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 여기서 '기경이 될지라'란 말은 이스라엘이 앞 구절의 황무한 땅과 대조를 이루는 풍성한 소출의 경작지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36:35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 이는 약속의 땅이 창조 당시의 에덴 동산과 같아질 것이라는 문자적 의미보다는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 중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 또한 그러한 창조적 축복과 같을 것이란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Hengstenberg).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 '성벽'(* , 베추로트)은 원어상 요새화된 성읍을 가리키므로 본 구절은 그러한 성읍에 거민들이 안주하고 있다는 의미로서, 이전의 패망과 포로됨의 정황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평안을 암시하고 있다(Delitzsch).
=====36:36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36:37
본절과 38절은 9-12절에 대한 부가적 설명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특별한 번성이 기술된다.
그래도...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이스라엘의 자발적 헌신을 촉구하는 말로 비록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로 성취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순종과 사역의 동참을 요구하신다.
======36:38
제사드릴 양떼...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 '제사드릴 양떼'가 '사람의 떼'와 비교된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 절기 때 그 제사에 희생 제물로 사용될 수많은 가축들이 예루살렘 성내를 가득 메웠던 사실에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대하 35:7, Hengstenberg). 한편 그러한 절기 때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들이 성전에 나왔던 바(출 34:23;신 16:16), 이러한 제사의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이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이스라엘의 온전한 신앙 공동체 회복이라는 영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Hengstenberg). 또한 이러한 제의적 비유는 에스겔 선지자가 제사장 출신이라는 점에서(1:3) 자연스럽게 인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34장)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은 본장에 와
서 땅과 백성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회복은 지도자, 땅, 백성을 축으
로 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장은 전장(35장)의 주제였던 에
돔에 대한 심판을 전반부(1-15절)에서 재차 조명하면서 이스라엘 땅과 백성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본장은 다음 장(37장)과 함께 본서 전체의 중심적인 내용인 이스
라엘 백성들의 실패와 회복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시대에 있을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미래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모사하고 있는 본장은 (1) 에돔과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질 이스라엘 땅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
(1-15절), (2) 과거 이스라엘의 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
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16-3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
다. 이와같이 본장은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을 땅과 백성의 회복이라는 중심적
인 틀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에스겔이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희망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었던
두가지 신앙적인 관점을 제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심판을 넘어선 하나님의 구원 역사
를 보는 통찰력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산들이 이미 하나님의 시판으로 황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6장). 또한, 자신이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이 바벧론 포로
라는 극단적인 현실 속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에 최종적인 구원이 완성될 것을 내다 보고 있었다. 이러한 전망은 구원이 이
스라엘 백성들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진다
는 사실을 확신한 결과에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근본적인 동기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20-23절)라고 밝히고 있는 것
이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스라엘 땅이 에돔과 이방 국가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땅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은 B.C. 8세기 선지자들의 공통적
인 인식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암울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동일하게 경험하면
서도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본장의 내용이 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회복의 주체가
누군가에 대한 묘사도 다른 장보다 많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지자는
열번씩이나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2-7,13,22,33,37절)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표현은 회복의 주체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예언의 성취에 대한 가장 확실
한 증거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묘사하고 있는 본장은 두 가지 측면
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대해서 언
급하고 있는데, 에돔과 이방 국가들을 심판하고 난(1-7절) 다음에 이스라엘 땅을 회복
시킬 것이라고 밝힌다(8-15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해서 말하는데, 우
선적으로 실패의 원인을 지적하고(16-23절) 나서 회복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새 영과
새 마음을 '(26절) 그들 속에 두고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선지자는 이러한
두 방면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이 임한다고 예언하는 것이다.
1. 이스라엘의 땅의 회복(36:1-15)
에돔 땅이 황무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는 전 단락(35:10-15에 이어서
본 단락도 에돔의 심판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본 단락의 내용은 전 단락의
단순한 반복이기보다는 이전보다 더욱 분명히 심판의 목적이 이스라엘 땅의 회복이라
는 점을 밝힌다. 즉 이전의 주제가 에돔 심판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본 단락은 에돔
심판의 궁극적 목적을 밝힘으로써 그 의미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에돔 심판이
자이스라엘의 땅을 회복시키는 과정으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에돔의 멸망과 이
스라엘의 구원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속성에 있
어서 두 가지 측면에 계시하여 주는데, 에돔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이스라
엘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니의 사랑을 드러낸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에돔과 이방 국
가들에 대한 심판을 다시 선언하는 전반부(1-7절), (2) 이스라엘 땅의 완전한 회복을
백성들의 번성(11절)과 신분의 회복(15절)으로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8-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전반부(1-7절)는 '그러므로'의 의미를 갖고 있는 '라켄'(* )
이라는 단러가 5번(개역 성경은 4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다(3-7절). 이러한 표
현을 통하여 에돔이 받게 되는 심판이 분명한 원인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이스라엘의 회
복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타나고 있
다. 즉, '내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아르치'(* , 5절)와 '내 백성'의 의
미를 갖고 있는 '아미'(* , 12절)라는 표현이다. 이러한 용어는 이스라엘 땅과
백성이 하나님의 독특한 소유임을 강조한다. 사실 이와 같은 의미는 이미 아브라함과
맺은 최초의 언약 속에서(창 12;1), 출애굽 이후 시내 산 계약을 맺기 이전에(출
19;5,6), 토지에 대한 규례를 밝히는 가운데(레 25:23), 예레미야를 통한 예언 속에서
도(렘 2:7) 강조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
실과 아직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의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 국가들의 심판의 원인은 이스라엘 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의
해 결정된다(1-7절). 저자는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원인으로 땅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제사하고 있다. (가) 이스라엘 땅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자세이다(2,3,5
절). 열방들은 그 땅이 옛적부터 이스라엘의 소유임을 알면서도(2절) 이제 자신들의
기업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땅의 진정한 소유자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었고, 결국은 심판을 초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 이방
국가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함으로써 모든 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 땅을 비웃음거리
로 만들었다는 점이다(2-4,6절). 그래서 저자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땅이 당한 치욕에
대하여 '사람의 말거리와비방거리'(3절), '노략거리와 조롱거리'(4절), '수욕'(6절)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치욕도 역시 이스라엘 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세(5절)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시판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
다.
(2) 이스라엘의 회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8-15절). (가)
이스라엘의 환경의 변화라는 관점이다. '이스라엘 산들이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으며'
(8절), '사람과 짐승이 많게 되며'(11절)라는 표현은 모두 이스라엘의 주변 환경이 개
선되어질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나) 이스라엘의 신분의 변화라는 관점이다(11,15절).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이전에
는 이방 국가들의 비방거리였지만 다시 이방 가운데서 독특한 지위와 신분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힌다(15절). 이 신분의 격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갖고 있었던
최초의 목적이기도 하였고(출 19:5,6) 신약의 성도들을 향한 교훈이기도 하였다(마
5:16;벧전 2:9).
2.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36:16-38)
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15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 단락이 이스라엘 전
공동체의 회복에 비중을 두었다면, 본 단락은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의 변화에 초점
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지자가 이스라엘 전공동체의 회복은 각 개인의 변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스겔은 공동체적인 관
점과 개인적인 관점을 균등있게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가 우상 숭배 때문에 비롯된 하나
님의 심판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전반부(16-21절), (2)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
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라는 사리과 구체적인 회복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후반부(22-3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본서 전체의 백미로서 에스겔 신학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론(16-23절) : 에스겔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된 모습만을 묘사
하지 않고 그들이 본질적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말씀
에 반응하는 데 실패한 민족임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실패한 모습을 빗대어 말하기를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17절)이라고 묘사
하고 있고, 그 실패의 원인을 '우상 숭배'(18절)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
든 현상들은 근본적으로 아담 이후로부터 계속 되어온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역사 속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바울의 관점 속에서도 드러나 있고(롬 9-11장), 스데반의 설교의 주
제이기도 하였다(행 7장). 에스겔은, 인간은 자신의 악한 본성 때문에 인간 스스로 자
신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2) 구원론(25-31절) : 에스겔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관점
을 제시한다. 그중에 하나는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도권이다. 그러므로 계속해
서 '여호와의 이름'의 명예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하
고 있다(20-23절). 바울은 인간의 구원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엡 2:8,9).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은 내면적 변화를 통해서만 진정한 구원이 임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서 이스라엘 백성이 '새 마음과 새 영'(26절)을 통해 굳은 마음이 변화될 것이라고 밝
힌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서만 인간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적 특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원인과 목적은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것이다
(17-23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 때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 역사 속
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16-21절).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백성들의 의로움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주권적인 행위에
의거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선택된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신다(22,23
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한 근본적인 동기도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
그들을 구원한 목적도 여호와의 이름을 만방에 계시하기 위함이었다(23절).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고전 10:31).
(2)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핵심은 여호와가 그들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24-31
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이 여호와의 완전한 내적 임재를 통해 가능함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와의 내적 임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죄의 문
제가 해결되어야 하므로 '물로 더러운 것과 우상을 섬김에서 정결케'(25절)하는 것이
다. 이러한 정화 작업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거하실 수 있고(26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게 될 수 있다(27절). 이러한 '죄문제 해결 -
여호와의 내적 임재 - 율법 준수'라는 도식은 신약의 교훈과도 일치한다. 예수님의 죽
으심과 부활로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마 1:21),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성도 속에 내
적인 임재가 가능케 되었으며(행 2:1-4), 그 결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 8:1-11).
(3)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총체적인 변화를 수반하다(32-38절). 저자는 이스라엘
땅과 백성의 회복에 대하여 묘사하고 나서 궁극적으로 총체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진
다. 특히 '너희를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이 건축될 것'(33절)이라는 표현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총체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날 것을 보여준
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에덴 동산 같이'(35절)라고 묘사함으로써 회복의 상태가
총체적이며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일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사야도 이
스라엘의 총체적인 변화를 자연계의 변화로 묘사하였던 것이다(사 11:6-9).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해서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23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 말씀'(롬 10:17)에서 기인하므로 우리는 복음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힘써 전도해야 한다(해 1:8). (3)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주변 환경, 즉 전체 피조계를 포괄하는 총괄적 변화를 수반한다(롬 8:21).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 35:1 주석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이제 에돔(세일 산)의 황폐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이스라엘(이스라엘 산)의 회복이 기술된다. 곧 34장에서 새로운 목자의 출현 예고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했던 선지자는 본장에서 새로운 땅의 회복과(1-15절) 선민의 궁극적 회복(16-38절)을 계속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그에 따르는 미래의 비전을 점층적으로 주지시키고 있다. 특히 본절에서 7절까지는 그 내용의 극적 효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에돔으로 대변되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고가 다시금 언급된다.
=====36:2
대적이 - 혹자는 전장에서 에돔이 모든 이방 세력에 대한 상징으로 쓰여졌다는 점과(35:1 주석 참조) 35장이 본장의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제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를 에돔에 국한시킨다(Delitzsch, Schroder). 그러나 이 말이 3절에서 '남은 이방인'으로, 5절에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으로 구별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대적'은 에돔을 비롯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이방 국가를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25:3, 8, 12). 옛적 높은 곳 - 이는 곧 1절에 언급된 '이스라엘 산'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칭한다. 실로 이 땅은 옛적 이스라엘에 주어진 약속의 땅인 동시에 영원한 소유가 보장된 땅이기도 하다(창 49:26;신 33:15, Delitzsch, Havernick).
=====36:3
그러므로(* , 라켄) - 이제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이방에 대한 심판의 확고함과 엄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심판 이유를 밝히는 이 말을 본절부터 7절까지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Ewald). 그들이 너희를...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 여기서 '너희'가 이스라엘을 지칭한다는 점과 '너희 사방'이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들'은 당시 근동 지역의 패자로 등장한 바벨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쉐리트'(* )는 '살아 남은', '최종적으로 남은'이란 뜻인 바, '남은 이방인'은 바벨론의 공격 뒤에 살아 남은 이스라엘 주변 이방 국가들의 생존자들임을 암시한다(Schroder). 한편 본절은 35:5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구절로 비록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바벨론의 식민지로 전락되기는 하였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철저한 쇠퇴는 그들에게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었다.
=====36:4
이스라엘 산들아 - 혹자는 산이 모든 땅을 비유한다는 점에서 본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모든 유력한 족장들로 해석하기도 하나(Schmieder), 본절의 주제가 이스라엘 땅의 회복이란 점에서 '이스라엘 산'은 '산들과...버린 성읍들'로 구체화된 이스라엘 땅을 지칭한다.
=====36:5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원전상 '그러므로'(* , 라켄)란 말이 문장 초두에 삽입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맹렬한 투기로...말하였노니 - 여기서 '말하였노니'(* , 디바르티)는 완료형으로 앞 구절들의 예언이 이미 이전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해 준다(25:5, 6;35장). 특별히 강렬한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말인 '맹렬한 투기'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도저히 모면할 수 없는 필연적이고 당위적인 것임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내 땅을 빼앗아...삼았음이니라 - 이제 하나님께서는 '내 땅'이란 말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소유자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심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주변 이방국들의 이스라엘 침략이 단순한 영토적 침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대한 침략인 동시에 나아가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도전임을 시사해 준다.
=====36:6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 여기서 '땅'이 그 일반적 용어인 '에레츠'(* )로 쓰여지지 않고 특별하게 '흙'이나 '농지'의 의미가 강조되는 '아다마'(* )로 쓰여진 것은 이 말이 함축적으로 '고향'의 이미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후일 성취될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진다(Schroder).
=====36:7
내가 맹세하였은즉(* , 아니 나솨티 에트 야데) - 문자적으로는 '내가 나의 손을 들었다'란 뜻으로, 히브리인의 관습상 서원이나 맹세를 위한 상징적 행위였다(20:5, 6).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 여기서 '자기 수욕'은 곧 이방국들이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모든 치욕 그대로가 그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바, 곧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당한 이방의 치욕을 직접 갚아 주시리란 의미이다.
=====36:8
이제 본격적인 이스라엘 땅의 회복과 축복이 앞 단락과의 극명한 대조를 암시하는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된다. 너희는 가지를..과실을 맺으리니 - 에돔에 내린 심판의 저주(35:3, 7, 15)와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땅은 풍성한 열매를 내고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소산을 제공할 것이란 의미이다. 혹자는 '가지'를 가축의 먹이로, '과실'을 사람을 위한 것으로 각각 해석하여 본 구절을 이스라엘 땅의 보편적인 회복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Hengstenberg).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 '그들의 올 때'는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땅으로 귀환할 때를 가리키므로 본 구절은 그때의 임박함을 보여준다. 혹자는 본 예언의 시기를 33장 예언의 지속으로 보아(33:1) 예레미야 예언에 언급된 70년 중 20년이 경과한 시기(1:2;32:1;33:21)로 생각한다(Hengstenberg).
=====36:9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 여기서 '사람'은 곧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고 심을 것'은 땅을 경작하여 농사를 지을 것이란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내용상 8절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토에서 땅을 경작하며 소출을 얻을 것이란 뜻이다.
=====36:10
그들로...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 본 구절은 땅의 농사를 언급한 9절보다 확장된 의미로서 그 당에서의 안정된 거주를 보증하고 있는 표현이다(Schroder). 한편 '빈 땅'(* , 헤하리보트)은 '황폐한 곳'이란 뜻으로 단순하게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전쟁의 결과로 폐허가 된 곳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곳에 건축한다는 것은 곧 재건(rebuilt, NIV)의 의미를 함축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대주제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36:11
너희 위에...번성하게 할 것이라 - 8절부터 시작된 축복의 단게적 발전으로 10절의 안정된 거주에 이어 그 거주민 곧 이스라엘의 새로운 번영의 축복이 기술된다. 한편 본 구절은 천지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창 1:28) 새로운 창조적 축복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그 축복의 정도를 강조하고 있다(Havernick).
======36:12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 로 토세프 오드 레솨클람) - 문자적으로는 '더 이상 유산되지 않게 하리라'란 뜻(왕하 2:19)이다. 그러나 '솨콜'(* )이 '여의다', '빼앗기다'란 뜻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자식들의 상실을 빗대어 한 말로서 그 의미가 특별하게 강조된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포로됨의 정황이 다시는 그 땅에 있지 않으리란 말이다.
=====36:13
너는 사람을 삼키는 자요 - 이 말을 학자들은 '가뭄과 기근으로 인한 백성들의 핍접'(Davidson, May), '땅의 황폐함으로 인한 맹수의 번식과 그로 인한 피해'(Cooke), '그 땅에서 일어난 전쟁과 학살'(Stalker) 등으로 해석한다. 여기서는 마지막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36:14
네 나라 백성을 제하지 아니하리라 - 이 표현은 약속의 땅이 다시 회복될 것이란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36:15
본절은 지금까지 언급된 땅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과 직결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게서 이렇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위함이다(22절).
=====36:16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회복 예고에 이어 선민(選民)들에 대한 회복이 기술된다. 먼저 21절까지 그 회복의 궁극적 이유를 밝히고 있다. 즉 선민의 회복이 결코 그들의 의로움이나 그들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멸망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이다(20:39;미 4:5;말 4:2).
=====36:17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 '더럽혔나니'(* , 예타무우)는 '(종교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오염이나 부정'을 가리키는 '타메'(* )의 미완료형으로 그 범죄 행위의 습관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가 습관적으로 저질러졌으며 그 땅 전체에 만연해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피의 유출은 생명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죄악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여자들의 월경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레 15:19). 한편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어 18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죄의 내용(...피를 쏟았으며)에 대한 문자적 병행의 의도로 보여진다(Schroder, Hitzig).
=====36:18
이스라엘의 죄목이자 하나님의 심판 이유가 제시된다.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 LB는 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murder)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살인'에만 국한된다기보다는 정치적 압제, 경제적 착취 등 이스라엘에 회행했던 모든 종류의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어지는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란 구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22:3, 6;33:25).
=====36:19
본절에 대해서는 22:15 주석을 참조하라.
=====36:20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 이는 19절에 기술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주변 이방 국가들을 가리킨다.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말한 자는 이방인들이지만 그 이름을 욕되게 한 궁극적 주체인 '그들'은 이방인들이(Kliefoth)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다(Delitzsch, Schroder).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은 일차적으로 선민으로 자처하면서도 갖은 행악을 서슴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죄악 자체 때문이었으며, 이차적으로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루어진 선민의 포로됨이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구원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신으로 비쳐져 멸시했기 깨문이었다(롬 2:24, Hengstenberg). 여호와의 백성이라도...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 고대의 신(神) 개념에 따르면 그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그 땅의 신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란 점에서 본 구절은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이방인들의 시각에 대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그들의 신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철저하게 버려진 자들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그 하나님조차 그들의 패망과 본토에서의 추방을 막지 못한 무능한 신으로 욕했던 것이다.
=====36:21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 '내가 아꼈노라'(* , 아흐몰)는 '내가 긍휼히 여겼다' 또는 '내가 가엾게 여겼다'란 뜻으로 지고한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혹자는 이를 '(내 이름을 위하여) 그들(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겼노라'고 해석하나(LXX, Havernick), 그보다는 문맥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거룩한 이름)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심으로 다시는 당신의 이름이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실 것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Rosenmuller, Schroder).
=====36:22
내가 이렇게 행함은...위함이라 - '내가 이렇게 행함'은 이후 38절까지 구체적으로 전개될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38절까지는 16-21절의 내용을 더욱 심도있게 제시하는 단락으로 하나님의 사역(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과 그 사역의 목적(당신의 영광을 드러냄)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 모든 열방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일개 민족신에 불과하신 분이 아니라 전지 전능하신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하셨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사역을 위한 하나의 통로로 사용된 것이다.
=====36:23
그들의 목전에서...나타내리니 - 여기서 '그들의 목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사실을 목도하고 더불어 그 이름을 욕되게 말했던 이방인들의 목전을 가리킨다(20:41;28:25). 그런데 혹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책임의 소재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이차적으로는 이방에 있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대상으로서의 '그들'을 보편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포괄하는 이중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Hengstenberg, Schroder). 그러나 본절에서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 대명사가 명백하게 이방인들을 가리키므로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열국 사람이...알리라 - 하나님의 사역 목적을 보여준다(22절 주석 참조).
=====36:24
본격적인 구원 사역의 내용이 전개된다. 본절은 그 첫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토 귀환이 예고된다. 취하여 내고...모아 데리고 - 이 두 표현은 원어상 모두 강제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강조하고 있다.
=====36:25
맑은 물로...정결케 하되 - 이는 속죄 제물을 태운 재를 넣어 만든 제사용 물을 그 속죄의 대상에 뿌리는 이스라엘의 정결 의식에서(민 8:7;19:9) 인용된 구절이다. 이러한 제사 의식이 모든 죄된 요소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정결의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Delitzsch, Hengstenberg). 또한 이는 죄의 정결이란 측면에서 신약 시대의 물세례를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행 19:3). 한편 혹자는 '맑은 물'의 이러한 제의적 용도를 배격하고 단지 오염된 것을 씻어낸다는 일반적인 물의 특성에 국한시켜 해석하나(Schroder, Havernick), '맑은 물'의 '맑은'(* , 타호르)이 원어상 '(의식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깨끗한, 순결한'이란 뜻을 가지며 특별히 성경에서 레위인의 정결에 관련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다.
=====36:26
회복 내용의 점진적 전개로 고토 귀환, 죄의 정결에 이어 이스라엘의 내적 갱신이 기술된다.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은 단순히 귀환과 죄사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갱신까지 이르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새 영...새 마음 - 성경의 용례상 '영'(* , 루아흐)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내적 본질로(살전 5:23), '마음'(* , 레브)은 인간의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인성의 좌소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 두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어 앞에 '새'라는 형용사가 첨가된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새 언약 백성의 반열에 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렘 31:31).
=====36:27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 '내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의 용례상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란 점에서(사 42:1;44:3;59:21;욜 2:28) 본 구절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야 시대의 시작임을 보여준다(37:14;39:29).
=====36:28
내 백성이...되리라 - 성경을 통해서 일관되게 제시되어온 하나님과 그에게 속한 백성 사이의 언약 체결의 주제가 다시금 반복된다.
======36:29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 '모든 더러운 것'은 17, 18, 20, 21절 등에 나타난 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 또한 '구원하고'(* , 호솨티)는 문자적으로 '완전하다', '돕다', '보전하다'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을 그러한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함은(25절) 다시는 그 죄악의 심연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Delitzsch).
=====36:30
본절에 대해서는 34:27, 29 주석을 참조하라.
======36:31
스스로 밉게 보리라 - '밉게'(* , 쿠트)는 원어상 그 기본 의미가 '베어내다'인 바,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이전 행악에 대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는 일차적 의미 외에 그 죄를 베어냄, 곧 회개의 의미까지를 내포한다(레 26:40, Delitzsch).
======36:32
본절에 대해서는 22절 주석을 참조하라.
=====36:33
땅의 회복(1-15절)과 선민의 회복(16-32절)의 총괄적인 결산이 36절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창조 당시의 에덴과 같은 낙원의 성취와 관련있다(사 11:6-9;51:3;욜 3:18;암 9:13-15). 성읍들에...건축되게 할 것인즉 -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36:34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 여기서 '기경이 될지라'란 말은 이스라엘이 앞 구절의 황무한 땅과 대조를 이루는 풍성한 소출의 경작지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36:35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 이는 약속의 땅이 창조 당시의 에덴 동산과 같아질 것이라는 문자적 의미보다는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 중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 또한 그러한 창조적 축복과 같을 것이란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Hengstenberg).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 '성벽'(* , 베추로트)은 원어상 요새화된 성읍을 가리키므로 본 구절은 그러한 성읍에 거민들이 안주하고 있다는 의미로서, 이전의 패망과 포로됨의 정황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평안을 암시하고 있다(Delitzsch).
=====36:36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36:37
본절과 38절은 9-12절에 대한 부가적 설명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특별한 번성이 기술된다.
그래도...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이스라엘의 자발적 헌신을 촉구하는 말로 비록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로 성취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순종과 사역의 동참을 요구하신다.
======36:38
제사드릴 양떼...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 '제사드릴 양떼'가 '사람의 떼'와 비교된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 절기 때 그 제사에 희생 제물로 사용될 수많은 가축들이 예루살렘 성내를 가득 메웠던 사실에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대하 35:7, Hengstenberg). 한편 그러한 절기 때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들이 성전에 나왔던 바(출 34:23;신 16:16), 이러한 제사의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이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이스라엘의 온전한 신앙 공동체 회복이라는 영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Hengstenberg). 또한 이러한 제의적 비유는 에스겔 선지자가 제사장 출신이라는 점에서(1:3) 자연스럽게 인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34장)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은 본장에 와
서 땅과 백성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회복은 지도자, 땅, 백성을 축으
로 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장은 전장(35장)의 주제였던 에
돔에 대한 심판을 전반부(1-15절)에서 재차 조명하면서 이스라엘 땅과 백성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본장은 다음 장(37장)과 함께 본서 전체의 중심적인 내용인 이스
라엘 백성들의 실패와 회복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시대에 있을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미래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모사하고 있는 본장은 (1) 에돔과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질 이스라엘 땅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
(1-15절), (2) 과거 이스라엘의 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
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16-3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
다. 이와같이 본장은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을 땅과 백성의 회복이라는 중심적
인 틀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에스겔이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희망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었던
두가지 신앙적인 관점을 제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심판을 넘어선 하나님의 구원 역사
를 보는 통찰력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산들이 이미 하나님의 시판으로 황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6장). 또한, 자신이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이 바벧론 포로
라는 극단적인 현실 속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에 최종적인 구원이 완성될 것을 내다 보고 있었다. 이러한 전망은 구원이 이
스라엘 백성들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진다
는 사실을 확신한 결과에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근본적인 동기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20-23절)라고 밝히고 있는 것
이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스라엘 땅이 에돔과 이방 국가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땅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은 B.C. 8세기 선지자들의 공통적
인 인식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암울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동일하게 경험하면
서도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본장의 내용이 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회복의 주체가
누군가에 대한 묘사도 다른 장보다 많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지자는
열번씩이나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2-7,13,22,33,37절)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표현은 회복의 주체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예언의 성취에 대한 가장 확실
한 증거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묘사하고 있는 본장은 두 가지 측면
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대해서 언
급하고 있는데, 에돔과 이방 국가들을 심판하고 난(1-7절) 다음에 이스라엘 땅을 회복
시킬 것이라고 밝힌다(8-15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해서 말하는데, 우
선적으로 실패의 원인을 지적하고(16-23절) 나서 회복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새 영과
새 마음을 '(26절) 그들 속에 두고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선지자는 이러한
두 방면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이 임한다고 예언하는 것이다.
1. 이스라엘의 땅의 회복(36:1-15)
에돔 땅이 황무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는 전 단락(35:10-15에 이어서
본 단락도 에돔의 심판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본 단락의 내용은 전 단락의
단순한 반복이기보다는 이전보다 더욱 분명히 심판의 목적이 이스라엘 땅의 회복이라
는 점을 밝힌다. 즉 이전의 주제가 에돔 심판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본 단락은 에돔
심판의 궁극적 목적을 밝힘으로써 그 의미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에돔 심판이
자이스라엘의 땅을 회복시키는 과정으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에돔의 멸망과 이
스라엘의 구원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속성에 있
어서 두 가지 측면에 계시하여 주는데, 에돔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이스라
엘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니의 사랑을 드러낸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에돔과 이방 국
가들에 대한 심판을 다시 선언하는 전반부(1-7절), (2) 이스라엘 땅의 완전한 회복을
백성들의 번성(11절)과 신분의 회복(15절)으로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8-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전반부(1-7절)는 '그러므로'의 의미를 갖고 있는 '라켄'(* )
이라는 단러가 5번(개역 성경은 4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다(3-7절). 이러한 표
현을 통하여 에돔이 받게 되는 심판이 분명한 원인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이스라엘의 회
복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타나고 있
다. 즉, '내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아르치'(* , 5절)와 '내 백성'의 의
미를 갖고 있는 '아미'(* , 12절)라는 표현이다. 이러한 용어는 이스라엘 땅과
백성이 하나님의 독특한 소유임을 강조한다. 사실 이와 같은 의미는 이미 아브라함과
맺은 최초의 언약 속에서(창 12;1), 출애굽 이후 시내 산 계약을 맺기 이전에(출
19;5,6), 토지에 대한 규례를 밝히는 가운데(레 25:23), 예레미야를 통한 예언 속에서
도(렘 2:7) 강조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
실과 아직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의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 국가들의 심판의 원인은 이스라엘 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의
해 결정된다(1-7절). 저자는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원인으로 땅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제사하고 있다. (가) 이스라엘 땅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자세이다(2,3,5
절). 열방들은 그 땅이 옛적부터 이스라엘의 소유임을 알면서도(2절) 이제 자신들의
기업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땅의 진정한 소유자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었고, 결국은 심판을 초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 이방
국가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함으로써 모든 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 땅을 비웃음거리
로 만들었다는 점이다(2-4,6절). 그래서 저자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땅이 당한 치욕에
대하여 '사람의 말거리와비방거리'(3절), '노략거리와 조롱거리'(4절), '수욕'(6절)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치욕도 역시 이스라엘 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세(5절)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시판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
다.
(2) 이스라엘의 회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8-15절). (가)
이스라엘의 환경의 변화라는 관점이다. '이스라엘 산들이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으며'
(8절), '사람과 짐승이 많게 되며'(11절)라는 표현은 모두 이스라엘의 주변 환경이 개
선되어질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나) 이스라엘의 신분의 변화라는 관점이다(11,15절).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이전에
는 이방 국가들의 비방거리였지만 다시 이방 가운데서 독특한 지위와 신분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힌다(15절). 이 신분의 격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갖고 있었던
최초의 목적이기도 하였고(출 19:5,6) 신약의 성도들을 향한 교훈이기도 하였다(마
5:16;벧전 2:9).
2.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36:16-38)
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15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 단락이 이스라엘 전
공동체의 회복에 비중을 두었다면, 본 단락은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의 변화에 초점
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지자가 이스라엘 전공동체의 회복은 각 개인의 변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스겔은 공동체적인 관
점과 개인적인 관점을 균등있게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가 우상 숭배 때문에 비롯된 하나
님의 심판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전반부(16-21절), (2)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
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라는 사리과 구체적인 회복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후반부(22-3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본서 전체의 백미로서 에스겔 신학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론(16-23절) : 에스겔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된 모습만을 묘사
하지 않고 그들이 본질적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말씀
에 반응하는 데 실패한 민족임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실패한 모습을 빗대어 말하기를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17절)이라고 묘사
하고 있고, 그 실패의 원인을 '우상 숭배'(18절)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
든 현상들은 근본적으로 아담 이후로부터 계속 되어온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역사 속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바울의 관점 속에서도 드러나 있고(롬 9-11장), 스데반의 설교의 주
제이기도 하였다(행 7장). 에스겔은, 인간은 자신의 악한 본성 때문에 인간 스스로 자
신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2) 구원론(25-31절) : 에스겔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관점
을 제시한다. 그중에 하나는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도권이다. 그러므로 계속해
서 '여호와의 이름'의 명예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하
고 있다(20-23절). 바울은 인간의 구원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엡 2:8,9).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은 내면적 변화를 통해서만 진정한 구원이 임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서 이스라엘 백성이 '새 마음과 새 영'(26절)을 통해 굳은 마음이 변화될 것이라고 밝
힌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서만 인간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적 특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원인과 목적은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것이다
(17-23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 때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 역사 속
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16-21절).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백성들의 의로움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주권적인 행위에
의거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선택된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신다(22,23
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한 근본적인 동기도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
그들을 구원한 목적도 여호와의 이름을 만방에 계시하기 위함이었다(23절).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고전 10:31).
(2)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핵심은 여호와가 그들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24-31
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이 여호와의 완전한 내적 임재를 통해 가능함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와의 내적 임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죄의 문
제가 해결되어야 하므로 '물로 더러운 것과 우상을 섬김에서 정결케'(25절)하는 것이
다. 이러한 정화 작업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거하실 수 있고(26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게 될 수 있다(27절). 이러한 '죄문제 해결 -
여호와의 내적 임재 - 율법 준수'라는 도식은 신약의 교훈과도 일치한다. 예수님의 죽
으심과 부활로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마 1:21),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성도 속에 내
적인 임재가 가능케 되었으며(행 2:1-4), 그 결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 8:1-11).
(3)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총체적인 변화를 수반하다(32-38절). 저자는 이스라엘
땅과 백성의 회복에 대하여 묘사하고 나서 궁극적으로 총체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진
다. 특히 '너희를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이 건축될 것'(33절)이라는 표현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총체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날 것을 보여준
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에덴 동산 같이'(35절)라고 묘사함으로써 회복의 상태가
총체적이며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일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사야도 이
스라엘의 총체적인 변화를 자연계의 변화로 묘사하였던 것이다(사 11:6-9).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해서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23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 말씀'(롬 10:17)에서 기인하므로 우리는 복음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힘써 전도해야 한다(해 1:8). (3)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주변 환경, 즉 전체 피조계를 포괄하는 총괄적 변화를 수반한다(롬 8:21).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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