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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32장까지 이어진다. 먼저 그 첫 번째 말씀인 16절까지는 애굽 왕 바로와 애굽 사람들 그리고 애굽 땅에 대한 포괄적 의미에서의 경고(2절)가 기술되고 있다. 제 십 년 시 월 십 이 일에 - 곧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지 10년이 되는 해로서 태양력으로는 B.C. 587년 1월경으로 보여진다. 이는 곧 열방에 관련된 예언 중 26장에 언급된 두로의 심판 예고의 시기보다(26:1) 앞서는 것으로 이처럼 시기적으로 앞선 기사가 제일 뒤에 언급된 것은 (1) 애굽의 응대함과 그 국제적인 위상이 고려된 것이며(Delitzsch, Schroder), (2) 애굽의 실제적인 명망이 두로의7 멸망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한 듯하다.

=====29:2
낯을 향하고 쳐서 - 여기서 '향하고'(* , 알)는 6:2에서와 같이 '적의를 가지고 대면하다'란 뜻의 '엘'(* )과 동일하게 사용되었는 바(against, KJV, NIV, RSV), 본 구절은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포가 그들의 자고함에 대한 하나님의 극에 달한 분노의 일환으로 되어진 것이며, 따라서 그 심판은 결코 철회될 수 없는 엄중하고 확실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29:3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 여기서 '자기의 강들'은 곧 고대 사람들이 생기의 원천으로 여겼던 동시에(Champollion) 애굽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일 강'과 그 지류들 또는 그곳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운하들을 일컫는 것이다(Delitzsch, Schroder, Gesenius). 한편 '악어'(* , 타님)은 문자적으로는 '긴 짐승', '기다란 뱀', '용'등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나일 강의 생태적 특성상 개역성경의 번역이 타당한 듯하다. 특히 이 말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애굽의 상징으로 쓰여졌다(시 74:13, 14;사 27:1;51:9). 곧 본 구절을 교만한 악어가 자신이 나일 강의 주인인양 물 속에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을 빗대어 자신을 애굽의 절대적 주권자로 자처하며 그 권력 속에서 자고하는 바로를 탁월한 문학적 표현 양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강은 내 것이라 - 혹자는 이 표현을 바로가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인위적인 공사를 통해 나일을 생명의 원천으로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나(Hitzig), 원어상 소유의 의미를 나타내는 '리'(* )가 일반적인 소유의 개념을 넘어서 자신이 만들고 소유한다는 뜻의 절대적인 소유의 권한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본 구절은 자신을 신성을 가진 창조자로 자처한 바로의 교만을 더러낸 말이다. 실로 이러한 교만이 바로와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한편 고대 애굽의 비문들은 바로를 신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Duncker).

=====29:4,5
교만의 결과로 주어질 형벌의 전모가 비유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곧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이 바로를 비롯한 전애굽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풍요와 행복과 안락을 상징하는 나일 강으로부터 쫓겨난 기근과 핍절과 폐허 속에서 고통받게 될 것임을 뜻한다. 네 강의 고기 - 이는 곧 바로의 수하에서 활기있게 생활하던 모든 애굽 국민들을 비유한 말이다. 들에...지면에 - 이는 모두 사막 가운데서 풍요와 생기의 원천으로 지칭되던 나일강과 대조를 이루는 지역으로 '들'은 죽음과 기아, 목마름을 상징하는 황폐한 광야를(Schroder), '지면'은 고대 애굽의 왕들이 매장되었던 비옥한 곳과 대조되는 의미로서의 광야를 가리키는 말인 바(Hengstenberg), 곧 그들이 생전의 고통과 함께 죽은 후에도 매장되지 못하고 진정한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는 엄중한 심판적 의미를 암시해주고 있다. 고대 애굽의 바로들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거대한 피라미드(Pyramid)를 건축하여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무덤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애굽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9:6
혹자는 본절의 하번절과 이어지는 7절을 애굽 거민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이유로 지적하나(Hitzig, Kliefoth),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상 하반절과 7절은 상반절과 관계없는 일종의 상반절은 8절의 귀결절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Delitzsch, Schroder). 곧 애굽의 거민들이 이스라엘과의 정치적 연관 속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6b, 7절) 아니라 자신들에게 임한 직접적인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자신들이 신적 존재로 여긴 왕에 대한 허상과 진정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8-12절). 애굽은...갈대 지팡이라 - 여기서 '갈대 지팡이'는 나일 강둑에서 자생하는 크고 굵은 갈대를 가리키는데, 이 말은 사 36:6에서 언급된 '상한 갈대 지팡이'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극히 쓸모없는 애굽의 역할을 비유한 것이다. 실로 애굽은 역사적으로 b.C. 701년 앗수르의 이스라엘 침공 때나(사 36:1, 6) B.C. 588년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시(렘 37:5, 6) 동맹국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전혀 무익한 존재였다.

=====29:7
본절은 나일 강의 갈대들은 모두 속이 비어 있어서 그것을 부러뜨리면 날카로운 갈대 껍질이 지나는 사람의 어깨를 상하게 하면 만일 갈대의 온몸을 기대면 그것이 부러지면서 기댄 사람의 허리를 상하게 한다는 자연적인 특성에서 비유된 표현이다(Delitzsch). 곧 그런 갈대와 같은 애굽은 결코 의지할 대상이 아니며 도리어 의지한 자에게 해가 될 뿐이란 의미다. 의지한즉(* , 솨안)은 원어상 전력을 다해 기대고 의탁한다는 뜻인 바(Kliefoth, Schroder), 애굽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탁 정도를 강조하고 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빈번하게 이스라엘의 대애굽 의존 정책을 경고하셨던 바(사 2:22;30:1, 2;31:1-3),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동맹 체결과 군사 원조의 요청은(렘 37:5, 6) 결국 하나님의 심판인 바벨론의 침공을 자초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왕하 24:20;25:1, 2).

=====29:8
칼로 - 이는 곧 전쟁을 상징하는 말로서(14:17) 애굽의 바벨론과의 전쟁으로 황폐케 될 것임을 암시한다. 네게...네게서 - 7절에 어늡된 '너'란 대명사가 각각 '베카'(* )와 '알레카'(* )란 남성으로 지칭된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밈메크'(* )와 '알라이카'(* )란 여성 접미어로 쓰여진 것은 본절에 언급된 경고의 대상이 일반 애굽 국민에 대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Delitzsch, Schroder).

=====29:9
8절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겨과가 12절까지 이어진다. 본절은 시판의 결과와 함께 그것을 통한 여호와에 대한 인식(6절 주석 참조), 그리고 그 심판의 궁극적인 근거가 3절에 이어 다시금 반복되어 있다(3절 주석 참조). 사막과 황무지(* , 리쉐마마 웨하레바) - 문자적으로 이는 '황무하고 황폐한 곳'(adesolate wasteland, NIV, LB)이란 의미로 근동의 지리적 특성상 개역 성경의 번역은 적절한 의역으로 보여진다.

=====29:10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 '믹돌'은 애굽의 최북단에 위치한 성읍이며, '수에네'는 구스 지역 곧 나일 강의 동편 둑에 위치한 에디오피아의 한 성읍으로 애굽의 최남단의 경계를 이루는 서읍인 바, 본 구절은 나일 강의 줄기를 따라 형성된 애굽의 북쪽 경계와 남쪽 경계 사이 곧 애굽의 전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황무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 여기서 '사막'(* 하르보트)은 히브리 문법상 최상급을 나타내는 이중 속격 '황무한 황무지'(* , 호레브 쉐마마)의 수식을 받는 바, 애굽의 전지역이 극도로 황폐하게 될 것이란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다.

=====29:11
거접하는 사람이 없이 - 여기서 '거접하다'(* , 테쉐브)는 원어상 '(어떤 것을 소유하여) 주인이 되다'란 의미로 본절에서는 주거용의 집을 소유한다는 뜻이다(Schroder, Kliefoth). 이는 직접적으로 전 애굽이 전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막한 곳이 되리란 의미이다. 한편 델리취(Delitzsch)는 이를 피상적인 일종의 시적 표현 구절로 이해한다(사 13:20). 사십 년 - 하나님의 심판으로 애굽이 폐허가 되어 고통받는 기간으로 이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정확한 사십 년은 아니지만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정복 16년 후 애굽을 공격한 때로부터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할 때까지의 실제 기간(4:6)을 가리킨다(Hitzig, Brown, Tholuck). (2)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이 바벨론에게 대패한 후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때로부터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력하고 황폐하게 퇴락하는 상징적 기간을 지시한다(Keil, 왕하 24:7;렘 46:2, 26). (3) 연대기적 계산 방식으로 추출된 것이 아니라 애굽의 형벌과 회개를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상징적인 고난의 기간이다.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시련 기간이었던 광야 40년을 빗대어 애구의 형벌 기간을 상징적으로 유추시킨 것 뿐이다(Schroder, Delitzsch). 여기서는 (3)의 해석이 어느 정도 타당한 듯하다.

=====29:12
황무한 열국 같이...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 같이 - 여기서 '...같이'(* , 베토크)는 원어상 '...중에', '...가운데서'란 뜻인 바, 본문에 언급된 '황무한 열국'과 '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은 애굽의 황폐함을 강조하려는 일종의 상징(Havernick)이라기보다는 실제적으로 애굽과 함께 멸망하고 황폐하게 된 애굽의 주변국들과 그 도시들을 지칭하거나 애굽의 속국 또는 반바벨론 동맹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이다(Hengstenberg).

=====29:13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히브리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 (* )가 문장의 초두에 언급됨으로써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사십 년 후에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이유가 발생하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Schroder). 사십 년 끝에...모아 내되 - 바벨론의 침략으로 시작된 애굽의 고난의 시기가 끝나면(11절) 다시 애굽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말로 바사의 고레스가 식민지 국가에 대한 배려로 그들을 석방시킬 때 애굽 사람들도 함께 그들의 고향에 돌아가게 될 것을 암시한다.

=====29:14
바드로스 땅 곧 그 고토로 - 여기서 '바드로스'는 상 애굽의 북쪽 지역에 속한 중요한 성읍이다(렘 44:1). 한편 이 바드로스가 애굽의 고토로 언급된 용례는 고대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디오도루스(Diodorus)의 기록뿐 아니라 고대 애굽의 신화에서도 언급되는데 애굽 최초의 왕이 태어난 곳으로 기술되고 있다. 미약한 나라가 되되 - 여기서 '미약한'(* , 쉐팔라)은 '욕보이다', '내리 누리다'란 뜻의 어근 '솨펠'(* )에서 유래한 말로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과 관련되어 자주 사용된 말이다. 이는 곧 애굽이 회복되나 전성기 때와 같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예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애굽의 이전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완전히 철회된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잇다. 한편 이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 즉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는 애굽이 이스라엘의 의지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또한 그런 애굽을 신뢰하지 말라는 예언적 경고로도 볼 수 있다(Delitzsch, Hengstenberg).

=====29:15
애굽에 대한 심판적 형벌의 근거(3, 9절)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이전 교만 때문임이 다시금 언급된다. 감하여(* , 마아트) - 원어상 '껍질을 벗기다', '작게 하다', '효과가 없게 하다'란 뜻으로 애굽의 위상이 다른 주변 국가의 의뢰의 대상이 되었던 이전과는 달리 극히 보잘 것 없게 될 것임을 함축적으로 전달해준다. 열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 여기서 '다스리지'(* , 라다)의 원어적 의미는 '짓밟다', '부스러뜨리다'로 이전 애굽의 식민 정책이 극히 잔혹하고 포악한 것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29:16
그들이 - 본절 전체에 대한 주어로 여기서는 원어상 남성형으로 단순한 애굽 땅이라는 피상적 의미가 아니라 왕과 백성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예언의 대상으로서의 애굽 왕국을 지시한다(Delitzsch, Schroder). 그 죄악이 기억나게 되지 아니하리니 - 개역성경의 번역상 자칫 이 문장의 주어가 이스라에로 이해되기 쉬어나 않은 학자들이 이 문장의 주어를 '그들'(애굽)로 주장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Kliefoth, Delitzsch). 곧 이스라엘이 다시는 애굽을 신뢰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에 이전에 행해졌던 애굽의 교만과 이스라엘을 실족케 했던 죄과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지 않으리란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 죄악이' 앞에 '그들(애굽)이 범한'이란 말을 첨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Kliefoth).

=====29:17
일곱 번 계속되는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 중 1-16절에 이은 두 번째 말씀이 21절까지 기술된다. 곧 1-16절까지가 추상적인 심판 예언이었던 반면 두 번째 예언은 그 추상적 심판 예언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바벨론의 애굽 침략을 보여주고 있다. 제 이십 칠 년 - 여호야긴과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지 27년이 되는 해이며 첫 번째 애굽 심판의 경고가 주어진 지 17년이 지난 B.C. 570년을 가리킨다. 한편 이 예언이 연대가 기록된 에스겔의 여느 다른 예언들보다 후대의 것인데도 16절에 이어 곧바로 삽입된 것은 앞의 기사와 내용상의 긴밀한 연관 관계를 고려한 편집자의 의도로 보여진다(Delitzsch, Schroder). 한편 혹자는 이를 30:1과 직접 연관시켜 그 예언의 시기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나(Hitzig, Hengstenberg) 이는 본절의 결론인 21절과 내용상 배치될 뿐 아니라 28:25, 26에 언급된 두로와 시돈에 대한 결론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그래서 본절은 애굽에 대한 예언의 최종적 결론이나 내용상의 연관 관계를 고려해 1-16절과 30:1 사이에 삽입된 것이다.

=====29:18
각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각 어깨가 벗어졌으나 - 여기서 '무지러졌고'(* , 무크라)는 원어상 '털을 뽑다', '대머리가 되다'란 뜻으로 '어깨의 벗어짐'과 함께 극히 오래 시행된 힘든 노역들 상징하는 말이다. 이는 곧 바벨론이 두로를 공격할 때 본토와 섬 두로 사이의 해협을 막기 위해 운제와 토성을 쌓았던(26:8) 사실을 비유한 표현인 듯하다(Hengstenberg, Ewald, Delitzsch). 그 수고한 보수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 - 이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1) 바벨론 군대가 두로를 공격하여 얻은 모든 전리품과 돈들을 전쟁을 통해 이미 다 소진해버렸다(Hitzig). (2) 바벨론이 두로를 공격 할 때 두로를 완전한 폐허로 만들어 버렸기에 아무런 전리품도 발견하지 못했다(Schroder). (3)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로를 공격한 것은 그의 즉위 제 7년부터 20년까지 13년 동안이었다(26:7-9). 따라서 그기간 동안에 두로의 함락을 예견한 많은 두로의 부호들이 재물과 가족들을 다른 섬이나 카르타고 등지에 빼돌리고 피신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이 성 안에 진입했을 때에는 아무런 전리품도 남아 있지 않았다(Jerome, Ewald). 여기서는 (3)의 견해가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 가장 타당한 듯하다.

=====29:19
바벨론에게 있어 애굽 정복의 가장 큰 유익은 역사적으로 보아 반바벨론 동맹의 분쇄에 있었다. 그가 그 무리를 옮겨 가며 - 혹자는 이 말은 바벨론 군대가 애굽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끌고 갔다는 뜻으로 해석하나 여기서 '무리'(* , 하몬)가 '시끄러운 소음'이란 듯으로 정신없이 노략과 약탈을 감행하는 느부갓네살의 군대를 일컫는 말이며, 또한 '옮겨 가며'(* , 나사)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사용된 말로 바벨론 군대의 이동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란 점에서(Schroder, Hitzig, Delitzsch), 본 구절을 바벨론 군대가 애굽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치 않다(De Wette, Kliefoth).

=====29:20
그들의 수고 - 여기서 '수고'(* , 아바드)는 단순히 '일'이란 의미 외에 '(하나님을) 섬기다'란 의미도 내포하는 바,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의 수고는 문맥상 바벨론의 두로 성 공략을 가리키는 것이다(18절). 곧 그 결과로 하반절에서와 같이 애굽 땅을 보수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 말 뒤에 이어지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 에세르 아수 리)은 히브리 본무에서 '애굽 당을 그에게 주었다'란 말 뒤에 나타난다. 그래서 혹자는 이 문장의 주어를 '애굽'으로 보아 '그들(애굽)이 나에게 행한 (범죄의) 대가로'란 의미로 해석한다(Hitzig). 그러나 본절에서 바벨론의 수고는 애굽 정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두로의 공략을 가리키는 것이란 점에서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사실상 바벨론이 두로를 공격한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셔서 고만한 두로를 심판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사 45:1-7;빌 1:15-18).

=====29:21
그 날에 - 내용상으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도구로서 애굽을 정복하게 되는 날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날은 영적으로 궁극적인 여호와의 시판의 날(30:3), 곧 메시야의 때를 가리킨다(Hengstenberg, Ewald, Schmieder).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솟앝나게 하고 - '뿔'(* , 케렌)은 성경의 용례상 '권세와 힘'의 상징인 동시에 대부분 포괄적으로 메시야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삼상 2:1;시 75:5:132:17;애 2:3;눅 1:69). 특히 여기서의 '뿔'은 '메시야적 구원'을 의미한다(Delitzsch). 한편 본절에서 이 이스라엘의 '뿔'의 생성을 애굽의 멸망(그 날에)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곧 애굽이 하나님 나라와 대치되는 모든 이방 세력을 상징한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다(Havernick, Delitzsch, Schroder). 곧 애굽이 상징하는 바 이방 세력이 패배하여 소멸되는 날 이스라엘의 뿔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구원과 그 나라의 권세가 확실하게 성취되고 드러날 것이다.
내가 또 너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 본 구절은 특별하게 24:26, 27에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을 지칭한다. 이는 33:21, 22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본 구절은 그러한 일차적 으미보다는 더욱 중요한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욜 2:28과 같이 메시야적 구원이 임하는 시기의 정황을 설파한 모든 이전 선지자들의 약속을 확증하셨다는 것이다(Theodoret). 한편 혹자는 '그들'을 애굽과 이스라엘로 생각하나(Kliefoth), 여기서는 문맥과 의미상 '이스라엘 족속', 나아가서는 '모든 믿는 자들'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Delitzsch).



앞에서는(26-28장)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길게 예언되었다. 이제 본장부터
32장까지는 일곱 번째로 애굽의 몰락과 함께 애굽에 대한 애가가 언급되고 있다. 특별
히 본장은 애굽 왕 바로와 관련하여 애굽의 멸망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는 자신을 신
격화하여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교만을 저질렀고, 유다는 이러한 애굽 왕을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였다(17: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애굽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부여주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지하였는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애굽 왕을 철저하게 심
판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1) 애굽의 파멸과 황폐에 대해 예언하는 전반부(1-12절), (2) 애굽
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는 중반부(13-16절), (3) 느부갓네살의 분깃과 이스라엘을 향한
긍휼을 약속하는 후반부(17-21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피조물의 지위
를 망각하는 존재는 아무리 강력한 능력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거듭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장부터 계속되는 애굽에 대한 예언은 모두 일곱 가지로 되어 있다. 즉 첫
째는 포로 제10년에 발생하게 될 바로에 대한 위협(1-16절), 둘째는 느부갓네살에 의
한 애굽 정복(17-21절). 셋째는 애굽과 그 동맹국들에게 임할 심판의 날(30:1-19), 넷
째는 바벧론 왕에 의한 바로의 쇠약(30:20-26), 다섯째는 앗수르의 영광과 멸망을 통
한 애굽의 경고(31장), 여섯째는 애굽 왕에 대한 애가(32:1-16), 일곱째는 애굽의 몰
락에 대한 애가(32:17-32) 등이다. 여기서 에스겔은 각 부분을 시작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부분(30:1)을 제외한 여섯 부분에
연대를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번 째 말씀(17절)은 정상적인 연대 배열과
달리 앞 부분에 위치하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에스겔이 논리적으로 말씀을 배열하기
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바로와 애굽의 심판을 예언한 후(1-16절), 곧바로 누
가 그들을 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17-21절을 앞 부분에 배치하였음이
분명하다. 어쨌든 저자는 당시 세상 세력의 대표로서 군림하고 있던 애굽에 대해 다양
한 방식으로 심판을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
다.
또한, 본장은 매우 압축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선지자는 간결한 문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더구나 군더기가 전혀 없는 언어를 사용
하여 세상의 힘과 하나님의 권능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이루어지지만, 결국 하나님의
절대 승리가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본장은 애굽 왕 바로의 오만한 자세가 중점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는 자신
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허위 의식에 빠져 유일하신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더구나 애굽의 부와 국력과 문명은 이러한 교만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래서 에스겔은
바로 왕을 악어에 비유한다. 사실 악어는 라합이나 리워야단과 함께 하나님에게 대한
적대 세력의 총화를 표시한다(욥 7:12;시 74:13;사 27:1;51:9). 결국 선지자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놀라운 경제적 풍요와 번영을 누리던 애굽 문명은 하나
님을 무시하는 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나일 강 하구에 번성한 문명의 발상지 애굽에 대한 심판을 선
언하고 있다. 당시는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끌려간지 10년이 되던 해로서 이스라엘 백
성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애굽에 원조를 요청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
에서 에스겔은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한 애굽의 심판을 선언함으로써 인간적인 힘
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신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느부갓
네살은 두로를 공격하여 함락했으나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애굽으로 진군하여
도시들을 정복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멸망의 선언 속에서
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이루어질 회복을 제시함으로써(21절) 포로된 이스라엘
의 귀환과 메시야를 통한 종말론적 완성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1. 죄악으로 인한 애굽의 몰락(29:1-16)
에스겔이 일곱 번째로 예언한 마지막 나라 애굽의 심판을 선언하는 대목(29-32장)
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본 단락은 애굽 왕의 죄악과 파멸이 묘사되어 있다. 선지자는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무시한 애굽 왕의 죄악을 드러내고 반드시 비참
한 수치를 당하게 됨을 기술한다. 이러한 본문은 (1) 애굽 왕의 멸절을 드러내는 전반
부(1-7절), (2) 애굽 땅이 황무하게 됨을 자세하게 표현하는 중반부(8-12절), (3) 애
굽이 40년만에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 후반부(13-1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버리도록 유도한 애굽의 파멸을 통해 오직 하나
님만이 신뢰의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그러면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6,9,16절)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특히 에스겔은 각 부분의 대미에서 본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애
굽에 대한 심판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에 대한 계시에 있음을 주지시키
고 있다. 하나님은 결코 심판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으신다. 호히려 자신의 영광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좀더 많은 사람들이 믿음 안에 거하며 구원에 동참하도록 유도한
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가 애굽 심판의 말미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제시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21절).
이제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바로 와을 악어에 비유하고 있다(3-5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국력과 부에 도
취되어 있는 바로 왕을 나일 강과 그 지류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거들먹대는 악어
에 비유하였다. 사실 악어는 나일 강에서 가장 포악하고 사나운 짐승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처럼 바로 왕도 팔레스틴에서 패권을 잡고 있음을 근거로 하여 약소국들과 이
스라엘을 괴롭히며 자신을 섬기도록 요구하였다. 특별히 바로는 자신을 절대 군주로
자처하여 신으로 숭배하도록 요구했으므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신성 모독으로 간
주되어 엄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피조되었음을
망각하고 교만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애굽을 갈대 지팡이로 묘사하고 있다(6절). 하나님을 애굽이 이스라엘과의 동
맹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갈대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하나님
은 이전에도 누누히 이스라엘 족속에게 애굽을 의지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사
2:22;30:1,2;31:1-3).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말씀을 거역하고 애굽
과 동맹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군사 원조를 부탁했다(렘 37;5).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애굽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바벧론에 의해 침공을 당하여 비참한 결말을 맛보
게 되었다(왕하 24;20;25:1,2). 이처럼 외적인 힘에 현혹되어 하나님 대신 사람이나
국가를 섬기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이 산성이며
피난처이며 구원의 문이다(시 18:2;19;14;28:1;62:7;사 26:4).
(3) 애굽이 40년 동안 황무한 상태로 버려질 것임을 예언한다(10-12절). 유다를 현
혹하여 믿음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던 애굽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세계 각처로 흩어
지게 된다. 즉, 화려하고 번창한 생활을 자랑하던 옛 모습을 완전히 상실한 채 이스라
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였던 것처럼 고난과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
나 바벧론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바사의 고레스가 고대 근동 지방의 패권을 잡는 시기
에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된다. 이는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그러나
애굽은 이전과 같은 강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더 이상 이스라엘의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미약한 국가에 불과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 대신 의지의 대상이 되려는 국가
나 개인은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
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이다(창 1:26,27).

2. 누부갓네살의 애굽 침공(29:17-21)
교만한 애굽 왕에 대한 심판을 언급한 전 단락(1-16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구체
적으로 애굽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될 것임을 언급한다. 느부갓네살은 두로를 침략
하였으나 아무런 보수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고생만 실컷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
신의 심판의 도구로 수고한 느부갓네살을 위하여 애굽의 보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된 행동일지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면 기꺼이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애굽이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지는 분깃임을 설명하는 전반부
(17-20절), (2) 이스라엘을 위한 긍휼을 위한 긍휼을 약속하는 후반부(21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유다를 괴롭힌 대적의 필연적인 멸망과 함께 언약 백
성의 회복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연대는 에스겔서에서 가장 늦은 연대에 해당하는 '제 이십 칠년
정월 초 일 일' 즉 B.C. 570년 4월 26일이었다. 즉 두로가 바벧론에 항복한 직후에 쓰
여졌는데, 두로의 침공으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바벧론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 애
굽을 공격하고 노략하게 됨을 설명한다. 이처럼 본분은 연대상 후대에 속함으로 비평
학자들은 원래 이방 민족들을 향한 심판(25-32장)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후대에
삽입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전체의 논리적 순서를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실제로 에스겔이 이처럼 연대기적 순서를 무시하고 본 단
락을 앞 부분에 배치한 것은 심판에 대한 묘사에 이어 심판의 주체를 명기하려는 의도
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연대 순서를 조금 혼란시키더라도 애굽의 심판
의 확실성을 두로와 연관하여 완결짓기 위해 과감하게 본문을 앞 부분에 위치시킨 것
이다.
이제 본문의 주도적인 사상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두로를 공격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바벧론 군대가 적당한 보수를 받
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18-20절).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두로 성을 포위하고 여러 해
동안 최선을 다해 공격한 결과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두로의 부호들은 이
미 함락을 감지하고 자신들의 재산과 보물을 미리 다른 섬에 숨겨놓고 가족들도 피신
시켰다. 그 결과 바벧론은 아무런 전리품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B.C. 573
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벧론의 수고에 대해 보응하기를 원하셨다. 물론 바벧
론이 두로를 침공한 의도는 하나님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정복욕 때
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심판을 대행한 바벧론에 대해 애굽의
전리품을 풍부하게 맛보도록 배려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하나
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
는 분'(마 5:45)이시다.
(2) 하나님이 바벧론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자신의 주권을 온 천하에 계시하려는 의
도이다. 하나님은 결코 바벧론이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흥왕하도록 섭리하셔서 세계의 패권을 잡도록 하신다. 왜
냐하면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배척하는 국가들에 대한 심판을 분명하게 드러
내기 위함이다. 아울러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바벧론이 자신들의 포악함으로 인해 멸망
하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세계의 통치자가 오직 하나님뿐임을 더욱 극적으로 알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 자신임을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드
러냄으로써, 역사의 진행 방향이 오직 자신의 의도대로만 움직이고 있음을 거듭 밝히
려고 하신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고 고백했다. 그러므로 신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심치 말고 하나님의 뜻에 입각하여 살아갈 때 진정한 승리를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정해진 시기가 되면 회복시킬 것을 약속
하신다(21절). 지금 유다는 바벧론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힘과 권세가 완전히 꺾인 상
태이다(애 2:3). 그러나 하나님은 머지않은 장래에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하신다. 이러한 약속은 이미 여러 번 선포된 바 있다(34:2,24;37:15-17;시
132:7). 하나님은 세상 세력의 상징으로 언급되던 애굽을 멸하시는 반면 하나님의 백
성에 해당되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신다. 결국 하나님은 세상과 타협하여 범죄한 이스라
엘에 대해 이방을 도구로 사용하여 징계하신 후 새롭게 변화시켜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다. 이처럼 하나님은 택한 백성은 끝까지 구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출
34:6).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하나님은 피조물의 겸손을 잊어버리고 신의 위치에 도달하려고 바벧탑을 쌓는 자들을 멸망으로 인도하신다(창 11:1-9). (2) 인간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나 문명의 이기를 과대 평가하여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헛된 욕망을 버려야 한다. 어떤 사상과 제도나 기술을 가지고도 하나님 없는 상태에서는 만족과 평화를 얻을 수 없다. (3) 하나님은 은혜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가나한 심령을 기쁘게 여기시고 구원의 길을 허락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요 3:1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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