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
본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요단 동편의 마하나임에서 압살롬의 군대를 피하고 있을 때 기록된 듯하다(삼하 17:27-29).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 여기서 '부르짖음'(* , 리나티)은 '소리치다'를 뜻하는 동사 '라난'(*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런데 동사'라난'은 기쁨에 겨워 크게 소리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와 같은 몇몇 문맥에서는 죽음의 위협 등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게 울부짖는 것을 뜻하기도한다(17:1; 대하 6:19; 렘 7:16; 11:14, Rawlinson).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 '유의하소서'(* , 카솨브)는 '귀담아듣다' 혹은'귀기울이다'의 뜻으로서, 깊은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 응답하시기를 갈망하는 의미를 나타낸다(55:2; 대하 33:10; 잠 4:1, 렘 18:18). 그리고 '기도'(* , 테필라)는 '엎드려 간절히 구하다'를 뜻하는 동사 '팔랄'(*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약성경 중에서 자주 사용되며 기도의 간곡성을 강조하는 단어이다(왕상 8:28,38; 왕하 20:5).
=====61:2
내마음이 눌릴 대에 - 여기서 '눌릴'(* , 아타프)은 '상하다' 혹은 '약하다'의 뜻으로서 실신(失神)할 정도로 심신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73:26;142:3; 사 57:16; 애 2:11,12; 욘 2:7). 물론 다윗이 이같은 심신의 상태를 맞이하게된 것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한 근심 때문이었다.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 '땅 끝'은 구체적으로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갔던 요단 동편의 땅, 곧 마하나임을 말한다(1절). 물론 요단 동편의 땅은문자적 의미로서의 '땅 끝'은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인 시온(74:2)을 떠나 철저히 타의(他意)에 의해서 요단 동편으로건너갔기 때문에 그곳이 심정적으로는 '땅 끝'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문구는 안타까운 형편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윗의 간절한 간구임이 분명하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 '나보다 높은 바위'는 다윗이 대적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바위' 곧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전한 피난처 혹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킨다(18:2; 62:2,6,7). 따라서 이것은 다윗 스스로의 힘으로도달할 수 없는 '바위'이다. 왜냐하면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헤어나기 어려운 극한 환난 중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하나님께 그곳에로의 인도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61:3
본절 초두에는,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접속사 '키'(* )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2절) 마지막 문구의 이유에 해당됨을 밝혀준다.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 '탕대'(* , 마흐세)는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혹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인공적 구조물(構造物)을 뜻한다(창 35:21; 왕하 9:17). 그런데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구원'을 상징하기도 한다(삼하 22:51).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 즉 위기에서 구출하시는 분이 되신다는 뜻이다(잠 18:10).
=====61:4
본절에 대해서는 (1) 다윗이 도피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하나님께 경배하려는 것(Calvin), (2) 다윗이 도회 생활 중 머지않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에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Keil), (3) 다윗이 도피 생활 중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한 것(rawlinson, Kidner) 등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보여 주지만, 본 문맥에서는 세 번째 견해가 보다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한편,장막에 거하는 것에 관한 이미지는 광야 경험에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출 33:7-11;민 11:16,17).
주의 장막 -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 지는 곳, 혹은 교제 자체를 뜻한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희생 제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통하여 영적 교재를 이어갈수 있었다. 본 시편도 그러한 기도이다.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 닭이나 기타 새들이 날개를 펴서 그 새끼들을 비바람으로 부터 막아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신32:11; 마 23:37).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겠다는 다윗의 각오를 보여 준다(57:1; 91:4).
=====61:5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어서, 본절이 4절의 이유임을 말해 준다.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 여기서 '들으시고'(* , 솨마타)는 완료형이므로, 본 문구는 과거 시제로 번역해야 적절하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다윗의과거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awlinson). 한편 '서원'은 하나님께 대한조건부 약속의 형태로 언급되기도 한다(창 28:20 이하; 삿 11:30,31). 그러나 여기서는 보다 차원 높은 뜻으로 쓰였다. 즉, 이는 기대하는 바 은혜에 대한 조건부적인 약속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자신의 간구를 들으셨다고 확신한 상태에서의 자발적 헌신표시인 것이다(A.A.Anderson).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 하나님께서 다윗의 서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어주셨는지를 말해 준다. 추측컨대,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 의해 쫓겨다니던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과 동시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 곧 '가나안 땅'을 넘겨주신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처럼, 그 가나안 땅과거기에 대한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비록 일시적으로는 압살롬의 수중에 있지만 다시 다윗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 왕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력히 피력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61:6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 문자적으로는 '당신께서 왕의 날들 위에 날들을 더하사'의 뜻으로서, 다윗이 원수들로부터 보호를 받아 자신의 왕권이 계속 후대에 까지물려지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따라서 여기의 '왕'(* , 멜레크)은 직접적으로다윗 자신을 가리킨다(21:4). 그러나 다윗의 왕권은 그 후대에까지 물려질수 있도록하나님에 의해서 약속되었다는 점(왕상 1:30; 2:4)에서, 여기의 '왕'은 그 후대에까지계속 물려질 다윗가의 왕권을 뜻함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왕'은 다윗 왕권의실체 곧 원형인 메시야의 왕권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Calvin, Kidner).
=====61:7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게 하소서'로 번역한다(Weiser, NIV). 한편, 하나님 앞에 거한다는 것은 다윗 및 그 후손 중에서 나올 왕들이 신정(神政) 왕국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축복과은혜 가운데서 그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거하리니'(* , 야솨브)가 왕의 통치 행위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 동사(삼하 7:1; 왕상 1:35; 2:12;왕하 13:13)라는 사실은, 위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 '인자'(* , 헤세드)와 '진리'(* , 에메트)에 대해서는 57:3 주석을 참조하라. '예비하사'(* , 마나)는 '예비하다','지정하다' 혹은 '알리다' 등의 뜻이다. 여기서 다윗은 이러한 뜻의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인자와 진리'가 마치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수호 천사라도 되는 양 언급하고 있다(40:13; 잠 20:28). 아울러 그는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보호하시는데 필요한 수단을 얼마나 손쉽게 마련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기도했다(Calvin).
=====61:8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가 하나님께 나타내야 할 당연하고도 중요한 반응이다(59:17). 한편 '이름'에 대해서는 54:6 주석을 참조하라.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 앞 문구처럼,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과 7절에서 말하듯이 '하나님 앞에 거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물론 보다 확대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51:19; 54:6) 혹은 하나님을 보다 굳게 의지하는 것(52:9; 55:23) 등까지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기의 '서원'은 5절의'서원'과는 다르다. 즉, 5절의 '서원'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에 행한 것이지만, 여기의 '서원'은 다윗이 금번 압살롬에게 쫓기면서 하나님께 행했을 것이다. 다윗은 압샅롬에게 쫓기면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위험에서 구출하시고또한 자신의 왕권을 회복시켜주실 것으로 확신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를 구체적으로 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본시를 '개인적 비탄시' 혹은 6절을 근거로 하여 '제왕시'로 분류한
다. 그러나 60편과 마찬가지로 이를 보다 넓은 범주에서 '간구와 신앙의 시'로 분류해
도 무난할 것이다.
본 시편은 간결하면서도 간구(1, 2절), 확신(3, 4절), 서원(5, 8절), 소망(6, 7절)
그리고 감사와 찬양(8절) 등 시편의 주요 주제들을 짜임새있게 갖추고 있으며, '피난
처', '망대', '날개' 등의 시어(詩語)는 다윗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뛰어난 상
징어들이다. 큰 역경에 처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간구하는 것은 시편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티브이며, 이는 하나니을 사랑하고 의뢰하는 신앙의 표현이라 할 수 잇다
(20, 21, 27, 42, 43, 63편 등). 이 시는 2절의 '땅 끝에서부터'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포로의 노래로 이해되기는 하난, 일반적으로는 압살롬의 반역 당
시 다윗이 지은 것으로 본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하여 요단 동쪽의 마하나임에 머물어 잇었다. 다윗은 그 성(城)
에서 머물며, 백성들로부터 공물(貢物)을 받았기 때문에 물질적인 궁핍은 별로 겪지
않았던 것같다. 그러나 압살롬이 그의 피난처 근방에서 진(陳)을 치고 있었으므로 다
윗은 여전히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엇다(삼하 17:26). 더구나 다윗은 군사의
수효에 있어서도 압살롬에 비하여 열세(劣勢)였다. 압살롬이 자신의 공격 성공으로 다
윗을 체포할 경우, 자신의 왕권을 굳히기 위하여 아비인 다윗을 죽일 것이 분명하였
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햇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하여, 심지
어는 백주(白晝)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중에 아비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까지 한 자
(者)였다(삼하 16:21, 22). 게다가 탁월한 모사(謀事) 아히도벧까지 압살롬에게 가세
하였다(삼하 16:23). 이 일을 분기점으로 하여 압살롬의 승리는 시간 문제 정도로 여
겨지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은 더욱더 압살롬에게로 향하엿을 것이며,
다윗에 대한 동정심도 차츰 식어져 가고 잇었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여건은 다윗에게
불리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잇었다. 그것은 바
로 만군의 여호와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도우의 손길을 간구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당신의 구원 섭리를 능히 펼치실 수 잇으심
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본시는 구성상 크게 양분되며(1-5절, 6-8절), 각 부분은 보호를 위한 간구(1,
2절과 6, 7절)와 확신과 감사(3-5절과 8절)의 내용으로 각기 세분되어진다. 이러한 사
실을 염두에 두고 본문 내용을 보다 소상히 상고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본시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신앙인의 진지한 간구 자세가 돋보인다. 시인은 하
나님께 기도 응답을 간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1절). 이를 달리 이해하면 당시 시인
이 처한 환경이 너무도 곤고하고 위태로웠음을 뜻한다. 사실 사랑한던 아들로부터 배
신을 당하여 쫓기는 신세가 된 다윗이 당했을 마음 고생은 가위(可謂) 형용키 곤란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더구나 다윗은 요단 동편으로꺼지 피신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곳도 지정학적으로는 이스라엘 땅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방인들이 들끓고 잇었으
며(삼하 17:27) 다윗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했던 곳인 시온 곧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
어져 있었다. 다윗은 자신이 동족 곧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로부터 단절되엇다고 느꼈
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께 제사도 드릴 수 없었다. 아와같이 답답하고 안
타까운 심경이 '땅 끝에서부터'(2절)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아마 다윗은 죽음의 땅이
요 하나님과의 교제가 완전히 끊겨 있는 스올 곧 음부에 내려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
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죽음의 골짜기를 어서 빨리 벗어나기를 염원한다. 그러
면서 그는 그 골짜기를 빠져나와 높은 바위로 피하려고 한다(2절).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는 심히 기진 맥진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그 높은 바위로 올려주셔서 대적들의 탈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물론 이러한 간구는 하나님이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원수들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사실 하나님께 대한 분명
한 믿음에 근거한 기도라여 응답을 받을 수 있다(왕상 18:37, 38).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한 상태에서 서원을 이행하겠노라는 적극적 자
세를 보여준다. 앞에서 곤경에 처한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닉게 부르짖
은 시인은 이제 하나님이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다윗이 보여주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구원의 확신은 매우 차원 높은 수준이
다. 그는 단순히 현재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돠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며, 그의
영적 안목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고 있다. 과거에 보여주셨던
하나님이 구원 섭리와 언약들에 대한 믿음은 현재의 모든 환난 앞에서도 꿋꿋이 댕응
하게 했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영영히 거하리라고 하는 놀라운 신앙에로 연결되고 잇
는 것이다(4, 7절). 한편 다윗은 일찍기 사울의 왕좌를 물려받았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죽음과 동시에 이스라엘을 다윗의 통치 아래 두신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가께
서는 그 왕위를, 비록 다윗이 잘못을 범한다고 하더라도 빼앗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언
약하셨다(삼하 7:15). 만일 다윗이 이스라엘과 그왕권을 빼앗겼더라도, 그것은 일시적
일 수밖에 없었다. 인생과는 전혀 달리 일체 식언(食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바
민 23:19) 당신의 언약을 어겨가면서까지 다윗의 왕권을 영원히 빼앗지 아니하실 것은
분명하였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낙심치 아니할 수 잇었다. 그는 조금
만 참고 인내하면 하나님이 구원의 손을 뻗치시어, 압살롬에게 일시 넘어갔던 이스라
엘 땅과 왕권을 다시 자신에게 넘겨주실 것을 굳게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합
리적 판단으로는 도무지 낙관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언약에 근거하여 보이
지 아니하는 소망을 직접 보듯이 믿고 나아가는 자세야말로 신앙의 정도(政道)라 하겠
다. 그런데 다윗은 다시 자신을 보호하여 달라고 간구한다(7절). 이것은 다윗이 하나
님의 약속을 믿지 아니해서 였을까? 결코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약속을 굳게 믿었
지만, 그에게 닥친 곤경의 심각성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뢰심을 분명
히 드러내기 위하여 재차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1) 신자들은 인간적 방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소유할 때에 환난 중에서도 요동치 않을 수 잇으며(요 20:29), (2) 하나님으로부터 문제 해결의 약속을 바았다고 할지라도 기도를 통하여 약속이 구체화되게 끔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함(마 7:7)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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