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1-3절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강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확신이 너무도 강하여 어떠한 두려움도 그를 짓누를 수 없을 정도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 다윗은 여호와를 빛에다 비유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삼하 22:29에서는 하나님이 `흑암을 밝혀주는 등불'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흑암이 대적들의 위협과 그로 인한 수치를 상징한다면 `빛'(등블)은 이 모든 것을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한다(Craigie).
나의 구원이시니 - `빛'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구원'은 구체적으로 대적들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다윗은 이 질문으로써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수 없다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위협하던 대적들의 힘이 약하여서 그가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대적들의 수는 많고 그 힘은 매우 강하였다(3절).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신뢰하는 믿음안에서 이러한 확신을소유할 수 있었다.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 여기서 `능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오즈'(* )는 `피난하다'는 의미의 동사 `우즈'(* )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일반적으로 `안전한장소', `피난처'를 의미한다(18:2; 28:8; 31:21). 그런데 `마오즈'의 어근을 `아자즈'(* , 강하다)로 볼 때 `마오즈'는 개역 성경이나 대부분의 영역 성경처럼 `힘'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즈'가 본서에서 `피난처'또는 `거처'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으므로 본 구절에서도 `피난처'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 따라서 본 구절은 `내 생명의 피난처이시니'라고 번역되는 편이 좋다. 이와같이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생명의 피난처로 삼음으로써 강한 대적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37:39; 느 8:10; 렘 16:19; 나 1:7).
=====27:2
2, 3절은 다윗의 원수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에 기록된 동사의 시제들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2절은 과거의 승리를, 3절은 미래의 승리를 기룩한 것으로 볼수 있다(Cr aigie).
그리고 과거의 승리는 다윗에게 있어서 확신의 뚜렷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내 살을 먹으려고'라는 구절은 다윗이 그의 원수를 사나운 맹수에다 비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7:2; 17:12; 욥 19:22). 즉, 원수들은 사나운 맹수와 같이 그를 삼켜 버리려고 했었다는 것이다(B riggs, Kraus). 이와 달리 혹자는 이 표현을 원수의 `비방하는 말' 에 대한 비유라고 해석했으나(Craigie) 지금까지 진술 내용이 생명과 관련된 것이므로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왔다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라브'(* )는 `접근근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전투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으며 아마도 원수들이 다윗을 포위했거나 그를 잡을수 있는 위치에까지 접근했다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Calvin , Briggs). 한편,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저들이 패배했거나 또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Briggs). 이처럼 원수들은 다윗을 죽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였고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27:3
군대가 나를 대적혀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 `군대' 나 `진칠지라도'와 같은 단어에서 우리는 다윗을 위협하는 원수들의 많은 수와 그 세력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과거의 놀라운 체험에 근거해 앞으로 벌어질 어떠한 원수들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 원문에는 `한가지 일'(* , 아하트)이 맨 앞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본 구절에서 `한가지 일'이란 단어가 강조되어 있음을뜻한다(Briggs, Rawlinson). 그리고 `청하였던'이란 말은 완료 시제로서 다윗이 이 `한 가지 일'을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요구하여 왔음을 의미한다.
곧 그것을 구하리니 - 여기서 `구하리니'는 `청하였던'의 완료 시제와는 달리 미완료 시제이나, 따라서 이 두 단어를 연결시켜 해석하면, 다윗은 `한 가지일'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구하여 왔으며 아울러 앞으로도 이를 계속해서 구할 것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Delitzsch, Rawlinson).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끈질긴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Calvin).
내 성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 이는 다윗이 끈기있게 소원한 한 가지 일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생전에'란 `평생 동안에'를 의미한다. 그는 앞으로 생존할 모든 날 동안에 여호와의 집, 곧 성소에 거하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처럼 성소에 상주(常住)할 것을 소원 했다는 것은 아니며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겠다는 소원을 의미한다(Delitzsch, Lange, Calvin). 한편, 성소를 사모하는 다윗의 마음에서 현재 성소에 돌아올수 없는 그의 어려운 처지를 엿볼 수 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암'(* )은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 이 단어를 조금씩 달리 주석한다. (1) 혹자는 이를 영안으로바라 본 하나님의 `계시'에다 적용했으며(Delitzsch), (2) 또 어떤 학자는 공예배시 경건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에다 적용했으며(Briggs, Rawlinson)),(3) 다른 사람은 전쟁을 숭리로 이끌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시로 보았다(Craigie). 여 기에서 (3)의 견해는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윗의 앙망함은 평생 동안 지속되는것으로 전쟁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본 구절이 성전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아름다움'은 `계시'의 의미보다 성전 예배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 (2)의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 여기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르'(* )는 본래 `조사하다'(investigate), `숙고하다'는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열망은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충족될 수 있다.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 원문 서두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 )가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본절은 다윗이 한 가지 일(4절)을 청하였던 그 실제적인 이유롤 보여준다. 본구절은 물론 문자 그대로 환난 때에 다윗이 성소에 숨으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는 환난 날에 성소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시적으로 묘사한 것이다(Rawlinson, Calvin). 즉, 여기서 `초막' , `장막'이라는 말은 다윗과 함께하시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한다. 여기서 `초막'(草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코'(* )는 `덮다'는 의미의 동사 `사카크'(* )에서 파생한 명사형으로 이스라엘이 광야 시절에 나뭇가지로 엮어 지은 집을 말한다(레 23:42). 이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한다(Lange).
바위 위에 높이 두시 리로다 - `바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 )는 `거대한 산'을 의미하는 말이며 이는 여호와의 별명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18:2 주석을 참조하라. 이 바위는 사막의 모래밭과 같이 변형되지 않으며 어떠한 환난의 폭풍우가 몰아쳐도 언제든지 견고하다. 이는 곧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윗은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 안에서 안전히 거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27:6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 승리의 영광에 대한 시적 표현이다.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 `즐거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루아'(* )는 축제시에 부는 `나팔 소리'를 의미하는 단어로서(TWOT) 여기서는 축제의 기쁨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Kraus). 따라서 `즐거운 제사' 란 축제의 기쁨으로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로서 `감사의 제사'(107:22)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닌다(Delitzsch).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여기서 다윗은 대적에 대한 승리로 인한 축제의 기쁨을 노래와 찬송으로 나타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찬송 하리로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마르'(* )는 `악기를 연주하다'는 의미도 가진다(TWOT). 이로 보아 다윗은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27:7
본절은 다윗의 확신이 탄식으로 바뀌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 그 이유는 대적의 위험이 크게 증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12절).
하지만 이러한 탄식 가운데서도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고수하고있다(13,14절)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 이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보여준다(Calvin)
=====27:8
내 얼굴을 찾으라 - 이는 `나에게 호소하라' , `나를 신뢰하라', 또는 `나를 가까이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시적(詩的)표현이다. 아마도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신 4:29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는 말씀에서 찾았을 것이다(Rawlinson). 그리고 이 명령에 힘입어 다윗은 전심으로 간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내 마음이 주께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 환난날에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언약)을 따르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순종의 관점에서 다윗은 전심으로 기도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고 있다(Delitzsch).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 주의 얼굴을 숨긴다는 표현은 기도를 거절하신다는 것, 또는 진노하신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Kraus). 여호와는 다윗이 신뢰하는 유일한 분이시다. 때문에 만일 여호와께서 거절하신다면 다윗은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 이 구절은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여호와는 과거에도 다윗이 의지했던 유일한 대상이시요, 현재에도 그가 의지하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둘째, 여호와는 과거에 다윗을 구원하여 주셨다. 그리고 여호와는 불변하시는 분이시므로 과거의 구원의 하나님은 현재에도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이다.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 이는 문자 그대로 부모를 떠나 살았던 다윗의 개인적인 역사와 관계되는 구절은 아니다. 다윗은 여기서 다만 여호와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에 비교하여 그 탁월함을 표현하려 했을 뿐이다. 즉,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깊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의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Calvin, Lange).
=====27:11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 다윗은 지금 위기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자애로운 목자와 같이 자신을 언도해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고자 간구하였던 것이다(Delitzsch). 한편, 본 구절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본절 전체에서 `길' 이란 표현이 반복되었으며 다음 구절의동사가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 여기서 `평탄한 길'이란 꼬불꼬불하거나 울퉁불퉁하지 아니한 `곧은 길'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원수들이 숨어 기다리는 꼴짜기와 반대 개념으로 원수에 대한 염려없이 갈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따라서 다윗은 지금 원수들이 노리고 있는 험한 길에서 벗어나 어떠한 위협도 도사리고 있지 아니한 평탄한 길로 나아가기를 소원하고 있다(Rawlinson).
=====27:12
내 생명을 내 대적(對敵)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 )는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이나 `욕구',`갈망'을 의미하기도 한다(TWOT).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적의 욕구는 이어지는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함이니이다 - 여기서 `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스'(* )는 `폭력', `부당행위'를 의미하며 `극도의 미움'(25:19) 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악을 토하는 자'란 `잔인한 말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 또는 `극도의 증오심으로 저주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혹자는 `위중자와 악을 토하는 자'를 압살롬의 일당들이 다윗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거짓 증거하는 사건(삼하15:3) 에다 적용시켰다(Rawlinson).
=====27:13
내가 산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 이는 지금까지 다윗이 숱한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 받아 현재 지상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이러한 다윗의 강조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환난의 때인 지금 되새기기 위함이다.
여호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 이 문장은 귀결문이 생략된 일종의 감탄문 형태의 문장이다. 이를 직역하면, `내가 여호와의 은혜 블 것을 믿지 않았다면'이다. 따라서 이 문장에는 `내가 멸망하였을 뻔했도다'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Calvin, Rawlinso n). 그런데 다윗은 지금 생존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였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현재 환난의 때에 또다시 여호와를 굳게 의지함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27:14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바랄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와'(* )는`간절한 기대감으로 고대하다', 또는 `소망중에 기기다리'는 뜻이다. 이에 대해 25:3 주석을 참조하라. 혹자는 이 구절을 타인에 대한 다윗의 권고라고 주장하나(Calvin) 오히려 이는 약해진 자아에 대해 낙망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다윗 스스로의 말이다(Rawlinson).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강하고'는 원문상 명령형이며 `담대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아메츠'(* )는 히필형 단수 3인칭 동사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강하라,(그리하면) 그가 너의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가 된다(Calvin , Rawlinson). 그렇다면 이 구절은 자신이 강해지려고 힘쓰기만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대로될 것이라는 믿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이와같이 강해진 마음으로 끝까지 여호와를 바라볼 것을 스스로 권면하고 있다.
많은 전쟁을 통해 체득한 구원의 확신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는 본시에는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다윗의 신앙이 함축적으로 제시되
어 있다. 다윗은 평생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한의 전쟁터에서 보냈다. 이러한 정
황 속에서 다윗은 어떠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완벽하게 구출해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
를 절실하게 체험했다. 본시는 다윗이 겪은 다양한 전쟁 경험을 토대로 극악한 세력들
의 필연적 패배와 하나님 백성들의 궁극적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전반부(1-6절)에는
주로 모든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이 드러나고, 후반
부(7-14절)에는 현재 직면한 고통에 대한 호소와 미래의 승리에 대한 간구가 나타난
다. 다윗은 본 시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을 의지하는 자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본 시편에 관하여 어떤 학자들은 원래 독립된 두 개의 시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1) 앞 부분(1-6절)은 신뢰와 확신이 주도적으로 부가되는 데 비해 뒷 부분
(7-14절)은 탄식과 기도가 주로 드러난다는 점, (2) 앞 분분에서는 여호와께서 제삼자
적 관점에서 말씀하시지만 뒷 부분에서는 직접 의사를 전달하신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본 시편은 핵심 단어와 내용에 있어서 밀접한 내면적 통일성이 있으
므로 하나의 시편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또한 본 시편을 쓰게 된 다윗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다.
다윗이 아비새의 도움으로 블레셋의 거인 이스비브놉(삼하 21:15-17)으로부터 구출되
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는 견해도 있고, 압살롬의 난(亂)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다윗이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가 다시금 전세가 악화되는 시점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견해가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 다만 다윗이 무죄
하게 박해받고 고통당하는 상황에서(2, 12절). 여호와의 보호를 확신하며 지은 시임은
분명하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대단히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한편 본시는 일반적으로 '비탄시'로 알려져 있지만 '기도시'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
하다. 다윗은 본시에서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한탄하기보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의
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의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제 환난 가운데서도 식지 않은 정열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과 섭리적 인도를 노래
하고 있는 본시의 내용을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
다.
1.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27:1-6)
악인의 군대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에 대한 구원의 확신으
로 가득 차 있는 본 대목은 (1) 여호와에 대한 재발견(1절), (2) 두려움을 극복한 신
앙(2, 3절), (3)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한 안전의 획득(4-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대목은 환난을 배경으로 하여 저술되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윗의 담대한 용
기와 확신이 드러나 있다. 다윗은 초두에서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가 누구
를 무서워하리요'(1절)라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듯한 환
난의 시기에 이처럼 모든 두려움을 일축시켜 버리고 승리를 확신하는 다윗의 신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윗은 이러한 신앙을 통하여 극도의 위기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
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대해서 불평 대신
감사를, 의심 대신 확신을, 조급함 대신 신중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다윗의 용기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좀더 관심을 집중하여 보자.우리
는 먼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1절)라는 그의 신앙 고백에서 다윗
의 용기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다윗은 결코 이성(理
性)의 합리적 판단이나 열광적인 감정, 세상적 힘을 의존하지 않았고 오직 여갓의 주
관자이신 여호와만을 신뢰했다. 다윗은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인식했다. 그는 과거의 은혜로운 사
건의 체험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므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유
지할 수 있었다. 사실 다윗의 인생 여정을 회고해 보면 이러한 사실에 대해 더욱 분명
히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진 은허의 길을 걸어왔다. 어
린 시절에는 몸집이 크고 사나운 맹수들의 숱한 공격을 모두 물리칠 수 있었으며, 왕
이 된 이후에는 블레셋 대군을 비롯한 사방의 강한 대적들을 모조리 격파할 수 있었
다. 이 모든 승리는 다윗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
의 역사로 성취되었다. 다윗은 짧지 아니한 인생 행로에 수없이 개입하신 하나님의 구
원 역사들을 회상해 보면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극심한 환난을 극복하고 믿음과 평안
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용기의 첫 번째 비결이 과거에 체험한 하
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들을 기억하고 미래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는 신뢰
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고난에 처할 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운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현재의 고난만을 확대하여 생각함으로 낙망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다
윗은 과거의 은혜로운 사건들을 통해 현재의 환난을 재조명해 보고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3절).
다윗의 용기의 두 번째 비결은 순수한 신앙적 열정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는 성소
를 사모하는 열정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소원하는 순전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다
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하나님의 영광과 놀라운 계씨를 바라보
기를 소망했다. 바로 이와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열정 안에서 다윗은 어떠한
위기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함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는 거룩한 열정을 가
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모하는 하나님께서
초막과 장막 등 은밀한 곳에 피난처를 만드시고 보호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
다(5절). 더 나아가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도록 만드시고
즐거운 제사와 찬송을 허락하실 것을 믿었다(6절). 우리는 이상에서 삶의 진정한 용기
는 오직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열정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확신 속에서 가능
함을 알 수 있다.
2. 고통 속에서 드리는 간구와 미래의 확신(27:7-14)
다윗의 확신이 탄식으로 바뀌는 장면이면서도 동시에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이 드
러나고 있는 본 대목은 (1)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호소(7-12절) (2) 미래에 임할 구원
에 대한 소망(13, 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확신이 보다 다급해진 상호아에서 위기를 극복하
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은 앞 대목에서
고백한 다윗의 확신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 다윗이 정말로 승리를 확신하
지 못했다면 보다 악화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행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인내심의 한
계를 느끼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확신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통한 구원을 갈구하였
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여호와의 얼
굴을 전심으로 간구하였다(7절). 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환난 날에 여호와께 간구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식하고 실천했다(8절). 불신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기도
가 부질 없는 행위로 보이겠지만 사실 신자에게 있어서 기도의 행위는 환난 중에 하나
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행위이며 승리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볼 수 잇다. 우
리는 여기서 진정한 믿음은 환난의 때에 더욱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참된 믿음은 환난 속에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함으로 하늘로부터 임하는 새 힘과 위로
를 받고, 자신의 어려움을 능히 이겨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윗은 세상 속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진정한 신앙의 표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윗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서 참된 신앙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그의
기도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도에 대
한 의무를 깨닫고 간절히 부르짖었다(8절). 우리는 여기서 환난 날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한 가지는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잇다. 둘째, 그의 기
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속에서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
의 사랑을 능가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한다면 결코 멸망치 않을 것이
다. 다윗은 이러한 확신 속에서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다(10절). 셋째, 다윗은
자신의 생존을 통해 기도의 정당성을 깊이 자각했다(13절). 현재 살아있다고 하는 의
식은 다윗에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제공해 주었다. 다윗은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유지되는 신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다윗은 생명 자체의 경외와 감격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확신할 수 있었고, 이러한 영적인 시각하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엇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다. 그러난 다윗은 생사의 우기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통해 기도의 필요성을 절감햇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항상 하나님을 앙모하며 기도하였다. 그는 위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도 다윗을 본받아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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