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 여기서 `완전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탐'(* )은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에 따라 사는 의인의 순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18: 23). 그렇다고 이 말이 물론 하나님 앞에서 완전 무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윤리적으로 악한 일을 행하는 그의 원수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보다 완전한 그의 상태를 의미한다. 다윗이 여기서 이처럼 자신의 완전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현재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하나님께 강하게 호소하기 위함이다. 한편, 본시에서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을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고 있다(11절). 이로써 우리는 그가 교만한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Rawlinson).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 개역 성경에는 `요동치 아니함' 이 앞에 기록되어 있지만 맛소라 본문(MT)에서는 `의지하였사오니' 란 동사 뒤에 언급되었다. 이는 다윗이 여호와를 의지한 결과로 요동치않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TWOT).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본 구절은 여호와를 의지해온 결과로 다윗의 삶이 윤리.도덕적으로 요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요동하다'에 GO당하는 히브리어 `마아드'(* )는 본래 `실족하다' , `떨다'는 뜻이며 이 문맥에서는 부정사 `로'(* , 아니)와 함께 사용되어 `범죄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7:31). 그리고 `의지하였사오니'란 동사가 완료형의 의미로 사용되어 `요동치 아니하고' 란 동사보다 선행(先行)된 사건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본 구절을 직역하면, `내가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범죄치 아니하였사오니'란 의미로 해석된다.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다윗이 여호와의 공의의 판단을 구하는 기도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7:8주석을 참조하라.
=====26:2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단련 하소서 - 여기에 언급된 히브브리어 세 동사, `바한'(* ,살피시고), `나사'(* , 시험하사), `차라프'(* ,단련하소서)를 구분하자면, `나사'는 `사람이나 물건의 질을 시험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차라프'는 불로써 귀금속올 녹여 찌꺼기를 분리해 낸다는 의미이며(66:10), `바한'은 본성을 알기 위해 시험한다는 의미이다(11:5; 17:3). 이중 `차라프'가 분석적인 의미로서는 가장 강한 의미를 가지지만, 이 세 단어 모두 단지 겉만을 시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전히 분석하고 분해하여 그 속의 본질을 알아낸다고 하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절에서는 다윗이 자신의 `완전함'이 정말로 그러한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시험해 보시도록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낸 것은 아니며 그를 모함한 원수들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완전한 자신의 상태를 호소한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자발적으로' 그의 완전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악한 원수들로부터 누명을 받고 있는데 대한 대응으로 이와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Calvin).
=====26:3
여기서 다윗은 그의 완전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 `주의 인자하심'(* , 헤세드)이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뜻한다. 그는 삶 가운데서 항상 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기억하며 간직하여 온 것이다(Rawlinson). 따라서 다윗의 `완전함'은 철저히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 `진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 )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되는 단어이다(119:142, 151; 단 10:21). 다윗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그의 삶의 기준으로 삼아온 것이다(Delitzsch).
=====26:4
다윗의 완전함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신앙적 처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허망(虛妄)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 본 구절은 1:1을 기억나게 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허망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웨'(* )는 `공허' , `허무'를 뜻하는 용어로서, `허망한 사람' 이란 그 마음과 행위가 가치없는 자를 의미한다.이러한 자의 영적 상태는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으며 사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Del itzsch).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4:4 주석을 참조하라. 다윗은 비록 그에게 해(害)가 돌아온다 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 입각하여 이러한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 `간사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알라밈'(* )은 `숨겨지다'는 의미의 동사 `알람'(* ) 에서 파생된 명사로 진리의 탈을 쓴 위선자를 의미한다(TWOT, Delitzsch). 이들은 거짓과 허위를 일삼는다(12:2). 그러나 다윗은 저들의 위선을 따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행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는 완료 시제(`앉지 아니하였사오니')와 미완료 시제(`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가 함께 사용되었다. 이러한 시쟤의 변화는 다윗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시간 중에 그의 완전함을 지켰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Kraus).
=====26:5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 예배를 위한 `회중'(12절)과 대조적이다. 악인들은 모여서 죄악을 도모하므로 다윗이 이 `집회' 를 미워한다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여호와께 예배 드리고자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을 그가 간절히 사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 4절에서와 같이 완료시제와 미완료시제가 함께 어울려 있다. `악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솨'(* )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종류의 악인들을 다 포함하는 말인 듯하다(Rawlinson). 이에 대해서는 1:1 주석을 참조하라.
=====26:6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 `손을 씻고'라는 말은 제사를 드리기 전에 행하는 결례(缺禮)를 의미한다(출 40:31; 신 21:6, 7). 그런데 이 구절에서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다만 형식적으로만 이 결례를 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무죄하므로'란 말이 바로 이와 같은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있다. 즉, 다윗은 위선자들처럼 형식적으로만 결례를 행하지 않았으며 정결한 삶을 유지하면서('무죄하므로' )행하였다(Calvin).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 이 표현은 의미상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 주위에서 여러의식을 행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Briggs, Calvin).
=====26:7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 `감사의 소리'란 감사의 찬송을 뜻한다. 그는 성진 예배를 그저 형식적으로 드리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함께 드린 것이다(Calv- in).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기적들, 특히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 위대한 일들을 선포한다는 내용이다. 찬송시의 경우 대부분 이 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들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다윗도 그러한 시의 형식을 빌어하나님의 기적들을 선포하고자 했을 것이다.
=====26:8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 본 구절은 성전에 대한 다윗의 남다른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집' 과 `거하는 곳' 은 평행 대구를 이루며, 서로 같은 의미로 성전을 가리킨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며 그의 영광이 거하기 때문에 그는 성진을 사랑하였다. 즉,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이 보이는 성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결례를 행하고, 감사의 찬송을 드리고, 주의 기사(奇士)를 선포하는 등 성전 안에서의 그의 모든 행위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26: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 위에서 다윗은자신의 완전함을 주장하였다. 즉, 지금까지 그는 신앙적으로 완전한 길, 곧 악인들이나 위선자들의 형식적인 종교적 행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만일 그가 악인들과 함께 형벌에 처해진다면 이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진리에 입각해 그는 매우 담대히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거둔다'(* , 아사프)는 말은 형벌하기 위해 추수한다는 뜻을 가진다(욥 5:5; 사 16:9; 렘 5:17; 51:33; 호 6:11; 욥 3:13).
=====26:10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 여기서 다윗은 악인의 특성을 거론하며 하나님께 그들을 고발하고 있다. 여기서 `악특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짐마'(* )는 `악한 계획' 또는 `책략'을 의미하는 말이다. 인간은 이것으로 바벧탑을 세우려 하였고(창1 1:6), 거짓 증인은 이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며(신 19:19), 사악한 자는 이것으로 의인을 해하려 한다(31:13; 37:12). 실제로 계획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는 것이나 다윗이 고발하는 죄인들은그 계획을 수행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례게 묘사했을 것이다(Calvin).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 저들은 탐욕으로 인해 악한 자를 풀어주고 의로운 자를 정죄한다(15:5; 사 1:23; 렘 22:17; 겔 22:12; 미 3:11, Rawlinson). 다윗은 이러한 자들과 같은 운명에 처해지는 것을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26:12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 이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다윗의 확신을 가리킨다 여기서 `평한한 데 섰다'는 말은 `넘어지다' , `그물에 걸리다', `미끄러지다'는 말과 대조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말미암아 안전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31: 8; 40:2; 56:13; 66:9; 121:3).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 혹자는 `회중'을 찬양대라고 보았으나(Briggs), 이는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을 의미하는 말이다(Kraus, Calvin, Rawlins on). 또한 `송축하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 )는 단지 `감사하다'는 의미(Briggs)가 아니라 `..에게 선포하다', `알게다'는 뜻으로(Kraus,Calvin)예배하기 위해 모인 회중들에게 여호와의 기이한 일을 알게 하고 그의 위대하심을 선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윗은 이와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을 그의 사명으로 이해하였다(22:22,25; 27:6; 35:18; 40:9,10).
본시는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는 다윗이 자신의 무죄성을 입증하고 위선자들의 심판
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을 단언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과 구원을 요구한다. 전반부(1-5절)에는 주로 죄인과 달리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
한 자신의 온전함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들어있고, 후반부(6-12절)에는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는 기쁨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본 시편은
25편과 여러가지로 유사하지만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전무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시인이 절대적으로 결백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타락한 세상 속으로 상대적으로 진실
한 신앙 양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을 부가시켜 준다. 다윗은 본시에서 부정과 부패
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도 말씀을 따라 의로운 길으 가는 성도의 의연한 자세를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세련되게 묘사하고 있다.
본시를 쓸 당시 다윗의 역사적 상황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본시
에 묘사된 적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을 지시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들은 부귀 영화(富貴榮華)를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배반할 정도로
간사하였으며(4절) 뇌물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모사(謀事)들이었다(10절;삼하
15:6). 다윗은 이처럼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대적들과 하나님께 순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다. 그느 현재 자신에게 부과
된 억울한 누명에 대해 해명하여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다윗은
원수들의 간악함과 비교하여 상대적 관점에서 무죄함과 완전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윗
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고 진실
하게 수행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인정과 보답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였다(7:9;렘 11:20;
롬 8:27;살전 2:4).
한편 본시를 '비탄시'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지만 내용을 상고해 볼 때 자신의 무죄
함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는 '기도시'(song of prayer)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다윗은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호소로 본시를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고 있다.
다윗의 영적 순결에 대한 주장과 하나님의 판결에 대한 요청이 드러나고 있는 본시
는 내용에 입각해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각각의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고찰함으로써 더욱 심층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 여호와의 판단에 대한 호소(26:1-5)
다윗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여호와의 공의로운 판단을 간구하는 장면인 본 대목은
(1) 자신의 실상(實狀)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촉구(1, 2절), (2)자신의 순전함에 대한
구체적 예증(3-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직면하고 잇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그속에서 다윗이 온전히
행했다는 실제적 의미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4, 5절은 당시 사회
를 구성하고 있던 다양한 종류의 사라들을 소개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을 알려준다.
그 당시 사회는 허망한 자들(마음과 행위에 있어서 가치없는 자들)과 간사한 자들(진
리의 탈을 쓴 위선자), 그리고 악을 도모하는 행악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부
패한 사회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단호한 결단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시대 정신
에 타협하지 않고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가다의
양심과 가치관을 견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가득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는 불
가능하다. 철저한 자기 부인이 선행된 사람만이 일관성 있는 삶의 방식을 소유할 수
있다. 다윗은 총체적으로 타락한 사회 속에서도 끝까지 세상 풍조를 거부하면서 진리
를 따라 살았다. 그 결과 다윗은 많은 악인들로부터 모함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고난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3-5
절). 그는 세상과 타협함으로 얻어지느 세상적인 이익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순조함으
로(3절) 얻는 신령한 유익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물론 다윗도 억울한 누명을 받고 있
는 현실에 대해억울한 감정이 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무고하게 고통당하는 상
황에 대해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대처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삶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는 신앙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인간들이 제아무
리 자기를 죽이려고 모함한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재판장이 하늘에서 자신을 정확히 판
단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하늘의 재판장으로서 선악간에 공
정하게 판단하는 분이시다. 만약 우리가 여호와로부터 옳다 인정하심을 받기만 한다면
세상의 평가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윗은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에게 임한 고
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러한 자신의 신앙에 대해 상대적 관점에서 완전하다고 주장한다(1
절). 다윗은 세상적인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끝까지 고수하였고, 가치
없는 인간의 뜻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하나님
께서 자신을 판단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며,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한 것이다. 다윗은 결
코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며 오직 불경건한 무리들처럼 하나님을 반
역하지 않고 진리를 고수하겠다는 결의를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신앙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활 속에 적용하는, 행동하는 믿
음의 모델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존귀와 영광으로 보상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마 5:10-12).
2.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간구(26:6-12)
거룩한 의식을 통해 참된 기쁨을 누리는 다윗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는 본 대목은
(1) 종교 생활에 있어서의 완전(6-8절), (2)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구원 호소와 서
원(9-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다윗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 의식의 진실성과 완전성을 주장한다. 다윗은
대적들과 달리 주의 영광이 거하는 성소를 사랑하며 영적 순결을 견지했다. 그느 형식
적인 예배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경건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정결례를 행하였으며
(6절)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서 예배를 드렸다(7절). 또한 주의 성소를 사
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의식들을 행하였다(8절).다윗은 이처럼 항상 참마음으로 하나님
을 사랑하며 가까이한 경건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
력이 상반되지 않았다. 다윗은 악인들처럼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하여 거룩함을 가
장하는 위선자가 아니었으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도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이와같이 다윗의 신앙 행위가 진실되고 진진한 것이었으므로 모든 면에
있어서 구별된 삶이 가능하였으며, 그의 거룩한 삶은 공정한 왕국의 통치로 연결되었
다. 우리는 이상에서 신앙과 삶이 철저하게 일치되어 있는 다윗의 경건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다윗은 행동하는 신앙의 소유자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경건은 바로
이처럼 신앙과 생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삶이다. 다윗의 경우에는 성소 내에서의 진
실된 예배로 발전되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경건은, 교회 내에서의
신앙 행위와 세상 속에서의 삶이 서로 연결되고 일치하는, 진정한 신앙 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참된 경건을 주장한 후에, 이어서 여호와의 구원을 간구한다(9-12
절). 물론 다윗이 자신의 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보장받을 수 잇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완전암에 거한 자신이 불의 한 자가 당해야 할 비참한 운명에 함
께 처해진다는 사실은 결코 하나님의 공평한 처사가 아니라고 호소하는 것이다(9절).
이와 같은 호소는 참으로 논리 정연하다. 어찌 악한 책략을 도모하고 뇌물을 탐하는
자와 완전함에 행하는 자가 같은 운명에 처해질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의 불변사심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는 불변하므로 경건한 삶
을 살아가는 사람이 결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수 없는 것이다. 다윗은 이가 같은 믿
음을 가지고 다시금 완전한 삶을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였고(11절). 아울러 자신의 구
원을 확신하였다(12절). 불변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완전한 믿음과
생활의 사람, 곧 참된 경건의 사람은 반드시 멸망으로부터 구출되며 승리하게 될 것이
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후 회중들에게 여호와의 기이한 일(자신을 구원하는 일)과 그의 영광을 선포하겠다는 서원을 드린다(12절). 이 같은 기도는 다윗의 성숙한 신앙의 표출임과 동시에 겸손의 징표이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타인과의 비교적 관점에서 완전하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절감하고 있다.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은 오직 여호와의 긍휼하심(11절)과 은총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진 것임을 깊이 인식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신앙과 겸손을 통해서 신앙인의 올바른 삶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배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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