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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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 `권능 있는 자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네엘림'(* )으로 이를 직역하면, `,...신들의 아들들'이다. 이에 대해 많은 자들은 서로 견해가 다르다. (1) 천사들(Delitzsch, Craigie, Kidner, Hengstenberg, Cheyne, Rosenmuller, Anderson). (2) 이방인들(Michaelis, Doderlein, Kay). 이 견해는 `엘림'(* )이 `이방 신'의 의미로 사용된 용례들(95:3; 96:4; 출 15:11; 18:11)에 근거한다. (3) 통치자들(Calvin, 유대 랍비들). 이 견해 중 어느 하나를 택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 견해들 모두는 성경적인 용례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오묘한 사역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정확히 살필 수 있는 존재는 그중에서 천사라고 설명한 델리취(Delitzsch) 의 논리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그 어떠한 것이든 본 구절은 평범한 인생들 뿐만 아니라 권세있는 자들까지도 하나님께 경배드려야 한다는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 본 구절을 직역하면, `그의 이름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라'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를 보여 주는 계시의 한 방편이며 그의 말씀과 사역 중에 주어졌다. 본절은 바로 그 이름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의미이다(Kidner).
거룩한 옷을 입고 - `거룩한 옷'이란 축제 때에 제사장들(또는 악사들)이 여호와께 경배하기 위해 입는 특별한 옷(대하 20:21)을 의미한다(Lange, Delitzsch). 이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먼저 그 앞에서 거룩해야 한다는 예배의 원리를 강조한 시적(詩的) 표현이다(Craigie).

=====29: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 `여호와의 소리'란 뇌성에 대한 다윗의 독특한표현이다. 즉, 그는 뇌성 가운데서 하늘의 변화를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직감하고 이를 `여호와의 소리'로 표현한 깃이다. 일반적으로 뇌성은 하나님의 진노(18:1 3)로 이해되나,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다윗은 이를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의 차원에서 바라본 것이다. 한편, 여기서 `물'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의미한다(Deli- tzsch, Rawlinson).

=====29:4
여호와의 소리가 힘있음이여...위험차도다 - 이는 뇌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묘사한 것으로 뇌성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Rawlinson, Delitzsch).

=====29: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 드디어 뇌성과 함께 벼락이 떨어져 레바논의 백향목이 꺽여졌다(18:14). `백향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레즈'(* )는 `견고함'이란 의미로 이는 백향목의 특성인 내구성(耐久性)을 암시한다. 이 나무는 대단히 강한 나무로서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으며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향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나무는 견고성과 향기로 인해 솔로몬의 성전에 사용되었다. 이나무의 주산지는 팔레스틴 북부의 레바논 산악지역이다. 본 구절에서 다윗은 백향목까지도 꺽으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하고 이를 찬송하고 있다. 한편 레바논의 백향목은 교만한 자, 거만한 자(사 2:13), 또는 흥왕하는 자(92:13; 104:16)를 상징한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단순히 자연 현상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온 권세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Kraus). 즉, 본절은 권세있는 교만한 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하에 멸망당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29: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 여기서 다윗은 뇌성과 함께 몰아닥친 폭풍우로 인해 산이 마치 지진으로 흔들리는 것과 갈이 요동하는 듯한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Delitzsch).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 `시룐'은 헤르몬 산의 다른 명칭이다(신 3:9). 레바논 산은 갈릴리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헤르몬 산은 레바논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산들은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이며, 이 산들이 들 송아지 같이 뛰었다는 표현은 하나의 과장법으로서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29: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火焰)을 가르시도다 - 이는 벼락에 대한 시적 표현이다(18:8 ) `화염'은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언급되는 용어로서 여기서도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29:8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 가데스는 에돔 서쪽에 위치한 오아시스지역으로 시내 산 북쪽에 위치해 있다. 레바논에서 가데스를 연결하면 팔레스틴 전역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본 구절은 5,6절과 함께 하나님의 소리가 팔레스틴 전역에 걸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Rawlinson).

=====29:9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 `낙태케 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훌'(* ) 은 `진통을 일으키다', `새끼를 낳다'는 뜻이다. 이에 근거해서 혹자는 뇌성으로 놀란 암사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몸의 일부에 경련을 일으키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Delitzsch). 그런데 본 구절에서는 암사슴들이 뇌성에 놀라 분만 예정일보다 빨리 새끼를 낳았다는 의미가 문장 구조상 더 적합하다. 이런 표현은 그 뇌성이얼마나 컸던가를 잘 반영해 준다.
살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 이는 폭풍우로 인해 나뭇잎과 가지들이 꺾이며 심지어 나무들이 뿌리 채 뽑힌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Rawlinson).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 여기서 `전'(* , 헤칼)이 구체적으로 어느 것을 의미 하는가에 대해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1) 하늘의 성전이라고 주장하며(Delitzsch, Kraus), (2) 혹자는 지상의 성전 이라고주장한다(Kidner). 이 둘 중 어느 하나만을 주장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본시 자체가 계속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을 하늘의 성전과 지상의 성전 모든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Rawlinson).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이란 하늘의 천사들과 모든 성도들을 의미할 것이다(Calvin, Bri- ggs).

=====29:10
여호와께서 흥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 여기서 `홍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불'( * )은 창세기 6-11장의 노아 홍수 사건에 유일하게 사용된 용어이다. 따라서 이 홍수는 직접적으로 노아의 홍수를 가리키며, 상징적로는 악인들에게 형벌을 내리시고 의인들을 구원하시는 심판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좌정하셨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세상의 왕으로 임하셨다는 의미로(Delitzsch, Hengstenberg, Kay),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암시한다.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 여호와는 노아 시대뿐 아니라 영영토룩 온 세상의 왕이시다. 그리고 이 표현은 단순히 왕으로서 권위만 지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왕권을 행사하심을 뜻한다.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 홍수는 악인들에게는 형벌이지만, 의인들에게는 구원이다. 하나님은 홍수(심판)로 악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의인들에게 진정한 평강을 허락해 주신다. 여기서 `힘'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의인들이 그 심판을 벗어날 수있는 용기와 소망을 의미한다. 또한 이 힘은 환난과 핍박 중에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베풀어지는 하늘의 능력을 상징하기도 한다(Calvin, Rawlinson).
평강의 복 - 델리취(Delitzsch)는 그의 주석에서 이 말을 가리켜 `전 시편 위에 드리위진 무지개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다윗은 홍수 이후의 무지개와 같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이후에 있게 될 선택된 백성들의 영원한 복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앞의 일련의 시들이(25-28편) 다분히 비탄조인 반면에, 본시와 30편은 하나님의  구
원 사역과 영광에 대해 감사 찬송드리는 내용이다. 또한 본시는 그 소재를 웅장한  자
연 현상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19편과도 일맥 상통한다. 본시의 중심  시어(詩語)
는 일곱 번이나 거듭되는 '여호와의 소리'이다. 이 소리는 산천을 울리는 뇌성 가운데
서 자연과 인생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형상화시킨 시적 이미지라고 볼 수  있
다.
  혹자는 어투나 이미지 등의 유사성을 들면서 이 시가 고대 가나안의 시를 모방한 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추측에 불과한다. 굳히 가난안 시와으이 유사성
을 고려한다면, 본 시편의 기자는 오히려 가나안의 주신(主神)인 바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탁월하신 신(神)인 여호와의 권능과 영광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겠다.
  전반적으로 볼 때, 본시의 초점은 우주 삼라 만상과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
치에 맞춰져 있다. 특히 '뇌성'(3절)이 암시하는 은유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시편은
여호와의 계시와 승리케 하시는 권느에 접한 성도들에게 걍건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
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대적들을 무찌르시는 여호와의 권능에  대한  경외심은  소위
'모세의 노래'(출 15:2, 3)와 '드보라의 노래'(삿 5:4, 5, 19-21)를 연상시킨다.
  한편 본시의 작시 배경에 대해서는, (1)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과 같은 환난에서  건
짐받은 후라는 견해, 혹은 (2) 심각한 질병에서 치유된 후에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여
광을 찬송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견해들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그리고 본문은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서두(1, 2절)와 말미(10, 11절)는  하
나님의 왕권을 찬양하는 내용이고,중간 부분(3-9절)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과  능력을
탁월한 시적 묘사로 찬미하는 내용이다.이제 이러한 본문 내영을 보다 자세히  상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시인은 여호와를 경배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자연계에서는 때로 크고 놀
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그 가운데는 기상의 변화롤 말미암아 홍수나 벼락등의  엄청난
파괴력으로써 인생들을 놀라게 하는 예도 있다. 이때 인생들은 자연의 위력 앞에 떨며
심지어는 자연의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기까지 한다. 한편 그동 지방의 고대인들은  굉
장한 힘으로 지상의 물질들을 파괴시키는 기상 변화(뇌성, 폭풍우, 번개  등)에  놀라
기상의 자연신들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실제 존재하지도 아니하는 자연의  신들이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키며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신봉(信奉)하였다. 하나
님게 대한 무지로 인하여 저들은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러한 미신적인 고대 신앙이 이방인들은 물론이요  계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다(호 1-3장).
  하지만 이러한 전체적인 분위기 가운데서도 다윗은 그 모든 기상의 변화가 하나님에
의해 주관된다는 분명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느 가증한 미지(未知)의 신들에
게 보내었던 영광과 능력을 모두 여호와께 돌리라고 강권하고 있는 것이다(1절). 물론
그는 틀림없이 성령의 감동 안에서 이 귀중한 진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의 감동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자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는
이 진리 안에서 몽매(夢寐)한 이교도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기상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었으며(3-9절),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고대
인들의 두려움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원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11절).
  또한 다윗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도 예외가 없다고 말한다(1
절). 거대한 자연 만물도 여호와의 권능 앞에서 순순히 굴복하고 떨거늘 그 어떠한 존
재가 그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있겠느냐고 다윗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
의 천사들이든 지상의 권세자들이든 그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백
향목이 부러지듯(5절) 그들은 하나님의 치심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 권위와 무한한 영광을 돌리는 다윗의 충성을 볼 수 있다.  이러
한 충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지극히 작게 여긴 겸손의 산물이었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인생들이 여호와를 경배하기 전에 먼저 '거룩한 옷'을 입으라고
권면한다(2절). 이것이 인생에게 필요한 까닭은 하나님의 거룩성에 기인한다. 즉,  하
나님게서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를 경배하고 자 하는 자는  거룩함을    옷입어야
하는 것이다. 이 '거룩한 옷'은 오늘날 예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상징한다(롬
13:!4). 아무튼 다윗은 이 '거룩한 옷'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성과
인간의 부패성을 동시에 말하였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윗의 중요한 사상을 엿볼  수  있
다. (1)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요, (2) 어떠한 인단도 자기의    본래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러한 자가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
을 침범하는 신성 모독최를 범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명백
한 구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에게 하나님을  경배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으니 이는 곧 특별 은혜인 것이다.
  둘째, 시인은 여호와의 권능을 뚜렷이 부가시키고 있다. 본문에서 탁월한 시적 표현
으로 묘사한 하나님의 권느의 모습은 실제로 하나님이 폭풍우를 팔레스틴  전역(全域)
에 몰아치신 때의 장엄한 광경을 연상시킨다. 그때에 먼저 구름 가운데  굉음(轟音)의
뇌성이 울려퍼졌다. 이 소리는 여호와의 위엄있는 소리로 다윗의 귀에 들려졌다(3,  4
절), 폭풍우는 단지 뇌성에 그치지 않고 번개와 폭풍을 동반하였다. 그때에 견고한 레
바논의 백향목이 두 동강이 났으며(5절), 레바논 산과 시룐, 곧 헤르몬 산이 마치  송
아지 같이 날뛰는 듯하였다(6절).
  다윗은 이 같은 묘사를 통해 거대한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권능 앞에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이 폭풍우에 힘없이    꺾여버렸
다는 묘사는 단순히 자연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권만을 나타냈다기보다느  교만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여기서 레바논의  백
향목이란 교만한 권세자들을 상징하는 표현으로서(5절) 이러한 자들은 잠시 세상의 낙
(樂)을 누리나 반드시 하난미의 심판으로 멸망당하고 만다는 역사적 진리를 가르쳐 주
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폭풍우는 유다 남쪽의  가데스  광야에까지
미치었다(8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자연에 대한 통치가 팔레스틴 전역에 걸쳐 시
행되었음을 말해 주는데 다윗 당시에는 팔레스틴 전역이 전 세계로 이해되었으므로 이
는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민족, 모
든 나라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데스 광야에 살
고있는 암사슴이 뇌성에 놀라 이리저리 피하다가 경련을 일으키듯이(9절)  그  어떠한
인생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 놀라며 떨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모든 자에게 단지 놀람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
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
운 권능이 성도들에게는 힘과 평강의 축복이 된다는 사실이다(11절).  여기서  다윗은
거룩한 성도를 위해 놀라운 권능을 베푸신 하나님의 중요한 한 사건을 기억한다. 그것
은 노아의 홍수였다(10절). 그때에 하나님은 강포한 백성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땅  위
에 홍수를 쏟아부으셨다(창 7장). 이 홍수는 악인들에 대한 최종적    심판이자  무서운
형벌이었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일곱 식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심판이나 형벌이  아니
었다. 반면에, 그것은 그들을 죄아과 고난의 세상에서 건지셔서 새로운 세상으로 옮기
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에 세상에 대한 왕으로서  홍수를
내리신 그 하나님께서 당시 팔레스틴 전역에 폭풍우를 내리고 계신다고 다윗은 믿었던 것이다. 다윗은 이 폭풍우를 통해 과거에 노아의 식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생각했으며 아울러 영원토록 온 세상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그의 은총을 확신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지니를 한 가지 배울 수 잇다. 곧, 하나님이  놀라운  권능은
교만한 자에 대해서는 심판으로 나타나지만 거룩한 성도들에 대해서는 구원과  평강의 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진리를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팔레스틴  전역에 몰아치는 폭풍우를 바라보며 두려워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따사로운 품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뇌성'을 의미하는 '여호와의 소리'가 모두 일곱 번 반복되어  잇는
데(3-9절), 이는 계시록의 '일곱 우뢰'(계10:3)를 연상시킨다. 이로써 하나님의  권능
은 구약 시대난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전 시대를 통틀어 동일하게 자연과  역사  속에 행하여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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