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본절은 여호와께 대한 찬송과 찬송의 이유를 밝히고 있는 구절로서 본시 전체 내용의 주제가 된다.
내가 주를 높잎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 여기에서 `끌어내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라'(* )는 `우물에서 끌어내다'(출2:16, 19; 잠 20:5)는 뜻으로 다윗이 우물과 같은 깊은 곤경에 처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내 대적 - 혹자는 이를 `국내외의 모든 원수들'로 이해하였으나 문맥을 무시한 해석이다(Calvin).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다음절과 연결시켜 `대적'이란 다윗을 죽음의 위기에까지 몰고간 `중병'(重病)이라고 주장한다(Delitzsch, Lange). 그러나 본절의 동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와 연결시켜 볼 때 `중병'이란 견해 역시 타당치 않다. 아마 `대적'은 다윗이 잘못되는 깃을 기뻐하는 사람들일 깃이다.
=====30:2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 다윗은 `부르짖으매' 라는 말을 사용함로서 자신의 질병이 단순한 의술로써 회복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회복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Craigie). 그의 병이 의술로는 고치기 매우 힘든 상태였다는 증거가 3절에 나타나 있다. 이처럼 고치기 힘든 중병에서 기적적으로 일어났으니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30:3
내 영혼을 음부(陰部)에서 끌어내어 - 이는 곧 죽음에서 건지셨다는 의미이다. 구약에서 죽음은 음부, 곧 `쉐올'(* )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 되었다. 이 `쉐올'은 무의식 상태로 있는 `지하의 세계'(underworld)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6:5 주석을 참조하라.
무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르'(* )는 `쉐올'의 동의어이다(28:1 주석 참조).
=====30:4
본절은 자신의 하나넘께 대한 찬송에 함께할 것을 다윗이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장면이다.
주의 성도들아 - `성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시딤'(* )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 또는 불변의 사랑, 끊임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헤세드'(* )에서 파생되었다. 이 용어는 (1) 하나님의 불변하신 사랑을 입은 자, (2) 하나님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자 등의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TWOT). 이 용어에 대해서는 9:3 주석을 참조하라.
그 거룩한 이이름에 감사할지어다 -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케르'(* )는 문자적으로 `기념물'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용어는 `이름'의 뜻으로도 종종 사용되었다(출3:15).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나타내는 것들이며 또한 그의 거룩성을 기념하는 것들이다(Delitzsch).
=====30:5
그 노염(怒焰)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 `노염'이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며, `은총'이란 하나님의 자비하신 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나 인간의 통회함을 보시고 그 분노를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여기서 다윗이 증거하고자 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나 그 분노를 오래 끌지 않으신다는 것, 그리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즉시 도말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은혜로운 진리이다. 한편, `평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임'(* ) `생명'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대구법이 사용된 구문임을 고려해 볼 때 이 해석은 어울리지 않는다. 즉, `잠간'의 대조적인 개념은 `생명'이 아니라 `평생'인 것이다(Lange).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寄宿) 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 울음은 고통과 환난에 대한 상징이요 기쁨은 구원과 승리에 대한 상징이다. 이 구절은 성도에게 있어서 고통이나 환난은 단지 지나가 버리고 잊혀지고 마는 하나의 짧은 과정임을 말하고 있다. 반면, 깊은 밤이 지나면 곧이어 아침이 오듯이 성도의 구원과 승리는 고난에 바로 뒤이어 따라온다(욥 33:26; 사 26:20; 54:7). 다윗은 고난을 극복한 그의 경험적인 삶을 통해 이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다.
=====30:6
본절에서부터 12절까지에는 다윗의 실수와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이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그의 삶의 한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 이는 다윗이 한때 자기 자신을 신뢰한 자만심을 고백한 구절이다. 자만은 불경건이며 어리석은 자의 특성이다. 이 자만심은 율법에서 엄중히 금지되었으며 이것의 결과는 멸망이라고 규정되었다(신 8:11-20).
=====30: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 여기서 `산'은 시온 산을 가리킨다(Delitzsch, Briggs, Calvin). 시온 산은 천혜의 요새지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 중의 요새로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이었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부스족속으로부터 이 산을 탈환할 수 있었다(삼하 5:7). 그리고 다윗은 이곳에 견고한 성벽을 건설하고(삼하 5:9) 다윗 성을 세움으로써 대국(大國))으로서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견고하여지자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착각하였던 것이었다.
주의 엎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잠시 다윗을 떠나 계신 것이다. `주의 얼굴을 가리우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만을 꺽으시기 위해 잠시 진노하신 것을 의미향다(13:1 주석 참조). 그 결과로 다윗에게 임한것은 평강 대신 `근심'이었으며 건강 대신 `죽음의 질병'이었다(9 절).
=====30:8
내가 주께 부르짖고 - 질병으로 부터의 구원을 요청하는 다윗의 간구이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고통에 처하자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성도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목적이다(Calvin).
=====30:9
내가 무덤에 내려같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 이는 논리적인 다윗의기도이다. 그의 논리는 자신이 일찍 죽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 구체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어찌 진토(塵土)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 다윗은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주의 진리를 온 세상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름 부음 받은 왕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그가 죽는다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은 불가(不可)한 것이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다윗의 간구가 단순히 생명의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Delitzsch, Calvin, Lange). 한편, 다윗이 자신의 이러한 논리적인 간구 그대로 회복된 이후 임종시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였던 사실이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대상 22-29).
=====30:10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다윗이 하나님께 최종적으로 호소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궁휼이다(4:1; 9:13; 23:6,16; 27:7). 그는 자신의 공로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깨달았던 것이다.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 진정한 회개를 통해 그의 건강이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단순히 건강의 회복 때문에 춤을 춘 것이 아니라 그간의 고통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그의 심령이 회복되었기에 춤을 춘 것이다(Craigie).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을 때(삼상 1 8:6), 또는 축제 때에(출 32:19; 삿 21:21)춤을 추었다. 따라서 이 춤은 극도의 기쁨을 의미한다.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 `베옷'은 구약 시대의 성도가 회개할 때 자신의 통회하는 마음을 표시하고자 입었던 옷이다(욘 3:5-8).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진정한 통회를 보시고 베옷 대신 기쁨을 베풀어 주셨다(5절).
=====30: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 자만하던 때에 다윗은주를 찬송하지 아니하고 잠잠했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과 육체가 회복된 이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전념 하고자 한다. 그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확고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영광'은 `마음'(Kraus, Calvin, Rawlinson), 또는 `충성'(Kay, Alexander)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16:9 주석을 참조하라.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 본 구절은 기도 응답을 받은 다윗의 서원을 보여 주고 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대한 서원은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시였다.
본시의 핵심적인 모티브는 찬양이다. 시인은 '여호와를 높이는 것'에서 시작하여
'하나님께 영영히 감사하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 부분에서는 과거
에 질병이나 기타 어려움으로부터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한다. 따라서 이
시편은 유형상 '감사와 경배'의 시이며, 히스기야기 질병으로부터 회복된 후 하나님을
찬양했던 노래를 연상시킨다(사 38:10-20).
그런데 질병으로부터 치유나 하나님을 향한 찬양등의 주제는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표제어와의 조화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학자는 본시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을 (1) 다윗이 다윗 성
안에 법궤를 안치한 사건(삼하 6잘), (2)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성전 부지
(敷地)로 여호와께 바친 일(삼하 24:18-25) 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낙성'(洛成)
이라는 말은 성전 완공과 연결되는 개념인 반면에(대상 22:2-19), 본문 내용은 직접적
으로 성전 완공이나 낙성식을 언급하고 잇지 않다느 사시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주장
들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 그보다는 다윗이 노년에 이르러, 성전과 관계된 일뿐만 아
니라 심한 질병이나 기타 환난 등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신 일 등을 모두 포함한 과거
사건들을 회고(回顧)하며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잇
다. 그리고 본시의 표제어의 '성전'이란 포로 귀환 후인 B.C. 516년경에 봉헌된 제2성
전(스 6:15), 혹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파괴된 성전을 B.C.165년경에 봉헌
한 것 등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 본시의 내용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여기서는 편의
상 찬송의 이류를 나타내는 전반부와(1-5절), 온갖 어려움을 극복케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후반부(6-12절)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30:1-5)
우리는 다윗의 여러 시편들을 보면서 그가 찬양에 탁월한 열성을 지닌 자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그는 겅경 기록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즉 어린 시절부터 찬
양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이나 하나님의 특별한 선별 대상
이 된 것 등으로부터 이러한 추측은 뒷받침되기에 족하다고 볼 수 있다.
본시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
로서 치료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라 어떤 질병에 걸렷는지에 대
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3절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그는 사경(死境)을
헤맬 정도의 심각한 질병을 앓앗던 것 같다. 또한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
나이다'(2절)라는 말은 그가 단순히 의사난 약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치료의 역사(役事)로 인하여 되살아났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
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료의 역사 가운데서 다윗은 자신을 결코 죽음의 세계에 버리
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것이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일시 망가
한 교만한 자였으나 하나님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자신을 버리
지 않으시고(사 42:3) 반대로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사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미하는 영
광의 사람으로 변케 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다윗은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변의 원리르 발견
하였다. 곧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지만 그 은총은 평생 동안 임한다
는 사실이다(5절). 이것은 그가 상상하는 것도 아니요 지금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니라
이미 경험한 실제요, 명백한 진리이다. 물론 그에게 임한 고통은 실로 긴 겨울 밤과
같이 지겹고 인내하기 힘든 것이었으나 이 모든 고통을 인내한 후에는 아침과 같은 큰
기쁨이 찾아온 것이었다(5절). 그 구체적인 사례 중의 하나로서 다윗은 사람들이 보기
에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엇던 질병을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물리쳐 주신 사실을 들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다윗이 체험적으로 얻은 고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
것은 첫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죽음의 세계에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성도가 범죄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회개시켜 반드시 새 생면의 세계로 인도하시
지 결코 죄 가운데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도의 육
체적 죽음은 더 나은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入門)이며 멸망의 죽음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도에게 고난도 주시나 기쁨도 더욱더 많이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셋째,
하나님은 성도에게 고난도 주시나 최종적인 결과(열매)로는 기쁨을 주신다느 사실이
다. 그리고 그 기쁨(은총)은 잠시 당한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며 여
원한 것이다(롬 8:18). 바로 이러한 명백한 진리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을 열심히 찬송
하며 아울러 성도들에게 그의 찬송에 동참할 것을 권유햇던 것이다(4절). 우리는 그의
찬송시를 통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참기쁨을 소유할 수 잇는 유일한 길을 찾을 수
있다.
2. 탄식이 변하여 찬양으로(30:6-12)
본문은 다윗이 과거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면서 이저네 겪었던 고난과 극복의 고저
을 보여주고 있는데 (1) 고난의 시작(원인, 6, 7절), (2)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다윗
의 부르짖는 간구(8-10절), (3)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찬송함(11, 12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다윗이 겪은 고난의 주요 원인은 그 자신의 자만했던 죄였음이
나타나고 있다(6절).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사위(四圍)의 대적들을 정복하는 과정
에서 자신의 힘을 과신했고, 그만큼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이 약해졌다. 그 결과, 하
나님은 그에게 진노하셨으며 이로 인해 그는 죽음의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7
절). 우리는 여기서 성도의 고난은 마음(심령) 속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를 발견하
게 된다. 즉, 다윗의 고난은 순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만심에서 시
작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만심을 버리고 조속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신
앙으로 돌아왔으면 좋았을 것이나 계속해서 자만한 마음을 고집햇던 것 같다. 이로 인
해 하나님은 그의 심령에서 떠나셨고 그 결과 그는 중병을 앓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도가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힘을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요 불행이라
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편 다윗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그 순간부터 그를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
되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는 다윗에게 있어서 질병의 고난으로 나타났다. 즉, 하
나님은 자만했던 다윗에게 진노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를 영영 버리
시기 위한 진노가 아니었고, 자만하는 그의 심령을 낮추시기 위한 하나의 징계였다.
이로 인해 다윗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고 보잘것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9,
10절). 그리고 한동안 찾지 않았던 하나님을 어쩔 수 없이 간절히 찾고(8절) 그의 긍
휼하심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에게 있어서 때로는 질병도 하나
님의 은헤로 오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다윗에게 이 질병이 없었다면 그는 현
재와 같은 찬송시를 노래할 수 없었을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교만 죄에 빠졌을 것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은 회개하는 다윗의 심령에 풍성히 베풀어졌다. 다윗은 베옷을 입고 자신의 자만 죄를 회개하였으나 하나님은 그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그 심령을 채우신 것이다(11절). 이러한 다윗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회개한 다윗의 심령에 다시 거하시면서 그 마음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윗은 더 이상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마음속은 하나님을 찬송하려는 열정으로 진심으로 회개한 심령에게 완전한 회복의 은총과 아우러 기쁨을 더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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