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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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하나님이여...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56편과 같은 시작이다. 이 같은 유사점은, 본 시편도 56편처럼 다윗이 고난을 받던 시절에 저작된 탄원시임을 시사해 준다. 다만 본시에는 '간구와 신앙'이라는 측면이 좀더 강조되어 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 히브리 원문에는 본 문구 초두에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긍휼을 간청한 이유가 설명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영역본 NIV는 본 문구를 '왜냐하면 나의 영혼이 당신 안에서 피난처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for in you my soul takes refuge)로 번역하였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피하리이다 - '주의 날개 그늘'은 시편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보호' 혹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17:8;36:7;61:4;63:7;91:4). 이처럼 '주의 날개 그늘'이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하는 까닭은, 닭이나 기타 새들이 그 새끼들에게 자신의 날개를 펴서(마 23:37) 비바람으로부터의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것과 같기 때문이다(Calvin). 한편, 여기의 '재앙'은 다윗의 목숨을 노리기 위한 사울의 추격을 가리킨다. 사울이 수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숨어있던 다윗을 수색하는 동안(삼상 24:1, 2). 다윗은 초긴장의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다윗이 만일 사울의 군대에 발각된다면, 즉시 사울에 의해서 처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57: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엘로힘 엘룐)은 하나님의 여러 명칭 중, 하나님께서 온 우주에 대한 주권자되심을 강조한다(47:2;83:18;89:27;창 14:19;신 32:8;단 7:27). 다윗은 이처럼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을 믿고 기도함으로써, 자신을 억압하는 자의 굴레로부터 벗어날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소원이 당신의 뜻과 합치되면 무엇이든 이루시는 분임을 강조한다(Rawlinson). 특히 이 말은 약속하신바를 필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다윗 자신의 이전 체험을 엿보게 한다(Alexander).


=====57:3
저가 히늘에서 보내사 - 여기서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내셨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의 '하늘'은 땅이나 자연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다윗
에게 보내주신 것은 초자연적이고도 기적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Calvin). 혹자는 이를 본절 하반절과 연결시켜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이해하기도 한다(A. A. Anderson). 이는 43:3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
이 마치 '하나님의 사자'(the messengers of God)인 것처럼 표현된것과 맥을 같이 한다.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 이에 해당하는 원문(* , 헤레프 쇼아피)은, '나를 삼키려는 자를 책망하소서'로 번역해야 옳다(rebuking those who hotly pursue me, NIV). 왜냐하면 개역 성경에서 '비방'으로 번역된 단어는 '
책망하다'를 뜻하는 강조형 동사이기 때문이다(공동 번역, '망신을 주시고'). 그렇다면 여기서 '책방한다는 것'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던 대적들의 기대를 무너뜨림으로써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Calvin).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 앞 부분의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에 대한 설명구(說明句)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인자'(* , 헤세드)는 결코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뜻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본 시편
의 저자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가리킨다. 그리고 '진리'는 구체적으로 다윗의 대적들을 징벌하시기 위한 공의로운 기준을 뜻할 것이다(Rawlinson).물론 하나님의 심판은 당신의 주권적 권능에 따라 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징벌은 공의로운 판단 기준에 근거하여 시행되는 것이다.


=====57:4
내 혼이 사자 증에 처하며 -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다윗이 숨어있던굴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찾아다닌 것을 연상시킨다(삼상 24:2, 3). 이러한 표현은 당시 다윗이 처한 상황의 위급성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
하는 간구의 간절함을 한층 부각시켜 준다.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 '불사르는 자'(* , 라하팀)는 다윗을 죽이려 혈안이 된 사울이, 마음속 깊이 맺힌 증오심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곧 인생 중에라(* , 베네 아담) -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자손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1) 앞의 문구와 연결시켜 '인생들을 잡아먹는 그들 중에 누웠으니'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공동 번역, Kraus, Weiser), (2) 뒤
의 문구와 연결시켜 '저희는 이가 창과 살이요 혀는 날카로운 칼 같은 인생들이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NIV) 등이 있다. 그러나 여기의 '베네 아담'은 '함아버리다' 혹은 '삼켜버리다'를 뜻하는 동사 '라하트'(* )의 분사인 '
라하팀'(불사르는 자)의 목적어로 봄이 보다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1)의 견해가 보다 적절하다. 저희 이는...칼 같도다 - 사울의 잔인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삼상 22:17-19).

=====57:5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대적하는 등 지극히 교만해 있었던 사울을 징벌하시기를원하는 기도이다. 이 같은 징벌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 다윗을 대적하던 사울의 교만은 꺾일것이고, 반대로 사울의 교만에 의하여
가리워졌었던 하나님의 영광은 다시 높여질 것이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이 그 권능 가운데서 공의를 집행하심으로써 (1) 천상 천하(天上天下)의 모든 인격체들로부터 찬양을 받게 되는 것과(Hengstenberg), 또한
(2) 숭고하심을 스스로 보이시는것(Aben Ezra Kimchi)을 아울러 가리킨다(Rawlinson).


=====57: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障碍)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 사울이 다윗을 잡기 위하여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다윗이 은신했던 산악지대를 이잡듯이 샅샅이 수색케 한 사실과 관련있다(삼상 24:1, 2;26:20). 여기서 다윗은
사울 군대의 수색 및 추격을 '예비된 그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사냥꾼에게 쭤기는 동물과 같은 비참한 신세임을 암시한다. 한편 '예비하였으니'(* , 쿤)는 '설치하다' 혹은 '고정시키다'로 번역함이 더 정확하다(Davidson).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 여기서 '억울하도다'(* , 카파프)는 원래 '빠지다' 혹은 '구부리다'의 뜻이며, 이 동사는 새나 기타 짐승이 사냥꾼의 그물로 말미암아 무서움을 느낀 나머지 땅바닥에 납작 누워버리는 모습을 가리키
기도 한다(Calvin). 따라서 본 문구는, 사울의 수색 작전에 의하여 다윗이 잔뜩 긴장하고 두려워하였던 사실을 암시한다.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 - 여기서 '빠졌도다'(* , 나플루)는 완료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사는 미래에 벌어질 일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본 시편 저자가 미래의 일을 완료형으로 표현하는 예언적 과거를 사용한
것은, 자신을 해(害)하고자 술수를 행하고 있는 사울이 결국 그 죄악 때문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처지에 빠져 멸망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57:7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확정되었사오니 - '확정되었고'(* , 나콘)는 '세워지다', '고정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 '쿤'(* )의 수동형으로서, '굳건하게 되었고'로 번역하면 더 좋을 듯하다(Rawlinson). 이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더
욱 굳어졌음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 다윗은 같은 말의 반복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적 의지를 보다 확고히 나타내고 있다. 내가 노래하고...찬송하리이다 - 이는 주께 대한 신뢰가 더욱 굳어진 결과이다. 이같이 다윗의 찬송은
준비된 마음에 의해 불리워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입으로만 불리워지는 위선자의 것과는 궤(軌)를 달리한다(Calvin). 그리고 여기서 동의어를 반복사용한 것은 앞 문구의 '확정되었고'를 반복한것과 표현상의 조화를 보여 준다.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 여기서 '영광'(* , 카보드)은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주로 '영광'과 '명예'를 뜻하지만, 문맥에 따라서는 '영혼'을 가리키는 시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7:5;16:9;30:12). 따라서 본 문구는'내 영혼아 깰
지어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는 주께 대한 헌신과 진실을 굳게 하려는 다짐으로 볼 수 있다(Rawlinson). 그리고 다음 문구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 간절한 찬양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아
도 될 것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 사울로부터 쫓기는 동안 잠재워져 있었던 음악적 재능이 되살아나기를 소원하는 기도로 볼수 있다(Rawlinson). 실제로 다윗은 많은 시편을 지었을뿐만 아니라 사울을 괴롭혔던 악신(惡新)을 수
금연주로써 쫓아낼 정도로(삼상 16:23) 탁월한 음악적 재질의 소유자였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다윗은 침상위에 걸어놓은 수금이 밤에 불어오는 북풍에 의해서 저절로 소리를 낼 때 깨어나서 새벽이 되기까지 큰 소리로 율법을 낭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
나님께 대한 찬송을 결단하는 본 문맥과 잘 부합되지 않는다. 단순히, 만물이 고요히 잠든새벽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뜻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한편, 시편을 위시한 구약 성경에서는 '새벽'이라고 하는 자연 현상을 종종
의인화시키거나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하여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110:3;139:9;욥 3:9;아 6:10;사 14:12, Kidner).

=====57:9
본절은, 엄청난 위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맛본 다윗이 실로 얼마나 큰 기쁨과 감격에 휩싸여 있었는지를 잘 나타낸다. 다윗은 바로 이 같은 기쁨과 감격을 이스라엘만이 아닌 온 세상에 전하고 싶어 하였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의 주(主)이실 뿐만아니라 만백성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다윗의 신앙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 구절은 18:49과 함께 롬 15:9에서 신약 시대에 보다 온전히 성취된 사실로써
언급된다(Kidner).


=====57:10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 이 시는 우주적인 찬양으로서 끝을 맺는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성실히 지키셨음에 대한 고백이다(3절). 한편, 여기서 '하늘'(* , 솨마임)은 '높다'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아주 높이 그리고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대기권 전체를 가리킨다(욥 서론,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참조).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대적했던 원수들에 대한 징벌을 기필코 실현시키심에 대한 증거이다(3절). 한편 '궁창'(* , 쉐하킴)은 '두들겨 잘게 만들다'를 뜻하는 동사 '솨
하크'(*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구름이 있고 비가 만들어지는 대기 중의 공간을 가리킨다(18:11;77:17;삼하 22:12;잠 3:20;8:28).

=====57:11
5절과 동일한 내용이다. 그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작시 동기나 내용 전개 혹은 주제 등에 있어 56편과 거의 유사하며, 비탄시의  요소
또한 골고루 갖추고 있다.그러나 구원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보다 깊은 통찰(2, 3,  5,
9-11절)과 아울러 간구보다는 찬양의 분위기가 시 전체를 압도하고 있으므로,  비탄시
보다는 '간구와 신앙'의 부류에 포함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54편이나 56편과 마찬가지로 본 시편 또한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다니는 긴박한
위험의 상황 중에서 쓰여진 것이지만, 이 시 속에는 환경의 조건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섭리만을 믿고 의지하는 시인의 담대한 신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하시는(롬 8:28)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뜻을 믿는 신앙이 돋보이는 것이다. 표제문에 의하면, 이 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窟)에 있었던 때에 저작되었다. 이 굴이란 아둘람 굴(삼상 22:1) 아니면  에겐디
굴을(삼상 24:3) 지청할 것이다. 그런데 본 강해에서는 편의상 아둘람 굴보다는  엔게
디 굴로 이해하기로 한다. 그 이유는 이 시편의 저작 당시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작시 배경이 삼상 24장에 기초할 때 더 확실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편을 쓰기 얼마 전에 다윗은 사울에게 십 광야에서 추격을 당하다가    붙잡히기
직전의 위기에 있었다(삼상 23:26).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 족속으로 하여금  이스라
엘을 침범케하심으로써,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퇴각하게끔 하셨다.  참으로  이것은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다(54편). 불과 얼마 전에 다윗은 바로 이 같은  기도  응답의
생생한 체험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또다시 사울의 추격을 받아 궁지에  몰
려있었지만, 낙심치 아니하고 오히려 확신에 찬 기도를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에 따라 사울의 추격에서 벗어난 후, 십  광야의동쪽  곧
사해로 향하는 엔게디에 머물렀다(삼상 23:29). 그러나 십 사람들로 추측되는  자들의
밀고로, 다윗은 또 다시 사울의 추격을 받아야만 했다. 사울은 무려 삼천이라는  많은
군사를 데리고 와서, 엔게디 지역을 수색케 하였다. 엔게디가 좁디 좁은 지역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삼천이라는 군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다윗은  경황
중에, 엔겐디 지역에 많았던 동굴 중의 하나로 숨어 들어갔지만 동굴은  오히려  사울
군사들의 수색 표적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따라서 군사들에 의해서    다윗이    발각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다. 다윗은 발각될 경우, 그 즉시 처형되거나 아니면  수도
(首都) 기브아로 압송되어 백성들 앞에서 수모를 당한 뒤 죽임을 당하게 될 처지였다.
다윗은 십 광야에서 이어 엔게디에서도 극한의 환란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겼던 다윗의 기도는 실제로 즉시 응답되었다. 사울의 군대
는 다윗이 숨어있던 동굴을 수색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사울이 그 동굴에 잠시 들어왔
었고(삼상 24:3), 이것은 들어온 사울이 어두움에 익숙치 못해 있을 때에, 그에게  가
만히 접근하여 그의 옷자락 일부를 베었다(삼상 24:4. 5). 다윗은 사울이 나간 후  얼
마 있다 뒤따라 나가, 사울이 있는 곳과 약간 격(隔)한 곳에 섰다.    그리고    사울에게
자신이 베어낸 옷자락을 보였다. 즉,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죽이지 아니했음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비록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다(삼상 24:!6-19).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기도대로 사울에게서 벗어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시는 구성상 탄식과 간구(1-4절) 및 감사와 찬양(6-10절)의 두 부분으로  구
분될 수 있으며, 5절과 11절은 후렴구에 속한다. 그리고 이 두 부분간에는 시적  대칭
(혹은 대구)이 돋보인다. 즉, 1절이 주의 보호를 간구하는 기도라면 7, 8절은 주의 보
호를 확신하는 감사 찬양이다. 그리고  2, 3절이 주의 인자와 진리를 간구하는 내용이
라면 9, 10절은 주의 인자와 진리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노래이다. 이러한 구성을 염두
에 두고서 본문을 보다 자세히 상고해보기로 하자.
  먼저, 전반부에서 기자는 환난에 처해 있으면서도 확신 가운데서    간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4절). 그때 저자가 처해 있었던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슬아슬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은 일촉 즉발(一觸卽發)의 위험한 상태였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가 자신이 은신해 있었던 동굴에 수색하러 들어올까봐 손에 땀을 쥐고  잔
뜩 긴장해 있었을 것이다. 극한의 공포가 다윗을 사로잡고 있었으며,  죽음의  싸자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듯했을 것이다. 그때 다윗이 처했던 위기의 정도는, 그가  본문
에서 사용한 용어들을 통해서도 쉽사리 인식될 수 있다. 우선 그는 '재앙'(1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파멸로 이끄는 재난을 의미한다.  또한  기자는
'삼키려는 자'(3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다윗이 마치 사자의 벌린 입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짐승과 같이 매우 위태로운 신세였음을 뜻한다(4절). 이러한 위기  중
에서도 다윗이 확신에 찬 기도를 할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윗은,
십 광애에게 사울에게 쫓기다가 특별한 섭리적 역사에 의하여 구출된 일전의 경험이외
에, 하나님이 자신을 반드시 구출하시리라는 언약적 확신을 소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
니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엄중한 공의를    기필코    드러내실
것으로 굳게 있었으면서도,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이 도리어 멸망하게 될 것임을  내다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1) 신자의 성패(成敗)를 좌우하는 결정
적 요인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 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는지  이며
(마 8:23-27) (2) 성도들은 말씀의 섭취와 체험을 동시에 소유할 때 훨씬 굳건한 신앙
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음(신 1:29-31)을 깨닫게 된다.
  이어서 다윗은 주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에 근거하여 그분께  온전
한 감사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6-10절). 사실, 다윗은 인간적으로는 사울의 군
대로 인하여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나
님의 크신 인자(仁慈)를 바라봄으로써, 요동치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담대히  기대할
수 있었다. 그는 거듭되는 시련과 그때마다 각별히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
하는 반복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런  점
에서, 다윗에게 환난은 오히려 유익한 것이었다. 환난에서 자신을 구원하셨고 또한 그
러한 환난을 통하여 자신을 연단하신 그 하나님께 다윗은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다윗의 찬송은, 준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불리워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식적이거나 혹은 가식적으로 부르는 찬송과는 전혀 같을 수 없었다. 하나님
을 찬송하려는 다윗의 열정은 대단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해가 뜰 때깥; 잠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다윗은 고요한 새벽, 모든 만물이  미처 깨어나지 아니한 미명(未明)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금과 비파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스라엘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 만민에까지 찬송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가 온 세상을    충만하여 그분의 영광이 온 세계에서 밝히 드러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1) 고난이 클수록 그것으로부터의 승리로 인한  기쁨과 감격도 크며(벧전 1:6, 7), (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본 자의 증거 중 하나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임(행 9:19-22)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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