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절
후일에 당할 일 - 여기서 '후일'에 해당하는 '베아하리트 하야밈'(* )은 문자적으로 '날들의 끝에'(in the end of the days)이다. Keil은 이 말이 '예언적 언어로 일반적인 미래를 가리키지 않고 말세, 즉 최종 완성의 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49:2절
너희는 모여 들으라...들을지어다 - '너희는 모이라'(1절)는 내용과 '들으라'는 명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임종이라는 상황의 긴박성 및 계시의 중요성 때문이다. 즉이후 나오는 야곱의 유언 속에는 세계 통치, 미래 역사의 흐름, 메시야의 강림 등 구속사의 중대 사건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 예언을 받은 자는 야곱의 아들들임과동시에 언약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아들이다. 본장에서 진행되는 야곱의 축복은 인간적인 요소와 언약적인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 즉 그들은 야곱의 육체적인 아들로서또한 이스라엘 각 지파의 영적인 대리자로서 예언을 받은 것이다.
====49:3,4절
그는 장남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생득적인 권리가 있었지만(3절) 아버지의 첩빌하를 간통한 죄(35:22)로 인하여 이후 그러한 권리를 상실케 되었다(4결).
기력의 시작 - '장자'를 가리키는 수사학적 표헌(신 21:17;시 78:51,105:36)이다.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 - 야곱의 장자로서 르우벤이 차지할 수 있는 위치가 언급되어 있다. 첫째로 언급된 위광(威光)은 특별히 장자가 누릴 수 있는 제사장직의수행과 관계된 말이다. 즉 족장시대에는 한 가족의 가장이 제사장직을 수행하였고 장자가 그 제사장직을 물려받았다(출 29:9). 둘째로 언급된 권능은 가족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특히 전시(戰時)에는 장자가 가족들을 지휘하는 권리를 가질 수있었다. 그런데 르우벤은 그의 범죄로 인하여 이 모든 권리를 상실하였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 - 르우벤이 조급하고 정욕적이며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성경에는 르우벤과 그의 후손들이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암시가 여러곳에 나온다. 르우벤은 애굽에 곡식을 구입하러 갈 때 베냐민을 데려가기 위하여 그의 두 아들을 볼모로 내어 놓겠다는 제의를 한 적이 있다(42:37). 또한 그의 후손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며(민 16장; 신 11:6;시106:17), 땅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갓지파와 더불어 먼저 정복한 요단강 동편땅을 유업으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민 32 :-5). 그 외에도 르우벤 지파와 다른 지파가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하면서 조급하게 단을 쌓다가 내란이 일어날 뻔한 적도 있다(수 22장). 탁월치 못하리니 - 르우벤이 장자로서의 위광과 권능을 상실할 것을 보여 주는 말이다. 장자권적 주도권은 유다에게로 옮겨졌으며(8절), 장자가 마땅히 상속받아야 할두 몫의 상속은 요셉이 받게 되었다(48 : 22 ; 대상 5 : 1, 2).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 아버지의 첩 빌하와 통간한 것을 은근히 표현한 말이다(35 : 22). 이러한 범죄가 그로 하여금 장자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가 더럽힌 것은 자신, 관계한 빌하 그리고 부친 야곱및 가족의 명예등이다. 또한 야곱은 르우벤을 호칭하는 데 있어, 3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분노와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Aalders).
===49:5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 이들이 동일한 부모의 피를 받은 자들일 뿐만 아니라(29:33, 34) 기질적으로 유사하였기 때문에 '형제'라고 표현되었다. 그들은 세겜인을 대량 학살할 때에 함께 앞장서는 잔인성을 보였었다(34 : 25). 그때 이미 야곱은 그들의 행위를 엄하게 꾸짖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혹독하게 책망하고 있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 다양한 해석이 가해지고 있는 부분이다. KJV는'잔인한 기구들이 그들의 처소에 있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칼빈(Calvin)이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고 있다. 반면에 RSV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무기이다'(weapons ofviolence are their swords)라고 번역함으로써 개역 성경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였다.이 절을 번역하는데 난점이 있긴 하지만, 시므온과 레위의 호전적인 성격을 보여주기위한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49:6절
내 혼아...내 영광아 - 여기서 '혼'과 '영광'은 생명 혹은 영혼을 가리키는 2중적표현으로서(시 16:9) 한 인간의 전인격적 실체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영광'에 해당하는 '카보드'(* )는 '생명' 또는 '영혼'으로도 번역 될 수 있는 단어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명예'(honor)로 번역한 KJV와는 달리 RSV는 이를 '영혼'(spirit)으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이말을 환언하면 '나 야곱아'라는 뜻이다. 모의에...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 야곱은 그의 다른 아들들이 세겜의 살륙을주동한 시므온과 레위와 자리를 함께 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성경은 어리석은자를 훈계할 것을 명령한 반면(딤전 4 : 11) 또한 악한 자와 연합하지 말라고 강력히권고하고 있다(출 23:2;시 1:1 ;잠 24:1;고후 6:14). 그 분노대로...끊었음이로다 -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건에 있어서 극도로 잔인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부분에 대한 다른 설명이 34:28, 29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가축을 노략한 사실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34장 사건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세겜에 있는 가축들 모두를 노략할 수 없었으므로 취할 수 없는 가축을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불구로 만들었다. 가축의 힘줄은 한번잘리면 다시 회복될 수 없는 부분이므로 그 가축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것이었다(수 11:6,9;삼하 8:4).
====49:7절
내가...흩으리로다 - 시므온과 레위가 야합하여 악을 도모한데 대한 대가로 흩어짐과 분리의 저주를 선포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저주는 향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정확하게 성취되었는데 그 단적인 예는 두번째 인구 조사 결과에서 잘 나타난다.즉 인구 조사 결과 시므온 지파는 12지파 중에서도 가장 적은 수인 22,200명을 기록한것이다(민 26:12). 이외에도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 분배시 몇몇 성읍만을 활당받았으며(수 19:1-9) 레위 지파 역시 독자적인 기업을 갖지 못하고 팔레스틴 전국 각지의성읍에 흩어져 거하게 되었다(수 21:1-40).
====49:8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 야곱은 유다에게 그의 형들과는 대조적으로 처음으로 풍성하고 순수한 축복을 하였다. 유다는 그 이름 자체로도 '찬양'이라는뜻을 갖고 있다(29:35). 뿐만 아니라 그는 형제들이 요셉을 해치려 할 때 피를 흘리는 것보다 파는것이 나을 것이라고 제안하였으며(37:26이하), 자신을 베냐민의 담보물로서 제공하였고(43:9) 총리 대신 요셉 앞에서 진실하고 의젓하게 변호 하였었다(44:16-34). 이와 같이 그는 행동에 있어서도 형제들에게 찬송을 받을만 하였다.
===49:9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성경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힘을 가진 존재를 비유하기위해서 사자를 등장시킨 절이 많다(시 7:2;57:4;사 5:29 ; 겔19:2-9). 이 예언은 유다지파의 다윗 왕이 수행한 정복 사업(삼하 8:1-10:19)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며 유다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타나셔서 원수들을 멸망시킨 것에 대한 예언으로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계 5:5).
====49:10절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 홀은 왕권을 상징하는 증표물을 가리킨다. 왕은 공중 집회 때에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항상 '홀'을 휴대하였다.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 70인역은 '치리자의 지팡이'에 해당하는 '하카크'(* )를 '통치자'로 번역하고 있다. KJV도 이러한 입장에 따라 이 단어를 '입법자'(a lawgiver)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입법자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한다'는 번역은 문맥상 어색하다. 또한 히브리어 '하카크'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사람이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까지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마땅히 '다스리는 자의 지팡이나 지휘봉' 정도로 번역하여야한다. 개역 성경과 RSV가 이러한 관점에서 번역하였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 이 말은 혈통적인 유다의 통치권이 끌나는 기간을선포한 말임과 동시에 영적 유다 왕권의 통치권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시점을 예언한말이기도 하다(계 5:5). 그런데 그 같은 분기점이 되는 때는 실로가 현현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실로'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지명(地名)으로 보고 유다의 통치권이 실로까지만 미친다는 견해이다(Delitzsch, Furst).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상황과 맞지 않는다. 추상적인 명사로이해하여 '평안의 때'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Gesenius, Kurtz). 그러나 이 역시개념이 불투명하다. 가장 합당한 견해로 장차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실 '메시야'를의미한다는 견해이다(민 24:9,17,24;대상 28:4). 이는 여러 학자들이 지지하는데(Aal-ders, Calvin, Lange) 역사적인 정황과도 부합된다. 따라서 유다 지파의 지상 왕권은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예표하며 여인의 후손 언약(3 : 15)이래로 면면히 계승되어온 '메시야 언약'(12:3;22:17,18;26:4;28:14)은 야곱의 네째 아들 유다에게 게승되고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8절의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귀절로서 이 예언 역시 이스라엘 각 지파를 모아서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하였던 다윗을 통해 성취되었다.
====49:11,12절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 히브리인들은 평화시에 나귀를 타고 여행한다. 그러므로그들에게 있어서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러한 나귀는 대개 잡목에 매어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본절은 장차 비옥한 가나안 땅에 포도나무가 너무 흔하게 되어 나귀를 그 나무에 매어 두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그 옷을...희리로다 - 일차적으로는 장차 가나안 땅에서 유다의 후손들이 향유하게될 평화롭고 풍성한 축복을 가리키나 궁극적으로는 유다의 후손, 즉 메시야를 통해 누리게 될 성도의 평화롭고 풍부하며 건강한 삶을 묘사한 말이다.
===49:13절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 후에 스불론 지파가 직접적으로 해변에 거주하지는않았지만 그들은 지중해와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주함으로써 이 예언을 이루었다(수19:10-16). 특히 이 귀절에 언급되어 있는 '배' 및 '시돈'이라는 도시는 무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들로서, 이들은 스불론 지파가 상업을 중시할 것에 대한 암시를준다. 한편 시돈은 두로와 베이루트 중간에 위치한 중요 항구 도시이다(사 23:2).
====49:14절
건장한 나귀 - 문자적으로는 '뼈의나귀' 곧 골격이 좋은 나귀란 뜻이다. 이것은잇사갈 지파가 튼튼하고 힘이 센 종족(삿 5:15) 이지만 우직하고 단순하여 다른 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힘든 노동 일과 농사 일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비유적묘사이다.
====49:15절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 직역하면 '노예 족속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역사상 잇사갈 지파가 상부 지배 계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받는 계층이 되어 육체적인 고역 및 납세의 의무에 시달리게 될 상태(왕상 9:21;대하 8:8)를 묘사한 예언이다.
====49:16절
단은...심판하리로다 -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시녀 빌하의 소생이고(30:4-8) 갓과아셀은 레아의 시녀 실바의 소생이다(30:9-13). 따라서 일반적인 관습에 따른다면 이들은 서자(庶子)격인 셈이나 고대 근동에서는 본부인의 의사에 따라 남편에게 시녀를주어서 얻은 아들은 법적으로 적자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수도 있었다. 여하튼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이 4명의 첩의 소생들도 동등한 자격으로 훗날 이스라엘 12지파를형성하였다. 한편 본절은 이 가운데에서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단 지파가 차지하게 될 역할을 간략한 말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단은 그 이름이 '재판관'이란 의미를가졌듯이 앞으로 차지할 역할도 주로 재판권에 관한 것이었다(30:6). 이 예언은 단의후손인 삼손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삼손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의사사로 지내면서 백성들을 재판하며 또한 블레셋을 격퇴시켜 벡성들의 안전을 지켰던것이다.
====49:17절
단은...독사리로다 - 여기서 '독사'(adder)에 해당하는 '쉐피폰'(* )은맹독을 지니고 있는 '뿔달린 살무사'를 가리키는데 말과 같은 짐승도 한번 물리면 즉사할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따라서 이는 단 지파가 비록 적은 무리이지만 그들에게많은 압박을 가하는 강대국과 싸워 승리할 사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은강한 적과 싸워 라이스 성읍을 점령한 일이 있고(삿 18장) 삼손 당시에도 블레셋족을거듭 격멸시킨 일이 있다(삿 15장). 그런데 일부 고대 교부들(Augustine, Iranaeus)은 (1)단 지파가 우상 숭배의 근원지였다는 점(삿18 : 18)과 (2)구원의 반열에서 단지파가 빠져있는 점(계 7 : 5-8)을 들어 이를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될것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49:18절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 혹자는 이 귀절을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자각한 야곱이 축복을 마칠 때까지 기력을 유지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으로이해한다(Tuch).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예언한 두 지파의 타락으로부터 그의후손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로 이해 한다(Calvin, Keil, Murphy). 그런데 본절을 17절에 대한 고대 교부들의 해석과 연관시키면 이는 악한 세력으로 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성도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탄원으로 보아야 한다. 즉 본절을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야곱의 무의식적인 염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49:19절
갓은...군대의...뒤를 추격하리로다 - 갓 지파의 용감성에 대한 예언이다. 그들은요단강 동편에 살면서 여러 차례 동방 족속으로 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침략자들을 성공적으로 격퇴시킴으로써 이 예언을 성취시 켰다(신 33:20; 대상 5:18;12:8-15).
====49:20절
아셀...공궤하리로다 - 아셀 지파는 후에 갈멜산에서 베니게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였다(수 19:24-31). 지중해 해변에 있는 이곳은 땅이 기름지고 소산이 풍부하였다.후에 솔로몬 왕은 여기서 생산되는 곡식으로 두로 왕 히람에게 양식을 공급한 적도 있다(왕상 5:11).
====49:21절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 납달리 지파가 마치 사슴처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데 매우 민첩하고 능숙한 자들이 될 것임을 예언한 말이다(삼하 22:34;시 18:33;합 3:19). 이러한 실례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을때 납달리 지파가 이를 성공적으로 격퇴한 사실(삿 4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 혹자는 납달리 지파 중에서 능변의 연설자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인 또는 노래하는 자가 배출될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Pulpit). 이러한 해석은 납달리 지파 중 ' 바락'이라는 노래하는 자가 배출된 점(삿5:1)에 의해 일견 뒷받침되는 듯하나 앞뒤 문맥과는 그다지 잘 부합되지 않는다.그러므로 혹자는 원문 자체를 '아름다운 새끼를 낳도다'는 말인 것으로 보기도 하나이러한 해석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49:22절
요셉은...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 비록 가뭄이 심한 지방이라 할지라도 샘 곁에심겨긴 나무는 그 같은 자연의 재해를 당하지 않는 축복을 지닌 셈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셉의 가문도 외부 상황에 개의치 않고 항상 번창할 것이라는 의미이다(시1:3). 이러한 예언은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통하여 충분히 성취되었다(민 26:28-37).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요셉이 애굽에서 형제들과 아비의 가족을 구원하였듯이(45, 46장) 이후로도 여전히 요셉 가문의 은택이 다른 지파들에게 미치게 될 것임을시사한다.
====49:23절
활 쏘는 자 - (* , 바알레 히침). '활의 명수들'이라는 뜻인데요셉 개인의 과거에 닥쳤던 그리고 장차 그의 가문에 대항할 모든 적대 세력들을 지칭하는 말이다(수 11:16-18;삿 12:4-6).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대적을 활쏘는 자로 비유한 것은 훗날 므낫세 지파인 기드온과 활을 잘 쏘는 미디안 족속과의 대접전(삿6-7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Keil).
===49:24절
야곱의 전능자의 손 - 시 132:2,5에도 '야곱의 전능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사 1:24에도 이와 동일한 의미로 '이스라엘의 전능한 자'란 표현이 나온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다이)으로 묘사된 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족장 야곱을그 많은 고난에서 구원하셨고, 또한 장차 요셉의 후손들을 대적들의 모든 핍박과 잔인한 공격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 이에 대하여서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가해지고있다. (1)'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를 '전능자 하나님'과 동격으로 보는 견해이다(Kalisch). 그럴 경우 본절 전체의 의미는 요셉 가문의 번영과 강성(强盛)의 근원이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이 된다. (2) '이스라엘의 반석인목자'를 요셉과 동격으로 보는 견해이다(Patrick). 그럴 경우 본절은 요셉이 전능자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뜻이된다. 이는 곧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는 셈이다. 그런데 ModernLanguage Bible은 첫번째 견해에 의거한 번역을 하고 있다.
====49:25절
네 아비의 하나님...도우실 것이요 - 야곱은 일생 동안 하나님의 끊임없는 도움을받으면서 살아왔다(28:10-15;32:24-30;35:1-15;46:1-4). 이제 그러한 자상한 도움의손길이 요셉의 후손들에게도 미치리라는 예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도움을 받았던 야곱이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행한 이러한 축복은 축복을 받는 자로 하여금 더 큰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였을 것이다. 위로 하늘의 복 - 이슬과 비와 햇빛을 가리킨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유목 사회에서 이와 같은 자연의 혜택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아래로 원천의 복 - 샘들과 지하수와 같은 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특히 한발이 심한 팔레스틴 지방에 있어서 이러한 물을 풍부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 - 많은 자손을 가지리라는 축복이다. 노동력과 부(富)의문제가 곧 바로 인력의 다소 문제에 직결되어 있던 고대 사회에서 자손 번성은 당연히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큰 축복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1:28;시 127:3,4).
====49:26절
네 아비의 축복이...한없음 같이 - (1) 지금까지 야곱이 그의 총애하는 아들 요셉에게 베푼 축복(22-25절)은 야곱 자신이 아비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27:27-29)보다훨씬 풍성한 것이며 (2)그 같은 축복은 마치 산이 영원하여 변함이 없는 것처럼 영원히 변치 않고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 형제 중 뛰어난 자 - 여기서 '뛰어난 자'에 해당하는 뜻의 '네제르'(* )는'구별하다', '헌신하다'는 뜻의 '나자르'에서 파생된 말로 '구별된 자', '성별된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KJV와 RSV도 이를 '구별된 자'(him that was separate)로 번역하였다. 여하튼 이 귀절은 요셉이 형들보다 뛰어난 것같이 그의 후손들도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구별되게 뛰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49:27절
베냐민은 물에 뜯는 이리라 - 베냐민 지파의 호전적인 성격을 생생히 묘사한 말이다. 이러한 기질은 기브아 전투시의 베냐민 용사들(삿 20 : 21, 25)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삼상 11 : 6-11 ; 14 : 47-52)에게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아침에는...저녁에는 - 하루의 시작과 끝의 시점인 아침과 저녁을 언급함으로써 '항상'베냐민의 후손들이 원수들에 대하여 승리할 것임을 의미한다.
====49:28절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 야곱이 각 아들들에게 내려 주었던 축복은 개인적 차원의 축복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 곧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을 통해서 형성될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미치는 축복임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적 축복은 단순히 야곱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豫知)를 좇아 행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도 전혀 그들의 지난 행동을 고려치 않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엄정히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이다. 즉 야곱은 아들들의 행적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향후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명에 맞게 축복을 베푼 것이다.
===49:29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장사하라 - 야곱은 47:29, 30에서 요셉에게 개인적으로 하였던 매장지에 대한 부탁을 여기서는 공식적으로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사후 매장 문제에 대하여 이처럼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땅에 정착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12:1-3; 26:2,3; 28:13)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기위해서였다<47:30>.
====49:30절
아브라함이...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 야곱은 조상의 매장지에 얽힌 이야기를 그 자식들에게 다시 하였다. 물론 야곱 역시 그 이야기를 그의 아버기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당시 족장 사회에 있어서 언약의 전승은 이와같이 구전(口傳)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49:31절
아브라함과...장사하였노라 - 아브라함의 장사에 대해서는 25:9에, 사라의 장사에대해서는 23:19에, 그리고 이삭의 장사에 대해서는 35:29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리브가의 장사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또한 레아의 죽음에 대하여도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막벨라 굴에 장사된 것으로 보아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에 죽었던 것 같다.
===49:33절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 앉아서 축복하던 야곱이 이제는 누워서 그 발을 침대에모았다는 뜻이다. 즉 야곱은 호흡을 거두기 직전까지 분명한 정신으로 아들들에게 축복한 후 기운이 진하여지면서 죽었던 것이다. 야곱이 비록 험한 일생을 살았기는 하나 죽음 만큼은 매우 순조릅고 편안한 자연사를 당하였음을 알수 있다. 이는 야곱이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던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다(46:4).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 이 말은 그 열조들이 묻힌 묘지에 매장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 막 숨진 야곱을 가리켜 무덤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선조들의 묘지에 묻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다(신 31:16; 왕상 2:10; 16:28; 왕하 21;18). 따라서 이 표현은 영혼이 사후에도계속하여 존재한다는 것과 야곱이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내세에 들어간 것에 대한 암시로 이해하여야 한다.
본장은 시간적으로 전장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야곱이 열 두 아들들의 앞날에 대하여 예언하는 장이다. 그중 1-28절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이룰 아들들 한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그 미래사를 예언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29-33절은 야곱이 47:27-31에 이어 다시 한번 자신의 장례 문제에 대하여 부탁한 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장면이다. 이러한 야곱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그의 아들들을 통한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역사가 새롭게 전개되는데, 곧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체재와 출애굽 역사이다.
한편 이상에서 이스라엘 미래를 내다본 야곱의 예언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야곱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행해진 것으로서, 향후 전개되는 열 두 아들들의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임을 보여 준다. 야곱의 예언은 가장 장엄한 시적 형태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후손들이 그것을 대대로 기억하기 위하여 감동적인 형태로 정리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아뭏든 이러한 예언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에 일체감을 심어 주었을 것임에 분명한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예언의 주체도 하나님이시며 훗날 이를 확증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1. 열 두 지파를 향한 야곱의 예언(49:1-28)
본문은 임종을 목전에 둔 야곱이 장차 이스라엘 열 두 지파로 발전하게 될 그의 아들들에 대하여 유언적 형태의 예언을 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예언은 12아들들의 나이순으로 되어 있지 아니하고 모계별(母系別)로 되어 있다. 그중 1-15절은 레아의 6아들들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16-21절은 야곱의 두 첩 빌하와 실바의 4아들들에 대한 예언이다. 마지막으로 22-28절은 라헬의 2아들들에 대한 예언이다.
이러한 본문은 일명 '야곱의 축복'으로 불리운다. 그러나 이 명칭대로 이스라엘 열 두 아들들이 모두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야곱은 각 아들들의 죄와 선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후, 그에 따라 각기 저주와 축복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계시를 쫓아 자식들의 장래를 예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야곱의 예언은 야곱의 입을 빌어 발해진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메시야 강림(10절)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사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노아의 예언(9:25-27)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적장들의 예언(27:27-29 ;48:15-20)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구속사적 예언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예언은 야곱 사후 이스라엘 왕국 시대를 거치는 동안 대개 다 성취되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의 향후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미리 시사해 준 하나님의 계시였다는 의의를 지닌다.
*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형성과 분류.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는 야곱의 두 아내(레아, 라헬)와 두 첩(빌하, 실바)에게서 난 열 두 아들이 12지파로 발전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본문은 이러한 열 두 아들들이 장차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에서 어떠한 지위와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를 야곱의 예언을 빌어 보여 주고 있는데, 이를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12'란 숫자는 '완전수'로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을 모든 백성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12지파는 신약 시대 그리스도의 12사도로, 그리고 그들로 말미암아 복음의 진리를 증거받은 자들은 144,000성도(계 7:4-8)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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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계 | 이 름 | 이름의 뜻 | 출생순서 | 축복순서 |축복의 상징 |관련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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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우벤 | 보라 아들이라 | 1 | 1 | 끓는 물 | 3, 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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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 시므온 | 기도를 들으심 | 2 | | | |
| +--------+----------------+----------+ 2, 3 | 잔해하는 칼| 5-7절 |
| | 레 위 | 같이 연합함 | 3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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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 다 | 여호와를 찬송함| 4 | 4 | 사자(獅子) | 8-12절 |
| 아 +--------+----------------+----------+-----------+------------+--------+
| | 잇사갈 | 보상받음 | 9 | 6 | 건장한 나귀|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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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불론 | 함께 거처함 | 10 | 5 | 해변의 배 |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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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 단 | 하나님의 심판 | 5 | 7 | 뱀과 독사 | 16-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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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 납달리 | 경쟁함 | 6 | 10 | 놓인 암사슴|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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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 | 갓 | 복됨, 행운 | 7 | 8 | 전사(戰士) |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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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 아 셀 | 복받은 자 | 8 | 9 | 기름진 식물|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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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 요 셉 | 수치를 제거함 | 11 | 11 | 무성한 가지| 22-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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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 | 베냐민 | 기쁨의 아들 | 12 | 12 |물어뜯는이리|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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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지파와 메시야. 이스라엘의 한 지파에 불과했던 유다가 구속사의 중심부에 출현, 선민(選民)의 대명사로 지칭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메시야의 씨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절에서 야곱은 이 지파가 왕권을 휘두르며, 그 나라의 밝은 장래를 쥔 통치자로 비유하고 있다. 야곱의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영웅(英雄) 다윗의 등장으로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가문의 혈통적 왕권은 1세기를 못넘기고 분열하였으며, B.C. 586년 바벧론에 의해 멸망당하므로 영원한 왕권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단순히 유다가 강성한 지파라는 사실만으로 야곱을 통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축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실로 이 모든 예언은 혈통적으로 유다 가문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마 1:2,3,17)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이 예수 앞에 꿇게 됨"(빌 2:10)으로써 이 사실은 입증되었던 것이다.
* 능력에 맞는 축복의 분배.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28절) 축복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야곱 자신의 편견이나 편애에 의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미래에 대한 예지(豫知)로써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표면적인 축복의 차이가 너무나 현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야곱의 상속이 불공평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의 후손들이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감당하여야 할 사명들을 알고 있었기에 그 분량대로 축복을 준 것이다.따라서 이는 자신의 재능에 따라 받은 임무가 다른 것이지, 결코 상속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이 불공평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달란트 비유'(마 25:14-20)에서도 잘 나타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배분해 준 하나님의 일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충실히 수행할 때에 하나님의 상급이 클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야곱의 유언과 죽음(49:29-33)
본문은 열 두 아들들의 장래에 대하여 예언한 야곱이 이제는 자신의 사후 장례 문제에 대하여 마지막 부탁을 한 후 유명(幽明)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그중 29절은 자신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지내지 말고 가나안 땅 선영에 묻어 달라는 부탁이다. 그리고 30-32절은 선영(先塋)에 관계된 일화이며, 마지막 33절은 이상의 당부를 마친 야곱이 파란 만장했던 삶을 마치고 숨을 거두는 장면이다.
이처럼 야곱이 임종 직전에까지도 거듭(47:27-31) 자신의 사후 거처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후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의 발상지가 가나안이었음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다. 둘째, 약속의 땅 가나안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15:16 ;46:4)을 후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뭏든 이러한 본문은 성경 기자가 야곱의 다양했던 인생 편력과는 달리 그의 죽음에 관하여서는 놀라우리 만큼 단촐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주인공의 죽음을 묘사함에 있어서 인간 감정을 자극시켜 슬픔을 극대화하거나, 주인공의 일생을 갖가지 미사여구로 장식하는 대부분의 전기(傳記) 및 신화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아마도 이와 같은 차이점은 성경의 초점이 구속사 전개에 있지, 일개인의 행적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성경은 야곱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예언과 유언이 장차 어떻게 성취되어 나가는지에 대하여 시각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 죽음에 관한 성경의 기록. 본문은 야곱이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저항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그 날이 오자 담담한 자세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성경은 죽음에 관하여 두 가지로 구분짓는다. 즉, 육체적 죽음(마 10:28)과 영적 죽음(엡 2:1)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육적 죽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잠시 언급을 하고자 한다. 즉 성경은 인간의 육적 죽음을 '육신이 흙으로 들어가는 것'(3:19 ;욥7:21 ;시22:15 ;90:3),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25:8,17 ;민27:13 ;삿2:10),'세상을 떠나 가는것'(딤후4:6 ;빌1:23 ;벧후1:15), '장막을 벗어나는 것'(벧후 1:14), '잠을 자는 것'(시13:3 ;요11:11 ;행13:36 ;고전11:30), '기운이 끊어지는 것'(욥10:18 ;14:10), '영혼이 떠나가는 것'(왕상17:21 ;전12:7 ;마27:50 ;요19:30 ;행5:10 ;약2:26)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 기록은 곧 육적 죽음이 인생의 영원한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로 들어가는 과정임을 은연중 암시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 육적 죽음은 결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마 10:28), 왜냐하면 이 죽음은 예수를 믿기만하면 죽어도 살 수 있고(요 11:25),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않고도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15:51,52 ;살전 4:17)<창23:1-2강해, 죽음을 맞는 성도의 자세>.그렇기에 모든 믿음의 열조들은 그토록 죽음을 평화롭고도 담담히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