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절
요셉이...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 요셉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일어나는 벅찬 감정을 감추기 위하여 노력하였다(42:24;43:30).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번 형제들의 진심을 시험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형제들이 회개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42:21; 44:16) 또한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필요가 없었다(44:33,34). 따라서 그는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 것을 형제들에게 알린 것이다. 소리질러(* ,카라) - 격한 감정으로 부르짖듯(시 34:15) '선언하는 것'(렘 34:15)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요셉의 총리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볼 수 없다.
====45:2절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 당시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와 형제들의 사랑에 얼마나감격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억제되었던 감정이 폭발되자 요셉에게선 걷잡을 수없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는 대국의 실권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가여전히 순수한 인간미를 잃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그가 엄격한 애굽의 총리에서 양치던(37:2) 야곱의 열 한번째 아들로 돌아갔음을 뜻한다. 궁중에 들리더라 -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요셉의 사저(私邸)가 궁중과 가까운곳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의 주장처럼 요셉의 하인(하급관리) 중 하나가 요셉의 울움 소리를 듣고 바로에게 보고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보다 자연스럽다.
===45:3절
나는 요셉이라 - 얼마나 드라마틱한 만남의 말인가. 먼 이국에 노예로 팔았던 동생이 이제는 자신들의 구주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보복을 위한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화해를 위한 용서자로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저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용서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연상할 수 있다(요 3:17).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니이까 - 요셉은 이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안부를확인한 바 있다(시 43:27,28;44:17-34).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안부는 아버지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친에 대한 애정의 자연스런 발로로 보아야 한다.특히 이전에는 '그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나(43:27) 이 구절에서는 '내 아버지'란 말을 씀으로써 더욱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Alford). 형들이...대답하지 못하는지라 -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현재 모습에 위압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그에게 범한 죄로 인하여 두려워 하였을것이다(37:18-28).
====45:4절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 요셉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당황하는 형제들을 따뜻한말로 위로하였다. 지금까지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서 그들을 대하였으나 여기서는그들의 동생으로 처신한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라는 말은 요셉이 그들을여전히 형으로 모시는 겸손을 보인 것이다.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 요셉은 형제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왜냐하면 형제들이 이문제를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였으므로(42:22;44:16).한시 바삐 해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셉의 이 말은 그들의 잘못을 추궁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45:5절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 '한탄하다'에 해당하는 '하라'(* )의 원뜻은'불타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심히 애태우며 안타까와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걱정을 덮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로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로 역경을 이긴 자가 갖는 넓은 자비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마 18:21-35). 우리는 요셉의 이러한 행동에서 형제 사랑에 대한 전형을 찾아볼 수있다.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 -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섭리로 되어진 일임을 거듭 증거한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먼 후일까지도 그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50:15).
====45:6절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당시에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와같이 기경 곧 밭을 갈아 볼 엄두조차 못낼 흉년이 칠 년간 계속된다면 많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5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라는 요셉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45:7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 이것은 야곱 가족이 극심한 기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할 것이라는 단순한 육체적 구원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장차 야곱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구원까지도 내포한 말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후손'으로 번역된 '쉐에리트'(* )는 '남은자'(a remnant)를뜻하는데, 이 남은 자는 어떠한 환란과 어려움중에서도 결코 멸망당하지않고(사1:9;6:13;렘 23:3) (1)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재를 유지하여 (2) 그리스도의 족보를형성하게 될 언약으로 인침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후손, 즉 남은 자는 거룩한 성도의 무리 곧 '교회'로 승화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피로 사신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결코 멸망당함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요6:39).
====45:8절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 하나님이시라 - 이 부분을 잘못 해석하면 요셉을 종으로 팔아 넘긴 죄가 결국은 하나님의 책임이 되게된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비록 형제들이 악한 마음으로 범죄하였으나 하나님이 형제들의 범죄를 이용해서선한 목적을 이루셨다는 강조적인 의미일 뿐이다. 동일한 문제가 '하나님이 바로를 강퍅케 하였다'라는 표현에서도 제기된다(출 4:21).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 삼으셨나이다 - 요셉은 또 다시 하나님의 섭리를강조한다. 그가 애굽에 와서 갑자기 지도자가 된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바로의 아비'라는 말은 '바로가 가장 신임하는 상담자요친구'라는 의미이다(Kalisch).
====45:9절
하나님이 ... 세우셨으니 - 요셉은 계속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이것은 철두철미한 요셉의 신앙이자 역사관이다.즉 이미 아브라함에게 예언된 바있는 히브리인들의 애굽 생활(15:13,14)의 계기가 되는 시점에서 요셉은 하나님의섭리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해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로 지체맡고 ... 내려오사 - 요셉이 바로와 의논하지 않고 그의 가족들을 초대한 것은 애굽에서 그의 지위가 확고함을 보여 준다. 이 구절에서 요섭은 형제들을 '속히' 재촉하여 가족들로 하여금 '지체말고' 내려오라고 부탁한다. 요셉이 이와같이 서두른 것은 야곱의 가족들이 가나안에서 고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속히 내려오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15:13-16).하나님의 뜻에 따라 '속히' 움직이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45:10절
고센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 요셉은 고센 땅을 야곱의 가족들에게 주어애굽에 정착하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그가 고센 땅을 택한 이유는 현재자기가 살고있는 곳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센은 나일 강 북부에 있는 하(下)애굽 지역으로 수에즈의 이스드무스(Isthmus)와 인접해 있는데 매우 비옥한곳이었다(47:6). 한편 70인역에서는 고센과 라암셋이 동일한 지역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46:28). 그리고 출 1:11에 의하면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국고성이 이 지역에 건축되었음도 알 수 있다(Josephus).
====45:11절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요셉은 인간의 도리도 다하고 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강조되는 효도(출 20:12;레 19:3;신 27:16;잠30:17;마15:4등)의 실례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에는 요셉 이외에도 다윗(삼상 22:3), 솔로몬(왕상 2:19), 엘리사(왕상 19:20), 요나단의 자손들(렘 25:8), 예수(눅 2:51; 요 19:25,26)등의 훌륭한 효도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45:12절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 자신의 말을 확신시키는 히브리어의 문학적 표현이다. 즉 요셉은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을 애굽에 이주시키려는 계획이 형제들을 통하여 분명히 야곱에게 전달되기를 원한 것이다. 이에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 자신의 말은 믿지 않더라도 그 형제들이 본 바를 말하며 또한 베냐민이 본것을 말하면 믿으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45:13절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 요셉은 거듭해서 이미 늙은 야곱을 모시고 내려올 것을 형제들에게 당부한다. 뿐만 아니라 야곱을 설득시킬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즉 그들이 애굽에서 목격한 모든 사실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속히'라는 단어는 9절에서도 쓰인 말인데, 일을 급히 진행시키려는 요셉의 마음을 잘 보여 주는 표현이다.
===45:14절
목을 안고 우니라 - 요셉과 베냐민과의 만남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두 형제는 베냐민이 아주 어렸을 때 헤어졌다. 따라서 죽은 줄 알았던 형과 동생의 상봉은 감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45:15절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 이제 요셉은 어린 베냐민 뿐만 아니라 모든 형제들과도 하나하나 포옹을 나눈다. 이러한 요셉의 행동은 이전에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범하였던 모든 잘못들에 대한 용서를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인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그의 형제들은 비로소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마음에 평안을 얻은 것 같다.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 요셉은 그의 모든 회포를 진실된 울음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친절한 행동과 울음이 있은 후 형제들은 긴장을 풀고 요셉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드디어 요셉의 진실함이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간과 화해한 것과 같이(고후 5:18; 엡 2:16; 골 1:20) 인간이 그 형제와 화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마 5:24).
====45:16절
바로와 기뻐하고 - 요셉의 형제 상봉은 애굽인에게도 기쁨을 주었다. 바로가 기뻐하였다는 것은 요셉이 바로의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받은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의 신복들조차 기뻐한 것은 그가 아랫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당시 요셉이 애굽에서 어떠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성도들은 그 신앙과 인격의 향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풍길 수 있어야 한다(마 5:16; 고후 2:15).
===45:18절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 이 말은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한 약속(9,10절)과 일치한다. 즉 이제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바로가 요셉의 약속을 재가하여 보증한 것이다. 애굽땅 아름다운 것 - 애굽 영토 중에서도 가장 비옥하고 수려한 곳 중의 하나인고센을 가리킨다(Lange).
===45:19절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 애굽에는 평지와 광야가 많았으므로 일찍이 말과 수레가 발달되었다(50:9;출14:6,7). 여기서 요셉 가족에게 왕실 수레 사용이 허가된 것은 그들을 귀빈으로 모신다는 증거다. 이처럼 애굽 최고 통치자의 관대한 배려는 야곱 가족이 애굽 이주를 결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 - 바로는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의 초청(9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입국 허가를 내렸음을 밝히고 그 증거로 왕실 수레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 야곱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애굽에 모두 다 있으므로 그들이 지금까지 사용한 기구들을 가나안에 그대로 두고 오는데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다.
===45:21,22절
요셉은 그의 가족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친동생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에게는 더 많은 선물을 주었다. 이것은 요셉의 사랑이 이 두 사람에게는 더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도 이와 같이 특별히 어떤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받는 입장에는 값없이 주시는 것이므로 불평없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마 25:14, 1; 요 21:21,22).
===45:24절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 '다투다'에 해당하는 '라간'(* )은 '원망하다', '불평하다', '반역하다'는 뜻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응어리진 감정으로 인하여 투덜대거나 대드는 것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 말에 대하여 요셉이 그들을 해칠까 걱정하지 말라는 충고로 이해했다(Gesenius, Kalisch). 그러나 이 말은 형제들이 집으로돌아가는 도중에 요셉을 팔았던 사건에 대해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논쟁할까 염려해서 하였던 충고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미 르우벤이 그랬듯이(42:22)그들 가운데 비교적 죄가 가벼운 자들이 다른 이들을 쉽게 책망할 가능성이 있었던것이다.
====45:26절
믿지 아니하므로 - 혹자는 야곱이 너무 기쁜 나머지 반신 반의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나(Bush) 그렇지는 않다. (1) 이미 야곱은 요셉의 죽음을 굳게 믿고 있었고(37:33;42:38;44:28) (2) 애굽 총리에 대하여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며(43:6, 14) (3) 세겜 사건 이후 그의 아들들을 불신하였기 때문(34:30;42:39)에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색하더니 - 이 말에 해당하는 '야팍'(* )은 '힘이 빠지다'란 뜻이다. 야곱은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운이 진하여 쇠약해진 것 같다. 아마도 뜻아니한 소식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맥이 풀렸었을 것이다.
===45:27절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 믿지 아니하는 야곱에 대하여 아들들은 지나온 자초 지종을 설명하며 여러가지 정황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이에 야곱은 점차 그들의 말을 믿게 되고 따라서 쇠잔했던 기운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요셉이 보낸 수레는 야곱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45:28절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 본문에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표기된 것은매우 의미 심장하다. 그가 아들이 없어진 것을 슬퍼햇던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이란이름을 사용하지 않앗지만 이제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소망이 가득차 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싸워 이김'이란 승리의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삶의 승리자가 된 그의 이름으로 적당한 것이다<32:28>. 한편 여기서 '족하도다'는 말은 새롭게 솟구치는 소망과 기쁨을 단적으로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본장은 야곱의 편애, 요셉의 꿈, 형제들의 미움과 시기, 도단 사건 등(37장)으로 인하여 조성되었던 야곱 가족의 분열과 갈등이 마침내 야곱의 결단(43:14)과 유다의 희생적인 행동(44:33), 그리고 요셉의 변함없는 형제애로 인하여 해소되고 마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15절은 유다의 감동적인 변론을 들은 요셉이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부분이다. 그리고 16-20절은 요셉 형제의 상봉 소식을 들은 바로와 그 신복들이 함께 기뻐하며 환대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21-28절은 요셉이 형제들을 보내어 아비 야곱을 모셔 오도록 조처하는 부분이다.
이상과 같은 본문은 오랜 시련과 인고 끝에 야곱 가족에게 마침내 찾아든 희망과 기쁨, 찬란한 영광을 잘 드러내 준다. 따라서 그동안 20여년이나 야곱과 그 집안에 임하였던 모든 고난과 시련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성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연단의 채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 열 두 아들들을 언약으로 인친 진정한 공동체(28:14)로 성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닥치는 모든 시련과 환란도 이와 마찬가지의 성격을 지닌다. 하나님께서는 한갖 모난 돌에 불과한 우리를 연마하시어 귀한 보석으로 성화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 같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낙심치 말며 믿음의 인내를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벧전 4:12,13).
1. 요셉과 형제들과의 진정한 만남(45:1-15)
본문은 은연 중에 자신의 정체를 암시했던 요셉(43:30,33)이 이제 확연히 정체를 드러내고서 형제간의 진정한 만남의 장을 구현하고 있는 단락이다. 즉 유다의 진솔하고도 감동적이며 자기 희생적인 탄원에, 정(情)을 억제하지 못한 요셉이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밝혀 형제간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중 1-3절은 요셉이 그동안 숨겨 왔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부분이다. 그리고 4-8절은 행여 도단 사건(37:18-28)으로 인해 형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요셉이 그들을 위로하는 부분이다. 9-13절은 요셉이 야곱의 전가족을 애굽으로 모셔 오도록 초청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14,15절은 요셉이 형제들과 얼싸안고 눈물의 화해를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나자 위대한 사랑과 화합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본다. 만약 요셉이 끝끝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거나, 아니면 형제들이 지난날의 과오를 끝까지 은폐하려고만 들었다면(42:13,21-23), 그들간의 관계는 언제까지고 애굽 총리와 양식을 사러 온 히브리인 사이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로부터 인간대 인간, 인간 대 하나님간의 참된 관계는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교훈받게 되는 바 그것은 곧 진실이다.
*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책임. 성경 전체를 개관해 볼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과 아울러 인간의 책임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이 최종적으로 인간이 그 책임을 다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주는바, 에덴 생활(2:16,17), 노아 홍수(6:1-12), 첫 번 유월절(출 12:21-23), 가나안 정복 과정, 사사들의 무용담(武勇談)등이 다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책임은 상호 보완적이다. 즉, 인간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인간 자신의 의지와 결정이 담겨 있어 결과에 대한 책임이 먼저 인간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타당하나,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보듯이(8절) 인간의 모든 행위와 그 결정 위에 실은 하나님의 의지와 결정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인간의 행위와 결과에만 너무 우리의 관심을 쏟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또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바로 인식한다면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법도에서 어긋나는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2. 요셉 가족에 대한 바로의 환대(45:16-20)
요셉이 형제들을 상봉하였다는 소식이 궁전에까지 전해지자 바로와 모든 신하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이다(16절). 그리고 요셉이 야곱의 가족들을 초청한 데 대하여(9-13절) 바로가 입국 허가는 물론 그에 따르는 제반 편의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 장면이다(17-20절). 이상과 같은 사실은 평소 요셉이 애굽인들에게서 얼마만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특히 애굽인들의 총리 대신인 요셉의 일거수 일투족은 전애굽인의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의 손짓 하나에 전(全)애굽의 운명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41:43,44).
그런데 평소 요셉의 성품으로 보아 자신의 출신을 속였을 리는 만무하니 애굽인이면 누구나 요셉이 히브리 출신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요셉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극적인 형제 상봉을 통해 나타난 요셉의 따뜻한 혈육의 정은 바로와 그 신복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친절보다 아무런 혈연 관계도 없는 애굽인들의 환대가 더 극진할 정도였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해 준다. 즉, 성도는 그 신앙과 인격의 향기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풍겨 이웃을 감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마 5:16 ;고후 2:15).
3. 형제들의 2차 귀향(45:21-28)
본문은 요셉과 화해하고 바로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은 형제들이 아비 야곱과 전가족을 애굽으로 데려 오기 위하여 영광스러운 귀향길에 오르는 장면이다. 그중 21-23절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양식과 선물, 그리고 야곱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해 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24절은 요셉이 형들에게 도단 사건으로 인하여 노중에서 다투지 말도록 미리 신신 당부하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25-28절은 집으로 돌아온 형제들이 야곱에게 요셉이 살아 있음을 고하는 장면이다.
이상과 같은 본문은 비록 간략하지만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예언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이주(15:13)가 현실적으로 성취될 때가 목전에 다다랐음을 보여 준다. 즉 갖가지 장애로 인하여 도저히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던 하나님의 계획이 도리어 그 모든 일들로 인하여 더욱 더 진일보 하더니, 이제는 마침내 그 성취의 문턱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는 진리를 분명히 확증해 주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우리의 일생을 그분께 맡길 수 있는 것이다(마 11:28).
* 애굽 왕의 수레와 그 의미. 요셉의 생존에 대한 야곱의 의아심은 '애굽 왕의 수레'라는 명확한 증거물과 열두 아들의 증언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서 수레는 팔레스틴과 같은 험한 지형에서는 잘 사용될 수 없고,애굽의 넓고 평탄한 지형에서나 사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애굽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야곱이 아들들의 보고에 품고 있었던 의심이 풀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애굽적 의미를 지닌 수레를 보고 나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수레는 영광과 위엄을 상징한다. 따라서 미천한 히브리인에게 호화로운 애굽 왕의 수레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어울릴 것같지 않은 영광을 하나님께서는 요셉 가족에게 수여하셨다. 이는 본래 비천한 죄인이던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은 사실을 연상시켜 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속 백성들에 비해 당신의 자녀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영광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당시 애굽에서는 왕명이 아니고서는 수레가 애굽 밖으로 반출(搬出)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바로가 이 같은 일을 베풀어 주었듯이, 하나님은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에게 하늘의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엡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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