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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2절
오 인을 택하여 -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5'라는 숫자는 애굽인들의 '완전수'로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던 수이다. 따라서 요셉은 형들을 바로에게 알현시키고 은총을 구하는데 있어서도 의도적으로 다섯이라는 명수를 맞춘 것 같다<43:34>.

====47:3절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 이 말은 바로로 하여금 목자인 야곱의 가족들을꺼려 하여 애굽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고센 땅에 거하는 것을 쾌히 승낙케 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다. 비록 야곱의 가족과 선조들이 가나안에서 토지를 경작했던 것은사실이나(26:12; 27:28) 그들이 주된 직업은 어디까지나 목축이었다(12:16; 20:14;26:14; 32:5).

===47:4절
우거하러 왔사오니 - 요셉 형제들의 요청 속에는 그들이 고센 땅에 영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근이 끝날 때까지만 머물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거'에 해당하는 '구르'(* )가 '잠시 동안 머물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창 12:10;20:1;35:27등). Modern Language Bible은 '우리들은잠시 살기 위해서 이곳에 왔읍니다'(We have come to live here temporarily)라고 번역함으로써 이 뜻을 분명히 하였다. 그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은 그들의 조상을 통하여 주신 가나안 회복의 약속(15:16;28:15;46:4)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임에 분명하다.

====47:6절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 문자적인 의미는 '애굽 땅이 네 앞에 개방되어있다'이다. 즉 그들이 원하는 곳에 어디든지 거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가 요셉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땅의 좋은 곳(* 메타브 하아레츠) - 직역하면 '땅의 가장 좋은곳'으로 바로 뒤에 언급되어 있는 고센땅을 가리킨다. 고센 땅에...거하게 하고 - '고센' 땅은 비옥한 목초지일 뿐만 아니라 애굽과시내 반도 사이에 위치한 중요한 국경 지대이다<45:11>. 따라서 경제적인 측면보다군사적인 중요도가 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바로가 이곳을 선뜻 이국인들에게 허락한 것으로 보아 요셉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도와 요셉의 막강한 영향력을짐작할 수 있다. 그들 중에 능한 자가...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 여기서 '능한자'로 번역된'안쉐이 하일'(* )은 직역하면 '능력의 사람들'이란 뜻이며 '짐승을주관하게 하라'고 번역된 '싸레이 미크네'(* )는 직역하면 '가축의 주인으로 삼으라'이다. 바로는 요셉 형제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그들이 요구하지 않은 애굽 왕실의 가축을 돌보는 특권까지 준 것이다.

===47:7절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바로 앞에 서게 하니 - 요셉의 형들과 바로와의면담이 애굽땅에 정착하기 위한 약간의 사무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띤 반면 야곱과의만남은 사적이며 개인적인 친교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야곱과의만남에는 행정적이며 정치적인 내용의 이야기가 거의 없었으며 신변의 사소한 일들이 주요한 화제거리였음에 의해 뒷받침 된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 야곱이 바로에게 행하였던 축복은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니다(삼하16:16; 왕상1:25; 단2:4;3:9). 구약 시대 족장들의 축복권은 일찍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에 근거한 것이다(12:3).따라서 야곱은 그러한 축복권을 가지고 그 동안 바로가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축복을 했을 것이다.

===47:9절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 - 창세기 중에 나타난 매우 아름다운 문장 중의 하나이다. 야곱은 그 자신의 생애와 그 조상들의 생애를 '나그네길'이라고 묘사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으나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오랫동안 방황하였기 때문이다(12:1-4;15:12-21).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피조물인 인간이 참된 휴식을 누리지 못하며 지상에서 영적 평안을 갈구하며 수고하고 애쓰는 생활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기도하다(대상29:15;시 39:13;119:16,54). 또한 야곱은 그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비록 조상들보다 적게 살았지만(25:7;35:28, 29)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표현하였다. 형 에서와의 갈등 및 도피(27:41-45), 요셉과의 생이별(37:18-36)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볼 때 이러한 야곱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훗날 야곱도 고백했듯이(48:15,16), 이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양육시키기 위한 연단의 기간이요,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키 위한 성화의 기간이었다.

====47:10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 야곱은 바로를 알현하러 그에게 나아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물러나올 때에도 똑같이 그에게 축복하였다(7절). 이처럼 위정자 뿐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항상 진정으로 기도하며 축복을 비는 것은 백성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자 지극히 초보적인 성도의 덕목이다(마10:12;롬13:1).

===12절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접대의 과정에서 그는 체계와 합리성을 최대한 지켰다. 즉 요셉은 '바로의 명대로'(11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식구를 따라' 식량을 공급한 것이다(Calvin). '그 식구를 따라'라는 말이 RSV에서는 '그들이 부양하는 자(者)의 수에 따라서'라고 나와 있다. 즉 형제들의 자녀와 종들의 수효에 따라서 요셉은 식량을 공급한 것이다. 공동 번역 성서에서도 '온 가문에 속한 식구 수대로'라고 번역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47:13절
사방에 식물이 없고 - '사방에'를 직역하면 '그 모든 땅'이다. 그런데 이는고센 땅을 제외한 애굽의 전지역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12절에는 고센에 있는 야곱의 가족들에게 특별한 양식이 제공되었음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쇠약하니(* , 라하) - '타다', '발광 끝에 기진하다'는 뜻으로 거듭된 혹심한 흉년으로 인하여 굶주림에 지친 사람과 짐승들은 기력을 상실하고 농작물들은 바닥을 드러내었음을 시사한다.

===47:14절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 - 기근의 심각성은 애굽 뿐만 아니라 가나안땅에 까지도 미치었으며 그 결과 가나안의 돈이 애굽의 국고로 들어가게 되었다(15절). 따라서 이때 가나안은 경제적으로 애굽의 통치하에 있었을 것이다. 몰수(沒收)이(* , 콜) - '모든'이란 뜻이다.

===47:15절
진한지라(* , 아프스) - '실패한다', '그만두다', '끝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돈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말한다.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몽이 점차 여자적(如字的)으로 성취되는 것을 본 애굽 백성들은 이제 이 같은 대기근을 타개할 수있는 해결책도 요셉에게만 있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47:16절
진한지라(* , 아프스) - '실패한다', '그만두다', '끝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돈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말한다.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몽이 점차 여자적(如字的)으로 성취되는 것을 본 애굽 백성들은 이제 이 같은 대기근을 타개할 수있는 해결책도 요셉에게만 있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47:18절
새해(* , 하솨나 하쉐닛) - 직역하면 '둘째 해'이지만 여기서는 기근이 들기 시작한 둘째 해가 아니라 가축을 곡물과 교환한 이듬 해, 즉 기근 마지막 해인 일곱째 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한글 개역 성경은 '새 해'로, 공동 번역, RSV, NTV, Living Bible 등은 '이듬해'(the next year,the following year)로 번역하였다.

===47:19절
종자를 주시면 - 농지에 뿌릴 종자 조차도 구하기 힘들 정도였던 당시 기근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랫동안 기근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백성들은 오로지 목숨 부지만이 최대 관건일 뿐 몸과 전지조차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쉽게 바로의 종, 즉 왕의 소작인(小作人)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Aalders).

====47:20절
전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드리니 - 이 말은 모든 전지가 왕의 소유 재산이 되었음을 강조하기보다는 일정한 원칙에 따라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즉 토지의 국유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47:21절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 요셉은 전국적으로 그 땅의 백성들로 하여금적재 적시에 식량을 공급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주케 하였다. 여기서 성읍들은이전에 곡식들을 많이 저장해 두었던 곳들을 가리킨다(41:48). 한편 여기에 나오는'옮기다'의 '아바르'(* )는 '-을 건너다', '넘겨 보내다'는 뜻인데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이를 '아바드'(* )로 이해하여 '종으로 삼았다'로 번역하였다.그러므로 각 번역서마다 번역이 다른데 KJV, Modern Langage Bible은 한글 개역 성경처럼 번역하였다. 반면에, RSV, Living Bible, TEV는 공동 번역 성서의'온 에집트 땅에 사는 백성들은 다 그의 종이 되었다'와 유사하게 번역함으로써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을 따랐다.

====47:22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 여기서 제사장은 태양신 '라'(Ra)를주신(主神)으로 한 잡다한 이방신들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당시 애굽은 정치와종교가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바로는 애굽 정치와종교의 우두머리였고 제사장 들에게 급료를 주는 자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식량을 얻기 위하여 땅을 팔 이유가 없었으며 국가에서도 그 땅을 구매하는 것은무의미한 행위였다. 한편 여기서 '녹'에 해당하는 '혹'(* )은 '양식으로 주는일정한 액수의 급여'를 의미한다(잠30:8;겔16:27).

===47:23절
종자가 있으니...뿌리라 - 요셉은 흉년이 7년간 계속될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41:30). 그가 애굽의 농민들에게 다음 해를 위하여 곡식의 씨앗을 제공했다는 것은 그 해가 흉년의 마지막 해라는 것을 보여 준다(Pulpit).

====47:24절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 혹자는 요셉이 경제적인 면에서 애굽인들을 바로의 예속물로 삼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요셉의 경제 정책이 너무 너그러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토지의 소유자가 소작인에게 수확량의 2할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시 동양에는 수확의 절반 혹은 1/3이 부과되던 것이 상례였다. 따라서 요셉의 세금 징수가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부당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47:25절
살리셨사오니...종이 되겠나이다 - 고대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레25:39). 이런 경우에는 종과 주인의 관계가 피보호자와 보호자의 관계였으며 약탈당하는 자와 수탈자의 관계는 아니었다. 이러한 당시 상황 속에서 애굽 백성들은 선정에 감복하여 그의 종이 되기를 스스로 제안한 것이다.

====47:26절
애굽 토지법...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애굽 토지제도의 기본법이다. 이를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최소한의 개인 토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토지는국유화가 되었다. (2)예외적으로 제사장 계급만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 (3)백성은 토지를 경작하여 소득원으로 삼는 대신 토지 소산의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바쳐야 했다. 이처럼 세워진 요셉의 토지법은 시대가 변천하면서 계속 수정, 보완되었기는 하나 그 기본 구조만은 근간을 이루고 있었음에 대하여선 역사가들이공통적으로 증거하고 있다.(Herodotus, Robinson).

===47:27절
이스라엘 족속이...번성하였더라 - 짧게는 17년 전 애굽 이주 당시 야곱에게 주어졌던 약속(46:3)의 성취요, 길게는 250년 전 가나안 이주 당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번성의 약속(12:2)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47:28절
야곱이...일백 사십 칠 세라 - 야곱의 일생을 그의 나이와 더불어 생각하는 것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에 있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제시하는 야곱의 연대기는 루터(Luther)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즉 그는 가나안에서 77세 때에 밧단아람으로 갔다(28:5).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결혼했으며 20년이 지난 후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다(33:18-20). 그 후 가나안에서 33년간을 지내다가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내려가서 17년을 더 살았으므로 그의 수명은 147세가 되는셈이다.루터가 제시한 이러한 계산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요셉이 바로 앞에 섰을때 그의 나이는 30세였다(41:46). 그 후 9년이 지나, 즉 흉년이 2년째 되던 해(45:6)에 요셉은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주시켰다. 당시 요셉의 나이는 30세였으며 야곱은 130세였다(47:9). 여기서 야곱은 91세 때 요셉을 낳았을 때는 그가 밧단아람에 기거한 지 14년째 되던 해였다(30:25과 29:18, 21, 27, 30을 비교하라). 따라서 그가 밧단아람에 있는 삼촌 라반에게 도망간 나이는 77세였다. 또한 밧단아람에 거한 기간도 모두 합해 20년이었다(31:41). 그러므로 77,20,17을 모두 합하면 114세가 된다. 따라서 그는 147세에 죽었으므로(23절)그가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애굽에 내려가기까지 가나안에 머문 기간은 자연히 33년이 되는 셈이다.

===47:29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맹세하고 - 일명 '환도뼈 맹세'라 불리우던 고대 근동의 엄숙한 서약 의식이다. 여기서 환도뼈는 생명의 근원과 권위를 상징하는바 여기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것은 맹세의 엄숙성 및 절대성을 의미한다<24:2>.

===47:30절
나를...선영에 장사하라 - 야곱의 이러한 부탁은 자기 선조 곁에 묻히고 싶다는 인간의 보편적 바램 이상으로 깊은 뜻이 있다. 즉 이 부탁은 가나안 땅만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예비해 두신 유일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믿는 확고한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후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그 땅의 주권을차지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었던 것이다(15:12-21; 히 23:4). 한편 여기서 '선영'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으로부터 산 막벨라 동굴을 의미한다(23:1-20).

====47:31절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 야곱은 이미 늙어 몸이 쇠약하였으므로 침상에 앉아서 요셉과 대화한 것 같다. 그는 요셉으로부터 '내가 아버지 말씀대로 행하리이다'라는 확답을 듣고 얼굴을 침상 머리편으로 돌이켜 하나님께 감사하여 경배한 것이다. 다윗도 그의 침상에서 하나님께 경배한 사실이 있다(왕상 1:47, 48).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히 11:21에서 이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고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아마 야곱은 노쇠한 탓에 침상에 앉아서도 지팡이를 짚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본장은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과 그 가족이 바로의 배려로 고센 땅에 평화롭게 정착하게 되었으며, 애굽은 요셉의 선정에 의해 점점 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떻게 섭리하시는지를 증거해 주는 일례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12절은 야곱 가족이 바로로부터 무사히 고센 정착 허가를 얻어 내는 장면이다. 그리고 13-26절은 요셉이 극심한 흉년 중에서도 현명한 정책을 펴 애굽을 부강시킨 데 대한 기사이다. 마지막으로 27-31절은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요셉에게 자신의 장례(葬禮)에 대하여 당부하는 장면이다.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 우리는 요셉과 그 아비의 가족이 비록 애굽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성실한 삶을 살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이는 간접적이나마 성도의 본향은 하늘 가나안이지만 현재 발딛고 있는 삶의 현장은 이세상임을 주지시켜 준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멸시하는 배타적인 삶이 아니라, 이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마 5:13-16).

  1. 야곱 일가의 바로(Pharaoh)알현(47:1-12)
 본문은 요셉의 형들과 아비 야곱이 애굽의 최고 통치자인 바로를 알현하고서, 그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얻어 애굽 땅 고센에 정착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중 1-4절은 요셉의 다섯 형들이 바로를 알현하고서 이미 요셉이 일러준 대로(46:31-34), 고센 땅 정착에 대한 소원을 아뢰는 장면이다. 그리고 5,6절은 이에 바로가 그 소원을 정식으로 들어주는 장면이다. 이어 7-10절은 인사차 바로를 상면한 야곱이 그에게 축복하고 나오는 장면이며, 마지막으로 11,12절은 요셉이 애굽에 정착한 가족들을 힘껏 돌보는 부분이다.
 이상과 같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예언(15:13-16)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즉 비록 야곱의 가족은 7년 대흉년이 끝날 때까지만 애굽에 머물기를 원했지만(4절), 실제로 그들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출애굽하기까지 430년동안 애굽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출 12:40). 이는 인류 역사, 특히 선민(選民)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하에 정확 무오하게 진행됨을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약속을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마 5:18).

 * 야곱의 회상(回想)과 인생 고백. 역사와 죽음 앞에서 인간은 대개 진실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는 마당에 구차하게 숨기는 것도, 미화해서 자랑한다는 것도 모두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무주의자는 인생의 결말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진리인 것처럼 주장한다. 수없는 현자(賢者)의 입술에서도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되뇌어져 왔다. 그런데 이 말이 믿음의 사람 야곱의 고백 속에서도 나타난다(9절). 하지만 이는 허무주의가 진리임을 증거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파란만장한 삶의 양식을 누리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실로 죽음은 인생의 모든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히 9:2),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다(욥 14:1,2 ;전 12:3-8).
 그러나 노년에 이르른 야곱은 결코 인생을 허무주의로 이끌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 편력을 하나님의 복음 증거에 사용하였다. 바로(Pharaoh) 앞에 펼친 자신의 나그네 간증은 권력의 최상부에 있는 바로에게, 그리하여 인생을 영원히 즐길 것 같은 바로에게 인생을 돌아갈 본향이 있는 나그네 삶이라는 사실을 증거함으로써 진솔한 호소력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이처럼 신자의 삶은 허무로 치닫는 세속의 삶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새 소망을 주셨으며, 그리하여 새 삶을 소유한 자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전파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마 28:7 ;고전 15:55-58). 따라서 자신의 삶 가운데서 이 같은 구원 사건을 체험한 자마다 승리의 체험을 이웃이게 담대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2. 대기근과 요셉의 치세(47:13-26)
 본문은 기근 중에서도 요셉의 탁월한 정책에 의하여 애굽의 부(富)와 왕권이 더욱더 공고해졌음을 보여 주는 단락이다. 이는 야곱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잠시 이탈되는 듯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는 야곱 가족이 어떻게 이방 땅 애굽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3-19절은 요셉이 현명한 양곡 정책을 펴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20-26절은 그 성과에 힘입어 요셉이 새로운 토지법 및 조세법을 확립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앞 장 여러 곳에서 보아 왔던 요셉의 성실한 모습과 훌륭한 인품, 그리고 뛰어난 지혜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보디발의 집사장으로 탁월한 관리자의 모습을 선보였던(39:1-6) 그는 이제 전(全)애굽의 관리자로서 현명한 정치를 행했다. 물론 이러한 통치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또한 요셉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 이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애굽의 전성기를 주도한 요셉의 치적(治績)은 하나님의 섭리였던 바 하나님께서 그토록 섭리하신 이유는 세상에서 애굽을 돋보이도록 축복하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요셉의 치적을 기억하고, 그의 동족 히브리인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뜻깊은 조처(措處)였다.
 이처럼 애굽은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때때로 선민의 도피처로서의 긍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마 2:13-15).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나가시는 구속사의 주체는 이스라엘이지 결코 애굽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 국가는 단지 선민을 향한 약속 성취 과정의 중간 등장 인물과 같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구속사의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구속사의 중심부에 머무르지 못하고 주변의 방황자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한다. 진정 세상속에 거주하므로서 삶의 혼돈을 겪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벧전 2:11,12).

 * 요셉의 통치 방법의 도덕성. 혹자는 본문에 기록된 요셉의 통치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의 통치 방법이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부자는 더욱 부하게 만드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정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의 여러 견해 중, 특히 자본주의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모순점을 척도로 하여 고대 애굽의 사회상(社會像)을 자로 잰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욱이 여기서의 방법은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풍년과 기근은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였고, 요셉은 이러한 계시 사건을 하나님 통치의 수단으로 이해하여 모든 지혜를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에 사용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백성들도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살 길을 하나님 안에서 찾았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펼쳐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무용(無用)한가를 깨닫고 생을 절대자에게 의탁한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상황 중에서 요셉의 냉철한 사리 판단이 없었다면 애굽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당한 가격이 치러지지 않고 곡식이 분배되었다면, 틀림없이 비축된 곡식은 7년 기근이 지나기 전에 낭비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공짜'라는 미끼에 약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의 정책은 당시의 급박한 기근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롭과 값진 것이었다.

  3. 죽을 기한이 가까와진 야곱의 당부(47:27-31)
 파란 만장(波瀾萬丈)한 생을 살아 온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46:4)에 근거한 당부를 하고 있는 단락이다. 그중 27,28절은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한 이래 17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29-31절은 이제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야곱이 요셉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 시신을 가나안 땅 조상의 선영에 장사 하도록 부탁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에서 우리는 애굽 이주 당시 야곱이 바로(Pharaoh) 앞에서 보여 주었던 거친 인생의 자기 고백(9절)과는 달리 평온한 감정 상태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센 땅에 정착한 17년(28절) 동안 그는 그의 자손이 그곳에서 생육하며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3절)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 보았다. 고생과 환란이 축복으로 변해 가는 사실을 확인한 야곱에게 인생의 무상은 찾아올 리 없다. 야곱이 이렇게 의연(毅然)한 자세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일생 동안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자손 대대로 함께 한다는 사실을 요셉에게 알릴 수 있었고, 가나안에 다시 돌아가리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맹세케 함으로 즉, 자신의 유골을 장사하는 것을 허락치 않음으로,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46:4)를 확증하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의 확신은 죽음의 두려움도 넘어설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인생을 최종 승리의 삶으로 승화시켜 주는 것이다.

 * 죽음을 위한 준비.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의 장례 절차의 완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지(葬地)를 마련하는 따위의 죽음 준비는 권세와 돈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해온 바이다. 죽음을 위한 준비는 숨을 거둔 뒤의 뒷정리가 아니라 마치 학교 졸업 후 사회 생활에 대비하듯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마음 가짐을 가리킨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만나 볼 만반의 준비를 가리킨다. 따라서 육체의 죽음을 영구적인 종말로 여기는 자에게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불 성설(語不成說)이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육체의 죽음이 영원한 종말이 아님을 믿는 자들이다. 즉, 부활의 소망과 영원히 들어가 살게 될 본향이 있음을 믿는 자들이다. 실로 이들에게 죽음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요, 신랑되신 그리스도를 만나보기 위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준비인 것이다(고전 15:51-54)<23:1-2 강해, 죽음을 맞는 성도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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