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절
야곱이...다 빼앗고 - 라반의 양떼에 비해 야곱의 양들이 계속 늘어나자 라반의아들들은(30:35) 야곱이 속임수를 써서 자기 아비의 소유를 빼돌린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야곱의 부의 증가는 실상 그의 땀흘려 일한 노력의 대가였고(30:29;31:6;40), 또한 하나님이 축복하신 결과였다(9절). 따라서 라반의 아들들 역시 그 아비 못지 않게탐심이 많은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부(* , 카보드). - '무겁다'란 뜻을 지닌 '카베드'에서 파생된 말로'영광'(KJV ; glory) 혹은 '부'(NASB ; Welth)를 의미한다. 이것은 두가지 사실을 암시 하는바 (1) 야곱은 물질적인 부와 사회적 명성을 누렸으나 (2)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라반을 생각할 때마다 야곱에게 중압감을 느끼게 했음을 보여 준다.
====31:2절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 야곱으로 하여금 그간 정든 하란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함과 동시에 그를 고향으로 보내려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러한 역사는 아비 데라의 죽음(11:32)을 통해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셨고, 바로의 핍박(출1:8,9,10,11)을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섭리와 그 맥을 같이한다.
====31:3절
돌아가라...함께 있으리라 - 이곳으로 너의 길을 인도할 때처럼 이제는 귀향길을돌봐주시겠다는 20년 전의 벧엘 언약(28:15)에 근거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이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면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신과언약을 맺은 백성을 잊지 않고 반드시 불러내신다(요 10:28,29). 이것은 오늘날 이 땅의 성도들에게 때가 차면 언젠가는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후 5:1;벧전 1:17).
====31:4절
야곱이 보내어...불러다가 - 직접 찾아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 부른 이유는 라반의식구가 행여 엿들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은 이동 장막 생활을 했던 근동 지방의 유목민들은 대개 한 가족 단위로 해서 양떼를 나누어 관리했으며 또한 한가족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부녀자들이 있는 장막을 중심으로 서로 떨어져서 생활했음을잘 나타내 주고 있다.
===31:5절
내 아버지의 하나님(* ,엘로헤 아비) - '능력의 하나님'을 뜻하는'엘로힘'의 연계형(소유격)과 '아버지'인 '아비'에 1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이다. 라반의 초라한 우상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하나님께서 조상의 언약(17:7;26:24)을 계승한 자신과 동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는 야곱의 신앙 고백이다.
====31:6절
힘을 다하여 - 직역하면 '숨이 차도록'이다. 야곱의 부요(30:43)가 결코 까닭 없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만은 아님을 보여 준다. 섬겼거늘(* , 아바드) - 종이 주인을 섬기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야곱이친척임을 빌미삼아 라반에게 불충히 대하거나 일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오히려종된 자로서 최선을 다해 라반을 섬겨 왔음을 나타내는 야곱의 진솔한 고백이다. 이러한 야곱의 자세는 누구나가 본 받아야 할 당연한 태도인데 특히 성도들은 직장에서든교회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마치 그리스도께 하듯 전심 전력하여야 한다(엡 6:5-8;골 3:22-25).
====31:7절
속여(* ,헤텔) - '간사하게 취급하다', '실족케 하다'란 뜻의 동사 '탈랄'(* )의 사역형 능동태로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를 실족케 하려는 행위를 의미한다. 열 번이나. - 문자적으로 반드시 열 번이 아닌(민 14:22;욥 19;3), '할 수 있는 대로 자주', '여러 차례' 내지는 '10'이란 숫자가 상징하듯이 '거의 매번'의 뜻으로, 가득찬 수의 개념을 나타낸다. 번역하였느니라 - 라반이 야곱의 임금 착취를 위해 원래의 약정(約定) 임의로 변경하여 영구한 고용살이로(30:30) 머물게 하려 한 것을 가리킨다. (1) 처음에 라반은얼룩이나 점이 있는 모든 가축을 야곱에게 주리라 약속했다가(30:32 -35) 다시 규정을고쳐 (2) 점 있는 한 부류로 국한했다가(8절) 또 번복하여 (3) 얼룩무늬로만 한정하였던 것이다. 해(* , 라아) - 신성 모독적인 문맥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을 뜻하나(사31:2;습 1:12) 본절에서는 부정직으로 말미암는 재산상의 손실을 뜻한다(44:5;신15:9).
===31:8절
... 되리라 하면 온 양 떼의 낳은 것이 - 거듭되는 라반의 술수 가운데서 야곱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역사하시고 돌보신 것을 잘 나타내 준다(시23:4).
===31:9절
빼앗아(* , 나찰) - 일반적으로는 '구원하다'(삿 10:15;삼상 12:10;겔14:14)란 뜻으로 사용되나 본절에서는 '되찾다'(삼상 30:22) 또는 '도로 돌려주다'란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본래 야곱의 소유가 됨이 마땅한 것을 라반의 손에서 되찾아 야곱에게 돌려주었다는 강한 표현이다(16절).
====31:10절
내가 꿈에 - 이 꿈은 양들의 배태기(胚胎期)에 야곱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계시로그가 계획한 양들의 생식 문제 자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아래 있음을 확신시킴으로써 하나님을 더욱더 신앙토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양떼를 탄 수양 - 양들의 교미(交尾)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31:11절
꿈에 - 이같은 꿈은 아마도 라반과 야곱 사이에 계약이 맺어진 직후부터(30:36)가축들이 새끼낳기 이전 사이의 어느 한 시점에 주어진 것 같다. 하나님은 벧엘 언약후 야곱에게 지속적으로 나타나셔서 그의 발길을 인도 해 주셨다.
===31:12절
네 눈을 들어 보라 - 소망의 하나님께서 참담한 환경 가운데 처해 있는 성도들을격려하며 미래에로의 새로운 비젼과 환상을 제시할 때 사용하시는 감격스러운 어투이다(13:14;15:5).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불의한 자들에게 당하는 고통과슬픔, 억울한 일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으시고 낱낱이 기억하셨다가 때가 되면 반드시신원(伸寃)해 주시는 분임을 강조하는 말이다(잠 22:22,23;사 1:17).
====31:13절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 아노키 하엘 벧엘) - '나'를 강조하는 일인칭 대명사 '아노키'와 '하나님'인 '엘'에 정관사 '하'가 붙어 '나는벧엘의 그 하나님이다'란 뜻이다. 이는 시간을 초월한 연계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말로서 도피 중인 야곱에게 나타나 언약을 맺은 장소인 그 벧엘을(28:19)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신실성을 확증해 주는 선언이다.
지금 일어나 - 신앙적인 결단은 항상 지금 이 순간이어야 함을 촉구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뜰지 모르는 그림자이자 안개이기 때문이다(전 6:12;약 4:14).
===31:14절
우리가...있으리요 - 강한 부정을 암시한 말이다. 이는 아들과는 달리 시집간 딸에게는 상속권이 주어지지 않던 근동의 보편적인 관습을 잘 드러내 준다.
====31:15절
우리를 팔고...다 먹었으니 - 오늘날도 팔레스틴에서 사는 아라비아인은 처녀의부모에게 지불된 지참금 중 일부를 처녀의 혼인 밑천으로 사용한다. 또한 고대 앗수르법에도 이 지참금을 신부 자신에게 지불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관례에 비추어보면, 라반이 지참금으로 대치된 야곱의 노동력과 또한 그 노동력에 대한 부차적인 대가마저 몇번이고 변역한(7절) 것에 대한 딸들의 불평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 , 키) -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단어로서 '먹었으니' 뒤에 붙어 딸들이 불평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접속사(이는, 그래서) 역할을 한다. 외인(* , 노크리요트) - 상관할 바 없는 낯선 외국인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시집간 딸에 대한 라반의 철저한 무관심을 반영한다.
===31:16절
하나님이 ...취하신 재물 - 즉 하나님이 빼앗아 돌려주신 재물(9절 원문 주석 참조)이다. 다 준행하라 - 이처럼 라헬과 레아가 가나안으로 떠나자는 남편 야곱의 제의에 의외로 쉽게 동조한 이유는 (1) 14년에 걸친 야곱의 노동력 대가로 자신들이 팔렸다는불만을 평소 품고 있었으며 (2) 자신들을 딸로서가 아니라 철저히 출가한 외인으로서취급하는 아비 라반의 태도를 볼 때, 더 이상 상속물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었고(3) 야곱이 번성하는 과정에서 느낀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기때문이다.
===31:17절
일어나(* , 와야콤) - 직역하면 '그리고 일어났다'이다. 이는 야곱이 하나님의 계시와 그 아내들의 동의에 힘을 얻어 단호히 귀향길에 오름을 강조한 표현이다.
===31:18절
이끌고(* , 나하그) - 강압적으로 '내몰거나'(신 4:27) 의도된 목적지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26절;사 20:4). 이것은 야곱이 서둘러 온 가족과짐승을 재촉하여 떠났음을 암시한다.
====31:19절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 유목민들에게 양털을 깍는 일은 여러 날이 걸리는큰 행사로서 친구들을 초청하는 등 큰 잔치 배설하여 축제 분위기를 일으킨다(38:12;삼상 25:4). 따라서 야곱은 자신들에 대한 감사의 눈길이 늦추어진 이 시기를 행동 개시일로 잡은 것이다. 드라빔(* , 테라핌) - '편안히 살다'란 뜻의 '타라프'에서 유래된 말로구복 (求福)과 점술 그리고 신탁 행위와 관련된(겔 21:21;슥 10:2) 가정 수호신이다(삿 18:17,24). 이 우상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반신상(半身像)으로서 나무나(삼상19:13,14,15,16) 은으로 (삿 17:4) 만들어졌으며 작은 것(34절)에서부터 사람의 키와맞먹는 큰 것(삼상 19:13)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한편 최근 발견된 누지(Nuzi)서판에 의하면 이 드라빔을 소유한 자가 (1) 가장 큰 몫의 유산 상속을 받을 권리가 있었으며 (2) 한 씨족 내의 지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유대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의 진술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여행시에 드라빔을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한다. 따라서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이유는(1) 라반 사후(死後) 남편 야곱에게 상속권이 있음을 보증하기 위함과 (2) 후대 사회에서의 지도권 획득을 위한 포석(布石)으로서의 의미 (3) 위험한 여행에서의 안전 기원키 위한 주술적인 목적 때문이었던 것 같다.
====31:20절
아람 사람 라반 - 구태여 성경이 라반의 국적을 언급한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그당시 아람인 즉, 시리아인(KJV;the syrian)이 매우 교활한 민족으로 소문났었는데, 이제는 바로 그 교활할 자가 그보다 영악한 자에게 농락을 당하는 아이러니컬(Ironical)한 모습을 묘사하기 위함인 것 같다(Clericus).
====31:21절
강을 건너 - 이 강은 성경에서 자주 큰 강으로 언급되는(15:18;출 23:31;수 1:4;왕상 4:21) '유프라테스 강', 그 중에서도 북부 상류를 가리킨다.
====31:22절
삼일 만에...들린 지라 - 원래 야곱과 라반 사이에 떨어진 거리가 사흘길이었기때문이다(30:36).
===31:23절
칠 일 길을 쫓아 - 야곱이 도주한 지 10일째 되는 날 비로소 라반 가신(家臣)들과친족으로 구성된 임시 추격대를(14:14)이끌고 밧단아람에서 약 480km 떨어진 길르앗산에 당도할 수 있었다. 이는 하루에 약 70km의 속도로 7일간 매우 빠르게 추격해 온것으로 라반의 마음이 얼마나 맹렬한 분노로 불타고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야곱은 20년간의 천신 만고(千辛萬苦) 고생 끝에 얻은 재산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위험에 봉착하였다. 한편 야곱이 이처럼 추격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무리들(아녀자 및 가축떼)의 기동성 문제와 길르앗 산지의 험준함 때문에 빠른 속도로전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31:24절
현몽하여 -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초자연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야곱이 덜미잡히기전날 밤(29절)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꿈을 통하여 야곱의 안전을 지시하셨다. 선악간 말하지 말라 - '선악간'의 문자적 의미는 '선에서 악에 이르기까지'란 말로서 '무엇이든'을 뜻하는 히브리 관용어이다. 즉 이것은 야곱에게 어떤 해로운 행위도 하지 말고 그대로 보내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늘 가나안으로 향하는 성도들의 발걸음도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보호하시니(신 32:10;사 31:5), 우리는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은 채 하늘나라에 이를 것이다(마 10:29,30,31).
===31:25절
장막을 쳤는지라 - 여기서 '쳤다'(* ,타카)는 말은 '땅에 무엇을 고정시켰다', '말뚝을 박았다'는 등의 뜻이다. 이는 야곱이 라반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것으로 알아 며칠의 휴식을 위해 바쁜 탈주 걸음 멈추었음을 암시한다.
===31:26절
칼로 잡은 자 같이 - 직역하면 '그 칼의 포로와 같이'(* ;like captive ofthe sword)로 '강제로 끌려가는 전쟁 포로처럼'(왕하 6:22)이란 뜻이다. 그러나 라반의 이 말 사실 무근한 트집이다. 왜냐하면 (1) 야곱은 노동의 대가로 라반의 딸들과합법적으로 결혼하였으며(29:18,19,27) (2) 그녀들 역시 자발적으로 야곱을 따라 나섰기 때문이다(14,15,16절)====31:27,28절
고대 근동에서는 가족중 임종을 앞둔 자나(27:4) 혹은 먼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24:60) 번영과 승리를 기원하는 축원과 함께 애정어린 포옹으로 엄숙한 작별 의식을행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체험을 통하여 라반의 인간성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야곱에게 신의를 저버렸다는 라반의 도의적 책망이 진심으로 들렸을리는 만무하다.
====31:28절
나로...입맞추지 못하게 - 작별의 정을 운운하는 이 말 역시 라반의 거짓된 자기변명으로 매도할 수 있겠으나, 혈육에 대한 본능적이고 애뜻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실된 주장이라 할 수 있다(Delitzsch). 소위가..어리석도다 - 단순히 우둔한 행동을 꼬집는 것이 아니라 라반 자신에게매우 불쾌하고 못마땅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삼하 24:10)===31:29절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예쉬 레얼 야디) - '있다'란 뜻의'예쉬' 와 '나의 손'을 나타내는 '야디'가 '능력에게로'를 뜻하는 '레엘'과 합쳐져'내손의 능력 안에 있다'란 의미이다. 즉 야곱의 생사(生死)를 좌지 우지할 수 있는권한과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라반의 허장성세(虛張聲勢)에 찬 말이다.
====31:30절
사모하여 - (* , 카사프) - '창백하다', '열망하다'란 뜻인데 흰색을 띤'은 돈'을 가리키는 '케세프'와 관련되어 '지나치게 사모함으로 얼굴이 하얗게 되다'란 뜻이 된다. 여기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얼굴이 창백해 질 만큼 수척해진 것을 의미한다.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 라반이 격분하여 먼 길을 재빨리 추격해 온 가장큰 이유 중 하나이다. 여기서 신(神)은 드라빔을<19절> 말하는데 이것을 도난당하였다는 라반의 말은 우상의 무력함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삿 6:31;16:24;렘 10:5). 한편이것이 라반에게 중요한 이유는 (1) 조상 대대로 섬겨 온 가정 수호 신상이자(삿18:24) (2)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재산을 상속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17-42 강해, 드라빔 우상>.
===31:31절
두려워 하였음이니다 - 야곱이 몰래 떠나야만 했던 동기인 두려움은 (1) 피해 의식에 젖어 있던 라반 식구의 복수심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과(1, 2절) (2)변덕스러운 라반이 대가주(大家主)로서 불원 중에 그 가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여(30:26;출 21:4,5,6) 행여 처자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서 발단된 것이다.
===31:32절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 고대 함무라비(Hammurabi) 법전에 의하면 남의 신(神)을훔친 자는 사형이 처하도록 규정되었다. 또한 유대 랍비들은 이 말을 예언적 선언으로이해하여 '생명의 날이 다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야곱이 비록자신의 무죄함에 집착한 나머지 이런 말을 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분명 경솔한 발언이었다. 왜냐하면 그 결과 그는 드라빔을 훔쳤던 아내 라헬을 출산중 잃는 슬픔을 맛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35:16,17,18,19,20). 그러므로 오늘날도 성도 된 자는 자만심을버리고 겸손하고 신중한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잠 10:19;약 3:2-12).
===31:33절
찾지 못하고 - 라반은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해 야곱의 양떼를 뒤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신을 찾아 헤매었다. 이러한 행위는 우상 숭배자 미가의 말처럼 '네가내 신을 취해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인가'(삿 18:24)와 같은 우상을 향한라반의 강한 집착을 보여 준다.
===31:34절
약대 안장(鞍裝)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장거리 여행시 약대(낙타)를 많이 사용했었는데 이때 그 약대의 등위에 따로 분리해도 충분히 의자로 사용할 수 있는 요람모양의 안장을 부착했다고 한다. 특히 여인들의 안장은 카페트 등으로 쿠숀을 주어 장거리 여행에 아무 지장이 없게 했으며 또한 지붕과 양사면에 차양(遮陽)을 쳐 태양과모래 바람을 막았다고 한다.
===31:35절
마침 경수가 나므로 - 모세 율법(레 15:19) 이전에도 여인의 월경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 기간 중에 있는 여인은 종교 의식의 불참은 물론 외부와의 접촉마저금지 되었다. 라반이 구태여 라헬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 곧(1) 양털 깍는 축제 기간 중 여인의 부정으로 인해 더럽혀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며(2) 또한 감히 경수하는 여자가 가정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깔고 앉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뭏든 월경 중에 있는 부정한 여인의 밑에 수호신이 깔렸다는것은 우상의 무력함과 헛됨(사 46:1,2)을 여지없이 폭로해 준다.
====31:36절
노하여(* , 이하르) - '빨갛게 되다'는 뜻의 '하라'(* )에서 유래한말로 그 분한 정도가 극도에 달했음을 암시한다. 책망(* , 리브) - 일방적인 꾸짖음이라기 보다(느 5:7) 서로의 허물을 힐책하며 다투는 언쟁을 가리킨다(욥 9:3). 대적하여(* ,이안) - 기세가 등등하여 많은 말로 항변하다는 뜻이다. 나를 불같이...쫓나이까(* , 달라크 타 아하라이) - '계속 불을 붙인다'란 동사 '달라크'의 2인칭 과거형과 '나의 뒤'를 의미하는 '아하라이'가 합쳐져 '내 뒤를 열심히 추적하나이까'란 뜻이다. 특히 죄수를 혹독하게 추격하고 핍박할 때 사용되는 어구(語句)이다.
===31:37절
야곱은 마치 범죄인처럼 취급을 당하던 차에 라반 일행이 드라빔을 찾아내지 못하자 추적을 당하고 비난을 받으며 검색을 당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참았던 울분을터뜨리며 주위의 친척들에게 정당한 판결을 받기 원한다. 결국 라반은 먼 길을 쫓아와 도리어 무안만 당하게 되었다.
===31:38절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 성심 성의껏 양들을 돌보아 모두 건강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 암양은 고사하고 관례적으로 목자에게 허락되는수양 한 마리조차 잡아 먹지 아니했다는 뜻이다. 암양은 털과 고기 외에도 젖과 새끼를 낳아 주기 때문에 경제 가치가 더 컸다.
====31:39절
물려 찢긴 것 - 주로 방목에 의존했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의 습격이 잦았다. 여기서 '찢긴 것'이란 맹수에게 습격당한 양을 뺏기지 않기 위해 그 맹수와 맞서 싸웠다는좋은 증거가 된다. 물어 내었으며(* , 바카쉬) - 문자적으로 '요구하다'(사 1:12)란 뜻으로'당신은 (배상을) 청구했다'가 본문의 바른 직역이다. 즉 이는 라반이 잃어버린 양에대한 배상을 일일이 청구했음을 나타낸다.
===31:40절
무릅쓰고...당하며(* , 아칼) - 문자적으로 '먹다'(시 14:4;79:7), '삼켜버리다'(민 21:28;렘 2:30)란 뜻으로 직역하면 '나를 삼켜 버렸다'. 하란은 아라비아사막의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낮과 밤의 일교차(日較差)가 극심했다(시 121:6;렘36:30).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의 혹독한 더위와 추위 속에 몸서리쳤던 야곱의 북받힌 감정을 잘 드러내 준다. 한편 여기서 '더위'(* ,호레브)란 땅이 말라 갈라질 정도의 한재와 그러한 폭염 및 열기를 가리킨다(욥30:30;사 25:5). 그리고 '추위'(* , 케라흐)란 원래 '매끈하다'는 의미로 얼음을 나타내는 말로서 영하의 날씨를 암시한다(욥38:29)
===31:41절
품값을 열 번이나 번역. - <7절 주석>
====31:42절
우리...경외하는 이 - 야곱은 그의 조상들의 삶을 인도하셨고 또한 그 조상들이섬겼던(경외했던) 전능하신 하나님(엘로힘)을 언급하며 자신의 오늘이 바로 그분의 돌보심 때문임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역사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참 믿음의 한 특징이다.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 이것이야말로 20년간의 역경 속에서 견딜 수 있었던 야곱의 최대의 자원이었다(시 124:1,2).
===31:44절
언약을 세워 -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복 금지 명령과 야곱의 진실한 항변에 할말을 잃은 라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야곱과 화해의 언약을 세우기 원했다. 즉 (1)재산 상속권의 증표인 드라빔의 분실로 혹시 훗날 생길지도 모르는 재산권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과 (2) 야곱이 고향에 돌아가 부강하여져 과거에 당한 부당한 처사에 보복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 원했다. 그러나 이언약의 참된 의미는 그 조약의 책임과 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귀향을 라반이 정식으로 승인했다는 명분, 즉 라반의 체면 유지와 야곱 귀향의 정당성 확보라는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실 때에 이처럼 합법적으로 온전하게 해결해 주심을 보여 준다.
===31:45절
기둥으로 세우고 - 언약의 증표 혹은 경계선을 나타내기 위함이다.<28:18 주석>====31:46절무더기
- 제단 혹은 언약 식사를 위한 (54절) 식탁으로 사용된 듯하다.
====31:47,48절
여갈사하두다(* ) - 이 말은 '돌 무더기'를 뜻하는 '예갈'과'증거'를 의미하는 아람어 '사하두타'가 합쳐진 말로 '증거의 돌 무더기'란 의미이다. 갈르엣(* ) - '무더기'를 뜻하는 '갈'과 '증인' 나타내는 '에드'의 합성어로 '여갈사하두다'와 마찬가지로 '증인의 무더기'(the heap of witness)란 의미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라반과 야곱이 사용한 두 언어는 같은 셈족 계통에 속하였기때문에 그 당시 의사 소통에 있어서는 거의 불편이 없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성경최초로 아람어가 사용된 곳이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아람어를, 가나안 지역에서는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31:49절
미스바(* , 미츠파) - '지켜보다'란 뜻을 가진 동사 '차파'에서 유래한말로 '파수대'(Watchtower)를 의미한다. 이 이름은 서로 헤어진 후에 피차간에 약조를지키나 안 지키나 하나님께서 지켜 보아 주시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라반이 히브리어로 명명한 '갈르엣'의 또 다른 명칭이다. 훗날 입다(삿 10:17;11:11,19,34)와 사무엘시대에(삼상 7:5-16;10:17-24) 이곳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31:50절
박대하거나(* , 아나) - '괴롭히다', '압박하다'란 뜻이다. 이것은 당시일부 다처제 하에서의 한 아내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른 처(妻)에 의해 그 지위와권리를 빼앗기는 경우, 당하는 억압 상태를 우려한 말이다. 즉 이것은 기약없이 딸들을 머나먼 곳으로 떠나 보내면서 장인이 사위에게 부탁하는 인간 본연의 부성애가 발로된 말인 것이다.
===31:53절
아브라함의...조상의 하나님 - 야곱이 거론한 '이삭의 경외하는 이' 곧 절대자이신 여호와와는 차이가 난다. 즉 라반은 나홀과 데라 등이 섬긴 신(神)과 아브라함이섬긴 '여호와'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범신론적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31:54절
제사를 드리고 - 희생 제사를 뜻한다. 당시에는 언약이나 동맹 관계 등의 조약이체결되면 화해와 우정의 표시로 희생 제사가 드려지고 잔치를 벌여 먹고 마시는 것이관례 였다(26:28-30).
===31:55절
라반이...돌아갔더라 - 신정사(神政史)에서 이제 언약의 후손인 야곱의 상대로서의 그의 역할이 다 끝났기 때문에 라반은 이후 다시는 성경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한편 성경 원문에서는 본절이 다음 장(32장) 초두에 게재되어 있다.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탈취한 후 목숨을 보존키 위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기숙한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이미 전장(30장)에서 보았듯이 단신(單身)으로 피신했던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식솔과 풍부한 재산을 소유한 어엿한 가장(家長)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야곱의 도피 생활을 마감시키시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다(3,13절).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진행된 본장은 귀향에 앞서 가족들과의 상의(4-16절) 라반 몰래 하반을 떠남(17-22절) 라반의 추격과 드라빔 수색(23-35절) 그에 따른 야곱의 항의와두 사람간의 평화의 미스바 언약 수립(36-55절) 등의 사건으로 엮여져 있다.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다. 언약의 백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언약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야곱의 신앙은 여전히 미숙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귀향이 마치 주인의 집에서 도망가는 노예와 같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항상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능력과 보호가 내포되어 있는데 성도가 이것을 믿을때에 비로서 담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성도의 걸음마다 동행하시며 끝내 그의 삶을 통해 당신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하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록 성도가 실수할지라도 자신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1. 야곱의 귀향 결심(31:1-16)
많은 부를 축적했던 야곱의 20년 하란 생활과 도망가듯 급작스럽게 결행한 귀향 사건은 훗날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400년간 번성하다가 갑자기 가나안 귀향을 결행해야 했던 출애굽 사건과 동일한 맥락을 이룬다. 즉, 이 두 사건은 아브라함의 출(出)본토 사건(12:1)으로 시작된 선민의 떠남과 분리의 역사와 궤(軌)를 같이하는 사건들로서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것이 나그네 생활에 불과하며 비록 세상이 넘치는 풍요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후 5:1; 벧전 1:17).
한편, 이 떠남의 모든 근거는 직접 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이었으며, 떠나야 했던 장소는 당장은 부와 안녕이 있어 보이지만 끝내는 멸망받는 죄와 우상의 도시들이었다.아울러 떠나는 과정에는 각종의 시련들이 있었으나 가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모두 견더낼 수 있었고, 떠남의 목적지는 항상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서 하나같이 '믿음'으로 안착(安着)할 수 있었다(히 11,12장). 이제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목적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가 더불어 출(出)세상을 위한 거룩과 경건이다.
*야곱의 귀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역사는 결코 우연 발생적인 사건의 연속에 의해서나 아니면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진행되어져 온 것이 아니다. 역사는 분명 창조주 하나님의 목젓하신 바에 따라 그분의 간섭에 의해 계속적으로 인도되고 있다. 이는 전(全)인류사와 함께 하찮게 보이는 개개인의 역사에까지도 적용되는 진리이다.
야곱의 귀향행이 다뤄져 있는 본장은 바로 이같은 진리, 걷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과여하셔서, 그 개인을 통해 당신의 영광스런 목적을 섭리해 가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하란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환경(야곱의 번영에 대한 라반과 그 아들들의 시기)을 조성하신 후,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심으로써 새로운 삶을 추구하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역경과 시련을 제공하시고 더불어 피할 길을 지시하심으로 세속에 깊이 물들지 않게 하시며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도록 하신다(고전 10:13).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될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여정 동안에도 시련이 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야곱의 귀향행에 있어서 라반의 불같은 추격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귀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제공하고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그 시련 동안 실족하지 않도록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24,29,42절)이야말로 시련을 극복하고 계속 고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힘이 되엇다.
물질 만능주의 기승으로 인해 세상적인 잔꾀를 부리는 자가 성공하는 것같고 도리어 하나님은 공의도 사랑도 베풀지 않는, 역사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로 인식되기까지 하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는 어느 때보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요청된다. 실로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전내용은 인류 구속과 하나님 나라 건설이고, 역사의 궁극지향점은 새 하늘과 땅이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세 땅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주권적으로 간섭하시고 인도하셔서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게 하신다(빌 1:6;딤후 4:18). 그러므로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의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는 비관론적 낙관주의자(a pessimistic optimist)일 수 밖에 없다.
*벧엘 하나님.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 )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와 최초로 공식적인 예배를 드렸던 곳이며(12:7,8;13:3,4), 슬픔과 절망에 빠져 돌베를 베고 잠자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사닥다리 언약(번영의 약속과 후손에의 축복 및 가나안 땅에 대한 기업의 축복을 약속하심, 28:13-15)을 맺으셨던 장소이다. 아내 라헬에 대한 애정과 재산 증식을 위한 인간적인 술수 및 아들을 얻기 위한 아내들의 경합으로 얼룩졌던 야곱의 지난 20년 객지 생활 동안도 하나님은 그에게 번영과 자손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약속인 기업의 축복을 위해 당신이 '벧엘 하나님'되심을 계시하시면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벧엘 하나님'이란 '벧엘'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곧 벧엘에서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오는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수많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벧엘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승리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후 1:20;히 10:23).
2. 라반의 불같은 추격(31:17-42)
고대 근동에서는 겨울 우기가 그친 직후인 봄에 양털은 깍는 이른바 '목동들의 추수기' 를 맞게 된다. 이 양털 깎는 일은 한 해의 경제를 좌우하는 일일 뿐 아니라, 많은 일손이 필요 했기 때문에 많은 일손과 손님이 초청되는 큰 축제가 되었다(38:12; 삼상 25:1-4; 삼하 13:23). 이런 축제 분위기에 젖은 라반의 숙영지(宿營地)와 야곱의 숙영지는 사흘 길이나 떨어져 있었기에(30:36) 야곱에게는 이때가 도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하나님께서 많은 식솔과 가축을 얻게된(30장) 야곱에게 귀향을 친히 명령하셨지만(3, 13절), 라반에게 통보조차하지 않고 하란을 출발한 것은 벧엘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로서는 너무 졸렬한 처사였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와 '방법'이 필요하다. 이것을 가과해 벌릴 때에 인간적인 갈등과 고통이 따르게 마련인데 라반의 열화같은 추격이 바로 그것이다.
라반의 추격 이유는 야곱이 작별 인사도 없이 몰래 도망쳤다는 것과 가족 수호신인 드라빔(teraphim)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전날 밤 꿈을 통한 비상 섭리로써(24절) 라반의 마음을 절제시키시고 드라빔으로 인한 충돌까지 막으셨다(33-35절). 한편 위기를 모면한 야곱은 자신의 허물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 변명과 여태까지 섭섭했던 감정을 모두 털어놓음으로써(31, 32, 36-41절0 지난 20년간의 라반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토로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그 20년동안 내내지켜주시고 현재의 번영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야곱의 신앙 고백이다(42절). 야곱의 이러한 신앙 고백이야말로 야곱이 치졸한 도망꾼이자, 거짓말장이 이상의 존재, 곧 언약 후손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바른 역사관을 지니고 있었기에 어떤 역경속에서도 담대히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관(神관)과 역사관이 있는 자만이 불확실한 세대 속에서 확실한 삶의 지향점을 두고 살아갈 수 있다.
* 드라빔 우상. 드라빔(teraphim)은 고대 근동 지방의 가정 널리 안치되었던 '가정 수호신'으로서 주로 구복(求福)과 점술(占術)과 신탁(神託)에 관여했다(삿 17:5; 슥 10:2). 특히 일상 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이 우상은 몇 번에 걸친 우상 배척 운동에도 불구하고 바벧론 포수 시대까지 잔존하였다. 이것은 사람 형상의 나무(34절)에서부터 사람 실물 크기 만한 것(삼상 19:13)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한편 이 드라빔은 위에 언급된 종교적 영향력외에 그것을 소유한 자가한 가정의 재산 상속에 대한 합법적 자격과 가정의 지도력을 장악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소중히 다루어졌다.그러므로 목숨을 건 라헬의 드라빔 도적 행위(19절)와 이 드라빔을 되찾으려는 라반의 살벌한 행동(32,33절)은 너무도 당연한 처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드라빔 효용성에 대한 기대를 무참히 짖밟고, 또한 조롱하기까지 한다. 즉, 그 드라빔은 불의한 방법으로 탈취당했어도 아무런 저항 한 번 할 수 없었으며, 불결하게 취급되었던 월경하는 여인(레 15:19)아래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꼼짝할 수 없었으므로 무능한 우상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만 것이다(시 135:15-17). 이외에도 성경은 우상이 무인격체이며(신 4:28;시 115:4-7), 멸망받을 것이고(단 11:31;막 13:14), 인간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뿐더러(사 45:20)예배할 가치가 없는 (해 17:29)허무한 것(렘 10:5;단 5:23;합 2:18,19;롬 1:22,23;고전 10:19)이라고 지적 하였다.
3. 라반과 야곱의 미스바 언약(31:43-55)
라반과 야곱 사이에 존재했던 살의(殺意)와 공포 분위기는 (17-42절)모두 사라지고 이제 평화의 언약이 조인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언약은 본질적으로 그 내용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였으며 단지 이 언약을 통해 라반의 실추된 위신과 권위를 회복하고 야곱의 귀향에 대한 합리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사실 두 가람의 앞으로의 거주지는 엄청난 거리를 둘 것이었으므로 상호 불가침 조약(52절)은 별 효력을 발생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있어서 각자의 인격응마 세우게 하시고, 합리적인 관계를 이루게 하심으로써 마침내 참 평화가 정착되게 하신다.
* 야곱과 라반의 미스바 언약. 살의(殺意)에 가까운 격양된 감정의 추적자와 교활한 도망자 간에 서려 있던 긴장이 하나님의 중재와 간섭으로 풀어지고 둘 사이에 평화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히브리인들의 문제 해결의 특징은 인간 상호간의 문제를 자신들의 의견 개진(開陣)으로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있다. 라반과 야곱의 협정에도 이 신적 권위가 문제 해결의 열쇠였다. 즉, 라반은 아브라함과 나홀의 하나님을, 야곱은 이삭의 경외하는 하나님(53절)을 가리켜 각각 맹세하여 그 협정에 조인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들은 작자 개인만의 하나님이 아닌 조상들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이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신 의식은 히브리 종교의 우수성과 우월한 선민의식 및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영속적인 관계성 등을 잘 나타내 주고 잇다.
한편 미스바 언약(49절)이라고 일컬어지는 라반과 야곱사이의 이 언약은 길르앗 산에 세운 돌기둥과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그 증표가 되었으며 그 증표를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가하두다'라,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이라 불렀고<47절 주석> 라반은 자기의 딸들외에 야곱이 다른 아내를 취하지 말것과 돌 무더기를 넘어 서로가 침해하지 말자고 언약을 제기했다. 이 구 사람은 망대, 파수대, 지키는 곳이란 뜻의 '미스바'란 말이 의미하듯이 서로 이곳을 떠난 후에도 이곳에서의 약속 이행 여부를 하나님께서 지켜봐 주실것을 기원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치졸한 경쟁과 불협 화음을 잠재우며 평화와 안녕을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다는 사설이다(왕상 2:23; 사 9:6; 26:12; 롬 15:33; 살전 5:23).
창 31:1,2
야곱이 부자됨에 따라 라반의 아들들과 라반 자신은 그에게 호감(好感)을 가지지 않았다. 물질은 이렇게 분쟁을 일으키는 법이다.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물질로 인하여 저렇게 급변(急變)된 불안한 환경에서, 야곱은 이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사람이 불안한 환경을 당할때마다 그곳을 떠날 것은 아니지만, 혹시 떠날 경우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경우이다. 이 때에 야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야곱이 그 모은 재물을 빼앗기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었다. 그 때에 야곱이 라반의 수하(手下)에 계속 머문다면, 이때까지 모은 재물을 다시 라반에게 빼앗기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야곱더러"돌아가라"고 하셨다.하나님은 물질 문제 그것을 중요시하여 야곱더러 떠나라는 것은 아니었다.다만 일찌기 야곱의 서원(誓願)한 기도대로 주신 물질을 가지고 그가 떠나야겠기 때문이었다(28:20-21).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이렇게 자세하고 진실하게 이루어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여주시는 것 이상 안전 보장이 없으며, 또한 그 이상 큰 축복도 없다.
창 31:4-9
야곱은, 그의 아내들과 하란을 떠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아내들에게 라반의 안색이 좋지 않아진 것을 알려 주면서 그 때가 위기(危機)인 것을암시한다(5절 상반). 그러나 그는, 그런 위기에도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 가는 행동을취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므로 두려울 것없다고 한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 (5 절 하반)고 한말이 그 뜻이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만 하신다면, 사람들의 모해가 문제될 것 없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신 과거의 역사를 진술하고, 또한 현재에도함께 하여 주심을 그들에게 알려 준다. (1)그의 외삼촌이 과거에 자기를 경제적으로착취하려고 하였으나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였다고 함. 곧, 아롱진 양을 자기의 삯으로 정하였을 때에 온 양 떼의 낳는 것이 아롱진 양이 되었다는 것이다(30:32-43참조).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산업을 번영케 하여 주셨다. 이 사실을 증거하기위하여, 그는 꿈 이야기를 하였다(10-13). 우리는 보통으로 꿈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계시 시대(啓示時代)에 있어서 족장들이나 선지자들을 통하여 발표된 꿈은, 권위 있는계시의 방편(方便)이다. (2)현재에도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는 증표는, 하나님께서 그더러 하란을 떠나라고 하신 것으로 알 수 있음(13절).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나타나셔서 그의 서원(誓願)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창 31:14-16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1)저희들의 아버지 집에 더 머문다 하여도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14-15). (2)그들이 이때까지 얻은 재물을 자기들의 소유로 보존시키기 위하여서 떠나야 된다는 것이다(16절).
창 31:17-20
라반은 야곱의 일행이 떠난뒤에, 급히 뒤쫓아 가서 칠일 만에 그들에게 이르렀다.야곱과 그 가족이 하란을 떠날 때에 재물을 가지고 떠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서원 기도(28:20-22)을 이루어 주사 그것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헬이 그 아버지의 "드라빔"을 가져온 것은 잘못이다.
"드라빔"(* )은 사람 모양으로 된 가정 수호(家庭守護)의 우상이다. 삼상 19:13 참조.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스라엘 민족도 이와 같은 우상을 섬기는 과오를 범하였다.
"강을 건너"갔다는 것은 유브라데 강을 건넜다는 의미이다.
창 31:24-27
2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야곱과 그 가족을 해하지 말라고 계시(啓示)하셨다. 라반은 야곱을 책망한 뒤에 그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으 부탁하신 말씀때문에 해하지 못한다도 하였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28:20-22)를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그의 원수도 제가어하여주신다. 물론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일에 있어서, "드라빔"을 도적하여 가는 것 같은 일은 실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데 있어서 변함이 없으시다. 라반이 야곱과 그의 가족을 뒤쫓아 "칠일 길"이나 달려와 따라잡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자기에게 인사 없이 떠났다는 것(28절)과 자기의 "신"("드라빔")을 도적했다는 것이다(30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이렇게 작은 문제를 가지고 크게 노한다.
창 31:31,32
야곱은, 여기서 라반의 따지는 말에 대답한다. 그는, 자기가 라반 모르게 떠나게된 이유를 진술했으니, 곧,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이 이유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20년 동안 살 때에 라반의 불의한 행동을 많이 겪었다(7절). 그러니만큼 그는 여기서이렇게 말하게 된 것이다. 그는 또한 그 장면에 있어서 너무 심한 말을 하였으니, 그것은, 그가 외삼촌의 소유를 부당하게 가져온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기의 청렴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자기 권리에 속하지 않은 것은취하지 않는데 있어서 청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심도 사실이다. 그에게 결점도 있었으나 이런 장점도 있었다. 다만 그 외삼촌의 "신"(神)을 도적하지 않았다고 장담한 말은, 그가 라헬의 행동을 알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그 사건은라헬 혼자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32 절 하반).
창 31:33-35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얻지 못한지라. - 라반이 "드라빔"을 찾는 중에, 라헬이 그를 속인 바 있었다. 그가 드라빔을 감춘 것이 발각되었더면, 야곱의 말대로(32 절) 그들은 라반에게 행패를 당했을 번하였다.
야곱이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었다(3 절).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이 확실하다.
창 31:36-42
야곱은, 이제 라반의 잘못을 지적하는 의미에서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이 말로인하여 저 강퍅한 라반도 양심에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이 말이 보여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아무 죄 없는 저희들을 라반이 "불 같이 급히 쫓"아 왔다는 것(36 절). (2)라반이 자기의 물건을 야곱의 "가장집물 중에"서 찾지 못했다는 것(37 절). 다시 말하면, 공연히 남을 도적으로 혐의를 씌웠다는 것이다. (3)자기는 "이십 년" 동안이나 외삼촌을 위하여 충성되이 일을 보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외삼촌이 자기에게 줄 "품값을 열번이나 번역"하였다는 것(38-41).라반의 이와 같은행동은 배은망덕이라고 할 수 있다. (4)자기에게 대하여 외삼촌은 이렇게도 끈덕지게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도와 주신다는 것이다(42 절).
창 31:43
여기 기록된 라반의 언사는, 아직도 야곱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無知)를드러낸다. 그의 말 중에, "양 떼는 나의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고 한 것은, 야곱의 수고한 값으로 그의 소유가 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다. 이렇게 탐심은 사람을 어둡게 만들어 남의 권리를 인정할 줄 모르게 한다.
창 31:44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위에 기록된 야곱의 양심적인 언사는, 라반의 양심을 찌를 만하였다. 그렇기 때문에다음 귀절을 보면, 라반이 야곱을 두려워하여 화친 조약을 제안하였다.
창 31:45-48
야곱이 라반으로 더불어 화친 조약을 맺음에 있어서 두 가지 기념물을 만들었으니,하나는 기둥이요, 다른 하나는 돌무더기였다(45-46). 이 기념물들에 대하여 세 가지칭호가 불리워졌는데, (1) "여갈사하두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아람말로서 "증거의 무더기"란 뜻이며, (2) "갈르엣"(* )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히브리말인데 역시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3) "미스바"(* )라고 하였으니, 이는 히브리말인데 "망대"라는 뜻이다. 라반은 이 기념물을 통하여 야곱의 지켜야 할 몇 가지 의무를 당부한다. 그 때에 야곱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라반이 저렇게 야곱에게 많이 부탁한 것을 보면, 그 자신이 도리어 공포심으로 당황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신앙이 없는 자는, 쉽게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잠 28:1에 말하기를,"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다.
"야곱이...맹세하고...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 인 것은, 일종의 화목의 의미를가진다. 물론 라반도 그 자리에 참가하였을 것이다. 여기 "형제들"이라고 한 것은 친족들을 의미한다.
창 31:55
라반은 이제 안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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