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3:1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 성경에 기록되 여자들 중에 향수(享壽)한 연수를 밝힌 것은, "사라"에게서만 볼 수 있다(Delitzsch). 이것은 그에게 대한 특별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로서 약속을 받은 조상이다(벧전 3:6; 히 11:11).
창 23: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가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 "기럇아르바"란 말(* )은 아라바 도시(都市)라는 뜻인데, 그것은 헤브론 땅의 별명이다(35:27; 수 14:15).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슬퍼한 사실이 여기 간단한 말씀으로 기록되었으니, 그것은, 내세의 소망을 가진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졌을 적당한 태도이다(살전 4:13).
창 23:3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 그 때에 아브라함이 슬픔에 잠겨 있지 않고 매장할 일을 위하여 일어난 것은, 역시 신앙자의 합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다윗이 그 앓는 아이의 낫기를 위하여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이레만에 그 아이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여호와께 경배한 뒤에 음식을 먹은 일과 같다(삼하 12:15-23).
3-20절에는, 사라의 시체를 매방하기 위하여 묘지를 매수하는 일에 대하여 길게 기록되어 있다. 이 일이 이렇게 자세히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라의 묘실이 된 막벨라 굴은 그 후에도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함께 묻힌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25:9, 49:30-32, 50:13). 그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다 죽은 흔적을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헷 족속에 대하여는 10:15을 참조하여라.
창 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말을 보면, 가나안 땅을 주시마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그로서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사실이 알려진다. 하나님께서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400년 후에야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셨으므로(15:13-16), 그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존중히 여겨서 그 당시에는 자기가 그 땅의 주인이 아닌 사실을 신앙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본장에 기록된대로 아브라함은, 헷 족속 앞에서 여러 차례(4, 7, 12) 극히 겸손하게 "나그네"의
태도를 표시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 내용을 그대로 지켜 나간 경외(敬畏)의 태도였다.
창 23:5,6
여기 기록된대로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대단히 존경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명실공히 사람들 앞에서도 빛과 소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그를 존경하였다.
"하나님의 방백"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네시 엘로힘(* )이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임금"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축복 받은 사실을, 그 주위의 이방인들도 잘 알았다. 그 때에 헷 족속은 이렇게 아브라함을 존경할 뿐 아니라, 좋은 장지(葬地)를 거저 주겠다고 한다.
창 23:7-9
몸을 굽히고 - 아브라함은 헷 족속 앞에서 어디까지나 나그네로서 겸손히 처신하였다.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으로 약속 받았지만, 그것은 400년 후에야 성취(成就)될 것이므로(15:13-16), 자기는 어디까지나 그 땅을 주장하지 못할 나그네로 처신하였다. 이것이 그의 신앙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땅 값을 주고 묘지를 허락 받고자 하였다. "막벨라 굴"은, 헤브론의 좁은 골짜기 동쪽에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그곳을 회회교들이 파수한다고 한다. 팔레스틴 풍속은 흔히 시체를 굴 속에 둔다(요 11:38).
창 23:10,11
여기서는, 막벨라 굴의 소유자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후의(厚意)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굴 뿐 아니라 밭까지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땅 족속들에게 늘 선하게 행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참된 기독교인의 모본이다.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 여기 "동족 앞에서"란 말은, 거기 암석한 모든 헷 족속 사람들을 증인으로 한다는 것이다.
창 23:12,13
아브라함은, 여기서 그 장지(葬地)를 거저 받지 않고 댓가를 내고 사용하겠다고 두번째 말한다(9절 참조). 이번에도 그는 몸을 굽히고 겸손히 청원하였다.
"몸을 굽히고"란 말이 이렇게 두 차례(7, 12)나 나오는 것은, 그의 겸손을 강조하여 말하는 것이다.
창 23:14,15
"에브론"은 여기서도 또 다시 그 후의를 표시한다. 곧, 아브라함더러 장지를 거저 가지라는 것이다.
창 23:16-19
아브라함은 끝까지 에브론에게 댓가를 주고 장지를 받았다. 그는, 때가 이르기 전(400년이 차기 전)에는 그 땅을 거저 받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 내용을 그대로 지키는 신앙 행동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였으므로 그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자가의 결백을 나타냈다.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처신은, 공연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신자는, 탐심을 우상과 같이 피하며, 결백을 신앙의 생명 같이 생각하여 지킨다.
창 23:20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매장지"를 매수(買收)한 사실에 대하여, 여기서 거듭 말한다. 이렇게 거듭 말하는 것은,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가? 그것은 이 사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곧, (1)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끝까지 소유하지 못한 나그네이면서도 그 약속 성취의 대망자(待望者)로서 끝까지 참았다는 것과, (2) 후대인들로 하여금 그의 생활을 보고 그의 신앙을 모본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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