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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

어떤 학자들은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시작할 때에"라고 한다. 이렇게 번역될 때에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이 시점(時點)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의 창조 역사는 2절부터 시작할 터인데,

그 일을 여기서 서론적으로 말한 것 뿐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역은 문맥과

부합하지 않는다. 2절에 있는 "땅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 )"또 땅이"

뜻인데, 여기 ""란 말은 그 번역(위에 소개된 1절에 대한 번역)과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절의 번역은 우리 한역이 잘 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천

지를 창조하신 것을 말한다.

"창조"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빠라(* ),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서만 쓰는 말이다(G. Ch. Aalders, De Goddelijke Openbaring in De Eerste Drie

Hoofdstukken Van Genesis, p. 207). 이 말이 여기서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천

지를 지으신 사실을 가리킨다.

1절 말씀에 있어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 =엘로힘)이란 말이다. 천지

만물 창조에 대하여 기록하는 모세의 목적은, 인간을 섭리하시며 구원하시며 벌하시는

이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려는데 있다. 성경은 구속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구속자(救贖者)가 누구이심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구속자는 만

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자가 아니고서는 죄 때문에 멸

망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121:1-2 ; 4:23-31).

 

 

1:2

 

- 접속사( ,)와 정관사( , )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이다.

여기서는 '지구'를 가리킨다.

혼돈하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에 생명체가 살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정돈

된 상태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이다. '혼돈'에 해당하는 원어 '토후'( )

'공허', '헛된 것'(삼상 12:21;40:17)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전혀 형체가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공허하며- 원어 '보후'( )는 사 34:11; 4:23에서 '공허한'(void)으로 번

역되었는데 이것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미처 아무것도 갓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

, 무가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

조화된 모습을 갖추고M지 있지 않고,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

고 텅빈 상태였다란 뜻이다. 한편 본절의

하고...하며는 카오스적인 존재(存在,was) 상태를 뜻하는 말이지 일부 학자들의 주

장처럼 거역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변이(變移,become)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

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

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

해당하는 원어 '테홈'( )은 때로 '깊은 바다'(42:7;31:15)나 지하

물의 근원지(7:11;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창조된 원시 형태의

지구가 물 혹은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사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

었을뿐임을 뜻하는것 같다.

하나님의 신( , 루아흐 엘로힘). - '루아흐'는 때로 '바람'(8:1)

이나 ''(9:18)을 가리키기도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깊은 물의

표면에 불게하신 바람으로 이해하기도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3위 하나님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천지 창조시부터 이미 삼위 하나님께

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셨음을 암시해 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26).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2:1-4)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35:31; 3:10; 왕하 2:1215; 대상 12:18;

11:24).

운행하시니라 - 원뜻은 '알을 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새가 새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

의 삶의 장소를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심을 의미한다.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 "하나님이 가라사대"(*

=와요멜 엘로힘)란 말씀은 본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

나님이 가라사대"란 말씀이 초두부터 자주 나타나서 기독교가 말씀의 종교임을 보여

준다.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

(1) 무언 창조(無言創造)였더면, 범신론(汎神論)이나 진화론(進化論)의 세계관(

界觀)에 언질(言質)을 줄 번하였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신()은 살아 계신 신이시

. 말하는 것은 인격(人格)이다. 말하지 않고 무엇을 형성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유출(流出)이나 진화와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성경의 창조론이 하필 말씀으로써의 창

조를 고조한 것은, 유신론(有神論) 체계(體系)에 살깊이 부합하나니, 이것이 우연한

말이랴!

(2)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에 꼭 그대로 모든 좋은 것들이 창조되곤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역시 약속 체계(約束體制)에 속하는 창조론이다. 그의 말씀은 진실하다.

에게는 무실(無實)한 발언(發言)이 전혀 없다. 55:10-11에 말하기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

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

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됨이 없다 . 그에게 있어서는 말씀이면

그만이다. 말로써 만족하지 못할 세계는 인생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는 언행(

)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행에 있어서는 나누어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는 언제나 이루어지고야 만다. 하나님

의 말씀 앞에서 그것을 사실과 같이 여기지 않는 심리는, 하나님의 말씀 대하기를 인

생의 말 취급하듯 하는 데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다 이루신다.

말씀대로 전부 이루시되 그 성취의 대부분이 단시일 안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그 이루어지는 형편도 반드시 다 나타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3)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없는 데서 만물을 있게 하시는 능력을 보여 준

. 이 능력은 우리의 믿음을 일으켜 준다. 그러나 우연(偶然)에 의하여 만물이 되

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은 어떤 빛을 의미하였을까?

(1)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태양 빛이 아니고 전기 빛과 같은 어떤 빛일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은 태양에 자리잡고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아니고라도

존재할 수 있는 빛이 빛이 창조되었을 것이다. (2) 또 다른 학자들은, 그 때에 땅을

감싸고 있는 수증기와 구름을 통하여 비취어 오는 태양 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때에 태양은 아직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네째 날에야 나타나 보인다

(14-19).

모든 피조물 중에도 빛이 최초에 창조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이유는, 빛이 있

어야 모든 것이 구분되고 또한 생물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 :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여기 이른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말씀은 중요하다. 이 말이 본장에 여러 번 나온

(4, 11, 13, 18, 20, 25, 31). 이 말씀을 보면,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물질 개악설(物質皆惡說)은 성경과 위반된다. 우리가 물질을 바로 쓰기만

하면 유익하고 선을 이룬다. 맨 처음에 피조물이 좋았다 함은, 인류의 범죄 후에도

그것이 구원의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

(Barth), 여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문구가, 은혜 계약의 외부적 근거로

하나님에게 좋게 보였다는 뜻이라고 한다(KD. III/1, p. 230). 바르트(Barth)에 의하

, 여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말은 피조물들이 그리스도의 속죄 역사의

대상으로 합당하게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은혜 계약은 창조 질서의

목표라고 힐 수 있는데, 그 의미는 본래부터 그러하고 추후에 해석적으로 그렇게 부가

된 것이 아니다. 창조의 역사에 다른 역사(救贖史)가 후종(後從)하였다는 말은 옳지

않다. 구속 역사의 필연성은 창조 질서의 특징이며,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KD. III/1, p. 262). 그러나 바르트(Barth)의 이와 같은 창조관(創造觀)은 구

속론에 대한 성경의 명문(明文)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견해이다.

 

 

1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 - 여기 ""이란 말을 히브리 원어로는 욤(* )이라고 한다. (1) 오리

(Origen), 이 말이 상징적 의미(象徵的意味)을 가지어 각기 피조물들의 등급(

)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2) 빠실루스(Basillus the Great), 그의 설교(창세기 1

)에 말하기를, 여기 기록된 날들의 길이가 다 같지 않을 것이라 하였고, 그와 같은

해석으로 어거스틴(Augustine)은 말하기를, 처음 세 날은 오늘날 우리의 하루와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3)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한 시대를 의미한다고도 하였다.

(4) 칼빈(Calvin)과 루터(Luther), 본장의 한 날을 24시간으로 보았다. 피털스(A.

Pieters)는 말하기를, "종교 개혁 이전에는 학자들이 창세기 1장의 한날을 24시간의

하루로 해석하지 않았다. 이것을 24시간의 하루로 계산하기는, 지나간 400년 동안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24시간과 같은 짧은 기간에

도 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1 : 6,7,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

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

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

"궁창은 히브리 원어로 라키아(* )니 허공을 가리킨다. 땅이 처음 창조된 때에

, 구름과 같은 빽빽한 수분(水分)으로 싸여 있었기 때문에 땅 위에는 공간이 없었

. 그러나 이제 그 수분의 일부가 응고(凝固)되어 땅으로 내려 갔고, 일부는 증발되

어 올아 감으로 공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

"하셨다는 말씀 그 뜻이다. ""이란 말에 대하여는, 5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 참

.

 

 

1 : 9,10.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

니라 하나님이 뭍은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의하여 """바다"를 형성(形成)하셨다.

형성 과정은 일면 합리적(合理的) 순서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의 직접 간접으로 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하여 자연 법칙과 모순되어야 한다

고 할 것은 없다. 하나님의 간섭은 자연 법칙을 이용하실 때도 있다.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바다"를 만드신 것은, 땅 위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잘못 말하기를, 우연히 땅에

서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달()이 되었는데, 그 떨어진 자리가 태평양과 같은 바

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에도 맞지 않는 말이다. 사실상 태평양 같은 바다들

은 땅 위의 온도를 조절하고 있다. 그것은 뜨거운 여름에는 태양의 열을 흡수하여 땅

위의 기후를 조절하므로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하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는 흡수하였

던 열을 발산(發散)하여 기후를 덜 춥게 만든다. 만일 큰 바닷물이 없다면, 땅 위의

사람들이 여름에는 타서 죽고 겨울에는 얼어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가

하나님의 계획적인 창조로 되었다고 믿으며, 우연의 발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본 라드(Von Rad), 여기 "바다"를 위의 2절에 있는 "깊은"(* )과 관련시켰

, "깊음"을 바벨론 신화의 티아맛(Tiamat=바다로 상징된 )과 관련시켰다. 그래서

그는, 이 점에서 말하기를, 바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였다(Genesis,

p. 52). 그러나 성경 저자는 바벨론 신화(神話)를 모방할 리는 만무하고, 또 우리 본

문에는 그런 사상이 없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보시고도 좋게 여기셨다고 한다(10

).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위의 4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1 :11,12,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

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

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 하나님께서 동물(動物)을 지으시기 전에 먼저 식물(植物)

을 내시는 것이 합리적 순서이다.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사는 것인 만큼, 먼저 식물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할 만한 문구는, "각기 종류대로"(*

=레미노)란 말이다. 이 말이 여러번 나온다(11, 12, 22, 24, 25). 이 말은,

()의 근본적 변천(變遷)을 주장하는 진화론(進化論)을 반대한다.

 

 

1:14,15,16,17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지으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그것들이

사람을 돕기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주야"(晝夜)가 나누이는 것이나(14),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어지는 것이나(14), 빛이 땅에 비취는 것

)17), 모두 사람을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

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부분(14-19)에서 우리가 특별히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체(天體)들을

만드신 사실이다. 특별히 오늘날에 우주 과학(宇宙科學)이 발달되면서 천체들(별들)

의 경이(驚異)가 더욱 알려진다. 어떻게 저 빛나는 천체들이 허공(虛空)에 달려 있을

? 또한 그것들을 어떻게 그렇게도 정확하게 궤도(軌道)를 따라 움직일까 ! 우리는

이것을 보고 두 가지를 깨닫는다.

(1) 하나님의 깨달음. 자연계(自然界)에 있는 모든 질서와 이법(理法)은 그것을

지으신 이의 존재를 알게 한다. 질서와 이법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언제나 인격(

)의 산물인데, 이 사실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

과서에는, 질서와 이법으로 되어 있는 자연계를 연구 대상으로 취급한다. 거기에 들

어 있는 재료들(질서와 이법)은 인간의 두뇌로 지어낸 것이 아니고 자연계를 원본(

)으로 하고 베낀 것이다. 교과서가 인격의 활동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라면, 더욱이

그 원본인 자연계야말로 우연의 산물일 수 없고, 인격(인격적 실존이신 하나님)의 산

물이다. 교과서도 책이거니와, 자연계도 일종의 책이다. 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

. 사람이 인쇄소에서 활자들을 한 줌 집어거 뿌림으로 책이 될 수 있는가? 몇 만번

그렇게 해도 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식을 전하는 책은 다음과 같은 과정들을 거

쳐서 된다. , 인격인 사람이 머리를 써서 원고를 작성하고, 그 원고를 다시 인쇄소

에 보내어 문선공(文選工)이 활자를 뽑고, 식자공(植字工)이 조판한 후에 인쇄와 제본

을 경유한 뒤 비로소 책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자연계(日月星辰 같은 것)는 무한

(無限大)의 인격적 신(人格的神)이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로빈손 크루소

(Robinson Crusoe)가 파선을 당하여 어떤 무인도(無人島)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처음

에는 거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후에 그는 거기서 사람의 큰 발자국을 발견하고

거기 사람이 사는 줄로 확신하였다. 그와 같이, 우리는 자연계를 보고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1:20).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손 자취이다.

(2) 자연계(日月星辰)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

조하시기 전에 먼저 이런 것들을 만드셔서 그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셨다.

명히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신 일의 순서는, 그의 사랑을 보여 준다. 다시 말

하면, 그가 일월성신을 지으셔서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여 주셨다. 특별히 여기서 해

를 가리켜

"큰 광명"이라 하시고, 달을 가리켜

"작은 광명"이라고 하신 것은 뜻이 있다. , 그것은 인간에게 비취기 위한 존재

들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어에 해와 달에 대한 명칭이 있으되, 저자 모세는 그 용어들

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광명이라고 하였다.

 

 

 

1:20,21,22,23

 

하나님께서,

"물고기"

""를 지으셨다. 이것이 동물로서는 처음 생긴 순서이다. 식물이 있은(11-12)

음에 동물이 지음 받은 것은 합리적인 순서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

닫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활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땅과 바다와 해와 달을 지어 주

셨을 뿐 아니라, 이런 동물들도 지어 주셨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동물들도 있어야

된다. 그것들은 사람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새들은 사람들에게 기쁨

을 준다. 새들이 없는 곳은 쓸쓸한 사막과 같다. 그러므로 문명한 나라일수록 새들

을 잘 보호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생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부수적(附隧的)인 것

들도 창조하셨다. 그의 사랑은 이렇게 자세하시다.

 

 

 

1:24,25

 

하나님께서 육지에 사는 동물들을 창조하셨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바

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하나님께서 사람을 맨 나중에 지으신 뜻이 있다. 그것은, 그에게 만물과 환경이 먼

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세상은 단순한 가능서의 상태 곧 혼돈한 덩어리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조직된 세계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인간도 할 수 없는 어린 애기로 지음 받아

거기에 놓아둠이 된 것이 아니고, 성숙한 남녀로 지음 받아 거기서 살게 되었다.

렇게 됨으로만 그 세계는 발전되어 나갈 수 있었다"( De wereld werd niet geschapen

in den toestand van zuivere potentie, als een chaos of nevelmassa, maar als een

kosmos, en de mensch werd daarin geplaatst niet als een chaos of hulpeloos

wicht, maar als man en vrouw; alleen van zulk een gereede kon de ontwikkeling

uitgaan. - Gereformeerde Dogmatiek II, bld. 656).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

님을 알 수 있도록 지으신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된 것은 모든

동물들과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것은, ()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가리킨다(4:24).

 

 

 

1:27,28,29,30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명(使命)을 주셨다. , 그들로 하여금 그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땅을 정복하며 자연계를 다스려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 ?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독립시켜려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1) 인간으로 말미암아 자연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임.

8:6-9을 보면 인간이 만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다.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8:9)라고 하

였다. (2)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복속케 하려는 것임. 그는, 만물

지배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 바칠 제물도 소유

한 제사장이 되어진다. 그는, 만물을 지배하므로 하나님을 알며 섬기는데 힘을 얻는

. (3) 또한 그것은 자연계에 매이지 않고, 또한 섬기지도 않고, 그것들을 지배하므

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피조

물을 섬기거나 또는 그것들에게 끌릴 때에 하나님과는 멀어진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을 위하여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으로 피조물을 정복하며 초월할 때에 하나님과 가까

와진다. 이렇게 인생이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때에 하나님을 알게도 되고 섬기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만물을 탐하여 만물의 종이 되어 그것들을 섬길 때에는 어두워지

고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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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29장
21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0장
20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1장
19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2장
18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3장
17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4장
16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5장
15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6장
14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7장
13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8장
12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39장
11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0장
10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1장
9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2장
8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3장
7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4장
6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5장
5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6장
4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7장
3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8장
2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49장
1 창세기 박윤선 주석, 창세기 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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