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1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 '진실과 의'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보여주신 그분 자신의 품성이다(89:19-37). 이것은 죄인된 우리가 응답받기 위하여 기도할 때 가장 먼저 고백하고 인정해야 할 덕목이다. 즉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우리 자신의 어떤 상황이 아니라 그분의 이 품성에 호소하는 일, 그것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취한 것과 동일한 근거이다:"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9).
=====143:2
심판을 행치 마소서(* , 알 타보 베미쉬파트) - 직역하면 '심판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주십시오'이다. 시편 저자는 그의 회개를 촉구키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징계의 몽둥이 곧 대적들의 사악함을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었다.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 이와 유사한 부분들에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불의함에 대한 깊은 자각을 드러낸 바 있는데(욥 42:1-3), 시편 기자도 지금 그것과 유사한 자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언약을 근거로 자신과 그의 박해자들 사이에서 판단해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10-12절). 말하자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비추어 볼 경우에는 하나님 앞에의로운 자가 없고 다 멸망받아 마땅하지만(14:2;130:3;욥 4:17;9:2;15:14;25:4;롬 3:20),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기준에 놓고 보았을 때에는 자신과 그의대적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이제 그들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Anderson). 시편 기자는 자신의 불의의 대가로 자신이 고통으로부터 놓여지기를 언약 관계를 의지하여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진술은 다윗의 몇몇 다른 시편들에서 엿볼 수 있는 자신의 결백함에 대한 고백과 일견 배치되는 듯이 보인다(7:3-5). 그러나 결백함에 관한 고백은 신앙의 정도(正道)를 좇아 살아가던 중 악인들로부터 부당하게 핍박받았던 상황에서 나온 것인 반면에, 본문의 경우는 자신 또한 어쩔 수 없이 범죄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인생임을 절감한 상황에서 한 말이라는 점에서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VanGemeren).
=====143:3
원수가...(* , 키 라다프) - '왜냐하면 원수가...'라는 뜻이다. 이어지는 내용의 문맥을 고려하건대, 본절은 대적들의 강포스러운 핍박 자체에 대한 고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보다는 저자가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 이유가 철저한 죄의식의 자각 때문임을 밝히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즉 외적인 고통, 박해, 징벌이 그에게 밀어닥쳤을 때 시편 기자는 영의 눈을 뜨게 되었고 냉정히 자신의 마음을 살펴본 후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죄악을 깨달았으며, 그 결과 그는 깊은 죄의식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렸을 것이다. 본 구절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이 범죄로 말미암은 징벌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구절, 즉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2절)에 부속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 디카 라아레츠 하야티) - 여기서 동사 '디카'(* )는 그 의미가 '굴로 만들어버리다', '잘게 부수다' 등이다(72:4;89:10;욥 6:9). 그렇다면 본문의 의미의 강도는 개역 성경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보다 훨씬 세다 하겠다. 저자는 마치 땅 위에 내던져진 후 그 몸이 부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함으로써 당시 자신의 고통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 시편 기자는 흑암, 곧 지옥과 같은 곳에 자신이 버려진 것과 같은 처참함을 느꼈다. 성경은 흔히 지옥, 스올, 지하 세계를 우울한 곳, 어두운 곳으로 묘사한다(88:6;미 7:8). 또한 본문은, 시인이 일국(一國)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랜 전에 그 이름이 잊혀진 자와 같이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처지에 놓여졌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암시는 다윗이 만년에 직면했던 압살롬의 반란을 연상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143:4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 '상하며'의 히브리어 '아타프'(* )는 '쇠약해지다', '압도당하다', '졸도할'는 뜻이다. 107:5;142:3 등에서 동일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 본문의 의미는 거의정신을 잃을 지경에 놓였다는 것이다. 본 구절에 대하여 칼빈(Calvin)은 유익한 주해를 적고 있다: '그의 외적인 고통을 말하고 난 후 저자는 이제 그의 영혼이 극도로 쇠약해졌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감정은 슬픔으로 인하여 거의 졸도할 지경에 놓였던 반면, 그는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아 절망으로 추락하지 않고 재기할 의욕을 찾게 된다.' 즉, 그는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과거 하나님의 행사를 회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5, 6절).
참담하니이다(* , 이쉬토멤) - 문자적인 뜻은 '소스라치게 놀라다' 혹은 '마비를 일으키다'이다. 아마도 시편 기자는 절망적인 놀라움(혹은 당혹감)을 심장 마비에 비유하여 맹쾌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my heart within me is desolate, KJV; I am paralyzed with fer, LB).
=====143:5
옛날 -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개인을 위해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섭리적 돌봄은 물론이고 민족 구원사도 포함된다 하겠다. 개인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저자의 가슴에 영적 소용돌이, 격동을 일게 했고, 그 사실은 마침내 그로 하여금 과거의 그 하나님께서는 현재에도 강하고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분임을 새롭게 확신케 만들었다. '개인적 경험은 신앙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러나 보다 확실한 근거는 민족 역사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역이다'(Rodd).
=====143:6
손을 펴고 - 기도하면서 손을 뻗친다는 것은 탄원자의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의존을 나타낸다(28:2). 그 손은 평안한 안식을 얻기 위하여 어머니의 젖가슴 위에 뻗치는 연약한 아이의 손을 연상케 한다(Perowne).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 나프쉬 케에레츠 아예파 레카 셀라) - 히브리어 단어 배열을 보면 독특하게도 '나프쉬'(* ), '케에레츠 아예파'(* )라는 명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동사는 없다. 그렇다면 주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이 경우 두 명사 중 어느 명사에 그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그 까닭은 동사가 없는 경우 형용사의 꾸밈을 받는 명사가 강조된 것이고 그것이 주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살펴보니 본 구절에서는 '아레츠'(* ), 곧 '땅'이 형용사 '아예파'(* )의 꾸밈을 받고 있다. 여기 '아예파'(* )의 뜻은 '지친', '갈망하는' 등이다(사 32:2). 그러나 문맥상 '땅'이 주어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당, 특히 지치고 메마르며 무엇을 갈망하는 땅, 그러한 특성의 땅이 강조되고 있음을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주체(주어)는 '내 영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혼이 환난과 핍박으로 인하여 지친 상태, 영혼의 절박한 상태, 그것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 본 구절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맹렬한 열기 속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비를 요청하기 위하여 그 입을 벌린 듯 금이 가고 갈라져 있는 땅을 우리는 쉽게 상살할 수 있다'(Calvin).
=====143:7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 칼타 루히) - 이 같은 표현은 (원문상의)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볼 수 있지만, 84:2의 '내 영혼이...쇠약함이여'와유사하며 그 의미는 문맥상 '나의 기력이 완전히 고갈되었나이다'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본 시편 하반부의 많은 표현들은 앞선 시편들로부터 인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본절의 기도 양식도 27:9;69:17 등과 비교하면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143:8
아침에 - 시편을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 예배 공동체가 예배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한 의식서로 보는 진보주의 학자들은 성정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구원에 관한 신탁이 동틀 무렵에 선포되었던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본 구절이라고 주장한다(Ringgren). 물론 시편 다른 곳에 문자 그대로 동틀 무렵에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기도하는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46:5). 그러나 문맥을 볼 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구원 소식을 되도록 일찍 듣기를 원하는 저자의 소원을 암시하는 구절로 보는 것이 낫다. 아침에 첫광선이 비취자마자, 일찍 그는 구원의 음성을 듣고 싶어했던 것이다(46:5).
=====143:9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 엘레카 키시티) - 직역하면 '당신에게 나 자신을 숨겼습니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다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자신을 두었다는, 혹은 하나님은 안전한 처소이니 그분께 숨은 자신은 안전하다는 의미이다(17:8;27:5;31:20).
=====143:10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 여기서 주의 '뜻'은 히브리어로 '라촌'(* )으로 구약 성경에서 56회 정도 나오는데 인간이가 감정, 태도와 연관되어 사용된 경우는 16회 정도뿐이고 40회 정도가 하나님의 의지, 은총 혹은 그를 기쁘시게 하는 무엇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무엇'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103:21). 문맥상 그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무엇을 행하게 해달라는 것은 현재 처한 다급한 상황에서 그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긴 하되 하나님의 방법,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따라 해결하는,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책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역경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지가 그 방법까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주의 신이 선하시니(* , 루하카 토바) - 직역하면 '당신의 선한 신'이다. 여기서의 '선한 신'을 수호 천사로 보는 학자들은 본절 하반절을 천사를 통해 인도함 받기 원하는 저자의 심정을 드러낸 구절로 본다(Ringgren). 그러나 구약 성경에 나타난 '루아흐'(* )에 대한 용례들을 종합 분석해 볼 때 '천사'보다는 '여화와의 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느 9:20).
공평한 땅(* , 에레츠 미쇼르) - 문자적인 뜻은 '평평한 땅', '평지'(27:11;신 3:10;4:43;수 13:9, 16, 17, 21;왕상 20:23, 25;렘 21:13;48:8, 21;슥 4:7)이다. 이 땅은 울퉁불퉁한 그래서 자칫하면 넘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의 땅과 대비를 이룬다. 오랫동안 잠복된 위험 속에 시달려 온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위험이 없는, 마치 평평한 땅 위를 밝는 것과 같은 삶을 동경하고 그 성취를 위한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143:11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 여기서 '주의 이름을 인하여'(* , 레마안 쉼카)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말하자면 '당신의 영예를 위해서'란 듯이다(단 9:17, 18). 시편 기자를 살리는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 곧 영예와 결부되어 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주의 뜻대로 살기를 소원하는 경건한 자를 하나님이 기필코 구원하실 것이라는 기자의 확신을 반영한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애굽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시려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출 14:18.
=====143:12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 본 구절을 통해 저자 다윗은 악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하나님 편에서 취하실 방법이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로서 성도에게 베푸시는 자비의 증거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의 백성과 백성의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심판은 동반되기 마련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손을 펼치실 때 동시에 하나님은 대적들을 향하여 의분의 천둥을 발하시는 것이다(Calvin).
본시는 원수들에게서 억울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과 인도를
바라는 다윗의 기도이다. 다윗은 부당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회복을 갈망하며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통해
위로를 받고 있다.
이처럼 재난에 직면한 시인의 신앙적자세가 드러나는 본시는 아마도 다윗이 압사롬
에 의해서 박해받을 당시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의 어떤
사본에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에 '그의 아들압살롬에게 쫓길 때'라는 문구가 첨가되
어 있다. 또한 본시에 묘사된 다윗의 애절한 간청은 이러한다윗의 절박한 상황과 일치
하고 있으며, 사상과 표현 특징 역시 다윗의 다른 글과동일하다. 그러므로 본시는 원
수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는 다윗의 간절한 심정이 생생하게 표현된 작품
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시의 장르에 관해서는 '비탄시'(lament)라는 의견과 '회개시'(penitential
psalm)라는 견해가 있다. 본시의 내용은 적들로부터 핍박을 받아 정신적, 육체적 절망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부르짖는 '비탄시'의 전형적인 도식과 일치한다. 그러나 본
시에는 환난에 직면하면서 이 같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죄의 비참성과 보편성, 그리
고 자신의 죄성(2절)을 인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전적 신뢰가 들어 있
으므로 '회개시'로 보는 것이 더욱 합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본시는 고대 교회로부
터 계속해서 내려 온 7개의 회개 시편(6, 32, 38, 51, 102, 130, 143편)중 최종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의 죄에 대한 인식(2, 8, 10절), 믿음과 의를 사모
하는 태도 등을 상고해 볼 때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회개시'로 보는 입장을 지지하고
자 한다.
또한 본시의 내용상 특징은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자각이다.
본시는 142편과 마찬가지로 곤경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구원을 부르짖는 간구이면서도
모든 인간이 범죄하였다는 독특한 주장이 드러난다. 사실이러한 견해는 바울의 인간론
과 일치하는 개념으로서(롬3:20)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론'의 근거가 된다(갈
2:16). 우리는 본시를통해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간절히 사모할 때 참된 구원에 도달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구원을바라는 다윗의 탄식과 참회가 열렬하게 나타나는 본시는 심각한 자신의 상황
의로인한 불평이 들어 있는 전반부(1-6절)와 구원을 바라는 확신에 찬 간구가 들어있
는 후반부(7-12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하여 보면 1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서론적 호소(1, 2절) 2 현실에 대한 비탄(3,4절) 3 과거의 구원에 대한 회상(5,
6절) 4 구원에 대한 구체적 청원(7-12절)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각 단락
을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대한 호소(143:1-2)
적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당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시인은 원망과 불평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진실과 의를 의지하여 호소하기 시작한다(1절). 여기서 시인이 특별히
하나님의 '진실'과 '의'에 호소하는 이유는 율법대로 심판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롬3:10).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대로
심판을 한다면 이것을 피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2절). 그는 자신의 죄
성을 인류의 보편적 죄성이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인식하고, 동시에 죄가 초래한 인
간 본래의 나약성으로인해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한 도리가 없음을 자
각했다(130:3;욥4:17ff;14:4).
이처럼 시인이 본연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본래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을 자신의 죄와 책임을 면해보려는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스스로 멋어날 수 없으므로, 인간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은 바
로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이러한 사실을 절
감한 시인은 자신의 소원을 아뢸 때,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탄원자
로서의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 이전
에 먼저 자신의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럴 때 영
원히 죽을 수밖에없는 우리에게(롬3:10),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도
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된다.
2. 현실에 대한 비탄(143:3-4)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구원을 호소한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하기 시
작한다. 적들로부터 핍박을받아 죽음의 위협에 처해있는 시인은 자신이 마치 죽은 자
처럼 암담한 어둠 속에 둘러싸여 있다라고 울부짖는다(3절). 외부로부터 받는 고통과
이로 인한 내적인 무기력과 절망감은 그에게서 살아갈힘과 의지를 모두 상실하게 만들
었다(4절). 여기서 시인이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말들은마치 우리 주님이 받으
신 고통을 생각나게 한다(마26:37ff.;히4:15, 16). 사실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비감한 심정을 지니게되고 자기 혼자 남게 되었다
는 고독감과 자기 연민에 함몰되기 쉽다. 그러나 동일한고난을 이미 다윗을 포함한 믿
음의 선조들이 겪였으며, 주님께서도 역시 친히 체휼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암담한 상
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구원의길을 예비하셨음을 믿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나1:7;요
10:14;딤후2:19).
3. 과거의 구원에 대한 회상(143:5-6)
구원의 소망이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에서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던 시인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회상을 통하여 격려를 받는다. 시인은 단지 자신이 과거에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뿐만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시각으로 창조와 역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들을 회상하면서 새로운 힘과 위로를 얻고 자신이 역경을 극
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식을 소유하게 된다. 시인은 역사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
정적인 요인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재인식한다. 그는 인류의 모든역사를
구속사로 보는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 위에 서서, 과거의 모든 사건들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이며, 하나님의 본성과 능력을보여 주는 하나의 표적임을 믿는다. 그러므
로 시인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실체를 직접대면하게 되고, 그 결과 자
신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미리 예측하게 된다.
이러한 시인의 회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향한 그의호소는 더욱 큰 힘
을 얻게 된다. 사실 구약 시대에는 선조들의 신앙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구원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 모세의 믿음은 후대 자손에게
항상 기억의 대상이 되었으며, 불변하는 신앙의 표준이었다. 특히 출애굽을 통해 나타
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에 대한 구약 신앙의 중심을 이루어 왔
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22편의 시인도, 본 시편의 기자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 에서
선조들이 가졌던 신앙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 속에
서 절망하고싶을 때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생각하면서 구원의 희망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63:1;마5:6;계7:16).
4. 구원에 대한 탄원(143:7-12)
심각한 고통속에서 과거의 구원 역사를 상기하고 힘을 얻은 시인은 이제 본격적으
로 하나님께 탄식하며 간구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죄로 인하여 언약
을 파기(破棄)하시고 더 이상 은혜와 사랑을 베풀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7절;사
1:15;59:2;64:7). 사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다는 사실은 영적죽음을 의미하며 하나
님의 실만을 선포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심각한 내적 동
요를 느끼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간적 무기력을 인식하면서 더욱하나님의 은혜
에 매달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은혜를 새롭게 내려주지 않으신다면, 그리고
시인이 가양 할 길을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면(8a절), 결코 참된 생명과 평안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결코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 따
라서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인도에 자신의 영혼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8b절).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고 오직 하
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외부적 고난에 직면하여 절망하고 패배하지
않았고 더욱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였다(119:67;욥23:10;고후
4:17;히12:11).
탄원의 두 번째 단계(10-12절)에 이르러서도 시인의 주된 관심과 희망은 여전히 동
일하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10절)만을 간곡히 청원하고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살려는 생각으로 가
귿 차 있다. 특별히 여기서 자신의 연약함을 절감한시인은 성령의 인도를 간구한다(10
절). 인간이 사단의 세력과 유혹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요16:13;고후1:22). 다윗은 성령을 통하여 슬픔과 고통과 어두움이 전혀 없는
평온한 땅, 하늘 나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시인의 탄원은 인간의 자연적인 자기 보존 본능의
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의를 위한 숭고한 뜻에기초한다(11절). 시인
은 자신의구원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의를 증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적들의 멸절을위해 기
도한다(12절).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멸망받는 것은 구약의 신
앙 전통 가운데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공의가 악인의 보응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
나는 것이다(12절).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멸망받는 것을 구약
의 신앙 전통 가운데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공의가 악인의 보응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28:4). 이러한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된다(말4:1;마
3:12;요3:36).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대적의 멸망을 소원하며 자신의 간구를
마친다.
이상에서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 교훈을 배울수 있다. 1 고난을 당할
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안에 참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시인은 처참한 고
난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탄원할 때, 먼저 자신과 전인류를 지배하고 잇는 죄를
자각하고 회개했다(2절). 인간이 겪는 모든고난과 불행은 근원적으로는 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지은 죄악이 무엇
인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생각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130:3). 2 고난을 당할때 과
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묵상함으로써 새로운 힘과 위로를얻을 수 있다. 시
인은 과거 이스라엘의 구속사와 자신의 개인적인삶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
을 묵상하면서 새 힘을 얻었다(5절). 우리도 하나님께서 과거에 나를위해 해 주신 일,
현재에 하고 계신 일, 그리고 미래에 인도해주실 것을 생각하면, 저연히 고난 가운데
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선하신인도를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인도하심
을 날마다 간구해야 한다. 악과의 싸움이 계속되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편안한 휴가란 있을 수 없다. 본시의 시인처럼 아침을 밍을 때마다 자신의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야 할 것이다(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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