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1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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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
속히 내게 임하소서(* , 후솨 리) - 문자적인 뜻은 '내게 오기를 서두르소서'이다(70:5). 이는 시편 기자의 조급함이나 인내치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절박성을 강조하는 표현인데 동일한 의미를 지닌 좀더 빈번하게 사용되는 표현은 '속히 나를 도우소서'이다(22:19;38:22;40:13;70:1;71:12). 한편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같은 뜻을 전달하기 위해 두 개의 다른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반복적 표현 또한 상황의 긴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 티콘 테필라티 케토레트 레파네카) - 직역하면 '나의 기도가 당신 앞에서 향기처럼 보이게 하소서'이다. '보이게 하소서'로 번역된 '티콘'(* )은 '...을 직접 향하다', '적합다', '굳건히 서다', '설정하다' 등을 뜻한다. 또한 '향기'로 번역된 '케토레트'(* )는 번제와 같은 제사를 드릴 때 나는 향기 혹은 연기를 뜻하는데(66:15;출 25:6;30:7), 이 향기는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시는 증표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Barnes). 이 같은 의미들을 종합할 때 여기서 시편 기자가 원하는 바는 그의 기도가 연약하고 쉽게 사라져버리는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께 확실하게 전달되는 그 무엇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계 5:8;8:3).
나의 손 드는 것 -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나(시리아역, Ewald, Hengstenberg), 그보다는 평행법을 생각할 때 '기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녁 제사 - 문자적으로 여기서 '제사'는 제단 위에서 불태워졌던, 기름과 향료를 섞은 고운 가루로 혹은 기름을 섞고 누룩을 넣지 않은 떡으로 드린 제사를 의미한다(레 2:1-11). 그러나 이 '제사'란 '향기'와 같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양을 드렸던 번제에 더해 드린 그 무엇이기도 하였다(출 29:38-42;민 28:3-8). 그렇다면 '향기'와 '고운 가루 제물'은 아침과 저녁의 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며, 그럴 경우 하반절이 의미하는 바는 '나의 매일의 기도가 당신이 작정하신 매일의 희생 제사처럼 당신이 받아들이실 만한 것이 되게 하십시오'가 되겠다. 왕상 18:29, 36에서는 저녁 제사로, 왕하 3:20에서는 아침 제사로, 고운 가루로써 드리는 소제(素祭)가 언급되고 있다. '향기'가 기도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상반절에서 살펴본 바 있다.

=====141:3
파숫군을 세우시고 - 시편 기자들과 지혜서 저자들은 혀의 남용이 초래하는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 13:3). 바로 그 남용으로 인한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존해달라고 저자는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시편 기자가 그의 대적들을 대항하여서 비열한 말을 터뜨리는 혹은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려드는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41: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말게 하시며 - 이는 유혹당할 만한 그 어떤 환경 속에 내버려 두시지 말아달라는, 자기 혼자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말라는, 혹은 그 어떤 악한 영향력으로 인해 방황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라는 주기도문의 의미와 유사하다. 한편, 죄악에 빠지지 않기를 소원하는 저자의 기도는 본절에 와서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하게 된다(Kidner). 즉, 입술뿐만 아니라(3절) 마음과 뜻 및 거기서부터 표출되어 나오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죄악으로 물들지 않도록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진수(珍羞)를 먹지 말게 하소서 - 여기서 '진수'는 '만아메헴'(* )으로 '그들의 맛좋은 것들'이 그 문자적인 뜻이다. 우선 어떤 주석가들은 잠 5:3의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라는 구절을 예로 들면서 이 단어를 경건치 못한 자의 '아첨하는 말'로 해석하고자 한다(Anderson). 그러나 이는 문자적인 의미를 너무 벗어난 해석이다. 또 다른 주석가들은 시편 기자가 이방 족속에게 포위당한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고 이 단어를 그들의 '우상 숭배적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Ross). 이 해석 역시 문맥을 벗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안락하고, 호화스럽고 육감적인 의식주 생활'로 해석하는 부류의 학자들이 있는데, 이 해석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Barnes, Perowne). 악인들이 악을 도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육체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성경이 암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빌 3:19). 또한 '진수'를 먹지 말게 해달라는 표현 앞에는 악인과 함께 악을 도모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있다. 이 사실을 중시할 때 이 표현은 악인들의 악한 생활에 동참치 않게 해달라는 간구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 예헬르메니 차디크 헤세드) - 직역하면 '의인이 나를 치게 하소서 그것은 호의가 될 것입니다'이다. 여기 '예헬르메니'(* )의 원형 '할람'(* )은 '부수다'(삿 5;26), '두들기다'(잠 23:35), '두들겨 부수다'(74:6) 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무기 따위로 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로 책망하여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그와 같은 책망을 기꺼이 원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그것을 '호의'로 받겠다는 표현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책망 혹은 충고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라도 그것을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진실되고 바른 삶을 추구하는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를 엿보게 된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잠 9:8의 일부분을 상기케 된다:"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 동방에서는 귀하고 중요한 손님이 방문할 경우 최고의 예우로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었다. 그런데 책망을 그와 같은 기름으로 여기겠다는 것은 자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표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 여기서 '저희'를 저자의 대적자들로 볼 경우, 본문의 의미는 '심지어 그들의 악행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래서 내가 계속적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나의 기도는 계속될 것입니다'가 되겠다. 그렇다면 본문은 사악한 자들을 대항하는 저자의 무기가 기도임을 강조하는 구절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본 구절과 본절 상.중반절 내용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의인의 책망에 대해 논하다가 갑자기 악인을 대항한 기도를 논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희'는 '대적자들'이 아니라 상.중반절의 주체인 '의인'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럴 경우 본문은 '의인, 그들이 불행 가운데 있을지라도 나의 기도는 계속될 것입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본문은, 자신에게 선한 책망을 해준 의인을 위하여 그들이 재난이나 불행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하겠다는 저자의 심중을 드러내는 내용이 되겠다. 4절에서 저자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악인들에 의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지 않기를,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그리고 그들의 악하고 사치스러운 삶에 동참하지 않게 되기를 기도했었다. 그리고 이제 초점을 바꿔서 그 내용이 아무리 혹독하고 거칠다고 할지라도 의인이 주는 책망을 기꺼이 환영하겠으며, 심지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의로운 친구가 준 상처는 대적의 입맞춤보다 훨씬 가치 있다.

=====141:6
본절 전체는 그 자체의 내용이 어려울 뿐 아니라 전후 문맥과의 연결이 다소 애매하기 때문에 그 해석이 더욱 어려우며 따라서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저희의 관장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지웠도다 - 여기서 '저희의 관장들'에 해당하는 '쇼프테이헴'(* )의 원형 '솨파트'(* )는 '통치자', '방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악한 통지자(혹은 방백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저희'란 악한 방백들(혹은 통치자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가리킨다. 또한 '내려 던지웠다'는 것은 그들에게 징벌이 가해졌다는 의미인데, 특히 바위 산 꼭대기 같은 곳에서 밀쳐 떨어뜨림으로 형(形)을 집행했던 것을 암시한다(대하 25:12). '바위 곁에' 내려 던졌다는 것은 바위가 많은 곳, 바위가 많은 길가(140:5) 혹은 길 양편에서 그 형을 집행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은 바위를 향해 내던져 죽였다는 주장이다(137:9). 한마디로 본문은 악한 방백들이 참혹한 징벌을 받았던 것을 묘사하고 있다.
내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 솽우 아마라 키 나에무) - 여기에서 접속사 '키'는 보통 '왜냐하면'으로 번역되나 문맥상 그 이하를 설명하는 관계 대명사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 번역하면 '그들이 달콤한 나의말들을 들을 것이다'이다. 여기서 '그들'이란 '방백들'이 아니라 방백들의 악한 영향을 받아 뜻없이 방황하고 이용당하던 그들의 '추종자들' 혹은 일반 '대중'을 가리킨다. 만일 시편 기자가 압살롬의 반역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경우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사악한 통치자(방백들)가 극형을 받고난 후 그의 추종자들은 진정한 왕 다윗에게 돌아와 충성을 맹세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그들이 달콤한 나의 말들을 들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자신들이 거역했던 통치자로부터 선포된 자비로운 면책을 감지덕지하며 받아 들이는 모습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사울의 핍박 당시 다윗이 관대함을 보였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삼상 24장), 본문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편히 가게 한후 사울 일행을 향하여 외쳤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내 손에 있는 왕의 옷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삼상 24:8-11이라는 말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본 시편 전체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후자의 입장을 택하고자 한다.

=====141: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같이 -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찾기가 앞절만큼이나 까다롭다. 본 구절에 대한 해석 경향은 본절 하반절 내용과 어떻게 연관시키느냐에 따라 두 가지 견해로 압축된다. 즉, 뼈들의 분산이 (1) 쟁기질을 통하여 부스러진 흙덩이에 비유되었다고 보는 견해, (2) 쟁기질을 통하여 부드러워진 땅 위에 뿌려진 씨앗에 비유되었다고 보는 견해 등이다. 둘 중 전자의 견해가 더욱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대하 25:12은 만 명의 에돔 사람들이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떨어뜨림을 당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멸망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때 사용된 동사가 바로 쟁기질을 통해 흙덩어리가 부서짐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이곳의 동사 '보케아'(* )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후자보다는 전자가 멸망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풍긴다는 것이다.
우리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도다(* , 니프제루 아차메누 레피 쉐올) - 직역하면 '우리의 뼈들이 무덤의 입을 위하여 흩어졌도다'이다. '무덤의 입을 위하여 흩어졌다'는 말은 무덤에 의하여 삼키움을 다했다는 뜻인데 이는 곧 큰 멸망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사 26:19;겔 37장 등 참조). 이 의미는 관장들이 바위 곁에 내던져졌다는 6절의 표현과 의미상으로 연결된다고 보여진다. 즉, 본 구절은 대적들의 멸망을 암시하는 내용이 되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인칭 대명사 '우리' 혹은 '그들'로 바뀌어야 한다. 원문상 '우리'혹은 '그들' 중의 하나로 번역할 수 있는데 다행히도 고대 역본들, 그외의 유려한 역본들(시리아역, 아랍역, 에디오피아역)이 '우리'가 아닌 '그들'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할 때 '우리'를 '그들'로 바꿔 번역하는 일은 가능하며 따라서 난해한 본절은 기자의 대적들의 완전한 멸망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로 볼 수 있겠다(so shall their bones be..., RSV). 한편, 영역본 NIV는본문을 직접 화법으로 처리하고 서두에 '그들이 말하기를'(They will say)이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141:8
주 여호와여 - 원문에는 서두에 '키'(* )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 접속사는 일반적으로 접속사가 갖는 속성인, 바로 앞 내용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다. 도리어 이 접속사는 4, 5절에서 언급된 내용 혹은 본 시편 전반부 전체의 내용을 종합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두지 마옵소서(* , 알 테아르 나프쉬) - 문자적인 뜻은 '나의 영혼을 쏟아 붓지 마소서'이다. 이는 나의 생명을 멸망에 넘겨주지 말라는 뜻이 분명한데 그 이유는 사 53:12에서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저자는 인의 유혹을 따르게 될 경우 그 길은 곧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141:9
올무와...함정에서 -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개의 세력에서'(22:20), '칼 권세에서'(욥 5:20), '불꽃의 세력에서'(사 47:14).
행악자의 함정(* , 케쇼트 포알레 아웬) - '행악자'에 해당하는 '포알레 아웬'(* )은 '파멸을 꾀하는 자'를 가리키며, '함정'인 '케쇼트'(* )는 새나 들짐승을 잡기 위하여 놓는 '덫'이나 '올무'를 뜻한다. 이외에 18:5;64:5;69:22;106:36;140:5 등에서도 동일한 용어가 등장한다.

=====141:10
자기 그물에(* , 베마크모라이우) - 이곳의 대명사는 배분사(영어의 each, every 따위)의 의미를 지니는 단수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재번역해 보면 '그들 각각이 그 자신의 그물에...'이다. 7:15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다. '그물'에 해당하는 '마크모르'(* )는 구약 성경에 단 한번 등장하는데 동일 어원의 명사형은 고기잡는 그물(합 1:15), 혹은 동물을 잡기 위한 그물(사 51:20)을 의미한다.

 

 

 

 

   난관에 봉착한 의인의 기도가 열정적이고 절박하게 드러나는 본시는 악인의 모략과
함정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다윗의 시이다. 다윗은 본시에서 사울로부터 부방한 피
해를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상고하며 자신의 영혼을 반성하고 직접
복수하지 않도록 간구한다. 또한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대적들 가운데 오셔서 공정하
게 판단해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처럼 박해받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요청하는 본시의 역사적 배경을 정확
하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염두에 두고 저녁에
지은 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윗이 엔겐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
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의 옷자락만을 잘랐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지은
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윗이 엔겐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
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의 옷자락만을 잘랐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지은 시라
고 알려져 있다(삼상24:1-22). 이러한 견해는 본시의내용 및 분위기와 일치한다. 다윗
은 극도의 핍박 속에서도 사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오직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았
음을 기억하며 본시를 저술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시의 장르에 관해서는 영혼의 정결을 위하여 하나님께 열렬히 간구하는 '기
도시'(prayer psalm)라고 볼 수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진실하고 겸손한 태도
로 자신의 순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외치고 있다. 또한 본시는 저녁 제사
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는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2절). 시인은 특별한 축복을
요구하지 않고 생의 과로와 긴장이 없는 상태의 안정과 평강을 요구한다. 그래서 본시
가 초대교회 시대에는 저녁 찬미에 자주 사용되었다고 한다.
   악인의 유혹과 모함에 둘러싸인 의인의 애타는심정과 경건한 의지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는 본시는 원문 번역상의 난해함(5-7절)에도 불구하고 1 여호와의 도우심을 청원
하고(1, 2절) 2 여호와만을 향한 충성을 결단하며(3-7절) 3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
는 (8-10절) 내용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제 각 단락에 대하여 좀더 심층적으로 고
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도우심을 청원함(141:1-2)
   대적들로 인하여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다윗은 먼저하나님의 신속한 기도 응답을
촉구하고있다(1절). 다윗은 압박이 가중되는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향해 부르짖었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분향'과 '저녁  제사'같이 열납되기를 기원하였다(2
절). 당시에는 아침,저녁으로 제사장들이 성전에 설치된 향로에다 분향하였고(출30:7,
8;민16:40), 그때에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를 드렸다(눅1:9,  10). 특히 저녁에는 희생
제물이 제단 위에 바쳐진 후 분향을 드렸다. 이러한 제사의식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음
향하시기 원하는 햐불처럼 하나님 앞에 타올라가는 기도의 아름다운 상징을 보았을 것
이다. 향불은 그 재료를 향로에 계속 넣어야 타오르듯이 우리의 기도도 계속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기도, 일정한    시간에 기도의 향을 피우는 영혼은
아름답고 강건할 수밖에없다(게5:8). 그러므로 성도는 계속해서 영혼의 제사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장 차원 높은 사랑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2. 여호와만을 향한 충성의 결단(141:3-7)
   앞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시인은 이제5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련에
직면한다. 시인은 호사스럽고 악한 삶을 사는 악인들이 말과 행실에 있어서 악을 행하
게 만들려는 유혹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달
라고 청원하고 있다. 본 단락에서 시인은 하나님게 1 입술의 범죄(3절)와 2 마음과 행
동의 범죄(4절)로부터 지켜 줄 것을 청원하면서 3 악인과는 결단코 타협하지 않으리라
는 결단을 다시 한번 확고히 표현하고 있다(5-7절).
   이러한 시인의 간구와 결단은 순저난 기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겠다라고 고백한
2절의 기도에 비추어 볼 때 저연스러운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바로 그 입
으로 하나님을 저주하는 악인의 말은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3절;
약3:7이하). 여기서 파수꾼을 세우고문을 지키듯이 입술을 지킨다는 표현은 아주 구체
적인 상징이다. 시인은  자기 말을 철저히 삼가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고 있다.
이처럼 입술을  삼가하려는 노력은 지혜  문학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39:1;잠
21:23).
   이제 시인의 간구는 더욱 확장된다. 시인은 단순히 입술의 죄악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악의 경향성까지 경계하면서, 자기 마음이 악에 기울어 악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스스로 악을 이
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보다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우
리는 우리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악인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음
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마6:13)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이다.
   한편 5-7절은 원문의 의미가 매우 모호하지만, 앞 부분의 사상의 연장이자 그 절정
으로서 궁극적 승리가 성취될 날을 기다리며 악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시인의 의지가 다시한번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호사스러운 만찬에 동참
하라고 유혹하는 악인들의 초대에 응하기보다는 비록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차라
리 경건한 무리들로부터 받는 견책을(잠27:6)통해 자신의 경건을 유지하겠다고 다짐하
는 것이다.

        3.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함(141:8-10)
   마지막으로 시인은 기도를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는 극
복할 수 없는 시험을 이기게 되기를 기대한다. 시인은 자신을 패망케 하려는 악인들의
함정과 모략이 횡행하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자신이 호소할 곳은 오직 하나님뿐이라
고 고백한다(8절). 그는 비록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
지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시지    반드시 구원의 손길을 펴 주실 것을 확신하
고 있다.(9절).
   이제하나님을 대면하고 기도하던 시인은 의인과 악인들 간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삼
판이 내려질 것을 기대한다(10절). 그는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로운 재판을 통해서 의
인의 호소를들어 주시고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하실 것과 반대로 악인은 반드시 멸망할
것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을 둘러싼 악의세력에 결코 굴하지 않고 하님
만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경건의 순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성도들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있다. 사악한 무리들은 성도
의 신앙을 무력화 시키기위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한다(욥1:9-12;2:4:4-7;스3:1-5;단3:1-30). 때로는 탐욕과 시기심을 이용하여 형제를 미워하게  만들며(롬1:29-31) 교회의 분열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의 음흉한 공격을 효율적으로 격파하기 위해항상 깨어 근신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엡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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