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1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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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
다윗을 위하여 - 지어진 성전은 그것이 솔로몬의 손으로 건축되기 전에 다윗의 마음속에 있었다. 따라서 솔로몬은 자신의 노고가 열납되기를 구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의 헌신이 기억되기를 소원하였는데(대하 6:42), 바로 이 사실을 본절은 밝히고 있는 것이다.

=====132:2
야곱의 전능자 - 5절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본 호칭은 임종을 맞은 야곱의 입을 통하여 언급된 창 49:24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외에는 사 1:24; 49:26; 60:16 등 세 군데에서만 발견된다. 여기서 야곱이 언급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그가 하나님의 전(殿)에 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고(창 28:22) 둘째는 그가 하나님의 집을위하여 최초로 기둥을 세웠었기 때문이다(Perowne).

=====132:3
나의 거하는 장막(* , 오헬 베티) - 직역하면 '나의 집인 텐트'이다. 이와 유사하게 '내 침상'도 직역하면 '나의 침실인 침상'이다. 이것은 텐트가 집이었고 침상이 침실이었던 고대 족장 시대의 주거 생활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32:4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 이것은 일종의 잠언적 표현으로 여겨지는데 사실 잠 6:4에도 동일한 표현이 나온다. 이 말은 '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결코 안식하지 않으리라'는 뜻을 강조적으로 나타낸 어법이다.

=====132:5
성막(* , 쉬카노트) - 문자적인 뜻은 '처소', '머무는 곳'이다. 본절은 (1) 삼하 7장에 나타난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의도와 삼하 24장에 나타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의 예비적 정결, 혹은 (2) 많은 방황을 겪은 뒤 법궤를 시온의 고정된 처소에 두었던 사실(78:68,69)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132: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 이는 법궤를 가럇여아림으로부터 운반하는 기사를 상기케 하는 구절이다(삼상 7:1; 삼하 6:2; 대상 13:5). '에브라다'는 아마도 다윗의 고향이거나(룻 4:11; 미 5:2) 다윗의 조상인 보아스의 혈족의 고향이었던 것 같다(Gray). 바로 이 사실은 법궤의 소재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과그의 사람들이 에브라다에 있었다는 추측들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개역 성경의 번역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에브라다에서 들었다.' 이것은 원어로 '쉬마아누하 베에페라타'(* )인데 대부분의 영역본들도 바로 앞에 제시한 수정 번역을 지지하고 있다(we heard of it at Ephratah. KJV). '에브라다'는 기럇여아림 지경 내의 한 지역의 지명으로 짐작된다(Delitzsch).
나무 밭(* , 세데 야아르) - 여기에서 '세데'(* )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의 원형, 곧 단수형도 '세데'(* )이다. 70인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은 이 원형을 중시하여 단수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데'는 단수로 쓰일 경우 대체로 막연한 어떤 지역이 아닌 특정 지명을 가리킨다. 그러하다면 '세데 야아르'는 어떤 특정 지역의 이름으로 보아야 하는데 문맥을 고려할 때 그 특정 지역이란 가럇여아림이다. 많은 학자들은 '세데 야아르'를 기럇여아림의 시적인 지명으로 해석하고 있다(Johnson).

=====132:7
성막(* , 미쉬케노타) - 문자적인 뜻은 '처소'이며 삼하 7:2에서 다윗이 '휘장'이라 불렀던 집으로서 5절에 이어 의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 발등상 - 아마도 법궤를 의미하는 것 같다. 성경은 법궤 자체를 여호와 보좌의발등상으로 간주하면서(대상 28:2) 여호와를 천사들 위에 좌정해 계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99:1). 본절은 유일하고 참된 신(神)이시며 왕이신 여호와 잎에 드리는 충성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결국 이것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왕권에 대한 충성을 암시한다.

=====132:8
여호와여...들어가소서 - 7절에서는 다윗 시대의 회증적 정서를 읽을 수 있었고, 본 절에서는 솔로몬 시대의 민족적 정서로 그 정서가 바뀌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편 저자의 사고 체계 속에 회중은 하나이며 두 시대 민족의 정서도 하나이다. 그는 법궤가 시온으로 옮겨졌을 때 제창되었던 찬양을 그 법궤가 다시 시온으로부터 마지막 안식의 처소인 성전으로 옮겨졌을 때 불리웠던 찬양과 함께 뒤섞고 있다(대하 5:2-5).
여호와여 일어나사(* , 쿠마 예화) - 직역하면 '여호와여 일어나소서'이다. 이것은 고대 시대에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함성에서 따온 표현이며(민 10:35), 법궤를 들어올렸을 때에도 제사장이 이와같이 외쳤다. 이떤 학자는 법궤가 이미 성전에 있었기 때문에 법궤 운반이 진행 중이었다는 암시를 본절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바, 7절에 의하면 이같은 견해는 신빙성이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Weiser).
권능의 궤(* , 아론 우제카)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의 강한 법궤'이다. 법궤는 신적(神的) 능력의 상정,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강한 힘이 그곳을 두르고 있는 무엇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같은 표현은 그 대적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있을 때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 및 보호의 상징이었던 사실로부터 추론된 것 같다(삼상 4:3). 시편에서 법궤가 언급된 곳은 이곳뿐이다.

=====132:9
의를 입고 - 이 표현은 제사장이 의로움으로 특징지어짐을 암시한다(사 11:5; 61:10). 뿐만 아니라 신적(神的) 축복의 통로로서의 제사장을 암시하기도 한다. 특히 여기서의 '의'는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하리니'라는 평행구(16절)를 존중할 때 '구원'이란 뜻도 내포함이 분명하다. 종합하건데 본 구절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인 구원을 계시를 통해 전달하는 자로서의 제사장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겠다(대하 6:41).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 이 구절을 포함한 본절 전체는 오늘날 서양의 규범적 기도문의 일부를 연상케 하는데 사실 그것은 본절로부터 따온 것이다(Perowne): '목회자들을 의로 옷입히소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로 기뻐하게 하소서'.

=====132:10
주의 기름 받은 자 - 이 기름받은 자가 다윗이 될 수는 없다(Hupfeld, Hengstenberg).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몹시 어색하기 때문이다. '다윗을 위하여 다윗의 기도를 거절하지마소서'. 따라서 여기서 기름 받은 자는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을 의탁한 솔로몬(혹은 다윗의 후손들 중의 하나)이 되어야만 한다. 대하 6:42에 근거하면 본절은 다음과 같이 약간은 변형된 그러나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한 구절이 되겠다. '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시오. 곧 당신의 종 다윗의 인애를 기억하옵소서'. 이와 같이 볼 때 본절은 약속의 성취를 구하는 기도문의 일종이다. 그 약속의 내용은 11,12절에 인용되어 있다.

=====132: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맹세하셨으니 - 여기서 시편 기자는 삼하 7:12-16에서 언급된 바, 다윗에게 주셨던 여호와의 약속을 암시하고 있다. 본 구절에는 불변하는 신적(神的) 약속의 특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다윗의 후손이 항상 그의 권좌를 잇겠다는 것, 곧 다윗 왕조는 결코 바뀌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조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다윗의 왕조가 결코 바뀌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그러나 그 약속의 조건으로 준 언약과 교훈의 불이행,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마 1:20,21).

=====132:12
내 언약, 교훈 - 각각 '베리티'(* ), '에디티'(* )인데 이들은 동의어이지만 성경 본문이 다른 용어를 사용한 취지를 존중하여 그 의미를 세분화해 보면 전자는 공동체의 의무와 책임을 개락해 놓은 시내 산 언약, 후자는 왕의 의무와책임을 개략해 놓은 다윗 언약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문맥상 이 둘 중 하나만을 택한다면 후자가 좀더 타당하겠으나 저자 역시 부당하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왕 또한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Anderson)

=====132: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 원문상에는 본절 서두에 '키'(* )라고 하는 접속사가 있으며 이것은 '왜냐하면'을 뜻하는데, 이 접속사는 다윗을 왕으로 택정하셨다고 하는 앞절의 내용과 본절의 내용, 즉 시온을 성소로 택정한 사실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암시해준다. 정리하면,시온을 지성소의 자리로 택한 사실과 다윗을 왕으로 택한 사실, 더 나아가서 유다를 하나님의 통치 민족으로 택한 사실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관 내용은 어렇다: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다윗의 집에 통치권을 부여 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분 자신의 거처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지와 정치적 중심지는 하나이며 동일하다.' 이 사실은 122:4,5에 명확히 나와 있다.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과 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기르게 하셨더니"(78:67-71).

=====132:14
영원히 쉴 곳 - 본 절 전체는 8절의 탄원에 대한 응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원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머물기로 예정되었던 곳은 실로인데 실로는 그 특권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후 얼마 동안 법궤는 벧엘에 있었고(삿 20:26,27) 미스바에 잠시 머물렀다가(삿 21;5) 가럇여아림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20년간 머루르게 되었다(삼상 7:2). 그 후 다시 그곳에서 옮겨져 오벧에돔의 집에서 석달을 체류했고 마침내 마지막 안식의 처소인 시온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 의하면 법궤는 마치 인간 편의 상황에 따라 그 처소가 바뀌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사실은 그 모든 과정과 결국 영원한 처소로 시온을 결정한 것은 하나님의 주도적 섭리에 의하여 되어졌다는 것을 본절 후반부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132:15
내가 이 성의 식표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 체다 바레크 아바레크) - 동사 '바레크'(* )의 첫 자음 '베드'(* )에는 원문상 점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본 구절을 말하는 화자(話者)의 강한 의지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본문에 대한 좀더 원문적인 번역은 이렇다: '내가 분명히 그성을 풍족한 식료품으로 복을 주고.' 또한 여기서 '식료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체다'(* )인데 이 번역은 쉽지 않지만 78:25에서 본 용어를 '식물'(양식)로 번역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식물'은 일차적으로 여행지를 위한 음식을 뜻하지만 모든 종류의 음식(양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또한 '체이다'는 사냥을 하여 얻은 수확물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25:28; 욥 38:41). 그렇다면 개역 성경의 번역 '식료품'은 무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32:16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 9절에 언급된 탄원에 대한 응답이다. 다만 9절에서의 '의'가 본절에서는 '구원'으로 바뀌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대하 6:41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 중 한 구절에서 비롯된 내용이라 하겠다. 여기서 제사장들을 구원으로 입힌다는 것은 제사장을 하나의 통로, 수단으로 사용하여 예배 공동체에 구원 사실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사항은 단수히 인간의 탄원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4절부터 계속되는 내용, 곧 시온을 거처로 정하시는 것, 그곳 백성에게 풍성한 양식을 주시는 것 등은 하나님의 주도적 섭리에 의하여 되어진다는 사실이며(특히 14절의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따라서 그 문맥에 충실하게 본 구절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도적 섭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132:17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 성경에서 뿔은 대체로 힘, 권능, 번영(89:17,24; 92:10; 삼상 2;1,10)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다윗 왕조의 권세가 더욱 막강해져서 그 어떤 대적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다면 그 토대를 든든히 유지하여 나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같은 결과는 다윗 왕조 구성원의 능력 때문이 아나라 하나님이 의도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내가...할 것이라). 등 - 이 비유는성전 안을 비추기 위하여 계속 타고 있었던 성전 등불로부터 그 이미지를 따온 것이 분명하다. 이 비유는 다윗에게 적용된 바도 있지만(삼하 21;17) 본 시편에서는 다윗의 후손, 즉 다윗 계열의 왕들을 표현하는 비유로 사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다윗 왕조를 계속 유지킬 것을 다시 한번 밝히시는 데 그렇다면 번절은 동일한 내용의 두 대구가 연결되어 있는 구절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본절 전반부 역시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계속 유지시키며 강성케 하실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 구절은 10절의 탄원에 답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132:18
저의원수에게는 수치로입히고 - 9절 및 16절과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이와 유사한 구절로는 35:26; 109:29; 욥 8:22 등을 들 수 있다. 원수에 대한 언급이 본 시편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던 점을 주시할 때 본문은 그 자체에 어떤 깊은 의미가 있지 않고 이어지는 구절을 강조하기 위하여 대비적으로 사용된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 여기서 '빛나게 하리라'(* , 야치츠)의 문자적인 뜻은 '꽃(싹)을 틔우리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시는 표시로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사실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민 17:8). 여기서는 하나님이 다윗의 왕권을 견고하고도 영화롭게 하신다는 의미로 쓰였다.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를 안치하면서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본시는 하나님께서 성
전에 임하셔서 죄정하시고 이스라엘을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해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으
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간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복음적 교회에 대한 관심을 고취
시키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예표하고 있다. 본시는 표제문에 나타난 대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편)중의 하나이다. 이들 시(詩)중 상당수(120, 121, 123, 126,
129,130편)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서 노래하고있고,  머지(122, 125, 127, 128, 132, 134편)는 매년 예루살렘에 참배하
러 오는 자들에 대한 '순례시'(the philgrim  songs)이다. 본시는 '계단의 노래'(song
of degrees)라고도 불리워지는 순례자의 노래들 중 가장 긴 시편 중의 하나이다.
   한편 본시의 저자와 저작 시기에 관하여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매튜
헨리(Mattew Henry)와 퍼론(Perowne)등은 본시가 솔로문 성전의 봉헌을 위해서 지어진
시(詩)이므로 솔로몬이 저자일 것으로 보고있다(대하5:2). 한편 라이트 풋(Lightfoot)
이라든지 그외 고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시의 저자가 다윗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어도 이시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두 번째로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옮
겨졌을 때에 기록되었거나(삼하6:16;대상15:14등에 근거하여)도는 다윗의 마음이 여호
와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찼을 때에 쓰여진 것으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시의 10절(주의 종 다윗을위하여...)에 비추어 볼 때 다윗의 아닌 것만은 확
실하다. 또한 고대의 주석가들과는달리 현대으가 주석가들은 본시가 포로기 이후 제 2
성전(슬롭바벨성전) 봉헌식 때 쓰여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F. Keil & F. Delitzsch,
R. Toruany등). 그 이유는 본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형식을 가진 시들 중의
하나이고또한 압제자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와 에스라와 느헤미야 당시
으 제2성전 봉헌식 때 불려졌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솔로몬이 말한 내용과 봉헌 기도 형식과  거의 유사하다. 더구나 8-10절은 성전
봉헌식 때 솔로몬이 말한 내용과 동일하므로(대하6:41,  42)본시의 저자는 솔로몬으로
확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시는 솔로몬이 다윗의 명(命)을 따라 성전을 짓고나서 성
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윗에게 베푸신 언약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돌
보심을 간구하는 노래이다.
   도한 본시는 말씀의 반복이 많고 내용이 복잡하게 전개되어 산만한 느낌을 준다. 그
러면서도 본시는 시편의 다른 시들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2편
처럼 승리에 대한  본시의 약속과 함께 다윗 왕조와 시온이 결합되어 있으며, 89:35과
110:4과 같이 하나님의 맹세(11절)가  등장한고 다윗과 여호와가 서로인격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 특히 본 시편은  다윗 왕조와 시온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있다. 성소는 하
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궁전으로서 다윗 왕조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있고, 다른 한편에
는 왕조의 수호자이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
께 대해 무릎을 꿇고 순종해야 할 의무를 지닌 책임있는 종으로서의 다윗의 역할을 물
려받고 있다. 더나아가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
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적으로 제시한다(17절;110:1).
   성정을 방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에 의하여 불려진 본시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전반부(1-5절)는 하나님의 성전에대한 다윗의 열심과 맹세에 대해서 노래
하고 있고, 중반부(6-10절)는 솔로몬 치하(治下)에서 완성한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대
해서 노래하고  있고, 후반부(11-18절)는 다윗의 참된 아들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언약이 성취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시는 운율적으로  볼 때 각 10행씩  네 단락(1-5절;6-10절;11-13
절;14-18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제 각 단락의 특징과 중심사상을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다윗의 서원(132:1-5)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다윗의 열심과 서원을 노래하고 있는 본 단락은 1 하나님의
법궤를 다시 찾아오려는 다윗의 열심(1절) 2 하나님께 대한다윗의 서원(2절) 3 구체적
인 실천계획(3-5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은 여호와의 거할 처소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아무런휴식도 취하지 않겠다고 하
나님께 서원하였다. 다윗이 이러한 말을 나단에게 했을때(삼하7:2)그는 전쟁에서 승리
하여 언약궤를 시온으로 옮겨옴으로써 아미 야훼의 거하실 처소를 마련할 기반을 준비
하고 있었다(삼하6장).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은 후에 다윗은 오랫동안 갈망하며 고
대해 오던(101:2참조)언약궤를 시온에가져왔다. 그 이후 수년간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
실 성전을 짓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말하기를 성
전은 다윗 자신이 아닌 그의 아들애에 가서야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였다. 그럼에도 부
룩하고 다윗은 자신의 마음에 푸고 있었던 소원, 즉 성전을 건축하기위한 준비에 총력
을 기울여 매진하였다. 그래서 그는미래의 성전이 위치할 장소를 확보하였고, 그에 따
른 건축 자제등 기구까지도 준비하였으며 백성들에게는 성전건축이라는 막중한 공사를
반드시 해야한다는 분위기까지  준비하였으며 백성들에게는 성전건축이라는 막중한 공
사를 반드시 해야한다는 분위기까지 조성시켜놓았다. 또한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구체적 기준까지 제시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성전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한
역대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대상29:29;대하9:29;16:11등)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다윗의 열심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의 성소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와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을 본받아
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위해 헌신하고 진정한 교회를 수립하며 하나님 마라를 확장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행1:8).
        2.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 건축(132:6-10)
   다윗의 모든 계획들이 그의 아들 솔로몬(治下)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
단락은 1 에브라임  지방에서의 법궤 발견과 그에 대한 경배(6, 7절) 2 성전 봉헌식의
기도(8-10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시대에는 법궤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대상
13:3).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법궤를 되찾아 기럇여아림으로 옮겨 놓고서 그후 20년
간 무관심하게 방치해 두었다(삼상6:21;7:1). 블레셋에서 돌아온  궤가 다윗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운반될 때까지 이곳에 남아있었다(대상13:5-13). 본문에 에브라다는 '에브
라임'을 지칭하는 명칭이다(삿12:5;삼상1:1;왕상11:26). 그러므로 법궤는 에브라임 지
방에 묻혀 있다가 다윗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옮겨졌고 그후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
야 비로서 성전에 안치 되었다(왕상8:3).
  그후에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능력의 상징인 법궤와함께 성전에 좌정하시기를 기도했
다(대하6:41).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성소에 임하셔서 언약백성들과 교재하심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이러한 간구를 했다.  사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교
재하는 것이다(요14:16).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통하여 우리의 생명을 주시고, 승리
와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 그리스도는 성저의 완성으로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중보자요 의의 대변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전을위한 솔로몬의 기도는 메시야적 언
약의 성취를 간절히 대망하는 예언적 기도문으로 해설할 수도 있다.

        3. 다윗에 대한 두 가지 약속(132:11-13)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다윗의 서원과 그 결과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완공되었음을
선포하는 내용에 이어지는 본연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의 영원성(11, 12절)과 함께 예
루살렘의 성전에 임재하실 것임을 약속(13절)하셨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언약은 궁
극적으로 예술  그리스도가 오셔서 성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여 주심을 예표한
다.
   본 단락의  내용은 삼하7:11-16에 직접적으로 근거하고 있는데 다른 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많이나온다(48:1, 2;68:16;3, 4;147:14).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은 선택적인 언약이었다. 다윗과 그의후손들이 주의 법을 순종하여 따르며 여호와께서
는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토록 왕권을 허락하겠고, 만약거부하면 징계를 베푸신다는 것
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은총을 빼앗아간 것처럼 다윗을 결코폐하지 아
니하시고 다윗 왕국이 영원히 보존되며 견고해지도록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왕조의 영원성과 시온 성전의 임재를 보장하시는 것은 아브
라함과맺은 언약의 신실성에 근거한다(창22:9-18).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그 장소가 훗날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 성전이 세워진 곳
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연관을 증거해 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후손에 대한 약속과 더 나아거서는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다시 한번 갱식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임을 인식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132:14-18)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웅장하게 선포되고 있는 본 단락은,
시온을 여호와의 처소로 선택하신 이유(14절), 시온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과 약속(15,
16절), 다윗집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17, 18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당신의 처소로 선택하신 행위는 누구의 간섭도받지 않은 주권적
결정이었다(14절).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선택한 시온에 대해 축복과  속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다윗의 후손에
게 영원히 왕위를주겠다(12절).  2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영원히 그곳에 계시겠
다(13, 14절). 3 이스라엘 백성에게 풍족한 양식을주겠다(15절). 4 성도들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베풀어 주신다(16절) 4    성도들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베풀어  주신다(16절).
5 다윗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가 탄생하도록 하겠다(17절).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선택하셨고, 시온에 좌정하셔서 축복과 보호를
영원히 베푸신다. 이러한 은혜는 메시야가 탄생홧으로써 절정을 이룬다. 메시야를 지칭
하는 상징적인 단어 '뿔'은 보호하는 힘과 영광의  지배를 의미하며, '등'이란 찬란한
권위는 또는 기쁨을상징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들을 통하여 메시야의 출
현을 예표적으로 재시하고 있다.
   본시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솔로몬의 성전을 통하여
당신의 거처를 시온에 정하셨던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신령한 집'(벧전2:5)인 성도들의
심령 안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성도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함으로써 주의 성
령이 능동적으로 역사하도록 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들을 향유할 수 있어
야 한다. 2 메시야가 오심으로 다윗의 왕권이 완성을 이루었던 것처럼 이제는 심판하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심으로 완전한 승리가  성취될것이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까지 하나
님의 보호와 인도를 신뢰하며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며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
셔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최상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명들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법궤가 모셔졌던 성전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중심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성도의 도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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