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
깊은 데서(* , 미마아마킴) - 직역하면 '깊음으로부터'인데 여기서 '깊음'은 그 바닥을 헤아리 수 없는 깊고 신비한 해연(海淵), 혹은 골짜기를 가리킨다(69:2,14; 사 51:10; 겔 27:34). 그러나 문맥상 이 곳에서는 심한 고통, 압박감 등을 의미하고 있다.
부르짖었나이다(* , 크라아티카) - 본 구절의 시제는 완료형인데 히브리어에서 완료형은 현재 순간까지 계속되어온 오랫동안의 경험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기자는 깊은 고통 중에 오랜 세월(시간) 동안 하나님께 부르짖어 왔음에 분명하다.
=====130:2
귀를 기울이소서(* , 티흐예나 아제네카 카쉐보트) - 직역하면 '당신의 귀들이 집중력있게 하소서'이다. 원어상으로 귀를 복수형 '귀들'로 쓴것은 최대한 집중력을 모아 달라는 저자의 청원을 엿보게 해준다(대하 6:40).
=====130:3
감찰하실진대(* , 티쉬마르) - 문자적인 뜻은 '키키다' 혹은 '주시하다'이다. 그러나 문맥적으로 볼 때는 '계속해서 관찰해 보다'(90:8과 욥 10:4; 14:16 등의 의미를 대조해 보라)라고 하는 발전된 의미가 깃들어 있고, 좀더 발전된 의미로 볼 때는 징벌하기 위하여 계속 기억 속에 넣어 두다'가 된다(렘 3;5; 암 1:11).
누가 서리이까(* , 미야아모드) - 이는 부정적인 대답 '아무도 설 수 없다'를 기대하는 의문문이다. 여기에는 죄가 없는 자란 하나도 없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143:2; 왕상 8:46; 잠20:9). 한편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적극적인 특권인다(anderson).
=====130:4
그러나(* , 키) - 일반적인 뜻은 '왜냐하면'인데 본 문맥에서도 바로 이 의미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앞선 절에 함축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본 접속사를 활용하여 3절 뒷부분과 본절 상반절을 다시 번역해 보면, '만일 당신이 계속해서 죄를 지적하시고 그것을 마음에 두시면 아무도 당신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죄를 지적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용서하심이있기 때문입니다'이다.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 '사유하심'(* , 하슬리하)의 명사형은 느 9:17; 단 9:9에서만, 그리고 형용사형은 85:5에서만 나오지만 동사형은 모세 오경 및 그 이후 책들에서 자주 나오고 있다. 한편, 본분은 주께 죄를 용서를 비는 일종의 간구라고도 볼 수 있다.
주를 경외하심이니이다(* , 레마안 티와레) - '티와레'의 원형은 '아레'(* )이며, 본절에서는 나팔형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야레'는 대부분의 경우 재귀형 분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레'의 이 드문 용례로 인하여 '레마안 티와레'에 대한 번역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우선 70인역(LXX)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로, 빌게이트역(Vulgate)은 '당신의 율법 때문에'로 각각 번역하지만 맛소라 사본(MT)의 '당신이 더욱 경외를 받으실만한 분인 것은'이란 직역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까닭은 인생이 그 용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게 되고 따라서 그분에게 경외를 나타내고 존경을 표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성경은 흔히 '그의 이름을 인하여', '그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다(25:11; 79:9). 부연컨대,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값없이 주는 선물과 같다. 그러나 용서하심을 받는 일은 하나님의 경외하는 일과 밀법한 관계가 있다. 만일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죄 용서함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호와께 대한 진정한 경외가 없는 곳에는 죄의 용서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 경외는기독교 교리의 본질, 실체라고도 할 수 있다. 여호와 경외가 이토록 중요하고 용서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자는 사유하심, 즉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관한 언급 뒤에 여호와 경외를 덧붙인 것이다.
=====130: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 키위티 예화 키우타 나프쉬) - 직역하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렸다. 나의 영혼이 기다렸다'이다. 여기 '내가'와 '나의 영혼이 기다렸다'이다. 역 '내가'와 '나의영혼'은 동일하게 시편 기자의 전인(全人)을 의미하는데 동일한 내용을 재차 반복한 것은 그가 기다림에 투자한 노력이 얼마나 철자한 것이었는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기다렸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이다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 리드바로 호할티) - 문자적인 뜻은 '내가 그의 말씀 안에 소망을 두었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약속들에 근거하여서 필요한 모든 자비와 은혜를 소망하였다는 것이다. 약속들에 근거한 이 같은 기다림, 소망의 자세야말로 참된 신앙적 자세요, 결코 쉽게 낙망하지않는 자세일 것이다(Perowne). 이는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는 간절함을 내표한 자세이기도 하다.
=====130:6
파숫군 - 이것은 아마도 임무 교대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던 야간 성전 파수꾼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나 진지(陳\地)를 지키는 보초뿐만 아니라 그 원이야 무엇이든간에 깨어 지키는 의무를 지닌 모든 사람에게 이 용어를 적용시킬 수 있겠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날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영혼의 갈망이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도 드물 것이다(Perowne).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 나프쉬 라아도나 ) - 직역하면 '나의 영혼은 주께 향하고 있다'(143:6)이다. 파수꾼이 밤중 내내 아침을 알리는 일출을 간절히 고대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한다는 뜻이다. 본문을 강해함에 있어 델리취(Delitzsch)는 임종시 침상 위에서 한 성도가 그의 눈을 뜨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외쳤던 다음과 같은 유언을 인용하고 있다: '나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득하도다. 나의 전 영혼은 하나님께 향하고 있다'.
=====130:7
이스라엘아...있음이라 - 저자는 그의 소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명할 수 있었다. 본문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 가장 현실감있고 정감이 넘치는 해석을 소개하면 이렇다: '기자는 시시각각으로 압박해 오는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믿음의 내용들이 결국 그를 자포 자기라는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기자는 우리를 각성시키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떠나는 일을 경고하면서, 그 굳건한 믿음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는 자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속에는 분노만이, 악마에게는 미움만이, 세상 속에는 극적인 노여움과 미친 짓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나는 주님께 나를 맡기리라. 그 분에게는 자비가 있고 풍성한 구속이있기 때문이다'(Luther).
풍성한 구속 - 인간의 마음의 가변성, 소망의 빈약성, 믿음의 연약성에 비추어 볼때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속의 축복은 인간이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130:8
저가(* , 후) - 아무도 할 수 없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강조사이다.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 '그 모든 죄악'은 단순히 당면하고 있는 징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구속'은 죄의 용서, 죄의 권세 및 억압적 지배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죄가 낳은 모든 결과들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본시는 시편의 7개 참회시 중 여섯 번째의 시이다(6, 32, 38, 51, 102, 143편). 저
자 미상의 이 시는 고난의 원인이 범죄함에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유(赦有)하심
을 바리는 내용을 담고있다. 루터는 이 시편이 인간의 범죄와 구원의 본질, 그리고 하
나님의 은혜가 잘 나타나 있는것으로 보아 다른 몇 개의 참회시와 더불어 바울 계통의
시편(Pauline psalms)이라고 불렀다(32, 51, 143편 참조).
한편 이 시의 저작시기와 역사적 상황에 관여하여는 일치된 견해를 갖지 못하고 있
다. 사실 본시는 어떤 개인적 혹은 국가적 사건과 연관하여 지어진것이 아니라 철저하
게 영혼의 문제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나온 고백이다. 따라서 인간의 타락한 속성과 더
불어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가 두드러지게 부각되어있다. 우리는 본시를 통해 참된
구원관을 확립할 수 있다.
또한 본시는 129편이 이스라엘을 인격화하여 묘사하는 반면에 한 개인의 호소를 언
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시는 개인적 차원에 국한되지않고 국가적인 범죄를
의식하며 진행되고 있다.
본시는 내용상, 하나님께 대한 간구가 드러나는 전반부(1,2절)와 사죄의 신앙이 표
현되는 후반부(3-8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1절망의 고통 속에서 유
일한 소망이 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께 대한 구원 요청(1,2절) 2 하나님의 사유하심에
때한 확신(3, 4절) 3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의존(5,6절) 4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
비에 근거한 죄사함과 회복의 확신(7, 8절)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의
본시를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하여 보기로 한다.
1. 구원을 요청하는 부르짖음(130:1-2)
시인은 먼저 자신을 깊은 물 가운데서 발버둥치고있는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깊은 데서 하나님께 절실하게 구원을 요청하고있다(1절). 시인은 현재 심각한 절망과
낙담에 빠져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시인의 심정은 큰 물고
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던 요나와도 같다(욘2:2,5). 그는 큰 절말 가운데서 약속의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응답을 기대하고 있다(2절). 하나님은 작은 환난 중에서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지만,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에게 부르짖는 자를 구
원하시기를 더욱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극심한 환
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유하심(130:3-4)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하게 부르짖던 시인은 이제 모든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음을 고백한다(3절). 만약 하나님께서 율법의 요구대
로 우리는 대화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심문하신댜면 세상사람 누구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인간은 필연적으로 파멸할 수밖에 없을 것
이다(나1:6). 가장 거룩한자라 할지라도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은 유일
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존해야한다. 시인은 인간의 본질을 상고하
면서 비관론을 전개한 후에 곧 이어서 '사유하심이 주깨 주를 경외케 하심이나이다'(4
절)라고덧붙인다. 이것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서 죄사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인간이 죄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자력(自力)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우
리와 함께 하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단9:9;요일2:1, 2). 우리가
겸손하게 꿇고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
리의 죄악을 사하시고 구원하여주신다. 지금도 미천한 죄인들과 화목하시기 위하여 마
음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면 우리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계3:20-22).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자비를 동시에 소유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
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진멸하시고, 죄인에게는 사랑을 베푸신다. 이
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자비를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대한 진정한 경외심을 늘낄
수 있게 된다.
3. 주님을 기다림(130:5-6)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시인은 이제 그의 영
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만을 바라겠다고 고백한다(5절). 시인은 '내영혼'
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소망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깊이 느끼는 믿음과
확신임을 밝히고있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이 기다리고 있는 '말씀'은 구원의 언약으로
서 비록 세상의 극심한 고통이 우리는 억누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겠
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고통을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약
속을 확신하면서 인내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성도들의 믿음의 근거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모든 환난을 이겨 나가야
할 것이다(롬4:20, 21).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심정을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것보다 더룩 강
령하다고 말한다(6절). 더구나 '기다리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기
다리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밤을교대로 지키는 파수꾼들이 아침이 밝아오기를 간절
히 기다른 것처럼 하나님을 사모하였음을 밝히고있다. 이와같이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기다리는 강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깨어 근신하며 말씀 생활에 충실하여야한다(마24:32-44;벧전4:7).
4. 이스라엘의 구원(130:7-8)
제사장적 고백이 드러나고있는 본연에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구원에 관한 확
신을 모본(模本)으로 하여 온 이스라엘이같은 마음을 갖도록 권면하다. 시인은 하나님
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지않고 이스라엘이 환난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음
을 강조한다. 그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여호와 안에만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시인은
여러 가지 말로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데, 첫째는 '인자'로, 둘째는 '구속'으로 표
현한다. 즉 하나님은 인자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속하신다는것이다. 하나님의 사
랑만이 가능케 하며, 그 결과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는 것이다(요일4:19).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너무커서 그의 백성들을 모든 죄악에서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죄악의 결과로 인하여 받게되는 온갖 고통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신다. 사실 참되고 실질적인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인자하심을
나타내 주실 때 비로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스라엘의 물질적, 정치적 구원을 언급하지 않았고 오직 죄악에서 구속하심을 강조하였다(8절).
우리도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자체의 구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오직사죄함을 받음으로써만 하나님의 은혜로운 상태를 유지하며 구원이성취된다(롬10:9;요일4:15). 우리는 외적인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풍성하신 구속을 상고하며 생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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