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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37:1,2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로 유다 땅의 왕을 삼음이었더라 그와 그 신하와 그 땅  백
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 "고니야"의 또 다
른 이름은 여호야긴이니(왕하 24:6), 잠간 왕이 되었던 일이 있으나, 바벧론으로 사로
잡혀 감에 따라 그의 숙부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의 세워줌을 받아 왕이 되었다. 그러
나 시드기야를 위시하여 그 때 유다 민족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바
벧론에게 반역하기를 꾀하였던 것이다. 왕하 24:19,20; 대하 36:11-13 참조.
   예레미야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그들의 생각에는, 저희가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것
이 아니라, 인간인 예레미야를 순종치 않는 것 뿐이라고 하였을 것이다(Calvin). 그러
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세워서 자기 말씀을 전하시는 증표는 얼마든지 있었다.  특
별히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가 바벧론의 침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 그 많은 예
언들 중에 제목이 되어 있었던 것인데, 이제 그것이 그들의 목전에 이루어진 것이  사
실이다.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구분은, 그 예언이 성취되는 여부에 달린  것이
다. 신 18:22에 말하기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
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라고 하였다.

 

  렘 37:3,4

  시드기야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
레미야에게 보내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
니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 "여후
갈". 38:1 참조.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시드기야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도 예레미야더러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청한
다. 이 청원에서 그의 두 가지 허물된 점이 나타난다. (1) 자기 자신은  기도하지  못
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뿐더러 그 불순종에 대하여 회개치  않는  자로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마음조차 일어나지 아니하며, 기도도 되어지지 않는다. (2)  하나
님의 말씀에 순종치는 않으면서 곤난한 때를 당하여 그의 도우심만 받고자 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용될 어떤 도구가  아니다.  윤리
도덕 문제와 성결 문제는 도외시하고, 인간 자신의 의욕 성취를 위하여 신(神)을 찾는
것은 이교도들의 행위이다.
   휄드캄프(Veldkamp)는,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더러 기도하여 달라고 한 것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것은 신앙이 아니며 순전히 이교적이다"(Het is geen  geloof...Het  is
puur heidendenom. -Een Dubbelleven,p. 190)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구에
는 응하지 말라고 벌써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7:16, 11:14, 14:11, 15:1).

 

  렘 37: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 이때에 애굽 왕(바로) 호브라(Hophra, B.C.588-569)가  바벧
론 군대(갈대아 군대)를 대항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떠났다. 이렇게 된 것은 유다가 청
병(請兵)한 까닭이었겠다. 이때에 바벧론 군대는 애굽 군대와 싸우기 위해 예루살렘에
서 떠났던 것이다.

 

  렘 37:6-10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시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
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
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
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
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령  너
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
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 시드기야 시대에도 유다 민족은  선지
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보다 애굽 군대를 의지하였다.  바벧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 쌌을 때에도 애굽에 대한 그들의 신뢰심은 변치 않았다. 때마침,  애
굽 왕 바로의 군대가 유다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기 위하여 출동함에 따라, 바벧론  군
대(갈대아 군대)는 예루살렘에서 떠났다. 그 때에 애굽을 의지하던  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을 믿지 않던 차에 더욱 의기양양하게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을 강화하였을 것이
다. 이런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려고  예
레미야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1) 바로의 군대는 후퇴하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다
는 것(7절). (2) 바벧론 군대(갈대아 군대)는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그  성을  불사를
터이니 그 군대가 유대인들을 떠나리라고 생각지 말라는것(8,9). (3) 설혹 유대인들이
바벧론 군대를 쳐서 부상자만 남도록 한다 할지라도, 그 부상자들이 예루살렘성을  불
사르리라고 함(10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유다 나라를 벌하시는  것인  만
큼, 예루살렘성은 망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으랴.
   위의 세 가지 말씀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유다 민족을 사랑하여 주신 말씀이다. 하
나님께서는, 애굽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간곡한 말씀
을 그에게 주셨다. 그는, 죄인을 벌하시기 좋아하시는 신(神)이 아니시고 최후까지 죄
인들을 권면하여 회개시키기를 힘쓰신다. 바벧론 군대가 애굽 군으로  더불어  싸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때의 유대인들의 심리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괴악했
으랴. 그 본래 하나님을 떠났던 마음이 더 멀리 떠났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는 그들을 당장 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그들의 마음이 바로 돌아  오기를
권면하셨다.  

 

  렘 37:11-13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하여 베
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두목
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가로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  11절에
갈대아인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말은, 앞의 5절의 내용을 재설함이다. 그러므
로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두 번째로 떠났다는 말씀이 아니다.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라는 히브리어(*                                 )는,
일설에,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어떤 "토지의 분깃을 받으려고"라는  의미라고  하
나, 칼빈은, "백성 중 고요히 거하려고"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
렘에서 갈대아 군대가 떠남에 따라 애굽을 의뢰하는 유대인들이 일어나서  예레미야를
핍박할 공기가 농후해졌다. 이런 때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나가 한적한 곳에 고
요히 지나려고 하였다. "베냐민 문"이란  것은,  예루살렘의  북쪽  문이다(38:7;  슥
14:10). 이것을 에브라임문이라고도 하였다(왕하 14:13; 느 8:16). "네가  갈대아인에
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이것은, 거짓된 누명이다.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거짓된 자들
에게서 이런 누명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 때에 유다 민중친애굽주의로 흘러서 바벧
론을 대적하려고만 하였다. 그러나 바벧론 군대는 실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니 만큼, 예레미야는 바벧론 군대를 반대하지 않았다(21:8-10). 그는, 유
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바 아니었으나, 그 사랑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이었
다. 곧, 그는, 그 민족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만 바로 될 줄 알았다.

 

  렘 37:14

  예레미야가 가로되 망령되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
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방백들에게 끌어가매 - "망령되다"라는 말은  히브
리 원어로 쉐케르(*       )이니,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리야가 자기에
게 씌우는 누명을 사실과 반대된다고 지적한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떠나는 것은, 개인
의 생명 구출을 위하여 바벧론 군대에게로 건너서려는 비루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는,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더러 바벧론에 항복하라고 했으나(21:9, 38:2), 그것은,  유다
나라가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는  자
기 혼자 살려고 구차스러운 행동을 취할 자는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말하기
를,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한 것이다.

 

  렘 37:15

 방백들이 무죄한 예레미야를 때리고 감금한 사실을 보면, 그 때에 민중을 지도하던
그들이 얼마나 무법(無法)하고 부패하였던 사실을 볼 수 있다.

 

  렘 37:16,17

  예레미야가 토굴 옥 음실에 들어간지 여러 날만에 시드기야왕이 보내어 그를  이끌
어 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
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이 바벧론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 - 시드
기야왕이 예레미야를 석방하고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 유무(有無)를 물어본 태도는, 그
가  방백들보다는  선량한  면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대하
36:11-13), 시드기야왕을 악한 왕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을 보면, 그는, 선량한 방면이
있으면서도 인격이 유약(柔弱)하여 악한 신하들에게 좌우 되었음이 분명하다.
   시드기야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계시 유무를 물어 본 것은, 순종할 결심으로 그리
한 것보다 다만 미로(迷路)에 빠져서 아무런 결단성도 없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물어
본 것 뿐이다. (1) 이런 의미에서 그는 또 다시 이교도의 태도를 취한 것이다. 회개하
므로 생활을 돌이키는 일은 없이 단순히 공포심으로만 미래의 일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하나의 점술자(占術者)와 같이 취급하는 잘못이다(3절  해석
참조). (2)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육적 감금을 당하여 자유 못하는  자가
된 사실을 보는 동시에, 시드기야는 죄악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유하지 못하는 또 하
나의 포로인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상 영적으로 말하면, 자유인은 시드기야왕이  아니
고 선지자이며, 갇히운 자는 선지자가 아니고 왕이다(Veldkamp). 왕이 얼마나  두려움
에 사로잡혔던가? 그가 예레미야를 면회하되(17절), "비밀히"(*         ) 한 것만 보
아도 알 수 있다. 왜 비밀히 하였을까? 그것은,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신하들을 두려워
한 까닭이다. 그는 왕이면서도 이렇게 수하(手下)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의인(義人)
예레미야를 접촉하는데 있어서 "비밀히" 하였다. 누구든지 그 자신이 의를 사모하면서
도 의에게 투신(投身)하지 않는 자는, 늘 이렇게 비겁한 자가 되어져서  두렵지  않은
것까지도 두려워하게 된다. 의에 투신하는 자만이 담대하다. 잠 28:1에 말하기를, "악
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라고 하였다.
   시드기야왕의 물음에 대한 예레미야의 답변은 또 다시 담대하게 나온다.  이번에도
그는, 그 때 지도자들이나 일반 백성이 듣기 싫어하는 예언을 전과 같이 거듭 말한다.
특별히 시드기야왕의 신상(身上)에 임할 직접 위험으로써 경고를 발한다. 이것은 물론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는 일국의 왕으로서는 듣기 싫어향 말이다. 그때의  지도자들은
이런 말을 다 듣기 싫어하였다. 38:1-4 참조.

 

  렘 37:18,19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
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바벧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
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 이 귀절들은 예레미야
자신의 변호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때에 성직자의 자
신 변호도 그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성직(聖職)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도
이런 의미에서 자기 변호를 하신 때가 있다(요 18:23). 선지자는 이런 변호를  하므로
그의 선포한 예언의 정당성을 내세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왕에게
나 왕의 신하에게 무슨 죄를 범했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라고 한다(18절).  곧,
자기 예언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다시 묻기를, 자기의 예언 내용
과 정반대 된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이 맞았는가 하는 의미로, "바벧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거짓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
까"라고 한다(19절). 그 때에 바벧론 왕이 유다를 침략하였으니,  예레미야의  예언은
맞는 동시에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맞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제 얼굴을 나타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왕의  선지자들(거짓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라고 한다.

 

  렘 37:20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
의 집으로 돌려보지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 이 귀절은,  예
레미야가 시드기야더러 자기 생명을 보호하여 달라는 탄원이다. 그는 왕궁에 끌려  오
기 전에 요나단의 집에 갇히었던 것인데, 이제 다시 그리로 돌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거기서 죽임이 될까 두려워한 까닭이다. 여기서  그는  죽음을
기피하는 심리를 충분히 나타냈다. 이것은, 선지자가 초자연 사역을 하는 동시에 자연적 심리도 가진 사실을 보여 준다.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다(약5:17). 하나님의 사람이 구차스러이 생명을 아끼는 것은 옳지 않으나,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도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방면이 있다.  예레미야가 아직도 하나님의 사명을 완필하지 못한 줄 아는 한, 이제 그가 요나단의  집에 다시 갇히어 거기서 죽고 마는 것은 그의 원할 바 아니었다. 빌 1:23,24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에 예레미야의 죽기를 두려워한 태도를 낮추어 평가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의 이와 같은 태도를 도리어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해야 된다.

  렘 37:21
  이에 시드기야왕이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를 동정하여 요나단의  집에  가두지 않고 "시위대 뜰에" 유치(留置)시켜 두고 떡을 공급했으니, 그 결과로 예레미야의  생명이 보호를 받았다. 그가 만일 아주 석방되었더라면 그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그를 해하였을지도 모르며, 또한 식량이 핍절된 그 때에 주려 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드기야왕이 그를 "시위대 뜰에" 유치시켜 두고 "매일 떡 한 덩이씩"  공급했으므로 그는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연명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버리시는 것 같으나, 도리어 그 방법으로 오묘하게도 그들을  보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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