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8:1-3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실물(實物)로 비유하여 보여주시는 일이 많다. 그가 이
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인상 깊이 깨닫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그의
말씀은, 우리의 실생활과 관계 없이 그 초절(超絶)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
든지 우리의 생활과 역사(歷史)에 있는 사항들로써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우
리에게 내재(內在)하시어 우리와 융통성(融通性) 있는 교재(敎材)들을 가지시고 우리
들을 가르치신다. 이 세상에 가득찬 것들은 모두 다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그의 교
재들이다.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 하신 것은, 토기장이의 집이 어떤 골짜기에 있었
던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로 하여금 진리를 확신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
저 이론으로만 말씀하심보다, 그로 하여금 실제로 가서 견학(見學)하게 하신다. 우리
는 어데를 가든지, 무엇을 보든지, 거기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교재들에 대하여 견학
할 줄 알아야 된다. "녹로"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오브나임(* )인데, 진흙
으로 오지 그릇을 만들 때에 사용되는 틀(그것에 의하여 그릇을 形成함)을 의미한다.
렘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
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하나님의 주권(主權)은 잘못된 인간을 가지고도 선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잘못된 뜻을 돌이키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동하여 유익을 이룬다는
것(롬 8:28)도 이런 의미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신다
(마 3:9). 하나님의 손에 있어서 인간은 진흙과 같다(욥 10:9, 33:6; 사 29:16, 45:9,
64:7). 그러므로 인간은, 평안할 때에 교만할 필요 없고, 환난 때에도 낙심할 필요 없
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진흙인 줄만 알고 절대(絶對)의 겸비와 절대의
신앙을 파수할 따름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취할 그의 온당한 태도이다.
렘 18:5,6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
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
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 여기서는 하나님
께서, "진흙"에 대한 "토기장이"의 주권(主權)과 마찬가지로 그가 이스라엘 백성과 모
든 국가들에 대하여 가지는 절대 주권을 말씀하여 주신다.
렘 18:7,8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때에 소망이 있음을 밝혀 준다. 비록, 그 백성
이 불원한 장래에 벌 받도록 하나님의 선고(宣告)를 받은 처지에 있다 하여도, 그들이
회개만 하면 구원 받을 소망이 있다고 한다. 이만큼 하나님은 진실한 회개자를 기뻐하
시어, 그 사람을 벌하시리라는 선언까지도 철회(撤回)하신다. 8절에, "돌이키면"이란
말(* =솨브)은 중요하다. 이것은, "회개"란 것이 단지 말 뿐이 아니고 실제적 생활
과 행동의 참된 시정(是正)인 사실을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런 "돌이킴"
(* )을 기뻐하신다는 의미에서, 재앙을 내리시려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악에서 돌이킴과,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실 뜻에서 돌이키심을 서
로 대응(對應)시켜 역설(力說)하신다.
렘 18:9,10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어떤 국가를 건설하시려고 작정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악을 행
하면 그의 계획을 철회하시겠다고 하신다. 이것을 보면, 주님은 악과 타협하시지 않는
신(神)이심을 알 수 있다(시 5:4). 악은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다(10절
상반). 사람이 혹시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다시 주
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요컨대, "주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함이 멸망을 가져온
다. 삼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거역하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
한 것은 사신 우상에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라고 하였다.
렘 18:11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의 죄악을 인하여 벌하시겠다는 경고를 발하시며, 그들더
러 회개하라고 하신다. 회개하라는 것처럼 귀한 말씀은 없다. 옛 글에도 말하기를,
"충성된 말이 귀를 거스리나 행위에 유익하다"(忠言逆耳利於行)라고 하였다. 회개하기
를 거부(拒否)하는 자에게는 망할 길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잠 16:20에, "말씀에 주의
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라고 하였고, 잠 28:13에는 말하기를, "자기의 죄를 숨기
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라고 하였
다.
렘 18:12
유대인들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헛된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신자
들의 세계에 흔히 있는 고질(痼疾)이다. 신자들이 입으로는 "회개"하라는 말씀을 귀히
여기나, 심령으로는 그 말씀을 중대시 하지 않으며, 또 실상 회개하지 않는다.
렘 18: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를 가리켜 너무 이상하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 어느 나라도 받지 못한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렸다. 이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처녀 이스라엘"이란 말은,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적 신부(靈的新婦)로 정(定)함이
되어 정결(淨潔)해야 될 이스라엘이란 뜻이다(Calvin). 이런 축복 받은 처지에 있는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너무도 모순된 일이며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음 귀절에, 이스라엘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은 괴악(怪惡)한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자연계(自然界)의 사리(事理)를 들어 꾸짖으신다.
렘 18:14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내리는 찬 물이 어찌 마
르겠느냐. - "레바논의 눈(雪)이 들의 반석을 떠나"지 않는다 함은, 눈(雪)이 언제든
지 "레바논산"꼭대기를 덮고 있다는 뜻이다. "들의 반석"(* )이란 것은, 레
바논산 그 자체의 별명(別名)이다(Delitzsch). 이렇게 레바논산의 눈은 사시절(四時
節) 늘 있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변절(變節)한다고, 하나님은 꾸짖으신
다. 사람은 자연계(自然界)에서도 배워야 한다. "원방에서 흘러 내리는 찬 물"은, 레
바논산의 눈이 녹아 깊이 스며내려 먼 지방에까지 흐르는 것을 가리킨다(Delitzsch).
그것은 땅의 깊은 데로 스며 흐르기 때문에 "찬 물"이고, 증발(蒸發)되지 않으므로
"마르"지도 않는다. 자연계도 이렇게 변동 없이 절개를 지키는데, 유대인들은 도리어
옛날부터 전승(傳承)되어 온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버렸다는 것이, 이 부분에서 탄식
하는 말씀이다(15절 참조).
렘 18:15
"옛길"(* )이란 옛날부터 내려오는바 하나님의 말씀이 명한 참된
종교를 가리킨다. 이것은, 옛날부터 신자들이 성령에 의하여 양심적(良心的)으로 믿어
져 내려온 것으로써, 흠 잡힐 때가 없었다. 그것("옛길")이 진리인 증거로서는, 그것
과 관련된 예언들이 성취(成就)된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을 버리고, "곁길",
곧, 우상의 도를 따라갔다. 우상의 도는 "닦지 아니한 길"(* )과
같아서 사람을 허무한 데로 인도할 뿐이다. 유대인들이 우상을 따른 것은, 하나님을
모르던 다른 민족이 그러한 것보다 더 큰 죄악이다. 그것은 알고도 지은 죄요, 또는
과잉(過剩) 범죄인 것이다(히 10:26-31). 그것은, 자연스럽지도 않은(14절 해석 참
조), 괴이한 행동으로서 더 큰 벌을 받을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16,17절은, 그들의 받
을 벌이 어떻게 클 것을 진술한다.
렘 18:16,17
이 두 귀절은, 유대인들이 그 범한 죄로 인하여(16절) 받을 벌을 말한다.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 영영한 치소가 되개 하리" - 라 함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
은 사실을 알려 준다. 곧,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인데도(민
13:27) 불구하고, 놀랠만큼 황폐하여 행인들의 "치소"거리가 되는 것은, 거기 살던 거
민(유대인들)의 죄 값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좋던 것이 그렇게도 비참해진
원인을,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홑"으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바벧론으로 하여금 유다를 침략케 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이것
도, 그들의 죄 때문에 임한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신 것도 기적으로 되었지만, 그들이 범죄한 때에 그 땅을 도로 빼앗으심도
그의 특별한 간섭으로 된 것이다. 주거나 빼앗거나 하시는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
다(욥 1:21).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생의 환난에서 구원하여 주시지 않고 외면(外面)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들
이, 이미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들은체 만체 하였으니만큼, 이제 이와 같
은 보응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 말씀도 그들이 일찌기 하나님을 등진 죄악을 생각
케 하는 방식으로 벌을 선언하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받아 순종하
지 않고 들은체 만체 하며 등지면, 필경 하나님께서 우리를 등지시고 돌보시지 않는
때가 온다.
렘 18:18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할 뿐 아니라,
그의 예언 운동을 저지(沮止)시키자고, 대중을 충동한다. 그들의 이와 같은 운동은,
(1)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는 것임. 그들이 서로 "오라"(* =레쿠
-)고 한 것은, 사람들의 힘을 모으자는 의미이다. (2) 그 때에 제도적(制度的)으로 존
재한 부패한 "제사장과 소위 지혜자들과 선지자(거짓 선지자)의 말을 빌어서, 예레미
야의 예언 운동을 제지하고자 하는 것임. 언제든지 종교가 타락한 때에는 하나님의 참
된 종을, 부패한 기성 지도자들의 교권(敎權)이 막는다. 그러나 기성 지도자층(旣成指
導者層)이 언제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그들이 거짓 스승의 운동을 막
는 일도 있다.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외식하는 종교가들은 신앙과 의리로 형통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말로써 의인(義人)을 훼방하여 이기고자 한다. 시 12:4 참조.
렘 18:21,22
선지자의 대적들(對敵)들은, 곧 하나님의 대적들이다. 그 이유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로서 만전(萬全)을 기(期)한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사감(私感)으로 원수 맺은 바 아니었다. 그는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기까지 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그들을 대적했으니, 그것은 악으로 선을 갚는 악마적(惡魔的)인 행동이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원수로 노골화(露骨化)된 자들이다. 이런 때에는, 그가, 하나님더러 그 본래 작정하셨던대로 저희를 벌하시기를 구할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벌의 종류는, "기근"과 "전장"(戰場)에서 그들의 자녀들이 많이 죽을 것이다. 이것은 비참한 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죽이려고 한 죄악 때문에 임할 것이다(22절 하반, 23절)
선지자를 대적한 죄는, (1) 곧바로 하나님을 대적한 것과 같으니만큼 그 벌이 저렇게 크고, (2) 또한 그 죄는, 그들이 본래의 죄(바벧론의 침략을 받아 마땅한 것)를 회개치 않는 태도니만큼, 이제는, 그들이 본래대로 전쟁의 화를 당할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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