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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11: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7:1 해석 참조

 

  렘 11: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옐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 "이 언약"(*    
                )이란 말 뜻은, 유다 민족의 마음 가운데서 떠날 수  없는  옛날부터
유명한 "언약"을 가리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과 "언약"(*          =뻬
리드)에 의하여 관계를 맺으신대로(출 19:5-9; 신7:9), 약속을 지키시며 그 백성을 판
단하신다. 물론 이 언약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목표한 것으로서 필경 메시야에  의하
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구원 받을 것을 지향(指向)한 것이다(창 12:3, 22:18). 하
나님께서 이 계약을 계시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먼저 유대 민족을 택하셔서  장차  온
세계에 메시야의 목음을 증거할 거룩한 국가로 훈련시키신 것이다(출 19:5,6). 이  훈
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메시야 예언을 주실 뿐 아니라 천국의 예표로서의
가나안 땅을 주실 것과 및 거룩한 민족으로서의 지킬 종교 윤리의 제도와 교훈을 주시
고 거기에 순종하라고 명하셨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메시야와 및 그로 말미암아  실시
될 구원을 가리키는 그림자였던 것이다(히10:1). 따라서 모세 5경과 및 구약의 역사적
문헌이 계약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고, 선지자들도 실질에 있어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이 계약을 지향하고 말한 것 뿐이다. 에덜솨임(Edersheim)도 이와 같은 의미로 말하였
다(Prophecy and History in Relation to Messiah, pp.42-45). 이 언약의  말씀  내용
은, 4,5절에 촬요(撮要)되어 있다.
   "고하라"(2절 끝)란 말(*          )은 예레미야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너희") 계약의 말씀을 모든 민중에게 기억시키는 역할을 하라는  의미이다.  사람들
은, 하나님께서 그 진실성을 가지고 은혜롭게 계약하여 주신 구원의 말씀을  잊어버리
기 잘한다. 그 원인은, 그들이 사는 이 세상은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이 계약의 말씀을 끊임 없이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무궁하신  진실성을  밑천으로
하고 세우신 계약에 의하여 우리와 관계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의 모든 말씀은 언약(言約)의 성격을 가지고 임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 언약이  인간적
인 것이 아니고 무한히 진실하신 하나님의 것임을 늘 기억하여야 한다.

 

  렘 11:3

  여기서는 언약의 말씀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저주"
(*          =아룰)란 벌은 매우 엄중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그 벌이 엄중하게 되는
이뉴는, (1)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무궁한 진실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이상  믿을만한
것은 천하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눅든지 그것을 안믿는다면 주님께로 돌아올 길이 아주
없는 까닭이며, (2) 언약의 말씀은 실상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 주는 말씀인데  누구
든지 그것을 좇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며, (3) 언
약의 말씀은 모두 나 옳은 말씀인데 누구든지 그것을 받지 않는 자는 멸망으로 떨어지
게 하는 악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저주(*         =아룰)를 받을 것이니라". 이 선언은, 극도로 강퍅한 지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대하여 불순종을 고집하는 자들은,  이런
선언을 받아 마땅하다. 이런 의미에서 신 27:15-26에 열 두 번이나 저주 선언의  당연
성을 고조한다. 저주를 받을만한 죄를 고집하는 자는, 결국 발뒤꿈치로  송곳을  차는
격이다.

 

  렘 11: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
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쇠풀무"(*     
              =쿨 하빨젤)는 무서운 압제를 의미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그
런 무서운 고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이런 환난에서 건져 내어  시내산에
이르러 언약하시고 주신 말씀은, 그들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살리며 평
안케 하려는 것이었다. 이 언약의 말씀 내용은 그들더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이며, 또한 그들이 순종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
님이 되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1) 실상  그드을
영생케 하여 주신다는 약속과 같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다(마 22:32). (2) 그 뿐 아니라, 영생하신 하나님을 소유함도 영생을 의미한다. 그러
므로 하박국 선지는 말하기를,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
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다(합
1:12). 렘 10:16 해석 참조.

 

  렘 11:5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
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창
15:7-21; 출 6:4), 과연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고 한 것도 위에 말한 언
약의 일부분이다(시 105:9-11).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가나안 땅을  이름
인데, 곧, 거기 목축(목축)이 성하여 젖이 많이 생산될 뿐 아니라, 거기에서 꿀이  많
이 생산된다는 뜻이다.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곧, 예레미야 시대에 유대인
들이 살고 있는 땅이 바로 그 약속 성취를 증거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
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선지자는, "아멘"(*        =과연  그렇습니
다)이라고 한다. 유대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진실함을 알 수 있다. (1) 이 땅을 주시기  위
하여 아브라함 일개인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어 그 땅을 주시마고 약속하셨다. 그
런데 그 성취에 관하여 400년이라는 연수(年數)까지 붙여 약속하셨던 것(창  15:13)을
필경 그대로 이루신 것은 놀라운 일이며, (2) 가나안에는 강한 7민족이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민 13:33),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필경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 강한  7민족
을 정복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그의 약속은 신실하다.


  렘 11:6

  알델스(Anlders)는, 본절부터 8절까지는 앞부분(1-5)의 계속이 아니라고 하고,  앞
의 것은 요시야의 개혁 시대에 말한 것이고, 뒤의 것은 요시야  시대에  갱신(更新)된
언약을 민중이 어겼을 때(여호야김 시대)에 외친  말씀이라고  한다(Ik  neem  daarom
ann, dat het eerste stuk betrekking heeft op een optreden van den profeet in  de
dagen van Josia's reformatie zelve, terwijl het tweede ons voert naar  een  veel
lateren tijd, toen het onder Josia bezworen verbond opnieuw werd  gebroken,  dus
in elk geval naar de dagen van ojakim.-Korte Verklaring, Jeremia, p. 103).  그러
나 우리는, 이 두 부분의 말씀이 각각 서로 다른 시기에 전파된 예언이라고 할만한 이
유를 보기 어렵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
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더러,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라고 하신것은,  이  모든(이
아래 진술된) 말씀이 전 민족에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
나님이시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받아서 순종할 때 복을 받을  수  있다(롬  3:29).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언약"(*        =뻬리드)에 대해서는 2절 해석을 참
조하여라.

 

  렘 11:7,8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의 지도 하에 있던 유대인들더러 하나님의  말
씀을 순종하라고 하셨으되, 그들이 순종치 않았으므로 필경 그 계약의 말씀대로 벌 받
은 사실을 지적하신다(히 3:15-19).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경계하신 것이 얼마나
간곡하였던 사실이 여기 기록되었다. 곧,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라고 한 말씀은, 시간적으로 보아 경고하시를 그친 때가  없다는  것이고,  "간절히",
"부지런히"란 말씀들은, 그 경고가 얼마나 애타는 심정으로 된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
님께서는 죄인들을 당장에 벌하시기를 원치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그들의  회개하기
를 간절히 원하시는 사실이, 여기 계시되어 있다.
   그와 반면에 이스라엘의 열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일에 있어서  너무
도 강퍅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강퍅한 것을 진술하기 위하여,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
(*                ),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함", "강퍅한 대로 행함", "행치 아니함"
등의 말씀이 거듭거듭 불순종한 것은 하나님의 그 크신 자비로써도 용납하실 수  없는
일이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이스라엘 열조들의 강퍅하였던 사실과, 그 결과로 벌 받은 사실
을 여기서 기억시키는 목적은, 자기 시대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전감(前鑑)으로
삼게 하려는 것이다.

 

  렘 11:9,10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이
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도다 - 여기 "반역"(*    
       =케쉐르)이란 말(9절)은, 그 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계약 말씀을 위반하고 우
상 섬긴 것을 가리킨다(10절). 그들이 요시야 시대에 발견된 율법책에 의하여  하나님
의 계약을 재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반역"하였다. 이렇게 자주 "반역"하는
것은 광야의 "열조"들(8절)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불신실한 자들에 대하여 시편 78편
은 말하기를, 그들이 하나님께 "아첨"한다 하였으며(36절),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
음이 정함이 없"다 하였으며(37절), 저희가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다  하였으며(37
절), 저희가 그를 "반항"하였다 하였으며(40절), 저희가  하나님을  "슬프시게"하였다
하였으며(40절), 저희가 하나님을 "격동하였"다(41절)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은
혜를 자주 받으면서도, 그를 믿어 순종치 않는 자는 이런 강퍅한 자들의 반렬에  참예
한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은,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를 의미한다. "그  열조와  맺은
언약"에 대하여는 2,4절에 있는 해석을 참조하여라.

 

  렘 11:11-14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
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곤액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
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
을 쌓았도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드을 위하여  부르짖거
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
하리라 - 이 부분에서는, 그 때에 유대인들이 강퍅하게 범죄한 것 때문에  받을  벌이
어떠할 것을 보여준다.
   (1) 내리는 재앙을 피할 길이 없음(11절). 그들이 기어코 악행을  따랐으니,  재앙
(악한 것)이 역시 그들을 따라 잡는다.
   (2) 그들이 구원 받기를 애원해도 하나님게서 듣지 않으심(11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므로 하나님도 저희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
   (3) 그들의 위하는 신들이 그들을 구원하여 주지 못하는 사실이 드러남(12,13). 큰
환난이 오기 전에는 그들이 많은 다른 신들을 섬겼으며, 그 신들이 저희를 구원해  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도 그들의 섬기는 신의 수효가  많아진  사실이(13절),
그 신들의 무력(無力)을 자증(自證)한다. 실상 우상 숭배가 효력을 내지 못하기  때문
에 사람들은 이 우상 저 우상 많이 섬겨 보게 되는 것이다. 참된 신을 섬기는  종교에
있어서는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긴다(고전 6:8).  중보자(仲保者)도  한  분이시다(딤전
2:5).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쓸데 없는 일을 하는 것인 만큼 효험을  못보고  신
(神)의 수효만 증가시킨다. 그러나 그들이 어두워서 저희의 가지는 우상 종교의  헛됨
을 개닫지는 못하고 있다가,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환난 대에 이르러서야 저희의  섬
기는 신의 헛됨을 발견한다.
   (4) 유대 민족이 이제는 벌 받을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참 선지자는 저희를 위하
여 기도하지 못하게 되었음(14절). 진리의 종들의 기도를 받을 수 있는  자들은  복되
다. 기도는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구해야 된다. 그러
므로 올바로 기도할 수 있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의 축복이다.

 

  렘 11:1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 - 여기 "나의 사랑하는 자"란  말
은, 히브리 원어로 예디디(*         )라고 하는데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많이 행음
하였"다 함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외식으로 하고, 많은 우상들을  섬긴
영적 행음을 가리킨다. "거룩한 제육(제물로 사용하는 고기)이  그(유대  민족)에게서
떠났"다 함은, 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전 봉사를 무의미하게
여기시는 말씀이다. 일변 모든 악행을 위주하면서 또 다른 한편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렘 7:3-11; 사 1:1-17).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
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우상을 섬기며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
어 교만한 유대 민족의 죄를 지적함이다. 악을 행한 자는 마땅히 수그러지고 먼저  회
개를 이루는 근심을 할 줄 알아야 된다. 죄인들은 먼저 진실하게  근심하며  낮아지고
애통할 대에 복을 받는다(마 5:4; 눅 6:21). 죄를 지으면서도 기버하는 자는 멸망으로
직행할 뿐이다(눅 6:25 하반).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본적의 히브리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곧, "나의
사랑하는  자(유대 민족)가 집에서 무엇을 하는가 서원과 거룩한 고기가 네게서(유대
민족에게서)재앙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너는 기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유대 민족이 그 대에 일변 우상을 섬기면서도 다른 한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체면을 보존키 위해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는 거짓된 행동을
꾸짖는  말씀이다. 여기 델리취가 번역한 대로, "서원하는 것과 거룩한 제육이 네게서
재앙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라고 한 문구는, 70인역을 의종(依從)한 것이다.

 

 렘 11:16,17

  여기서는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범죄한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이 화 받을 것을  알려
준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들로서 잘 배양되었기 때문에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                      )같았다(감람나무는  義
人을 상징함). 그러나 장차 전쟁으로 인해("큰 소동 중에") 그것이 불붙고 가지가  꺾
이움 같이 그들이 파멸되리라고 한다. 그들이 그렇게 될 이유는 17절의  말씀과  같으
니, 바알에게 분향하여 하나님의 노(怒)를 격동시킨 까닭이다.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
와 내가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유대와 이스라엘 민족을 심으셨으
니 만큼(세웠으니 만큼), 그들을 벌하시는 것쯤은 넉넉히 하실 수 있다. 세우신  이가
파괴하시지 못하시랴!

 

  렘 11:18

   본절부터 23절가지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를 죽이려는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처음에 그 음모에 대하여 전연 아는 바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啓示)로 알려 주셨기 때문에 알았다. 이것을 보면, 선지자의 위치가 얼마
나 일반 신자들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으로 진리를 모르지만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받아 가장 깊은 문제들을 알았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그의 외친 말슴은
우리의 절대 신앙을 요구할만한 진리(眞理)이다.
   "그 때에"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아즈(*     )인데, 여기서는, 예레미야가  그들의
음모(陰謀)에 대하여 전연 모르던 시기(時期)를 가리킨다(Delitzsch). 본절 하반절 말
슴은 실상 상반절의 뜻을 반복한 것 뿐이다. 히브리어에 있어서 이런  반복체(反復體)
는 역설(力說)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가 확실하게
된 것을 역설한다. 그는, 그 확실성의 근거를 자기의 어떤 추측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에 둔다.

 

  렘 11:19

   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
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 "순한 어린  양"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케베스 알루프(*                   )라고 하는데 길들어 사랑 받는 양
을 의미하는바, 흔히 아라비아 사람들이 그렇게 가정에서 양을 어린 아이처럼  기르는
풍속이 있었고, 유대인들도 그렇게 하였다(삼하 12:3). 그렇게 가정에서 고임을  받는
양은, 그 가족들이 죽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이, 예레미야도  자기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
런데 그들은 그런 음모를 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 "순한 어린 양"이란 말  뜻은  위의
해석과 같은 뜻을 가지지만, 역시 예레미야가 어린 양처럼 은유하여 적대하거나  복수
행위를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가진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처세는 온유로  일관하
여야 한다(마 10:16; 고후 12:10).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라는 말(*     
                                )은, 예레미야와 및 그의 열매(그의 증거한 말씀)를
온통 없애 버리자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글자 대로의 번역은, "나무를 가지고 그의
떡을 못쓰게 만들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음식에 나무를 넣어  그
를 해롭게 하자는 듯이겠다. 위의 두 가지 해석 중에 어느 것을 택하든지 결국 예레미
야를 땅에서 없애 버리겠다는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를 가리킬 것이다. 하반절은  확실
히 그것을 의미한다. 언제든지 참된 선지자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한다. 요
15:18-21; 딤후 3:12 참조.

 

  렘 11: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
노라 하도다 - 이 귀절은,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陰謀)가 무엇인지 또  다시  밝힌다.
곧 그것은, 그들이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기 때문에  그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함보다 그의 예언을 미워한다는 사실이 이 귀절에 나
타나 있다. 예언자가 자기의 전하는 하나님 말씀 때문에 세상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
면, 그는 은근히 안전감(安全感)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미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 말씀이 먼저 미움을 당하여 하나님 자신이 핍박을 당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핍박을 받는다. 따라서 그 일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께서 필경  승
리하실 것을 믿고 안심한다. 요 15:18에 말하기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라고 하였다.

 

  렘 11:22,23

   이 귀절들은,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핍박한 죄 값으로 필경 바벧론의 침략을
받아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을 예언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대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
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  "쟁변"
이란 말(*       )은 변론함을 의미한다. "주는 의로우시니이다"라고 한 말슴(*     
                    )이 히브리 원문에서는 본절 초두에 나왔으니, 그것은 역설체(力
說體)이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이 점을 역설한 이뉴는, 그가 비록 이  아래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의문(疑問)하기는 하지만, 주님의 의(義)로우심을 믿는 그의 신앙
에 있어서는 의심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사(行事)에 대하여 알아  보고
저 할 때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와야 된다. 곧, 그의 옳으심에 대하여는 어떤  경우
에서든지 믿을 것을 전체(全體)로 하고 나와야 된다. 그러므로  욥  9:3에  말하기를,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팩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이런  질문은, 시 73:2-16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시(詩)를 슨 성시인(聖詩人)은, 그  난제(難題)를 성소(聖所)에 들어갈 대에 깨달았다고 한다(시 73:17). 그 깨달음은  이것이니, 곧, 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악인들이 있기는 있으나 그들은 반드시 멸망 당할 때가 있는 반면에,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재앙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주시며, 필경 그는 하나님을 영원한 분깃으로 모시게 된다는 것이다(시 73:18-28). 시 17:14,15 참조.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기 발표한 의문(疑問)도 불신앙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의로우심을 믿는 처지에 있다. 1절 상반 참조.  선지자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도 난제에 대하여 의문하는 방식으로 말한 이유는, 겸손히 알고자 하는 동기에서 그리한 것 뿐이다. 시 13: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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