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0:1,2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본장에서도 예레
미야는, 자기의 전하는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임을 네 번 역설(力設)한다. 여기 1
절 초두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임하"였다.(*
)하고, 2절에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라고 한다. 그리고 3절 초두에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라고 한다. 이와 같은 말씀들은 예레미야
의 문투이다. 이것은, 그의 예언이 거짓 선지자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뜻이다. 신약 시
대나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것과 섞지 않는다(신
4:2, 12:32; 고후 2:17).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책에"란 말(* )은 "책으
로"라고도 번역된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신 이유는, 장차 유다 민족
이 회복되리라는(3절) 예언 성취가 아직 미래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취될 때는
사람들은,이 기록된 예언 문서를 보고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믿게 될 것이다. 하
나님은 그 목적으로 그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말씀하
시기를,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다.
렘 30: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
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23:3, 29:14 참조. 하나님께서 "포로를 돌이킬"(*
) 약속을 그들에게 주심은, 그 당시의 백성을 위로하시기 위함이다. 그들
은, 이 말씀을 소망으로 삼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힘썼어야 되었을 것이다. 하나
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절망 상태에 내버려 두시지 않는 법이다. 소망 없는 백성은 죽
은 백성이다. 그러나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언제나 소망이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당한(혹은 당할) 비운(悲運)을 "돌이킬"(*
) 날이 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로 믿고 순종할 따름이
다.
렘 30:4-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
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 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
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 유대인들이 그 죄 때문에 받을 벌
을 두려워하지 않는고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그들의 공포심을 일으키려고 이 말씀
을 하신다. 곧, 그들의 당할 벌은, 남자들이라도 산고(産苦)를 당하듯이 두려워 떨 것
이라는 의미이다.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 같이". 해산의 고통은 산고를 당해 본 여자들만이 안다.
이 고통은, (1) 사선(死線)을 넘어 가는 고통으로써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2) 해산하는 자가 그 산고를 당하는 시간에는 치를 떤다고 한다. 그와 같이, 유다 민
족은 장차 바벧론의 침략을 당할 때에 장정(남자)들도 산고를 당하는 여인들처럼 겁약
해지며 고통에 빠지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와 같
이 두려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죄 값이니, 그들은 그 고난 때문에 마땅히 두려워 할
줄 알아야 된다. 두려움이 있는 자라야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다.
"떨리는"이란 말(* )은 "떨림"이란 명사(名詞)이다. 이것은 사람을 떨게 할
객관적(客觀的)으로 있을 사건을 가리킨다. "두려움"이란 말(* )도 역시 그런 뜻
이다(Duhm, * und * bedeuten objektiv das, was Beben Furcht
hervorbringt.-Hand Commentar 3.p.239).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게 된 것은, 그 당할
환난의 두려움을 예감(豫感)하므로 된 것이다(욘 3:1-10). 물론 회개로 인도하는 공포
심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공포심이다. 그런 공포심이 아니고, 다만 환난 자체를 두려
워하거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공포심을 가지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생각을 가
지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때마다 그것을 주님의 손에서 오는
채찍으로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 애 3:37-38에 말하기를,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
냐"라 하였고, 애 3:1에는,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라
고 하였다.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란 말(*
)은, 실상 유다 민족이 벌 받을 날인데 "여호와의
날"(* )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젤린(Sellin)은 잘못 말하기를, 이 날
은 이방인들에게만 심판날이고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날이라고 하였다.물론 이것이,
이방 국가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날로도 성경은 말한다. 예를 들면, 사13:6,9에서는 그
것이 바벧론의 망하는 날이고, 렘46:10에서는 갈그미스 곧, 앗수르가 망하는 날이다
(B.C.605). 그러나 이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날도 관설되어 있다(겔 13:5;
암1:12, 2:1, 21, 22).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 )은,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위엄(威嚴)이 나타나는 시기(時期)이다. 그 뿐 아니라, "여호와의 날"(*
)은 또한 종말관적(終末觀的)인 의미도 가진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 종
말 심판의 시기를 가리키기도 한다(요 3:4, 2:31; 말 3:23, 4:5)(G.Ch. Aalders,
Obadia, pp.39-40).
본절에서는, 이것("여호와의 날")이 하나님께서 바벧론을 유다로 보내시어 유대인
들을 벌하시는 시기를 의미한다.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언은 흔히 미래사(未來
事)들에 대한 요약식 표현, 혹은 압축식 표현(壓縮式表現)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한 귀절 가운데, 유다가 당할 바벧론의 침략(侵略=거기 따르는 그 민족의 바벧론 포로
생활) 사건이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이 해방될 사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천 년을 하루와 같이 보시는 위대하신 분이다(벧후 3:8). 신자들은 무슨 일
에나 조급하지 말고, 시간을 잡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 그가 잠간
되는 시간으로 표현하신 것이 우리에게는 장원(長遠)한 시간일 수도 있다.
렘 30:8-11
이 부분에는, 유다 민족이 장차 바벧론의 압제를 받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 받
을 일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여기서도 다른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다의 민족적
해방을 말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메시야로 말미암아 죄에서 놓이는 영적 해방에 대한
예언도 겸병(兼倂)하여 진술한다. 이것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렇
다. 유다의 역사상에 있는 민족적 해방 사건들은, 그것들 자체가 독립적(獨立的)인 의
의(意義)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 자체도 장차 임할 메시야의 구원 운동을 예언
한다. 그러므로 신약 저자(新約著者)들은, 유다 민족이 바벧론에서 해방되리라는 선지
자의 예언들이 역시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으로 성취되었다고 하면서 인용하였다(사
52:11; 고후 6:17).
"그 날에"(* ) - 이것은, 유다 민족이 바벧론에 사로잡힌 시대의
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부분(8-11)에 진술된 구원을 다음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1)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8절) - 이것은, 바벧론의 압제(壓制)에
서 해방하실 것을 예언한다. 이렇게 해방되는 날에는 이방인들, 곧, 바벧론에서 유다
인들의 종살이가 끝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피로 사서 건지신 뒤에,
마귀가 죄악의 심부름을 시키지 못하게 됨을 상징하기도 한다.
(2)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다윗을 섬기리"(9절) - 이것이 신약적(新約的)
인 구원의 특징이다. 구원은, 신자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게 되어지
는 것이다(계 22:3). 특별히 여기 "다윗을 섬기리라"(* )란 말
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섬기리라는 뜻이다. 사람이 마귀를 섬기면 멸망을 받으나,
하나님과 메시야를 섬기면 생명과 참된 자유를 얻는다. "다윗을" 섬긴다는 말은, 확실
히 유대인이 바벧론에서 해방될 사건과 관련된 예언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
미암는 신약 시대의 구원 운동을 예언한다. 예언서에 나오는 "다윗"은 메시야를 가리
킨다(호 3:5). 특별히 겔 34:23을 보면, 우리 본문을 해석해 주는 말씀이 나온다. 거
기 말하기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라고 하였다. 여기 "한 목자"(*
)라는 말은, 그 아래 나온 "다윗"(* )이란 말과 동격 명사이다. 그러면,
"한 목자"(일 개인 목자)는, 다윗을 후계(後繼)하는 왕조(王朝-여러 왕들)를 의미하지
않고, 한 개인을 가리킨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일정한 개인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나, 알데어스(Alders)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써 확실히 이것이 일정한 개인이며 메
시야인 사실을 논증(論證)하였다. 에스겔 34장(특히 15절)에서 하나님을 양의 목자라
고도 하면서 결굴 하나님과 다윗을 동일시(同一視) 하였다는 것이다(dat eerst gezegd
wordt, dat de HEERE self de herder van zijn schapen wezen zal en vlak daarop dat
de knecht David dat zal zijn, waarbij dus God en David als gelijkwaardig naast
elkander worder gesteld, ja feitelijk geidentificeerd.-Commenttaar op het oude
Testament,Ezechiel 2. G. Ch Alders p. 167).
(3) 두려움을 없이 하고 평안하게 함(10절). 여기 "야곱"이란 말은 물론 유다 민족
을 가리키는 대표적 명칭이다. 신약 시대에는 이 명칭이 새 이스라엘, 곧, 참된 교회
를 가리킬 것이다. 10절에 "두려워 말라"는 부탁이 세 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태평과
안락"(* )이란 말도 나온다. 이와 같은 평안은, 유대인들이 바벧론
의 압제에서 해방되므로 어느 정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보다도 그리스도의
속죄(贖罪)로 말미암아 심령(心靈)에서부터 지니고 있을, 영적(靈的) 평안이 이 예언
성취라고 볼 수 있다.
(4)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여 주시는 구원 역사(11절 상반). 이것이야말로
임마누엘(* )의 구원 운동이니(고후 6:16 하반; 계 21:3), 신약적인 메
시야의 구원 운동이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도 함께 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으나,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은혜는 절정(絶頂)에 이르렀다.
(5) 하나님께서 그 원수 곧 열방(列邦)을 진멸하시고, 택한 백성은 징계(懲戒)만
하여 정화(淨化)시키심(11절 하반). 이것이 역시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그 백성의 구원을 이루시는 원리를 보여 준다. 구원을 받는 자는 오직 택한
백성 뿐이다.그러나 그들을 성화(聖化)시키시기 위한 사랑으로써 채찍하시고 죄를 판
단하여 주신다. 여기 "공도"(公道)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미쉬파트(* )인데,
"판단"이란 뜻이다.
렘 30:12-15
이 부분에서는, 유다 민족이 그 죄 값으로 당할 전화(戰禍)가 얼마나 클 것을 미리
보여준다. 이런 미래의 일에 대한 진술이, 벌써 환난이 임한 것처럼 나온다. 이것이
미래에 임할 환난의 확실성을 표시하는 어투이다(G. Ch. Aalders, de schildering van
de reeds toegebrachte worde kan zeer goed profetie van het nog komende
zijn.-Korte Verklaring, Jeremia, p. 75). 이것은 물론 장차 임할 바벧론의 침략을
예언함이다. 선지자는, 여기서 유다 민족이 이 침략으로 인한 피해(被害)를 모면할 길
이 없다고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예레미야는 비유적으로 많이 말하기를, (1) 그 "상처는 고칠 수 없
고...중하"다고 함(12절). (2) "변호할 자가 없"다고 함(13절 상반). (3) "상처를 싸
맬 약이 없"다고 함(13절 하반). (4) "사랑하던 자(유다가 의지하던 다른 나라들)가
잊고 찾지 아니"한다고 함(14절 상반). (5) "고통이 낫지 못하리라"(그 때에 유다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 고통을 면할 수 없다고 함 - 15절 상반)라고 한다.
위의 모든 진술은 유다가 받을 전화를 인력으로는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力
設)함이다. 이렇게 면할 수 없는 이유는,그 환난이 하나님의 징벌로 임하였기 때문이
다. 우리 본문에, "네 죄가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유다를 징벌하였다는 의미의 말씀
이 두 번 나온다(14절 하반, 15절 하반). 죄 값으로 인하여 마땅히 받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의 징벌을, 사람이 면하려 해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그 징벌을 당하기
전에 회개하면 면할 수 있다.
렘 30:16,17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필경 유다를 침략하는 자들을 패배 시키시고 유다를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다. 이것은 물론 메대 바사가 바벧론을 쳐서 물리칠 때를 내어다 보고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극도로 멸시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은 필경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 바벧론 사람들이 유다 민족을 가리켜 하는 말이, "쫓겨 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하여 천대할 때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어 그들을 치료해 주시리라고 한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에,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가까운 줄 알고 잘 참아야 된다. 그들이 천대와 멸시를 당할 때 악독해지거나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며 또한 구원해 주시지도 않는다.
렘 30:18-22
이 부분도 역시 위의 말씀에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바벧론에서 해방되어 본토로 돌아와 왕성할 것을 예언한다. 그 뿐 아니라, 여기서도 보다 먼 장래에 있을 메시야의 복된 시대도 예언하다.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19절)고 하였은즉, 본토에 돌아온 백성은 회개한 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안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읍(城邑)을 중건(重建)하며 궁궐을 소유하며(18절), 번성하며, 영화롭게 되는 것도 귀하지만, 그 보다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견고하여지는 복을 받은 것이 더욱 귀하다. 20절에 말하기를,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라고 하였으나, "회중"(* =에-다)은 오늘날 교회와 같은 것이다.
"왕"(* =아띨), "통치자"(* =모쉘) 등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그는 특별히 하나님께 접근하는 자, 곧, 중보자(仲保者)의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21절 하반). 그러므로 이 예언은 신약 시대를 내어다 보는 것이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도 메시야로 말미암는 구원이 완성된 상태를 가리킨다(고후 6:16 하반; 계 21:3,7).
유다 민족이 바벧론에서 해방되리라는 예언과 함께 메시야 예언이 나오게 되는 경위(經緯)에 대하여, 본장 8-11절까지의 해석에 대한 서론(緖論)을 참조하여라. 유다 민족이 바벧론에서 해방되는 사건은, 사람을 죄악에서 해방시키는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에 대한 모형(모형)이다. 그러니 맡큼, 이 둘이 서로 혼합되어 한몫 예언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언은 역사(歷史)와 달라서, 시간적으로는 산재(散在)한 여러가지 사건을 한몫 한 건(件)으로 말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한개의 예언이 여러 번 성취되는 것도 있다(Grosheide, De profetie kan dan ook meer dan een vervulling hebben,de historie teekent eenmaal gebeurde feiten. - Hermeneutiek p. 202).
렘 30:23,24
하나님께서 필경 진노를 발하사 그 백성의 원수들을 멸절시키시고 그의 벡성을 구원하실 터인데, 선지자는 이 사실을 예언하며 경고하는 말씀이,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라고 하였다. 그들이 "말일"에야 "깨달으리라"고 하는 이유는, 그 예언이 성취된 때에야, 누구든지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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