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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하나님의 긍휼 (에스겔 36:1-15)

선지자는 그 얼굴을 이스라엘의 산들로 향하고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는 명령을 받았었다(6:2). 그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다투려고 나오셨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로이 돌아오시므로 이들 산에서 좋은말과 위로의 말을 하시지 않으면 안된다.(1,4,6절) 하나님은 산들과 봉부리들과 시내와 골짜기와 그 땅의 황무한 곳을 향해 말씀하시며 노략당한 성읍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백성들은 이런 저런 일로 사라져 버렸으므로 산들과 골짜기 외에는 말씀하실 데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갈대아인들도 이런 것들은 가져갈 수가 없었다. 땅은 영원히 있다(전 1:4). 이제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기 위해 선지자는 하나님을, 그 땅에 대해 고정적 자비심을 품고 계신 분으로 묘사해야 했다. 여호와께서 만일 그 땅을 영원히 포기하고 싶어하셨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하지 않으실 터이고 지금처럼 이런 일들을 베풀려고 하지도 않으실 터였다.

Ⅰ.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의 비참한 상태를 주목하시고 측은히 여기셨다. 그 땅은 사면에 남아 있는 이방인에게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다(4절).

1. 그 땅은 그들에게 노략물이 되었다. 인근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약탈물로 부유하게 되었다. 갈대아인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해올 때 인근의 모든 민족들은 난파선에 달겨들듯 노략하러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잡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했다(3절). "그들이 너희를 황무하게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서 너희로 남은 이방인 즉 간신히 황폐를 모면한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였다."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Turba Roma Seguitur fortunam ut semper - 즉 로마의 군중은 높아진 자를 계속 찬미하며 넘어진 자는 멸시한다. 사람이 쓰러질 때 그를 없애라는 것은 공통된 고함소리이다.

2. 그 땅은 그들에게 야유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의 모든 소유를 탈취하고 그들에게 조소했다.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2절). 이스라엘 땅의 유구한 역사와 위엄과 성결과 견고도 그 땅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었도다." 그 땅이 많은 명예로 장식되고 열방 가운데서 두각을 크게 나타내면 낼수록 그 땅을 약탈한 자들의 자랑과 즐거움은 더욱 더 컸다. 이것은 야비하고 추잡한 정신의 본보기이다. 번영이 영화로우면 영화로울수록 그 역경은 더욱 더 가련한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기서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재 재난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주목하신다. "그들이 너희로 사람의 말거리와 백서의 비방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3절). 주위 나라의 모든 화제는 유대 국가의 전복에 관한 것이었다. 유대 민족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그들에 대해 이런저런 심술궂은 비난을 했다. 그것은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였다(시 123:4). 어떤 이들은 수다로 유명한데 그들은 어느 사람에 대해서든지 할 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을 좋게 하고 싶은 마음이라곤 추호도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면류관이 머리에서 떨어지면 반드시 그런 자들의 치소거리가 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고난받는 날에 모든 곳에서 참소를 받기로 되어 있다.

Ⅱ. 하나님의 정당하신 노여움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기뻐한 자들 곧 그 형제의 남은 자들과 특히 에돔인(이두메아)에게 노를 발하신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어떻게 취급했는가? 그들은 이스라엘의 땅에서, 하나님의 손에서 큰 소유를 잘라냈다. "그들은 내 땅을 자기 소유로 삼았다(5절). 그들은 자기 이웃의 재산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특권을 침범했다. "그들이 더러운 손을 댄 것은 거룩한 땅이었다. 그들은 그 땅의 신임 하나님께 대해 의존을 고백치 않고 그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남은 권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합법적 전쟁에서 노략을 얻듯 그 땅을 빼앗아 노략했다. 그들은 이렇게 행하면서도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그 재난을 측은히 여기지도 않고 이 일을 행했다. 아니, 그들은 얻는 게 있으므로 심히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빼앗기는 이스라엘에게 대해 멸시하는 심정을 품었다. 정당하게든 부당하게든 재물의 증가는 세상적 마음을 몹시 기쁘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재난은 멸시하는 심령을 몹시 기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를 노략할 기회를 얻지 못한 자들도 그들을 비난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의 수욕을 당했다(6절). 모두가 그들을 조소하고 조롱했다. 그렇지만 사실 그들이 그토록 형편없이 된 것은 그들 자신의 죄악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셨고, 인간은 불의하고 매우 야만적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말과 행동으로 자기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그는 이방인을 쳐서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판결을 내리셨다. 그는 그 일에 대해 그들과 계산하기로 작정하셨고, 그나마도 그의 맹렬한 투기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과 자기 백성의 명예를 위해서였다(5절). 그는 자신과 자기 백성에게 대해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품었으므로 음부같이 잔혹한 투기도 품고 있다(아 8:6), 그들은 악의로 하나님의 백성을 쳐서 말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대해 투기로 말씀하실 것이다. 극히 강한 어조로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투기와 분노로 말씀하실 것이다(6절). 분노는 하나님 안에 있지 않으나 그는 그들에게 자기 권능을 행사하실 것이며 사람들이 격노로 행동할 때처럼 그들을 엄격히 다루실 것이다. 그는 분노로 말할 것이며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라게 이르실 것이다(시 2:5). 그는 자기가 하시는 말씀을 고수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맹세로 확증되는 까닭이다. 그는 자기 손을 드사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하였다. 그는 맹세하였고 그 맹세를 변치 않으실 것이다(시 110:4; 히 7:21). 그토록 열기를 내뿜으면서 그토록 신중히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이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7절)는 것이다. 복수는 의로우신 하나님께 속하며 그 하나님은 수욕을 수욕으로 갚으신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자들은 조만간 멸시와 비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 같은 일을 당하게 되거나(그들의 어리석음이나 재난이나 실수나 우환이 그들의 수치가 될 것이다) 아니면 참회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수치와 영원한 멸시를 받게 될 날에 그 같은 일을 당할 것이다.

Ⅲ. 하나님은 그의 이스라엘에게 은총의 약속을 하시며 그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큰 자비에 대해 확신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의 노략과 오만불손을 기화로 자기 백성에게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을 나타내 보이시며 그들에게 기꺼이 선대하겠다는 것을 과시하신다. "다윗은 하나님이 시므이의 저주에 대해 선으로 갚아주시기를 희구했다. "그들로 저주하게 하라. 그러나 "주께서는 축복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은 자기들의 뜻이나 의도와는 딴판으로 그들을 돕게 된 셈이다. 우리는 인간들이 우리에게 더욱 불친절해지면 질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욱 더 친절해지기 때문에 불평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절히 말씀하며 하실수록 그의 행동도 섭리를 통해 더욱 친절해진다. 이제는 비록 황폐하여 비방거리가 됐다고 하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산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돌이키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것은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9절). 하나님의 저주가 사람으로 인해 땅에까지 미치듯 축복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약속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정당한 소유자들이 그 기업을 소유하러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8절). 그들은 고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나라에 산재해 있으며 강력한 원수들에게 구금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경내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렘 31:17). 그들의 귀환할 시간이 박두했다고 한다. 포로기 70년 중 40년 이상이 남았는데도 귀환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은 그 귀환이 확실하며 그들 중 살아서 볼 자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천 년도 하루 같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량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다시 그 위에 행하게 하실 것이니 곧 그들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다(12절). 그들은 나그네로서 그 위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 사는 거민으로서 지나간다. 그들은 소작인이 아닌 자작농으로 지나가게 된다.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리라. 그들은 평생토록 너를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과 그들의 상속자를 위해서도 너를 소유하게 되리라." 그것은 천국 가나안의 애표였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이 하늘 가나안의 상속자이며 그것을 기업으로 삼는다. 모든 참 이스라엘인들은 현재 산재해 있는 각 나라에서 그 천국 가나안으로 함께 불러들여질 것이다.

2. 그 땅은 자기 소유자들의 귀환시에 풍부하고 안락한 부양물을 제공할 것이다. 그 땅은 그토록 여러 해 동안 안식을 누렸다. 그래서 그 땅은 더욱 열매를 많이 산출할 터였다. 특히 안식년 뒤의 땅은 비옥하다.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9절), 너희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과실을 맺을 것이다(8절)." 사람 특히 선한 사람들에게 유용하다는 것은 땅에 대한 축복이다. 선한 자들은 땅이 내놓은 좋은 것들을 기쁨으로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자신의 땅에서 안락한 존명과 안락한 정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로 성읍들에 거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10절). 그리고 내가 너희 전 지위대로 거하게 하리라" (11절). 그들의 죄는 그들을 정착하지 못하게 했으나 이제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을 재정착시킬 것이다. 탕자가 참회하고 돌아오자 그는 이전 지위대로 아버지의 집에 거하게 되었다. "제일 좋은 옷을 이리로 가져와 그에게 입혀라. 아니, 내가 너를 처음 보다 낫게 대접하리라." 길잃어 버린 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처음보다 더하다.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의 시간에 비례하여 자기 백성에게 대한 위로를 증가시킨다. 하나님은 욥의 말년을 처음보다 더 복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소유를 갑절로 늘이셨다.

4. 귀환 후 백성들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여 다시 그 땅에 충만할 것이다. 그래서 그 땅에는 사람이 다시 거주할 뿐만 아니라, 어느 때보다 인구가 조밀하고 잘 식민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온 족속을 이렇게 환원시키실 것이다(10절에서는 이것이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마음을 불러일으켜 돌아오게 하셨다. 돌아올 마음이 생긴 자들만 이스라엘 족속으로 간주되었고, 나머지는 스스로 이스라엘 족속에서 떨어져 나갔거나 아니면 처음에 돌아온 자손은 비교적 소수였더라도 나중에는 여러 번에 걸쳐 이스라엘 온족속이 돌아왔을 것이다. "내가 사람을 많게 하리니(10절)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리라. 그 생육이 중다하리라(11절)."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성장하는 나라라는 데 주목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는 비록 시적으로 감소되더라도 다시 회복하여 충만하게 될 것이다.

5. 그 거민을 삼킨 땅이라는 비난이 사라지고 그렇게 비난할 기회도 없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약한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땅에 대해 그런 비난을 퍼부었고(민 13:32) 근자에도 그 땅이 기근과 역병과 칼로 그 거민을 삼켰다는 비난이 다시 살아났었다. 가나안 땅은 악명을 얻었었다. 옛 적에 그 땅은 그 거민 즉 원주민이나 토착민을 토해냈었다(민 18:28).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달리 해석해야 했는데도 그 땅을 그렇게 악평했었다. 그러나 근자에는 그 땅이 이스라엘들도 삼키고 토해냈다. 그래서 그 땅이 거기에 거하는 민족이나 지파를 지지하긴 커녕 도리어 거민을 빼앗으며 전복시키며 엎드러지게 한다는 게 중론으로 되었다. 그 땅은 거기에 세드는 사람을 모조리 망하게 하는 셋집이다. 그 땅은 인근 민족들 사이에서 이런 악명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땅이 더 이상 그런평을 듣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네가 다시는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아니하리라" (12,14절). 거주인들은 상당히 늙도록 살 것이며 그 달수가 중도에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슥 8:4 비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수치의 원인이 된 것을 제거하심으로 그들에게 대한 비난도 제거하실 것이다. 민족의 평화와 풍요와 국력이 신장하게 될 때 그들은 열국의 수욕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것이다(15절). 특히 그 민족이 회개하고 개혁할 때는 그렇다. 죄는 어느 민족에게든지 수치가 된다. 특히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에게는 더 더욱 그렇다. 그런 죄가 제거될 때 그들은 사람의 비방을 다시는 받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 의무 중에서 돌아오는 백성에게로 자비 가운데서 돌아 가실 때 그들의 모든 고통은 곧 시정될 것이며 그들의 명예도 곧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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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 (에스겔 36:16-24)

때가 되면 고국으로 영화로이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불쌍한 포로들에게 큰 기쁨을 준 동시에 하나의 큰 실망도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은총을 바라기에는 너무도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기 의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런 실망을 제거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이렇게 하려는 것은 순전히 자기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그가 그들 중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며 이로써 자기의 자비와 인자를 나타내고 찬양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자비와 인자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 중에서 그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속성이다. 그리고 이 백성의 복원은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속을 상징한다. 이것은 나가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에서 의도하시는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이며, 구원의 모든 단계가 하나님의 영광에 보조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라는 짤막한 기도에서 자기의 모든 행동이 바로 이 목표를 겨냥한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 기도에 대한 즉각적 응답에서 바로 그것이 자기의 목표임을 알리신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 12:28). 여기서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이스라엘의 죄와 참경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은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가! 이것은 그들의 모든 슬픔보다 더 유감된 일이었다. 그들의 모든 슬픔은 그들이 자취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명예는 그들 자신의 어떤 이해관계보다 선한 자들의 마음에 가까이 있다.

1. 그들이 고토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의 죄로 손상을 입었다(18절). 그 땅은 좋은 땅이었고 거룩한 땅이었으며 하나님의 눈이 머물던 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행위(원의:길) 즉 그들의 악한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길이다. 우리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일에 대한 비난과 수치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민족의 죄는 그들의 땅을 더럽히고 그 땅을 하나님께 가증스럽게 만들고 자기들에게는 불쾌한 땅이 되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할 수 없게 되며 그들 상호간에도 경건한 교제가 이어지지 못한다. 더럽혀진 것은 사용이 불가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후하게 주신 은사를 남용함으로써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과 양심이 죄로 더럽혀지면 우리에게는 아무 위안도 허용되지 않으며 순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의 행위가 생리기간 중의 여인의 부정함 같았다. 생리 중의 여인은 지성소 출입이 금지되었고, 그 여인이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사법적으로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레 15:19). 죄악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가증스런 것이며 차마 보실 수가 없는 대상이다. 그들은 피를 쏟았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그 죄로써 그 땅을 더럽혔다(18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으시고 그들을 각국 중에 흩으셨다. 그들의 고토가 그들을 역겨워했고 그들은 다른 땅으로 보냄을 받았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그의 행위로도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신다. 아무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잘못하셨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셨기 때문이다(19절).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 일로 영광을 얻지 못하시는 것은 그 일이 그릇 이해되는 까닭이다. 즉 원수들은 모세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멸하시면 애굽인들이 여호와가 화를 내리기 위해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었다고 말할 것이라는 변호를 했다(출 32:12). 이웃나라 백성들은 그들을 죄많은 백성으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이 당하는 재난을 기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긴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비난하며 멸시했던 것이다. 그들을 압제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종일 항상 더럽혔다(사 52:5).

2. 그들이 열국으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거기서도 그들로 인해 영광을 얻지 못하셨다. 반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도리어 더럽혀졌다(20절).

(1) 하나님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죄로 더럽혀졌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자기들의 신앙 고백을 빛내지 못하고 도리어 더럽혔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그의 거룩한 종교는 그들로 말미암아 모독을 받았다(롬 2:24).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와 교제하는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부패한 품행으로 욕망과 정욕의 노예가 되며 그 행위가 부정직하고 말이 거짓되며 그들이 받을 신뢰를 배반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특히 하나님이 징계하신다고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다투었을 때 여호와의 대적들은 하나님을 모독할 좋은 기회를 만났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추문도 없었다.

(2) 하나님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훼손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수수들은 이를 기화로 하나님이 자기 예배자들를 보호할 능력도 없으며 자신의 약속도 보증할 수 없는 분이라고 바난하였다. 그들은 멸시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그 땅의 백성이다. 여호와는 이 악한 백성을 자기 교훈에 복종시키지도 못하였고 이 불행한 민족에게 자기의 은총을 향유시키지도 못하였다. 이들은 여호와의 땅에서 나온(떠난) 자라, 이들은 열국 백성 중에서 하류인이다. 그 생활이 그토록 불의한 이 자들이 매우 의로운 법을, 법령을 갖고 있었던 말인가? 이들이 지혜롭고 총명한 백성으로 그토록 소문이 자자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신다던 민족이란 말인가? 여기에 이토록 악하고 천하게 보이는 이들이 바로 용감하고 거룩하다는 그 민족이란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자기 백성을 파셨지만 그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다(시 44:12).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수치는 곧 하나님의 치욕이었다.

Ⅱ. 하나님이 자기 명예를 어떻게 회복하시며 확보하시고 증진시키시는지 주목하자. 그는 그들 위에 큰 개혁을 역사하신 뒤 큰 구원을 이룩하신다. 만일 그가 원수의 오해와 대적의 격동을 염려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을 열국 중에 흩어서 그 기억을 끊어지게 하시려고 했다(신 32:26, 27).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동정을 살 만한 가치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거룩하신 이름을 아끼셨다. 짓밟히고 학대받는 자기의 거룩하신 이름이 얼마나 가여우셨을까! 그는 열국 중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명예와 진흙 속에서 짓밟히고 있는 보석을 측은히 바라보셨다. 이스라엘 족속은 포로된 땅에서 조차 그 이름 더럽혔다(21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아껴 그들을 열국 중에서 인도해 내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고토보다 열국 중에서 더욱 악명 높이 죄를 지었던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리라(24절). 이는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다. 너희가 그런 큰 은총을 받기에 합당해서가 아니다. 너희는 그런 은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이는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이며(22절), 나의 큰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이다(23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은 그의 크신 이름이라는 것을 주목하자. 그의 거룩하심은 그의 위대성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렇게 간주하신다. 참으로 선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는 것 외에 사람을 참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거룩한 이름으로 확대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이름을 성화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가 더럽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지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신 것을 이행하실 때는 자기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 일의 결과는 매우 복될 것이다. "내가 그들과 너희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증명하시고 성도들이 그 이름을 찬양할 때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은 나타나게 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의 보급에 기여하게 된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하나님이 자비하실 이유는 전부 하나님 자신에게서 유래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그들을 바벨론에서 인도해 내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영화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인자는 인간의 악함을 이용하여 더욱 혁혁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는 죄의 사유를 통해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그의 이름은 범죄로 더럽혀진 때문이다.

 

36:17 없음.

 

36:18 없음.

 

36:19 없음.

 

36:20 없음.

 

36:21 없음.

 

36:22 없음.

 

36:23 없음.

 

36:24 없음.

 

36:25

새 마음의 약속 (에스겔 36:25-38)

하나님의 백성은 회복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은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낙심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앞 문단에서도 나왔다. 즉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것은 그들의 가치보다 자신의 영광을 주목사신 때문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이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했으므로 그런 은총에 부적격하다고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들의 그런 우려에 대한 응답이 약속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은혜로써 그들에게 자비를 수용할 자격과 준비를 도모하실 것이며 그런 뒤 그들에게 자비를 부여하시리란 것이 곧 그것이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유대인에게 미친 놀라운 효과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 사건은 유대인의 우상 숭배 취향을 효과적으로 치유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나아서 은혜의 언약과 영적 축복의 본보기를 나타낸다. 우리는 그 언약에 의거하여 하늘의 것들로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귀환의 약속 뒤에 큰 목자 그리스도의 내림에 대한 약속 안으로 예언이 살그머니 들어온 것처럼(34장) 여기서도 그 예언이 성려의 약속과 그의 은혜로우신 영향력과 작용 속에 살짝 들어와 있다.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공로를 필요로 하듯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

Ⅰ.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 속에 선한 역사를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그들에게서 선한 역사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었고 여기서는 그들이 선한 역사를 할 수 있도록 가격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25-27절). 우리는 동일한 취지의 약속을 앞에서도 읽었다(11:18-20).

1. 하나님은 그들을 죄의 오염에서부터 정화시킬 것이다(28절). 맑은 물은 양심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한다. 이 피는 양심을 정결케 하고 죄악감을 제거하는 보혈이다. 정화수를 뿌린다는 것은 제사법에서 불결의 제거를 의미했다. 그리고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몸을 씻음으로 문둥병이 깨끗게 되었듯이 성령의 은혜가 전체 영혼에 뿌려지면 온갖 부패한 기질과 성품이 정화된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정결한 분이셨다. 만약 그가 정결치 않으시다면 그의 피도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성령이다. "내가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우상에서 너희를 정결케 하리라(25절).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데 서 구원하리라(29절)." 죄는 더럽게 하며 우상 숭배는 특히 그렇다. 죄는 죄인을 하나님께는 역겹게 만들고 그들 자신에게는 부담스럽게 만든다. 죄를 용서받고 부패한 본성이 성결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더러움에서 정결하게 된다. 더러움에서 구원받는 길은 달리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로 인하여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23절). 하나님이 우리 심령을 거룩하게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가 없으며 그의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의 영광을 위해 살 수가 없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 영을 주실 것이다. 새 영은 그 자체가 원래 아주 훌륭한 심성이며 이전 영과는 전혀 딴판이다. 하나님은 전체가 원래 아주 훌륭한 심성이며 이전 영과는 전혀 딴판이다. 하나님은 전체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내적 변화를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새 언약에 참여하고 새 예루살렘에 참가할 자는 누구든지 새 마음과 새 영을 소유해야 한다는데 주목하자. 새 영과 새 마음은 새로운 삶 속에서 행하려면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이 약속에 의해 함께 나누게 되는 신적 속성이다.

3. 무감각하고 유연성이 없어서 신적 감명을 받아들이거나 경건한 사랑으로 돌아오기에 부적합한 굳은 마음(흠정역, 돌 같은 마음)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부드러운 마음(흠정역, 고기의 마음)을 주실 것이다. 이것은 연하고 부드러운 고기 같은 마음이다. 그것은 영적 지각이 활동하여 영적 고통과 즐거움을 스스로 의식하여 매사에 있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마음이다. 쇄신시키는 은혜의 역사는 죽은 돌덩이를 산 혈육으로 전환시키는 만큼이나 영혼을 크게 변화시킨다는데 주목하자.

4. 죄에 대한 경향성 외에 우리는 의무를 행할 능력이 없다고 불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그의 율례를 행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기 법령의 길을 제시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길로 행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하시며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의지와 행동의 능력을 제공하실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그들에게 교사와 안내자로서 그의 신을 그들 속에 두실 것이다. 하나님은 외면적 폭력에 의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울례를 행하도록 강제하지 않으시고 내면적 원리에 의해 그의 율례를 행하게 하신다는데 주목하자.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되고 우리 내부에 주입되는 이 은혜로운 능력과 원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판결하자.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이 약속대로 자기 도리를 다하시면 우리도 그 교훈대로 우리 할 일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의무를 감당할 수 있게 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의무 이행에 정성과 노력을 경주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훈령을 우리의 규칙으로 삼게 하고 그의 훈령은 그의 약속을 다시 찾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은혜의 언약의 총화는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8절)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내 백성이 되면 나도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는 것이 아니다. 먼저 택하고 사랑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 조건은 보상인 동시에 은혜에서 나오며 약속에 의거한 것이다. 이것은 공로나 업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만들겠다. 나는 너희에게 내 백성의 특질과 정신을 심어 주겠다. 그리고 나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 그리고 이것은 신도들의 행복의 기초이며 머릿돌이다. 그것은 천국 그 자체이다.(계 21:3, 7).

Ⅲ. 하나님은 그들의 긴박한 사정에 필요한 온갖 선한 것들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들에게 이와 같은 것이 예비될 때 그들의 형편은 어떤지 살펴보자.

1. 그들을 이전의 소유로 돌아와 거기서 재정착하게 할 것이다(28절). "너희는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다시 고국에 데리고 가시면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그들의 열조에게 하신 약속이었다. 그는 처음에 그들에게 약속하셨다(신 7:7, 8).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것은 당신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신 개혁의 결과로 일어날 것이다(33절).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여 너희로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도록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들이 살게 하여 너희로 그 기업을 소유하게 하리라. "먼저 죄와 헤어지게 하고 그 다음에 안락에로 복구시켜 주시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방법이다.

2. 그들은 온갖 좋은 것들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받고, 좋은것들을 오지 못하게 금지하던 죄에서 구원받을 때 하나님은 곡식을 불러 풍성하게 하실 것이다(29절). 풍요는 하나님의 요청으로 오며 그가 부르시는 풍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가 말씀하실 때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은 많아질 것이다. 거주민이 많이 증가하듯 그들을 부양할 소산물도 많아질 것이다. 입을 보내는 분은 양식도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기근은 그들을 고생시키던 심판 중 하나였다. 비옥하기로 유명한 땅에서 굶어죽는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여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제는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임하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징계 아래 놓이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을 것이며 기근으로 책망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종들에게 물자 공급을 부족하게 하는 주인이라는 말도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기근의 수치를 벗어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풍요의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땅은 오랫동안 지나가는 모든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였다. 어떤 과객은 그 땅을 멸시의 눈길로 보았고 어떤 이는 측은히 여기면서 보았다. 그러나 그 땅은 장차 기경이 될 것이다(34절). 묵혀 두는 것이 없으므로 그 땅은 더욱 소산이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이 곡식을 불러 풍성하게 하시지만 그들은 그 땅을 경작해야 한다. 비록 약속된 자비라도 이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약속은 우리의 근면과 노력을 면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고 격려하는 것인 까닭이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자의 손에 축복을 명하셔서 지나가는 모든 자가 이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35절). 그들은 "이곳에 얼마나 복된 변화가 일어났는지 보라. 그 황무한 땅이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사막이 낙토로 화하였도다" 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그들이 현재 받고 있는 멸시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존귀를 예비하고 계시며 하나님 자신도 그들을 통해 존귀하게 되신다는데 주목하자. 사람과 소산물의 놀라운 증가는 절기 때 제물로 예루살렘에 끌려오는 많은 양떼에 비유되고 있다(38절). 현재 황폐한 상태에 놓여 있는 성읍들도 사람의 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초장을 뒤덮고 있는 양떼 같지 아니하고(시 65:13) 여호와의 집 뜰로 운반된 거룩한 양떼 같다. 인구의 증가는 그들이 전부 거룩한 양떼로써 하나님께 헌납되고 산 제물로써 바쳐질 때는 참으로 영예롭고 안락한 일이 된다뿐 하나님의 전에 모인 군중은 보기에 사랑스럽다.

Ⅳ. 그는 이 복된 변화의 행복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다.

1. 그 일은 하나님의 백성 자신에게 복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일로 인해 자기 죄에 대해 허심탄회한 회개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1절). 여기서 죄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죄는 가증한 것이며, 싫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이다. 회개의 첫 단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우리 자신의 악한 길을 기억하는 것이며 우리가 범한 죄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 대강을 맡맡이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큰 잘못 즉 우리의 악한 길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결점과 약점 즉 우리의 불순한 행위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직접적인 율법 위반 뿐만 아니라 율법 무시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진정한 회개의 길동무가 무엇인지 살피자. 그것은 곧 자기 혐오와 거룩한 수치감과 당황감이다. "너희는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밉게 보리라." 죄의 근저에는 자기 사랑이 깔려 있다. 우리는 자기애의 불합리성을 깨달으며 낯을 붉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들 자신과 다툰다는 것은 선한 근거 위에서 우리 자신과 화해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복음적 회개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무엇인지 살피자.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의식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풍요속에 정착시키실 때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볼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악함을 정복하고 우리를 회개에로 인도한다는데 주목하자. 하나님이 참회자들을 은총 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많이 보면 볼수록 우리는 더욱 더 자신을 부끄러워할 만한 이유를 갖는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사랑에 거슬러 가며 범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녹아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참으로 강퍅한 마음이다.

2. 그 일은 그들의 이웃에게 복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들은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하여 보다 명확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6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 즉 하나님께 대해 무지한 말을 지껄이던 자들이 이스라엘의 황무한 땅을 다시 보는 때에는 하나님을 보다 잘 알게 되고 하나님께 대해 식견있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극히 황무한 성읍도 재건할 능력이 있으시며 극히 황폐한 나라도 재흥시킬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은총의 길이 일시적으로 막힐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영구히 멸절당하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신적 계시의 진실성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과 그들을 위해 베푸신 업적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분간하게 될 것이다. 나 곧 여호와가 이것을 말하노라. 이것을 행하리라. "우리에게는 말과 행동이 별개의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Ⅴ. 하나님은 공로의 보상으로써가 아니라 기도의 보답으로써 이 일들을 그들에게 제의하신다.

1.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 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22, 32절). 아니, 너희는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약속하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실행된 것과 다름없이 꼭 시행될 것이다. 현재 사건은 그 일을 향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다음을 살피자.

(1) 그들은 자기들의 선행의 공로 의식을 버리고 그 일의 시행이 자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맨 처음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셨을 때 이런 생각에 대한 제동이 분명히 걸렸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라" (신 9:4-6 참조). 그것은 그들의 선한 특질이나 선한 행위를 인함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필요로 하거나 그들에게서 기익을 얻으시려고 기대한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이 자기 전권으로 행동하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명예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힘주어 강조되는지 살펴보자.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 너희가 알리라."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공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 쉽고 그런데 대한 자신감을 좀체로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모저모로 자기의 모든 총애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이며 그들의 선함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그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야 마땅하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악한 행위를 회개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자비가 마땅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백번, 천 번 몰수당해야 할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행을 자랑하긴커녕 도리어 그들의 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한탄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자비를 받을 준비가 가장 잘된 셈이다.

2. 그들은 그 일을 기대하고 소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37절).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말씀하셨고 또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그것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자기를 찾도록 요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의 길로 나오실 때도 그들에게 간구할 마음이 생기게 하신다.

(1) 그들은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로써 찾아 구해지시는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제목이 되는 것은 우리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약속된 자비를 구함으로써 기부자에게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며 선물에 대한 치하를 해야 하고 우리의 의존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중하신 기도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스도도 구해야 하나님이 열방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요, 아버지께 기도해야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다. 하물며 우리랴! 받으려면 구해야 한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신탁을 물어야 했다. 하나님을 이렇게 찾고 구하는 방법도 있다. 자비 섭리의 행위일 뿐 아니라 약속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 약속에 굳게 고정된 신앙의 눈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이 두가지는 우리의 기대의 길잡이인 동시 기초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두가지를 다니엘의 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족속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했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큰 일을 행하려고 할 때였다. 그는 하나님의 신탁을 물었다. 그는 서책으로 즉 선지자 예레미야의 책으로 깨달았다. 그는 예상 대상과 시기를 알았다. 그러자 그는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 엎드렸다(단 9:2, 3).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에게 대한 섭리의 모든 작용 가운데서 기도와 말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또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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