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교만 (에스겔 29:1-7)
Ⅰ. 이 애굽에 대한 예언의 시기가 나온다. 그것은 "포로기 제10년" 이었으나, 제 11년에 전달된 두로에 대한 예언보다 뒤에 놓여졌는데 그 이유는 예언의 성취에 있어서 두로의 멸망이 애굽의 멸망보다 먼저 일어났으며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획득한 것은 두로에 베푼 애굽의 협조에 대한 보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라서" 두로에 대한 예언이 먼저 제시되었고, 그에 의해 우리가 그것을 저 잘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애굽에 대한 첫 예언은 애굽 왕이 예루살렘을 구하고 포위를 풀기 위해 왔으나 그들에 대해 가졌던 유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던 바로 그 때에 행해졌던 것이다. 우리도 모든 피조물 신뢰가 좌절되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 유익한 일이다. 우리가 피조물에게 의존하려는 유혹을 가장 크게 받고 있을 그때에, 우리가 "사람에게서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Ⅱ. 이 예언의 범위를 보자. 이 예언은 "애굽 왕 바로" 와 "온 애굽에" 대한 것이다(2절). 두로에 대한 예언은 백성에게 시작하여 왕에게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왕에게서 시작하는 바, 그 까닭은 이 예언이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왕에 대한 폭동과 반란에서 성취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Ⅲ. 예언의 내용을 보자. "바로 호브라" (통치하던 바로의 성이 그러하였다)는 여기서 "자기의 강들 중에," 바다의 리워야만처럼 "누운 큰 용" 혹은 악어로 표상된다(3절). 애굽의 강 나일은 악어로 유명하였다.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애굽 왕은 악독하고 짖궂은 "큰 용" 외에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내가 너보다 승리하리라" 고 말씀하신다(분몬을 그와 같이 읽을 수 있다.) 지상의 왕들과 권세자들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그들보다 더 높으신 분" (전 5:8), 즉 그들을 제어하실 수 있는, 그들 위에 계신 하나님이 계시며, 만일 그들이 폭군 정치를 하여 백성을 박해한다면 자유롭게 그들에 관여하시며, 그들을 대적하실 하나님이 계시다. 여기서 살필 것은 이렇다.
1. 바로의 교만과 방심이다. 그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워 있으며," 그의 재물과 쾌락에 대한 큰 만족에서 몸을 뒤척거린다. 그리고 그는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이 절대 군주라고 뽐내고 있는 것이다(그의 신하들은 그의 봉신들이었다. 요셉은 오래 전에 팔려 왔다. 창 47:23). - 그는 유일한 임금이요, 정부에서 그에게 상대가 되는 자가 없으며 경쟁자도 없다. - 그는 채무가 없다(그의 소유는 그 "자신의 것" 이며, 그의 이웃 중 누구도 그에게 요구할 것이 없다.) - 그는 독립적이며, 누구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책무를 지고 있지 않다. 세속적인 인간들은 그들의 재산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자랑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사용하는 것일 뿐이며 재물은 하나님께 근거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우리 스스로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다.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시 12:4). 우리의 강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원천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왕도 그가 가진 것을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니, 그 까닭은 비록 왕이 모든 세상에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그러한 허식에 대한 바로의 이유는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고 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특권 두 가지를 오용하고 있는 바, 그 자신이 존재와 지복의 저작자와 또 목적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위대하신 창조자만이 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내가 그것을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고 말할 수 있다. 그가 그의 강을 자기 것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사 22:11).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니,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그것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하물며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왜 자랑하는가? 자아란 온 세상 사람이 예배하는 큰 우상이며, 하나님과 그의 주권을 멸시하면서까지 떠받든다는 점을 명시하라.
2. 하나님께서 이 교만한 인간을 낮추시기 위하여 택하실 과정을 보자. 그는 물가에 있는 큰 악어이며, 하나님께서 그에 따라 그를 취급하실 것이다(4, 5절).(1) 하나님은 그를 그의 강들로부터 끌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악어를 낚을 수 있는 낚시를 "가지고 있으며, 그는 그것으로 지상 위의 그 누구도 다룰 수 없는 바로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욥 41:1). "내가 너를 네 강들 중에서 끌어낼 것이며, 너를 너의 궁전과 너의 왕국과 네가 그와 같은 자만을 취하며 그와 같은 확신을 갖고 있는 저 모든 것들로부터 추방할 것이다.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당시 애굽의 왕이었던 이 바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25년 동안 큰 번영 중에 통치하였고, "하나님 자신도 나를 나의 왕국으로부터 추방할 수 없다" 고 말할 정도로 자기의 성공을 뽐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그의 실수를 깨닫게 될 것이니, 그가 의존하고 있었던 것은 전혀 그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가장 안전하고 안이하게 여기고 있는 상태로부터 그들을 강제로 추방할 수 있다.
(2) "그의 모든 고기" 는 그와 함께 끌어내어질 것이다. 곧 그의 신하들, 그의 군인들과 그를 의존하던 모든 자들을 뜻하며, 그의 생각대로 참으로 그가 의존하던 자들도 뜻한다. 이들은 "그의 비늘에 붙게" 될 것이며, 그들의 왕에게 매달려서 그와 함께 살고 죽기로 결심할 것이다. 그러나,
(3) 그 왕과 그의 군대, 곧 그 악어와 그의 비늘에 달라붙은 모든 고기는, 마치 고기가 마른 땅에 던져져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식물처럼 될 것이다(5절).
이것은 얼마 후에 성취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이 바로가, 구레네인들에 의해 나라에서 추방된 리비아의 왕 아리키우스를 보호하기 위해 큰 부대를 징집하고, 자기 친구를 복위시키려고 구레네인을 향해 나아갔으나,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그 모든 군대가 도주하였던 때에 이루어졌다. 이 사건은 바로의 백성을 반역케 하였다. 이리하여 "그와 그의 강의 모든 고기가 들판에 던져졌다." 인간들의 교만과 가식과 그리고 체적 방심은 이렇게 끝나고 만다. 이처럼 인간들은 그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잃는 것이 마땅하니,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애굽인들과 변론하시는 근거를 보자.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애통하고 있을 때, 자기들에게 구조와 도움을 기대하게끔 만들어 놓고는 그들을 실망시켰다(6,7절).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로 가장하였으나, 조그만 압력이 닥쳐와도 약해지거나 배반하였고, 기대되었던 바를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러졌으니,"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크게 실망하고 놀랐으며,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의 모든 허리를 흔들리게 하였다. "애굽 왕은 아마 시드기야를 부추기어, 자기가 그의 편에 서겠다는 약속을 하여 바벨론 왕과의 동맹을 깨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실패했을 때 그를 큰 놀라움에 처하게 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애굽인들은 부러진 지팡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사 30:6, 7). 랍사게도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렇게 말했다(사 36:6). 그리고 이제 그들도 그것이 그렇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믿은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으며, 그들이 애굽에게 속았을 때 마땅한 보응을 충분히 받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롭게도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셨다. 그러나 이것이 애굽의 거짓됨과 배반을 변호해 주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그러한 사악한 모든 행위에 대한 보복자이시며, 심판자인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자들을 기만하는 것은 큰 죄악이며, 불의하고, 배은망덕하고, 매우 불명예스럽고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격분시키는 것이다.
애굽의 몰락과 회복 (에스겔 29:8-16)
이는 예표적이었던 이전 예언을 설명해 주는 반면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 나타나는 예언은 이러하다.
Ⅰ. 애굽의 파멸에 대해서이다. 이에 대한 경고는 매우 강렬하고 특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파멸이 그들 위에 임하게 되었던 그 죄악은 바로 그들의 교만이다(9절). 그들은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땅은 그들을 토해낼 것이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시니, 곧 그 왕과 백성을, 너와 "네 강들을" 대적하신다. 물은 "백성과 무리를" 의미한다(계 17:15).2. 그들 중 대다수가 전쟁의 칼, 즉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을 멸망시키려고 그들에게 보낼 칼, 곧 내란의 칼에 의해 끊어질 것이다.
3. 나라의 인구가 줄게 되리라.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될 것이며" (9절), 시골은 경작되지 않고, 성읍에는 거주민이 없게 되리라. 시골과 도회지 재물이 그들의 교만의 근거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취하실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황무한 황무지(황폐의 황무지, 각주에 의하면 그러하다), 곧 사막이 되리라" (10절). "그 가운데로는 사람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하는 사람이 없으리라" (11절). 그것은 "황무한 열국같이 황무하게" 되리라(12절). 이는 그들이 행한, 이전에 언급된 저 많은 전쟁들의 결과였다기 보다는 바벨론 왕이 그들 위에 부과한 전쟁의 결과였다. 그리하여 땅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수에네 탑에서부터 에디오피아의 경계까지" 황무하게 되리라(한글 개역과 다름). 교만의 죄는 전 국토를 파멸시키기에 충분하다.
4. 백성은 열방 중에 흩어질 것이며(12절), 그에 따라 권력의 저울이 자기들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던 자들이 이제 경멸받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건방진 인간은 그와 같은 몰락을 한다.
Ⅱ. 잠시 후에 있을 애굽의 복구에 대한 예언이다(13절). 애굽은 "사십년 동안 황무하게 "있을 것이며 (13절), 그 후 "내가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키리라" (14절). 혹자는 사십 년을 느부갓네 살이 애굽을 멸망시킨 기간으로 추정하고, 다른 이들은 얼마 전에 있었던 애굽의 황폐로 추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유다의 칠십 년 포로 기간이 끝났을 때, 혹은 조금 후인 고레스의 첫 해 즈음에 종식된다. 그렇다면 이 예언은 다음과 같이 성취되었다.
1. 하나님께서 애굽인들이 흩어져 있던 모든 나라들로부터 애굽인들을 모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고토로 돌아가게 하며, 거기에 다시 정착하게 할 것이다(12절). 비록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실 방도를 안출하실 것이지만, 이 세상에 있는 자들과 영원히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2. 그러나 그들은 이전에 지녔던 찬란한 모습을 다시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애굽은 다시 "나라" 가 될 것이나, "나라 중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리라(15절). 그것은 오직 작은 재물과 권세를 가질 것이며, 이전처럼 그 정복지를 확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열국의 꼬리요, 머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다시 나라가 될 것이나, 낮추어져서 비천한 나라가 될 것이다. 애굽이 고대의 광채를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애굽이 이처럼 굴욕을 당한다.
(1) 애굽이 그 이웃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며, 과거부터 그래 왔듯이 "열국 위에 스스로를 높이지" 못하게 하며, 다시는 열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낮아지고 멸시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은 그것을 빼앗기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그리고 하나님은 열국의 왕으로서 그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침해된 권리와 자유를 회복할 길을 찾아낼 것이다.
(2) 애굽이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뢰가 되지 못할 것이다" (16절). 이스라엘이 더 이상 과거처럼 그를 의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들의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죄, 즉 그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른 죄악 모두에 대하여 그들을 벌하도록 하나님을 격분시키는 죄이다. 혹은 우상 숭배자들의 파멸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빠졌던 우상 숭배의 죄를 "기억나게 "해 줄 것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피조물들은 흔히 파멸되니, 그 이유는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다시 함정에 빠질 것이라기 보다는 애굽의 전 국토가 황무하게 되리라. 한때 "애굽을 그의 속량물로 주신" (사 43:3) 자가 이제 애굽을 그의 치료를 위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특히 이런 면에서 개혁되기 보다는 애굽이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에서 뿐만 아니라 지혜와 우리에 대한 선하심에서 우리가 너무 의지하는 저 피조물 신뢰를 멸하실 것이며, 그것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즉 더 이상 우리가 신뢰가 되지 못하도록 하신다.
느부갓네살에 대한 약속 (에스겔 29:17-21)
이 예언의 시기를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에스겔이 사로잡혀간 지 27년째였으며, 본장의 앞 부분에 기록된 예언이 있은 지 16년이요, 다음 장들에 뒤따르는 예언보다도 거의 비슷한 시차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애굽에 대하여 말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여기에 나온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느부갓네살은 암몬 족속과 모압족속의 정복을 위해 세 번 출정하였고, 결국 그 나라들을 정복하였다. 그 후 그는 두로를 공격하는 데 13년을 보냈다. 그동안 애굽인들인 구레네인들과의 전쟁에 휩싸여 들어갔으며, 그에 의해 그들은 매우 약해졌고 황폐해졌다. 그리고 두로의 공략이 막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이 예언을 에스겔에게 주시사, 그가 15년 혹은 16년 전에 예언했으나, 이제까지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던 것이 이제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고 암시하신다. 여기서 시작되는 예언은 다음 장 27절 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이것이 우리가 이 예언자에게서 받은 최후의 예언이며, 책의 말미에 놓여야 할 것인데 여기에 놓인 것은 애굽에 대한 모든 예언을 함께 모으려는 의도라 피력하고 있다.
본장의 이전 부분에서 예언된 "바로 호브라" 의 독특한 멸망은 같은 방식으로 여레미야 44장 30절에서도 예언되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에 의한 애굽의 이 전반적인 황폐는 예레미야 43장 10절에 예언되었다.
이제 살필 것은 다음과 같다.
Ⅰ. 하나님께서 애굽에 대적하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를 어떻게 승리하게 하셨는가 보자.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그에게 붙이리니," 그가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19,20절)고 했다. 애굽은 힘이 안들고 취하게 쉬운 먹이였다. 느부갓네살은 별 어려움 없이 애굽을 정복하였다. 그 정복에 소모된 피와 자금은 하찮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값비싼 먹이가 되었으며, 그는 애굽에서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을 가져갔다. 애굽인들 자신 가운데서 일어난 분열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에 대한 공동의 적에게 큰 이점을 허락하였으며, 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서로 노략하였을 때 그 원수는 곧 그들 모두를 삼켜 버렸다. En! quo discordia cives per duxit miseros - 즉 국내의 불화가 얼마나 큰 사악을 가져오는가!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이 "목자가 그 옷을 입음같이, 애굽의 땅을 착취하리라" 고 예언했다. 이는 애굽이 얼마나 풍요하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먹이가 될 것인가를 암시한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 어떠한 생각에 근거하여 느부갓네살에게 애굽에 대한 이러한 승리를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그가 그의 군대로 하여금 두로와의 싸움에서 겪게 하였던 힘든 수고에 대한 보상이었다. (18,20절).
1. 두로를 취하는 것은 지루한 공략이었다. 그 일로 느부갓네살은 많은 피와 자금을 희생하였다. 그 일은 13년 걸렸다. 그 동안 계속 갈대아 군대는 두로를 정복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두로와 대륙 사이에 흐르던 큰 바다는 흙으로 채워졌고, 그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많은 다른 곤난들과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처럼 착수하기 시작한 그와 같은 위대한 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두로를 정복하려는 명예심에 매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명예심이라는 목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천의 생명이 희생되었는가! 이 공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각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각 어깨가 벗어졌으니, "이는 그들이 강한 조류와 강한 도성과 겨룰 때에 진 짐과 수로로 인한 것이었다.애굽은 큰 왕국이었으나, 내부에 분열이 있었으므로 쉽게 정복되었다. 두로는 한 성읍에 불과했으나 하나로 뭉쳐졌으므로 어렵게 정복되었다. 세상에서 큰 세력이 있는 자들은 몇몇 일에 있어서 다른이들보다 훨씬 더 손쉽고 용이하게 진척된다. 그러나,
2.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위하여 수고하였다" 고 공언하신다(20절). 하나님은 그들로 일하게 하여 교만한 도성과 그 왕을 낮추셨다. 비록 거기 종사한 "그들이 그럴 의도가 없었고, 그들의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조차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들이며, 그들이 자신의 탐욕과 야망에 가득한 괴계를 추구하는 때조차도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그처럼 놀라웁게 하나님께서 만유를 그의 영광에 복종시킨다. 그러나,3. 이 일을 위해 느부갓네살은 "어떤 보수" 나 "자기 군대" 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두로를 취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취했을 때, 비록 그것이 매우 부요한 성읍이었고, 그가 스스로 그의 군대를 위해 그로부터 상당히 약탈할 것을 기약했으나, 그는 실망하였다. 두로인들은 배로 그들의 최상의 재물을 멀리 보냈고, 나머지를 바다에 던져버렸으므로, 빈 성벽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자녀는 보통 세상에 대해 최상의 기대를 가질 때 오히려 좌절하고 만다. 따라서,
4. 그는 애굽의 노략물로 두로와의 전쟁을 보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 누가 어떠한 봉사를 하든지 그들을 놔두지 않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상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그의 제단에 불을 붙이는 자 모두가 보답을 받으리라. 세사적인 계획을 가진 세상적인 인간들에 의해 그에게 행해진 봉사는 단지 세상적인 보답으로 갚아질 것이며, 그의 뜻과 영광에 성실하게 관여한 그의 신실한 종들도 이에서 면제되지 않으리라. 이는 이 세상에서 사악한 자의 번영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그가 기용하신 자들의 여러 봉사에 대해 보수를 주신다. "진실로 그들은 자기들의 보수를 받는도다." 아무도 그들이 보수받는 것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 애굽의 정복은 느부갓네살의 "충분한 보수" 라고 이야기되니,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당시 알려진 세계에 대한 그의 통치를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정복한 왕국들 중에 최후의 왕국이었다. 느부갓네살이 그를 정복했을 때 그는 "황금머리" 가 되었다.
Ⅲ. 하나님께서 그 후 곧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 간직해 두셨던 긍휼이 있다. 조류는 가장 높을 때 돌이킬 것이며, 가장 낮은 때도 그러하리라.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정복했을 때 그의 영광이 정점에 달하였으나, 그 후 일년 이내에 그는 미쳐버렸고(단 4장), 7년을 그렇게 있다가, 그 후 1, 2년 이내에 감관을 회복했으나 곧 그의 생명이 끊어졌다. 그가 가장 높았을 때 이스라엘은 가장 낮았다. 당시 그들은 포로기의 가장 비참한 때에 놓여 있었으며, 그들의 뼈는 감각이 없었고 매말았다. 그러나 "그 날에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솟아나리라" (21절). 그들의 구원의 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것이며 그들은 그 굴레에서 조금 소생하게 되리라. 이 일은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영광이 되리니,
1. 이스라엘 족속의 방백들에게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의 뿔" 이요, 그들의 영광과 권세의 소재이다. 이들은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벨론에서 높은 자리에 간택되었을 때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다니엘은 "성문에 앉았으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되었다" (단 2:49). 이들은 모두 "왕족과 귀족이었다" (단 1:3). 그리고 그들이 이처럼 간택한 것은 애굽의 정복 이후 1,2년 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후 곧 그들 셋은 하나님께서 불타는 용광로에서 살아나오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부여하신 영광에 의해 유명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의 뿔이 솟아나온" 일이라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약속은 나아가서 유다 왕 여호야긴의 영토 확장과 승진에 있어서 성취되었다(렘 52:31, 32).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품으신 호의의 징표였으며, 행복한 조짐이었다.2. 그들의 예언자들에게이다. "내가 또 너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라. "비록 이것 이후에는 어떠한 에스겔의 예언도 기록되지 않았으나,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권세를 잡고 에스겔을 바벨론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동포 중 사악한 자들로부터 기꺼이 보호하려고 했을 때, 더욱 자유롭고 담대하게 예언을 계속하였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자들의 자유를 확대하시고, 그들이 일하는 데 있어서 후원과 격려를 얻을 때, 그것은 그 백성에게는 좋은 징조가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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