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몰락(1) (에스겔 19:1-9)
Ⅰ. 왕가의 몰락을 통애하라는 명령이 예언자에게 내렸다. 이 왕가는 오랫동안 다윗과 그의 혈통과 맺은 왕권의 언약의 덕택으로 찬란한 모습을 유지했었다. 그러므로 그 왕가의 사향과 몰락은 "우리 하나님의 언약" 의 가치를 아는 모든 사람에 의해서 애도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윗과 맺은 그 언약을 오래 설명한 후에(시 89:3, 20 이하), 그의 가문의 부패와 황무에 대한 애통의 말이 나온다(38, 30절). "그러나 주께서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 관을 땅에 던져 욕이 되게 하셨나이다." 본문은 유다의 왕들을 "이스라엘의 방백들" 이라고 일컬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광이 감퇴되어, 단지 방백들처럼 되었으며, 그들의 순수함도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들" 로서 부패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예언자는 그들을 위해 "애가를 지어야" 했다. 즉, 그는 마치 자기가 그것을 마음에 간직했다가 글로 써서 전해 준 자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자처럼, 그들의 비통한 몰락을 서술해야 했다. 또 우리 자신이 먼저 감동받지 않고서 어떻게 남들이 감동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역자들은, 담대히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환란의 날을 바라지" 않은 자처럼 죄인들의 멸망을 통애해야 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방백들에게 충고를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으나(그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또 자주 헛되이 끝났다), 그 명령이 포고되었으니, 그들을 위해 "애가를 지어야" 했다.
Ⅱ.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 지시를 주었다.
1. 그는 유다 왕국을 "암사자" 에 비유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열방 중에 여왕으로 앉았던 이전 상태와는 비교하면 너무나 엄청나게 전락된 것이다(2절). "네 어미는 무엇이냐?" 네 어미는, 오 왕이냐?(우리는 그의 어미 백성이 그에게 씌웠던 솔로몬의 왕관을 읽을 수 있다. 아 3:11) 네 어미는, 오 유다냐? 왕가는 왕국에 대해 어미 곧 보육하는 어머니와 같다. 그녀는 사납고, 잔인하며, 굶주린 "암사자" 이다. 그들이 저들의 신성을 버렸을 때는 곧 저들의 인간성마저 잃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인간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그녀는 "사자들 가운데 엎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홀로 거하지 않으며, "열방과 섞여 그들의 하는 일을 배울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길렀다. 즉 당시 동방의 엉터리 임금들이 사용했던 폭군의 도를 젊은 방백들에게 가르쳤고, 그들의 머리를 때맞추어 절대 전제 권력에 대한 관념으로 채웠고, 그들은 신하들을 노예로 삼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주입시켰고, 그들의 자유와 재산이 자기들 임의대로 됨을 가르쳤다. 이처럼 "암사자는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길렀도다."
2. 그는 유다 왕들을 "사자의 새끼" 에 비유해야 했다(3절). 야곱은 유다, 특히 다윗 족속을 "사자의 새끼" 에 비유해야 했다. 사자의 새끼는 강하고 외부의 원수에 대하여 담대했다(창 49:9 . "그는 늙은 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을 지켰더라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사자의 권능, 위엄, 지배력을 본존해 주셨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즉 "유다 지파의 사자" 에게서 이루어질 일이었다.그러나 이 "사자 새끼들" 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강하고 담대하며, 잔학하며, 저들의 땅과 자유를 수탈했다. 이처럼 폭정을 막아 주는 보호자이어야 할 자들에게서 두려움을 맞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고는 굴복하지 않았을 그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잘 하신 일이다.
여기서 애도되는 것은 이렇다.
(1) 이 암사자의 새끼 중 하나인 여호아하스의 죄악과 파멸이다. 그는 "젊은 사자가 되었다" (3절). 즉 그는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위해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며, 그 자신의 야망, 탐욕, 복수 등 마음에 품고 있던 것들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그는 곧 모든 종류의 폭정의 기술을 익혀버렸다. 그는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 고 했다. 그가 권력을 손에 쥐자 이전에 어떤 모양으로든 그를 거역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원한을 샀고 그의 분노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느냐? 그는 폭정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이방이 들었도다" (8절). 처음에 그는 왕관을 쓰려고 얼마나 맹렬히 달려갔는가, 어떻게 그가 의롭고 신성한 자들을 모두 짓밟았으며, 그들과의 모든 약정을 깨뜨렸는가를 열방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위험한 이웃으로 여기고, 그를 기소하였다.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고 했다(사 31:4). 그리고 그는 맹수로써, "함정으로 인해서 잡혔다." 그 자신의 신하들은 감히 자기들의 자유를 수호하려고 분기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곧 그의 폭정을 끝낼 외국 세력을 일으키사, 그를 "갈고리에 꿰어 끌고 애굽땅으로 갔다." 여호아하스는 그리로 포로되어 갔고, 그후의 소식은 들을 수 없다.
(2) 그의 후계자 여호야김이 범한 같은 범죄와 몰락이다. "유다 왕국은 얼마 동안은 여호아하스가 애굽에서 돌아오리라 기대했으나, 마침내는 실명하였다. 그래서 그 후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였다" (5절). 그리고 그는, 그의 형의 운명을 보고 경계심을 가져 공평과 절제로 자기의 권력을 쓰거나 그의 백성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에, 그의 형의 전철을 밟았다. "그는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였다" (6절). 그는 자기처럼 흉악하고 광포한 자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에게서 수단을 배웠다. 마치 르호보암이 경솔하고 머리가 뜨거운 젊은 사람들의 충고를 들었던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도 곧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 (6절). 그는 그의 신하들의 땅을 취했고, 그들에게 벌금을 물리고 투옥했으며, 강탈과 불의, 압류와 몰수, 벌금과 과료 등으로 자기 보고를 채웠으며,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는 사람들이 숨겨놓은 재산이 무엇인지, 또 그들이 쌓아놓은 보물이 어디있는지를 찾아 내는 기술을 습슥했다. 그는 그들이 "그들의 돈을" 숨겨두며, 가끔 "그들 자신" 을 숨겨두었던 "황무한 곳들" (7절)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두 가지를 다 찾아 낼 줄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압제에 의하여 그는 "성읍들을 훼파했다." 그 거주민들은 하는 수 없이 온 가족이 안전한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게 되어, 성안에 주민이 없게 되었다. "땅이 황무했고," 시골 마을이 황폐하게 되었다. 또 비록 다량의 산물과 모든 좋은 것이 가득했으나, 백성들은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두려워서 모두 떠나갔다. 그는 마치 사자가 숲의 모든 짐승들을 떨게 하고(암 3:8), 그의 무시무시한 표효에 의하여 그들을 놀라 엉겁결에 넘어지게 만들며, 결국 그들을 도망갈 만한 경황이 없어서 쉽사리 그의 먹이가 되게 하듯,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는 욱박지르고 위협하고, 크게 말하고, 백성을 협박하여 가진 것을 강탈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세력을 확립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으니, 단지 그 자신의 파멸을 재촉했을 뿐이다(8절). "이방이 이웃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왔다." 그의 거짓된 권세를 억제하려고, 동맹을 맺어 그들의 공동 안전을 모색하러 나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의 머리 위에 그물을 치고," 그를 대적할 계획을 짰다. 하나님께서 여호야김에게 아람인, 모암인, 암몬인, 그리고 갈대아인의 군대를 보내었다(왕하 24:2). 그래서 그는 "저들의 함정에 잡혔다." "느부갓네살은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느부갓네살은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대하 36:6). 그들은 쇠창살 안에 이 사자를 넣고, "쇠사슬로" 묶어서,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다" (9절).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의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았다." 그의 폭정은 끝났다. 그는 비록 사자와 같아서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용자들의 두려움" 이었으나, 이제는 "나귀같이 매장당하였다" (렘 22:19). 하나님의 의는, 다른 자들을 두렵게 하고 노예로 삼았던 자들 자신이 두려움을 당케 되고 노예가 되는 때에 드러난다. 또 교화를 위해 주어진 그들의 권력을 파괴를 위해 남용하여 스스로 맹수처럼 되어, 마치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들" 이 되는 때에, 하나님의 의는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솔로몬은 그처럼 "악한 통치자들이 가난한 백성을 압제한다" 고 말한다. 잠 28:15). 이것은 이스라엘처럼 그들의 "손을 모든 사람에게" 펼치던 자가 마침내 "모든 사람의 손을 그에게 펼치게" 하는 격이된다. 유혈을 즐기는 폭군들이 평안히 죽는 법이 별로 없다. 그들은 피를 보게 된다. 이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왜냐하면 그것은 그렇게 될 만하기 때문이다).
Ad generum Cereris sine caede dt sanguine pauci Descendunt reges et sicca morte tyranni- 치리자 중 교만한 자들이 과연 몇이나 평안히 플루토(Pluto)의 명부(冥府)로 내려갔는가 ! - 주베날
왕가의 몰락(2) (에스겔 19:10-14)
모도(母都) 예루살렘을 여기서는 다른 은유로 표현한다. 그녀는 포도나무요, 방백들은 그녀의 가지들이다. 이러한 비교법은 앞에서도 나왔었다(15장).
1. "예루살렘" 은 "포도나무" 와 같다. 유대 나라도 그와 같다. 또 "네 피 속에 있는 포도나무와 같다" (10절. 한글 성경에는 없음). 즉 혈연상의 왕가를 말한다. 그것은 피속에 심겨져서 피를 빨아먹고 사는 포도나무와 같으며, 무성하여 열매맺는 데 큰 공헌을 한다. 마치 뿌려진 피가 토양을 비옥하게 개량하는 데 소용되어지듯, 그들의 피는 큰 결심을 맺는다. 또 많이 흘려졌다. 그래서 잠시 동안은 그 포도나무가 소기의 효과를 본 듯했다. 그녀는 그 가까이 그녀가 "심겨진" 곁에 있는 "많은 물" 로 인하여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크게 사악한 곳도 잠시 동안은 번영할 수 있다. 또 피에 심겨진 포도나무도 그 가지가 무성할 수 있다. 예루살렘에는 유능한 행정관, 유식한 사람들, 학자와 경험자, 즉 "견강한 막대기들," 이 굉장한 크기와 힘이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들 또는 포도나무를 받쳐 주는 나무들이 가득하였다. 이 포도나무의 큰 가지들은 매우 성숙하게 자라서 "권세 잡은 자의 홀(왕의 지팡이)이될," 흰 막대기를 만들기에 적당하게 되었다(11절). 그리고 저들은 "홀" 을 하기에 알맞은 "견강한 막대기" 며, 행정관에게 적당한 강한 판단력과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유대 왕가가 수다하고, 법정이 식자와 염직한 자로 가득 찼을 때는" 예루살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높았다." 정부가 유능한 자의 손에 맡겨져 있을 때, 그 나라는 그로 인해 상당한 세력을 가지게 된다. 그때 그녀는 연약하고 비천한 포도나무로 여겨지지 않았고, "많은 가지 가운데서 뛰어나 보였으니," 곧 뛰어난 성읍이었다. Tanquam lenta solent inter viburna cupressi- 즉 이렇듯 삼나무는 비천한 실가지들 위로 높이 치솟는다."네 침묵 속에서(어떤 이들은 KJV가 네 피 속에라고 번역한 구절을 이렇게 읽는다) 너는 이와 같은 포도나무였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멍에 밑에서 침묵하여 안일하였을 때, 그의 나라는 이처럼 번영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시는데 얼마나 더디신가 ! 그는 심판을 연기하사 자비롭게 기다리신다.
2. 이 포도나무가 이제 완전히 파멸된다. 시드기야의 배반 때문에 크게 화가 난 느부갓네살은 "분노 중에 뽑아" (12절) 성읍과 왕국을 파멸시키고, 그의 앞에 떨어지는 왕가의 모든 가지들을 잘랐다. 그 포도나무가 비록 뿌리째 뽑히지는 않았으나, "땅 가까이에서(밑둥이에서) 잘렸다." "동풍이 그 실과를 말렸다." 젊은 이들은 칼에 쓰러지거나 포로로 잡혀갔다. 이 장면은 하나도 기꺼운 것이 없었고, 사태는 희망적인 것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의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랐다." 그녀의 높은 자들은 거세되었고, 재판관과 행정관들은 사라졌다."그 포도나무 자체는 광야에 심겨진다" (13절). 바벨론은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들에게는 광야와 같았다. 유대 땅도 이제는 전 국토가 수탈되고, 갈대아 군대가 황무케 하여서, 예루살렘에게는 광야와 같았다. "열매 맺던 땅이 항무지로 변하였다." "그것은 불에 탔으며(시 80:16), 그 불은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왔다(14절). 그 왕 자신이 바벨론 왕에게 반역하여 이 모든 재앙을 자초한 것이다. 그녀가 불에 타는 것은 자기 탓이다. 그녀 자신이 악함으로써 스스로를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에 대해 부싯깃과 같이 만들었다. 또 그녀의 가지들은 그녀 자신을 태워 주는 연료 구실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불이 타올라 그 실과를 삼키니, 나이 많은 자의 죄악이 나이 젊은 자를 멸망시키는 심판이 되었도다. 그녀의 실과는 자신의 가지와 함께 탔다. 그 결과로 그녀는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견강한 가지를 지니지 못했다. 이제는 이사야의 불평처럼(사 3:6, 7) 이 멸망을 감히 제어하기에 적당한 자를 찾아 볼 수 없고, 다스릴 권리가 있는 자가 다윗 왕가에 하나도 남지 아니했으니, 다스릴 능력이 있는 현자, 혹은 식자들도 없도다."
이처럼 주권이라는 축복을 빼앗겨, "홀이 될 만한 견강한 가지" 가 남아 있지 아니하면, 어느 나라나 갈수록 어려워진다. "오 땅이여 ! 너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네 왕이 아이로다." 이는 그 아이가 견강한 막대기는 고사하고 막대기조차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 견강한 막대기들은,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있듯이, 압제의 도구였으며, "식물을 움키고 사람을 삼키는 데" 왕을 도왔으나, 이제는 그와 함께 멸망된다. 폭정은 무정부상태로 들어가는 법이다. 또한, 정부의 막대기가 압제의 독사로 화할 때, 하나님께서 "통치할 홀이 될 만한 견강한 막대기를 없애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큰자가 작은 자를 삼키는 바다의 고기들처럼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시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는 말에 주목하라. 예언자는 "애가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1절). 그리고 그렇게 한 후 그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놔 두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어진 애가이다. 또한 황폐가 오래 계속되면, 그것은 우리 뒤에 올 자들에게도 애가가 되리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현 심판에 의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주어진 멸망을 한탄하리라. 그 심판이 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활을 당시는 데 오래 걸렸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왔으므로 계속될 것이며, 그것의 슬픈 결과들은 후대에까지 수반되리라." 선조가 지은 죄의 분량을 채우는 자들은 그들의 후손의 눈물을 위해 죄를 저축하며 그들에게 애도할 거리를 공급한다. 그리고 정부의 전복(주권 상실)보다 더 애도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