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악들(1) (에스겔 23:1-10)
Ⅰ. 하나님은 자주 에스겔에게 말씀하셨고, 그를 통해서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으며, 이제 "다시 그의 말씀이 임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일한 것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여러 번" 말씀하시나, 오히려 모두 합쳐도 충분치 않았으며, 너무나 부족하여 "인간이 그것을 깨닫지" 못함이다. 다음의 사실을 유의하자. 죄인들에게 죄의 악함과 비참성, 따라서 그 위험성을 확신시켜 주기 위하여는 거급 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을 알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죄인들을 두 여인, 즉 두 왕국, 자매 왕국, 이스라엘과 유다이다. 한 어미의 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오랫동안 한 백성이었었다. 솔로몬의 왕국은 너무 크고, 인구가 너무 많아서, 그가 죽은 후 곧 나라는 둘로 분리되었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하자.
1. 그들이 하나로 있었던 때의 그들의 특징을 보자(3절). "그들은" 우리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20:8) "애굽에서 음행을 범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그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음행은 하나님을 아주 격노시키며, 한 백성을 가장 쉽게 멸망시키는 죄인데, 그 죄에 대한 묘사는 정결치 못함이 얼마나 극악한 죄이며 얼마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며,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암시해 준다. 분명히 바로 그것은 죄들 중 가장 악한 것의 하나다. 왜냐하면 죄들 중의 가장 악한 것이 여기서나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자주 정결치 못함에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모양의 육체적인 정욕들과 그것들의 모든 외양들, 그리고 그것들에게의 접근에 대한 우리의 혐오와 두려움을 증가시킨다. 이는 마치 "영혼과 싸우는" 것이요, 어리석은 일에 열중케 하는 것이며, 그들을 매혹시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그리고 모든 선한 것에서 분리시키며 양심을 타락시키며, 그들로 하여금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눈에 가중한 자가 되게 하여, 마침내 그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죄이다.2. 그들이 둘로 되었을 때의 그들의 이름을 보자(4절). 이스라엘 왕국은 "언니" 라고 불려진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먼저 분열을 하였고, 또 하나님이 지명하신 왕들과 제사장들의 가계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원문의 말대로 하면 "보다 큰 자매"이다. 그 이유는 열 지파가 그 나라에 속했고, 두 지파만이 유다 왕국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둘에 대해서 "그들은 나의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씨였으며 "그의 택한 자" 야곱의 씨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그들의 할례" 의 표적 즉 그 계약의 인(印)이 있었다. "그들은 나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배교는 최대의 불의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물을 갈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선의 보호자에 대한 가장 천박한 배은망덕이었으며, 가장 신성한 계약에 대한 불성실하고 배신적인 파괴가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백했지만 그를 반역한 자들은 오히려 전혀 그러한 고백을 하지 않은 자들보다 더 많은 징벌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나의 것이다. 즉 그들은 나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나에게서 그들은 자녀들을 낳았도다." 자녀들이 마치 그 태어난 가정에 속하는 것처럼, 그들의 많은 무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되었고, 그를 섬기는 일에 힘썼으며, 이 왕국들의 미(美)와 국력이었다.
이 비유에서 사마리아와 이스라엘 왕국은 오홀라 - 즉 그녀의 자신의 장막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다. 왜냐하면 그 왕국이 가진 예배의 처소들은 그들 자신이 고안해 내고 선택한 것이며, 그 예배 자체가 그들 자신의 창안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어떤 이들이 이것을 "그녀 자신을 위한 그녀의 장막" 이라고 번격한다. 즉 "그(이스라엘 왕국)로 하여금 그것을 스스로 취하여 가장 잘 이용하도록 하라" 는 뜻이다. 예루살렘과 유다왕국은 "오홀리바" 즉 "나의 장막이 그의 안에 있다" 는 이름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들의 성전은 하나님 자신께서 "자기 이름을 거기에 두시기로 선택하신" 장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자기의 것임을 인정하시고, 그 안에 자신의 임재의 표시를 내려 그것들을 영광되게 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공언하는 자들은 때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특권들과 이점들을 가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보다 큰 것을 가진 자들이 만일 하나님을 반역한다면 그로 인해서 훨씬 더 잘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보다 못한 것을 가진 자들도 그로 인해서 더 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이스라엘 왕국의 하나님께로부터의 배반적인 이탈이 있다(5절). "오홀라는 나의 것이었을 때도 창기가 되었다." 비록 열 지파들이 다윗의 집을 버렸지만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의 것이라고 인정하셨다. 비록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들을 만들어서 범죄하였고 또한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으나, 그들이 비록 우상으로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섬기는 한에서는 하나님도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범죄의 길은 내리받이 길이다. 오홀라는 창기 노릇을 했으며, 바알의 숭배를 끌어 들였으며(왕상 16:31), 다른 신 즉 여호와 하나님과 대조해 볼 때 거름더미에 불과한 신을 세웠다(왕상 18:21). 마치 음탕한 간부가 자기의 연인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즉 여인들이 잘 꾸몄으며, 뛰어나 보이기 때문에 함께 또한 젊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랑을 던진다. "그들은 다 자색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며 준수한 소년들" 로써 귀인들로 통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의 이웃들 특히 앗수르인들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들은 주위의 나라를 정복하여 자기들 나라를 확장하였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우상들을 칭찬했으며, 그것들에게 예배했다. 그리고 그들의 궁정의 장대함을 찬미했으며, 그들의 군사적인 힘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과의 동맹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구하기로 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의 하나님은 의지하기에 충분치 못한 것처럼 여겼다. 우리는 이스라엘 열왕들 중 하나가 앗수르왕에게 수천 달란트를 진상하여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왕하 15:19). 그들은 "앗수르의 선택된 자들" 과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이런 자들이 그 나라의 군무에 소용이 되며, 신뢰받을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7절). 그리고 "그 모든 우상들로 인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더럽혔다." 무슨 피조물이든지 우리가 연애하고 충성을 바치고, 신뢰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그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우리가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혀지게 된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이러한 확신이 그 민족의 기원에까지 소급하는 것으로 보인다."그가 애굽에서 가져 온 음행을 내어 버리지 않았다" (8절). 그들이 애굽에서 우상 숭배자였음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애굽의 폭군들과 간역자들을 계속하여 두려워했을 때에도 애굽의 우상들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한 민족을 이루었을 때부터 지니고 있던 이 부패된 성향은 역시 우리도 함께 지니고 태어나며, 우리의 성품에 얽혀 있는 그 본래적인 부패성의 상징이다. 이것은 세상과 육체를 향한 강한 편향성이며,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대한 편향성을 지니고 있음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가져온 음행을 버리지 않았다." 또 그것이 "그들의 뼈 속에 자라고" 있었다고 오랜 뒤에 책망받게 되었다. 애굽이 그들에게 "속박의 집" 이었지만, 결코 "육체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가져온 부패한 성질과 경향들을 아직도 상실하거나 완전히 청산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불의는 인생이 당하기 쉬운 모든 재난들의 원천이 된다.
4. 하나님으로부터의 배교로 인한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을 보자(9, 10절). "내가 그를 그 정든 자의 손에 붙였다." 하나님은 먼저 그를 그의 욕정에 내버리셨다(여로보암은 상과 짝하여, 하나님을 버렸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를 그의 정든 자에게 내맡겼다. 이스라엘은 그 이웃하는 민족들의 우상에 짝하였고 그들과의 우의를 신뢰하였으며 결국 이것이 하나님을 모욕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이 그의 파멸의 도구로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열애하던 앗수르인들이 곧 "그 땅의 벌거벗었음을 정탐하였고," 그를 공격할 곳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의 모든 장식품들과 그의 모든 방어물들을 죄다 약탈했으므로 그의 벌거벗음이 드러나게 하였으며, 황폐케 하였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포로로 끌어갔으며, "칼로 그를 살육하였으며," 그 왕국을 완전히 파멸시켜 종식시켰다.우리는 열왕기 하 17장 6절에서 그 이야기를 보게 되는데, 거기에서 한때 번영했던 그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게 되는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임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고 이방인의 길로 갔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단히 노하시고 그들을 그의 눈앞에서 제거하신"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18절). 그리고 그들이 너무나 좋아했던 앗수르인들이 그들에게 심판을 행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자주 과도하게 마음에 두었던 자들을 그들에게 가하는 채찍으로 삼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공정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악마는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유혹에 따라 주는 회개치 않는 죄인들에게는 영원히 고통을 자하는 고문자가 될 것이다.
이리하여 사마리아는 "여인들 가운데 유명하게" 되었다. 또는 오히려 악명이 높게 되었다. (문자대로 하면) "그는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즉 성읍들과 왕국들의 황폐가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듯, 사마리아는 이야기거리가 되며, 많은 말을 듣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우상숭배로 인하여 모든 백성에게 대한 in terrorem - 즉 경고로써 파멸된다. 악명 높은 악행자들의 공개적인 처형이 그들에게 그러한 "이름" 을, 곧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악명을 주어서함께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종말로 이끌어 갔던 악한 길들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과 같다. "모든 이스라엘은 듣고 두려워할지라" (신 21:21).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악들(2) (에스겔 23:11-21)
예언자 호세아는 그의 시대에 열 지파들이 배교했을 때에도 두 지파는 상당한 정도로 그들의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았다(호 11:12).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나를 에워쌌으나, 유다는 하나님으로 다스리며 성도들에게 신실하도다." 그리고 이런 것이 기대되었던 것도 정당하였다(호 4:15). "이스라엘은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것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다윗의 집과 아합의 집 사이에 이루어진 불행한 결혼에 의해서 바알의 숭배가 유다 왕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다시 왕들의 개혁이 단행되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 통치 시대에는 열 지파들의 모든 것이 좋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또 낫세가 통치할 때에 유다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을 보고 나서도, 그들 이스라엘이 과도한 우상 사랑에 빠졌던 것보다 더욱 부패해졌다(11절). 이스라엘 파멸이 유다에게 경고를 주어 사태가 호전되기는커녕 유다는 그것에 의해서 더욱 악화되었다. 마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분열하게 하셨고, 그 이유로 하나님에게 그리고 그의 도움에 대해 냉담해진 것 같았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그를 경외하는 대신에 그들은 점점 하나님에게서 소원해지게 되었고, 그들의 짝이 될 것을 허락한 다른 신들을 더 좋아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이 타인들에게 주는 경고를 받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들에게 내릴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타인들에게서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지만 여전히 그것을 경시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을 보다 좋게 만들어야 할 것에 의해서 더욱 나빠지는 자들, 그들의 욕정들을 억제하고 금하도록 계획된 것에 의하여 오히려 더욱 저주받게 되는 자들은 불행한 자들이다. 예루살렘은 그의 형제 사마리아가 "그의 음행에서" 그랬던 것보다 더 나쁘게 되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관찰되었다(16:51). 즉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
Ⅰ. "신실한 성읍" 이었던 예루살렘이 "창기가 되었다" (사 1:21). 그는 또한 "앗수르인들과 사랑에 빠졌다" (12절). 그들과 동맹을 했다. 그들과 함께 예배하였다. 그들의 방백들과 통치자들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이 이전에 낳은 어떤 자보다도 더 아름답고 보다 교양 있는 신사라고 극구 칭찬하였다. 그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얼마나 날씬하게 꾸몄으며, 얼마나 호화롭게 입었는지를 보라. 그들은 얼마나 말을 잘 타는가! "그들은 말타는 자들이다." 그들은 얼마나 매력있어 보이는가! 그들은 "모두 준수한 소년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은 이방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나라를 경멸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의 종교조차도 천하며 볼품없는 것으로 여기고, 이방의 사원들의 신기함과 화려함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음난을 더했다." 그는 갈대아인과사랑에 빠져서 동맹하게 되었다. 히스기야왕 자신도 이 점에서 결점이 있었으니, 그때에는 바벨론 왕이 그에게 찾아온 것을 자랑하여 그의 사실들에게 인사치레로 모든 보물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사 39:2). 그리고 그런 기질은 더 퍼져 나갔다(14절). 그는 바벨론 방백들의 그림들을 좋아했다(15, 16절). 그리고 그 왕국과 동맹하여 그들을 오도록 초대해서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 민족의 기질을 순화시켰으며, 그래서 더욱 품위있게 하였다. 아니 그들은 저들의 사상들, 제단들, 그리고 성전들의 모형들을 가져 오게 했으며, 그것들을 자기들의 예배에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음란으로 스스로를 더럽혔다" (17절). 그리고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그 자신의 음란을 나타내었다" (18절). 즉 그 자신의 우상 숭배에의 강한 성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갈대아인들을 충분히 맛보고 그들에게 싫증나게 되고, 그리고 그들과의 동맹을 깨고 싶어졌을 때는, 여호야김과 시드기야가 한 것처럼 애굽인들을 사모하여, "갈대아인들과 소원해진 그의 마음이 그들의 정부들을 사랑했으며" (20절), 그들과 동맹하고자 하였으며, 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는 데 합세하였다. 그래서 모든 다른 민족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애굽을 의지하였다. 왜냐하면 애굽 민족이 너무나 현명하고 부유하고 강력했고 그리고 우상 숭배에서는 완전히 가까웠으므로, 애굽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민족은 당시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젊었을 때를 회상했다" (19절). 즉 "그들의 젊은 시절의 음란함을 생각했다" (21절).
1. 그들은 그것을 즐거이 기억했다. 그들은 애굽에 정을 두기 시작하자, 애굽 왕국을 신뢰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졌던 옛 면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서 먹던 부추와 양파의 풍미를, 아니 오히려 그들이 거기에서 배웠고, 그리고 떠나올 때 함께 가져왔던 우상 숭배의 예식에 대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애굽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부모들이 얼마나 즐겁게 금송아지를 예배했으며, 그들이 애굽에서 배운 무도에서 무슨 음악과 춤을 즐겼는지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것에로 나아갈 정당한 주장을 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음행을 매가하였고," 그의 이전 음행을 반복했으며, 현재의 유혹에 접근하기로 스스로 각오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젊은 때를 기억함" 을 인해서였다. 이전의 죄들을 슬픔과 수치심을 가지고 반성하는 대신에 즐거움과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자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새로운 죄와 결탁하게 되며, 그들 자신의 부패를 강화시키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회개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 되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바로 "개가 그 토한 것에 되돌아 감" 과 같다고 할 것이다.2.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기억함" 이라고 불렀으며, 하나님이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도록 그를 자극시켰다. 사실은 하나님은 "금송아지" 즉 "애굽의 우상" (출 32:34)을 인하여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갈대아인들을 버리고 애굽과의 동맹에 의해서 그들이 과거를 생각나게 하기까지는 하나님이 그것을 잊어버렸던 것 같았다. 그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내였다. "그가 지금 징벌하실 것이니," 그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니라." 이 간부가 자기의 남자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잘 주목해 보자. 그는 처음에 앗수르인들을 사랑했다. 다음에는 갈대아인들을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초청했다. 얼마 후에 그의 마음은 갈대아인들에게서 멀어지고, 애굽인들을 보다 더 강력하다고 생각하여(20절) 그들과 친교를 맺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1) 육체적 욕정의 어리석음이다. 육욕에 탐닉될 때는, 그들은 변덕스러워지며, 곧 과다하게 되지만 결코 만족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여러 모양을 갖추어야 한다. 첫날에는 사랑받으나, 다음 날에는 싫어지게 된다.
(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이다. 하나의 신(神)을 적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백 개의 신도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것을 불만족하게 봄으로써 보다 많은 것들을 시험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3) 피조물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한 피조물에서 다른 피조물로 넘어가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실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우리의 도움으로 삼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Ⅱ.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창기가 된" 이 믿음 없는 성읍에게 이혼 증서를 주신다. 그의 질투는 곧 예루살렘의 음행을 찾아 내셨다(13절). "나는 그가 더러워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성향이 어느 길인지를 보았으며,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사마리아보다 더 악하게 된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손을 이방신에게 펴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알아 내시지 않겠느냐? 틀림없이 그는 알아 내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알게 되셨을 때 그것을 기뻐하실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18절). "그때 내 마음이 그 언니를 싫어한 것 같이 동생도 싫어하였다." 어떻게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러한 음란한 세대를 기뻐하실 수 있겠는가?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죄인에게서 멀리 떠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그리고 죄인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정당한 결과이다. 그러나 화로다!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간 자들에게 화로다! 그는 자기가 돌아선 자에게 대하여는 싫어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의 징벌 (에스겔 23:22-35)
예루살렘은 오홀리바란 이름으로 고소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그의 지고의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 두려움을 품지 않고, 악마의 선동에 의해 움직이는 거짓된 반역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배반하였고, 그리고 음모하여 그의 통치를 떨쳐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신 왕래를 계속하여 하나님의 원수들과 공모에 가담하였으며, 신성에 대하여 엿보는 자들과 그의 왕관과 위엄을 경멸하는 데 가담했기 때문이다. 이 기곳에 대해서 예루살렘은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죄가 되지 않는다. 나는 더럽혀지지 않았다. 나는 발람을 좇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고발하는 악명 높은 사실에 의해서 그의 죄는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대해 유죄로 선언된다. 그러므로 이 대문에서 우리는 그 판결을 보게 된다.
Ⅰ. 여기에 보면 그의 엿 공모자들이 그의 형 집행자들이 된다. 그가 죄악의 지도자로 초청한 자들이 이제 그의 징벌의 도구들로 쓰여진다(22절). "내가 너희 사랑하는 자들을 일으켜 너희를 거스르게 하겠다. 즉 갈대아인들은 이전에 너희가 너무나 칭찬하였으며, 몹시 칭찬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그들로부터 너희 마음이 멀어지고 그들과 맺은 계약을 너희는 불성실하게 어기고 말았다." 그들은 "저희의 연인들" (22절)이라고 불리우지만, "저희가 미워하는 자들" (28절)이다. 죄된 사랑에 있어서는 곧 증오로 변하는 일이 흔히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다말에 대한 암논의 사랑이 그렇다. 불합리하고 완고한 감정의 소유자들은 얼마 전까지도 그들이 뜨겁게 좋아하던 사람들이나 어떤 일에 대해 또한 매우 열렬히 거스르게 된다. 어리석은 자들은 극단에서 극단으로 흐른다. 아니 현명한 자들도 그들의 감정이 변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우리가 기쁘지 않는 듯이 슬퍼하고, 슬퍼하지 않는 듯이 또한 기뻐해야 한다. Ita amatanquam osurus - 즉 혐오를 느낄 만한 이유가 언제는 자로서 사랑한다.
Ⅱ. 그에게 내려진 처형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
1. 그의 원수들이 그를 사면에서 공격할 것이라 했다(22절). 그들은 갈대아인의 군사로 구성하고 있는 여러 나라에 속한 자들로서 (23절), 모두 "귀인들과 유명한 자들" 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관과 화려함 그리고 찬란한 외모가 그들을 더욱 호감있게 하였으며,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후원하기 위한 하나의 친구로서 왔었다. 그러나 그들이 반역을 응징하려고, 예루살렘의 파멸만을 목적으로 왔을 때는 말할 수 없이 더 무서웠다.(1) 그들은 막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올 것이다(24절). 즉 그들은 전차와 필요한 모든 야영 장비들을 갖춘 병거, 무기들과 탄악,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며, 잘 무장된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올 것이다.
(2) 그들은 정당성을 지닐 것이다. "내가 그들 앞에 심판을 베풀 것이다." 즉 그들은 힘은 물론 그렇게 할 권리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 왕이 바벨론 왕과 맺은 동맹을 파괴했기 때문에 바벨론 왕은 유다 왕에게 전쟁을 선포할 정당한 이유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행한 모욕에 대해 너희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의 도구로써 그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심판에 따라서 즉 국가들의 법에 따라서 그들과의 불성실한 너희의 교제에 대하여 징벌하기 위해서 그리한다."
(3) 그들은 대단히 격렬하고 분에 넘쳐서 그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그것은 복수전이므로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네게 행할 것이다" (29절). 이것은 그들의 칼을 독물에 담그는 격이 되어 그 만행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은 미운 마음으로 네게 행할 것이다." 미워하는 자들은 미움을 받게 될 것이고, 미운 마음으로 대우받게 될 것이다.
(4)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며, 그의 분노가 그들의 분노와 뒤섞여질 것이다(25절). "내가 너희를 향하여 투기를 발할 것이다. "그것이 이 불을 지를 것이며, 그러면 그때 "그들이 격렬하게 너희에게 행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이와 같이 미운 마음으로, 격렬하게 우리에게 대한다하더라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편에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실제로 우리에게 아무 해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격렬하게 우리에게 행하고 하나님도 그의 투기를 우리를 향하여 발하신다면, 우리는 어찌될 것인가?
2. 이 유명한 창부에게 내려진 판결의 세목들은 다음과 같다.
(1) 그녀는 가진 모든 것을 빼았기게 될 것이다. 그녀가 자기의 연인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던 옷들과 값진 보석들, 이것들을 모두 약탈당할 것이다(26절). 그녀의 치장을 위한 장식물이었던 그 모든 것들을 빼앗길 것이다. "그들이 네 모든 수고한 것을 빼았을 것이다. 즉 네가 너의 수고로 얻은 모든 것을 그리하리라. 그리고 너를 벌거벗겨, 적신으로 둘 것이다" (29절). 성읍이나 농촌이나 할 것 없이 모두 황무하여 질 것이며, 그곳의 모든 재물들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2) 그녀의 자녀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들이 네 자녀를 빼앗아 노예로 삼을 것이다(25절).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존귀와 특권을 누릴 가치가 없는 음란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호 2:4).
(3) 그녀는 불구가 되고,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그들은 너의 코와 너의 귀를 잘라 버릴 것이며, 그리고 너에게 창녀의 표시를 할 것이며, 너를 영원히 밉살스런 자로 만들 것이다" (25절). 이것은 갈대아 군인들이 자기들 수중에 들어온 유대인들에 대해 행한 많은 잔인한 행위들을 암시한다. 아마도 그들은 유대인들을 야만스럽게 대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사징적인 것으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생각에, 코는 왕의 위엄을 의미하며, 귀는 제사장들의 위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4) 그녀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 "너의 음란과 너의 음행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29절). 악행자가 처벌될 때 그의 모든 범죄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법이며, 다시금 그의 치욕이 되는 것과 같다. 한때는 비밀이었던 것이 밟히 드러날 것이고, 이미 행해진 일이 오랜 위에 다시 상기되어질 것이다.
(5) 그녀는 완전히 제거되고 파멸될 것이다. "기근과 염병을 피했던 너의 백성 중 남은 자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너의 목전에서 난타되지 않은 네 집의 남을 것들을 불에 삼키울 것이다" (25절).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종말이 될 것이다.
Ⅲ. 그녀(예루살렘)가 사마리아의 죄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에, 삿마리아의 운명과 다른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재판을 할 때는 전례를 참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이런 판결을 내리신다(31절). "너는 그 경고를 충분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의 치명적인 결과에 의하여서 네가 네 언니의 길로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나는 언니의 잔을 네 손에 주리라." 그녀의 잔이란 바로 그녀가 받았던 비극이며, 여호와의 격노를 말한다. "이것은 너에게 전율의 잔이 될 것이다. "
1. 이 잔은 "깊고, 넓으며," "많은 것" 을 담는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풍성함, 즉 진노의 열매를 말한다(32절). 이것은 예레미야 25장 15, 16절에서 읽은 것과 같은 잔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은 많은 것을 담는다. 그러므로 그 잔을 받게 될 자도 역시 많은 것이다.2. 악한 자들이 하듯이 그들도 이 잔의 찌꺼기를 마시게 될 것이다(시 75:8). 네가 그 깨어진 조각을 씹으며, 네 가슴을 뜯을 것이다. 그것은 이 잔의 극도의 쓴 맛에 분개해서다. 그리고 여호와의 분노가 가득찰 것이다(사 51:20). 마치 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머리카락을 뜯으며, 모든 것을 내어던지는 것과도 같으리라. 아무 치료책도 없고, 그것은 반드시 마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말했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는 그것을 참을성 있게 마시는 모습도 보이지 못할 것이다.
3. 그들은 그것으로 취하게 되고 병들며,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마치 취중에 있는 사람들이 비틀거리고 곤드러지며, 엎드러지기 쉬운 것과도 같다(33절). "네가 취함과 고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술취함은 그것에 따라 오는 고통을 갖게 된다. 이 경우의 극도의 혼동과 놀말이 그것으로써 표현되었다. 누가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려 하겠는가? 즉 본성에 대한 그러한 힘, 인간의 본성에 추문이 되는 것, 그리고 인간에게서 그들의 이성을 빼았으며 그들을 극도로 혼란시키며, 그러므로 최대의 불행을 야기하는 그런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간 자신의 영혼을 저주하게 하며 그들의 육체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그들과 같은 슬픔과 두려움을 갖는가? (잠 23:29)
4. 그렇게 취해 버렸으므로, 그들은 하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주정뱅이가 당하는 경우와 같다(32절). "네가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리라." 그것은 그가 모든 일에서 우스꽝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하실 때는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신다" (욥 12:17, 21).
Ⅳ.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은 의롭다 인정될 것이며, 이 모든 것에 의해서 그들은 고정되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의 유익이 될 것이다.
1. 그들은 악했으며 너무 약했으므로, 그런 일이 그들에게 임하게 했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은 옳다고 인정받게 된다(30절).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탄한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인하여 더럽혔음이로다." 그리고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등 뒤로 버렸기 때문이다" (35절). 우리를 보시며 우리에게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을 망각하며 그를 경멸하는 모든 행동의 밑바닥에는 불순하게 그를 떠나는 반역이 깔려 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우상을 좇아 방황한다. 그들의 하나님을 잊었고, 그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잊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고려할 아무 가치가 없는 분으로 여겨 저버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죄의 유혹에 대해 그렇게 많은 욕망과 기쁨을 가지고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렇게 멸시하는 자들, 바로 이런 자들이 어떻게 그 멸시가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오게 되지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음행과 너희 음란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즉 너희가 그것들의 징벌을 당할 것이고, 너희 홀로 그 책망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죄의 무게 이상으로 벌에 빠져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음란과 그들의 음행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2. 그들은 좋아지며 훨씬 더 좋은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불은 비록 많은 것을 태우지만 남은 자를 순환시킬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네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리라" (27절). 죄로 인하여 그들에게 내린 심판들이 그들로 하여금 죄악에서 떠나게 하고, 그러므로 그들이 이렇게 말하도록 가르쳤다. 즉 "우리가 우상으로 더불어 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그 질병은 얼마나 뿌리 깊은가? 즉 "너희 음행은 애굽땅에서부터 왔느니라." 우상 숭배에 대한 그들의 성품은 어릴 적부터 그리고 타고난 것이며, 그들이 그것을 행한 것은 옛부터이다. 그리고 오랜 관습에 의해서 일종의 법이 되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는 너무나 완전하다. "그것이 뿌리를 내렸으나 중단될 것이며, 그래서 너희가 이전과 같이 다시 그 우상들을 향하여 너희의 눈을 들지도 않을 것이며, 그리고 큰 즐거움으로 애굽을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죄ㅢ 기회를 피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무심히 "그들의 눈을 따라 걷지" 않으려고 그들이 이전과 같이 우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상에 대한 모든 경향성을 포기할 것이다. "그들의 애굽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민족의 유아기때부터 가졌던 우상들에 대한 어떠한 애착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애착을 얻은 것은 본성의 타락을 통해서, 그리고 애증의 굴레에서부터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버렸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바벨론 포로 때를 통해서 그렇게 하였다. 이것은 축복된 결과로써, 바로 그 죄를 떠난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로기 이전에는 어떤 나라보다도 더 격렬하게 우상과 우상 숭배에 기울어졌던 나라가, 포로기 이후에는 어떤 나라보다도 더 열렬하게 우상과 우상 숭배에 대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로마 교회에서 실행되는 성상 숭배는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편견을 정당화해 주는 셈이다.
비난받는 이스라엘과 유다 (에스겔 23:36-49)
열 지파들이 포로로 되어 가고, 그 왕국이 완전히 황폐된 뒤에, 그 나머지 사람들은 점차 유다 왕국에 합병되어(그들 중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따. 그래서 두 자매들이 실제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대목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렇게 연합되어진 자들을 비난하게 된다. "너는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함께 재판하겠느냐?(36절) 네가 그들을 위한 구실을 고안하려고 두루 다니겠는가? 너는 이 문제가 변명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혹은 오히려 "너는, 이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심판하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20:4)." 이 문제는 합병 이후에 더 좋아지기 보다는 더 나빠졌다.
Ⅰ.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죄책을 지고 있는 죄들을 알게 하자. 공공연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그들에게 "그들이 싫어하는 일들" 을 선언하라.
1. 그들에게는 추한 우상 숭배의 죄가 있었다. 여기서는 그것을 "음행" 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우상과 행음을 범했으며" (37절), 감각적인 마음의 만족을 열망했었다. 이것이 에스겔이 책망해야 할 제일의 그리고 가장 나쁜 죄악이었다.2. 그들은 가장 야만적인 살인죄를 지었다. 그들의 자녀들을 몰록 신에게 희생 제물로 드렸던 것이다. 너무나 부자연스런 죄이어서, 그들은 모든 경우에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 "피가 그들의 손에 있었다. "그것은 무죄한 피요, 그들 자녀들의 피다. 그들이 그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 것은 (37절) 자녀들을 우상들에게 헌신하게 하려 해서가 아니라, 우상들에게 삼키워 먹히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우상을 사랑하되, 세상에서 자기들에게 가장 귀한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표시였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시고 구별하신 성물들을 속되게 하였다. 이것을 "그들이 네게 행했으니" (38절), 곧 이 모욕과 상해이다. 거룩한 것에 주어진 온갖 경멸은 거룩함의 원천인 그분을 비난하는 것이며, 그리고 거룩하다고 불려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와의 관계에서부터 그런 이름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그의 성소를 세우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더럽혔다. 즉 그들은 성소를 장사하는 집으로, 도둑의 굴혈로 만들고 말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더 나쁘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그들의 우상을 세워 그것들을 예배했으며, 거기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거룩한 안식일들을 계시하셨으나, 그들은 안식일을 속되게 하였으니, 그날에 그들은 모든 추한 일을 행했으며, 그날에 무도와 오락을 즐겼다. 이것을 늘 행했을 뿐만 아니라, 당국에 의해서 승인되고, 고무되었다. 그들은 "당일에 성소를 더럽혔으므로" "안식일을 범했다." 성소를 더럽히는 것은 어떤 날이든지 나쁘지만, 안식일에 그렇게 행하는 것은 죄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 된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좋은 날에는 좋은 일을 하라." 그러나 여기에서는 좋은 날에 더 악한 일을 행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비행을 더하는 죄의 형편들을 유의하신다. 하나님은 무엇이 생서와 안식일에 대한 모독인지를 보여 준다(39절). "그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살룩했고, 그들을 그 우상들에게 희생으로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본성에 대한 큰 불명예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당일에" 그들의 자녀의 피로 더럽혀진 손과 그 피로 얼룩진 옷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려 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이러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기대하면서 그의 앞에 나타나고자 하였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알지 못하시든가 죄를 미워하시지 않으신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소를 더럽혔으며," 그것이 마치 행악자들의 가장 악한 것에 대한 보호였던 것같이 보였다. 그들은 "그의 집 한복판에서" 그렇게 행했기 때문이다. 거칠고 공개적으로 속되고 악한 자들이 오만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그들의 특권들과 직무들을 강요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엄숙한 의식들의 모독이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 "친구여, 어떻게 네가 여기 왔느냐?"
4. 그들은 외국과의 동맹을 맺었고, 그것들을 자랑하였으며, 그리고 그것들을 신뢰하였다. 이것도 또한 음행죄에 의해서 표현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만 충성을 바치고, 우상들에게는 바치지 말아야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은 또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피조물들을 신뢰치 말아야 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한 특별한 백성이며, 홀로 거처해야 하며, 그리고 열방 중의 하나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왕관을 더럽히고, 그 명예를 진창에 던졌다. 그때 그들은 이방들 같이 되거나 혹은 그들과 동맹하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그렇게 행하였다. 그들은 그 때에 가장 유명하고 유력한 왕국들인 앗수르, 갈대아, 애굽과 엄격한 동맹에 들어 갔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이 인접한 국가들과 그 하찮은 왕국들과의 동맹은 경멸했다. 이들은 아직 그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도움이 되었었다. 지위 높은 자와의 거래는 때때로 선량한 자들에게 올가미가 된다. 어떻게 예루살렘이 그의 고위 동맹자들을 초청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상당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를 보자.
(1) 그녀(예루살렘)는 공적인 사절단인 그녀에게 파견되기를 은밀히 요청했다(40절). "네가 사자를 원방에 보내어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도다." 그당시 그 이웃 나라들은 예루살렘과 협약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이 강요하면서 비밀히 자기에게 협조해 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보라 그들이 왔다." 가장 현명하고 선한 사람도 불가피하게 속되고 악한 사람들과의 대화와 교제에 들어 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자와의 친교를 몹시 탐내며, 그것을 자초하는 것은 지혜의 표시나 선의 표시가 아니다.
(2) 이들 외국 사신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큰 준비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공식 입성과 공식 청중을 위해서였는데, 그것이 한창부가 자신을 멋있게 보이고자 취하는 수고에서 비유된다. 이세벨과 왕과 방백들이 새 옷을 입었으며, 화려한 방들을 준비했으며, 그 가구들을 장식하고, 그리고 그것이 새롭게 보이도록 했다. 너는 "화려한 자리에 즉 화려한 왕좌에 앉았도다" (41절). "상을 베풀고, 그 위에 내 향과 기름을 놓았도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리라.
[1] 다른 준비들에 어울리는 점잖은 예우, 즉 그 사신들을 위한 연회다. 그 방을 향기로 채우는 향수와 그들의 머리에 부을 기름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2] 사신들의 우상 숭배에 사용하기 위해,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 계단을 말하리라. 이것은 그들에게 이스라엘 사람은 지나티게 엄격하지 않으며, 외국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로운 예배를 허락한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그들의 예배ㅔ 함께 참여하면서까지 그들에게 아부했다. 그들의 하나님의 율법은 그런 것을 금지하지만, 그들은 쉽게 친구 노릇을 했다.
그 기름과 향을 하나님은 "내 것" 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의 섭리의 선물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제단에서 드려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들의 죄는 더욱 악화되었다(호 2:8 을 보라).
(3) 그들이 오자, 마치 이전에 예루살렘에 일찍이 없었던 큰 축복이나 왔다는 듯이 유래 없는 큰 기쁨이 있었다(42절). "그 무리와 편히 지껄이며 즐겼다." 이 백성은 매우 편안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강력한 동맹자들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제 스스로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쁨의 박수와 요란한 환호로써 그 사신들을 맞이했다. 이 때에 큰 무리가 그 궁전까지 왔다. 일반 평민들이 거기에 모여와서 장엄에 품위를 더 하였으며, 그 궁중에 합세했다. 그리고 "광야에서 사베안인들(Sabeans)을 초청해 왔다" (흠정역). 난외에는 이것을 "광야에서 술취한 사람들을 초청해 왔다" 고 해석했다. 즉 그것은 이 장엄한 동명의 번영을 위한 축배를 들며, 그 축배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권하면서 이 때에 소리쳤으므로 매우 소란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이든간에 그 사신들의 명예를 위하여 그들은 "저들 머리에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우고," 저들의 팔에 팔찌를 끼워 주었다. 그리하여 저들의 행렬을 매우 화려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4) 하나님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이런 위험한 외국인들과의 동맹을 금하라고 경고하셨다(43절). "내가 행읍으로 쇠한 여인을 가리켜 말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방인과 동맹하며, 저들의 가족들과 결혼하기를 좋아하였으며(삿 3:6), 그 후에는 저들의 왕국들과 동맹하기를 즐겨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자주 실망하면서도 결코 그것에서 돌이키려 하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그녀가 쇠하여진 음행이었다). 내가 말한다. 그들은 그녀와 음행하며, 그녀는 그들과 함께 할 것인가? 분명히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볼 때 유대인의 국가와 이교도 국가 사이의 동맹은 어느 편에도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과 그녀에게 확신케 될 것이다. "그들은 "철과 진흙" 이다. 그것은 섞일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동맹은 축복하지 않으실 것이며, 오히려 비웃으실 것이다.
그러나 기대하는 바와는 달리, 그녀가 그들과 오래 사귀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서 그녀를 떠나게 하는 대신, 그녀로 하여금 보다 오만하고, 그들에게 지칠 줄 모르게 만들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런 일의 어리석음을 충고받았으나, 그들이 그녀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다(44절). 거래는 이루어졌다. 동맹이 처음에는 이 나라와 다음에는 저 나라와 이루어져 갔다. 사마리아는 음란한 여인들처럼 행동했고, 예루살렘도 그랬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와 보호의 품 안에서,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준 보호를 확신하면서 만족하게 쉴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으로는 충분히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잘 협정된(그들 생각에) 정치적인 조약과 동맹에 의하여 외국의 방백들과 손을 잡아 자기들의 권익을 그들의 보호 아래 두려 했다. 세상의 장엄함과 부요를 의지하며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해 음행을 범함과 같다(렘 17:5).
Ⅱ. 이러한 죄악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심판들을 그들이 예견하게 해야 한다(45절). "의로운 자들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혹자는 그들을 심판할 자들, 곧 그들을 파멸시키는 누구 노릇을 하는 자들을 의인이라고 해석한다. 사마리아를 파멸시켰던 앗수르인들, 예루살렘을 파멸시켰던 갈대아인들, 그들은 비교적으로 의롭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를 알고 있었으며 유대 민족의 배실을 분개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했으며, 우리가 확신하는 바 그것은 모두 옳았다. 또 다른 자들은, 의인을 그 예언자로 이해한다. 그의 직책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심판하고 그들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다. 또는 이것은 모든 의로운 자들에 대한 언급으로써, 즉 공평의 의식이 있는 모든 자들에 대한 연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들 성읍에 관하여 심판하고 그들의 판단에 일치할 것이다. 그들은 이름나게도 간통과 살인의 죄를 짓고 있었고, 그 죄는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피를 흘린 자들, 음행하던 여인들이 법률상 받아야 할 고통과 벌을 받아야 했던 때문이다. 의인들은 말할 것이다. "피 흘리고 음란한 성읍이라고 하여 피 흘리고 음란한 사람들보다 더 좋은 수가 있을 수 있으랴? 내가 구하노니 판단해 보라(사 5:3)." 이 심판을 의인들이 내렸으므로, 의로운 하나님이 집행하실 것이다.
1. 그 집행은 어떤 것이겠는가? (46,47절) 그것은 23절에서와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수들의 군대를 데려 올 것이다. 적군은 자신의 죄된 욕망들과 정욕들을 위해 일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 원수들이 쉽게 이길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어 "학대와 노략을 당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군대는 악행자들과 같이 "이들을 돌로 칠 것이며," "이들을 뽑아내어, 칼로 죽일 것" 이다. 그리고 때때로 엄격한 처형에서 행하여지는 바와 같이(아간의 경우가 입증하는 바) 그들은 "이들의 자녀들을 살해하며, 집들을 불사를 것이다. "2. 그것의 결과는 무엇일까?
(1)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기 죄를 인하여 고통당할 것이다. "그들의 음란이 그들에게 보상될 것이다" (49절).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우상의 죄책을 담당할 것이다" (35,49절). 그래서 하나님은 파괴된 그의 법률과 침해받은 주권의 명예를 주장하시며, 온 세상에다 얼마나 자기가 고정하시며 질투하시는 자인가를 알도록 하실 것이다.
(2) 그래서 그들은 갑자기 그들의 죄에서 떠날 것이다. "나는 그 땅에서 음란이 그치게 하겠다" (27,48절). 하나님의 성도들의 죽음과 같이 하나님의 성읍의 파멸은 법령들과 섭리들이 이전에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죄를 완전히 제거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그 재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덩어리를 일으킬 것이다. 이것은 금이 그 찌끼에 정화되어, 용광로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3) 그래서 다른 성읍들과 국가들은 스스로 우상을 삼가게 되는 정당한 경고를 받을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여인들이 너희 음행을 따라 행하지 않도록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악인들에 대한 징벌의 목적이므로, 그들은 타인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며, 그들은 보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경멸자를 치면, 단순한 자는 주의할 것이다. "어떤 자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은 타인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죄인들은 올무에 빠지지 않게 되며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교훈을 받는 자들은 복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받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이심을 알아야 "한다(49절). 즉 그는 세상의 주관자이시며, 땅에서 심판하실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그에게는 편벽됨이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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