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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 '생명수의 강'은 창 2장과 겔 47장을 반영한다. 에스겔서에 따르면 물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와 바다 곧 사해에 도달하여 사해의 죽은 물에 생명을 부여하여 생물이 살 수 있도록한다(겔 47:1-12). 이러한 배경을 가진 '생명수의 강'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죽음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풍성한 삶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arclsy). (3) 혹자는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wete, Walvoord). (4) 혹자는 영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rris). 네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에스겔서에서의 물은 성전문지방에서 비롯되나 본절의 생명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임과 동시에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시사한다(21:22).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 생명수가 흐르는 강 좌우에는 '생명 나무'가 있다. 이 생명 나무는 두 가지 배경을 갖고 있다. (1)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따 먹을 수 없게 된 생명 나무를 가리킨다(창 3:22). 이 경우 에덴 동산에서는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그것이 회복되어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 에스겔의 환상에 보인 성전에서 나와 흐르는 강가에 있는 각종 실과 나무를 가리킨다(겔 47:12). 이러한 두 가지 배경을 가진 생명 나무는 앞절의 생명수와 같이 영생을 나타내는 상징이다(Morris).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 본문은 겔 47;12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는 문자적인 의미의 열매가 풍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나무의 생명력이 왕성하여 영생을 의미하는 실과가 풍성함을 시사한다(Johnson, Morris, Mounce). 왜냐하면 그곳에는 해와 달이 없고 대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빛이 되시므로 달마다 지속적으로 열리는 실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다'는 겔 47:12을 반영한다. 그러나 에스겔서에서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강조하는 반면 본문에서는 잎사귀 자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에서 치유할 수 있는 잎사귀가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새 예루살렘에 질병과 고통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나무에 참여하면 전혀 고통이나 부족함이나 질병이 없는 완전함을 누리는 것을 시사한다(Mounce, Ladd). 즉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여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났음을 암시한다(마 11:29;롬 8:12, 19-23;갈 2:19).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 '저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데마'(* )는 저주를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에서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창 3:14-20의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었음을 나타내며 동시에 슥 14:11의 성취이다.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함께 임재해 주심으로 그 관계가 회복되고 더이상 저주를 받지 않게 된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이며 둘째는 어린양이고, 셋째는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이다. 세 가지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그'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토'(* )는 단수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Beasley-Murray). 한편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수신'(* )은 예배 행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모든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예배하며 경배함을 시사한다(Ladd, Johnson, Morris).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을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심지어 모세에게도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출 33:20, 23).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대면한 것이 곧 하나님을 대면한 것이었다(요 14:7, 9;17:3).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된다. 한편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짐승의 표를 이마에 받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13:16). 여기서 이마에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 예루살렘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소유가 되며 그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3:12, Mounce, Morris, Ladd).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 본문은 21:23, 25의 반복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이상 밤이 존재하지 않는 낮이 계속된다(슥 14:7). 왜냐하면 그곳을 등불이나 햇빛에 의해서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하나님 자신이 그곳의 빛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원한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영원한 영과의 빛이 비취심을 시사한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궁극적인 축복이다. 이것은 3:21에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자유와 권위를 갖게 될 것을 시사한다(마 20:25-27).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 본문은 19:9을 반영한다. '이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는 1-5절까지의 내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본서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서 내용에 대한 확증을 시사한다(Swete, Beasley-Murray).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은 본서에 나타난 계시의 주체이다. 여기서 '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톤'(* )은 복수로서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영들, 즉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본서의 내용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모든 시대, 즉 신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영감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기토록 하셨다. 한편 '속히 될 일'은 계시의 내용을 가리킨다. 이것은 1:1의 반복으로 시간상으로 곧 이루어질 내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렀을 때 지체없이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언의 내용은 1:1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천사를 통해서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졌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 '내가 속히 오리니'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반복이다(2;16;3:11). 본절의 '속히'는 앞절의 '속히'와 동일한 의미로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오실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후반절에서 언급할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최대의 응답이다. 한편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은 본서에 언급된 일곱 가지 복 중 여섯째 복이다. 이것은 첫째 복을 언급하고 있는 1:3의 반복으로 예언의 말씀을 곧게 붙잡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고난 가운데 인내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옆드렸더라 - '보고 들은 나 요한'은 요한 자신이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예언의 내용들이 황홀경이나 어떤 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시사한다(Mounce). 한편 요한이 천사를 경배하려는 행동은 앞서 19:10에서도 진술된 바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계시를 전달받는 요한의 겸손한 자세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계시를 받을만큼 높은 영적 능력을 소유한 요한 자신도 유일하게 경배를 받을 대상인 하나님대신에 좋은 것 그 자체를 경배하려는 미묘한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웠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hnson). (3) 혹자는 당시 흔히 있었던 천사 숭배가 잘못된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이러한 세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22: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 본문은 19:10의 반복이다. 천사는 요한의 경배 행위를 제지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강조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라고 권면한다. 19:10에서는 천사가 자신을 '요한과 예수의 증거를 받은 형제들'과 동일시하나 본절에서는 '요한과 선지자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천사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과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 즉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기에 설사 천사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여 준다 할지라도 그는 결코 경배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계시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경배 대상이 된다.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 '인봉하지 말라'는 10:4에서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사 8:16;단 8:26;12:4, 9).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해서 혹자는 죄인들이 더이상 구원을 얻을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Swete) 재림의 때가 가까워 더 많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함임을 나타낸다. 그 명령은 이 예언의 말씀을 더이상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는 의미로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교회가 알 필요가 있으며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Johnson, Morris). 한편 '때가 가까우니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본서의 예언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무리, 즉 적그리스도와의 전투를 시사함은 물론 역사의 매순간에 하나님과 사단의 영적 전투로 드러난다. 그러기에 '때가 가까우니라'는 재림의 임박성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대성을 암시한다.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 혹자는 본절이 더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Charles, Swete). 그러나 17절에서 회개의 초청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본절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Beasley-Murray, Ladd). 본절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과 행위대로 열매를 거두게 됨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본절은 지금 이때에 회개해야 함을 강조한다(Morris, Mounce).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는 7절의 반복이다(3;11). 이와 같이 악한 자와 의로운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시는 것과 연결된 재림은 사 40:10의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는 권능의 손을 휘둘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됨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한편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을 가리킨다. 이처럼 행위에 근거한 판단이나 심판은 성경 전체에서 자주 나타난다(2:23;잠 22:12;렘 17:10;롬 2:6;벧전 1:17). 이것은 마지막 백보좌 심판을 묘사할 때에도 (20:13)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본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상'(* ,미스도스)은 많은 핍박과 고통 가운데서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믿음을 인내로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13:10;14:12, Ladd). 의로운 자에 대한 보상은 상대적으로 악한 자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를 추종하고 따른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나 짐승과 사단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만을 가져다 준다.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이 칭호는 하나님의 칭호이나(1:8;21:6) 본절에서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칭호로 나타난다(1:17;2:8). 이 칭호는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는 심판을 하시는 심판자로서의 권위와 능력의 근거를 시사한다. 본절에 나타난 세 가지 표현, 즉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그리고 '시작과 끝'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주로서 완전한 심판자가 되심을 시사한다(1:8, 17;2:8;21:6 주석 참조).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 본문은 본서에 나타난 일곱 가지 복 중 마지막 복에 대한 묘사이다(7절;1;3;14:13;16:15;19:9;20:6). 두루마기를 빠는 상징은 이미 7:14에서 언급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옷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나낸다. 두루마기를 씻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생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영광을 공유하는 것이다. 특별히 7:14에서 부정 과거 시제가 사용되어 역사적인 십자가 상의 구속 사역에 참여함을 시사한 반면 본문의 '빠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뤼논테스'(* )는 현재 시제로 지속저인 행위를 나타낸다. 즉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요 13:10) 핍박과 환난 가운데 서도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며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함을 시사한다(요일 1:7, Morris, Ladd, Mounce).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본문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복에 대한 묘사이다. 여기서 '생명 나무'는 영생에의 참여를 나타내며 '성에 들어갈 권세'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들어갈 수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의 참여를 가리킨다. 즉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에게만 충성하여 그의 고난과 죽음에 기꺼이 동참하는 자들, 즉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속하여 영생을 누리게 된다.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 '개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부류의 사람들, 즉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이미 21:8에서 언급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자들의 명단에 있는 자들과 동일하며 더욱이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낸다'는 것은 그들이 미혹하여 속이는 자인 사단과 근본이 동일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임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자들의 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개들'은 성경에서 더럽고 악한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 표현이다. 신 23:18에서는 남창을, 마 15:26에서는 이방인을, 빌 3:2, 3에서는 유대인의 율법을 강요한는 자들을 가리킬때 사용되어 이 '개들'이 하나님의 뜻과 통치하심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킴을 시사한다. '개들'과 불못에 들어갈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두루마기를 빨아 구속에 참여한 자들과는 달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이다(20:13-15). 한편 혹자는 본절에서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이미 현재에 결정된 사실로 이해한다(Caird). 그러나 이것을 현재 사실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14절에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미래에 그 복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아 본절도 미래에 성취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Johnson, Mounce, Ladd).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 본문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그 신빙성이 분명함을 강조한다. 예언의 말씀은 그리스도에게서 사자 곧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그리고 요한이 교회들에게 증거한 것이다(1:1). 여기서 '너희에게'로 번역된 헬라어 '휘민'(* )은 복수로 1:1에서와 같이 요한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요한을 비롯한 모든 구속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향한 예언이다. 이 사실은 본서 내용이 심판을 강조하기 위하여 전하여진 예언이 아니라 교회로 환나과 핍박 가운데 온전히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할 수 있도록 위로와 권면의 내용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는 5:5의 반복이다. 이것은 사11:1, 10에 진술된 약속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집안에서 태어나 구약을 성취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이심을 시사한다(마 1:1;9:27;15:22;21:9;롬 1:3;딤후 2:8 주석 참조). 한편 '광명한 새벽별'은 민 24:17을 반영한다. 민수기에 언급된 '야곱에서 나온 한 별'은 사실상 다윗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상반절의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와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지칭한다(Bruce, Mounce).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유일한 주이시며 그의 메시야적 통치를 통해 죄로 어두운 세상을 물리치고 오직 의와 평강만으로 다스리는 종말론적인 새 시대의 여명이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원하시고 재림하셔서 심판하심으로 사단과 짐승의 핍박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던 어둠을 물리치시고 새로은 시대의 빛을 가져다 주신다(Beasley-Murray, Ladd, Morris, Beckwith).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 '성령과 신부'는 한 목소리로 초청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성령'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며(19:10),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가리킨다(19:7). 성령은 교회에게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도록 영감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나 전도의 과정 속에서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사람들의 양심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며 증언하신다(요 16:8-11). 그러기에 성령과 교회의 증거는 한 가지이며, 둘이 연합하여 오직 예수에 대해 세상에 선포하며 증거하게 된다(Beasley-Murray). 성령과 교회가 연합하여 행하는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본문에서는 네번의 초청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앞의 두 가지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뒤의 두 가지 초청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에의 초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본문의 초청 전체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한다(Johnson, Mounce). 그러나 이 주장은 문맥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본문에 나타난 네 번의 초청 중에서 뒤에 나타난 두 가지 초청에 비추어 전반부의 두 가지 초청을 해석하여 네 가지 초청 전체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에로의 초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Ladd, Morris, Beasley-Murray). 여기서 본문에 나타난 세 번의 '오라'는 현재 시제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더이상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초청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적인 초청의 말씀을 듣고 갈급하여 생명수를 마시기를 원하는 자들은 무료로 생명수를 공급받아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1절;21:6;사 55:1;요 4;14;7:37, 38).

=====22:18,19
 요한은 본서를 마무리하면서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요한은 이 경고를 통해서 본서의 내용이 자신의 상상이나 꿈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임을 밝힐 뿐만 아니라 예언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신 4:2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 자신에게 전하여 준 계시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확증을 강조하는 진술 방법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 '듣는 각인에게'는 1:3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본서가 수신자들 공동체 내에서 크게 읽혀져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질 것을 시사한다. 함편 요한은 본문에서 예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본서 이외에 어떠한 것이라도 더할 경우에 대해 진술한다. '기록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그람메나스'(* )는 완료 시제로 이미 완전히 기록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더이상 가감할 것이 없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요한은 말씀에 '더한 자들'에게 모든 재앙이 '더하여질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통해 완전한 본서의 예언을 변절시키기 위해 더하는 자들에게 내릴 심판의 엄중함을 경고한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본문은 앞절과는 대조적으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는 경우에 대한 묘사이다. 본문 역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에게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하는 축복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사용하고 있다.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은 구속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서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에서 제하여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유황 불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본문은 본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번째 확증이며(7, 12절) 동시에 그 재림의 확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나타낸다. 본서의 마지막에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준다. 한편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한다(Morris). 이것은 고전 16:22에 나타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 마라나 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마라나 다'는 아람어 '마라나타'(* )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낸다.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본서 전체를 매듭짓는 본절의 축복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흔한 결론이 아니라 할지라도, 본서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회중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서신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1:4). '모든 자들에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판톤'(* )에 대해서 혹자는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나(Metzger)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Swete, Beasley-Murray).

 

 

제 8막 제 3장 새로와진 하나님의 세상
(계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22: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여기에서 생명수의 솟아 오름은 요엘3:16,에스겔47:l-9,스가랴14:8등의 성구에서 등장하는 내용이며,창세기에서 처음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되었던 그 모습에서 다시 우리의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 만물은 새롭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21:4,5에서 말씀하였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왜 만물은 새롭게 되어야 하는가? 크제 두가지 이유에서 생각하여야 한다. 먼저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에덴동산은 창조의 목적을 향한 그 출발점에 불과하기에 그 완성에로의 새롭게 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분이 원하시는 땅의 충만함이 이르렀기에 이제는 단순히 한 동산이 아니라 만물이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사단의 시험과 이로 인해 인류에게 내린 저주로 열방이 치료를 받아야 하며,하나님의 원래 의도하신대로의 새롭게 됨이 필요한 것이다.

l.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과 생의 원리가 된다.
(계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수의 내용은 구약에서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다(시46:5,36:10,렘 2:13).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생명수의 강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나온다(겔47:l-). 그리고 그것이 만국을 소성케 하였다(겔47:12). 이는 결국 에덴에서의 강의 모습에서 기원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새로운 창조의 세계에서의 땅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진 모습이라는 점이다. 창세기3:24에서 단절되었던 그 생명나무(창2:9)가 이제 다시 회복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이 본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글자대로 해석하면 보좌에서 물이 나오면 어떻게 보좌가 젖어서 앉아 있을 수 있으며, 그 강물이 강이 아니라 길 가운데로 흐르면 사람들이 몰살할 것이 아닌가? 이 본문은 그러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본질적으로 강조가 되는 것은 "생명수", "생명나무","맺히고...소성하기 위하여"라는 말에서 계속적으로 강조되는 내용은 바로 참된 생명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생명이 어디서부터 주어지며,그 생명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의 생명수나 생명나무의 열매를 많이 먹어서 영생한다는 말이 아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나타나는 내용은 새로운 세계에 가서도 우리의 참된 생명은 우리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어디에 생명이 있는가? 온 인류에게 넘쳐나는 생명은 바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과와 생명수로 상징된 생명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 생명의 근원은 우리에게 성부 하나님이지만 역시 그곳에 가서도 우리가 성부 하나님의 생명을 어린양의 보좌를 통하여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양의 보좌를 통하여 생명수의 강으로 역사하는 그 생명의 원리는 바로 성령인 것이다(요4:14,7:37-39). 이제 새로운 세계에서는 그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시사 우리에게 참된 생명의 원리가 되시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생명의 풍성함이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삼위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제 삶의 그 원리가 생명자체이신 하나님이기에 더 이상 파멸이나 죽음의 문제가 등장을 하지 못하며,모든 것들도 생명으로 풍성하게
되는 것이다.

2.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회복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22: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그 사명을 버리고 타락하였을 때 저주가 임하였다. 그러나 이제 저주의 문제는 더 이상 없다(슥14:11).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문제를 해결받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이지만 이제 새로운 세계가 임하는 그때에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이 되어지는 것이다.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을 시키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우리들의 삶의 중심에 있게 된다.

2]완전한 제사장의 삶을 산다.
 하나님의 형상(빌2:7-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다)으로서 온전히 그를 섬긴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완전히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을 섬겨야하는 참된 제사장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다.

3]완전한 선지자의 삶을 산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시며,우리는 그 하나님의 닮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우리 이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l제 더 이상 선지자를 보내시거나 꿈이나 환상의 방법이 필요가 없게된다. 친히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며,그분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만나지만 내세에서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을 보는 삶이며 그 뜻을 온전히 깨닫는 것이다(시7:15,42:3,고전13:12,고후3:18).

4]완전한 왕으로서의 삶을 산다.
 계속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영원한 왕노릇인 것이다.깨달은 그 뜻이 모든 영역을 통하여서 의롭게 적용이 되는 삶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나라의 참된 왕의 의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이미 앞에서 본 첫번째 관계인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에 근거한 사실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으로 접어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여기서부터가 요한계시록의 결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제 7막의마지막 부분에서 보았듯이 이 부분에서도 역시 제 7장의 마지막 부분의 확대된 내용이 나오고 있기에 그 내용을 정리하려고 한다.

제 8막 제 4장 정당함이 입증된 하나님의 말씀
(계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계22: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계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l.정당한 하나님의 말씀
1]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 말씀으로 틀림없이 진실인 것이다.
 이것은 묵시문학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 말은 진실되고 참된지라"(3:14,19:9,21:5,단8:26)고 표현한다.

2]말씀의 출처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고 하여서 이 계시를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책임지고 계심을 나타낸다. 이 말씀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의 마지막 왕관이 될 것이다.

3]말씀의 내용
 "속히 될 일"이며 그 의미에 대하여서는 1:1을 살피라. 그분은 친히 다시 "속히 오시리라"고 하신다(2:16,3:11,12:20,22:7,12,20). 중요한 문제는 속히 오신다는 말은 항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말씀의 전달순서
 하나님-그리스도-천사-요한-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순서로 되어 있어서 그 전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선언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5]말씀의 요구
 전체적으로 요한계시록을 끝내는 부분에서까지도 강조점은 어떤 의미를 알거나 미래의 사건을 알리려는 내용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도록 하려는 그 의도를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과 삶이 바뀌어야 한다.

2.천사의 증언
 19:10의 모습의 반복이 되고있다. 천사의 전하여 주는 그 놀라운 내용에 요한은 그 계시의 내용의 중심이시며, 유일하게 경배를 받으실 삼위 하나님보다는, 그 계시를 전달하는 천사에게 경배하려는 실수를 하게 된다.  여기서 강조하는 내용은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려는 것이다.
 천사는 스스로 자신이 계시를 수여하는 자나 계시의 내용이 아니라 단순히 계시를 전달하는 자에 불과하기에 경배받을 자격이 없음을 기억하게 한다(얼마나 많은 전달자들이 본질이신 그리스도보다는 자신이 섬김을 받기를 원하는가?].

3.알려진 계시
 그러면 이 말씀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인봉하지 말라고 한다. 그때가 가까운 까닭이다(아니 이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이 되었고 그 완성도 속히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이 종말론적인 완성의 기다림과 고대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제 8막 제 5장 완성된 하나님의 사명
(계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여기서는 알파와 오메가되시는 그리스도(13)깨서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시키는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창조와 구속의 모든 사실의 마지막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l.심판의 선언
 11절의 의미가 다음의 어느 것인가?
①권고인가?-악하게 되라,선하게 되라
②허락인가-너는 악하도록 허락되었다, 너는 선하도록 허락되었다
③선포인가?
 이 문장은 선포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마치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는 선포에 따라서 실재로 이루어졌듯이 이는 이제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선과 악에 고정되는 때가 있다는 심판의 선언인 것이다(히9:27).
 그러므로 항상 그 마지막 때가 오기전에 주어진 기회에 깨어서 날마다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이기에 그날에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는 완성을 누리게 될 것이다.

2.현재를 통하여 최종적인 상태를 준비하라!
 그 날에 운명이 고정되는 선포의 때를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여기에 다시 신앙의 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날에 상급이 결정되어진다(시28:4,62:13,렘17:10,특히 사40:10참조).
 더욱 증요한 사실은 그 행위의 알파와 오메가도 역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로 시작하여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결론지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분이 창조주 및 세상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날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고전3:10-15).

3.그날의 결정기준
(계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그러면 마지막 완성의 날에 그 성에 속한자가 누구이며,성밖에 추방될 자들이 누구인가?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서 행위를 중심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일부 사본에는 "그의 계명대로 행하는 사람" )이라고 한다. 이는 19:8에서 나타나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의롭게 사는 자들을 가리키며,반대로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성밖이란 불 못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면 마지막의 구원의 문제가 행위로 결정이 된다는 말인가? 심판을 받을 자들이 행위에 근거하여서 심판을 받게됨을 20:11-15에서 살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는 어린양의 생명책을 근거하여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들은 매일 신랑을 맞이 할 예복을 깨끗이 빨고 준비하는 자이다. 참으로 구원받은 자는 죄를 미워하며 행위를 조심하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롬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롬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롬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패덕 목록
①은유적 표현-개들:개들이란 21:8의 내용과 비교하여 보면 뒤의 내용은 일치하므로 앞 부분에 나오는 비겁한 자,신실하지 못한자,가증한 자와 상응하며 가증한 자란 묵시적인 기록에서 신성한 것을 모독하는 자들로 개들이란 바로 거짓교사들로 보인다(빌3:2,벧후2:22의 개들이란 표현은 복음을 경멸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②가장 무서운 죄들- 술객,행음자들,우상숭배자들
③죄의 그 근원- 거짓말 하는 자들(거짓을 사랑하고 행하는 자들):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요한에게서는 독특하다. 요한일서1:6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과 비교하고 있으며,하나님의 사랑 이외에 그 근거를 두고있는 모든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등장한다.

제 8막 제 6장 하나님의 마지막 축복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l.예수의 자증=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우리는 처음부터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보았다(1:1).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시면서 에수님은 교회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1]다윗의 뿌리요 다윗의 자손이 되신다(사11:l0).
 영적으로는 그분에게서 다윗이 나셨으며,혈통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언약의 나라인 새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이시며,주님이시다. 그 나라는 영원하여 예수는 바로 그 영원한 나라의 왕이시다.

2]광명한 새벽별이시다(민24:17,사9:l,60:1).
 광명한 새벽별이 떠오르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말인데(벧후1:19) 놀라운 사실은 그리스도의 오심은 단순히 새벽별 같은 사건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즉 그것은 아직 여명에 불과하고 그 다음에 주어지는 영광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광을 현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2.친히 백성의 귀를 여시는 하나님
 이제 친히오시는 그 광명한 새벽별에 대한 기대가 더 이상 견딜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 날은 신부가 완성이 되는 날이 아닌가? 그래서 성령과 신부가 "오라!"(백성을 초청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이다)고 응답한다.
 즉 성자의 오심에 대하여서 성령이 오라고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과 함께 신부도 오라고 부른다. 여기의 신부는 바로 교회이며 성령께서 교회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신랑이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령이 날마다 교회가 이를 기다리며 기도하게 만들고 친히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회는 외친다. 아직도 목말라 하지 않는 자,원하지 않는자들을 향하여 목말라하게 만들며 재림을 기다리며 열망하는 자가 되도록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새벽 다음의 영광을 목말라하며 바라고 있는가? 그러면 생명수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은 친히 백성의 눈각 귀를 열어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게 만든다.

제 8막 제 7장 하나님의 마지막 저주
(계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부분은 구약의 언약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어길때에 내려지는 저주에 대하여서 "아멘"함으로 그 말씀을 신실히 지킬것을 나타내는 것에 비길 수 있으며,본서가 완전한 뜻임을 보증하는 것이다(신4:2,13:l,잠30:6).
 지금까지 우리가 살핀대로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성경전체의 내용의 요약이며,그 마지막 집약과 완성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며, 그것을 소망하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삶이라면(16,17)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다른 성경의 부분들을 통하여 더 풍성하게 해석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본질의 문제에서 이것들에 어떤 내용을 더하거나 빼면 복음을 변절시키는 것이며 저는 복음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된다는 하나님의 참된 경고이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가 살핀 내용을 볼 때 요한계시록은 독특한 표현방법으로 되어있지만 전혀 다른 어떤 내용을 주시기 위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면 왜 우리들에게 이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인가?
 이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인 것이다. 너무나 자주 식어지기 쉬운 복음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 일으키고,영혼을 일깨캐우며,참된 소망가운데 정결케 살도록 하기 위하여 사랑의 보증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하여 이 부분을 끝내고 있다.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l.그리스도께서 모든 증거의 시작이며 완성이시다.
2.그분은 그 완성을 위하여 진실로 속히 오실 것이다.
 교회는 이 약속을 즐거움으로 바라며 기다린다. 특별히 20절은 l:7의 "진실로 그러하리라 아멘"이라는 말의 해석이며, 성만찬의 기원인 마라나다로 화답하고 있다.
3.그는 우리에게 은혜를 부여하시는 분이시다.
 요한은 마지막 인사로 전체를 하나의 내용을 묶으면서 자신이 그 전체의 내용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래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것은 모든 사건의 최종의 완성인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에 있는 것이다.

맺는 말-현세대를 위한 요한계시록의 의미
 요한계시록을 끝내면서 우리가 현 세대를 의미있게 하는 네가지 방법을 생각함으로 마치자.

1.요한계시록은 우리 역사에 대한 신적 평가를 제시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만약에 안다고 할지라도 그 적용을 이해한 수가 없다. 요한계시록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나간 역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수 많은 역사의 사건속에서 악하고 강하게 보이는 나라들이 영원히 번성하며 흥할것만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저들이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겨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속에서 계속적으로 권고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 속에서 초대교회의 제1차적인 독자들이 겪고있던 로마의 박해도 사라져갔고, 현대의 독재국가나 공산주의나 다른 여러가지 모든 사건들의 모습도 동시에 보고있는 것이다. 저들이 열심히 부르짖고 아우성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교회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며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2.요한계시록은 미래를 명백한 차원에서 예언한다.
 요한계시록은 일반적인 역사의 흐름뿐 만 아니라 특별히 앞으로의 역사의 방향과 궁극적인 구속사의 성취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지나옴과 앞으로의 궁극적인 성취의 측면에서 다음의 몇사기 특징을 살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역사는 하나님의 여러 목적들을 이루는 작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들을 역사속에서 나타내셨다. 흔히 세속역사와 구속의 역사를 나누어서 설명을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내용은 역사 전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바로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2]하나님은 역사의 주제이시다.
 역사를 손에 움켜쥐고 인도하시며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살핀대로 요한계시록의 각 막에서 언제나 하나님님의 주제되심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3]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기독교 역사의 가장 중심이며,독특하며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역사의 본질적인 개념이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과거의 일이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결정되어진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중심성은 요한계시록 제5장이 상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5:9).

4]새로운 세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이미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즉 구약의 주의 날이 이미 이른 것이며 그속에서 성도들은 새로운 세대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 완성은 미래이지만 사단의 세력은 이미 패배하였고, 성도들은 그의 신부로 정혼한 것이다.

5]역사의 모든 것은 목표를 향하여 움직여지고 있다-새하늘과 새땅을 향하여
 역사의 의미가 단순히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간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라 우주적인 차원에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요한계시록은 기독교 사상의 구조를 신학적으로 기여한다.
 역사의 그러한 구조는 기독교 사상의 구조를 신학적으로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 그  사실은 아마도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1]현재의 역사적 판단은 모두가 잠정적이다.
 마지막 심판이 역사를 판단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판단이지 그 이전의 모든 판단은 현상에 절대적으로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하는 흑백논리로 설명을 하려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판단들은 잠정적인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를 잘 판단허여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2]우리는 "이미"와 "아직"사이에 계속되는 긴장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구약이 말하는 주의 날에 살고 있져만(이미), 그 모든 것이 완성은 되지 않은 상태이다(아직). 새로운 세대를 맛보고 있지만 죄와 고난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최후의 날까지 이러한 모호성은 계속될 것이다.

3]이 긴장은 역사속에서 두줄기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은 그리스도의 초림 이래로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과 병행하여서 악의 세력의 반항과 거세어져가는 도전을 보게되는 것이다. 이 사실속에서 선과 악의 긴장과 싸움의 신학의 구조를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요한계시록은 매일의 생활에 대한 영적인 자극을 제공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특징들은 단순히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록은 우리로 하여금 지키며 살게 하려는 목적과 의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끝없는 영적
인 자극을 주고 있다.

1]역사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소망으로 살게한다.
 역사의 주재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역사의 중심이 그리스도여서 그 해석은 복음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궁극적인 결과는 악이 아니라 선이며, 우주를 포함하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구속격인 목적과 역사를 향하여 하나님의 의도는 이루어지고 만다는 사실은 현재의 삶 속에서 성도들이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주며 기쁨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2]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만든다.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의 주도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의 의미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우리의 승리도 그분 안에 있고, 우리의 거룩과 완성도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는 것이 아닌가?

3]삶의 적극성을 가지게 만든다.
 은혜의 삶이란 요한계시록에서 계속적으로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도의 옳은 행실 바로 그 자체가 은혜이며(19:8), 주어진 것을 끝까지 지킬것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하여야 한다. 이는 성도들이 순간 순간을 살면서 늘 조심하게 만들며,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의 뜻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은혜의 삶이기 때문이다. 은혜란 우리로 삶속에서 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4]전적인 헌신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아마도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갈등의 문제중에 하나가 고난의 문제일 것이다. 특별히 복이나 선포하면서 부흥을 추구하는 현실속에서 고난은 절대로 좋은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고난은 없어야 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물론 자신의 허물이나 죄로 인한 고난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인됨의 증거이며, 그로 인하여 순교자의 숫자가 차는 그날에 주의 강림으로 인한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고난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소화하여서 헌신하면서 살게하며, 순교의 순간에도 소망과 기쁨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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