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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 11:7에서는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다. 이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에 대한 환상은 17:9-13과 단 7장을 배경으로 한다. 다니엘에서 나오는 짐승들은 역사상 일어났던 지상의 제국들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각각의 나라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적인 정붇들마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바다'는 모든 나라들과 그 정부를 총칭한 것으로 볼 수있다(17:15). 한편 '바다'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짐승은 구약 성경의 리워야단을 연상시킨다(시 47:13, 14). 구약성경에서 인용된 리워야단과 라합, 뱀 등의 짐승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애굽과 앗수르 등의 열강들을 의미한다(사 27:1;51:9;겔 32:6-8).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본절의 짐승은 당시 교회를 핍박하던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단순히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기 보다는 인류 역사상 정치 제도를 통해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Johnson, Hendriksen).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본문에서 나타난 짐승들의 모습은 12:3에 나오는 용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단지 차이점은 본문의 짐승들은 뿔들에 면류관이 얹혀 있는 반면에 12:3의 용에게는 머리에 면류관이 씌워 있다는 것 뿐이다. '열개의 뿔'은 단 7:7을 반영한 것으로 다니엘서에서 이뿔들이 열 왕(王)을 상징하듯이 본문의 열 뿔도 열 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17:12). 이러한 열뿔이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왕권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17:12 Mounce). 또한 '일곱 개의 머리'는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용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12:3) 짐승의 권세가 용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시사한다(13:4). 한편 '참람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미아스'(* )는 '훼방하는' 또는 '모독하는'이란 의미로 혹자는 이것이 로마 황제들이 자신들을 신격화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de, Hengstenberg). 즉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한자')는 자신을 신으로 공경해 주기를 원하였으며 네로는 주화에다가 자신을 세상의 구세주로 새겨넣었으며 도미티안은 로마 인들로부터 "우리의 주(主)이시며 하나님"(Dominus et Deus noster)으로 불리운 사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이 단순히 로마 황제들만을 상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것으로 강력한 권세를 자랑하며 종말에 가
서야 그 실체를 드러낼 악의 세력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Ladd, Johnson, Mounce, Hendriksen). 요컨대 이런 세력은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에 대한 망언을 일삼는다.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 본문은 짐승의 형상에 대한 묘사이다. 짐승의 형상은 단 7장에 언급된 세 마리의 짐승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즉 '표범과 비슷하고'는 다니엘이 본 세번째 짐승과 같고, '곰의 발'은 두번째 짐승을 나타내며 '사자의 입'은 첫번째 짐승을 나타낸다. 이러한 짐승의 모습은 그 짐승의 흉포스러운 성격과 외형을 나타낸다. '표범'은 심속함과 무자비함을, '곰'은 힘과 끈기를, '사자'는 권세와 지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요한이 본 짐승이 전에 있던 어떠한 나라나 권력보다도 더욱 무서운 권력을 소유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 세상의 모든 제국들임을 시사한다(Alford, Hughes).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 짐승은 용, 즉 사단으로부터 그의 권세를 부여받았다. 여기서 용과 짐승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용은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고 땅으로 쫓겨났었다(12:9). 지상으로 쫓겨난 용은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짐승으로 비유된 세상 권력에게 양도하여 그것을 도구로 삼아 교회와 성도들을 조직적으로 핍박하게 될 것이다(엡 6:10, 12).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라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 상처를 입은 머리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이 머리가 네로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Weiss, Moffatt). 네로는 A.D.64년에 교회를 가혹하게 핍박하였다. 폭군 네로는 그의 통치 말기에 실정으로 말미암아 근위대와 원로원에서 쫓겨나 치욕적인 죽음을 강요받았는데, 그는 그 죽음을 거부하고 68년 6월에 교외 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그가 너무도 극악 무도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사실로 믿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장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였다. 즉 그는 동방의 파르디아(Parthia)로 갔다가 다시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왕권을 회복하러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를 '네로 재현설'이라 하는데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본문의 상한 머리 하나가 네로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가톨릭 교회의 초기 교황들, 즉 그레고리 7세에서 이노센트 3세까지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ngel). (3) 혹자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가 머리의 회복이 아니라 짐승의 회복으로 상처의 회복은 네로의 죽음 이후 혼란되었던 로마를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 A.D. 69-79)이 바로잡아 질서를 회복한 사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본문이 역사적인 사실과는 무관하여 단지 짐승이 그전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unce). (4) 혹자는 일곱 머리를 어떤 개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계속해서 나타나는 적그리스도적인 정부들이라고 주장한다(Hendriksen). 예를 들어 교회를 극심하게 박해하던 네로 황제가 죽은 뒤 다시 도미티안 황제가 교회를 핍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은 짐승이 다시 회복된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본문은 비록 사단의 세력이 한순간 약해지고 치명타를 입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끝까지 성도들과 교회들을 핍박하여 미혹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13:4
 용이 짐승에세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 세상 권력을 상징하는 짐승을 경배하며 짐승에게 권력을 부여한 용을 경배하는 것은 세상 권력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며 그에게 권력을 부여한 사단, 즉 용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로마 제국과 같이 세상 권력을 신격화 하는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듯하다(Cullmann). 한편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는 하나님에 대한 찬미 구절인 출 15:11의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시 35:10;113:5)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짐승을 하나님과 비교한 불경스럽고도 참람한 표현이다(Swete). 이제 이 짐승은 인류 전체체게 숭배를 받기 위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로 강한 자임을 과시한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를 당해낼수가 없어 보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그에게 경배한다.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은 단 7:8의 넷째 짐승으로부터 돋아난 뿔에게 주어진 '큰 말하는 입'과 유사하다. '참람된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것을 가리킨다(6절;단 7:25;11:36). 한편 '마흔 두 달'은 짐승이 교회를 핍박하는 기간을 상징한다(11:2, 3;12:6, 13, Mounce, Johnson). 이때 짐승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하나니을 대적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게 된다(15절 ;11:2 ,9). 짐승이 이러한 권한은 용에게서 주어진다. '받으니라'는 짐승이 행하는 권세가 용에게서 받은 것으로 용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것은 모든 권세와 주인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에 주어진 것임을 암시한다.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 '훼방하되'의 헬라어 '에이스 블라스페미아스'(* )는 '신성을 모독하기 위하여'라는 의미로 짐승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하여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시사한다(살후 2:4).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러한 행위들은 역사속에서 자주 나타났다. 즉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신성 모독이나(단 7:25;11:36), 로마의 황제들이 자신들을 신격화한 사건들은 요한에게 있어서 적그리스도적인 일이었으며 지극히 참담한 행위였다(Morris). 이러한 행위들은 당시 뿐만 아니라 역사상 사단에게 종속된 수많은 짐승들에 의해서 계속 자행되고 있다. 한편 '하늘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와 성도들을 가리킨다(Morris, Ladd). 성도들은 하늘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으며(빌 3:20)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않아 있다(엡 2:6;골 3:1). 하나님을 따르고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 역시 사단과 짐승이 훼방하는 대상이다.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 '성도들과 싸워'는 사단과 성도의 물리적인 전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을 의미한다(2:16;11:7;12:7, 17;16:14;17:14;20:8;고후 10:4). 또한 '이기게 되고'는 근본적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신앙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으로 성도들을 핍박하여 고난과 수교를 당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마 10:28). 짐승은 용으로부터 모든 족속, 백성, 방언 및 나라를 다스리는 우주적인 권세를 부여받는다. 이것은 사단의 세계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단은 우주를 지배하는 권세를 받아 메시야처럼 군림하려고 시도한다(눅 4;4-7).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일시적으로는 짐승의 세계를 지배하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성도들이 승리하며 짐승은 패배하여 멸망당하게 된다(11:7).
 
=====13:8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생명책'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출 32;32, 33에서 모세가 금신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할 때 자신의 이름을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버려 달라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빌 4:3) 본서에서는 여섯 번 나타난다3:5;13:8;17:8;20:12, 15;21:27). 본절과 21:27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으로 표현되어 있어 어린양의 죽음이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함을 암시하고 있다(5:9, 10). 한편 헬라어 문법상 '창세 이후로'는 '녹명되지 못한'을 수식할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한'을 수식할 수도 있다. (1) '녹명되지 못한'을 수식할 경우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창세때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 즉 하나님의 예정을 강조하게 된다. 이 경우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보호되고 있음을 암시한다(8절; 17:8;벧전 1:20). (2) '죽임을 당한'을 수식할 경우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임을 강조하게 된다. 헬라어 문법상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나 내용상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못할 경우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Johnson, Mounce).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역사하신 구속사역에 참여하고 응답하는 자들, 즉 성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결국 짐승의 추종자가 되어 짐승과 그에게 권세를 부여한 용을 경배하게 된다.
 
=====13:9
 누구든지 귀가 있으면 들을지어다 - 본문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며(2:7, 11, 17, 29;3:6, 13, 22) 예수께서도 동일한 어구를 사용하신 적이 있다(마 11:15;막 4:9). 요한은 본절을 진술함으로써 앞으로 언급하게 될 내용에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 본절의 '사로잡는 자는...칼에 죽으리니'는 렘 15:2;43:11의 반영으로 그 의미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칼에 죽이리니'를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박해자들에 대한 진술로 이해한다(Weiss, Clarke). (2) 혹자는 '사로잡는 자'와 '칼로 죽이는 자'를 박해를 당하는 성도의 행위로 해석하되 전자는 성도가 사로잡혀야 함을 암시하고 후자는 박해자들에 대해 성도들이 칼로 대적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나타내는 경고로 해석한다(Morris, Mounce, Ladd). (3) 혹자는 '사로잡히게 될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임을 당할 자는 칼에 죽으리니'라고 이해하여 성도들이 사로잡히고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hnson, Charles, Lohmeyer, Moffatt). 이들 세 가지 견해 중 두번째와 세번째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9절과 본절 하반절이 성도의 인내와 충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 사로잡히거나 칼에 의해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기억하고 저항하지 말고 잘 순종하며 인내해야 한다. 즉 성도들의 고난과 순교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 마지막 환난을 침착하게 견디면서 하나님을 향한 각자
의 인내와 충성심을 표명(表明)해야먈 한다(2:10;3:5, 10;빌 1:28). 그러기 위해서 성도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믿음과 인내이다.

=====13:11
 내가 보매 또 단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 하더라 -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새끼 양처럼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는데' 이는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를 흉내내려는 사단의 음모라고 할 수 있다(8절;5:6;14:1). 이 두번째 짐승이 등장함으로써 사단의 세력은 용, 바다 짐승, 땅의 짐승이라는 삼두체제로 구성된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세상 권세를 가지고 밖으로부터 교회를 핍박한 국가나 정치 체제로 이해되나 본절에서 나타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양의 탈을 쓰고 내적인 방법, 즉 거짓 교리와 이단 사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인간을 우상화하는 인본주의로 교회를 타락시키는 존재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본서의 다른 곳에서 이땅의 짐승을 거짓 선지자라고 일컫고 있기 때문이다(16:13;19:20;20:10).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고 경고하셨다. 한편 '용처럼 말하더라'는 짐승의 실체를 보여 주는 것으로 비록 그가 그리스도처럼 가장할지라도 그 속은 사단의 궤계로 가득차 있으며 용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외부적인 핍박에 대해서 도 인내할 준비를 해야 되지만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같은 내부적 도전에 동요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롬 16:18;고후 11:14).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 용이 자신의 권세를 바다 짐승에게 준 것처럼(4절), 땅의 짐승도 바다 짐승으로 부터 권세를 부여 받는다. 따라서 이 두 짐승은 용, 즉 사단의 도구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들이다(Hughes). 땅의 짐승의 주된 임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3절 주석 참조), 곧 바다 짐승에게 경배케 하는 것이다(14, 15절).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 둘째 짐승은 기적을 흉내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을 섬기도록 미혹한다(막 13:22;살후 2:9). 둘째 짐승이 행하는 이적 가운데 하나는 불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게 하는 것이다.이 이적은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이 내려오게 한일을 암시할 수고 있으며 (왕상 18:38), 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불을 암시할 수도 있다(11:5). 여하튼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사실이 무엇을 가리키든지 간에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용과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막대한 권능을 행하며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이적을 베풀어 사람들을 미혹함을 시사한다(Ladd, Morris, Johnson). 이와 같이 사단과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도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자신들을 숭배하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적을 베풀 수 있다(16:14;19:20;신 13:1-5;마 7:22;24:24).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적 자체가 성령의 증거가 아님을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요 16:13;고후 11:14).
 
=====13:14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마들라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13:8;17:8) 불신자들을 지칭한다(6:10;11:10).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이적들에 현혹되어 그를 추종하게 되며, 거짓 선지자는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3절 주석 참조)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할 것을 추종자들에게 요구한다. 이것은 초역사적인 것으로서 땅에서 올라온 짐승 곧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전 세계적인 우상 숭배를 시사한다(Johnson).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우상이 이적을 행하고 말을 한다는 것은 고대 문헌 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몬 마구스(Simon Magus)는 동상들에게 생명을 준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로마의 종교를 집행하는 제사장들은 마술을 행하고 입을 벌리지 않고 말하는 술법을 사용하여 황제의 동상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하고 권력자들과 야합하며 생활하였다(행 13:6-8;16:16). 그러나 본절에서 언급되는 짐승의 우상이 생기를 얻는 것과 로마의 제사장들이 기만하는 행위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할수록 전 세대에 걸쳐 거짓 선지자들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여(마 24;24)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며 지상의 정부 권력이 사단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더욱 탄압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Hendriksen). 즉 우상에게 '생기'(* , 프뉴마)를 주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과 짐승의 미혹케 하는 행위와 우상 숭배 행위가 활발하여 극에 달함을 암시한다(Johnson).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둘째 짐승은 우상 숭배를 강요할 뿐만 아니라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 여기서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는 수사적인 표현으로서 서로 대조를 이루는 어휘를 열거하여 인류 사회 전반을 나타내고 있다(11:18;19:5, 18;20:12). 한편 '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라그마'(* )는 문서상의 공식적 증거물로 남는 '명각'(銘刻)이나 뱀에 물린 '상처', 황제의 '날인' 또는 주인이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하여 짐승이나 노예에게 찍는 '낙인'등을 가리킬때 쓰는 단어이다. 표는 본서에서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표시하시는 인이며(7:3) 또다른 하나는 본문에서 나타난 짐승의 표이다. 하나님의 인이 하나님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처럼 본문의 짐승의 표도 문자 그대로 몸에 인을 찍어 증명한 표라기 보다는 짐승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인듯하다(Johnson, Ladd). 한편 '오른손'은 신체적 활동을 대표하는 것이며, '이마'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 신분 등을 의미한다(Hendriksen). 즉 '이마'나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전심으로 짐승에게 충성함을 시사한다.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본문은 짐승의 표 대신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제적인 제재가 가해질 것을 가리킨다(Johnson, Mounce). 이처럼 사단은 세상 권력을 가지고 성도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삶의 가장 기본적 단위가 되는 경제 활동까지도 방해하여 성도들의 생활을 위협한다. 이러한 일들은 당시 성도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어서 성도들이 '비방과 환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산업'을 빼앗기기도 하였다(2:9;3;8;롬 15:26;히 10:34).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 짐승의 수인 666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1) 숫자 풀이를 통한 해석이다. 혹자는 '그 수를 세어 보라...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이것이 누구의 이름을 가리키는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Barclay, Abbott, Gunkel). 이러한 해석은 666이 수많은 사람들, 즉 로마 황제 칼리굴라, 트라얀, 배교자 유리안, 반달족, 교황 베네딕트 9세와 바오로 5세, 마호메트, 마틴 루터, 존 칼빈, 그리고 나폴레옹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 중에서도 숫자에 의한 해석법을 취하는 대다수의 학자들은 666이 '네로 황제'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네로 황제의 히브리음이 네론 가이살(NRON KSR)로서 각 철자 자체가 내포하는 숫자, 즉 50 + 200 + 6 + 50 + 100 + 60 + 200을 모두 합치면 666이 된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 666은 아라비아 숫자를 1에서 36까지 합한 수이기도 한데 본서에서 짐승의 활동이 36번 나오고 있다고 지적된도 한다(Abbott, Gunkel). (2)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의 예로서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십사 장로, 십사만 사천 명의 인 맞은 자, 새 예루살렘 성곽의 144규빗 등을 들수 있다. 이와 같이 666은 어떤 사람 이름의 알파벱 숫자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완전수인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 6을 3번 포개 놓은 것으로 이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저주 등을 의미하며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을 상징한다고 본다(Irenaeus, Minear, Newman, Hendriksen, Ladd, Morris, Walvoord, Johnson, Seiss, Gaebelein). 두 가지 견해 중 어느 것이 옳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으나 666을 이름의 암호로 보기보다는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후자의 견해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13,14장의 내용은 12:17의 내용에서부터 다시 시작을 하여야 한다.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어떤 방법으로 싸울 것인가? 그리고 그 도전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는 어떤 방법으로 대응할 것인가? 이 문제는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땅에서 사단이 나타날 때는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며,하나님의 나라도 육신의 눈으로 누구에게나 이해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이다.

 13장에서는 용의 세력이 이 땅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활동하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있다. 그 모습은 두가지 짐승으로 상징적인 방법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제 4막 제 2장 바다에서 나온 짐승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계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계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계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계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계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13: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계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첫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다. 바다는 구약에서 괴물(라합,이루야단,탄닌)이 나오는 곳으로 나타난다(욥26:12,13,시74:13,14,87:4,89:10,사27:l,51:9,겔32:6-8).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바다는 하나님의 대적의 근원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지막 승리의 날에는 바다는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계21:1).

 그러면 이 짐승들의 정체가 무엇이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 문제에서부터 13장의 두 짐승의 의미를 물어야만 한다.
 먼저 짐승과 그의 공모자가 누구냐하는 문제이다. 즉 그들이 실제 인물인가,이니면 어떤 다른 실제냐하는 문제이다. 다음으로 그 짐승의 활동의 때가 이미 지나갔느냐, 아니면 지금도 계속되느냐, 아니면 아직도 미래에 속한 일이냐하는 문제이다.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단순하게 만족한 답을 하기란 불가능하며,동시에 여러가지 견해를 나열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다. 그럼에도 이 짐승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는 전혀 해석이 불가능하기에 그 일부터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답하기 쉬운 문제로부터 답을 하여보자.
 그것은 짐승의 활동기간인데 5절 말씀에 "마흔 두달"이라고 되어있다. 물론 이 기간의 의미에 대하여서 여러가지 견해들이 주어진다. 그러나 앞에서 정리한 대로라면 이기간은 1260일이나 삼년반과 일치하는 기간이니 곧 신약시대 전체를 가리키고 있으며, 이 해석은 11:6의 해석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첫번째 문제도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어렵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즉 모든 신약시대에 적용되어야 할 문제라면 어떤 구체적인 개인이 되기란 어려우며(어쩌면 어떤 개인으로 각 시대마다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인간적인 어떤 원리나 제도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1.첫번째 짐승의 정체는 무엇인가?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여기에 나타난 모습의 구체적인 의미를 붙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단순히 12:3의 용의 모습에서 나온 표현들이다(물론 면류관이 머리가 아니라 뿔에 있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본질적인 차이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표현이 주는 의미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사단의 성격과 일과 똑 같은 사역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머리에 참람한 이름들이 가득한 것은(17:3) 반신적(返神的)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이는 이미 12:17에서 잘 드러난 성격이다.

 그러면 실재적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겠는가?
(계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표범이나 곰, 사자의 모습들은 다니엘7장에 의하면 국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면 첫번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신앙인들을 대적하는 국가의 모습이 된다.
 그러면 문제가 등장한다. 바울(롬13:l-6,딤전2:l,2)이나 베드로(벧전2:13-17)가 국가에 대하여 교훈한 것과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요한의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는 국가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국가속에 있는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더라"고 표현되는 악(사단)의 제도를 가리키고 있는 있는 것이다. 이는 실재적으로 역사적으로 나타난 어떤 형태의  표현이나 묘사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모든 제도 속에 도사리는 사단의 제도임을 알아야 한다.

2.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특정
 주의 깊이 생각하며 살피면서 보아야 할 성격은 모든 제도들 속에 도사리는 다음의 성격들이다.

1]이 짐승의 세력은 역사속에서 계속된다.
(계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머리 하나가 상하였다는 말은 12,14절에 보면 짐승전체가 상처를 입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처(플레게)라는 말은 하늘에서 내린 재앙과 심판을 의미하는 말이다(9:l8,20,ll:6,15:l-, 16:9,21, 18:4,8, 21:9등). 그 재앙에서 세상의 정치적인 제도나 권세는 계속 무너진다. 그러나 아주 망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악한 모습과 제도는 모양을 달리 할는지는 모르나 성격은 같은 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키기 보다는 짐승의 무서운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2]사단의 권세를 가졌다.
(계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용과 짐승이 드디어 음모하는 내용이 등장을 한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사람으로 저들을 따르고 믿게 함으로 진정한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자신들을 믿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연결은 세상 권력을 신격화하는 행위는 바로 사단을 숭배하는 것이라는 점이다(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함).
 그러면 사람들이 저를 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덕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외침을 외치는 것은 그 힘의 무서운 능력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묘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출에굽 후 "신 중에 주와 같은자 누구리요"(출15:11)의 표현을 저들은 야유하듯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라고 하며,아무도 이 짐승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저들의 유일한 적은 성도들이
다(계2:10,13,12:ll,13:15). 그러나 성도들의 승리는 죽임이 아니라 죽임당함으로서임을 저들은 모른다.

3]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
(계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짐승의 본질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①활동기간:42개월. 이는 신약시대 전체속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활동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요주고 있다.
②그러면 이 기간동안에 저들이 본질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가지고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가지고 하나님과 성도들을 훼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단지 상징적인 어떤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을 하고 있으며, 그것도 한 순간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등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성도들과 싸워 이긴다.
(계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사단이 짐승을 통하여 다스리는 동안 핍박을 받는 존재는 바로 성도들이다. 여기에 싸운다는 말은 군사적인 전쟁이 아니라 짐승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멸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는 12:7이 역사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누가 승리하는가? 본문은 짐승이 승리한다고 한다. 이 말은 짐승이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적 생명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마10:28).
 그러면 이 죽음에서 진실로 누가 승리하는 자들인가? 이 문제는 참으로 우리에게 역설적인 대답을 15:2에서 주고 있음을 나중에 보게된다.

 그러나 아직 땅에서는 메시야의 왕권속에 짐승을 통하여 용이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눅4:4-7,요일5:19). 이 권세가 성도들에게는 순교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면 이방인에게는 어떠한가? 그 대답이 이어지고 있다.

5]이방세계의 경배를 받는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의 권세가 신앙인들에게 거부를 당하면서 오히려 저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움과 목숨까지 빼앗아 가지만 다른 이들에게서는 오히려 경배와 환영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환영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한다. 즉 참된 성도들과 세상의 세력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날카롭게 구별이 되어지고 있다.

 그러면 이 사실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활동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있다.
 우선 이 부분에서 환영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짐승이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어 준다는 의미이고,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짐승이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짐승은 누가 환영을 하였는가? 바로 이 땅에 사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짐승은 일반사람들이 살기에는 아주 훌륭한 정책을 펴고 사회복지를 펴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누구냐하면 바로 성도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짐승은 그럴듯한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면서 그 속에 신앙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죄와 방종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의 편의적인 정치속에 신앙격인 요소를 부정하며, 대적하는 바다짐승의 세력을 늘 조심하여 대적하여야 하는 것이다.

3.이에 대한 성도의 자세
(계13: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계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일곱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모든 시대의 교회를 통하여 외치던 "누구든지 귀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라는 외침이 울려온다. 바로 이러한 세상제도 속의 모순과 어려움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①본질을 우선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신앙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믿음이다. 그러므로 평안하고 살기 좋아졌다는 사실에 미혹되지 말고 믿음의 문제에 우선을 두고 생각하여야 한다.
②방법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저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무기를 들고 대항하여 저들을 죽일 것인가? 아니다. 인내하라고 한다. 즉 순교의 제물이 되는 길을 오히려 택하라고 한다.
③그러면 억울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칼에 죽으리니" 이 사실을 믿을 때 궁극적인 승리자는 바로 신앙인들이기 때문이다.

제 4막 제 3장 땅에서 나온 짐승
(계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계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계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계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계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1.둘째 짐승의 정체
(계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두번째 짐승은 도대체 무엇을 나태내는 것인가? 우선 두번째 짐승이 전체적으로 하는 일을 보면 첫번째 짐승(사단에 의하여 움직이는 악의 제도)을 유지시켜 주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번째 것은 첫번째 짐승을 유지시키고 떠 받들게 하는 것이다.
 그 일반적인 모습이 둘째 짐승이 무엇인지를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
①땅에서 올라온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원되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
②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다. 이는 종교적인 모습이되 거짓 선생들의 모습이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저들의 모습이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흉내내나 참된 모습은 새끼 양같은 것이지 참으로 새끼양은 아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활동은 많은 사람이 진리인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고후11:14).
③용처럼 말한다. 본질은 사나운 용으로 영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멸시키고 잡아 먹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인가? 이는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과 정신에 대한 문제이다.
 첫번째 짐승은 주로 사회에 대한 움직임이라면 두번째 나타나는 짐승은 주로 기독교에 대한 곡해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다른 곳에서 둘째 짐승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아주 분명하게 설명한다.
(계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여기서는 두번째 땅에서 나온 짐승을 거짓 선거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느 특정한 거짓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첫번째 짐승처럼 모든 시대에 활동하는 인간적 사단의 삭회구조 속에 생기를 주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꼭 기독교라는 의미는 아니다. 잘못된 모든 정신을 포함시킬 수 있다. 거짓 선지자라는 말로 인하여 기독교로 한정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비록 이것이 종교적 언어이지만 전체를 포함할 수 있음을 구약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신13:1-3 참조).

2.둘째 짐승의 활동
 중요한 것은 사단의 영역은 제도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과 종교도 포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첫번째 짐승을 경배하게 함
(계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계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속에서 구원을 찾는 자들이 아니라  인간의 참된 생명을 인간의 조직과 제도내에서 얻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을 찬양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의 목적인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때는 정치것인 이데올로기로 등장(마치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하나님의 뜻인냥 찬양하는 경우나 미국의 남북 전쟁시 흑인은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냥 설명하는 행위가 이것이 아닐까?)을 하고,때로는 철학적(실용주의가 교육의 이념으로 등장을 하는 것도?) 종교적인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이 정신적인 근거(이데올로기이든,철학적이건,종교적이건)가 바로 제도와 조직의 힘을 주게 만들고 땅위에서 그 능력을 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2]사단의 권세를 행함
(계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계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 이데올로기가 등장을 하여서 득세하여 조직을 유지시켜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단의 권세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권세가 땅에 있는 자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저들의 성공의 이유가 있는 갓이다. 이적의 모습은  불이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분명한 의미가 무엇인지 결정하기란 어렵다. 어찌되었든지 다른 사람들이 미혹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떤이는 이것을 카리스마적인 능력으로 보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이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들의 욕심과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종교를 땅에서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미혹당하는 것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저들이 행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이적이 어디 있겠는가?

3]성도들을 핍박함
(계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문제는 이 부분이다. 이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신앙인들이 추구하는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세상의 그 제도와 그 정신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 인하여 저들은 자기를 반대하는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과 고난은 죽음과도 연결이 된다.

3.짐승의 표
 오늘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짐승의 표이다. 컴퓨터의 바코드가 666이라면서 이를 받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나 신용카드나 이런 것들이 이 본문의 성취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저들이 말하는 처음과 중간과 끝의 바코드는 사실 숫자 코드가 아니라 이는 시작코드,진행코드,완료 코드인 것이다.

1]그러면 짐승의 표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본문과 비교하여서 생각해 보아야 해결이 될 문제이다.
(계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①짐승의 표를 무엇과 연결하여서 설명하고 있는가?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 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여기서 나타나는 바를 비고하여 보면 표를 받는 것과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등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를 받는 것은 짐승을 섬기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②표의 의미는 동일한 다른 사건에서 비교하여 보자.
 짐승의 표와 연결되어서 나타나는 또 다른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7장의 성도에게 친 인이다.
(계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성도에게 인을 이마에 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살폈듯이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사건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16절에 나타나는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말도 꼭 그 자리에  표를 찍는다는 의미가 아님을 안다.
 그러면 성경에서 인[표]을 친다[찍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의미는 위에서 살핀대로 "...에게 속하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를 받았다는 의미는 그 사람이 그가 속한곳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사단에게 속했음을 뜻하는 계시록의 표현방법인 것이다.

2]이표를 받아야 경제적 활동을 한다는 의미는?
(계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잘못된 조직과 제도, 그리고 그 정신을 인정하지 않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세상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러한 방법과 제도 속에서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으며 압박을 받으며 심지어 추방(실직)과 손해를 당하기도 하고 순교의 제물이 되거나 어려운 경제생활을 하게되는 것을 말한다.

3]666이란 무엇인가?
(계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문제는 바로 666이라는 말이다. 그것도 특별히 18절의 표현이 더욱 많은 해석을 낳고 있다. 원래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쓰는 것이 아니다. 알파벳 자체에 숫자가 포함이 되어 있기에 이것을 사람의 이름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초대교회에서는 네로를 666[혹은 616]으로,중세에는 로마교황을, 종교개혁이후에는 이슬람교를, 심지어는 루터나 키신저등도 숫자로 만들면 666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표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해석은 곤란하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는 666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묵시문학적 상징을 통하여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 계시록의 독특한 방법이다. 그러한 방법을 이미 많이 보았다.
 신약시대를 가리키는 숫자는 무엇인가? 1260일,3년반,42개월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숫자는 무엇인가? 144000명이다.
 하늘의 성곽의 완전함을 나타대는 숫자는 무엇인가? 144 이다(계21:17).
 작은 고난의 시기를 가리키는 숫자는 무엇인가? 3일반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상징이 무엇인가? 어린 양이다.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은 무엇인가? 여자,두증인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조직과 제도를 나타내는 상징은 무엇인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정신(종교,철학....)을 나타내는 상징은 무엇인가? 땅에서 나온 짐승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조직과 정신을 타나내는 숫자는 무엇인가? 그 답이 바로 666 이라는 것이다(요한은 숫자의 의미를 풀어보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풀어보자라고 한다).
(사람의 수라는 말은 하늘에 속한 것은 하나님만 알게 되어있다.그러나 인간의 방법으로 유추하여 진리를 가리킨다는 말이다(롬3:5,6:19,고전9:8,15:32,갈3:15)).

 그러면 왜 666인가? 아마도 완전[7]에 도전하지만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13장에서는 역사속에서 활동하는 힘의 두 방향 즉 사단이 활동하는 제도와 원리적인 하나의 원리와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원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면서 신앙인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진리위에서 흔들리지 않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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