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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 본절과 다음절은 첫째 인에 해당된다. '어린양이...그 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테 에노잎센 토 아르니온'(* )은 마지막 인을 뗄 때까지(8:1)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문구이다(3,5,7,9,12절). 이는 그 어떤 인간도 뗄 수 없는 (5:3) 종말의 비밀을 어린양 자신이 여심으로 어린양께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체이심을 나타낸다.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 '우뢰 소리같이'는 하늘의 소리를 가리킨다(4:5; 요12:29). 한편 '오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쿠'(* )가 누구를 향한 명령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요한에게 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offatt, Plummer). 그러나 본서에서 요한이 자신을 향해 '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듀로'(* )를 사용하고 있어(17:1; 21:9) 받아들이기 어렵다. (2)혹자는 그리스도에게 명한 것이라고 해석한다(Alford, Swete).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용인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일곱 인을 떼시는 주체가 어린양이므로 네 생물이 그리스도를 향해 '오라'고 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혹자는 말 탄 자에게 명한 것으로 본다(Weiss, Robertson, Morris, Ladd, Johnson, Mounce, Charl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네 생물의 '오라'는 초청에 말탄 자가 등장하여 즉각 행동하기 때문이다.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 요한이 첫번째 인을 떼고 난 후에 본 환상은 흰 말의 모습이다. 이는 슥6:1을 반영한다. 그러나 스가랴서에서는 색깔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반면 본서에서는 말 탄 자와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흰색은 승리와 정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땅에 심판을 위한 재앙을 내리려는 의도를 암시한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 본절에서 흰 말이 나오고 그 탄 자가 활을 가지며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 , 스테파노스)을 가진 것으로 보아 말 탄 자가 승리자요 정복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다섯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로마 제국이나 로마의 정복자로 해석한다(Spitta, Bengel, Ramsay). (2)혹자는 메시야로 해석한다(Lange, Clarke). (3)혹자는 복음과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1:14; 2:17; 3:4,5; 19:11-16; 20:11, Zahn, Alford, Greijdanus, Augustine, Ladd). (4)혹자는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Bruce, Swete, Walvoord, Caird, Beckwith). (5)혹자는 장차 나타나게 될 어떤 정복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Mounce, Morris, Barclay). 이 견해들 중 처음의 두 견해는 과거적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문맥상 본문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3-8절, 16,17절).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이기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콘'(* )은 '니카오'(* , '정복하다')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심판의 현재성을 시사한다. 또한 '이기려고'의 헬라어 '카이 히나 니케세'(* )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문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시사한다.

=====6: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 둘째 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스프라기다 텐 듀테란'(*  )은 문자적으로 '그 두번째 그 인봉'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첫번째 인을 단지 '일곱 인 중에 하나'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시간적 순서를 분명히 나타낸다. 또한 비록 둘째 인을 뗀 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처음 인을 뗀 어린양이 둘째 인도 떼었음이 분명하다.

=====6: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 '붉은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프포스 퓌르로스'(* )는 '피 혹은 불같이 붉은 색체의 말'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붉은 색은 전쟁 혹은 살륙을 암시한다(12:3; 왕하3:22,23; 슥1:8; 6:2).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 본문은 말탄 자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붉은 말'이 상징하는 전쟁이나 살륙의 의미와 일치한다. '허락을 받아'는 무서운 모든 전쟁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의도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베인 텐 에이레넨'(*  )은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부정사 구문으로 '화평을 제거하기 위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붉은 말을 탄 자의 사명이 전쟁이나 살륙을 통해서 화평이 사라지게 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 '서로 죽이게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히나 알렐루스 스팥수신'(* )은 목적을 나타내는 미래 능동태로 철저하게 끝까지 전쟁을 완수할 것을 묘사한다. 한편 '큰 칼을 받았더라'는 '큰 무기'를 받은 것을 묘사한다. 이것 역시 전쟁이나 살륙을 암시한다. 이 전쟁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종교적인 핍박'으로 해석한다(Hendriksen). (2)혹자는 적그리스도에 대항한 전쟁으로 해석한다(Bede,Grotius). (3)혹자는 전쟁을 통한 복음의 전파로 해석한다(Greijdanus). (4)혹자는 로마의 내란으로 해석한다(Ellocott). 이러한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여하튼 붉은 말의 사명은 전쟁과 살륙을 통해서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6:5
 셋째 인을 떼실 때에...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 '검은색'은 슬픔과 기근을 나타내는 것으로 셋째 인의 재앙은 기근을 상징한다(렘4:27,28, Vincent, Bengel). 한편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는 말은 전쟁 후에 식량을 저울에 달아 배급하는 절박한 기근의 상황을 묘사한다. 이러한 상황은 유혈의 전쟁이 가져다 주는 필연적인 결과이다(겔4:9).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 '나는 듯하는 음성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포넨'(* )은 어떤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접속사로 본서의 독특한 문체 중의 하나이다(19:1,6, Beckwith). 이 음성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어린양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Bousset). (2)혹자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Morris). (3)혹자는 생물들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Alford, Swete). 세 가지 견해 중 처음 두 가지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 듯하다.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 '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나리우'(* )는 가격을 나타내는 소유격으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마20:2). 또한 '되'의 헬라어 '코이니케스'(*  )는 건강한 남자의 하루 식량을 나타내는 고대 단위이다. 본문에 나타난 이런한 가격은 당시의 보통 시세의 12배 또는 최고 16배가 되는 가격으로(Cicero, Ver. iii. 81, Beckwith, Rist) 전쟁과 살륙의 재앙이 있은 후 초래된 심각한 기근의 상태를 시사한다(마24:7).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 하더라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이다. (1)혹자는 도미티안(Domitian)황제 때에 내린 포도원 폐쇄 명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 arles). 그러나 이 명령은 곧 강력한 반대로 인해 취소되었다. (2)혹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는 사치품으로 가난한 자는 굶주림의 고난을 당하나 부자들은 여전히 사치를 즐긴다는 의미로 해석한다(Hendriksen). (3)혹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성찬과 관련지어 해석하여 이를 믿는 자들에 대한 기근의 면제를 약속한 것으로 해석한다(Lilje). (4)혹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으로 보아(신7:13; 11:14; 호2:8,22) 본문은 기근의 한계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Mounce, Ladd, Johnson, Morris).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본문은 기근의 피해가 심각하게 증대되고 있긴 하나 본격적인 재앙은 아님을 나타낸다.

=====6:7,8
 넷째 인을 떼실 때에...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 '청황색'의 헬라어 '클로로스'(* )는 누르스름한 녹색으로 창백한 모습을 암시한다. 이는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사망의 공포를 나타낸다(Ladd, Morris).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란 표현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근본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나토스'(* )는 70인역에서 '온역'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데베르'(* )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눅21:10,11)과 에스겔의 예언과도 부합되는 것으로(겔14:21), 흔히 전쟁과 기근에 이어 나타나는 재앙이다(Johnson, Mounce). 한편 '음부'의 헬라어 '하데스'(* )는 부정 접두어 '아'(* )와 '보이다'라는 의미의 '이데인'(* )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는 전쟁과 기근과 온역과 같은 온갖 재앙의 결과를 의미한다(1:18 주석 참조, Swete).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 '땅 사분 일'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처음의 세 인에서 사분의 삼은 멸망하고 남은 사분의 일이라고 주장하다(A- lford). (2)혹자는 땅 전체의 사분의 일로 부분적인 멸망이라고 해석한다(Hengstenbe- rg). (3)혹자는 땅 위의 전면적인 환난이 일어나되 그 가운데서 사분의 일이라고 해석한다(Mounce, Ladd, Ellicott). 마지막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이것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한정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권세를 얻어'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땅의 사분의 일을 통제하는 막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시사해준다.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 넷째 인으로 인한 환난의 구체적인 방편은 겔14:21을 반영한 것으로 앞서 언급된 세 인에 의해 실행된 환난보다 강한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서 '검'은 '전쟁'을 상징하며, '흉년'은 '기근'을 말한다. '사망'은 죽음의 특수한 형태인 '온역'을 말하며(2:23; 겔14:21), '짐승으로 인한 죽음'은 전쟁 이후에 나타난 황폐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사망을 의미한다.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에 대한 묘사이다(1:9). 공관복음에서는 복음 증거로 인한 순교가 여로 모양으로 예고되었으나(마24:9,10; 막13:9-13; 눅21:12-18) 본문에서는 이미 성취되고 있다. 그 순교자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13:15),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18:24)로서 일반적으로 역사상에 있는 순교 사건들 가운데 죽임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해서 죽게 될 순교자들을 암시한다. 한편 '영혼들'은 순교당한 '목숨'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들이 비록 순교를 당했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진 것을 의미한다(Johnson).
 제단 아래 있어 - '제단'에 대하여는 몇몇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순수한 상징으로 해석한다(Alford). (2)혹자는 하늘에 있는 제단으로 해석한다(Jeremias, Delitzsach). 이 중에서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하늘의 제단이 여러번 언급될 뿐 아니라(8:3,5; 9:13; 11:1; 14:18; 16:7) 땅의 제단은 하늘 제단의 모형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출25:9; 민8:4; 히9:23). 한편 '제단 아래 있어'라는 표현은 순교자들의 순교가 하나님께 드린 산 제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Mounce). 이런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적대한 자들의 흉칙한 박해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 종말에 교회가 순교의 각오를 새롭게 갖도록 한다(Ladd, Morris).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 '거룩하고 참되신'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교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시사한다(Morris). 한편 '대주재여'의 헬라어 '호 데스포테스'(* )는 원래 종이 주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절재적 권력과 소유권을 가진 자에 대한 호칭이다(딤전6:2; 딛2:9). 이러한 호칭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눅2:29; 헹4:24) 그리스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벧후2:1; 유1:4). 본문에 사용된 이 칭호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지칭한다(Johnson, Morris, Robertson).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이다(3:10; 11:10; 요8:23, Burrows, Morris, Mounce). 한편 '신원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에크디케이스'(* )는 구약 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형벌과 보복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개인적인 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복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롬12:19). 본문에 나타난 신원 역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핍박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눅23:34; 롬12:19).

=====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 '흰 두루마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톨레 류케'(* )는 '비품을 마련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스텔로'(* )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옷들을 차려 입는 것'을 의미한다(3:4; 4:4; 7:9,13; 19:14; 막12:38).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 두르마기를 주시는 것은 영생과 승리를 보장하심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Walvoord).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 '잠시 동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티 크로논 미크론'(* )은 시간의 연속을 나타내는 목적격으로 동일한 사건의 연장 속에서의 휴식을 의미한다. 이는 복수를 신원하는 순교자들의 울부짖음으로부터의 휴식을 나타낸다(14:13). 한편 '쉬되'에 대하여 혹자들은 '잠시 동안'과 연결지어 '탄원하기를 쉬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며(Bengel, Bousset), 혹자는 천상계의 축복 가운데 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ford, Morris, Swtet, Plummer).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천상에서의 '잠시 동안'이란 시간의 개념이 인간들에게는 영원과 같은 긴 시간이 될 수 있으며(20:3), 의로운 자들의 쉼은 자연히 천상에서의 축복이기 때문이다(14:13, Johnson). 한편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들 모두가 동일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순교한 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Mounce, Alford). (2)혹자는 순교치 않은 일반 성도들과 순교한 신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한 듯하다.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차기까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본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어떤 사본에는 '플레로도신'(*  , '완성되었다')으로 되어 있어 미래부정을 의미하는 부정 과거 가정법으로 해석된다(* , P). 이는 '가득차게 될 것'이란 의미로 '가득 채워질 때까지', 혹은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까지'를 의미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본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교자들의 수가 채워져야 종말이 온다는 숫적 개념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교회가 더 많은 순교를 각오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시사한다(7:14; 롬11:25, Ladd. Johnson).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자연의 질서가 대혼란에 빠지며 마지막 날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큰 지진'에 대한 경고는 종말의 현상 중 하나로 이미 예시되었고(8:5; 11:13,19; 16:18; 겔38:19; 욜2:10; 암8:8; 학2:6; 마24:7,8; 막13:8, Charles) 하나님의 형벌로도 나타난다(사2:19). 한편 여섯째 인을 뗀 이후의 자연의 혼란에 대한 해석의 방법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들을 마24장과 관련하여 사실적으로 해석한다(Barclay, Wa- lvoord). (2)혹자는 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Clarke,Ironside,Mounce,Marshall). 이 두 견해 모두 타당성이 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 '총담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샅코스 트리키노스'(* )에서 '샅코스'(*  )는 '사코스'(* )에서 파생된 단어로 '물건을 담는 자루' 혹은 '머리에 쓰는 질 나쁜 옷감'을 의미한다. 이는 검정색 염소 털로 만든 옷으로 슬픔을 표시하는데 사용되곤 하였다(사50:3, Mounce). 해가 자신의 빛을 상실하고 슬픔을 상징하는 총담같이 검게 되었다는 것과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은 종말의 현상을 묵시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우주적 대이변의 심판을 시사한다(사13:10; 렘4:23; 겔32:7,8; 욜2:31; 3:15; 람8:9; 미3:6; 마24:29).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 본문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겨울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무화과로 비유된다. '선 과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스 올륀두스 아우테스'(*  )는 잎이 나오기 전에 겨울에 맺히는 푸른 무화과로 약한 바람에도 모두 떨어지는 설익은 무화과를 가리킨다. 선 과실과 같이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구약 성경에서도 비슷한 예가 제시되고 있다(사34:4; 나3:12, I Enoch 2:1; 41:5; IV Ezra 4:15).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 '떠나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코리스데'(* )는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아포코리조'(*  )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말지 않은 두루마리 종이를 반으로 자르면 한쪽으로 말리는 현상을 나타낸다(사34:4). 이는 종말에 있을 하늘의 대변동에 대한 비유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엄중성을 나타낸다.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 본무은 전혀 움직임이 없던 산과 섬들도 지각의 변동으로 요동하는 현상을 묘사한다(렘4:24; 나1:5). 이러한 종말의 양상은 상징적이든 축자적이든 큰 재앙과 고통을 나타낸다(Mounce, Johnson).

=====6:15
 본절은 종말의 대변동을 맞아 각 계층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일곱 계급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예외없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땅의 임금들과 - '땅의'라는 언급은 인간들이 처한 모습이 불신앙 상태였음을 묘사해 준다(Jub. 23:19; II Baruch 70:3,4,6; I Enich 62:3). 한편 '임금들'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왕족들과 장군들과 - '왕족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메기스타네스'(*  )는 최상급을 나타내는 헬라어 '메기스토스'(* , '가장 큰')에서 파생된 단어로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18:23; 막6:21, Swete, Mounce). 한편 '장군들'의 헬라어 '호이 킬리아르코이'(*  )는 보병 약 600명을 지휘하는 '군단의 지휘관'으로(막6:21; 19:18) 군대의 권력을 가진 자들을 지칭한다.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 본문은 앞서 언급된 권력을 지닌 지배층과는 달리 자기 만족적이며,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력한 계층을 가리킨다(13:16; 19:18).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 '각 종과 자주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인권이나 자유가 없는 계층과 대개 상업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을 가리킨다. 설사 이들이 지배 계급이나 경제적 부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의 종이라면 천지가 대변동하는 종말에는 동일하게 공포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는 종말에 나타날 고통과 심판을 피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심판의 괴로움을 암시한다(사2:10,19,21; 호10:8; 눅23:30; 히11:38).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우리를 가리우라 - '이르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구신'(* )은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극적이며 생동감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종말에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비참한 재앙을 가리워 달라고 하는 요구는 종말의 재앙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시사해 준다(호10:8, Joh- nson, Mounce). 혹자는 본절이 수신자들을 경책하기 위한 요한의 삽입구라고 주장하나(Caird)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사실적이며(롬1:18), 동시에 종말적인 사건임을 볼 때 인정할 수 없다. 한편 '우리 위에 떨어져'로 번역된 헬라어 '페세테 에프 헤마스'(* )는 부정과거 명령문으로 '지금 당장 떨어져라'는 긴급함을 나타낸다. 이는 10절의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생물들에게 호소하는 비참함을 보여준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는 심판의 날에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창3:8, Swete). 한편 '어린양의 진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본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된다. 어린양이 상징하는 온유와 진노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었다 하여 혹자는 '하나님의 진노'(11:18; 14:10,19; 15:7; 16:1,19; 19:15)를 대신해서 후대에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Weiss, Spitta).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시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어린양은 희생과 온유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더 깊고 영구적(永久的)인 분노를 나타내는 '오르게스'(* )와 연결시킨 것은 철저한 악의 종말을 극명하게 나타낸다(5:5; 마25:41).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 '그들의 진노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오르게스 아우톤'(* )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경 여러 곳에서 동격으로 언급된다(22:3,13; 살전3:11; 살후2:16). 이런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는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으로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악에 대한 보응이다(Mounce). 한편 '큰 날이'의 헬라어 '헤 헤메라 헤 메갈레'(*  )는 문자적으로 '그 큰 그날'이란 의미로 '큰'이 강조된 표현이다. 이는 악의 무리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공포로 인해서 외쳐진 용어로(Beckwith)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임을 시사함과 동시에(욜2:11; 습1:14; 유1;6) 하나님의 진노의 범위가 전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누가 능히 서리요 - 본문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이 너무 엄청나므로 그 어떤 죄인도 피할 길 없이 무력함을 나타낸다(나1:6; 말3:2).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티스 뒤나타이 스타데나이'(* )는 부정과거 수동태 부정사 구문으로 수사의문문이다. 이는 본문을 말한 주체가 15절에 언급된 모든 계층을 대표한 인간들임을 나타낸다(Swete). 이것은 그들이 피할 길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여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고난당하는 교회                                                              
 역사가 하나님과 유다지파의 사자이면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에 의하여 움직여 진다면(4,5장) 교회에게는 큰 위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도대체 역사에서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가?
 그 역사의 첫번째 측면이 6장에서 등장을 한다. 그것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도대체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가하는 것이 제 2막에 나타나는 일곱 인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주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내용은 예수님의 감람산의 종말론 강화(마태복음 24장,마가복음 13장,누가복음 21장)의 내용과 연결이 되며 그것이 교회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각인이 떼어질 때마다 처음 네가지 인은 말들을 통하여 그 환상이 진행되고 있다. 분명히 이는 스가랴서의 환상의 방법을 생각나게 한다(슥1:8,9,6:1-8). 즉 네 말들은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말들이 땅에서 나오는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역사의 모습을 잘 나타내준다(슥6:5).  
 그리고 주의하여야 할 점은 이것이 어떤 사건의 모습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한은 단지 하나님 역사의 움직임을 환상으로 보면서 메시야 완성의 날까지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환상의 장면의 첫번째 말 다음에 두번째 말이 나온다는 시간적인 개념을 가지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본문은 우선적으로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건적인 의미를 찾으면서 말들의 모습을 살펴야 할 것이며, 그 시간적인 의미는 본문의 내용과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를 통하여 이해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각 말은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순서적인 면에서는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측면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일곱인을 통하여 무엇을 중심으로 환상을 이끌고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곱인의 내용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는 길이다. 그러나 해석학적 입장에 따라서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그리고 병행법을 취하는 이상주의적 해석방법을 취한다고 다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느 입장을 취하든지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중심되는 내용을 찾지 않을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자세한 설명은 후에하고 본질적인 내용부터 찾아보면 그것은 아마도 다섯째 인의 모습일 것이다(9-11).
(계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여기에 등장하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모습이요, 그 중심은 죽임을 당함[순교,고난]이다. 이는 바로 첫째말에서 네번째 말까지의 사건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일곱인의 내용은 역사속에서 고난당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그 사시에 세상[교회와 대조되는]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 부분에서는 없다. 사실상 그 문제는 앞으로 계속되는 내용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역사를 다루면서 자세히 설명이 될 것이기에 그것에 대한 관심은 잠시 뒤로 미루자.
 말세를 사는 교회는 어떤 일을 당하는가? 이제 본문을 통하여 그 대답을 찾아보자.
                                                                              
제 2막 제 1장-흰말                                                            
(계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째 인을 떼시는 분은 어린양 자신이다. 그분만이 인간사의 종말을 가져오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 때에"-역사는 바로 어린양의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들으니 네 생물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어린양이 인을 떼심은 생물로 하여금 역사에 활동하게 한다. 이 생물은 3,5,7절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첫째 생물로 보이며 그는 우뢰소리같이 외친다.                                  
 "오라 하기로"-생물은 오라고 부른다. 그런데 누구를 오라고 부르는 음성인가? 요한을 보고 와서 보라는 말로 보려는 이들이 있으나(흠정역) 이미 요한은 4:1에서 부름을 받아서 보고 있으므로 그럴 필요는 없다. 아니면 이 음성은 첫째말을 부르는 음성인가? 가능성은 있다. 아니면 이것은 메시야의 재림을 기다리는 외침인가? 그렇다면 이는 1:6,7,22:20,로마서8:22,23,고린도전서16:22의 부르짖음과 연결이 된다. 아마도 이 부분의 오라고 부르는 대상은 신앙인의 소망과 기대를 대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그 의미를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찾도록 만들어 주는 음성으로 보인다.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이 사실로 보아서 위의 오라고 부른 것은 말을 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말이 부름을 받아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말이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 첫번째 말의 특징은 흰색,활,면류관,승리의 전권(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이다. 이제 중요한 문제는 이 첫번째 인에서 나오는 내용이 무엇이냐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대답들이 있으나 분명한 중심주제는 "이김"이다. 흰말은 승리의 개선장군이 타는 말이다.

 그러면 누가 이긴다는 말인가? 즉 흰말과 그 탄자의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것이 초점으로 등장한다. 몇가지 가능성이 이 이김의 주제로 등장을 한다. 그것들은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와 요한계시록의 다른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흰말 탄자는 그리스도이시며 흰말은 복음 승리의 행진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9:11-16의 내용과 잘 연결이 된다. 그리고 마태복음 24:14의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다는 사실로 해석이 된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전히 천국복음은 전파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2)전혀 반대로 적그리스도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19:11-16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나며, 두번째 이하의 내용이 긍정적이기 보다는 환난과 연결이 되기에 여기에 나타나는 내용도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것이다(마24:4,5). 이렇게 본다면 이는 신앙인에게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3)정복과 군국주의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다. 활은 구약성경에서 무력을 상징하며(호1:5,렘51:56) 면류관은 승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태복음 24:6,7의 난리와 난리의 소문과 연결이 된다. 이는 외부의 싸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쪽이든 첫번째 이김의 주제도 두번째 이하의 내용과 연결이 되고 있다면 그 결과는 성도들의 고난을 주는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제 2막 제 2장 붉은 말                                                        
(계6: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계6: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두번째 인의 특징은 붉은 말,화평을 제함,서로 죽임,큰 칼로 나타난다. 그 전체적인 내용은 화평이 사라짐을 나타낸다. 그리고 말의 색깔은 살해와 유혈의 모습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만약 첫째 인의 외부의 침략을 가리킨다면 두번째는 내부의 싸움을 가리킬 것이다. 이는 그가 받은 칼이 일반적으로 전쟁에 사용하는 칼이 아니라 짧은 칼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죽임이라는 단어도 전쟁에서의 죽임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무력으로 죽이거나 살인한다는 단어이다. 이러한 현상은 구약의 예언적인 모습에서 나타난다(슥14:13,사19:2). 그리고 데살로니가 후서 2:6의 막는자가 사라짐과 연결이 되는 듯하다. 이는 마태복음 24:10의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는 현상이 아닌가? 그리고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간곳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려움과 핍박을 받게되는 것은 누구인가? 진리를 따라 살려는 신앙인들이 고난을 받게 된다. 어찌되었든지 이는 투쟁과 갈등으로 땅에서 화평이 없어진다.

제 2막 제 3장 검은 말                                                         
(계6:5)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계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셋째인의 특징은 검은 말,저울,밀과 보리의 품귀현상,감람유와 포도주는 그대로 있음 등이다. 근본적인 내용은 먹을 음식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저울이 등장하는 것은 생활필수품 마저도 오른 값으로 판매되는 기근을 가리킬 때 사용이 된다(겔4:16,레26:26).                                                  

 그리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아니면 보리 석되를 사야될 형편이라면 굉장한 문제이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데 보통때면 밀은 10-12되를 산다. 한되를 성인의 하루 식사량으로 보는데 한 사람이 벌어서 고급식량인 밀을 사면 혼자 밖에 먹을 수 없고, 가족과 먹으려면 그보다 못한 보리를 사야되는      
형편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자연히 두번째 사건과 연결하여 본다면 전쟁의 결과로 엄청난 식량난을 겪게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여기서 문제는 식량이 아니라 돈의 문제라면 지나친 폭등으로 가난한 자가 먹을 것을 살 수 없을 정도의 빈부의 차이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는 의미로 넘어가 보자. 어떤 이는 이것을 사치품으로 부자는 마음대로 살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이는 감람유와 포도주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으로(신7:13,11:14,호2:8,22) 보기에 이 말은 기근을 가리키는데  1년초에 해당하는 곡식은 구할 수 없으나 다년생에 해당하는 감람유와 포도주는 남아있는 처참한 기근으로 설명한다(감람유와 포도주를 상징적으로 성찬이나 성도로 보려는 해석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 생략한다).

제 2막 제 4장 청황색 말                                                       
(계6:7)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계6: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넷째인의 특징은 청황색 말,사망,음부,땅 1/4의 사망[온역]과 짐승이다. 네번째 인의 특징은 처음 세 인의 결과로 등장하는 죽음을 말한다. 거기는 땅 1/4의 권세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이는 지리적인 영역이라기 보다는 질적인 영역으로 전체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네가지 검,흉년,사망[온역],짐승은 이미 구약적인 죽음의 표현방법이다(겔14:21).

 제 2막 제 5장 그리스도인의 고난                
(계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처음 네 인에서 종말의 어려운 상황을 살펴 보았다. 다섯째 인에서 특별히 그러한 어려움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보게된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렇다면 앞의 네 인의 내용도 그냥 일반 세상에 임하는 어려움이 아니라 바로 순교의 대상이었던 신앙인이 당하는 어려움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신앙인들이 어떠한 자인가를 잘 보여준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를 자기의 생명보다 중히 여기는 자들이다. 즉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증거인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포기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마10:38,16:24). 그리고 역사를 다스리는 세상 지배자들은 항상 신앙인들을 증오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요한이 지금 본 제단은 무슨 제단인가? 그들의 죽음에 강조를 둔다면 번제단일 것이요 호소하는 기도에 강조점을 둔다면 향단일 것이다. 그러나 묵시적 환상이라면 그 둘을 따로 분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보여주는 것은 성전이나 성막의 모형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단은 그 둘을 합한 하나의 모형으로 보인다. 구약의 희생의 피는 제단아래 부어졌다(레4:7,출29:12). 어떤 의미에서 신앙인은 그의 전생애를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자이며 그것은 하늘나라의 제단아래 부어지는 희생의 삶이다(딤후 4:6,빌2:17).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우선 이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에 부딪힌다. 이 순교자들이 복수의 절규에 가까운 기도를 하늘의 보좌 아래에서 드린다는 말인가? 아니다. 신앙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제단아래에 죽임을 당한 억울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있다. 이 절규의 모습은 오히려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 상징은 절규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계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그 절규의 내용은 많은 오해가 있다. 이들의 외침은 마치 복수와 증오의 외침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누가복음 23:34,사도행전 7:60의 내용과 상반된다.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우선 저들은 자기의 원수를 언급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대상은 땅에 거하는 자들인데 요한계시록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를 붙잡고 사는 사람들과 대조되는 무리들을 말한다. 이들은 거룩과 상관이 없는 대적들이다(3:10,8:13, 11:10,13:8,12,17:2).                                     
 그리고 저들이 신원하여 달라는 말도 하나님의 정의가 속히 실현되는 완성의 때를 기다리는 간구이지 개인적인 원수를 갚아 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순교자들의 외침은 하나님의 교회가 원수들 앞에서 구원되고 승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로를 받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이 더 이상 멸시받지 않으며, 그의 왕국이 굳게 세워질 날이 하루 속히 도래할 것을 간절히 바라는 뜨거운 여망이다. 그러나 영광의 주님이 재림을 늦추시는 한, 이 세상은 계속 그리스도를 불신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구주의 거룩과 진리를 짓밟을 것이다.                           

(계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흰 옷은 축복과 순결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아직 잠시동안 쉬라는 말은 기다림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저들이 처하여 있는 상태가 안식할 수 있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제 그들은 복을 누리면서 참된 솰롬의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다. 즉 저들이 억울하게 신앙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것처럼 보이나 결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안식의 상태에 들어갔음을 보인다. 바로 이 부분이 여기에 등장하는 다섯째 인의 중심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서 현실의 문제에 눈을 뜨게 한다. 여전히 땅에서는 환난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한 증거와 신앙에 동참하여야 할 사람들이 다 들어오기까지 하나님의 예정표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의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는 결코 끝은 오지 않는다(벧후3:8,9). 그러나 그때가 언제일까?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은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타나는 하나의 사건[여섯째 인]으로 설명을 내리고 있다.

 제 2막 제 6장 진노의 큰 날                                                   
(계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택하실 떼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계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계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계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우리가 앞에서 살핀대로 다섯개의 인의 사건은 감람산 강화를 통하여 본다면 재난의 시작을 가리키는 사건으로 시작[초림]에서 끝날[재림]까지 계속될 역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날[메시야시대]에 대하여 그 성격상 두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하나는 구원의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이다. 즉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원수를 심판하시는 것이 여호와의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느꼈던 분명한 갈등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문제이다. 예수께서 정말로 그리스도[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면 분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에 메시야의 시대[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마태복음 11장에 나오는 세례요한 사건일 것이다. 세례요한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메시야의 날이 왔다면 억울한 세례요한은 구원을 받고 악한 헤롯은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기만 하다. 이에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묻는 질문이 이것이다.                 
(마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바꾸어 말하면 당신이 구약에 예언된 그 여호와의 날에 임할 메시야입니까,아닙니까라는 심각한 질문이다. 이에 예수님은 독특한 방법으로 대답하신다.       
(마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는 분명히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구원의 장면이다. 그렇다면 메시야의 시대는 이미 임했고 여호와의 날은 왔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구원의 메시야 시대가 임했음을 이렇게 말한다.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나 한가지는 숙제이다. 악인의 심판은 어떻게 되는가? 물론 아직 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악인의 심판의 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여호와의 날은 임하였고 메시야의 시대는 이미 임한 것이다. 그러면 악인의 심판의 때는 언제인가? 감람산 강황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악인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보면 여섯째 인의 사건은 아직도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의 사건이요,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재림의 순간임을 알 수 있다. 이 날에 일어날 세가지 특징을 보자.

 1.이 날에 일어날 사건들(12-14)                                               
 전 우주적인 파괴가 일어난다. 큰 지진, 태양이 까맣게 되며, 달이 온통 피빛으로 변하고 별들이 마치 큰 바람에 흔들려 마구 떨어지는 과일처럼 되고 하늘이 두루마리 말리듯이 감기고 산과 섬들이 뿌리채 뽑히게 된다. 이러한 모습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들도 구구하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그 진노의  
날을 나타내는 생생한 표현을 통하여서 이 날이 진노의 날임을 보여주고 있다.     
                                                                              
 큰 지진-지진은 신현현의 변함없는 전조이며(사19:11) 혹은 함께 동반되는 사건이다(사29:6).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태양의 소멸과 달의 피같이 됨은 요엘3:4,학개2:6에서, 총담같이라는 직물에 대한 표현은 이사야 50:3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하늘이 말리고 하늘의 별들이 떨어짐-이사야 34:4에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싸움에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섬들이 떠는 모습-두로의 멸망에서 등장한다(겔26:15,나1:5,렘4:24).             
                                                                              
 결국 이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때는 언제인가? 마태복음 24:29-31,베드로후서 3:7,10-13에 보면 주님이 영광중에 오실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우리가 이 우주적인 대 변혁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날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역사주의나 미래주의자들은 병행법을 인정하지 않기에 이것을 사회적,정치적,종교적인 대 변동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려고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종말론적인 모습이다.

2.그날과 관련된 사람들(15)                                                    
 그 진노의 날과 관련된 사람들이 일곱 계층으로 나타남은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열국을 통히나는 왕족들,전쟁의 영웅들인 장군들,물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부자와 강한 자들, 사회 밑바닥의 종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주자들 전부를 다 포함한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며,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땅에 속한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앞의 10절의 내용과 연결시키면 바로 신앙인들을 괴롭히며 죽이던 하나님의 적대자들이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볼 때 하나님 편에 서지 아니한 모든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적대자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볼 수 있으며, 저들에 대하여서 참고 인내하시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어린양의 마지막 심판의 재림의 날에 저들에게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3.그날에 들릴 부르짖음
(계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저들은 그 진노의 날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며 피난처를 찾는다. 산과 바위 틈에 숨을 곳은 찾는다는 표현도 구약성경에 여러번 반복되는 사상이다. 이사야 2:10,19,예레미야 4:29,호세아 10:8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 지진으로 피난처는 상실되었다. 이는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아래 숨은         
날부터(창3:8) 죄인의 본성적인 모습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피난처에서도 저들은 안식을 누릴수가 없어서 그 진노를 가리워 달라고 호소를 한다. 차라리 죽음을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호세아 10:8에서 온 표현이다.

 이 날은 크고 무서운 날이요 진노의 큰 날이다. 이 표현이 구약의 여호와의 날의 다른 측면인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습1:14-18,욜2:11,31). 아무도 땅에 속한 자들은 그 진노를 감당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외친다.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이 표현도 역시 나훔 1:6,말라기 3:2의 반영이다.

 누가 능히 서겠는가? 설 수 있는 자가 있다. 그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제 7장에서 그 날 어린양의 크고 무서운 진노의 날에도 안전한 자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7장의 내용 다음에 다시 마지막 일곱번째 인이 이어진다. 이 사실은 분명히 7장이 일곱인의 문제와 연결된 대답임을 보여준다.

 제 2막 제 7장 잠시동안의 침묵
(계8: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이 부분에 대하여 여러가지 설명이 있으나 병행법으로 본다면 다음의 묵시들과 구분짓는 내용으로 무엇인가 내용이 있으나 뒤로 미루고 잠시 시간을 줌으로 2막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다.                                                      
                                                                              
 교회는 핍박을 받으나 하나님의 품안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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