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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라모스'(* )는 물건이나 건물 같은 것은 재는 도구로 '길고 곧을 장대'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갈대로 성전을 척량하였다(겔 40:2ff.). 한편 구약성경에서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한다(렘 31:39;슥 1:16;2:1-5). (2) 파괴를 의미한다(삼하 8:2;왕하 21:13;사 28:17; 34:11;애 2:8;암 7:7-9). 본문의 '척량'은 두 가지 의미 중 전자에 해당된다(21:15-17, 24, 27, Johnson, Beasley-Murry, Hendriksen, Ladd).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척량되지 않은것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량은 척량 대상이 설사 고난받을 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이 척량해야 할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님의 성전 - '성전'의 헬라어 '나온'(* )은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 )과는 달리 제사장들만이 들어가는 성소를 가리킨다(Johnson, Ladd). 요한이 척량한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지상의 성전으로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실제 성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Holtzmann, Walvoord)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전 3:16;6:19;고후 6:16;엡 2:21,Johnson, Morris, Hendriksen, Charles, Plummer, Beasley-Murray).
 제단 - 이것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향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리키는 듯하다(8:3;9:13, Hendriksen, Mounce, Hughes).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나(히 13:10, Johnson)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언약 백성을 의미한다(1:5;5:10, Hughes, Morris, Mounce).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헤롯 성전의 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성전 안에 있는 뜰로서 제사자의 뜰, 남자의 뜰 혹은 이스라엘이 뜰, 여자의 뜰이며, 둘째는 성전 밖의 뜰로 이방인의 뜰이다. 이 두부분의 뜰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서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넘어서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Johnson). 이러한 두 부분의 뜰 중에서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버림받은 회당이나(Swete) '남은 자'를 제외한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dd, Morris). (2) 혹자는 교회 내에 있으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ohnson, Mounce, Hendriksen, Kissle).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한마디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Beasley-Murray). 이러한 이방인의 뜰은 척량 대상에서 제외되어 앞절에서 언급된 척량 대상과는 달리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파멸을 당할 것이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 )은 문자적으로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18절;2:26;19:15;20:3;21:24, 26;22:2). 한편 '주었은즉'의 헬라어 '에도데'(*  )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이방인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거룩한 성'에 대한 견해는 두가지이다. (1) 혹자는 '성' 혹은 '유대인'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Holtzmann, Walvoord, Beckwith, Ladd, Rissi). (2) 혹자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21:2, 10;22:19, Johnson, Moun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핍박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마흔 두 달'은 단 7, 9장을 반영한 것으로 본서 내에서 '일천 이백 육십 일'(3절;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하나님의 성소와 유대인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내며(단 8:10, 13; 마카비하 8:2), 본서에서는 거룩한 성에 대한 박해(2절), 두 증인이 예언하는 때(3절),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때(12:6, 14),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하신 때(13:5)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마흔 두 달'이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임을 시사한다(Mounce). 이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신다는 의미이다(Morris).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두 증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혹자는 에녹과 엘리야라고 주장한다(에녹서 90:11, Tertullian). (2) 혹자는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Gundry, Barclay). (3) 혹자는 미래의 두 예언자라고 주장한다(Beckwith). (4) 혹자는 베드로와 바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5) 혹자는 교회 안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Rissi). (6) 혹자는 일천 이백 육십 일과 같이 정해진 기간 혹은 교회의 전기간을 통해 증언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Johnson, Minear, Beasley-Murray, Hendriksen).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사실은 실제 증인의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증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Hughes).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증인이 둘이라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성을 의미하고 있으며(신 19:15;요 8:17, 18)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다(막 6:7;눅 10:1). 한편 '굵은 베옥'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옷으로(사 20:2;슥 13:4) 회개나 애곡을 나타낸다. 이것은 두 증인의 사역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하여 더이상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주로 확신하도록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Hughes, Beasley-Murray, Johnson).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이 땅의 주 앞에 '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Morris). 한편 본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촤대'는 앞절에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스가랴의 환상을 암시한다(슥 4:1-14). 스가랴서에서 두 감람나무는 기름부음을 받은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인 여호수아를 가리킨다(슥 3:1;4:6, 7, 14). 요한은 이 스가랴의 환상을 이용하여 두 증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권위를 소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Ladd). 또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서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 즉 감람나무의 기름을 통해서 촤대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기름으로 채워진(Swete, Mounce) 이러한 교회와 그 증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마 5:14-16) 세상의 참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요 1:4, 5, 9) 발해야 한다(Hughes, Johnson).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호하신 왕하 1:10과 렘 5:14을 반영한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것으로서 두 증인들이 선포한 예언의 말씀을 암시한다(렘 5:14).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이 두 증인을 해하려 할지라도 원수들의 손에서 두 증인을 보호하시고 말씀의 선포가 지속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두 증인의 입으로 선포하는 불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수들을 철저히 파멸시키신다.

=====11:6
 본절은 앞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로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왕상 17:1).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이것은 모세가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을 암시한다(출 7:20;8:12).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혹자는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Barclay). 그러나 누가가 세례 요한에 대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자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눅 1:17) 본절에서 암시한 모세와 엘이야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과거에 사역하던 역사적 인물의 재출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Ladd). 단지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을 소유한 교회나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Johnson, Beasley-Murray, Hughes).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 '증거를 마칠 때에'에서 '마칠'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소신'(* )은 부정 과거 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증거하기를 다마쳤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두 증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을 해하려고 애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해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사단도 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짐승'은 본서에서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다. '짐승'의 헬라어 '토 데리온'(* )에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더불어 이 짐승이 13장과 17장에 언급된 짐승임을 암시한다(Beckwith, Mounce, Johnson). '짐승'의 기원은 단 7장이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제국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 중에서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열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더 큰 뿔 하나가 자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세상에 환난을 초래한다(단 7:1-25). 이러한 짐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지칭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이 사단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당하도록 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9:1-11;17:8). 한편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21을 반영하는 것으로 두 증인이 개인적인 두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전 백성 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킴을 암시한다(Beasley-Murray). 적그리스도는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줄이며 억압하고 핍박한다(6:9-11).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본절의 '큰 성'은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 내에서 흔히 '바벧론'으로 지칭된다(16:19;17:18;18:10, 16, 18, 19, 21). 혹자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Ladd).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Alford, Mounce). 왜냐하면 요한이 그 성을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본절에 나타난 '큰 성'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시나 음녀의 어미들이 있는곳을 가리킨다(Johnson, Morris, Beasley-Murray).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영적으로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 )는 '예언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prophecy', Knox)나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큰 성은 두 가지로 불려진다. (1) 소돔. 이 곳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다(창 19:4-11). (2) 애굽.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였다.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증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중에서'에 대한 혹자는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Ladd),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힌 세상 모든 사람들과 구조를 의미한다(Hughes, Morris). 한편 시체를 장사지내지 못하는 것은 당시 적에게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왕상 21:24;렘 8:1), 2;14:16). 짐승은 증인들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였으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였다(Morris, Mounce). 사흘 반 동안 - 이것은 짐승이 증인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멸시하는 기간을 나타낸다. 즉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증인들이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증거한 기간과는 달리 매우 짧은 기간임을 시사한다(Ladd, Mounce, Hendriksen).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3:10;6:10;8:13;13:8, 14;17: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11:11,12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본절은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한다(겔 37:5, 10 -12). 여기서 '생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창 2:7;6:17;7:15, 22)두 증인들의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두 증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당하던 짧은 기간 즉 삼 일 반 동안만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다. 삼 일 반이 지난 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기를 통해서 두 증인이 부활하여 서게 됨으로 조롱하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단의 핍바과 고난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일지라도 그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됨을 암시한다(Morris, Mounce, Johnson).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그리고 영광을 의미한다(Johnson).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으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과 마찬 가지로(마 24:30;행 1;9-11) 두 증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가운데 승천하였다. 한편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두 증인의 승천은 공개성(公開性)을 시사한다. 두 증인의 승천은 절대로 감추어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Morris, Swete).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본문은 두 증인의 승천 때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지진'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의미한다(6:12;겔 38:19, 20;마 27:54). 두 증인의 부활때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죽은 '성 십분의 일'의 인구 '칠 천'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당시 예루살렘 성의 인구가 55,000-95,000명이었음을 추측하여(J.Jeremias) 예루살렘 성 주민의 일부가 죽임을 당하였고 그 결과로 유대인이 회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인류 전체의 일부라고 이해하며 이러한 일부에 대한 징계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8절). 한편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것은 16:9에 나타난 반응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단순한 두려움이나 뉘우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11:14
 둘째 화는 지나 같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에 해당되는 화를 의미한다(9:13-11:14). 이 둘째 화 다음에 지체 없이 속히 임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일곱째 나팔'은 10:7 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감추신 비밀에 대해 보여준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 '큰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하늘의 천군 천사'의 음성인 듯하다(Morris, Mounce).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본문은 시 2:2을 반영하는 것으로 큰 음성을 통해 이루어진 선포이다. 여기서 '우리 주'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나 본서 내에서는 빈번히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1:8, Ladd, Morris). 이것은 본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이 사단이나 군왕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선포임을 시사한다(Swete, Johnson, Beasley-Murray). 이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사단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1:6, 9;5:10;12:10;19:6;20:4;22:5). 한편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네토'(* )는 단순 과거 시상으로 이 세상의 주권이 사단에게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 전도되었음을 시사한다(12:10;19:6, 16;요 12:31, Ladd, Morris).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그가...왕노릇하시리로다'의 헬라어 '바실류세이'(* )는 단수이다. 이것은 사단에세서 이 세상의 주권을 되찾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주권의 단일성을(unity)을 시사한다(Mounce, Lohmeyer, Beasley-Murray).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신 왕으로서 단일한 주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11:16,17
 본문은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 이러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은 여섯째 인의 심판이 지난 후 나타났었다(7:2).
 감사하옵나니 옛적에고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 '잡으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에일레파스'(* )는 완료 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이다. (1)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본 칭호는 앞서 언급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칭호(1;8;4:8)와 대비를 이룬다. 앞서 언급된 칭호에서는 '장차 올 자'라는 칭호가 있는 반면에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의 오심이 성취되어서 이미 오셨고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시사한다(Morris, Johnson, Mounce). (2) 전능하신 이. 분 칭호는 앞서 언급된 '큰 권능을 잡으시고'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의 권한과 힘에 대적할 자가 없음을 시사한다(1:8, Morris, Mounce).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하더라 - 본문은 시 2:2과 병행된다. 열방들은 서로 의논하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으신 종을 대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대적과 분노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원인 제공의 역할만 하게 되었다(시 2:5, 12).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보상은 세 범주의 존재들에게 주어진다.
  (1)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죽은 자'는 20:11-15과 연결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인류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의 여부가 정해지게 된다(Ladd, Johnson).
 (2)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받을 자에 대해 세 부류 즉 1 종 선지자(18:20), 2 순교자나 모든 시대의 믿는 자를 의미하는 성도들(5:8;8:3;13:7, 10;15:4;16:6;18:20, 24), 3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14:7;15:4)로 나타난다. 이러한 세 부류의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요한이 이렇게 설명한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보상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Morris).
  (3)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바벧론이나 짐승 혹은 거짓 선지자나 용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무리를 나타낸다(16:13;19:2, 11;20:10. Beasley-Murray, Johnson). 이러한 자들은 그날에 멸망을 달할 것이다.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이다. 하늘이 열리면 보여진 언약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에게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언약궤는 B.C. 586젼에 느브갓네살의 침략과 성전의 손실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외경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회복 때까지 언약궤를 숨겨둔 것으로 되어 있다(마카비 2서 2:4-8). 이러한 사실은 메시야의 도래 시에 언약궤의 회복을 통해 구원을 소망하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Mounce). 그러나 본절의 언약궤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지상성전의 언약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과 백성간의 새 언약을 암시한다(Johnson). 옛 언약하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언약궤가 있는 지성고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를 의지함으로 수시로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9:11, 12;10:19-22). 그러므로 본절의 언약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Johnson, Morris), 한편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 시에 나타나는 그의 권능과 엄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4;5;6:12;8:5;16:17-21) 하나님의 임재와 그 백성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Johnson).

 

 

 

삽입 2-1:성전 척량(聖殿 尺量)

(계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여기의 대용이 여섯째번 나팔과 연관이 있다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성전,제단,거룩한 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1]이 내용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내용인가?
 미래주의에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에 회복될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
 다른 견해는 성전을 중심으로 척량하는 것은 유대인의 남은 자만을 구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 다른 입장은 "하나님의 전"(고전3:16)으로 불리우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이 세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하는 문제는 10장과 11장의 문맥에서 살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증거의 사역에서 등장하는 내용이기에 이 부분은 교회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2]그러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내용이 교회를 대상으로 한 내용이라는 것이라면 각각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이 표현은 성전의 모습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는데 성전이라는 말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제단이라는 말은 성소밖에 있는 번제단인가,아니면 성소안에 있는 향단인가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성전 밖 마당이라는 말은 성전의 성소 앞에 있는 뜰로부터 전부인가,아니면 맨 바깥에 있는 이방인의 뜰인가라는 것이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교회를 상징하는 문제로 연결시킨다면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잠시 생각하지 말고 해석하여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척량이라는 말부터 시작을 하여야 할 것이다. 11장에서 요한의 상징적인 행동으로 내용이 극화된다. 그것은 척량이라는 말부터 시작을 하여야 할 것이다. 척량이라는 말은 보존을 상징적으로 선포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7:l-8에 나오는 인치심과 상응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러면 척량되어 보존되는 내용이 두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가,아니면 한 종류의 두 성격을 가리키는 내용인가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핀대로라면 성전,제단,마당,거룩한 성이라는 말이 교회를 상징하는 내용이라면 두 종류로 본다면 보호받는 쪽은 참된 성도이며, 그렇지 못한 쪽은 형식적인 세속적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거것 선생과 이단에 속한 자들이 들어와 있음을 보지만 저들이 교회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만약 세속적 형식적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교회의 두 성격을 가리키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전 밖 마당과 성은 이방인들이 짓밟을 것이 허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적의를 가지고 대항할는지 모르나 생명의 참근원은 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두 증인의 사역에 연결이 되어서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즉 바깥의 마당과 성이 짓 밟힘을 당하고 핍박과 고통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교회의 그 본질은 하나님에 의하여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기간은 얼마동안인가? "마흔 두달"이라고 한다. 그것을 1260일(11:3,12:6), 한때와 두때와 반때(12:14) 등으로 설명을 하는데 이는 여러가지 상황(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지배기간,엘리아시대의 가뭄,광야에서 이
스라엘의 진친 곳이 42번등)이 연결이 되나 계시록의 전체 장면에서 본다면 이 기간은 세상이 교회를 괴롭히는 기간이며,동시에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활동하는 기간으로 등장하니 바로 초림과 제림사이의 교회의 전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우기 이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사역하신 기간과도 일치하니 교회의 공7적인 존재기간 전부를 나타대는 말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성전척량이 여섯째번 나팔과 관련하여 교회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만 재앙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도 핍박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교회가 도대체 세상에 대하여서 어떤 존재이기에 그렇게 핍박을 받는 존재로등장을 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이 바로 두 증인이다.

삽입 2-2:두 증인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계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계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계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계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계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계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계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사실 이 삽입의 내용은 10장의 내용과 연결이 되어서 설명이 되고 있다. 일곱째번 나팔의 의미를 아는 자는 세상이 아니라 사도요한이었다. 요한은 쓴 맛을 느끼면서 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이제 누가 그 일을 계속하여야 하는가? 요한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저들을 향하여 그 사실을 증거하여 줄 증거자가 있다는 사실을 본문이 보여주며,이 사실이 오히려 세상으로 하여금 핍박을 불러 일으키나 교회의 본질을 이기지는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성전척량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실핌에 있어서 그 내용에 대하여서 여러가지 견해가 있어서 그 의미를 밝힘에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해 오던 해석의 원칙에 의하여서 살피려고 한다.

l.두 증인의 신분
 가장 첫번째 다루어야 할 문제는 바로 두 증인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①세상과의 관계에서 두 증인을 4절에서는 두 촛대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대 이는 1장에서 교회를 등잔대(촛대)로 설명한 것과 연결이 되고있으며, 예수께서 교회의 사명을 빛과 소금으로 설명하신 것과 연결이 된다(마5:13-16).
②또한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라고 하는데 이는 스가랴 4:14에 나오는 상징으로 거기서는 성령으로 일하는(스가랴4:6)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는 성령의 사역으로 활동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모습은 모든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③교회를 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저들을 증인으로 부르셨으며, 증인으로 파송하시고 계시기때문이다(마28:16-20,행l:8). 그러므로 교회를 증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증거의 사역을 세상을 향하여 할 수 있는 존재는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④그러면 왜 그 수가 둘인가? 그것은 증인이라는 말 때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어떤 증거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두명의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신ll:6,19:15,요8:17). 그러므로 두 증인이라는 말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참된 증인이며,그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2.두 증인(교회)의 사역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①권세를 받은 증인-하나님께서 두 증인에계 권세를 주셨다고 한다. 그 권세는 물론 증거할 수 있는 권세이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l:8이 잘 설명하고 있다. 권세를 받아야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증인에게 권세를 주셨다는 사설을 인정하여야 한다.
②증거의 자세-굵은 베옷(거친 옷)을 입은 것은 옛날 선지자들의 옷이다(슥13:4). 이는 그 증거의 내용이 엄숙함을 보여주며,그 중심은 회개하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9:20,21).
③증거의 기간-1260일(11:2의 해석 참조)은 신약시대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계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④능력있는 증거-그들의 복음의 증거가 능력 있음을 구약의 생생한 선지자의 활동에 비추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첫번째 예는 엘리야에 대한 것으로 아하시야왕의 사자들이 엘리야를 체포하려고 50명의 무리들이 왔을때 두번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불에 타서 죽은 사실을 생각나게한다(왕하l:). 그리고 또한 엘리야가 기도함으로 비를 움직인 아합왕시대의 사건을 말한다(왕상17:l,눅4:25,약5:17).
 두번째 예는 모세로 물이 변하여 피가되게 하였고(출7:20), 여러 재앙으로 땅을 친 사건(출8:12)을 말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저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반항하게 될 때에 여러가지 재앙이 생겨나게 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미 우리가 살핀 첫째 나팔부터 여섯째번 나팔 그 자체가 바로 복음 증거의 능력과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회개하기를 거부하게 될 때에 복음의 증거로 인하여 재앙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내용은 복음의 구원사역의 측면보다 거절하는 자들에 대하 심판의 사역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이미 살핀 일곱째번 나팔의 의미를 아는 요한의 사역과  그 사역은 이어받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저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있을 파멸을 증거하여야 한다. 만약에 증인이 증거하거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이다.
 그리고 증인이 증거의 사명을 완수하는 동안은 엘리야와 모세를 보호하신 것같이 지켜주시는 것이다.

 *결국 증인의 사역은 환경과 인간을 쳐도 깨닫지 못하는 세상을 향하여 친히 하나님의 뜻을 선포(증거)하는 것이다.

3.증인에 대한 세상의 반응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계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계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핍박하는 장면은 이미 11:l,2에서 등장을 하였다. 그러나 거기서는 왜 고난을 당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본문이 밝히고 있다.
 증인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한 마디로 핍박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교회는 순교의 길을 가게된다.
1]교회를 핍박하고[이는 계속적일 것이다] 결과로 순교하게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답을 하나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제공을 한다.
 ①긍정적인 측면에서 교회가 순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교회가 그 증거를 마치기 전에는 죽임을 당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사역의 완성인 것이다. 이 사실이 바로 성도의 위로이다. 그리고 동시에 1,2절에서 설명한 교회의 본질이 보존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②부정적인 측면에서 교회가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2]교회를 핍박하는 세력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본질적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세력은 마귀의 세력이다. 그것이 외면상으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등장을 하지만 본질적인 모습은 영적이며,마귀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그 당시 교회의 외견
①전쟁에서 패배를 당하고 죽임을 당함(7)-때때로 교회는 큰 핍박과 환난가운데서 사라져 버리고 죽어버린 듯한 느낌을 느끼게되기도 한다.
②시체가 장사되지 못하고 큰 성길에 버려짐(8,9)-시체가 묻히지 못함은 큰 수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③땅에 거하는 자들이 보고 기뻐함(10)-회개하라는 교회의 경고를 세상은 싫어하는 것이다. 이제 저들은 그러한 존재가 없어진 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4]죽임을 당한 곳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증인들이 죽임을 당하여 버려진 곳은 어떤 곳인가? 소돔과 애굽과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라고 하여서 세가지를 연결시켰는데 이는 "영적으로하면"이라는 말로 연결을 시켜놓고 있다. 즉 그것은 어떠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Morris는 큰 성은 "모든 성이며 동시에 아무 성도 아니다. 그것은 조직된 사회 속에 있는 개화된 인간이다"라고 하였다. 소돔이란 말은 도덕적인 타락(부패)의 깊이로 가장 극한 상태를 가리키고(창19:11-14), 애굽은 교회를 향한 극에 달한 압박과 고난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다(출2:23,24). 그 곳은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예루살렘처럼 반기독교적이요,기독교를 괴롭히는 자들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복음을 증거하고,그리고 그 속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5:10-12 참조).

5]죽임을 당한 기간
(계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그 기간에 대하여서는 사흘 반이라고 한다. 혹자는 이 기간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할사이의 그리스도의 경험-3년사역과 3일간의 죽으심-의 기간을 비유로서 나타낸 것으로 본다. 그 순간에  대하여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그러나 그 기간은 전체의 시간기간(1260일)에 비하여 짧은 기간이다.
 *종합적으로 증인의 사역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4.회복되는 증인
 그러나 증인은 단순히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1]다시 살아나게 된다.
(계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이것에 강조점은 증인에게 하나님의 역사라고 느낄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때로 교회는 핍박을 당하여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시 살아난다. 궁극적인 승리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이다. 때로 교회는 세상의 유혹과 부패에 함께 썩어져 없어지는 것 같고 때로는 핍박으로 쓰러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때는 바로 삼일 반에 해당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교회는 다시 회복되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갱신이 이루어지고,다시 세상을 향하여 증거하고 있다면 여전히 1260일의 증거의 기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통의 기간이 여러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반복되지만 마지막 불법의 사람이 오게되면 많은 사람들이 배도하게 되어(살후2:3,마24:11-,24) 그 절정에 이르게되지만 그 기간은 극히 짧은 기간이요 교회는 다시 회복되는데 이제는 부분적인 모습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변화된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계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이는 궁극격으로 주께서 강림감시는 날에 완성이 될 일이다(살전4:17). 이는 은밀한 것이나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원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승리와 진실한 증인이었음이 선언이 된다. 그날에 성도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가?

3]남은 자들이 두려움에 쌓이게 된다.
(계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저들에게 증인이 말한 그 종말론적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은 공포에 질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믿게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실되심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저들에게는 회개와 은혜의 날은 지나가고 없다.

(계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이제 세상에 대하여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기회는 지나가 버린 것이다. 멸망만 남은 것이다. 정말 이제는 단순히 목회적인 의미에서  "속히"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마지막 화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두번째 삽입의 모습은 끝나게된다. 이 삽입의 내용은 두번째 화가 임한 세상에 대하여 성도가 하여야 할 사명과 어려움 속에서의 위로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세상이 재앙과 화를 당하면서도 우상숭배와 헛된 행위를 계속행하면서 달려간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그 사실마되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 안타까운 사실을 바로 신앙인인 우리가 주님의 증인으로 나가서 고난을 받으면서 아니 죽으면서까지라도 증거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제 3막 제 7장 일곱째 나팔-역사의 완성[땅의 멸망]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11: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계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때로소이다 하더라

 독수리가 외친 세가지 화 중에 이미 두가지가 지나갔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궁금함으로 우리는 일곱째번 나팔이 울려퍼짐을 듣게된다. 이것은 마지막 나팔이요 마지막 사건이다.

1.일곱째 나팔로 일어나는 사건은 무엇인가?
 15-17절의 내용이 일곱째번 나팔의 사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1]시간적으로 언제 일어나는 사건인가?
 17절에서 24장로들이 드리는 찬송에서 그리스도를 부르는 명칭을 l:8과 유의하여 비교해 보면 시간적인 내용이 등장을 한다.
(계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 차이점은 간단하다. 장차 올 자요라는 말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이제 "장차 올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째번 나팔은 l:8에서 말한 장차 올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즉 시간적으로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의 때에 일어날 사건인 것이다.

 2]역삭적인 의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역사적인 의미에서는 완성이된다. 역사의 목표와 의미가 무엇인가?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역사의 목표는 바로 15절에 나온대로 세상나라(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그 유일한 나라)가 주와 그 그리스도(시2:2)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①(계11:15)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이 말은 단순과거로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즉 이미 그리스도의 초림때부터 그 나라가 되는 과정이 계속격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② (계11:15)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이 말은 미래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왕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그 통치, 즉 모든 피조물이 오로지 그분의 뜻에 복종하게 되는 그 완성은 재림때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일곱째번 나팔에서 이미 그 일이 이루어겨서 17절에서 "친히 그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으로 인하여 24장로들이 영광을 누리며 찬송을 부르고 있다. 그러면 이것이 왜 화가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재림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로 인하여서 그러하다.

2.재림의 결과
 결과는 두가거로 나타나고 있다.
(계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때로소이다 하더라

1]성도들에게 일어나는 결과-성도들(선지자,성도들,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상주신다.
2]파괴자들
①진노의 심판이 임함
②멸망시킴(살후1:6,7)
 성도들에게는 그 재림의 날이 영광의 승리의 날이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는 진노와 멸망의 날이기에 이보다 더 큰 화는 없는 것이다.

 *일곱 나팔의 모습을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항하면서 사는 땅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재앙과  큰 화를 당하면서도 저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이제 저들을 항하여 직접적인 말로 증거의 사역이 필요한데 그 사역을 오늘 교회에게 맡기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증인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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