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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 시온 산에 서 있는 어린양의 모습은 12:17에 묘사된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용의 모습과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시온 산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약간씩 차이가 났다. 즉 포로 시대 이전에는 유다의 전영토와 이스라엘 전족속을 의미했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을 가리켰다. 또한 구약성경과 예언서에서 시온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들을 모으는 장소를 상징했다(시 48:1;사 24:23;욜 2:32;미 4:1, 7). 이러한 배경을 지닌 '시온 산'이 본문에서 어디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실제적으로 지상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영적인 세계인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거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Kiddle, Bengel, Plummer). 이들은 히 12:22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에서 '시온'을 '하늘의 예루살렘'과 관련시켜 이해한다. (3) 혹자는 지상에서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 또는 천년 왕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Beasley-Murray, Beckwith, Charles). 이들은 히 12:22의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갈 4:26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무두 하나님이 계신 하늘 시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에 거하는 구속 받은 성도들에게 이 땅에 이루
어질 메시야 왕국의 전형이나 모델로서 제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그와 함께 심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본문의 십사만 사천 명은 7:4절에 언급된 십 사만 사천명과 같은 무리들로 단순히 유대 지파나 유대인 성도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Ladd, Mounce, Caird). 이 무리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13:16)과는 달리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양되신 그리스도의 이름이 쓰여져 있어서 그들이 짐승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임을 시사한다. 본장에서 십사만 사천 명을 구성하는 무리들은 본서 7장의 무리와 동일인들이지만 사건은 7장보다 훨씬 진전되어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달라져 있다. 즉 7장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치심을 받으며 순교당한 무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본장에서는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이 이 땅의 종말론적인 나라에서 부활하여 어린양과 함께 있는 것을 나타낸다.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 본절에서 요한이 들었던 '소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넨'(* )은 1:15절의 '음성'과 동일하다. 혹자는 구원받은 무리인 십 사만 사천 명이 합창하는 찬양의 소리라고 주장하나(Mounce) 천사들의 큰 합창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5:11;6:1;19:1, 6, Johnson). '많은 물소리'는 크고 우렁찬 소리를, '큰 뇌성'은 위엄과 승리를, '거문고 타는 소리'는 아름다운 선포와 조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늘의 찬양은 크고 위엄차고 듣기에 아름다운 소리일 뿐만 아니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을 환영하는 천사들의 노래로 볼 수 있다. 이는 지상에서의 승리와 하늘 나라에서의 기쁨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Johnson).
 
=====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본절의 '새 노래'는 5:9의 '새 노래'와 병행을 이룬다. 이 노래를 '새' 노래라고 한 것은 이 노래라 오직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 즉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창조된 무리들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Ladd). 이 노래는 죄 가운데 있는 옛 사람들은 배울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식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새로워지고 생명이 새로워진 새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다(2:17;롬 8:1-6;12:2). 새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십 사만 사천 인'은 '구속함을 얻은 자'(* , 호이 에고라스메노이), 즉 지상의 모든 족속 중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나님께 '사서 드려진'(* , 에고라사스, 5:9)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인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7:4-8)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7:14).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을 지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여자와 성관계를 맺지 않은 독신 남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iddle, Glasson). (2) 혹자는 간통이나 간음과 같은 부적합한 성관계를 갖지 않은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 Alford). (3) 혹자는 성전(聖戰)을 위해 나가는 군인과 연관시켜 해석한다(신 23:9, 10;삼상 21:5;삼하 11:11). (4) 혹자는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 우상 숭배와 배교를 하지 않은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larke, Johnson, Plummer, Ladd, Morris).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과 백성간의 관계를 흔히 남녀 관계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순결한 처녀로, 신약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묘사하고 있다(왕하 19:21;사 37:22;렘 18:13;암 5:2;고후 11:2).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 '따라가는 자' 는 막 8:34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지상에서 생활하셨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나타낸다(Beasley-Murray). 혹자는 이것이 십 사만 사천명의 무리가 순교(殉敎)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추종하였음을 암시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ounce). 한편 '처음 익은 열매'는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성물'(sacrifice)을 의미하였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첫 수확물'을 뜻하였다(Beasley-Murray). 이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하게 된 것을 나타낸다(출 23:19;느 10:35;잠 3:9;약 1:18).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 새 예루살렘성에 참예하지 못하고 영원한 유황 불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참예하는 자들 중에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 있다(22;15). 반면에 본문의 십 사만 사천은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이는 습 3: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들이 '흠이 없는 자' 즉 생활이 정결한 자이며 지상에 있는 동안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순결을 간직한 자들임을 시사한다(히 9:14;벧전 1:19).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8:13에서 독수리가 공중에 날아가면서 큰 소리로 땅에게 거하는 자들에게 화(禍)를 선포하는 것과 유사하게 본절에서는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며 '큰 음성'(7절)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이 '복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 )은 본서에서 이곳에만 나타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알리는 복음이 아니라 7절에서 언급된 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며 그의 심판을 알리는 내용이다. 천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인정할것을 불신자들에게 선포하고 있다(Morris, Mounce).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 '큰 음성'으로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듣고 경외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Morris).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의 내용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곧 이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실 것임을 암시한다(13:7). 그러기에 당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려야만 하는 것이다. 천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을 선포함으로써 회개를 촉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타락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직도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벧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었던 자로다 하더라 - 둘째 천사는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음행을 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만들었던 큰 성 바벧론의 멸망을 예고한다. '큰 성 바벧론'은 단 4:30을 반영한다. 이는 세상 권세의 모형이며 불신과 부도덕이 팽배한 대도시를 상징한다(사 14장). 구약에서 바벧론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던 적이었으며사 21:9;렘 50:2;51:8) 본절에서 바벧론은 하나님께 반항하며 대적하는 배도적인 국가를 상징한다. 본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 제국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권력을 사용하여 교회를 핍박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 정황과 묵시문학적 표현 방법으로 보아 바벧론은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Morris, Swete). 그러나 바벧론이 단순히 로마 제국만을 의미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로마 제국은 물론 모든 시대에 걸쳐서 교회를 핍박하는 권세와 하나님을 부인하고 반대하는 세상 권세를 상징한다(Johnson, Morris).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 오이누 투 뒤무테스 포르네이아스'(* )는 병렬오 된 두 개의 문장, 즉 '음행의 포도주'와 '진노의 포도주'로 번역될 수 있다. 이는 렘 51:7, 8을 반영한 것으로 사단으로 인한 악이 모든 나라들로 취하게 하여 하나님을 대
적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14: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 6절에서 선포하고 있는 천사의 메시지는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본절도 6절부터 계속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것 역시 불신자들을 향한 천사의 메시지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절은 혹자의 주장대로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계속하면'이란 의미를 지닌다(Beasley-Murray). 즉 7절에서 세상을 심판하실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경배하라는 천사의 선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경우를 나타낸다. 설사 불신자들이 짐승에게 경배한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회개와 믿음으로 천사가 전하는 용서와 구원의 '영원한 복음'(6절)을 받아들일 경우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짐승에게 경배할 경우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10절)를 마시게 될 것이다.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는 '포도주 잔'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이다(욥 21:20;시 75:8;사 51:17;렘 25:15-38).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 즉, 물을 섞지 않은 순수한 포도주는 독주에 해당할 만큼 그 농도가 짙어 사람들이 그것을 마시게 되면 금방 취하여 인사불성이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는 매우 맹렬하여 한번 당하면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파괴력으로 번죄한 인간을 엄하게 심판하신다(신 75:8;사 51:17). 한편 본절에서 '진노'로 번역된 헬라어들은 비록 개역성경에서는 동일하게 번역되었으나 서로 다른 두 개의 단어이다. 처음 '진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무'(* )는 뒤에 나오는 '진노'의 헬라어 '오르게스'(* )보다 감정적으로 격한 것을 나타내며 '오르게스'는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분노를 나타낸다. 대개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단어는 신약에서 이 후자이며 '뒤무'는 본절과 롬 2:8절에서만 사용된다. 이렇듯 '진노'에 대해 다른 두 단어가 사용된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분명한 사실로 엄중하고 공의로움을 시사한다(Ladd).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 '불과 유화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였던 자들에게 내려질 마지막 심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 마지막 부분에서 자주 나타난다(19:20;20:10;21:8). 이것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받을 형벌이가도 하다(20:10, 15;사 34:9, 10;눅 16:23).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 '쉼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은 13절에서 성도들이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그들의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는 것과 연결된 표현으로 그들이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이 영원한 것임을 시사한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영원한 지옥 형벌에 관한 것을 온전한 기독교 교리로 보지 않고 '준 기독교적'(sub-christian)인 것으로 본다(Glasson). 이들은 배교한 자들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는 사실이 예수의 가르침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저버린 자들이 받게 될 고통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reston, Hanson). 그러나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까지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자들의 죄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져야 함을 예수께서 치히 밝히고 있는 바이다(막 9:43, 48;눅 16:19-31, Mounce). 짐승을 경배하며 그를 끝까지 따라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한 것이다.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짐승과 함께 그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영원한 고난에 처하게 되는 반면에(10, 11절) 성도들은 믿음을 끝까지 지킴으로 인해 짐승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고통을 당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는 받지 않으며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은 본절에서 성도들에게 인내로 하나님과 예수께만 충성할 것을 권면한다. 그 충성은 어떠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에 대한 믿음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 믿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피스틴 예수'(* )는 예수님이 공급하시는 믿음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예수께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14:13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 본절은 본서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복 중 두번째 복에 해당한다. 이것은 내용상 12절과 연결되어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켜 인내할 때 순교를 각오하였음을 아밋한다. 믿음을 지켜 순교하였다면 그들에게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이 보장되어 있기에 그들은 복 있는 자들이다(Mounce). 본절의 '자금 이후로'는 두 가지 해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1) '자금 이후로'가 무엇을 수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1 혹자는 '죽는'을 수식한다고 주장한다(Charles, Plummer). 2 혹자는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를 수식한다고 주장한다(Mounce). 두 가지 견해 중 문맥상 뜻을 분명히 해주는 것으로 보아 전자가 타당하다. (2) '자금 이후로'에서 '자금'이 어느 때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1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ffatt). 2 혹자는 성도들이 죽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ckwith). 3 혹자는 사도 요한이 본 환상, 즉 최후의 심판 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ford). 세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저희 행한 일이 따름이라'에서 성도들이 행한 '일'(* , 에르가)은 핍박에 대한 '인내'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예수께 대한 '믿음'(12
절)을 가리킨다. 이러한 그들의 일은 수고와 동일한 것으로 그들이 사단의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지치도록 인내하고 믿음을 지켰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켰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킨 그들은 죽은 후에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14:14
 또 내가 보니 희 구름이 있고 구름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에 대해서 혹자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rris) 심판하러 오시는 재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Ladd, Charles, Johnson). 한편 '흰 구름'은 마 17:5의 '빛난 구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하늘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신다(1:7;마 24:30).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 '금 면류관'은 성육신과 부활을 통해 사단을 이기신 스리스도의 승리와 세상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통치권을 나타낸다(6:2;19:12). 또한 '손에 이한 낫을 가지신 것'은 욜 3:12-14을 반영한 것으로 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권을 의미한다. 성육신과 부활로 사단에게 승리를 거두시고 복음을 선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세상에 대한 종말적인 심판을 통해 추수하시려 재림하신다(15절;마 13:37-43;요 4:35-38).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 추수하라는 명령을 그리스도에게 전달하는 '또 다른 천사'(7:2;8:3;14:6)는 '성전'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수에 대한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7:15). 또한 '또 다른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다(Ladd, Mounce). 한편 본문에 나타난 추수 비유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호 6:11;욜 3:13). 특히 구약성경에서는 바벧론을 심판할 때 사용되었으며(렘 51:33),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도 최후의 심판을 추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마 13:30, 39). 그러나 비록 추수 비유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 할지라도 본절에서는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모으는 것 즉 백성의 구원을 묘사한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포도 수확의 비유로 묘사되기 때문이다(17-19절).
 
=====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부려서 일을 하실 수도 있으나, 혹자의 지적대로 성도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은 친히 낫을 휘두르신다(Ladd).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 성도들의 수확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다(16절).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한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은 천사가 수행하게 된다(18절). 여기서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다는 것'은 15절과 마찬가지로 불신자에 대한 심판의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을 암시한다.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 으로부터 나와 -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제단'은 6:9과 8:3-5의 기록으로 보아 의인의 기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Morris). 이것은 핍박받는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 최종적인 결과로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일어남을 암시한다(Mounce, Morris, Ladd). 한편 이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에 대한 설명은 주어져 있지 않다. 외경에 따르면 천둥, 바다, 우박, 눈, 비등의 자연을 천사들이 각각 받아서 다스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I Enoch 60:11-20). 여기서 언급된 천사는 8:3-5에 기록된 대로 향로에 단위의 불을 담아 땅에 쏟는 천사와 동일한 천사인듯하다. 불이 신약에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마 18:8;눅 9:54;살후 1:7)불 가진 천사는 아마도 심판을 유도하는 듯하다.
 이한 낫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 포도를 추수하는 것은 성경에서 심판을 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사 63:2-3;욜 3:13). 여기서 '포도가 익었느니라'는 악한 자들의 불신과 죄악이 절정에 달하였고 성도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신원의 때인 최후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시사한다.

=====14:19
 천사가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전지매 - '땅의 포도'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며 짐승과 사단을 추종하는 모든 불신자들을 지칭한다(Mounce). 이러한 포도는 수확의 때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게 된다. 수확된 포도를 포도주 틀에 넣고 포도즙을 짜는 행위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대적에게 맹렬하신 진노를 발하시는 것의 비유로 나타난다(19:15;사 63:3;애 1:15;욜 3:13). 이것으로 보아 본절은 짐승과 사단의 추종자들이 이 땅 위에서 성도들을 무참히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했듯이 그들도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을 당할 것을 시사한다.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 '성'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구약의 예언, 즉 최후의 전쟁이 예루살렘 근처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기록에 따라 이 성이 예루살렘성을 가리킬 것이라고 주장한다(Beckwith, Ford, Swete). (2) 혹자는 사도 요한이 본서 다른 곳에서도 '성'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11:1, 2;20:9) '하나님의 성' 혹은 '새 예루살렘성'을 뜻한다고 주장한다(11:1;21:2, 10, Beasley-Murray, Kiddle, Charles).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성'은 구원받은성도들의 무리가 거하는 곳을 가리키므로 '성 밖에서'라는 말은 구속받은 성도의 무리에 들지 못하고 멸망가운데 처하였음을 나타낸다(Johnson, Charles). 한편 '피가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는 위경에도 나오는 표현으로(에스더하 15:37) 악인이 당할 극심한 고통을 가리킨다. 또한 피가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는 말은 320Km에 해당하는 1,600 스다디온 만큼 대적자들의 피가 흘러 하나님의 심판이 엄중함을 의미하며(Ladd, Johnson) 동시에 땅의 수인 4의 제곱에 완전수인 10의 세제곱이 곱해지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도 예외없이 전세계의 '성밖에 있는' 모든이에게 미치게 됨을 시사한다(Morris, Mounce).

 

 

 

 12장 마지막절에서 땅에서 사단이 성도들 개인개인을노리기 위하여 활동함을 살폈다. 그런데 사단이 어떻게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하여 오겠는가? 그 두가지 측면을 13장에서 살펴 보았다. 제도와 조직이라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거기에 정신을 불어 넣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음을 보았다.

 그러면 거기에 맞서있는 성도들은 도대체 어떤 제도와 조직, 그리고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가? 그 문제가 앞의 두 힘과 합하여 역사속에서 힘의 원리를 이루어서 늘 영적인 전쟁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4장에서는 우리가 성도들이 가진, 그리고 세상을 대항하는 제도와 조직,그리고 정신을 살펴보게 된다.

제 4막 제 4장 거룩한 나라
(계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것이 있도다 (계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계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자가 없더라 (계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여기서 13장의 암울한 모습과 전혀 대조가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하여서 놀랄 정도로 다양한 해석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핌으로 본문의 의미를 살펴 보자.

 아마도 가장 정당한 대조는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그리고 나서 용이 활동하는 두 짐승이 등장하였다. 짐승으로 등장한 것은 저들이 하는 일의 성격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2:17과 대조되는 표현이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다.
(계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바다 모래위에 선 용[사단]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시온 산에 서 있는 어린 양[예수 그디스도]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의 무리와 그의 복음을 차례대로 보게된다.

 우리가 먼저 살필 내용은 어린양에계 속한 무리가 누구인가하는 문제이다. 본질적으로 내릴수 있는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교회)라는 것인데 해석상의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에 본문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l.시온산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즉 하늘의 장면인가,아니면 땅에서 일어날 장면인가? 혹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장면인가? 앞으로 되어질 일인가, 아니면 지금도 있는 일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서 사실상 요한계시록 자체는 우리에게 분명한 대답을 해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물론 보는이에 따라서 달리 주장하거만).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린양이 선 시온산이라는 장소의 문제이다. 시온산은 예루살렘 동남쪽의 구릉지대,성전,예루살렘의 성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또한 포로시대 이전 유다의 전 영토와 이스라엘의 전 족속을 의미 할수도 있다.
 예언적인 표현에서 시온은 메시야가 구속받은 많은 무리를 자기에게로 모은 장소로 상징하게 되었다(시48:l-,사24:23,욜2:32,옵l:17,21,미4:l,7,슥14:l0).

 신약성경에서 시온이 일곱번 나타나는데 그중에서 다섯번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이요,두번이 다른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이 본문이요, 다른 한 부분이 오늘 본문과 연결되어서 나타나는데 바로 그 부분이 오늘 본문의 의미를 밝혀준다고 생각이 된다.
(히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12: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여기에서 시온산을 무엇이라고 연결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시온산은 하늘의 예루살렘과 하늘ㄹ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앞서간 의인들의 영들과 영들과 예수께서 계신 곳이라고 나온다. 이 내용을 구약의 예언적인 전승의 의미에서 본다면 메시야가 통치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그분이 시온산에 서신 것은 바로 메시야시대라는 것을 나타내며 거기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의미와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온산이 하늘에 있는가,땅에 있는가라는 문제가 등장을 하는데 이 문제는 다음의 다른 문제(현재적인가,미래적인가)를 살피다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의 이 장면이 현재적인가 미래적인가를 물어야 한다.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 시온산에 십사만사천 명이 함께 서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서 이 장면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이유로 미래의 장면 즉 새하늘과 새땅이 완성된 이후의 모습이라고 한다. 물론 계시록의 장면만으로는 그러한 해석이 가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살핀 히브리서 12장의 내용을 살핀다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시온산은 하늘에 있는 것(하늘의 예루살렘으로 말한다)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시온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미래적인가? 히브리서 12:22에서는,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과 하늘의 예루살럼"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르는 어떤 곳이 아니라 이미 이른 곳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도 하늘의 시온에 이르러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온산의 144,000명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교회]이다. 비록 이땅에서 아직 활동하고 있다[두 증인으로]고 하더라도 땅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시옷에 거하는 존재들이며, 천사와 그리스도와 앞서간 성도들과 구분된 존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 땅에서 존재하는 악의 제도와 규범(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대조)을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2.하나님의 나라[시온산의 144,000명]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특징은 앞에서 다룬 짐승의 특징과 대조가 되어서 저들이 짐승과 싸우는 싸움의 성격과 짐승이 이들을 핍박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게 된다.

1]신분과 소속이 전혀 다르다.
(계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것이 있도다
 이는 13:16과 대조를 이루는 특징으로 짐승과 그의 세력에 동조하는 자들은 그 소속이 바로 짐승과 사단임을 나타내는 짐승의 푤,ㄹ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전혀 반대로 어린양의 이름과 성부의 이름이 그 이마에 쓰여있다(이 상징의 의미는 7장의 내용을 참조하라). 같은 장소에 살아도 전혀 그 소속이 다른 것이다. 여기에 어린양과 성부의 이름이 쓰인 것은 그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종임을 나타낸다(7:3).

2]구속의 감격으로 사는 자들이다.
(계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계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자가 없더라

 여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누구냐에 대하여서 말이 많다. 5:8-10에 의하면 거문고와 새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천사들과 연결이 되기에 여기서도 천사냐 아니냐하는 문제를 자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3절에서 나오는대로 구속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인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 노래를 2절과 같은 무리로 보고 2절과 144,000명로 보든지 다르게 보든지 의미에 근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다음의 몇가지 사실이다.

①구속함을 받은 사실때문에 제사장 나라가 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②그들의 노래는 "새 노래"이다. 새 노래라는 말은 시편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96:l,98:l,144:9등) 그 주제는 구원이다. 즉 이 노래는 마음에서 새로운 감사와 기쁨의 고동에서 나오는 노래인 것이다.
③이 감격은 오로지 구속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누리는 삶이다(롬14:17참조).
 *본문에서 "배우다"는 말은 깊이 듣다는 의미일 것이다

3]이 사람들의 삶의 특징
(계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 나온다. 이것은 짐승의 제도와 전혀 다른 삶의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짐승으로 하여금 더욱 미워하여 핍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저들의 삶의 특징은 무엇인가?

①정절이 있는 자이다.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라는 말로 저들의 정절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어떤이는 이것을 결혼을 하지 않는것으로 보려하나 성경은 결혼을 금기시 하지 않는다(엡5:31-32,마19:4-6). 또 어떤이는 이를 음욕과 간음을 경험하지 않는 자들로 보려고 하지만 그것이 높은 덕임에는 들림이 없으나 구속받은 자들의 표지로까지 높일 수 있느냐하는 것은 어렵다.
 이것은 구약에서부터 연속되는 비유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구약은 이스라엘은 "처녀 딸 시온"이며(왕하 19:21,애2:13), 저들이 우상숭배에 빠졌을때 음부와 행음하였다(렘3:6,호2:5)고 한다. 이 비유가 신약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정결한 처녀이며(고후11:2) 그리스도의 약속된 신부(계21:9)이다. 그러면 정절이 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17:2에서 바벨론으로 더불어 음행을 저지르지 않은,즉 세상제도와 정신의 유혹을 받지 않은 것을 말한다(여기서 성의 혼동은 상징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세상의 가치관과 삶의 유혹을 거절한 자들인 것이다. 이 첫번째 비유는 구속받은 자들의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

②모든 길에서 어린양의 추종자들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한다. 이는 세상 가치관을 거절할 수 있는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의스승이며,주인이며,왕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의 생활과 교훈을 따라서 사는 신앙인의 가치관을 가리키는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막8:34). 이는 제자의 도리를  강조한 것이다.

③저들은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기에 세상이 하는 말과 대조되게 혀에 거짓이 없다.
 구속을 받아 처음 열매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약1:18). 구약성경에서 첫열매는 하나님께 드려거는 제물을 가리키는 말이다(신18:4,26:2,렘2:3). 저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거짓된 혀가 없다는 것인데 이는 메시야시대의 특징이다(습3:13).
 특별히 여기서 흠이 되는 거것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고 짐승의 교훈을 따르며 우상에게 경배함으로 그에게 힘을 주는 짐승숭배자들의 모독을 말한다(21:27,22:15,요8:44,45...). 그러므로 이러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단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로 등장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와 모습이 바로 세상의 제도와 가치속에 활동하는 짐승이 싫어하며, 저들의 편리와 만족만 추구하는 삶과 대조가 되기에 오히려 핍박을 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이 땅에서 사단의 짐승들과 대항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제 4막 제 5장 진리의 복음
 여기서 다루게 되는 내용은 두번째 땅에서 나오는 짐승과 대조되는 내용이다. 두번째 짐승은 첫번째 짐승의 제도와 조직에 힘을 주는 정신이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등장하는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이루는 복음을 보여주고 있다.

(계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14:9)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여기에서 부터는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복음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천사가 등장 하거나 "또 들으니"라는 형태의 일곱개의 사건이나 외침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전반부 네가지는 지금 살피는 복음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고 마지막 세가지는 그 복음이  세상을 향하여 마지막에 어떻게 시행될 것인가(심판)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 네가지 사항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힘과 정신을 지탱시키는 복음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세상은 저들의 제도와 사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으로 실아갈 뿐 아니라 동시에 복음으로 여전히 저들을 초청하고 있다. 그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참으로 영생을 허락하는 것은 제도와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복음밖에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복음은 계속적으로 증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전파되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1.첫번째 천사의 외침-하나님이 경배의 대상이다.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땅에 거하며 짐승을 숭배하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고 계신다. 그런데 저들을 부르는 내용이 무엇인가?
①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②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는 사실때문이다.
③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
 문제는 이 내용이 진정한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틀림없이 이는 영원한 복음의 본질임에 틀림이 없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메시지의 의도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경외하며)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복음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좁은 개념으로 인하여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경의) 두려워하는 믿음과 오로지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참된 목적을 빨리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추구하게하는 삶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이기는 것이 이길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은 분명한 복음의 표현이다. 복음은 구원과 함께 항상 진노와 심판을 외치는 것이다. 심판과 진노가 없다면 구원이란 말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지 복음의 요청은 땅의 짐승들이 아니라 오로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 우리의 참된 경배자가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2.둘째천사의 외침-세상의 멸망을 외친다.
(계14:8) 또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둘째 천사의 외침은 바벨론이 멸망하였다는 외침이다. 이것이 어떻게 복음의 내용으로 등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역설적인 측면에서의 놀라운 복음의 표현이다.
 그 의미를 밝히기 위하여서 바벨론의 정체를 먼저 생각을 해보자. 바벨론이라는 말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내용에 배경을 두고 설명하는 것이다. 특별히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남쪽 유다나라의 언약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괴로움을 당하던 나라이다.
 이 나라에 대하여서 이사야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사2l:9)라고 하였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의 큰 자랑거리였으며(단4:30) 독한 포도주로 열방을 취하게 만들어(렘51:7) 자신들의 신을 바벨론의 신과 바꾸어 간음을 행하게 하였다. 이러한 영적인 적용을 베드로는 로마에게 적용시켜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불렀다(벧전5:13).
 이 바벨론은 우상제도와 거짓 선지자의 활동을 나타내는 세상의 모습이다(13장의 두 짐승). 이들의 실제적인 심판은 아직도 미래의 일이다(계17,18장). 그런데 복음은 분명히 저들의 멸망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저들의 멸망이 확실한 것을 알기에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예언적 각거), 이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 복음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계속 추구하는 그 바벨론이 무너지고 망한다는 사실을 복음이 아니고서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3.셋째천사의 외침-미래를 생각하고 현제를 인내하라[개인적인 도전]
(계14:9)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복음은 이제 개인적인 도전과 경고를 하고 있다. 이 복음의 본질과 세상의 멸망의 사실을 앞에 놓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길은 두가지 밖에 었다

1]현실을 편하게 사는 방법
 첫번째 방법은 세상속에서 현실을 지혜롭게 이용하면서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 길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는 삶이라고 한다. 이는 13장에 나타난 삶의 방법이며, 14:6,7에 나오는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삶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들이 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거절하는가? 그것은 8절에서 설명한대로 그가 속한 바벨론이 멸망할 존재라는 사실은 바라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음행"의 그 삶이 현실적으로 편하고 실재적인 자기의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가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끝이다. 끝이 어떠한가?
①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진노의 잔에 대한 표현은 구약에 자주 등장한다(시75:8,사51:17,22,렘25:15,49:12,애4:21,겔23:31-35,합2:16).
②그 포도주는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19장에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신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며(창19:4) 그 일은 어린양의 임재 앞에서 되어질 것이다. 이 사실은 저들에제 더욱 큰 비탄에 빠지게 하는데 "그를 믿기만 했더라면"하는 후회를 하게 만들 것이다.
③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고난이며 세세토록 계속되는 고난이다(시34:9,l0). 즉 이제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2]또 다른 삶의 방법은 무엇인가?
 현실속에서 인내하면서 사는 삶이다. 인내라는 말이 무엇을 전제로하는 말인가? 바로 고난과 어려움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과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방법이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삶은 어떤 성격의 삶인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삶이다. 여기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내용은 예수의 믿음을 지킨다는 말은 바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결과는 어떠한가? 땅에서 그들의 모습이 바로 13절에 이어진다. 핍박을 받고 죽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결과는 아직도 이래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본질적인 미래를 15:2-4에 설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복음은 이 두가지 삶을 두고 계속격으로 세상을 향하여 개인적인 결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신앙인을 향하여 지속적인 인내의 삶을 권면하고 있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4.네번째 외침-신앙안에서 죽은자에게도 동일한 복이 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복음의 내용은 또 다른 변증을 하여야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고 끝내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모습에 처하게 될때에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서 하늘로서 나는 소리와 성령의 화답이 다시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1]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실패자나 억울한 자가 아니라 복있는 자라고 선언한다.
2]이 사실에 대하여서 성령이 "그러하다!"라고 화답하면서 그 이유를 말한다.
①저희는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별희 저희가 수고를 그치게 되었다.
②저희의 행한 일이 저희를 따른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을 따르면서 땅의 쾌락을 맛보고 살아가고 있지만 저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성도들은 하늘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놀라운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내용인 것이다.

 사단은 땅에서 나오는 짐승을 가지고서 자기의 정신을 펴뜨리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이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역사는 이렇게 사단의 두 짐승(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복음의 골 깊은 싸움에서 역사의 흐름이 있으며, 그 역사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결정이 나게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움직여지는 힘의 원리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사단의 공격으로 나타나는 영적인 싸움임을 13,14장을 통하여서 살펴 보았다. 그 싸움은 단순히 마지막 어느한 때의 싸움이 아니라 역사 전체의 싸움임을 기억하여야 하며,그러한 안목에서 우리는 역사를 올바로 평가하는 신앙인의 올바른 역사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단의 엄청난 공격과 핍박속에서 교회[하나님 나라]와 성도들은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다시 기억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계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마귀의 때는 얼마 못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마귀가 크게 분내어 여자와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발견하였으나 이제는 마귀가 내어 쫓긴 땅 전체가 그 때가 다하여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된다.

제 4막 제 6장 마지막 추수
(계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계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계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계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계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계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계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이제 마지막이 되어서 땅에 심판이 임하게 됨을 보게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4-16절에서 이미 한 번의 심판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데, 다시 17-20절에서 심판이 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일한 실재를 다른 측면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임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추수의 의미
 그러면 두가지 측면이란 무엇인가? 두 종류의 곡식인가? 아니면 한 종류에 대한 두가지 내용인가? 이 문제도 그리 쉽지는 않지만 곡식추수가 의미하는 상징에서부터 설명을 하여보자.

①구약에서 추수의 의미
 추수의 상징은 구약에서부터 시작을 하고 있다. 그 중에 몇구절을 확인하여 보자.
(호6:11)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욜3: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밞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렘51:3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마당과 같은지라 미구에 추수 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추수때라는 게념은 이렇게 나라의 멸망이나 악에 대한 심판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②신약에서 추수의 의미
신약성경에서도 추수의 의미는 자주 등장을 한다. 신약에서 추수를 말할 때는 "하나님 나라"로 사람들을 모으시는 것을 자주 나타내고 있다(마9:37,38,막4:29,눅10:2,요4:35-38). 그러나 동시에 종말론적으로 추수의 의미가 사용이 될 때에는 선택받은 자만이 아니라 악인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렇게 추수의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를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추수의 종류가 몇인지를 밝히는 부분은 없다. 단순히 두번의 추수에 대한 비유 자체가 두 종류의 추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더우기 앞의 것을 알곡의 추수 뒤의 것을 심판의 열망의 추수라고 하나 마태복음의 비유대로라면 오히려 그 순서는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첫번째 추수는 밀의 추수요, 두번째 추수는 포도의 추수로 이 두가지는 기본적인 농산물이요 그것으로 만들어진 빵과 포도주는 기본적인 음식물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추수의 내용은 두 종류의 대상을 거두는 구체적인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 거둔다(추수)는 상징의 의미에서 모든 역사의 시대를 마무리짓는 포괄적인 내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다.

2.첫번째 추수의 강조점
 위에서 살핀대로 첫번째 추수의 장면(14-16)은 특별하게 선인이냐,악인이냐를 가리거나 나눌 수 없는 일반적인 표현임을 생각하였다(두번째는 악인의 심판에 강조점을 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첫번째 추수의 장면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그 심판의 주관자가 누구냐하는 문제이다.
 추수가 역사를 마무리짓는 사건이라면 이것을 주관하는 자가 누규냐하는 문제는 앞에서 역사속에서 일어나는 네 힘(하나님 나라,복음→삭단의제도와 정신)에 대한 중요한 결판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참으로 승리자냐 하는 문제는 이 심판에서 누가 심판자냐 하는 문제와 직접 연결이 된다.
 
 그러면 이 심판의 주가 되시는 분은 누구인가?
(계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여기에 나오는 이가 누구인지에 대하여서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 15절에서 천사가 명을 내려서 추수를 하는 것으로 보아서 여기의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일종의 천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15절의 표현은 천사가 스스로 명령을 내리는 자로 등장하는 자가 아니라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표현이 되는데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쟁소를 나타내기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지 자기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두번째의 대답으로 여기의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는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사람의 아들같은 이로 등장을 하고 있는가?
①다니엘7:13의 인물과 동일성을 이루기 위함이다.


다니엘7:13一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여기의 등장하는 인자같은 이를 그리스도로 보는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본인의 다니엘 강론을 참조하라)

②왜 하필이면 인자로 등장을 하는가?
 그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설명하실 때 인자(좀 더 정확하게는 "그 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 뿐 아니라 재림의 영광에 특별히 사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26: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요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독특하게 인자됨이라는 말과 심판의 권세가 하나로 연결이 되어서 나타나기에 특별히 인자같은 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이제 더이상 구원을 허락하시는 메시야가 아니라 추수하시며 심판하시는 메시야로 나타나고 계시는 것이다.

③머리의 면류관과 손에 낫을 들고 계심은 위의 내용과 자연히 연결이 된다.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심을 면류관으로 표시하고,추수하심을 설명하기 위하여 낫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첫번째 밀 추수의 장면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밀 추수 사건자체에 대하여서는 자세한 설명이 생략이 되고 있다.
(계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계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땅의 것(밀)을 추수하였다는 말로 끝이 나지 그 이상은 설명이 없이 중단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그 추수의 결과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것이 의인의 추수의 목적이라면 "곡간에 간수하였다!"라고 표현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전혀 그러한 표현을 생략한 것은 강조점이 추수의 결과가 아니라 추수하는 것을 주관하는 심판가 인자같은 이, 즉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3.두번째 추수의 강조점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 마지막 심판을 주관하시는 것이 바로 인자시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는가? 아마도 그 대답은 당연할 것이다. 그 당연한 대답을 17-20절에서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성도의 기도의 응답
 두번째 포도추수의 장면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지막 심판이 바로 성도의 기도의 응답이라는 사실이다.
(계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불을 가진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 마지막 심판의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제단이라는 말이 요한계시록에서 독특햐 의미로 등장을 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 속에서 고난을 당하는 성도의 기도와 연결이 되는 것이다.
(계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계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제단으로부터 가지고 나오는 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임을 8장에서 설명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기도의 응답이 무엇이겠는가? 피퍼를 신원하여 주시는 것이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이 제단으로부터 불을 다스리는 천사의 명령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바로 이 심판이 성도의 기도의 응답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2]천사의 손에 들린 이한 낫
(계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이 부분에 등장하는 천사와 앞에 나온 인자와의 관계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 부분에서 강조점은 누가 심판을 하느냐가 아니기 때문이며, 동시에 심판의 주관자가 앞에서 본대로 인자이신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분은 천사들을 보내어서 그 일을 시행하시기 때문이다(마13:40-42) .

3]심판의 대상과 결과
(계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계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위에서 이 심판이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자연히 그 심판의 대상은 악인들이다. 그래서 저들에게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진노의 심판 인 것이다.
 이 심판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 기록을 보여주는 구약의 내용을 살핌이 필요하다.
(욜3: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욜3:12)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욜3: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밞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욜3:14)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요엘은 하니님의 백성의 대적인 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포도를 추수하여 포도즙을 짜는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 저들이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서 밟히게 됨은 가득차고 넘치는 저들의 악이 심판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장소가 성밖(원래 성밖이란 고난의 장소이다. 히13:12,요19:20 참조)이라고 표현하는데 요엘이 말하는 여호사밧 골짜기(슥14:l-4 참조)라는 말과 잘 연결이 되고 있다. 여기서 여호사밧 골짜기란 실재적인 장소를 의미하기 보다는 그 말의 의미인 요엘 3:14의 판결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하여 저희들의 악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들에제 진노의 심판이 임함으로 퍼지는 피의 모습도 구약적인 모습에서 설명이 되고있다.
(사63: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사63: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사63: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여기서도 나타나는 내용이 포도즙 틀을 밟는 행위가 하나님께서 진노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등장을 하며 땅의 포도란 의를 완강하게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적이 된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진노의 결과가 피가 말 굴레까지 닿았고 1,600스다디온(296Km)이 되었다고 한다. 이 모습은 이사야 63:6에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는 표현과 연결이 된다. 이는 심판의 처참함을 나타내는 회화적 표현이다.
 그러면 왜 l,600스다디온인가? 그것은 두로에서 애굽 경계까지 즉 이스라엘의 남북의 길이로 모든 영역에 심판이 이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어떤이는 상징적인 방법으로 4X4X102으로 보아서 전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말은 이사야 63:6의 모습(사실상 "쏟아지게 하다"라는 히브리어가 자음이 요단강이라는말과도 일치한다)에서 부터 그 피의 흐름의 모습이 요단강의 길이(1,600스다디온)를 표시함으로 요단강같이 흐르는 피의 강을 나타내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지 심판의 주는 인자이신 그리스도시며,그분이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원수를 심판하심으로 인류의 역사는 완성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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