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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본절에서 8절까지는 18:20의 응답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 '허다한 무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2) 혹자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rris, Ladd).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본장에 나타난 찬양은 18:20의 응담이며 18:20에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라고 부르고 있고 본서에서 순교자를 비롯한 하나님의 성도들과 천사들이 함께 찬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7:9). 이러한 허다한 무리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서 성취된 구속 사역과 그 사역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한다(7:10;12:10).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 '할렐루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할렐루이아'(* )는 히브리어 '할렐루야'(* )를 음역한 것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이다(시 111:1;112:1;113:1). 이것은 전형적인 히브리어 어구로 초대 교회의 예배가 유대교의 회당과 성전 예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Johnson). 한편 '구원과 영과의 능력'은 허다한 무리들이 찬양하는 주재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단을 비롯한 악의 무리를 공의로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그 세력에서 온전히 구원하여 주신 것과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거룩하심과 영광을 찬양한다.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갚으셨도다 - 본절은 앞절에서 행한 찬양의 근거를 제시한다. '참되고 의로운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 본서의 앞부분에 언급된 찬양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참되고 의로우심'은 계속적으로 나타난다(15:3;16:7).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모든 행위와 마음까지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가 행하신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것이다(겔 11:5;요 2:25;요일 3:20). 본절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음녀의 죄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음녀의 행위'는 온 세상을 미혹하여 부정한 죄를 짓게 한 바벨론의 행위를 가리킨다(14:8;17:2;18:3).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변질 시키고 창조주께서 행하신 사역을 파괴하려는 행위이다.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 본문은 다섯째 인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순교자 들이 하나님께 신원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 지다리라고 말씀하였으나(6:9-11) 이제는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Ladd). 하나님은 자기 종들의 원수를 갚으시는 분이다(신 32:43).

=====19: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 본절의 '할렐루야'는 1절과 같은 의미로 하늘에서 행해진 찬양의 재연(heavenly encore)이다.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는 사 34:10을 반영한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해 바벨론이 온전히 멸망당할 것을 상징한다. 한편 '하더니'속에 내포되어 있는 '카이'(* , '그리고')가 혹자의 주장대로 히브리 어법상 상황을 이끄는 절(circumstantial clause)이라면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는 상반절에 나타난 '할렐루야'라고 찬양하는 이유가 된다(Charles, Mounce).

=====19: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은 5:9, 10에서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의 구속하심에 대해 찬양하였으며 '이십 사 장로'는 11:17, 18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심판하심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반면에 이들은 14:3의 구속받은 자들의 찬양에는 침묵을 지키다가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찬양에 화답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심을 강조하고 있다(Beasley-Murray). 한편 '아멘 할렐루야'는 시편 4권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시 106:48, Mounce, Johnson, Beasley-Murray).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 '보좌 에서 난 음성'은 '보좌'로 인해서 하나님의 음성이나 어린양의 음성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사실상 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나 어린양의 음성을 의미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으로 본다면 '우리 하나님께'라는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어린양의 음성으로 볼경우 역시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현보다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요 3:12;요 20:17). 그러기에 학자들에 따라 이 음성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 혹자는 보좌 가까이에 있는 장로들이나 네 생물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Beasley-Murray). (2) 혹자는 천사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Mounce).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 본문은 시 113편과 115편을 반영한다. 즉 '하나님의 종들...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시 113:1을 인용한 것이며,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는 시 115:13을 인용한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은 순교자와 같은 특별한 그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문구인 '경외하는'과 '무론 대소하고'가 믿는 자들의 상황이나 지위 고하, 신앙의 성숙도와 관계없이 보편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 요한은 자신이 들은 음성에 대해서 헬라어 '호스'(* , '같고')를 세 번 사용하여 어느한 가지로 비유할 수 없을 만큼 그 소리가 장대하며 웅장함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찬양하는 자들에 대해 혹자는 천사의 무리라고 주장하고(Ladd) 혹자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한다(Johnson). 본절의 찬양자들은 1절과 연관된 것으로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 '전능하신 이'는 신약성경에서 본서 외에서는 단 한번 밖에 나타나지 않으나(고후 6:18) 본서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하나님의 칭호이다(1:8;4:8;11:17;15:3;16:7;21:22). 이 칭호는 요한 당시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을 '우리 주 하나님'(out Lord and God)이라고 부른 것과 상관성을 갖고 있다. 요한은 '전능하신 이'라는 칭호를 신약성경의 다른 성경보다 현저하게 많이 사용하여 오직 여호와 만이 유일하고 모든 능력을 소유하신 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통치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실류센'(* )은 행위의 시작을 강조하는 부정 과거 시상으로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렇듯 요한은 부정 과거 시상을 사용하여 앞으로 있을 종말론적 사건이 완전하고도 분명하게 성취될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Ladd).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한 모든 적을을 정복하실 주줬을 소유하고 계심을 강조한다(Johnson).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의 헬라어 '카이로멘 카이 아갈리오멘'(* )은 본절 외에 신약성경에서 단 한번 나온다(마 5:12). 마태복음에서 이 표현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핍박을 당하고 욕을 당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큰 상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들에게 주어질 큰 상은 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의 참여이다(Mounce, Morris).
 어린양의 혼의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혼인'에 대한 비유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시온이 하나님의 아내로서 나타난다(렘 2:2;호 2:14-22). 그러나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내로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는 대부분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신실하지 못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신 바 있으며(마 22:2-14;25:1-13;눅 14:15-24) 바울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즉 혼인 관계로 비유하였다(고후 11:2;엡 5:25-27). 한편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는 '헤 귀네'(* )이다. 혼인 잔치가 배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뉨페'(* , '신부')를 사용하지 않고 '귀네'를 사용한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결혼법상 약혼한 사이 곧 신부도 아내로 불리고 있다(마 1:20). 또한 본서에서도 '귀네'와 '뉨페'는 서로 혼용되어 동일한 것으로 묘사된다(21:2, 9, 10). 본절에서 요한은 이제 약혼의 기간이 지나 완전하며 종말론적인 어린양과의 혼인이 성취될 때임을 선언하고 있다(Johnson, Ladd).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음녀의 복장 즉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한 자주 빛과 붉은 빛 옷'과 대조를 이룬다(17:4;18:16). 여기서 '빛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람프론'(* )은 영광과 광채를 묘사하며(마 13:43) '깨끗한'의 헬라어 '카다론'(* )은 정결과 충성 그리고 신실함을 나타낸다(21:18, 21, Johnson). 어린양의 아내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는 이 세마포는 오직 남편되신 어린양의 피로 정결케 되었다(7:14, Ladd). 한편 '옳은 행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마타'(* )는 문자적으로 '법령' 혹은 '옳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복수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법령'이라 다의미로 받아들여 믿는 자들을 의롭다 칭해주시는 칭의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rris). 이견해에 따르면 복수가 나타내는 것을 믿는 자들개개인이라고 한다. (2) 혹자는 믿는 자들의 옳은 행동이라고 주장한다(Mounce, Johnson, Ladd).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본절의 '디카이오마타'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의 반응으로서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해 인내로써 충성과 신실함을 지켜온 것을 시사한다. 즉 이것은 남편되신 어린양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유지한 사실을 가리킨다(14:12).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 '청함을 입은 자들'의 헬라어 '케클레레노니'(* )는 '칼레오'(* , '부르다')의 완료 수동태로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을 때만 가능함을 시사한다(17:14;마 22:3;눅 14:17). 혹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을 앞절의 아내와 구분하여 앞절의 '아내'는 교회 혹은 순교자를 가리키며 본절의 '청함을 입은 자'는 구약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의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Walvoord, Charles) '아내'와 '청함을 입은 자들'은 동일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타당하다(Beasley-Murray, Ladd, Mounce). 한편 본문의 '복'은 본서에 나타난 일곱 개의 복 중에서 네번째에 해당된다(1:3;14:13;16:15;20:6;22:7, 14). 이 복은 인내로써 어린양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은 자들의 멸망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로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영광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 '이것은'은 17:1-19:8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큰 음녀의 종말과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참여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예언을 의미한다(Johnson, Beasley-Murray). 한편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는 천사가 전하여준 17:1-19:8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22:6에서도 나타나 본서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며 확실한 사실일을 강조한다.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 본문은 요한이 천사를 경배하려는 모습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 당시에 천사를 숭배하는 것에 대해서 사도들이 비판하였던 것으로 보아(골 2:18) 요한이 천사를 숭배하려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혹자는 요한이 천사가 전하여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에 경외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경배하려 했다고 주장하며(Ladd) 혹자는 하나님으로 오인하여 경배하려 했다고 주장하나(Morris)분명하지 않다.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 '예수의 증거'로 번역된 헬라어 '텐 마르튀리안 예수'(* )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주격적 소유격으로 보아 예수께서 전하여 주신 증거로 해석한다. (2)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보아 예수에 관한 증거로 해석한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한 듯하다(Ladd, Johnson, Beasley-Murray). 즉 예수께서 자신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로 증거하신 것을 가리킨다. 천사는 자신이 요한을 비롯한 많은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증거하신 것을 받은 존재임을 드러냄으로 요한이 경배할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편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1) 천사 자신이 경배를 받을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2) 예수의 증거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할 수 있또록 한다는 의미이다. (2)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요한과 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받은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하나님에게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암시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 본문에 대한 해석 역시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예수의 증거'를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대언의 영은 오직 예수에 관한 증거만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rris, Eerdman, Ladd). (2) 혹자는 '예수의 증거'를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께서 증거하신것이 대언하는 영의 주요 관심사이며 핵심일 뿐만 아니라 대언의 영에 의해서만 성취됨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주장한다(요 16:12-14,Mounce, Beasley-Murra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하늘이 열린 것'은 본서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모든 것을 요한에게 계시하시는 장면을 나타낸다(11:19). 본절에서는 영광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승이를 계시하고 있다(Ladd, Beasley-Murray). 본문에서 '백마와 탄 자'는 첫째 인을 뗄때 나타난 말과 기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6:1, 2) 그리스도를 가리킨다(Ladd, Johnson, Mounce). 왜냐하면 이어서 언급되는 그의 이름들과 모습은 본서 내에서 계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Morris). 또한 그리스도께서 타신 말의 색깔인 흰색은 승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승리하실 것을 암시한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 본문은 백마를 탄 자 즉 그리스도의 칭호이다. 이것은 3:14에서 언급된 '아멘이시요'의 해석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 적용된 칭호 즉 '이름이 아멘이신 하나님'(사 65:16, 'the God whose name is Amen', NEB)이 3:14과 본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모든 것을 신실하고 진실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하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 께서는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이다.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 '공의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대적한자들에 대한 심판의 기준을 의미한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 11:3-5에 나타난 메시야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고 진실됨을 시사한다(2절;15:3;16:5, Beasley-Murray). 한편 '심판하며 싸우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네이 카이 폴레메이'(* )는 모두 현재 시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의 사역이 영원한 것이며 대적자 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전투와 심판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Morris, Ladd).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유관이 있고 - '그 눈이 불꽃 같고'는 1:14;2:18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내면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의 심판의 공정함을 암시한다. 사람의 경우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판단이 잘못될 수 있으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그의 판단과 그에 따른 심판은 공의로울 수 밖에 없다. 한편 '면류관'의 헬라어 '디아데마타'(* )는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의미하는 '스테파노스'(* ,'면류관')와는 달리(2:10;3:11;4:4, 10;6:2;9:7;12:1) 왕관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왕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용의 머리에 일곱개의 면류관이 있고(12:3) 짐승의 머리에 열개의 면류관이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것으로(13:1)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신 왕으로서 온전한 주권과 왕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 고대 신화에서 이름을 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나 신의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도는 본서에 계시된 여러 가지 이름 외에도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름을 갖고 계신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를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Johnson, Morris).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 그리스도께서 입고 계시는 '피 뿌린 옷'에 묻은 '피'에 대해서는 네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순교의 피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ird). (2) 혹자는 그리스도와 대적자들의 피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wete). (3)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서 흘리신 피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rris, Johnson). (4) 혹자는 대적자와의 싸움에서 대적자들이 흘린 피가 그리스도의 옷에 묻은 것이라고 주장한다(Ladd, Mounce, Beasley-Murray).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세번째 견해의 경우 본서에서 그리스도와 관련되 피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대속의 피를 가리키고 있으며(1:5;5:9;7:14;12:11)'입었는데'(* ,페리베블레메노스)가 완료 시상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온전히 이루신 승리를 암시하기 때문이다(19, 20절). 그리고 네번째 견해의 경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15절)가 나타내듯이 그리스도께서 대적자들을 마치 포도주틀에 넣어 짜듯이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서 또다시 그리스도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라는 칭호는 요한복음과 연결된 것으로 중재자 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세상에 거하신 중재자이시며(요 1:1, 14;요일 1:1) 본절에 진술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종말론적 과정인 재림을 통해 대적자들을 멸망시키시고 그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는 우주적인 중재자이시다(Beasley-Murray, Mounce).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하늘에 있는 군대들'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천사들과 함께 오는 것으로 보아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시 103:21;148:2;마 13:41;24:30, 31;눅 2:13, Ladd, Rist, Barclay, Swete, Beasley-Murray). (2) 혹자는 본서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대적자들과 전투하는 것으로 보아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15:1, 2;17:14, Johnson, Barker). (3) 혹자는 천사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ford, Mounce, Plummer).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피 묻은 옷을 입고 계신(13절) 반면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사실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짐승을 비롯한 대적자들과의 싸움에 참가하며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권능을 목격하며 그 승리에 참여할 뿐임을 암시한다. (Beasley-Murry, Ladd, Morris, Mounce). 그러기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갖고 있을 무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나타나지 않는다.

=====19:15
 본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세 가지로 진술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심판의 모습 역시 오직 그리스도만이 대적자들과의 전투에 참여함을 암시한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 본문은 사 11:3-5 을 반영하는 것으로 1:16과 병행된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 즉 말씀에 대해서 혹자는 구원과 평강을 가져다 주는 복음으로 이해하여 복음이 전파되어 대적자들이 회개함으로써 그들이 정복되는 것으로 이해하나(Swete) 본장 어디에서도 대적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타당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인 말씀은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도구이다. 더욱이 말씀을 통한 심판은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니골라당이 회개치 않을 경우 반드시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신 바 있다(2:12, 16).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 본문은 시 2:9의 반영으로 본서 2:27;12:5에서 병행되고 있다. '철장으로 다스리심'은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과 확고한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은 물론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절대적 권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 본문은 사 63:1-6을 반영한다. 본문에 나타난 포도 수확의 모습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짐승을 비롯한 모든 대적자를 완전히 파멸시키심을 시사한다.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름이 넓적다리에 쓰여 있다고 주장한다(Charles). (2) 혹자는 말을 탄 자의 다리까지 내려오는 웃옷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Mounce). (3) 혹자는 웃옷과 다리에 다 쓰여있다고 주장한다(Morris). (4) 혹자는 다리까지 내려온 웃옷에 의해서 가려지기 쉬운 허벅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Ladd, Johnson, Beasley-Murray, Lohmeyer, Swete).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이것은 17:3절의 짐승의 몸에 기록된 참람된 이름들과 대조를 이우는 것으로 짐승의 몸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이름이 기록된 반면에 그리스도의 몸에는 하나님의 칭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칭호가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칭호로 진술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난 것으로(신 10:17;에녹 1서 9:4) 종말에 대적자들을 파멸시키고 온 세상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이 권력을 시사한다.

=====19:17,18
 본문은 겔 39:17-20에 나타난 곡의 종말론적 멸망을 인용한 것이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 '하나님의 큰 잔치'는 7-9절에 언급된 믿는 자들이 참여할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를 이룬다. 본절의 '하나님의 큰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같이 하나님께서 배설하는 잔치이나 자신을 대적한 모든 자들을 멸망시키는 잔치이며 의로운 믿는 자들에게는 즐거운 축제이나 대적자들에게는 공포의 잔치이다.
 왕들의 고기와...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 여기서 '모든자'는 짐승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가리킨다(Beasley-Murray, Ladd, Mounce, Morris). 이러한 대적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그들의 시체가 새들의 먹이로 되는 것이다. 당시 시체가 매장되지 않은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면에서 대적자들의 시체가 새의 먹이로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가혹성과 엄격함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죽음이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이며 완전한 멸망에 이르는 것임을 시사한다.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 본절은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모든 모습을 진출한 것으로 16장에 예시된 아마겟돈 전쟁을 가리킨다(16:13, 14, 16;17:2, 18;18:3). '땅의 임금들'은 시 2:2을 반영한 것으로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짐승과 악의 무리에 동조하여 연합세력을 형성한다. 한편 짐승과 연합한 모든 대적자들이 그리스도와 하늘의 군대를 향한 전쟁을 일으키나 본문에는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은 14, 15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하늘의 군대들이 실제로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며 단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에 참여할 뿐임을 암시한다.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 본절과 다음절은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이다. 짐승과 그 무리들은 패배하여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것과 같은 이적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던 자들이다(13:13, 14;16:13). 그들은 그렇게 미혹된 자들에게 짐승의 표를 찍어서 자신들에게 속한 자임을 확인하며(13:16, 17) 그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하늘의 군대에게 대적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옛 뱀이요 사단인 용은 천년 왕국이 지난 후에야 유황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으나(20:2, 10)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아마겟돈 전쟁의 패배 후에 바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지게 된다. 여기서 유황은 당시 사해와 같은 곳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황 불붙는 못은 신약성경에서 종종 나타나는 게헨나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Johnson, Ladd, Mounce).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 )에서 비롯된 것으로 물록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인간을 불에 태우는 의식을 지낸 곳이었다(왕하 16;3;23:10;렘 7:31). 이러한 게헨나는 악한 자들이 죽어서 가는 것을 가리킴과(마 5:22) 동시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받는 장소로 이해되었다(에녹서 27:1;56:3;90:26). 이렇게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졌다는 사실은 그들이 완전하게 멸망당하였음을 시사한다(Ladd, Morris).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 본절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 당해 그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한 무리들의 멸망에 대한 묘사이다.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은 15절의 반복으로 그리스도의 선포의 말씀에 의해 심판을 시사한다. 말씀에 의해 심판을 받은 짐승의 추종자들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멸망당하고 그들의 시체는 새의 먹이가 된다.

 

 

제 6막 제 6장 바벨론 멸망의 노래
(계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계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계19: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계19: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바벨론은 멸망하여 노래가 사라지도 다시 들리지 않게 되었으나 이제 전혀 다른 찬양을 우리가 보게된다. 이는 하늘의 축하의 찬양이며, 승리의 노래이다. 특별히 그 찬양들은 "할렐루야!"라는 독특한 말로 나타나는데 이는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으로 그 의미
는 5절에 등장한데로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라는 말이 히브리어의 음역으로 나타난 부분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온다(1,3,4,6 절). 칠십인역에서는 할렐루야라는 말이 시편의 표제로 자주 사용이 되었다(시11l:l,l12:l, 113:l, 146:l등) .
 그중에 특별히 할렐은 시 113-118편에 적용된 이름이다. 이 시들은 그 속에 출애굽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애굽의 할렐"이l라고도 불리운다. 그리하여 이 시들은 유월절 식사때 특별한 역활을 한다. 미드라쉬에 의하면 계시록 안의 본문의 의미와 같이 할렐을 악한 자들의 멸망과 일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할렐은 예수와 제자들이 유월절 성찬식 후, 예수가 죽기 전 날 밤 감람산으로 출발하기 전에도 불렀을 것이 틀림없다(마26:30).할렐,유월절,예수의 죽음 사이의 이 밀접한 연관성은 초대교회의 모든 예배식에 부활절과 부활절 주관이 독특하게 할렐과 연관이 되게하였다. 이 부활절 예식은 그리스도의 승리, 즉 유월절에서 죄와 사단 및 죽음으로부터의 구속된 복음을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것이 된다. 유월절 예배식은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와 친밀한 교제를 가지면서 빛과 생명을 주시는 성찬식 잔치의 기념행사로 끝난다. 그 잔치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할렐의 찬양이다.
 그러므로 이 할렐을 통하여 애굽[큰 성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이며, 유월절의 영원한 잔치인 하늘에서 새것으로 마시는(마26:29) 어린양의 혼인자치의 모습으로 자연히 연결이 되고있다.

 먼저 우리는 처음의 세번의 할렐루야와 5절의 "우리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말로 연결되는 네번의 할렐로 참으로 큰 성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의 감격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1.첫번째 할렐-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1]첫번째 할렐루야를 부르는 자들
 첫번째 할렐루야를 부르는 무리의 큰 음성은 도대체 누구의 음성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무리들을 천사들의 무리로 보거나(5:11), 혹은 구원을 천사들은 5:12,7:12에서 구원에 대하여서는 노래하지 않기에 여기 구원에 대하여 노래하는 자들은 7:9-10,13-17에 나오는 모습과 같이 승리한 교회의 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이든지 우리가 잘 모르지만 저들은 "할렐루야"를 부르고 있다.
2]찬양의 내용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다. 여기에서 구원이란 개인을 구원하신 정도가 아니다. 큰 성 바벨론에서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심인데 이 구원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완성인 것이다. 그로 인하여서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통치를 아무도 좌절시킬 수 없는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빛나게 되는 것이다.
3]찬양의 이유
 2절의 구원이 도대체 어떠한 성격의 구원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저들이 찬양하는 이유는 바로 큰 음녀를 심판하신 사실로 인하여서이다. 그러면 왜 큰 성 바벨론(큰 음녀)의 멸망이 구원의 완성과 연결이 되는가? 그것은 바벨론이 존재하는 한 부패한 세력이 온 땅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 질수가 없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며,구원의 완성이다.
 이는 땅에서 바벨론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가던 성도들과 순교한자들의 호소였으며(계6:l0),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바벨론의 세력이 사라지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던 것이다.

2.두번째 할렐-바벨론의 완전한 파멸
(계19: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두번째 할렐은 첫번째 할렐을 보충해 주고 있다. 첫번째 할렐에서 저들이 찬양한 내용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는 표현은 고대 바벨론의 파멸을 회상하는 말의 표현으로(사34:10)이 큰 성 바벨론이 영원토록 멸망당하였으며, 이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짐을 확인하는 것이다.

3.셋째 할렐-24장로와 네 생물[그룹과 스랍]
(계19: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네 생물과 장로들의 할렐의 특징은 "아멘"이다. 앞에서 되어진 일이 참됨을 화답하는 아멘의 찬양이 이미 5:14에서 나타났다. 여기서도 많은 무리들이 그 찬양이 참으로 진실임을 영적인 존재인 24장로들이 화답하면서 함께 할렐루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4.할렐의 권면
(계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보좌에서 권면의 음성이 나오는데 그 보좌의 음성의 정체는 성부(하나님께라는 말을 하나님이 사용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나 성자(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성자라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시지 않았을까?)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네 생물중의 하나일까? 그 누구의 음성이든지 그 내용은 할렐-"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구약의 할렐시편과 비교하여 본다면 이 말 자체가 또 하나의 할렐의 찬양내용임을 알 수가 있다. 이 내용은 할렐시편의 두 부분에서 인용하고 있다.
(시113:1) 할렐루야,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나님의 종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시115:13)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이제 바벌론이 멸망하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 찬양은 모든 사회 경제적 차별이 없는 무론 대소하고 드리는 예배이다.

제 6막 제 7장 마지막 승리자
(계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할렐의 내용은 자연히 마지막 하늘의 잔치로 우리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이는 동시에 앞에서 살핀대로 큰 성 바벨론이 영원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완전한 파멸이며,영원한 승리자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승리자의 기쁨을 묘사하는 내용이 바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이다.

1.할렐을 부르는 자들
 여기의 내용은 할렐의 마지막 주기로 또 한번의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큰 물소리와도 같고 뇌성과도 같은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다. 앞의 무리들을 천사로 보는 자들은 이를 하나님의 백성들로 본다. 그러나 앞의 무리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 부분도 동일한 무리로 볼 수 없는 이유도 없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찬양받으실 분이 아닌가?

2.할렐의 내용
①하나님의 완전하신 통치함
(계19:6)......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이 마지막 할렐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하는 시편의 내용과 유사하다.
(시93: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97:1,99:1 참조)
 이 시편은 회당에서 안식일 아침과 저녁 예배 때, 또 아르매니아 교회의 부활 예배시에 사용되었다. 이것은 메시야를 노래하는 시편 95-99편의 전주곡이기도 하며, 모든 적들을 정복하실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을 주제로 한 것이다.

 "통치하시다"(에바실류센)는 부정과거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이제 바벨론의 멸망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진부터 다스리기 시작하였음을 완전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 완전하신 통치를 바라보면서 할렐을 부르게 되며, 동시에 지금도 다스리고 계셨다는 사실이 지금은 잘 믿어지지 않아도 그때는 참으로 깨닫게 되며 그 사실로 감격하여서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②참된 영광을 돌리세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
 그날에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께 참으로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 것이다. 억지가 아니라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되 나혼자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너무나 부족하여 서로가 권면하는 것이다.

3.찬양의 이유-어린 양의 혼인잔치
 그 찬양의 이유는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라는 주제로 등장을 한다. 이것이 속칭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7년 대환난시 공중에서 벌어지는 7년의 광경이 아니다. 이미 큰 성 바벨론은 멸망하고 난 뒤의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히려 영원상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l]히브리인들의 혼인풍습
 본문에 나오는 혼인잔치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하여 히브리인들의 혼인풍습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중요한 몇가지만 생각해 보자.
①정혼식-우리의 약혼식보다 훨씬 더 굳은 약속의 의미가 있다. 증인들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하면 이 결합을 축복해 줄것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 날부터 신랑과 신부는 법적으로 남편과 아내가 된다. 그래서 정혼기간이 보통 l년정도인데 정혼한 자는 결혼하기까지인 l년동안 죽음의 위험이 없도록 군대가 면제되며(신20:7), 정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면 간음이 된다(신22:23,24→약혹하지 않은 자는 문제가 다르다(신22:28). 마태복음1장의 요셉과 마리아는 바로 이 정혼한 사이였다(마l:18). 이때부터 혼인잔치때까지 동거하지는 않지만 법적인 부부관계이기에 해어지려면 이혼절차를 밟아야 한다.
②정혼식부터 혼인잔치까지-일정한 기간을 두는데 이 기간동안에 신랑될 사람은 신부될 사람의 아버지에제 아직 지불이 덜 된 결혼 지참금을 바쳐야 한다(창34:12). 지참금이 없을 경우 신부될 사람의 집에 가서 일을 해 줌으로써 대신하기도 한다(창29:20). 혼인잔치하여 순결이 증명되지 않으면 돌로 쳐 죽임으로(신22:13-21) 특히 순결이 중요시 된다.
③혼인잔치-일정한 기간이 지난후 신랑이 신부집으로 찾아가는 행진이 시작된다. 신부는 치장을 하여 곱게 꾸미고 신랑 맞을 준비를 하고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은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횃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앞장 서서가는 친구를 따라 청혼자인 신부집으로 간다. 특히 신부는 보통 수개월 걸쳐서 준비한 예복을 입는다. 그리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자기를 기다리는 신부를 맞아 그 신부를 데리고 자기집 또는 부모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온다(마9:15,15:1). 신랑이 멀리서 올 때 신부집에서는 음식을 준비하고 잔치를 벌이기 시작한다. 보통 이 잔처치 일주일 정도 계속된다.

2]어린양의 혼인잔치
 성경은 여러차례 신랑과 신부의 갖는 사랑의 관계를 여호와와 그의 백성의 관계로 비유하여 왔고(사50:l-,54:l-),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사이를 그렇게 비유하고 있다(엡5:32,계21:9).
 그러나 본문은 단순한 부부의 관계만이 아니라 실재로 결혼의 혼인잔치의 이미지를 받아들여서 우리에게 최후의 그 영원한 영광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혼인잔치의 모습은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①혼인잔치는 우리들이 현재 모습을 깨닫게 한다.
 큰 성 바벨론이 멸망하고 혼인잔치를 기다리는 교회의 현재상태는 바로 정혼한 상태라는 사실을 우리로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신앙인이 되는 사실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현제 그리스도인의 상태는 결혼의 상징에서 본다면 정혼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의 이름은 법적으로 그리스도의 아내(신부)이다. 이는 얼마나 우리에게 감격스럽고 복된 사실인지를 모른다.

②혼인잔치는 현재의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어 준다.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현재는 정혼하고 혼인잔치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다. 특별히 신부는 수개월에 걸쳐서 혼인잔치에 입을 예복을 준비하여야 한다.
 음녀는 여러가지 아름다운 것으로 그를 치장하였다.
(계17:4)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음녀는 이 땅에서 가장 화려하고 귀중한 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영원한 파멸로 가버리게 된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제 혼인잔치의 예복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이다. 그러면 도대체 성도가 준비하여야하는 이 예복은 무엇인가?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되고 있는 사실을 조심하여서 살펴야 한다.

a.(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이라고 증거하여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준비물이다.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세마포란 무엇인가?
(계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첫번째 의미에서 흰 세마포는 바로 어린양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서 의로우며,거룩한 성도로 칭함을 받게 된 사실이다. 아무도 인간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이 옷은 오로지 은혜이며,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b.그러나 두번째 측면은 우리로 당황하게 한다. (계19:8)........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이 예복은 동시에 우리의 행실의 문제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의 옮은 행실은 어떠한 관계인가?
 그것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을 변화시키며, 성품을 바꾸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 옳은 행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우리의 처세는 바로 이 세마포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나의 존재자체가 첫번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사실임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 사실은 나로 하여금 나의 생애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움직여짐을 알게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번째로 성도들은 그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옳은 행실로 살아가야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요일3:2,3,고후7:1).
③혼인잔치는 우리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를 미리 알게 만들어 준다.
a.먼저는 혼인잔치가 언제인가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저 예수님 재림하시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본문은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고 한다. 즉 혼인잔치는 언제인가하면 아내가 예비하였다고 한다. 즉 혼인잔치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아내로 완성되는 시간(아내가 예비된 때)이다. 그날은 우리의 완성의 날이다.
b.두번째 사실은 (계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라는 사실이다.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있는 자라는 것이다. 여기의 청함받은 자와 신부를 다르게 보고,신부를 교회로 청함받은 자를 구약시대의 성도로 보는 것은, 묵시적 언어의 유연성을 모른는 것이다. 여기의 신부와 청함을 받은 자는 동일존재이다.
 여기서 두가지 중요한 강조가 있다.
 먼저는 혼인잔치는 복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동서로부터 와서 천국에서 족장들과 함께 식탁에 앉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마8:l1).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그의 제자들과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포도주를 마시제 될 복된 날을 말씀하셨다(마26:29). 그러므로 혼인잔치가 얼마나 복됨을 설명하고 있다.
 두번째는 그 자리에 나아가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서 나가는 것이지(마22:3,눅14:17,계17:14) 인간의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삽입:말씀의 인침
(계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그 놀라운 축복의 사실에 대하여서 천사가 요한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다시 확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놀라서 어쩔줄 모르는 요한에게 천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것인을 확증하고 있다.

 이에 경외감으로 인하여 요한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를 하려고 하니 천사는 오로지 경배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증거도 천사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이것을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으로 하시는 것인데 그 증거는 바로 "예수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이 놀라운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증거요, 그 증거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우리는 참으로 이 사실을 확신하고 감사할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은 바로 성도의 궁극적인 승리의 할렐이요 완성이며 은혜의 사건인 것이다.

 제 7막을 시작하면서부터 내용 전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부분을 본문을 다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의미를 다시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본문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약에서의 주의 날
 구약성경에서 악을 대항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전쟁의 결정적인 모습을 묘사할 때 "주의 날"(여호와의 날,저 날들,다가올 날)로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각각의 경우마다 강조점이 다르지만 궁극적인 의미는 분명하다. 주의 날은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며 그의 백성에게 구원이 미치는 승리의 날이며(욜2:28,32),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반역하는 모든 자들에제는 진노의 날이다(사2:12,17-19,암5:18,27,습l:7-18).
 이 주의 날은 자주 전쟁의 이미지를 사용하여서 설명이 되며 주의 날이 개념이 지역적인 개념에서 전세계적 우주적인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주의 날 사상의 역사적 배경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서 비롯되는데 거기서 하나님은 날을 주관하시는 용사시며(출15:3,4) 원수를 멸하시고 신실한 자는 구원을 받으며(출15:2) 그 결과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출15:17,18).

 구약에서는 역사상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곧 여호와의 날인데 그 이유는 이는 시간격인 의미가 아니라 구원적인 질의 사건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선지서는 이렇게 지역적(이스라엘 나라가 포로로 잡혀감이나 회복),전세계적(하나님의 모든 적의 완전한 멸망), 우주적(창조계의 질서가 완전히 바뀜)으로 그 사건이 일어남으로 옛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그 뒤에는 새로운 시대가 주어지리라는 것이다. 그 시대는 세상 역사는 끝나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묵시기록에 들어오면서 특별히 이러한 관점중에서 특별히 우주적인 주의 날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구원사역과 심판사역으로 이 시대는 끝나게 되며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며 이방도 회복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구원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된다(사2:1-4,슥8:20-23). 그 날은 하나님의 영이 그 백성에게 쏟아지는 날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욜2:28-32). 이 날은 수량적으로는 정의하기 힘들지민 질적으로 정의하면 이 날은 구원의 날이다.

신약에서의 주의 날
 신약시대에서 주의 날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우리의 구원이라는 바로 주의 날의 사건이다. 주의 날에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사실을 함께 누린다(롬6:l-10,엡 2:4-6,골3:l-3).
 성령의 오심은 주의 날의 예언의 성취이며(행2:15-21,30-31, 13:32-33),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심을 나타내며,장차 완성을 위하여 다시 오시는 것이다(히9:28).

 그런 의미에서 신약시대에서는 주의 날이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 안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전부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그 사역에서 과거의 사건은 우리의 의로움의 근원으로서 주의 날에 참여하게 되었고,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
어짐은 주의 날에 참예함이며,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주의 날에 참예하게 된다.
 이 사이에서 주의 날의 특징중의 하나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는 전사(용사)로서의 하나님 개념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전체는 주의 날의 용사이신 그리스도(하나님)를 보게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주의 날의 모습에서 본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제 7막 제 1장 하늘의 군대장관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계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하늘이 열림"으로 새로운 막이 시작을 하고 있다. 이 막이 열리면서부터 첫번째 심각한 논쟁의 부분으로 접어들게 된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하여서 몇사람의 견해를 들어보자.
 세대주의자 John F. Walvoord는 이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그의 백성과 함께 오심:휴거와 구별되는 사건으로 칠년 대환난이 끝난 뒤의 상황)을 나타내는 장면으로 보면서 메릴 테니(역사론적 전천년설자)의 설명인 이 모습은 로마의 개선 행진의 형을 따른다는 설명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론적 전천년설자인 G.E.Ladd도 이 부분을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표제를 붙이고 있다(물론 휴거와 재림을 구별하지는 않는다).
 무천년설자인 윌리암 핸드릭슨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에 적 그리스도의 큰 군대를 무찌르고 승리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자니 자연히 병행법을 취한다하여도 이 부분은 앞부분에 연결이 되고 새로이 장면이 바뀌는 것으로 볼 수가 없다.

1.전사이신 그리스도
 그러나 과연 이 부분이 이미 승리하고 내려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인가? 그렇다고 할 결정적인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전사(용사)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지금 심판하면서 싸우려고 나타나신 것이다. 지금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1:7) 강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싸우시고 계시는 것이다.

1]백마와 탄 자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이 정체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은 었다. 6:l의 백마와의 관계는 여러주장이 있으나 일치시키거나 다르다고 보거나 의미에는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백마를 타고 등장하는 상징은 6:l과 동일하게 전쟁의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용사이시며 전쟁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용사의 이미지는 주의 날에서 주의 날을 이루시는 사역임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 모습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고정시킬 문제가 아니라 신약시대 전체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이다.

2]그 분의 이름
 여기서 말 탄 자의 정체를 밝히는 이름이 몇번에 걸쳐서 등장을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도 아울러서 잘 보여주고 있다.

①(계19:11) ......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이는 앞에서 나온 그리스도의 명칭과 일치되는데 특별히 제1막에서 교회와 연결이 되어서 사용이 되었다.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적그리스도의 헛된 약속과 거짓에 비하여 그리스도의 증거는 참이며 그는 교회에 하신 약속을 틀림었이 지키시는 분이시다.

②(계19:12).....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19:13).....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두번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인데 요한복음 1:1,요한일서1:1의 기록과 일치한다. 앞에서 살핀 충성과 진실이라는 말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고 있다(19:9). 말씀의 본질과 그 지향점은 바로 그리스도시며,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요5:39,20:30,31). l:9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가 일치되며 그속에서 신앙인의 삶의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이요,이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③(계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그분이 친히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로 이미 17:14에서 등장을 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미래의 모습만이 아니라 이미 현재 다윗의 왕좌에 앉아서 다스리고 계시는 이름이기도 하다.

3]그 분의 모습과 사역
①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분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이는 이사야11:3,4,5에  (사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사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하는 메시야 사역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심판의 이미지인데 이는 이미 그리스도의 초림사건에 적용이 되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요12:31,히2:14,15,계12:7-13). 초림시부터 주의 날의 전쟁은 군대장관이신 그리스도의 중요한 사역이다.
 뿐만 아니라 충신과 진실이신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은 그의 교회에도 적용이 되고 있음을 2,3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미 살펴 보았다. 그분은 교회사이에 다니시면서 교회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친히 심판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가 촉구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권세잡은 사단과 악과 싸우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그의 교회의 부패를 공의로 판단하시며 싸우신다(고전ll:30-32).

②눈이 불꽃같고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다.
(계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눈이 불꽃 같음은 부활하여 높아지셔서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며(1:14,2:18) 그분은 용이나 짐승의 일곱(12:3)이나 열개(13:1)의 면류관이 아니라 더 많은 면류관이 있다. 그분의 이름에서 나타났듯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지금도 우리가운데서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③피를 뿌린 옷을 입음
(계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이사야63:l-6에 나오는 자신의 피가 아니라 전쟁에서 흘린 적의 피인데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과 원수들을 향하여 정죄하심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우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말씀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이며 성령의 검이며(엡6:17),예수의 증거이다.

④만국을 치시고 다스림
(계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으로 만국을 치심은 이사야11:4의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시리로다"는 말씀에서 취한 것이며,철장으로 다스림은 시편 2:8,9에서 등장하는 메시야의 통치를 나타내고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것은 이삭야63:l-6 의 모습으로 메시야의 원수들은 메시야에 의하여 패배하게 될 것임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다.

4]그의 군대
(계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①군대들은 누구인가?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라는 말이 등장함으로 하늘의 군대대장관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끄는 군대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 군대들이 누구냐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하늘의 군대라는 말이 천사를 가리키고 있다(시103:21,148:2,눅2:13,행7:42). 물론 재림시에는 천사들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마13:14,16:27,24:30,31) 여기의 군대들은 천사들이라는 해석이 있다. 물론 하늘의 군대들이라는 말만으로는 그러한 해석을 부정할 수가 업다.
 그러나 여기에서 설명되는 특징들은 요한계시록에서는 천사들의 모습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을 더 잘 나타내고 있다. "깨끗한 세마포"(19:8)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린양의 신부들이며[물론 부활시에 천사들이 흰옷을 입은 자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요한계시록에서 어디든지 따라가는 자는 성도들이며(14:4),승리하는 자들은 이긴 자들이라고 하였다(15:2).
 이 모든 모습들은 본문에 나오는 군대들이 천사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중요한 사실이 등장을 하는데 그 전쟁은 재림과 부활때가 아니라 신약시대 전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군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기간이란 사실이다.

②군대들의 소속:"하늘에 있는 군대"
 만약 이 무리들이 성도들이라면, 그것도 이 땅위에 존재하는 무리들이라면 왜 하늘에 있다고 설명을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빌3:20), 이미 14:l-5에서 교회의 존재는 하늘이나 땅 어느곳에 있든지 바로 하늘의 시온산에 이른 존재라는 사실이며,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이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엡2:5,6).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다.

③전쟁의 성격
 전쟁의 성격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인 전투의 모습이라면 그 상징성에 있어서도 갑옷을 입어야 된다. 그러나 저들의 입은 옷은 갑옷이 아니라 희고 깨끗한 세마포이다. 그렇게 표현된 이유는, 바로 전쟁의 그 성격이 누구를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지킴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도들의 싸우는 이 싸움에 대하여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성도들의 싸움은 바로 영적인 전쟁이다.

④싸움의 방법
 이 싸움의 방법도 이미 저들을 묘삭하는 방법에서 등장을 하였다. 그렇지만 가장 일반적인 내용임에도 다시 정리하여 보자.
 a.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그리스도의 군대들은 대장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방법으로 싸운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공격하여 오든지 군사들은 오로지 대장의 지시를 받으며 그를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이 싸움의 방법에 대하여서 바울은 잘 설명하였다.
(고후10: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침으로 묘한 싸움의 방법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더라"는 말 자체가 바로 심각한 싸움인 것이다. 악의 영들이 우리를 향하여 공격하는 방법과 진을 치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바울은 적들의 견고한 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라기지 못하게 하는가? 모든 이론과 교만한 마음이 우리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 싸움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싸움에서부터 부추기는 사단의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바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오로지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b.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 또 다른 싸움의 중요한 방법이 등장을 하는데 이는 앞의 내용과 연결이 되어서 해결이 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공격하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며, 동시에 성도들이 사단과 그의 무리들의 공격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지 못하도록 공격하여, 성도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음으로 싸움에서 승리를 하는 것이다. 희고 깨끗한 세마포의 의미는 이미 밝혔지만 다시 반복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먼저 희고 깨끗한 세마포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얻는 자 되었다는 사실윽 가리킨다(7:13,14).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구원의 투구를 써야만 하는 것이다(엡6: 17). 그래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수단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부추기고, 성도됨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롬8:l,33).
♧또 다른 측면에서 19:8에서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다. 마귀의 또 다른 공격의 중요한 방법이며,우리의 중요하 싸움의 문제이다.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 대한 감각을 무디
게하고 적당하 타협하고,적당히 방종하고.....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니 상관이 없는 문제가 아니냐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령을 따라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여야 할 성도의 또 다른 싸움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사단과 그의 무리들이 잊어 버리도록 공격을 하는 것이다. 성화는 바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모시고 나의 생애 끝날까지, 역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가 싸워야 할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의 본질적인 모습은 위에서 살핀대로 오로지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분에게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욕심과 사단의 유혹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먼저 우리는 역사의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실재로서의 주의 날의 전사이신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면서 싸워야 할 우리들의 전쟁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제 7막 제 2장 확실한 승리
(계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계19: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천사가 큰 잔치에 와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먹으라고 초청한다.
1]하나님의 큰 잔치- 성도들은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은 자이나, 여기서는 즐거움의 성도들을 위한 혼인잔치가 아니라 전쟁의 큰 승리뒤에 그 사체를 짐승이 와서 마음놓고 먹으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이 잔치를 하나님의 큰 잔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이 하나님(그리스도)이시며, 그 모든 일을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새들의 초청-새들을 초청하여서 멸망한 자들에 대한 큰 잔치를 벌임은 구약의 상징적인 방법중의 하나이다. 특히 에스겔39:17 이하에서 곡의 종말론적인 모습에서 인용한 것으로 원수들이 철저하게 파멸됨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파멸됨을 공중의 새와 들의 짐승의 밥이 되는 것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2.전쟁에서 대항한 자들
 잔치에 특별히 준비된 음식이 무엇인가?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壯土)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라고 한다. 이는 역사상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하는데 거기에는 모든 계급과 모든 종류의 인간이 다 포함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모든 대적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승리는 하니님의 손에 의하여 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3.승리의 때
 역사상에서 모든 때에 하나님의 원수들은 언제든지 패배하였다.그러나 가장 본질적으로 최후의 승리는 종말의 때이다.

제 7막 제 3장 그의 적들의 멸망
(계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제2장은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승리자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보다 더욱더 나아가서 저들의 멸망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적들의 정체
1]이면적 존재
 본질적인 정체는 땅의 임금인 사단과 사단의 두 도구인 짐승과 거짓 선지자이다. 즉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들이 실재로 그리스도와 싸우는 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어느 한 때의 모습이 아니라 전시대를 통하여 계속되는 전쟁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 전쟁은 영적인 전쟁인 것이다.

2]현실적 존재
 그러나 역사상에서 우리의 눈에 나타나는 존재는 18절에서 여러 계급의 모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인가? 땅의 군대들이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서 싸우는 저들은 누구인가?
(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전면에 등장한 각 종류의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계 경배하는 자들인 것이다.
 우리가 땅에서 여러가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속에서 그 본질적인 모습을 알아야 한다. 본질적인 존재는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적들의 열망
(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불 붙는 못에 던지우게 된다. 불못이 여러가지로 사용이 될 수 있으나 묵시문학에서는 최후의 정죄의 장소인 지옥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거기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던지움을 받게된다는 사실은 실제로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게됨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론 본문에서는 나머지 사람들은 새의 밥이 된다는 표현으로 등장하나 그것은 저들의 완전한 패배를 나타내는 것이요 실재적으로 저들이 불못에 들어가는 주체임(물론 사단도)을 20:11-15에서 분명히 설명되고 있다.

 우리는 19장에서 역사의 실재적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전사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속에서 실재로 싸우는 그의 군대들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지막 승리자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고 있기에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끝까지 대장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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