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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 '이적'의 헬라어 '세메이온'(* )은 본서에서 세번 나타난다(12:1, 3).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기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일곱 천사가 행할 일곱 대접 재앙을 가리킨다(6-8절;16장, Ladd, Johnson). 일곱 대접 재앙은 여섯째 나팔 재앙에 이어 나타나는 셋째 화로서(11:14) 마지막 때에 심판을 종결짓는 절정의 사건이다(Hughes, Johnson). 한편 '마치리로다'의 헬라어 '에텔레스테'(* )는 '완성하다' 혹은 '성취하다'를 의미하는 '텔레오'(* )의 예언적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이는 이번 진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마지막 재앙이며 이후에는 오직 마지막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15:2
 또 내가 보니...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유리 바다 가에 서서 - 본절에서는 '유리 바다'와 '유리 바다 같은 것'이 혼용되고 있다. 이 '유리 바다'는 4:6절에서 이미 언급된 것으로 하나님의 장엄함과 거룩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절의 유리 바다는 4:6과는 달리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1) 불이 섞인 -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유리 바다의 장엄함과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으로 눈부신 순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unce, Hughes, Johnson). 2 혹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진노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Swete, Morris, Hendrikse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2) 짐승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 유리 바다 곁에 서 있는 자들은 짐승에게 절하여 경배하거나 짐승의 수인 666을 받는 것을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살아온 자들로서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다(13:13-18;14:12, Ladd, Johnson). 그들은 하늘의 홍해라 할 수 있는 유리 바다를 건너서 하나님의 존전에 서 있다(Swete, Beasley-Murray).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 이것은 짐승을 이긴 자들의 기쁨의 찬양을 시사한다. 그들은 거문고를 가지고 승리의 기쁨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역사하신 구속의 승리를 경배하며 찬양한다(5:8;14:2).

=====15:3,4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하더라 - 본문은 짐승을 이기고 유리 바다 곁에 서 있는 자들이 찬양한 노래이다.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두 가지의 노래 즉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가 다른 종류의 노래라고 주장한다(Ladd). 래드는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을 배경으로 하여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한 것이며 어린양의 노래는 짐승의 핍박과 위협으로부터 구원된 자들의 노래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한 종류의 노래라고 주장한다(Mounce, Beasley-Murray, Hughes, Morris). 이들은 두 가지의 노래가 모세의 출애굽의 구원으로 부터 시작해서 어린양의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이나 또는 모세의 출애굽의 구원이 어린양의 구원을 예표하는 모형이라고 해석하여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하나의 찬양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전자의 경우 어린양의 노래를 짐승의 핍박으로부터의 구속으로만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모세의 노래에 대해서 혹자는 신 32장을 반영한것이라고 주장하며(Beckwith) 혹자는 홍해에서 수장을 통해 애굽 사람들의 추격을 퇴치하고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한 출 15:1-18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ounce, Johnson).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Beasley-Murray). 그러나 본문의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가 출 15장과 신 32장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그 내용은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한 것으로 유대인 회당과 초대 교회에서 불리어진 것이었다(Johnson).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께서 영원하며 완전한 주권을 소유하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모든 자들을 진노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시며,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셔서 자신의 의로움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신 것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때에 법궤가 있었던 성막을 상기시킨다(출 25:16, 21;민 17:7;18:2). 그러나 옛 언약 하에 있었던 광야의 성막은 참 형상이며 실체인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히 8:5). 참 실체인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 사실은 이미 11:19에서 언급된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신실하며 확실한 것임을 시사한다(Ladd).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성은 백성에 대한 구속의 완전함과 확실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한 악에 대한 진노의 심판 또한 확실한 것임을 시사한다.

 =====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 '성전으로 부터 나와'는 일곱 대접 재앙을 실현할 일곱 천사의 출현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Morris). 한편 본절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 중에서 '맑고 빛난'은 천사의 고결함과 거룩함을 의미하며(단 10:5, Mounce)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는 구약 시대의 왕적인 직분과 제사장적 직분을 상징하는 것으로(출 28:4ff.) 일곱 천사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대리함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15: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 '세세에 계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주권이 영원하며 자신을 대적하는 악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실 권한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시사한다(Ladd, Morris, Mounce). 하편 '대접'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알라스'(* )는 문자적으로 연희에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나(암 6:6) 혹은 희생 재물의 피를 담기 위해 제사의식에 사용하는 그릇을 의미한다(출 27:3). 이러한 '피알라스'는 5:8에서 순교자들의 신원하는 기도를 담은 대접에 사용되었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진노를 담은 대접에 사용되어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진노를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성도들의 탄원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진노의 심판을 행하시게 하는 역할을 함을 시사한다(Ladd).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 '연기'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었다(출 19:18;40:34;대하 7:1-3;사 6:4). 본절에서 연기는 일곱 재앙을 통해서 악을 완전히 심판하시기 위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시사한다. 한편 일곱 재앙이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사실은 두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1)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경외스러운 나머지 감히 접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대하 7:1-3;;합 2:20, Mounce, Johnson). (2) 모든 피조물이 온전히 깨끗함을 입는 마지막 심판의 때가 지나 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Hughes).

 

 

삽입:일곱 재앙을 가긴 일곱 천사
(계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마지막 진노가 담긴 재앙은 분명히 15,16장에 나타나는 일곱 대접재앙이다. 그러면 문제는 그 재앙에 대한 내용이 어디서부터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14장의 끝부분에서 세상은 망하여 버렸다. 더이상 마지막 재양이 여기에 연결이 될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질문이다.
 물론 사건적으로 말하면 필요가 었다. 그리고 장면적으로보면 아직도 새로운 장면이 시작할 부분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장면이 바뀜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직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장면이 바뀜을 나타내는 정상적인 모습은 15:5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15:l의 역할은 무엇인가? 일종의 삽입적 설명인 것이다. 마지막 추수때까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낭 내 버려 두시고 계시다가 마지막 때에 가서 갑자기 심판하시는 것인가? 아니다. 그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경고하시며 징계하시며 진노하시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시행하셨겠는가? 그것은 마지막 재앙이라는 것으로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가?  설명이 없다. 궁금함을 더하게 만들고 다음 막을 기대하며 미리 예고하는 역할을 이 부분이 하고 있는 것이다.

제 4막 제 7장 승리의 노래
(계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계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계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우너수들이 멸망하는 장면들을 추수하는 장면들을 통하여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성도들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그러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며 바다의 짐승과 땅의 짐승으로부터 고난을 받으면서 살던, 아니 몸의 생명을 빼앗기면서까지 죽어간 성도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주께서 인자로 원수들을 심판하셨지만 성도들은 그날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15:2-4에 등장을 하면서 제4막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3.마지 막 승리자-성도들
 여기서 볼 수 있는 사실은 역사의 마지막에 승리자는 바로 성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모습에 대하여서 2절에서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 모습들은 앞에서 살핀 내용과 비교하여 보면 아름다운 의미를 볼 수가 있다.

1]짐승과 그 이름의 수를 이겼다.
 짐승과 그 이름의 수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소위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13:l7) 성도들은 복음을 지키기 위하여 인내로써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켰다(14:12). 그리고 끝내는 그 가운데서 사라졌다(14:13). 이대로 끝인가? 그러나 역사 저 마지막에서 보니 인자가 원수를 심판하시고 나서 보니 성도들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땅에서 경계적으로 어려움을 당하 것도, 순교의 죽임을 당한 것도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예수 안에서 참으로 승리한 사실을 보게된다.

2]유리바다 가에 섰다.
 그러면 저들이 어디에 승리후에 와 있는가? 유리바다 가(혹은 위)이다. 유리바다는 4:6에 의하면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것이다. 그 보좌에 불이 섞여 있다는 말은 아마도 하나님의 영광의 위대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저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눈으로 보면서 섬길수 있게 된 것이다.

3]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를 부른다.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14:2,3의 내용과 잘 연결이 되고 있다.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저들은 거문고의 노래를 부르며,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저들은 온전히 그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된 것이다.
 이 전체적인 장면은 완전히 승리한 자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2.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이제 이 승리자들이 거문고를 가지고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가?

1]노래의 성격
(계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모세의 노래란 무엇인가? 그것은 출애굽기15장과 신명기32장에 나타나고 있다. 앞의 노래는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애굽의 군대로부터 벗어나서 부른 구원의 노래이며, 뒤의 노래는 광야생활을 끝내고 부른 노래이다.
 이 두 노래가 다 승리의 노래이며,구원의 노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이기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는 동시에 어린양의 구원의 노래인 것이다.

2]노래의 내용
 그 노래의 내용은 전반부는 모세의 노래에서, 후반부는 구약성경 여러곳에서 인용되어 결할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연결을 보면 이러하다.
(계15:3).....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출애굽기 15:11)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신32:4)
(계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렘10:6,7)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시86:9)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칠십인역 신32:4)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시86:9)

 이 내용을 다시 구조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처음 네 구절은 동의 댓구법으로 되어있다.
(계15:3)...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②4절은 수사적인 질문을 제기하고,세 원인절이 따른다.
[수사적인 질문]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세 원인절]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냈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이렇게 완전히 승리한 주의 성도들은 오로지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며 그분만 찬양하는 것이다.

 제4막을 통하여서 역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았다. 궁극적적인 모습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바로 어린양과 사단의 싸움이며, 그 싸움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 그리고 바다의 짐승과 땅의 짐승으로 나타나지만 사단의 세력은 인자의 추수에서 멸망하고 어린양에 속한 자들은 영원한 승리자로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구원의 찬양을 드리다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제5막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이미 4막 중간에서 십입을 통하여 살펴 보았다(15:1).
(계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하나님의 진노가 일곱 재앙을 통하여서 세상에 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자연히 우리가 앞에서 살핀 일곱나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회개하라고 하였지만 저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귀신을 숭배하고, 더욱 죄를 향하여 가고있음을 보았다.
 그러면 저들이 계속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들이 단순히 멸망의 시간까지 그냥 두고만 계시는 것인가? 재림때까지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것인가?하는 질문이 등장하게 된다.
 물론 저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재림시에 멸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시대에 그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계속적으로 항상 최후의 진노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곱나팔과 일곱대접은 아주 밀접하다. 나팔은 경고를 발하고 대접은 진노를 발한다. 이것은 전시대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즉 논리적으로는 나팔의 경고후에 대접의 진노가 오지만 실제적인 사건 속에서는 한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나팔처럼 경고의 역할을 하게되고,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기회로 등장하는 진노로 나타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곱대접 역시 땅에 속한 자들에게 향한 내용으로 그 표현방식은 일곱나팔처럼 애굽에 내린 재앙의 모습과 철저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일곱대접이 나팔과 비교하여 다음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①오직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에게만 임한다(16:2).
 나팔의 재앙에서는 짐승의 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동일한 다른 상징인 하나님의 인이 사용되고 있다. 그 상징에 대하여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나팔에서는 처음 네가지에는 별다른 예외규정이 없다. 다섯째부터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에게 임하였다. 그러나 일곱대접에서는 처음부터 짐승의 표 받은 사람에게만 임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주 중요한 사실인데 성도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성도에제는 하나님의 저주의 진노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꺼서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다.
②회개의 기회가 모독을 당하고 있다(16:9,11,21).
 땅에 거하는 자들은 어려움과 진노를 겪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적극적으로 멸시한다. 나팔 재앙에서는 저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줄 모르고 우상을 찾고 죄에 거하였으나 계속 회개의 기회를 거절한 자들은 더 이상 회개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히12:16,17 참조) 완악하여져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③범위가 1/3에서 전 우주적으로 퍼진다(16:3,4,10,20).
 나팔재앙보다 그 강도가 강하여지고 전에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았으나(여섯째 나팔) 이제는 자신이 계속격으로 큰 진노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제 이 진노의 장면을 살펴 보자.

개막: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진노
(계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계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15: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계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계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언약에 근거하여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어 나오심을 11:19이하에서 살펴 보았다. 그러나 다시 여기서 세상을 향한 진노를 내리시는 그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주어지는 지를 설명하는 모습은 마치 11:19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게한다. 즉 지금부터 일어나는 사건도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궤를 보관한(11:19) 그 증거 장막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기억하게 만든다.
 언약의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뿐 아니라 언약을 대항하는 자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게된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을 개막에서 살필 수 있다.

1.이 진노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기도와 연결이 되어있다.
 일곱 천사가 등장하는 것은 앞에서도 계속적으로 살폈듯이 사건의 전개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 천사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살필 내용은 이 천사들에게 그룹의 한 생물이 준 것[진노의 대접]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계15: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1]천사들에게 준 것은 금 대접이었다. 이 금대접은 어디에서 등장을 하는가? 5:8에서 금대접은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담은 대접이었다(8장에서는 비슷하게 금향로가 기도의 상달과 연결이 되고 있다). 이 금대접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서 올라갔는데 이제는 그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2]금 대접에 담긴 내용-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겨있다. 어려움 가운데 성도들은 기도하였고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진다.그 응답의 한 모습이 바로 세상을 향한 대접의 진노이다.

2.진노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역사속에서 이루어지는 진노의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 모두가 하나님의 손길이다. 진노의 대접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천사들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있다.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가득하게 되었다. 즉 진노의 사건도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사건이다.

3.하나님의 진노는 철저하게 시행된다.
(계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일곱 천사가 재앙이 끝나기 까지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표현은 그 진노가 철저하게 시행됨을 말한다. 끝까지 긍휼을 무시하는 자에게 진노는 철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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