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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 '이 일 후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2,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가 종결된 바로 직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Johnson). (2)혹자는 장면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묵시 문학의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orris, Beasley-Murray, 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또한 이 말은 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7:1,9; 15:5; 18:1; 19:1) '내가 보았다' 혹은 '내가 들었다'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환상을 통한 계시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나타낸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본서에서 '하늘'은 12:12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수로 사용되었다(3:12; 6:13; 12:7; 21:1). 그 의미는 다양하나 본문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처소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한 곳을 의미한다(Morris). 한편 '열린 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라 에네 오그메네'(* )는 완료 분사형으로 문이 이미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며 환상을 통해 요한이 보게 될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문'은 본서에서 언급되는 '하나님 나라의 문'(3:8) 또는 '마음의 문'(3:2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문'을 나타낸다(Ladd, Mounce, Swtet). 따라서 본문의 '문'은 문 자체보다 천상의 광경을 보여 주기 위한 것과 계시를 전달받는 자가 분명하게 경험했음을 부각시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겔1:1;
마3:16; 막1:10; 요1:51; 행7:56; 10:11).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 본문은 1:10에서 들었던 음성을 요한이 다시 들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 음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포네'(* )에 정관사 '헤'가 있어 이전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Charles,Stier). (2)혹자는 '천사'라고 주장한다(Bousse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이리로 올라오라'는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산으로 올라오라는 명령과 흡사한 것으로(출19:24)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휴거의 상징이 아니라(Johnson, Ford, Walvoord) 환상 중에 더욱 분명한 계시를 전달받기 위해 계시 전달자가 초대 되었음을 시사한다(고후12:2, Hughes). 한편 '마땅히 될 일'은 요한에게 계속 보여줄 환상이 미래에 일어나지만 그 계시의 내용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약속임을 시사한다(1:19, Morris, Lenski, Hughes).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데오스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 )는 문자적으로 '즉시 성령 안에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1:10) 천사으로 인도되어 새로워진 요한의 상태를 묘사한다(겔8:1-4; 11:1, Moffatt, Plummer, Ford). 이는 요한이 3장까지는 계시의 음성을 들었으나 이제는 직접 계시에 참여함으로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음을 시사한다(요14:26; 고후12:2,3, Weiss, Swete).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보좌'는 간혹 하나님께서 하늘을 보좌로 삼으신 것을 묘사하기도 하며(사66:1; 마5:34; 23:22), 또한 하나님의 보좌가 천상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나(왕상8:27), 본문에서는 영광과 심판을 동반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낸다(왕상22:19; 사6:1; 겔1:26; 단7:9; 외경 I Enoch 18:14,19; Levi5:1; Moses4:2, Ford). 한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5절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다음 장에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타나 1장과 유사하게 삼위 하나님에 대한 진술의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1:4-6).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심으로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권세 그리고 통치하심이 완전한 것임을 나타내신다(Greijdanus, Lenski).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 '모양'의 헬라어 '호라세이'(*  )는 문자적으로 '보이는 것'이란 의미로 개역성경의 '모양'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이다. 왜냐하면 '모양'의 경우 하나님을 마치 물질적인 측면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9:17; 겔1:5,26). 한편 본절에 언급되는 3개의 보석 중 '벽옥'과 '홍보석'은 현재 어떤 종류의 보석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지 '홍보석'은 사데에서 주로 생산되며 진홍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보석은 분명히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일진대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1)혹자는 벽옥과 홍보석이 대제사장의 흉배에 붙이는 보석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출28:17-20) 이스라엘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Walvoord, Morris). (2)혹자는 벽옥이 하나님의 위엄, 거룩, 순결을 상징하며, 홍보석은 심판과 진노를 상징한다고 본다(Plummer, Mounce). (3)혹자는 벽옥이 하나님의 청결을, 홍보석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Barclay). 이 견해 중 마지막 두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Johnson, Mounce).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무지개'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녹보석에서 빛나는 일종의 무지개와 같은 후광으로 본다(Ladd). (2)혹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나 영광스런 권능과 의로움으로 해석한다(Lenski). (3)혹자는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광채로 본다(겔 1:27, 28, John- son). (4)혹자는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대한 성취를 약속하시는 것으로 본다(창9:12, 13, Morris, Caird). 이 가운데 마지막 두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녹보석'에 대해서 혹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나(Ladd)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1:19, Morris, Mou- nce).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 '이십 사 장로'에 대한 견해는 다양한다. (1)혹자는 구약의 열 두 족장과 신약의 열 두 사도가 합쳐진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21:12-14, Vincent, Plummer, Alford, Weiss). (2)혹자는 종말 때에 일어날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alvoord). (3)혹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Hendriksen, S- wete, Wette). (4)혹자는 구약의 이십 사 제사장 반열을 나타낸다고 본다(대상21:1-19, Hilgenfeld). (5)혹자는 천상의 천사들을 가리키거나 혹은 찬사장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pitta, Reuss). (6)혹자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나(Clarke, Rist) 유대인 교회를 의미한다고 본다(Wordsworth). (7)혹자는 바벧론 신전의 이십 사 성좌에 해당하는 유대 인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ffatt, Beasley-Murray). 이런한 다양한 견해 중 어느 하나가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단지 여러 사실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며 찬양하는 일에 종사하는 영적 존재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5:8,14; 11:16,17; 19:1-5, Charles, Mounce, Johnson, Stonehouse). 한편 본문의 '이십 사'라는 숫자는 본서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완전성과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12'의 곱절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상징한다.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흰 옷'은 성도나 찬사가 입고 있는 것으로 의와 청결을 상징한다(3:18; 7:14, Morris). 또한 금 면류관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파누스 크뤼수스'(* )는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승리의 화관으로(2:10)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도가 된 자들의 존귀와 승리를 상징한다(Trench).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쓴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4:5
 보좌로부터 번개과 음성과 뇌성이 나고 - '보좌로부터'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중심성을 나타낸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현상들은 본서에서 성전과 연관되어 나타나(11:19, Johnson, Ford) 위엄과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장엄한 임재와 성도들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출19:16; 욥37:14; 시29:3; 겔1:13).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 '일곱 영'은 충만히 임재한 성령을 가리킨다(1:4, bengel, Plummer, Vincent, Ladd). 이와 비교된 '등불'에 해당하는 헬라어 '람파데스'(* )는 '촛대'를 의미하는 '뤼크니아이'(* , 1:20)와는 달리 '횃불'을 의미한다(겔1:13; 슥4:12). 이는 창조의 보존과 유지에 관여하는 성령의 다양한 사역과 속성을 암시한다(1:4; 3:1).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 '수정'의 헬라어 '크뤼스탈로'(*  )는 원래 '얼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투명한 결정체를 가리키며(출24: 10; 욥37:8; 겔1:22), '유리'(* , 휘알리네)는 본래 '빗방울'을 나타낸다. 이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맑은 속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여기서 '유리 바다'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악을 잡아 가두는 곳'으로 해석한다(Caird). (2)혹자는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피'로 해석한다(Hendriksen). (3)혹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상징'한다고 본다(Lenski). (4)혹자는 '보좌에서 베푸신 넓고 빛나는 장면의 장엄성과,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히4:13, Johnson, Mounce).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 '가운데'로 번역된 헬라어 '엔 메소'(*  )는 '중앙'이란 의미가 아니라 '가까이에'라는 의미이며, '주위에'의 헬라어 '퀴클로'(* )는 단지 장소를 나타내는 여격이다. 따라서 본문은 보좌를 중심하여 서로가 마주보거나, 그 주위를 둘러선 광경을 나타낸다(겔1:12, Brewer).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 본문은 이사야서의 스랍과 에스겔의 그룹들 가운데서 선지자가 본 네 생물의 형상을 반영한 것이다(사6:2; 겔1:5-25; 10:1 -22). 차이점은 본서의 네 생물이 각각 하나의 얼굴과 여섯 날개를 가진 반면 에스겔서의 네 생물은 각각에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진 것이다. 여기서 네 생물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혹자는 초대 교회 때부터 사복음서를 의미했다고 주장한다(Irenaeus, Augustine, Jerome). (2)혹자는 신약 시대의 4명의 사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rot- ius). (3)혹자는 이스라엘의 네 진영을 의미한다고 본다(민2:2, Clark, Scott). (4)혹자는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Greijdanus, Plummer, Alford). (5)혹자는 생명과 지능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기괴한 상징으로 해석한다(Moffatt). (6)혹자는 장로나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천상의 영적 존재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8절; 11:15, Mounce, Beckwith, Johnson). 이 견해들 가운데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영적 존재들로서 네 생물이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8절). 한편 '눈이 가득하더라'는 무한한 지적 능력과 통찰력 및 지혜를 상징한다(겔1:18; 10:12, Beckwith, Johnson).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 사도 요한이 본 네 생물의 형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겔1:4,6,10,14에서 언급된 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네 생물의 모습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1)혹자는 이 네 생물들이 피조물의 대표자로서 사자는 용기를, 송아지는 힘을, 사람은 지혜를, 독수리는 속도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Swete). (2)혹자는 네 생물의 신분이 하나님의 속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사자는 '왕권'을(왕상7:29; 10:20; 대하9:18,19), 송아지는 '힘'을(왕상7:25), 사람은 '영성'을(창1:27), 독수리는 '신속한 행동'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피조물의 대표적인 네 생물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피조물의 섬김과 경배를 시사한다(Ford, Mounce). 한편 초대 교부들은 네 생물의 모습을 신약 성경의 사복음서와 연결지어 해석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본장 주제강해 '네 생물에 대하여'를 참조하기 바란다.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 사6:2에서처럼 네 생물들이 여섯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본래 '날개'는 속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Ford)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신속하게 성취함을 상징한다(시18:10; 겔10:16;, Mounce, Lenski). 한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 네 생물들은 쉬지 않고 찬양하고 있다. 여기서 '거룩하다'라고 세 번 언급하는 것은 히브리식 최상급을 표현하는 것이며(사6:3), 유대교와 초대 교회에서는 삼위 일체와 관련하여 예배에서 의식상의 표현으로 나타났다(Mounce, Ford). 이러한 거룩에 대한 최상의 표현은 어떤 것에도 존재의 기반을 갖지 않으시고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의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함의 속성을 시사한다(출3:14, Johnson, Ford, Lenski). 한편 '전능하신 이여'는 1:8에서 이미 언급된 하나님의 칭호로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을 시사한다(창18:14, 렘32:27; 마19:26, R.Martin). 또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란 칭호도 이미 언급된 것으로(1:8)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하나님 칭호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처럼 시,공의 제한을 초월한 자임을 강조하며 섭리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한 찬양의 내용들은 피조물들이 영원토록 본질적으로 찬양해야 할 것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피조물의 사명을 암시한다(시148:1-14).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 본절은 앞절에서 네 생물들이 찬양한 내용의 반복이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는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대한 찬양이며, '세세토록 사시는 이'는 8절의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 중 '장차 오실 자'에 대한 강조와는 달리 하나님 자체의 본질적 영원성을 나타낸다. 한편 '돌릴 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탄 도수신'(*  )은 연속적인 반복의 개념보다는 '그들이 돌릴 때마다'라는 간헐적인 때를 의미한다. 이는 영적 존재인 네 생물의 주요 임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 본문은 네 생물들이 찬양할 때에 하늘의 영적 존재들인 장로들도 함께 찬양함을 묘사한다. 여기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드리는 절대적 경외와 존경을 나타낸다.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 본문 역시 절대적 권위와 위엄을 가지신 이에게 복종과 경배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본문의 '면류관'은 영적 존재인 이십 사 장로들이 승리하여 받은 화관으로 영광과 승리와 존귀를 나타낸다(4절; 2:10). 따라서 본문은 이십 사 장로들이 소유한 모든 영광과 승리도 모두 하나님께 돌려져야 함을 시사한다(시33:6-9; 102:25; 빌2:10,11, Johnson).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 본문의 찬양 칭호는 당시의 황제에 대한 절대권을 표시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환상 속에서 이십 사 장로들이 드리는 찬양 호칭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가 되심을 명백히 한다.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 이십 사 장로들의 두번째 찬양 내용은 9절에서와 같이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것에 대한 찬양이다. 단지 9절에서의 '감사'가 '능력'으로 바뀌어 나타날 뿐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들이 증거하는 창조의 능력을 가리킨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 헬라어 본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 , '때문에')가 있어 본문이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유를 나타낸다. 여기서 '지으신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사스'(* )는 히브리어 '바라'(* ,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창1:1)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를 나타낸다. 이는 본문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대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임을 나타낸다(골1:16; 시148:5, Mounce, Lenski). 이처럼 창조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의 감사의 기초가 된다(Bengel).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주의 뜻대로 있었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토 델레마 수 에산'(*  )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뜻을 위해 있었고'라는 의미로 이는 창조 목적을 나타낸다. 즉,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있었고'의 헬라어 '에산'은 미완료 시제로 만물의 창조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만물의 현상이 하나님께 그 존재 기반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Alford, Johnson). 한편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스데산'(* )은 부정 과거 시상으로 만물의 존재가 하나님에게서 시작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만물이 존재하고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Johnson, 고전8:6; 골1:16).

 

 

제 2막 고난 속에서 보호받는 교회

 4:1에서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이리로 올라오라..."라고 하여서 3장과는 또 다른 역사의 장면으로 옮겨가게 됨을 본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일곱 나팔을 시작하는 8:2의 앞부분까지 그 중심의 내용은 "일곱 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일곱 인의 내용은 6:1이하에 나오며 그 앞장에 4,5장의 긴 하늘의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일곱째 인이 등장하는 8:1에 일곱째 인이 등장하는 사이에 7장에 하늘의 장면이 다시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체 내용은 하늘의 장면도 분명히 일곱 인과 연결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1에서 일곱인 은 바로 하늘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일곱인은 무엇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에게는 이해가 힘든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밝힌대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원리로 보는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본문을 살피면 더욱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원리라면 일곱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이는 것인가?
 
 그 대답은 일곱인을 설명하시는 주님의 계시 속에서 밝혀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곧 확인함으로 해결이 된다. 그것은 바로 다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다.          
 6:9-다섯째 인을 떼실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이것은 앞에서 나온 네가지 인의 결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씀 자체에 대하여 여러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일곱인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들[교회]이 고난을 당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순교의 제물이 되기까지 어려움을 겪게되는 모습인 것이다. 즉 일곱인의 내용은 고난받는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면 그 고난에서 교회는 그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이러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심각한 질문에 대한 대답적 표현이 땅의 모습이 아니라 하늘의 모습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번째 대답은 시작하기 전에 서막으로 나오는 4,5장의 내용으로 역사의 중심은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하늘에서 다스리심에 있다는 사실이며, 두번째 대답은 7장의 내용으로 외관상 고난당하는 성도들이 실제로는 안전하게 보존이 되며 참으로 승리자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제2막 서론-하늘의 왕좌와 주권자 어린 양 예수              
                                                                              
1.하늘의 왕좌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계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계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계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1]하나님의 보좌                                                               
 1)새로운 계시의 목적-마땅히 될 일을 보임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에"-이는 단지 앞의 환상후에라는 의미이지 앞의 사건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는 말은 새로운 환상이 주어지는 장면이다. 이는 성경에서 선지자들에게 계시를 전하여 주는 표현이다(겔1:1). 요한이 그문을 지나서 그 안에 들어갔느냐,아니면 밖에서 들여다 보았는가는 문제가 아니다[오히려 요한이 소명을 받는 것은 하늘을 보는 것이라는 상징일 것이다].  그것이 예언자적인 경험이며 계시로 주어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에게 하늘이 열림으로 계시를 볼 수 있는 전권위임이 된 것이다. 그 계시는 다시 나팔소리같은 음성이 요한을 인도한다(1:11). 이는 소명환상의 또 다른 기본요소로 그는 이제 또 다른 계시를 받는 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리로 올라오라"-이는 단순히 요한을 부르는 소리이지 교회 휴거의 음성은 아니다. 이 본문에서 휴거를 말하는 자들은 문맥상 아무런 근거도 없다. 요한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의 목격자로 등장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선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무엇이 행해지며 무엇이 시작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초청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를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땅에서 되는 일들은 단순히 어떤 사건[이어지는 일곱인]이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계획되고 결정된 사건이 마땅히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에서의 사건에 대하여 참된 의미를 통찰하려면 우리 촛점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어야 한다.

 2)마땅히 될 일의 중심-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이는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한이 계시를 받는 방편을 말한다. 즉 하늘의 일을 보고 하늘의 존재와 대화할 수 있도록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또한 요한이 육체적으로 세상에서 하늘로 옮겨졌다고 기록하지 않고 영적인 상태로 성령의 완전한 통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마땅히 될 일의 중심은 어디인가?                                       
 "보라...보좌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이는 지상의 성전을 모방한 것으로 참된 성전이 하늘임을 보여주며,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늘의 보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가리킨다.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은 8절에서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이시며 모든 피조물이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주권자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하나님 모습은 구약에서도 동일하다(이사야 6:1,시편47:8).

 거기에 앉아계신 분의 모습은 어떠한가?
(계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보석으로부터 반사되는 찬란한 빛으로 묘사된다. 아마도 이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위엄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보인다(딤전 6:16).                  
 시편 104:2-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셨도다
 그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다고 한다. 그리고 무지개가 보좌에 둘러있는 그 모양이 녹보석 같다고 하였다.                                                  
 이 세가지 보석의 색깔은 고대의 영광스러운 위치를 차지하였고 모든 보석의 대표이다. 이 보석들은 대제사장의 흉배에 붙어있는 열두 보석가운데도 있다(출28:17). 두로왕의 묘사에도 이 보석들이 등장한다(겔28:13). 각가지 보석에 대하여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를 중심으로 설명하는데 의문이 간다. 아마도 이 전체의 모습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인다.                
 특별히 무지개(이는 후광을 의미할 수도)가 등장을 하는데 이는 분명히 노아 언약의 모습을 반영한다(창9:16-17). 이는 보좌에 앉으신 그분이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원리가 바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며, 언약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통치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곱인의 환난에서도 여전히 성도는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는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다.      

2] 24장로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 주변에는 24장로들의 보좌가 있다.                                        
 24장로들이 하는 일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것으로 되어있다(5:14,11:16,19:4). 두번은 대변인 내지 해설자 역할을 한다(5:5,7:13). 한번은 네 생물과 함께 성도의 기도들을 하나님께 드린다(5:8). 그들의 입에서 존귀와 찬송이 계속 흘러 나온다(4:11,5:9-10,11:17-18,19:4).

 그러면 24장로들은 누구인가? 이 문제는 쉽지가 않다. 요한계시록 자체에서 분명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이를 바벨론 신전의 24 별자리로 보는 것은 성경적 사고는 아니다.               
-다른 이들은 아론의 24반차 제사장을 상징한다고 한다(대상24:5)
-12족장과 12사도들을 결합한 교회의 대표(상징)로 많은 이들이 본다. 그러나 5:9,10의 찬송에서 자신과 구속받은 교회를 구분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를 휴거된 교회라고 본다.                                       
                                                                              
 의미를 좀더 생각해 보자.                                                     
 24란 어떤 의미이겠는가? 이는 12의 두배로 12는 열두지파의 모습과 연결되며 그것이 두배인 이유는 확실한 증인[목격자]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저들이 장로라고 불리우는가? 그것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 영광을 장로들 앞에서 나타내시리라고 예언이 되었기 때문이다(사24:23). 그러나 이말이 꼭 장로라는 직분을 가리키는 말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프레스뷰오는 "나는 파견된 자이다"라는 의미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보좌 앞에 있는 무리들의 모습은 구약성경 다니엘 7:9이하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면 24장로들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7:9-11에 의하면 먼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구원받은 자들이 등장을 하고 그 다음에 천상의 모습을 그리는데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장로들과 생물들을 언급한다. 19:1-4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저들은 일종의 천상적 존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가?

 어찌되었든지 여기서는 저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3]하나님의 일곱 영
(계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출19:16-,시18:12-,77:18). 모든 역사가 하나님 중심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좌 앞에 일곱등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1:4의 해석을 참조하라(슥4:2 참조).

4] 네 생물
(계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계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다시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다고 한다. 이는 하늘 위에 계시는 보좌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보좌에서 하늘은 하나의 바다이다(시 104:3). 이러한 모습은 에스겔 1:22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중요한 사실은 유리바다가 사이에 놓임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초월성을 보여주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없다고 표현한 사실(계21:1)을 주목하라!           
                                                                              
 이제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 네 생물이 나온다. 네 생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렌스키의 주석에서 모아 놓은 견해만 하여도 21가지에 자기의 또 다른 견해를 합하여 22개의 해석이 나올 정도로 복잡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생물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그만두고 특징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보면 이렇다. 그 특징은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특징과 연결되어 있다.
 먼저는 눈이 가득하거나 생물의 모양이 사자,송아지,사람,독수리와 같은 모양으로 등장하는 것은 구약성경 에스겔 1장(1:18의 눈,6,10의 생물모양)의 환상과 연결이 되며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 머무르는 천상의 존쟁인 그룹들이라고 에스겔 10:20에 나타난다.
 두번째 모습은 여섯날개가 있고 계속적으로 찬양하는 모습은 이사야 6장에 이사야가 성전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의 다스림을 찬양하는 천상의 존재인 스랍들이다.

5]찬송을 받으시는 보좌에 앉으시는 이                                          
 제 4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에 대한 찬송과 영광을 돌림으로 끝을 맺는다. 그  찬송하는 무리는 두 종류이다.

1)네 생물들의 찬양
(계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1)찬양의 대상-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 주 하나님                   
 (2)지속적인 찬양-밤낮 쉬지않고                                               
 (3)찬양의 내용-거룩,능력,영원성(하나님의 속성을 찬양)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히브리어에서 세번을 반복하면 최상급의 의미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과 완전히 구분되시는 분이심을 찬양함이다.
  -전능하신 이-전능하신 그분의 통치이기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시련과 핍박에 접어든 교회에게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 1:4을 참조하라. 특별히 여기서는 그분의 거룩성과 전능성이 영원함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에 있는 영적인 존재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역사와 모든 것을 그분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으신 영원하신 분이심을 끝없이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4)찬양의 성격-영광과 존귀와 감사

 2)24장로들의 찬양
(계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1)찬양의 대상-보좌에 앉으신 이, 우리 주 하나님                             
 (2)경배의 자세                                                              
   -엎드려: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다.                              
   -경배하다:본래 신의 발이나 그의 옷 가에 입맞추기 위하여 엎드린다는 개념을 포함하는 말로 동방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자세로 하나님의 영원성에 적합하다.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그들의 권위가 엄위된 권위임을 나타내며 그들에게 주어진 존귀는 우주적으로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분에게 기꺼이 되돌려진다.
 (3)찬양의 성격-생물들과 동일하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함이다.                  
 (4)찬양의 내용-생물들은 속성에 강조점을 두나 장로들은 창조사역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창조되기 이전에 만물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닐텐데?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있다.   
 -단순히 만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지칭한다.        
 -만물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안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실제로 만물이 지으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연결사를 설명적 보족어로 보아서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다. 그렇다, 만물은 지으심으심을 받았던 것이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창조물의 배후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주권적인 뜻이 있음을 강하게 보여준다.                                                  

 특별히 여기에 "합당하오니"라는 말은 개선 행진에서 황제에게 쓰는 말이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라는 말도 도미티안 황제숭배에서 도입한 표현이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역사의 참된 보좌는 땅의 황제 보좌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 보좌이며, 그 증거가 바로 그분의 속성에 근거하여서 그분의 뜻대로 창조하심이다. 그래서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할 때 24장로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함께 어우러져서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하신 그분이 지금도 여전히 그분의 뜻대로 모든 역사는 움직여지지 않는가? 그래서 제 5장에서는 창조와 구원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분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은 이것이다. 1절에 나오는대로 "마땅히 될 일"을 말하면서 요한을 인도한 곳은 단순히 어떤 일이 벌어지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그 일이 벌어지도록 하는 본부였다. 역사의 중심은 땅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의 작전 본부는 이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작전에 총사령관으로 모든 것을 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사실에 대해서 생물들도 장로들도 엎드려 경배드림이 마땅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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