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 곧,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죽이려는 음
모를 아시고 그 위험을 피하셨다는 뜻이다. 그가 두려워서 피하신 것이 아니며 직책
파수를 등한히 하는 의미에서 그리하신 것도 아니다. 그것은(1) 그가 직책 파수의 목
적에 손해 없는 피신을 하신것 뿐이면(2) 하나님이 작정하신 별세의 시기가 아직 오지
않은 때에 일부러 생명을 원수의 손에 맡기지 아니하심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하는 거서은 그가 자기 생명을 이적으로 보호하시지 않고 피신으로 하심이다가.
이것도 그가 우리의 연약을 체휼하심이다.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 여기"다"란 말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그는 그렇
게 다망하고 피곤하신 때에 거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신 것이다. 그는 병자들 중 최후
한 사람까지 고쳐 주셨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차별하시지 않고
일시동인의 원리로 은혜를 주신다.
마 12: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 이 말씀은 그가 자기의 명성이 높아짐을 원
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이름 없는 미천해지신 분으로 그의 백성을 구조하시려고 이렇
게 경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고요히 일하시기를 좋아하신다. 그가 땅을 돌아가게 하
시며 모든 별들을 공주에 달아 빨리 돌아가게 하시되 아무 소리도 우리에게 들리지 않
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기를 남들에게 보이려고 애쓰는가? 이것이 사람들의 패
역한 일중의 하나이다. 무디는 말하기를 "진정한 종교 생활은 가장 좋은 갑옷은 되나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겉옷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우리는 우리
가 행한 선을 인하여 나팔을 불 필요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모든 행한 것이 끝날에
천사의 나팔 소리로 다 드러나겠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마 12: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바.- 이 아래 인용된 귀절들은 사42:1-4의 말씀이니
히브리 원문과 좀 다른 말이 있다. 사42:3끝에 있는 히브리 원문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고 한 말을 마태는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라고 하였다. 이 둘은 같은 뜻을
가진 문구들이다. "진리로 공의를 베푸는 것"은 최후의 승리인 것이다. 마태로 하여금
거룩한 글을 쓰게 하신 성령님은 이렇게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실 때에 의미만 본위로
하고 표현의 형식은 좀 다르게 한 예들이 있다. 구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께서는
꼭 같은 권위 있는 글인 신약을 영감하실 때에 구약의 말씀을 인용함에 있어서 저렇게
형식은 좀 다르게 하실 수 있는 권위를 가지셨다.
마 12:18
나의 택한 종.- 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종"
이라고 하신 이유는 그가 땅위에 오셔서 모든 고난을 받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
종하시겠기 때문이다.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의 종들
을 통하여 각국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참된 의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리라
는 말씀이다. 참된 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하나님의 의이다.
마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으로 오
시지만 이 세상의 왕들과는 다르게 나타나신 것이다. 이 세상의 왕들은 육체적인 전쟁
과 소동의 방식으로 자기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초림에 있어서 지
극하신 겸비로 나타나셨다. 그 이유는 그가 그 때에 영광을 받으시려함이 아니고 오직
미천해지시어 우리의 모든 짐을 다 지시려는 까닭이었다. 남들의 무거운 짐들을 대신
지시는 것만으로 일삼을 신 그는 그 어느 지경에서라도 불평이 없었다. 생활에 불평이
없게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1)낮아지려는 겸비라기 보다는 벌써 낮아진 겸비
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짐을 대신 지시기 위하여 벌써 그 나실 때부터 죄인들
보다 낮아지신 자리에 계시었다. (2)원수를 사랑하는 생활이 역시 불평을 안가지게 하
는 비결이다. 스테반은 그를 돌로 쳐서 죽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 불평없는 스테반이
기도의 열매이다. 어거스틴은 말하되 "기독교는 스테반의 기도의 덕택으로 바울을 받
았다."라고 하였다.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
지 하리니.- 이것은 예수님께서 땅위에 계실때에, 범죄하고 약한 인간들을 온후하게
돌아보아 주시는 친절을 의미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끼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셨다면 우리는 모두 다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높으심에서
낮아지신 것을 도리어 업신 여기고 그를 영접하지 않음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 생각하
라"고 하였다. 우리는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또 죄로 파상되었다. 그러나 이 친
절하신 주님을 고맙게 영접하여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면 그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꺼져가는 심지"는 범죄하여 죽어 가는 인간을 가리킨다. "심판하여 이
길 때"는 그리스도이 재림의 때를 의미한다.
마 12:21
이방인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이것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계시 곧, 그의 구
원하여 주시는 운동에 소망을 가짐이다. 학2:7참조.
마 12:23
다윗의 자손.-삼하7:12; 사11:1참조 "다윗의 자손"은 오실 메시야라는 말이다.
마 12:24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이거서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무리의 참 말을 듣고서 시기를 내어 말한 것이다. "바알세불"이란 말의 의미는
"거처의 주" 혹은 "분토의 주"란 의미라고 하는데 유대인의 관념에는 마귀의 왕을 가
리킨다.
마 12:25-30
이 귀절들에서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내어쫓는 일이 결코 마귀롤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을 변증하셨다.
(1) 마귀를 힘입어서 마귀를 쫓아낸다면 그것은 마귀의 사회가 서로 분쟁한다는 것이
니 되지 못할 말이다. 한 사회의 분쟁은 그 한 사회의 멸망을 가져오는 법이다.
(2)"너희 아들들"곧 유대인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가 하는 반문으로써 변
증함이다. 요세보 사기를 보면, 당시에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영업으로 삼아 돌아다니
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다 한다. . 마12:27의 말씀은 "너희 아들들"곧 유애인들이
귀신을 내어 쫓는 일에 있어서 예수님처럼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잡신을 의
뢰하지 않는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일치한다는 의미 뿐이다.
(3)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임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귀신들이 내어 쫓긴다고 변론하
심이니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영적 통치인바 그 임접은 곧, 그것의 대적인 사귀들
을 용이하게 쫓겨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접은 "강한 자"
곧, 마귀를 결박하는 일이다. 이렇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결박하는 영적 운동
이 일어났기 때문에 마귀의 무리들이 내어 쫓기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강력한 집
주인을 결박하고서야 그 가산을 탈취할 수 있음과 마찬가지이다. 마귀와 예수님과는
둘 사이에 타협을 용납할 중간성이 개재할 수 없는 적대 관계이다. 예수님을 진실히
위하지 않는 자는 마귀를 위하는 자임을 면치 못한다.
마 12:31
셩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성령님을 훼방한다함은 무엇이가?
이것은 어떤 일이 누구나 의심할 수 없도록 명백하게 성령님의 일인 것이 증명되는데
도 불구하고 그것을 계속적으로 적대할 뿐 아니라 모욕하는 악한 언행이다. 이것은 요
일5:16에 말한 "사망에 이르는 죄"요 히10:26의 "짐짓 죄를 범함"이다. 이러한 죄는영
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항상 조심하여 이러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힘쓰고 또 가볍게 남을 이 죄로 정하지도 말것이다. 어느 만큼 하나님을 거슬
러 가는 것이 성령님을 훼방함인지 우리는 한정하기 어렵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마 12:32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보이는 인자 곧, 예수님만 거역한 것이면
성령님의 은혜로써 그 마음을 고치게 하는 재생의 소망을 가진다. 그러나 회심하게 하
시는 성령님을 막는 반역자에게는 사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장 무서운
죄이다.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것은 성령님을 생각이나 행실로 적대할 뿐 아니라 말로 모
욕함을 의미함이다.
마 12:33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이것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바로 분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속을 알 수있다. 사람이 진정으로 선한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의 속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외식으로 선한 말을 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은 그의 속이 거짓됨음 보
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말이 참으로 선하여지도록 속을 닦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보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되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신앙으
로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순종해야 된다.
마 12:34,35
독사의 자식들 .- 이 같은 꾸지람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
님의 아들이나 선지자의 권위로써야 할 수 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사람은 언제나 그 속에 있는 대로 나타낸다.
혹시 사람이 그 속에 있는 악을 표현하지 않고 제지한다 할지라도 어느 때든지 어느
방면에서든지 그것을 나타내고야 만다. 누구든지 그 속에 쌓여 있는 악을 나타내지 않
으려면 그것을 회개해야 된다.
마 12:36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시문을 받으리라.- 여기
"무익한 "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알곤(* )이니 도덕적으로 무익한 것을
의미할 것이다. 바리새인의 악한 훼방보다 비교적 덜 악하며 최소한의 악함을 의미한
다. 그러나 그것도 심판날에 심문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한 말을 얼마나 엄중이 관계함을 알수 있다. 인간의 그릇된 말은 결국 그의 속
에서 나오는 열매니 그의 인격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격이 심판받는 날에 그
의한 말에 대하여 심판이 면제될 이유는 만무하다.
마 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의 뜻은, 사람들
의 말이 결국 그들의 속을 증명하는 것이니 만큼, 그들의 한 말의 성격이 결국 심판
때에 그들의 받을 구원 혹은 정죄를 결정시키는 증거품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우리의 속이 어떠한지를 발표해 주는 것인 줄 알아야 된다. 누가
외식으로 착한 말을 할 때에도 그것은 그의 속이 착하다는 광고가 아니고 착하지 못한
데다가 외식하는 죄까지 가한 악인이라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 된다.
마 12:38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바리새인들은 에수님께서 마귀를 내어
쫓으신 이적을 믿지 않고 그것을 바알세불의 힘으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서도 그들은 이제 별달리 "표적"을 보여달라고 구한다. "표적"이란 말은 원어로 쎄메
이온(* )이라고 하는데 이적에 대하여도 쓰는 말이다. 이것은 여기서
예수님께서 그의 그리스도임을 증거해 보이는 특수한 이적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이적도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새 이적을 보기 원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완고한 불신앙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은 그들의 불신앙을 통탄하셨다.
마 12:39
악하고 음란한 세대.- "악하"다 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으로서 그 새대
를 악하다고 하신 이유는 그 아랫말이 설명하였으니 곧, 그 세대가 음란한 까닭이다.
"음란"은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가 다른 것을 따르고 섬김을 이름이다.
요나의 표적.- 요나가 사흘 동안 고기 배속에 있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흘 동안 무
덤 속에 있을 것을 예표하는 표적이다. 그러므로 "요나의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최고의 증거이다.
마 12:40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땅 속에 계신 기간이 "밤낮 사
흘"이라 함은, 시간 수량대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걸친 날수를 이름이다. 날을 이렇
게 세는 풍속은 유대인들 가운데 보통이었다. 그들 중에는 한 날의 일부분이 어떤 사
건에 걸쳤어도 온전히 한 날로 여기는 풍속이 있었다.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 말씀의 뜻은
이렇다. 곧,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강퍅하여 요나보다 위대한 자 곧, 예수님의 말씀
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니 그들은 극도로 악하다. 그들은 요나의 말이라도 듣고 회개
한 "니느웨 사람들"앞에서라도 심판을 받을 만하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남방 여왕"은 스바
왕을 이름이니 그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 와서 지혜를 물은 일이 있다. 이것은 그가 하
나님의 지혜를 구한 태도라고 할 수 있으니 곧, 도를 구함이다. 그러므로 그는 의를사
모한 자였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그 세대 사람들은 패역하여 솔로몬보다 위대하신 그
리스도의 말씀도 사모하지 않고 배반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에게서는 물론이
고 스바 여왕에게서도 심판을 받을 만큼 극히 악한 자들이다.
땅 끝에서.- "땅끝"은 아라비아 남단 스바 왕국을 이름인데 지금은 예멘이라고 한다.
솔로몬보다 더 큰이.- 이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마 12:43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물 없는 곳"은 황폐한 사막 지방을 의미하는데 악령들이
가서 있는 다른 세상의 적막하고 비참함을 상징한다.
마 12:44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 말씀은 비유니 다음과 같은 뜻이있다.
곧, 회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지
않으므로 더욱 마귀의 사용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
마 12:45
이 아래 눅11:24-26 해석을 참조하여라.
마 12:46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막3:21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온 것
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성령님
의 감화로 말미암아서만 알 수 있고 육체적 인연을 통하여서는 알 수 없다.그러므로
그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 말한 예수님의
동생들은 어떠한 동생들인가? 혹은 추측하기를 요셉의 전처에게서 난 자식들이라 한
다. 그러나 요셉에게 전처가 있었다고 하기 어려우니만큼 이 학설은 믿을 수 없는 것
이다. 또 혹은 이것이 예수님의 종형제들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눅2:7의 말씀
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친동생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견이다. 여기 이 귀절들에 예
수님의 부친에게 댕한 말씀이 없다. 이것을 보면 그 때는 이미 요셉이 별세한 후인 듯
하다.
마 12:47
예수님은 천국 운동에 있어서 그 사명을 위하여 분망하신 중에 그의 모친과 동생들
도 접촉할 기회가 없을 만치 되었다. 이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명감에 불타신 것을
알 수 있다.
마 12:48-50
이 부분은 예수님의 가족관이다. 그의 가족관은 혈통 가족보다 영통 가족을 주요시
한다. 그가 이 귀절의 말씀으로 혈통가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귀
히 여기셨다. 그는 어려서 그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시었고 (눅2:51), 가나의 혼인을
축하하셨고, 그는 , 별세시에 그 모친을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시었다.(요19:26,27).
그가 여기서 역설하신 것은 육신의 인연으로보다 신령한 인연으로 된 형제 자매가 더
욱 귀중하다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
은 신본 주의의 생활 곧,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행하는 생활을 이
름이다. 그런데 이 생활을 실천하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중생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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