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
아브라함의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마태는 오래 기다리던 메시야께서 아브라함에게 약
속하였던대로(창12:3) 또는 다윗에게 약속하였던 대로 (삼하7:13 시9:7) 이제 과연 땅에 오셔서
죄인들이 구주되실 일을 보게 된 기쁨을 못이기며 이 붓을 든것이다.
마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이 족보는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선
택 원리를 표하여 보인 것이다. 그는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로 작정하셨고, 그리스도이 조상될 자들을 미리 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이 족보에 들지 못하였고 , 에서도 이삭의 아들이지만 그도 이
족보에 들지 못하였다.
마 1:3-5
다말, 라합, 롯 - 마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조상들의 이름을 쓰는 중 이방인들,
죄인들,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선택된 사실에 대하여 특별히 기록한다. 그들
은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이방인이며 여인들이로되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중에
참여된 것에 대하여 마태는 특필하여서 하나님이 복음이 어느 나라 사람에게든지 어떤
지위의 사람에게든지 차별없이 은혜 주는 사실을 보인다.
마 1:6
다윗은 우리야이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람을 구원하시
는 이치가 이 귀절에도 나타난다. 그는 , 다윗의 불결한 관계로 출생한 솔로몬을 그리
스도의 조상으로 택하시기를 부끄럽게 여기시지 않았다. 이 귀절 부터 11절까지는 순
전히 왕들의 이름이고, 12절 16절까지는 왕손이 바벧론으로 포로된 후 평민이 되어 내
려온 족보를 보여준다. 7-11절까지 있는 왕들이 이름으로 말하면 , 선한 왕들도 있고
, 악한 왕들도 있다. 다윗은 만고이 표준이 되는 왕이며, 그에게 종교적 실수는 없었
다. 글에게도 도덕적 실수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든지 회개하며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으
로 빛난다. 시편은 그의 생활과 체험을 잘보여준다.
솔로몬은 지혜 있는 왕이며, 성전을 건축하는 경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늙은 후에
그는 불행히 범죄하였으니 곧 다른 신들을 섬긴 일이 있다. 그가 그런 죄에 빠지게 된
원인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나라들의 여자들을 취한데 있었다. 그는 그 여자로 말미암
아 꾀임에 넘어간 것이다. 그의 이런 범죄 때문에 그의 나라는 그의 아들 시대에 이르
러 남국과 북국으로 나뉘게 되었다.
마 1:7
르호보압- 이 왕은 솔로몬의 아들이지만 지혜가 부족했다. 그가 백성의 멍에를 가
볍게 해 준다면 열 두 지파가 그의 왕됨을 찬성하려 하였으나, 그는 그의 동무들의 충
동으로 그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정치하였으나 나는 전
갈로 너희를 정치하리라"(왕상12:14)고 하였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 밖에는 그를 왕으
로 추대하지 않앗다. 그렇게 되어 솔로몬의 나라는 남북으로 갈려서, 북국은 본래 솔
로몬의 신하로 있던 여로보암이다스리고, 남국은 르호보암이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후에 종교적 범죄에도 빠진 일이 있다. 그는 마음이 약한 왕이었다.
아비야 - 이 왕은 무흠한 자였고, 신앙이 있었고, 또한 북국 이스라엘과 싸워 이긴 자
였다.
아사 - 이 왕은 처음에 신앙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모든 우상
들을 내어 던지게 하였고, 모친이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태후의 자리를 페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범죄하였으니 곧 이스라엘 와 자바아사가 유다를 쳐서 올라올
때에 성전의 보물을 아랍 나라에 보내면서 청병하였고 선지자 하나니가 바른 말을 하
여 준다고 그를 옥에 가두엇고 병들엇을 때에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모든 의사들에게
도움을 찾은 것이다.
마 1:8
여호사밧- 이 왕은 아합 왕가와 혼사를 맺은 일로 인하여 아합왕을 도와준 것과
및 이스라엘이 악왕 아하시야와 합하여 배를 지은 일 밖에는 실책이 없었던 선한 왕이
었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겼고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게 하기 위
하여 선생들을 순행하게 하였고 그 나라를 강하고 평안하게 만들었다.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요람"은 아함의 딸과 결혼하고 악한 일을 많이 행하엿으나
여호와께서 그 왕을 아주 페지시키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왕은 북국의 선지자
엘리야의 편지를 받은 일이 있으니 거기 말하기를 "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 나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과연 이 예언과 같이 창자병
에 걸려서 2년후에 창자가 흘러 나와 죽었다.
"웃시야"왕은 처음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성공
한 후에는 교만해져서 함부로 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는 죄를 범하였을 때에 제사장의
책망을 받고 노하다가 문둥병을 얻은 왕이다.
요람왕과 웃시야왕 사이에 세 임금이 있다.
그런데 여기 마태복음의 족보 기록에는 그들의 이름이 빠졌다. 이 세 임금의 이름이
빠진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마태는 이 족보를 기록함에 있어 하나님의 선택을 표준으로 한다. 아브라함의자
손이라고 하여 다 선택된 자손이 아닌 것 만큼 하나님의 선택에 들지 않은 자들의 이
름들은 이 족보에서 빠진 듯하다. 신령한 뜻을 위주한 역사는 이렇게 자연적 차서에
매이지 않는 일이 성경에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이름표에 단
지파의 이름이 빠진 것과 같은 것이다.
(2) 위에 있는 설명이 가합인 유대 나라에서 페위를 당한 임금들이라고 생각된다.
요람의 아들 아하시야는 그 모친 아달랴의 지도대로 악한 아합 집의 길을 좇았
으니 (대하22:3) 참으로 자주 하는 왕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그느 악한 왕
들을 페하여 죽이는 하나님이 종 예후의 숙청을 받아 죽임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실제적으로 다윗가문의 법통적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는 스가랴라고 하는 선지자를 성전에서 죽인죄로 징계
를 방따아 죽임이 되었고, 열조의 무덤에 장사되지도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도 법통
왕으로 간주되지 않은 듯하다. 요아스의 아들 아마시야도 에돔 신을 가져다 섬길 때에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으나 순종치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왕을 페위하시리라는 선고를 들엇으며 후에
무리에게 죽임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도 법통왕으로 간주되지 못한 듯하다.
이렇게 마태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으로 페위되어 혹 죽임이 되었거나 포로된 임금
들의 이름들은 이 족보에 올리지 않았다.
여호아하스 와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포로되어 간 페위
의 왕들이기 때문에 마태는 족보에 넣지 않은 것이다 . 오직 여고냐는 포로되어 바벧
론에 간 자로되 마태가 그의 이름을 이 족보에 넣은 이유는 그를 왕으로 여기는 까닭
이 아니고, 다만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간 이후의 첫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마태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의 열 네대 왕을 생각한 것이다.
마 1:9
요담-이 왕은 여호와 앞에 선을 행하였다.
아하스.- 이왕은 우상을 섬겼으며 환난을 당할때에 더욱 범죄하였다. "히스기야"는
신앙이 있엇고 기도 많이 한 왕이었다.(왕하19:14-19,20:1-7)
마 1:10
므낫세-이 왕은 우상을 많이 섬기면서 성전 안에도 우상을 들여 세운 악한 자였다.
그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앗수르 군대로 말미암아, 앗수르 나라에 사로잡혀 가서 회
개하고 다시 은혜를 받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왕위에 올랐다.(대하33:10-13),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격동한 여호와의 진노를 필경 유대 나라가 바벧론에 사로잡혀 가도록
하였다.
아몬 - 이 왕은 우상을 섬긴 악한 자였다.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그를 죽였으나 백
성은 반역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페위된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그이 왕위를 보존시켰다.
요시야- 이 왕은 므낫세 왕이 더럽힌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종교를 경정하였다. 그
러므로 요시야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킨 왕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왕하23:25)
마 1:11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여고냐"는 여호야긴 왕의 별명인 듯하
다. 그러면 그는 요시야의 직자(直子)가 아니고 손자이다. 요시야의 아들은 여호야김
이고 여호야김이 아들이 여고냐이다. 그러나 여기 이 족보는 여호야김을 건너띈다. 이
렇게 건너뛰는 이유는, 여호야김은 애굽 왕이 세워 준 임금이었고 또 바벧론에 사로잡
혀 가 하나님의 뜻대로 페위된 까닭이다. 이 족보에 "낳고"란 말은 반드시 직자에 한
하여 쓴 것이 아니고 그저 대(代)이음을 의미한다. 이 말은 여러 대 후손에게나 양자
에게도 쓸수 있었다. 그런데 여고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로잡혀 바벧론에 가서 페위
가 되었으니 만큼 마태는 그를 법통 왕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여기 놓은 이유
는 다만 포로파의 연원을 밝히려 한 까닭이다.
마 1:12
여고냐는 스알대엘을 낳고- 눅3:27에는 스알디엘의 "이상"은 "네리" 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스알디엘"이 "네리"라고 한 사람이 양자가 되었던 까닭인듯하다 . 우리는 이
런 옛날의 일에 대하여 확실히 알기 어려우나 성경의 이 기록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다. 여고냐는 스알디엘 이외에도 여섯 아들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왜 스알디엘
만을 내세우는가? 그 이유는, 스알디엘은 하나님의구속 사업에 있어서 적지않게 관계
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인 듯하다.
스알디엘은 스룹바벧을 낳고-"스톱바벧"은 하나님의구속 사업에 크게 사용이 된 인
물이다. 대상 3:19을 보면,그를 브다야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그가 스알디엘의 아들
이면서 브다야에게 양자가 된 까닭으로 그렇게 기록된 듯하다
마 1:13-16
누가복음에는 스룹바벧과 예수님사이에 17명의 조상이 끼어있으나 마태 복음에는
10명뿐이다. 이와같은 차이점은 아마 마태나 혹은 누가가 양자의 조계를 채택한 관께
로 생겼을 것이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
시니라- 시네이틱 시리악 사본에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약혼한 요셉이 예수를 낳으니
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법률상 계대로만 요셉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어쨋든 시
네이틱 시리악 사본보다 우리의 사구가 더욱 권위있다. 우리 본문에 예수님이 마리아
에게서 나신 것을 중점으로 말하여 그의 동정녀 탄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마 1:17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벧론으로 이거
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벧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1) 아브라함파는 다윗으로 끝났는데 열네 조상이다.(마1:2-6)
(2) 다음은 왕파인데 다윗부터 요시야까지 열네 조상이다.
이 파에 여고냐는 이름이 있을 뿐이고 포로되어 페위된 자인만큼 왕으로 간주되지 않
았다.그와 동일하게 포로된 왕이었던 여호아하스 , 여호야김 시드기야도 이 족보에 오
르지 못하였다. 여고냐의 이름이 여기 있는 이유는 다만 제 3파, 곧 포로파의 연원을
표시하려는 데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왕이 죽임이 되든지 외국에 포
로되어 페위될 때에는 그를 법통적 왕으로 간주하지 아니함이 마태의 기록이었다. 그
러므로 그는 요람과 웃시야왕 어간의 세임금을 빼 놓았고 포로되어 간 임금들, 곧 여
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도 빼 놓았다.
(3) 포로파인데 여고냐부터 예수님까지 열네 대이다. 포로파의 첫 조상은 여고냐인
데 그는 이세의 그루터기와 같이 미천해진 사람이었다. 에수님은 이러한 인간적으로는
무너진 다윗의 왕통, 곧 그루터기에서 나온 싹이시다.
마 1:19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라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 여기 이른
바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한것은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지만"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정절없는 여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옛날 이스라엘의 율법이었다. 그러나 요
셉은 율법대로 행하는 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는 하지 않고 가만히 파혼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요셉은 의인인고로 율법의 정신적 실형을 위하여 죽이
지는 않고 가만히 파혼하고자 하였다고 해석한다. 죄우간 요셉의 고민은 켰던 것이다.
이 고민은 초 자연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이성 문제의 속한 큰 것이었다. 그가 훈에
이 고민을 해결 받고 마리아와 일생 같이 살았으니 거기에 초자연적 간섭이 있었던 것
은 확실하다.
마 1:20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 여기 "성령"이란 말이 헬라 원어에서는
그 위치로 보아서 힘 있게 표현되었다. 천사는 마리아의 잉태가 이렇게 기적으로 된
점을 힘있게 말하여 요셉의 번민을 풀어 주기로 힘쓴 것이다.
마 1:21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 "자기 백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을 가리키고, "죄"란 말은 "죄들"이란 복수명사이다. 이 말씀을 보면 천사가 예수님의 구원 역사성질을 처음부터 바로 지적하였다. 예수님은 이 세상 권세로 이 세상 생활이 잘되게 하실 임금이 아니고 신령한 방법으로 사람을 죄악과 및 그 받을 벌에서 구원하시는 구주이시며 , 그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지 않고 오직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마 1:22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후에
반드시 그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여기 인용된 말씀은 사7:14의 예언이다.
마 1:23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 여기 "처녀"란 말은 헬라원어로 팔데노스( )라고 하는데 히브리 말로 알마(* )란 것의 번역이다. 히브리어 알마(* )는 혹설에 결혼기의 젊은 여인을 가리킨다고 하며 여기서 "처녀"의 의미로 썼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언제나 처녀를 의미한다고 함이 옳은 해석이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의 음역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이렇게 임마누엘의 방식으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신 그가 ,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시며 하늘에서 내려 오시여 인성을 입으사 우리처럼 되시고 우리의 죄짐을 져주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하시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임마누엘은 그가 동정녀에게서 탄생되시므로 완전히 성취되었다.
마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 요셉은 천사의 부탁하는 말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믿음이 그에게 그렇게 즉시 생긴 이유는 (1) 천사의말이 그의 고민하는 생각을 알아 맞힌 까닭이고 (2) 마리아에게 된 일이 이사야의 예언대로 된 줄 안 까닭이다.
마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 로마교의 신학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그릇된 해석을 가진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요셉이 마리아의 해산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으니 그 후에도 평생 동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러한 해석에 의지하여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녀됨(perpetual virginity of mary)"을 주장하고 마리아를 숭배한다. 그러나 이 해석을 성경의 본문을 무시하고 인간의 편견을 붙이는 오착이다. 마리아가 결혼 생활하여 후에 다시 아들들을 생산하였다고 하여 마리아의 신분이 낮아질 것도 아니다. 성경은 결혼 생활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로 보아서 우리는 마리아도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 받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반렬에 있음을 잘 안다.(눅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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