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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내어 보내신  이유는
그때에 전도가 긴급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렇게 긴급하였던 사실은 윗장끝에 기록
되어 있다. 그것을 이 아래 간단히 해석함이 필요하다.  9:37에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전도자는 사람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
니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으로 보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런 일군이 많이 일어
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하신다. 여기 "보낸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엑발레(*          
)라고 하는데 "밀처 내어보냄"을 의미하는바 긴급한 요구에 의하여 얼마든지 많이  내
어보냄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 있어서 교역자들의 수효가 이렇게 많아진  것은,  이
어귀의 실현이라고 봄이 옳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귀신을
축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한 외부적 증거이다. 이런 권능은 전도에  있어서
첫째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믿게 하는데 도움되는 부속적 요소이다.  "귀신
은 쫓아냄"을 복음 전파의 첫 머리에 두는 이유는 복음이 이르는 곳에 먼저 마귀가 근
을 두려워하여 떠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복음은 먼저 마귀를  내어쫓은  후에야
천국을 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눅11:20). 예수님께서 친히 그의  모든  권능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 위대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이 제자들에게
그러한 권능을 행할 힘을 주신 것도 그의 위대를 나타내신 것이다. 크레다너스는 말하
되 "보통 사람은 남에게 교훈을 줄 수는 있어도 자기가 소유한 권능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Een gewoon mensch kan dwn ander de macht of  kracht  nietgeven,  die  hij
zelf bezit. Hij moge den nderonder wizen-Lucas.  I)고 하였다.

 

  마 10:2-4

  이 귀절들은 열 두 사도들의 명록을 포함한다. 명록에 대하여 두가지 알 것이 있으
니. (1) 왜 열 두 사도냐? 열 둘이란 수효에 무슨 뜻이 있는가? 열 둘은 택한  백성의
수효에 대하여 쓰이는 것인데 완전한 조직의 수이다. 이스라엘도 12지파요,  계시록에
구원 받은 자들이 수효 144.000도 열 두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2) 왜 유다를 사도로 택하셨나? 예수님께서 유다의 장래를 모르셨을 리가 없다. 그는
시몬의 장래도 아시고 그를 개바라고 하셨다. 그가 유다를 택하시 것은 모르시고 택하
신 것이 아니라(요6:70,71)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
터 유다를 구원받을 사람으로 택하지 아니하셨으나 그이 죄악에 대한  책임은  없으시
다. 누가 묻기를 하나님께서 그를 그런 사람으로 버려 두셨다면 그의  죄악의  책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을까? 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
다. 그 신기 막측한 오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풀지 못한다. 여기 기록된 열 두 사도
의 이름 순서는 뜻이 없지 않다. 베드로는사도의 첫 머리 되는 일을 많이 했으니 처음
에 적혔고 유다는 예수님을 판 악인이 되고 말았으니 끝에 있다. 이 사도들이  특성은
각각 다르니 베드로는 급성적이고 요한은 침묵적인 듯하고 빌립은 실제적이고  도마는
어떤 때에는 회의적이었고 시몬은 열렬한 듯하고 그 밖의 인물들은 평범한 듯하다. 교
회에는 이렇게 각각 다른 특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마 10:5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이것은 이방 사람들을 천국에서 제외하거나 이스라엘
에게  민족적 우대를 주는 의미의 말씀이 아니고, 복음 전도의 유효한 순서를  가리키
는 것 뿐이다.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물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족이었고 그들의  종
교도 혼합 종교였으니 만큼 유대인에게 가증스러웠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사마리
아 사람을 낮추어 보시는 의미로써 말씀하시지 않고(요4:1-) 전도 순서의 첫째 대상을
유대인으로 하신 의미에서 말씀하셨다.

 

  마 10:6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의 전부를 하나님의 양 곧,
택한 백성으로 보시는 의미가 아니고 그들 중에 있는 뺀 백성을 이름이다. 택한  백성
을 양에 비하는 성구들은 구신약을 통하여 많이 있다.

 

  마 10:7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여기 "천국"은 교회를 가리킨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시고 성령님께서 강림하시므로 시작한 것이다. 이 때는 아직 그
때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만큼 "가까왔다"고 전파된 것이다.   "천국"에  대하여는  말
6:10의 "나라"에 대한 해석 참조.

 

  마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병 고치는 권능을 주셨으니 만큼  그들은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능력은 영혼의병 고치는 능력에  보조역으
로서 필요한 때에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함은 아니다.
   죽은 자를 살리며.- 이 말씀이 어떤 사본들에는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이 있는 사본의
신임성이 강하다. 당시에 사도들이 죽은 자를 부활시킨 일에 관하여는 이레네오도  역
시 증거하였다.

 

  마 10:9,10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
이나... 가지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신앙하고 장래의 생계는 염려하지 말라는  의
미의 말씀이다. 전도자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만 일하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도
우시므로  의식을 얻을 것은 확실하다. 금전을 의뢰하는 전도자는 능력이 없고 따라서
복음으로 결실하지 못한다.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마라.- 막6:8,9 을 보면 이것과 동일한 전도 여행의  훈시에
있어서 "지팡이나 신"을 취하라고 하여 마태 복음의 말씀과 상충되는 듯이 보인다. 그
러나 마태 복음에서 금한 것은 새로운 지팡이를 사지 말라는 것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
는 지팡이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마태 복음에서 "신"이라는 말은 휘
포데마타(*                    )인데 마가 복음에 있는 "신"곧, 산달리아 (*
               )와 다르다. 휘포데마타는 덧구두와 같은 것이고 산달리아는 없어서는
안될 신이다. 여기서 금한 것은 필요한 신 이외의 것이다.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전도자가 그 거
룩한 복음을 전하면서 직업적으로 노임을 기대하여도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
도자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만 일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시는 것
이 원리라는 말씀이다. 크레다너스는 말하되,"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생계
를 고려해 주실 줄 알고 나아가야 된다"고 하였다.

 

  마 10:11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이것은 그 유하는 집을 일정하게 하므로 도를 듣
고자 찾아 오는 자들에게 편리를 주려는 것이다.

 

  마 10:12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이것은 무용한 축사가 아니다. 13절을 보면
그 빈 평안이 반드시 그 집에 임한다고 하였다. 이 만큼 사도된 자의 영권이 위대하였
다. 그 영권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헤이다.

 

  마 10:13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이것을 보면 그들의  말이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말이 그 상대자에게 떨어져 열매를 못맺힐 것
이면 그들 자신에게 돌아와서 복을 준다. 남을 축복하는 자가 그 자신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은 더욱이 그 상대자가 악으로 갚는 경우에 그렇게 된다.

 

  마 10:14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이것은 몇 가지 뜻을 가졌으니, (1) 사도들은 그  할바
책임을 다하였다는 것, (2)그들과 그 배척자들과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  (3)
그 먼지 떠는 행동은 역시 최후로 복음을 믿으라는 무서운 권고와 같다.

 

  마 10:15

  마11:23 해석 참조.

 

  마 10:16

  뱀 같이 지혜롭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만나는 위헙에 대하여  지혜
롭게 피하여야 될 것을 가리킨다는 의견이 있다. 쓸데 없는 수난은 당하지 않도록  힘
쓰는것이 전도의 귀한 기회를 보존시킨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의미
하신것은 그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도자가 어떤 위험한 일을 인하여 그 전하는 진리를
가리우거나 꾸부러뜨리거나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전도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시키는 것이 첫째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는 또는 감화있게 드러내는 것이 첫째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뱀"은 성경에서 마귀를 가리키는 비유인데 뱀과 같이  지헤로
운 것이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다. 그러나 이런 의혹은 비유의 원리를 모르는 가운
데서 생긴 것이다. 성경은 비유의 재료를 취함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롭다. 마귀로  비
유된 뱀이라고 하여 선한 일에 대한 비유의 재료는 못된다고 할 수 없다. 성경에 사자
가 예수님에 대한 비유로 나타났으나(계5:5) 그러나 어떤때에는 그것이  마귀에  대한
비유로도 나타났다.(벧전5:8)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여기 "순결"이란 말은, 헬라원어로 아케라이오스(*         
       )이니 정경,단정, 단순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여기서 하나님을 향한 순결
을 가리킨다. 신자가 세상을 향하여 지혜롭게 행할 것이나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할  정
절을 파상에 가면서 까지는 할바 아니다. 그렇게 정결을 파상해서까지 이 세상의 생명
을 구하는자가 있으면 그것은 황금을 주고 썩은 돌을 사는 미련이다.  지혜있는  자는
간교해지기 쉬우니 순결하기 어렵고, 순결한 자는 우직해지고 지혜롭기 어렵다.  그러
므로 한 사람이 이 두 가지를 겸전하기 어렵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
가 성령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두 가지를 겸하여 가질 수 있다.

 

  마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지만 인간을 의뢰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인간
을 의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착취이며 또한 기생충의 더러운 버릇이다. 우리는 친
한 벗이 원수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남을 의뢰하지는 말것이다. 그렇다고 하
여 우리가 남을 불신임하여서는 잘못이다. 신임하는 것과 의뢰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신임은 의뢰함이 없이도 할 수 있다.
 인간을 사랑하기만 하고 의뢰하지 않는 것이 우리 본문의  말씀대로"사람을  삼가"는
행동일 것이다. 전도자가 이렇게 사람을 삼가지 않고 의뢰하다가 그 사람이  배반하므
로 해를 입을 때에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친한 벗도 배신하는 일이 있다고  각오하고
있으면 그런 배신하는 일이 나타날 때에도 상심하거나 낙망하게 되지 않는다.  "공회"
는 산헤드린 공의회니 그 때 종교의 최고 치리회였다. 초대 교회의 전도자들이 이  회
에 잡혀 가서 심믄을 당한 일이 있었으니(행5:27). 그것은 이 예언의 성취이다. "회당
에서 채찍질하리라"함은 그때에 유대인의 풍속에 종교접을 어긴 자를 회당에서 태형으
로다스리는 일이 있었는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렇게 유대인들에게서 핍박을  받으
리라는 말씀이다. 이 예언도 성취되었다.(행5:40)

 

  마 10:18

  저희가 이방이들에게 증거가 디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핍박으로 인하
여 도리어 널리 전파됨은 경험적 사실이다.

 

  마 10:19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여기 "그 때"란 말은  누가복음(12:12)의  헬라
원어로 엔 아우테 테 로-라(*                      )이니 "바로 그 시간에"란 의미이
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세상의 세력에게 붙잡히는 경우에 어떤 말로써 답변할 것을 우
려할 것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거기에 보내어 증거할 것이 있으니 만
큼 거기 임석하여  주실 말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 10:20

  신자가 주님을 위하여 관리들 앞에서 말할 것을 성령님께서 주시는 이유는 (1)  그
가 법관에게 끌리워 가기까지 하나님 말씀을 진실히 붙잡은 까닭이며 (2)  그  기회야
말로 관리들에게 복음을 전할 유일한 때인 까닭이다.

 

  마 10:21

  이 말씀을 보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끼리 서로 관리에게 잡아 주며 대적한다.  이것
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복음을 믿는 것은 가까운 가족적인연보다 더욱 중요하기때문이
다. (1) 복음을 믿는 가족은 믿지 않는 가족에게 극도의 미움을 받을  지언정  신앙을
버리지 않으며 (2) 믿지 않는 가족은믿는 가족의 그렇게 진리 양보심이 없는 것을  볼
때에 가족적 인연에 끌리는 것보다 진리를 대적하는 불타는 심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러므로 후자는 전자를 박해한다.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을 믿는 것이 가족적 인연보다 사랑스럽고 더욱 가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 10:22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구원 받을 자들은 핍박이 많고 곤
고가 심한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씀이고 그들이 그런 핍박을 받는  공때문
에 구원 받는다는 말씀은 아니다. 칼빈이 말하기를 "이 간단한 약속은 신자의  마음에
힘을 준다. 그 이유는, 그가 끝까지 참아 견딘 결과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실패없는 결국을 내어다보는 싸움이 없다"고 하였다. 구원 받을 소망을 확실히
가진 자는 온 세계가 그를 거슬러 공격해도 염려할 것 없다.

 

  마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이것은 그 전도자의 생명 보존
을 첫째로 생각하여 피하는것이 아니고, 그곳에서는 복음을 받지 않는고로 딴  곳으로
가서 전도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해하여 환난을 당한 전도자의 피신이 무
조건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전도자는
환난 중에서라도 복음의 말씀을 밝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 그는  자기의생
명을 보존시키려고 무조건적으로 노력할 것은 아니다. 그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리지 못할 피신은 안해야된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들 다 다니지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여기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신 강림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라고 하는 학설이 적합해 보인다.

 

  마 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이  말씀은  선생되신
예수님이 핍박을 받았으니 만큼 그의 제자된 자는 핍박을 안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15:20). 제자된 자는 그의 선생이 당하는 일에 동참해야 되고 종된 자는 그의 상전
의 당하는 일에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마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그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윗 사람이 당하는 핍박을
아랫 사람도 받으면 쾌족하게 여길 만하다. 그런 때에는 아랫 사람으로서 핍박을 안받
는것이 오히려 불쾌하고 가시 방석에 앉은 감이있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곧, 유대인들이 예수님
을 바알세불이라 하며 욕하였으나(마12:24), 그의 집 사람들 곧, 그의 거느리는  제자
들에게 대하여 비난하지 아니할 수 없다.

 

  마 10:26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이것은 이 때까지 세상이 모르던 복음이 이제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또는 그의 능력
으로 밝히 알려지고 전파된다는 말씀이다. 이 운동을 막을 자는 천하에 없다.  그러므
로 이 운동에 참가한 자들은, 실패가 없고 부끄러움도 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
은 염려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다.

 

  마 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이 말씀은 윗  말씀의
해석과 같은 뜻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그저 윗 말씀에 대한 병행구이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 몸이란 말
은 헬라 원어로 쏘-마(*        )라고 하는데 신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성경에  많이
있는 육체와 다르다. 육체는 부패한 인성 혹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다. 영혼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프쉬케(*        )라고 하는데 이것은 몸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성경 어디
서나 말한다.(눅12:20)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 지옥이란 말은 헬라 원어
로 게엔나(*            )라고 하는데 "힌놈의 골짜기"란 의미이다. 그 "골짜기"는 유
대에서 흉악한 곳인데 거기에 모든 더러운 물건을 내어 던져 불사르는 곳이었다. 그러
므로 그 곳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별세한 후에 가는 흉악한 곳을  상징한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한다 함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던져 없애 버린다는 것이  아니
고 형벌하신다는 것이니 그것은 결국 그 형벌을 받은 사람이 영원히 불행한 처지에 빠
졌으며 내어버림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최후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벌을  주
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촬스 핫지는 말하기를 "무엇이 파멸되었다는 것은 그 것이 못쓰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령 배의 돛대가 부러졌다든지 키가 없어 졌다든지 배 옆에 파상되었다든지 하였으면
그것은 파명되었다고 말 할 수있다. 영혼이 하나님에게 떠났고 다만 마귀와 그 사자들
로 더불어 같이 있기에만 적당한 자가 되었으면 그것은 영혼이 전적으로 영원히  망하
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주 없어진 것보다 몇 천배 더한 멸망이다"라고 하였다.
 헬만 바빙크도 말하기를 "지옥에 가는 자를 가리켜 멸망받은 자라고 성경이 말하는데
(마7:13; 갈6:8; 살후1:9; 계2:11) 어떤 자들은 이런 말을 가리켜 아주 없어짐을 말한
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근거 없는 것이다. 생명이란 것은 성경에서 단지 존재
만 가리키지 않으며 죽음이란 것은 질적 멸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인간
을 첫 죽음에서 없애버리지 않으셨음 같이  그 둘째 죽음에서도 그리하신다."라고  하
였다.

 

  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기 "앗사리온"이란 말은  헬라
의 돈 드라크마의 10분의 1이다. 참새 두 마리의 값이 이렇게 헐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것 하나의 생명도 관리하신다. 그렇다면 기독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애호야 말할 것
이 무엇이랴!  윗 귀절에서는 하나님만이 가장 두려우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사
람을 두려워할 여지가 없다 하였고, 여기서는 생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애호하시는 장중에 있으니 신자는 그를 신뢰할 뿐이고 다른 것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
다고 하신다. 크레다너스는 말하되,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뿐 아니라
그를 신뢰함도 있어야 된다. 이 두가지는 함께 있어야 된다."라고  하였다.  슐라텔은
말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은 신앙을 없이 하는것이 아니며 신앙은  두려운
없는 방심을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의식에는 이 두가지가  다  일어난
다"고 하였다.

 

  마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극도로  주밀하게
그의 성도들을 돌아보시며 에호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털이 몇 개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신다. 그만큼 그는 우리를 아시며  애호하심에
있어서 우리 자신보다 무한히 나으시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
인할 것이요.- 여기 "나를 시인하면"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호몰로게 세이 엔  에모이
(*                                  )라고 한다. 이것은 크레다너스의 해석대로  예
수님은 구주요 심판자라고 공적으로 고백함이다. "사람 앞에서"시인한다 함은  확신있
게 또는 부끄러움 없이 가지는 공고백을 의미하는 동시에 핍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
지 않고 굳헤게 고백함을 이름이다.
 "저를 시인"한다 함은 헬라 원어로 호몰로게소-엔 아우토-(*                      
           )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고백자 곧, 참 신자를  자기의  진실한
성도로 인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시겠다 함자
다 가장 높고 엄숙한 심판자리에서 가장 공개적인 인증을 하시겠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말씀이다.

 

  마 10:33

   나를 부인하면.- 여기 "부인"한다 함은 사람이 혹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일시적
불충을 의미하지 않고 그의 생활 자체가 일률적으로 주님을 거부혹은 부인함을 가리킨
다. 일시적 불충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도 있었다.(마26:69-74)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 뜻은 그리스도께서 심판 때
에 위애 말한 바 회개함이 없는 배교자를 천국에 들이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눅12:51에는 "생각한다"는 말  대
신에 "안다"는 말로 씌어 있다. 이것은 "옳지 않게 생각함"을 의미한다. 곧, 근거  없
이 또는 부당하게 추상함이다. 이 세상은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사단의 역사 아래 있는
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단과 타협하려 하심도 아니고 세상과 타협하려 하
심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단을 파하려 오신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그대로와 예수님과의 사이에는 타협이 없다. 그는 이 세상 그 대로에게 대하여는
대립과 충동의 걸음을 취하신 것이다. 크레다너스는 말하되, "주님께서 이 세상과  충
동하심은 마지못하여 하는 걸음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원하시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어 인간을 회개시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화목한 참 신자들의 심령에 평화를 주신다. 사단과 화목한 이 세상과 타협하
여 가면서 세계 인류를 통일하려 하는 것이 예수님이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세
상에 인류를 통일하려 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하
여 싸우려고 오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에 대하여 오해하면 안된다. 이것은  예수
님께서 이 세상에 대하여 혈육의 싸움을 하시려고 오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을 대적하되 폭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영력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과 기도와 경건한 생활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싸움을  하
는 것이다.
   검을 주러왔노라.- 여기 "검"이란 말은 무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싸움을  비유한
다. 그리고 이 싸움을 혈육의 싸움이 아니고 신령한 싸움이다.

 

  마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
이라.- 이것은 윗절이 말하는 영전이 어떻게 심각하게 일어날 것을 가리킨따.  그것이
그렇게 심각하게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보신것이다. 이  영
전은 심각하여 한 가정 안에서도 일어난다. 그렇게 영전이 한 가정  안에도  일어나는
것이불행한 것이 아니고 사단의 결박을 끊는 기쁜 운동인 것이다.

 

  마 10:36

 마10-21 해석 참조.

 

  마 10:37

  이 귀절은 위에 말한 영전이 일어난 이유를 가리킨다. 이 영전의 이유는 참 신지가
그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
는 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생활이다.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이것은  영
전의 방법에 대하여 말한다. 신자는 그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의 복음  신앙  때문에
충돌이 생길 때에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육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오직 영적으로만  하
고, 또한 그들을 육적으로 해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육적으로 자기가 손해를 본다. 다
시 말하면, 자기가 모든 핍박을 당하면서 진리를 끝까지 파수한다.  진리를  파수하기
위하여 남을 핍박할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핍박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에는  내가
핍박 받는 신조는 있으나 내가 남을 핍박하는 신조는 없다. 진리 파수는 그 진리를 믿
는 나 자신이 핍박 받으므로 더욱 승리하게 된다. 우리 본문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는다는 것이 곧, 이 의미이다. 십자가의 진리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자라야
열매 있게 전한다.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 이 말씀의 뜻은 이 세상 생명을 제일로 알고 그것의 안전을
도모한 자를 가리킨다. 그런 자는 사실상 영원한 생명으로야  살수 있는 영혼을  망케
한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 이 사람은 주님 제일 주의로 주님만 소유하기 위
하여 목숨을 잃는데 까지 이르는 자이니 그는 이 세상 생명을 잃어도  영혼의  생명은
주님 안에 안전보장시킨다.

 

  마 10:40

 본절은 사도들이 권위가 예수님을 대리하는 정도임을 보여준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자.- 이것은 어떤 사람이 선지자임을  인하여 어떤 사람이 그를 대접하는 것을 이름이다.

  마 10:42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곧 인간의 보기에 작아보이는 자라도 예수님의 제자된 것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이 그를 대접함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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