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
성전 출입의 자격과 성전 봉사자들의 자격 및 성전 봉사시의 유의 사항이 45:8까지 세부적으로 기술된다. 그 문이 닫히었더라 - 여기서 '닫히었더라'(* , 사가르)는 문자적으로 '닫아 잠그다', '밀폐시키다'란 뜻으로 완전한 '닫아 잠그다', '밀폐시키다'란 뜻으로 완전한 봉쇄를 가리킨다. 이는 문법상 미완료형으로 그 문의 계속적인 봉쇄를 가리키는 2절의 '닫고'(* , 사고르 이헤예)와 최종적으로 그 문의 영원한 봉쇄를 의미하는 '다시 열지 못할지라'란 표현과 함께 상붕적으로 반복 강조됨으로써 완전한 봉세의 의미를 더욱 가중시킨다.
=====44:2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 동문의 봉쇄 이유이다. 곧 성전에 있어 동문이 가장 중요한 출입구인데도 그 문이 봉쇄된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곳이기에(43:4)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새 성전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전 성전에서처럼 떠나는 일없이 그곳을 영원한 거처로 삼아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43:7).
=====44:3
왕은 예외적으로 현관의 출입이 가능했으나 동문이 닫혀있는 관계로 일반인들과 같이 남쪽이나 북쪽 문을 통해 전의 현관에 이를 수 있었다.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 왕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제사를 수행한 뒤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45:17). 이처럼 왕이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의 타락한 왕들과는 달리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거룩한 직무를 맡은자였기 때문이다.
=====44:4
성전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자에 대한 규정이 9절까지 이어진다(시 15:1-5;24:3- 6). 그들은 새 성전에 합당한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제규정은 새로 회복될 이스라엘에서 그 백성들의 성결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며 학개(학 2:14), 에스라(스 4:1-3;10:10-44), 느헤미야(느 13:1-9) 등에 의해 게승된 사상이기도 하다. 북문을 통하여 - 혹자는 이를 성벽에 위치한 바깥 북문으로 이해하나(Kliefoth) 43:5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 안뜰로 제시된 점과 안 북문이 바깥 북문보다 약 4철이 더 높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선지자가 직접 그 영광의 현현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안쪽 북문임이 분명하다(Delitzsch, Schroder, Hitzig). 한편 이처럼 여호와의 영과의 현현을 재삼 언급한 것은 이하 전개될 내용에 비추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새 성전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Delitzsch).
=====44:5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귀로 듣고 - 이는 40:4;43:11, 12과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 전의 모든 규례와 함께 특별히 성전의 모든 문들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언급된 것은 본절의 내용이 성전 출입자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란 점에서 전의 출입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부정한 것의 출입을 철저하게 방지함으로써 성전의 거룩과 백성들의 성결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44:6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 - 과거 하나님 심판 당시에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일삼던 이스라엘을 지칭하나(2:5, 7) 여기서는 특별히 성전의 거룩과 성결을 훼파한 사실을(7, 8절) 지적한다. 이러한 과거의 죄악상이 새삼 본문에 언급된 것은 새 성전의 거룩과 성결에 대한 역설적인 강조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 본 구절은 '너희의 가증한 죄악이 너무나 크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제하여야 한다는(벧전 4:3) 역설적 표현이다(Schroder).
=====44:7본절은
특별히 이전 성전에서의 제사장들의 직무 유기를 진술한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중에 이방적 요소의 침입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출 12:43, 44;레 17:10, 12;민 15:13 이하;왕상 8:41 이하). 마음과 몸에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 특별히 '마음의 할례'가 언급된 점에 비추어 본 구절이 성전 출입의 부적격자로 순수한 이방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이전 성전에 있어서도 소수 이방인들의 제의 참여가 허용된 바 있다(레 17:8, 9;민 15:14-16). 따라서 본 구절의 이방인은 육신의 할례를 받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마음에 경건함과 여호와 경외의 신앙이 없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Delitzsch). 혹자는 이를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Raschi), 10절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제의를 수용한 레위인들'(Havernick), '제사용 제물이나 향료 등을 파는 자들로서 상업적 목적에서 성소의 출입이 허락된 자들'(Hitzig)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 성전에 대한 성결의 유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잇는 본절에 이들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이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혈통적 구분을 벗어나 메시야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과 구별되는 영적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슥 14:21;롬 2:25-29;빌 3:3).
=====44:8
본절에서 '성물의 직분'은 성전 제사에 관계된 모든 직책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에게 그러한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다는 것은 성전에서 경건치 못한 이방인들에게 제사를 수행하게 했다는 의미로 거룩한 성전에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적 요소가 횡행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22:9).
=====44:9
7절 주석을 참조하라.
=====44:10
새 성전에서의 레위인들의 직무가 그들의 이전 행위에 대한 책망과 함께 기술된다.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 레위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앞장섰던 죄악(렘 2:8)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직분을 박탈당하고 대신 더 천한 봉사직으로 격하되었다(11, 13, 14절). 한편 여기서 책망 대상이 된 레위인은 성전의 모든 잡일을 처리하는 일반 레위인이 아니라 제사 수행의 직책을 맡았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는 그 제사 직분이 사독의 자손에게 이임된 사실에서 입증된다(15절;43:19).
=====44:11
10절에서 언급된 그 죄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본절은 문장 초두의 '그러나'가 암시하듯 레위인들의 범죄 결과가 그들의 완전한 파멸이 아닌 직분의 격하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준다(딤전 1:12 비교).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 이러한 직무는 민 16:9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일반 레위인들의 직무였다(대상 23:2-5, 24-32;26:20-28;대하 29:34).
=====44:12
내 손을 들어 쳐서(* , 나사티 야디) - 이는 문자적으로 '내 손을 들다'란 뜻이다. '손을 드는' 행위는 맹세나 서약의 표시로 손을 드는 히브리의 관용적 용례(20:5, 6)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하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필연적인 형벌을 강조하는 것이다.
=====44:13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 '지성물'(* , 카드쉐 하카다쉼)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것들 중에 거룩한 것들'로 번역되며 '가장 거룩한 성물'이란 뜻이다. 이는 희생 제사시 여호와께 바쳐지는 거룩한 부분을 가리킨다(민 4:19). 이 지성물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제사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됨을 시사한다(Delitzsch). =====44:14
그 죄의 결과로 격하된 레위인들의 직무가 11절과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44:15
새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담당할 사독계 제사장들의 의무가 27절까지 기술된다. 사독의 자손...수종을 들되 - 사독은 아론의 자손으로서(대상 6:50-53) 다윗 왕 당시에 아비아달과 함께 제사장직을 수행했었다(삼하 8:17;15:24 이하). 압살롬 반역 사건 때는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으며(삼하 15:24 이하) 그 후 아비아달이 아도니야를 지지한 데 반해 사독은 다윗이 후계자로 지목한 솔로몬을 후원함으로써(왕상 1:7, 26, 32 이하) 결과적으로 왕이 된 솔로몬에 의해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발탁되었다(왕상 2:26, 27, 35). 이처럼 사독 게통은 대제사장직을 안티오커스 4세가 베냐민 지파의 메넬라우스(Menelaus)에서 넘겨 줄 때(B.C. 171)까지 독점하였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 후 쿰란 공동체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의 회복을 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암시하듯 사독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본서에 특별하게 다시 예시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신실함과 동시에 사독이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되었다는 점에서 다윗의 왕권을 가진 한 목자에 대한 약속과 잘 부합된다(34,:23, 24). 다시 말해서 새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사독의 자손들은 다윗의 왕권을 승계할 메시야 기대에 그 영적 제사를 수행할 자를 상징한다(Fairbairn, Delitzsch).
=====44:16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 여기서 '상'(* , 슐하니)은 성소 안에 있는 '향단'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향단에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곧 거룩한 성소 안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란 의미이다.
=====44:17,18
사독계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규례의 시작이다.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 - 베옷을 입는 것은 모세 율법에도 명시된 바 있다(출 28:39 이하;39:28;레 16:4, 23). 한편 '양털 옷'(* , 체메르)은 '털이 많다'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서 일종의 '털 옷'을 가리킨다. 이의 착용 금지 규정은 두터운 방한용 의복을 가리키는 '땀나게 하는 것'(* , 예차, 18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곧 담은 제의상 부정하고 불경한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그렇게 땀을 내게 하는 두터운 의복들은 거룩한 제의상 합당치 않은 것이었다(Delitzsch, Schroder). 실로 이러한 옷에 관한 규례는 거룩한 제사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의 영적, 육적 정결의 유지를 암시한다(롬 6:13).
=====44:19
본절에 대해서는 42:14 주석을 참조하라.
=====44:20
머리털을...길게 자라게도 말고 - 이러한 머리에 대한 금지 규례는 이미 율법에 명시된 바 있다. 곧 전자의 행위는 죽은 자에 대한 애통을 표현하는 이방적 풍습인 까닭에 금지된 바 있으며(레 21:5), '길게 자라게'(* , 예쉴레후)는 원어상 '느슨하게 하다', '풀어 헤치다'란 뜻으로 그 금지 규례는 레 10:6에 기술된 것처럼 그 머리를 제멋대로 자라게 놔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 머리털을 깍기만 할 것이며 - 곧 창조자의 창조 의도에 따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라는 의미로서(고전 11:14) 이는 그 창조자되신 하나님께 백성을 대표해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들의 합당한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Schroder).
=====44:21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 이미 레 10:9에 명시된 바 있는 이 규례는 나실인의 경우와 같이 세상과의 단절이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룩한 안뜰에 들어가는 자로서의 그 영혼의 성결과 하나님의 거룩을 대하는 신앙 정신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Schroder).
=====44:22
제사장의 아내 선택에 관한 규례이며 이러한 규례는 특별하게 구별되어 성전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 그들의 결혼 생활 또한 무흠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모세 율법에서는 제사장에 있어 부정한 여인과 이혼한 여자와의 결혼 금지를(레 21:7), 대제사장은 이에 더하여 과부와의 결혼 금지와 처녀와의 결혼 규례를(레 21:14) 구별하여 명시했었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모든 제사장들에게 포괄적으로 적용시키고 있으며 특별하게 제사장의 과부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44:23
본절과 24절은 제사 업무를 제외한 제사장들의 일반적인 직무를 기술한다. 거룩한 것과...가르치며...분별하게 할 것이며 - '가르치며'(* , 야라)는 '겨누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다'란 문자적 의미로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가리키기 위해 손가락을 뻗는 것을 말한다. 또한 '분별하게'(* , 야다)는 '알다', '깨닫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본 구절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그들이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규례와 교훈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깨닫게 함으로써(22:26 비교;레 10:10;신 17:10-12;33:10) 그들로 하여금 바른 영적 안목과 영적 분멸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이다(말 2:7).
=====44:24
송사하는 일을...재판할 것이며 - 이는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적 특성을 보여주는 구절로 신정 체제 하에서 제사장의 직무가 종교적 관할권 외에 교육(23절), 사법권(신 17:8 이하;19:17)에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그 재판의 준거가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라는 점에서 종교적 성결과 더불어 사회 정의의 실현 또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암시한다. 모든 정한 절기에는...거룩케 하며 - 이는 레 23장에 명시되어 있다.
=====44:25
죽은 자로 인한 부정의 발생과 그 부정에서 정결케 되는 규례가 27절까지 이어진다. 시체를...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 율법에 있어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레 21:1-4;민 6:6, 7;19:11-19), 이는 죽음이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단절시킨 죄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이기 때문이다(창 3:19). 제사장은 그러한 부정한 세체로부터 자신의 성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부모나...더럽힐 수 있으며 - 모세 율법에서는 이러한 근친의 시체라 할지라도 대제사장만은 그 부정의 허용에서 제외되었다(레 21:11). 그러나 본서에서는 모든 규례들이 그러한 구분없이 제사장에 적용되고 있다.
=====44:26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 - 모세 율법보다 한층 더 강화된 정결 규례가 주어진다. 율법에 있어서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되는 기한을 칠 일이었다(민 19:11 이하). 따라서 본 구절은 그 정결례 기간이 지난 후 칠 일의 기한을 더 설정함으로써 새 성전에서의 거룩과 성결을 특별하게 강조한다(Delitzsch).
=====44:27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 새 성전의 제사장들은 그 부정에 대한 정결의 기한이 끝났을지라도 그들의 제사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죄제(레 4:3-12)를 드려야 했다.
=====44:28
새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준수해야 할 규례의 진술에 이어 본절부터는 그들이 그렇게 봉사한 대가로 주어질 분깃을 말한다. 한편 본절에서 기업(* , 나할라)은 이스라엘 각 지파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받고 분배받은 토지를, 산업(* , 아후자)은 각 사람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소유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마은 새 성전의 제사장들 또한 이전과 같이 아무런 토지나 재산을 분배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민 18:20;신 10:9;18:1). 그러나 그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분깃이 되시리라는 말씀을 통해 제사장들의 탁월한 위상을 드러내 주고 있다(Schroder).
=====44:29
본절과 30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깃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 이러한 제사의 제물들은 모두 제사장들의 응식(應食)으로 돌려질 것이다(레 10:12-15;민 18:8-10;신 18:8 참조). 한편 '번제'는 희생 제물을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인 점에서, '화목제'는 그 제물을 제사장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함께 먹는 것이란 점에서 각각 제사장의 응식이 되는 제사가 아니었다.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 - 여기서 '구별하여'(* , 헤렘)는 원어상 '격리하다', '성별하다'란 뜻의 '하람'(* )에서 유래된 말이므로 본 구절은 백성들이 자신의 소산 중에서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친 모든 예물들을 가리킨다(레 27:28).
=====44:30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 '거제'(* , 테루마)는 제사장이 그 예물을 제단 위에서 높이 들었다가 내려놓는 제사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게로 부터 받는 것을 상징한다(출 29:28;레 7:14, 32;민 15:19-21). 밀가루(* , 아리사) - 이는 문자적으로 '빻은 가루', '가루 반죽'이란 뜻이다. 혹자느 이를 '껍질을 벗긴 곡식'(Gesenius)이나 그냥 '곡식'(Meier)으로 이해하나 그보다는 '첫'이란 말과 함께 제사 때 거제의 제물로 드려진 '처음 익은 곡식의 가루 떡'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민 15:20, 21).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 본 구절이 '네'를 포함해 28절부터 지시된 2인칭 대명사는 제사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림으로써 제사장들이 그 분깃을 받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말 3:10 참조).
=====44:31
레 22:8의 반복이다. 여기서 죽은 것(* , 네벧라)은 문자적으로 '시체'를 뜻하며 자연사한 시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찢긴 것(* , 테레파)은 '동물들에 의해 물려진 찢긴 시체'를 가리킨다(4:14;출 22:31). 이는 율법에서 일반 이스라엘 백성이나 타국인이 먹었을지라도 부정한 것으로 언급되었다(레 17:15). 그러므로 거룩한 성결을 유지해야 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삼가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드려진 예물을 그들의 분깃으로 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한 부정한 것들이 결코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Ewald).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광경과 성전 봉헌에 대한 규례를 기술하고 있는 전
장(43장)에 이어서 본장은 성전의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들에 대해 언급한다. 즉 에스
겔은 성전에 대해 묘사한 후에 미래의 예배의 신성한 기준을 묘사하면서, 당시의 백성
들에게 현재의 예배 의식을 재평가해보도록 요청했다. 선지자는 성전 제사장의 의무를
설명하고(44장), 성전 제사장을 위한 땅의 할당을 묘사한 후(45:1-12) 여호와께 드려
질 제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45:13-46:24).
이처럼 제사를 섬기는 자들에 대해 설명하는 본장은 (1) 성전 출입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8절), (2) 레위인들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중반부
(9-14절), (3) 제사장들에 대한 규례를 기록하고 있는 후반부(15-31절) 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장은 성전을 섬기는 자들이 매우 거룩하여야 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한폄, 본장의 내용들은 제사장에 관한 언급에 있어서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내용과
비교되고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구분 |출 39:27-29 |레 21:1-9 | 겔 44:15-31 |
+-----+----------------------+-----------------------+----------------------+
|주제 |제사장들의 옷에 대한 |제사장들의 성결에 대한 |제사장들의 성결과 의복|
| |규례 |규례 |,음식 제공에 대한 규례|
+-----+----------------------+-----------------------+----------------------+
|문맥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
| |야 생활 기간 동안 지 |숭배 사건 이후 다시 율 |백성들의 회복을 묘사하|
| |켜야 할 율법을 명하는 |법을 수여하는 문맥 |는 환상의 문맥 |
| |문맥 | | |
+-----+----------------------+-----------------------+----------------------+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서 레위기와 본서의 내용은 서로 비슷한 역사적 정황을 배경
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출애굽기에서의 성막 건립에 대한 명령(출 35:10)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출 32:1-10) 이후에 주어졌고, 에스겔의
성전 환상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포로 시기에 주어졌다. 이러한 사
실은 성막이나 성전의 생활이 주로 속죄와 관련된 삶이 될 것을 암시해주며, 동시에
속죄의 삶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제사의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새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례와 제사장의 자격, 그
리고 그들에게 돌아갈 기업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이스
라엘 제사장들이 저지른 죄악을 신랄하게 지적하신 다음, 새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신
실히 섬겼던 사독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된다고 규정하신다. 이 제사장
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을 받게 되는데, 백성의
중보자답게 각종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본장
은 성전 사용의 지배적 원리가 오직 거룩이므로 제사장은 온전하게 헌신해야 함을 깨
닫게 된다.
1. 성전 출입에 관한 규례(44:1-14)
하나님의 천사가 에스겔을 성전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성소와 지성소에
인도하는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는 본 단락은 처음 부분(1절)에서 이전에 인도되었던
표현 방식(41:1;42:1;43:1)이 그래도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새로운 내용의
시작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본 단락의 위치는 본서의 최종 결론부라고 할 수 있
는 마지막 부분(40-48장) 가운데 두 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새로운 성전의 건축
을 다루고 있는 첫 번째 부분(40-43장)에 이어서 새로운 예배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대목(44-46장)의 처음 시작이다. 에스겔은 성전의 주변적인 건물에 대하여 기술하고
나서 이제는 성전 예배에 대하여 집중하면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성전에 출입할 수 있
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동쪽 문이 닫힌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3절), (2) 이방인들에 대한 규칙을 기술하고 있는 중반부(4-9절), (3)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 대한 직무를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0-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서 지칭되고 있는 왕은 누구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3절). 우선 이 왕을 다윗 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희
박하다. 왜냐하면 본 단락에서는 이 왕을 다윗 왕으로 해석해야 할 아무런 암시도 주
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메시야로 해석을 하는데,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45:22에서 그 왕이 죄와 관계된 속죄제를 드리는 대표
로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진 대표로서
속죄제를 드린다는 것은 교리적으로 옳지 않고, 더구나 이 왕이 한 아들을 갖고 있었
다는 사실(46?16)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그러므로 본 단락의 왕은 다윗 왕이나 메
시야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실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 )는 왕이
라는 번역보다 지도자라는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 여하튼 본 단락의 왕이 누구인지
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회복된 성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중심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성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1-3절). 성전 내부
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주로 인간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인간
들(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 구별된 사람들
이었고, 그 성전의 식양 역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성전의
일들이 표면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깊
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에스겔은 성전 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권한
을 천명함으로써 성전의 출입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계
9:7).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성결하게 보존해야 한다(4-10절). 성전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를 따라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는 않는다. 레위인들은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이 성전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성전의 책임을 맡은 레위인들은 성전을 더
럽힘으로써 언약을 위반하였다(7,8,10절). 그 결과 직분이 격하되어, 성전문을 지키고
번제에 쓰이는 희생 제물을 잡는 책임이 맡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용서
하시고 직분을 회복시키시지만, 자기 일에 불충한 자는 더 작은 일을 맡기신다(마
25:21,28,29).
2. 사독 제사장들의 의무(44:15-31)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역사 가운데 성전의 순결을 지키지 못했던 역사를 언급하
고 있는 문맥 속에서 본 단락은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이 성전의 성결을 지켰다는 사실
과 앞으로 성전에서 있을 제사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될 것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역사 가운데 있었던 실례를 환상의 내용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성전의 계시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무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본 단락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반적으로 배
도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게 성전에서 자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던 사
독 가문의 제사장들의 믿음을 소개하며 성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사독 제사장들의 구체적인 일들에 관해 열거하고 있는 전반부(15-27절),
(2) 사독 제사장들의 기업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28-31절)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독의 계열은 레위 사람의 제한된 집단인 제사장 계열의 한 지파
였다. 사독은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솔로
몬을 왕으로 충실하게 섬겼기 때문이다(왕상 1:32-35;2:26,27,35).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였지만,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충성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이
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체적으로 배도의 역사이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
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했었던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이런 자들을 통
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과 교훈을 정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사장은 생활의 제 영역에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17-22,25-27절). 첫째
의복에 있어서 구별되어야 한다(17-19절). 그들은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어야 하며 가는 베관을 머리에 쓰고 베바지를 입어야 한다(출 28:39-43). 왜냐하면
양털 옷을 입을 경우에는 민첩하게 행동할 수 없고, 땀을 흘리게 되어 불결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 제사장들은 바깥 뜰에 있는 백성 앞에 나갈 때, 베옷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제사 의식의 거룩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백성들이 옷에 접촉하여 거룩하게 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머리털
을 면도로 밀어도 안 되며 길게 길러도 안 된다(20절). 머리털을 미는 해위는 이미 율
법에서 창조자를 모독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금지되었으며(레 19:27;21:5), 나실인들처
럼 머리를 기르는 행위는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로서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쥬지하는 데
부적당하기에 허락되지 않았다(레 10:6). 셋 째,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21절). 제사
장들은 영혼의 정결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금주를 실천해야 한다. 넷째,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 수 없으며, 오직 이스라
엘 족속의 처녀나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수 있다(22절). 제사장의 거룩은 여호와
의 거룩과 연결되므로(레 21:4,15) 결혼에 있어서도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죽은 시체에 접촉해서는 안 된다(25-27절). 만약 친척의 죽
음으로 더럽혀질 경우에는 7일의 기간이 지나야 정결케 되고(민 19:11-19), 안뜰과 성
소로 들어가려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2) 제사장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차이를 백성들에
게 교육해야 한다(23,24절). 그들은 스스로 거룩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서 어떻게 예배하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레 10:11;말 2:7) 송사에 대해서는
공의롭게 판단해야 한다(신 17:8-13;19:17). 그럴 때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출
19:5)로서 온전함을 유지하게 된다.
(3) 제사장의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다(28-31절).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
치는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등의 제물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열매와 첫 밀가루 그
리고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 등 거룩한 것으로 살아간다(레 10:12-15). 왜냐
하면 그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먹을 수 없다.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에
합당한 하나님의 몫으로 살아간다.
이상과 같은 본장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교
회의 축복을 열고 닫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마 16:19). 성전의 문을 열고
닫는 데 결정적인 행사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교회의 생과 사, 축복과
저주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의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지
만 철저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롬 12:1,2). 성도의 시민권은 본질적으로 하늘
에 속해 있다(엡 2:6). 그러므로 세상속에서 하늘 나라의 가치관을 실현해야 한다.
(3)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의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알고,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벧전 2:9).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제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 삶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신분에 감사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마 5:13-16).
성전 출입의 자격과 성전 봉사자들의 자격 및 성전 봉사시의 유의 사항이 45:8까지 세부적으로 기술된다. 그 문이 닫히었더라 - 여기서 '닫히었더라'(* , 사가르)는 문자적으로 '닫아 잠그다', '밀폐시키다'란 뜻으로 완전한 '닫아 잠그다', '밀폐시키다'란 뜻으로 완전한 봉쇄를 가리킨다. 이는 문법상 미완료형으로 그 문의 계속적인 봉쇄를 가리키는 2절의 '닫고'(* , 사고르 이헤예)와 최종적으로 그 문의 영원한 봉쇄를 의미하는 '다시 열지 못할지라'란 표현과 함께 상붕적으로 반복 강조됨으로써 완전한 봉세의 의미를 더욱 가중시킨다.
=====44:2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 동문의 봉쇄 이유이다. 곧 성전에 있어 동문이 가장 중요한 출입구인데도 그 문이 봉쇄된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곳이기에(43:4)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새 성전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전 성전에서처럼 떠나는 일없이 그곳을 영원한 거처로 삼아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43:7).
=====44:3
왕은 예외적으로 현관의 출입이 가능했으나 동문이 닫혀있는 관계로 일반인들과 같이 남쪽이나 북쪽 문을 통해 전의 현관에 이를 수 있었다.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 왕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제사를 수행한 뒤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45:17). 이처럼 왕이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의 타락한 왕들과는 달리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거룩한 직무를 맡은자였기 때문이다.
=====44:4
성전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자에 대한 규정이 9절까지 이어진다(시 15:1-5;24:3- 6). 그들은 새 성전에 합당한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제규정은 새로 회복될 이스라엘에서 그 백성들의 성결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며 학개(학 2:14), 에스라(스 4:1-3;10:10-44), 느헤미야(느 13:1-9) 등에 의해 게승된 사상이기도 하다. 북문을 통하여 - 혹자는 이를 성벽에 위치한 바깥 북문으로 이해하나(Kliefoth) 43:5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 안뜰로 제시된 점과 안 북문이 바깥 북문보다 약 4철이 더 높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선지자가 직접 그 영광의 현현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안쪽 북문임이 분명하다(Delitzsch, Schroder, Hitzig). 한편 이처럼 여호와의 영과의 현현을 재삼 언급한 것은 이하 전개될 내용에 비추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새 성전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Delitzsch).
=====44:5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귀로 듣고 - 이는 40:4;43:11, 12과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 전의 모든 규례와 함께 특별히 성전의 모든 문들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언급된 것은 본절의 내용이 성전 출입자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란 점에서 전의 출입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부정한 것의 출입을 철저하게 방지함으로써 성전의 거룩과 백성들의 성결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44:6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 - 과거 하나님 심판 당시에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일삼던 이스라엘을 지칭하나(2:5, 7) 여기서는 특별히 성전의 거룩과 성결을 훼파한 사실을(7, 8절) 지적한다. 이러한 과거의 죄악상이 새삼 본문에 언급된 것은 새 성전의 거룩과 성결에 대한 역설적인 강조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 본 구절은 '너희의 가증한 죄악이 너무나 크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제하여야 한다는(벧전 4:3) 역설적 표현이다(Schroder).
=====44:7본절은
특별히 이전 성전에서의 제사장들의 직무 유기를 진술한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중에 이방적 요소의 침입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출 12:43, 44;레 17:10, 12;민 15:13 이하;왕상 8:41 이하). 마음과 몸에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 특별히 '마음의 할례'가 언급된 점에 비추어 본 구절이 성전 출입의 부적격자로 순수한 이방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이전 성전에 있어서도 소수 이방인들의 제의 참여가 허용된 바 있다(레 17:8, 9;민 15:14-16). 따라서 본 구절의 이방인은 육신의 할례를 받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마음에 경건함과 여호와 경외의 신앙이 없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Delitzsch). 혹자는 이를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Raschi), 10절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제의를 수용한 레위인들'(Havernick), '제사용 제물이나 향료 등을 파는 자들로서 상업적 목적에서 성소의 출입이 허락된 자들'(Hitzig)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 성전에 대한 성결의 유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잇는 본절에 이들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이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혈통적 구분을 벗어나 메시야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과 구별되는 영적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슥 14:21;롬 2:25-29;빌 3:3).
=====44:8
본절에서 '성물의 직분'은 성전 제사에 관계된 모든 직책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에게 그러한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다는 것은 성전에서 경건치 못한 이방인들에게 제사를 수행하게 했다는 의미로 거룩한 성전에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적 요소가 횡행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22:9).
=====44:9
7절 주석을 참조하라.
=====44:10
새 성전에서의 레위인들의 직무가 그들의 이전 행위에 대한 책망과 함께 기술된다.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 레위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앞장섰던 죄악(렘 2:8)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직분을 박탈당하고 대신 더 천한 봉사직으로 격하되었다(11, 13, 14절). 한편 여기서 책망 대상이 된 레위인은 성전의 모든 잡일을 처리하는 일반 레위인이 아니라 제사 수행의 직책을 맡았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는 그 제사 직분이 사독의 자손에게 이임된 사실에서 입증된다(15절;43:19).
=====44:11
10절에서 언급된 그 죄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본절은 문장 초두의 '그러나'가 암시하듯 레위인들의 범죄 결과가 그들의 완전한 파멸이 아닌 직분의 격하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준다(딤전 1:12 비교).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 이러한 직무는 민 16:9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일반 레위인들의 직무였다(대상 23:2-5, 24-32;26:20-28;대하 29:34).
=====44:12
내 손을 들어 쳐서(* , 나사티 야디) - 이는 문자적으로 '내 손을 들다'란 뜻이다. '손을 드는' 행위는 맹세나 서약의 표시로 손을 드는 히브리의 관용적 용례(20:5, 6)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하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필연적인 형벌을 강조하는 것이다.
=====44:13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 '지성물'(* , 카드쉐 하카다쉼)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것들 중에 거룩한 것들'로 번역되며 '가장 거룩한 성물'이란 뜻이다. 이는 희생 제사시 여호와께 바쳐지는 거룩한 부분을 가리킨다(민 4:19). 이 지성물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제사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됨을 시사한다(Delitzsch). =====44:14
그 죄의 결과로 격하된 레위인들의 직무가 11절과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44:15
새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담당할 사독계 제사장들의 의무가 27절까지 기술된다. 사독의 자손...수종을 들되 - 사독은 아론의 자손으로서(대상 6:50-53) 다윗 왕 당시에 아비아달과 함께 제사장직을 수행했었다(삼하 8:17;15:24 이하). 압살롬 반역 사건 때는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으며(삼하 15:24 이하) 그 후 아비아달이 아도니야를 지지한 데 반해 사독은 다윗이 후계자로 지목한 솔로몬을 후원함으로써(왕상 1:7, 26, 32 이하) 결과적으로 왕이 된 솔로몬에 의해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발탁되었다(왕상 2:26, 27, 35). 이처럼 사독 게통은 대제사장직을 안티오커스 4세가 베냐민 지파의 메넬라우스(Menelaus)에서 넘겨 줄 때(B.C. 171)까지 독점하였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 후 쿰란 공동체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의 회복을 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암시하듯 사독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본서에 특별하게 다시 예시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신실함과 동시에 사독이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되었다는 점에서 다윗의 왕권을 가진 한 목자에 대한 약속과 잘 부합된다(34,:23, 24). 다시 말해서 새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사독의 자손들은 다윗의 왕권을 승계할 메시야 기대에 그 영적 제사를 수행할 자를 상징한다(Fairbairn, Delitzsch).
=====44:16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 여기서 '상'(* , 슐하니)은 성소 안에 있는 '향단'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향단에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곧 거룩한 성소 안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란 의미이다.
=====44:17,18
사독계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규례의 시작이다.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 - 베옷을 입는 것은 모세 율법에도 명시된 바 있다(출 28:39 이하;39:28;레 16:4, 23). 한편 '양털 옷'(* , 체메르)은 '털이 많다'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서 일종의 '털 옷'을 가리킨다. 이의 착용 금지 규정은 두터운 방한용 의복을 가리키는 '땀나게 하는 것'(* , 예차, 18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곧 담은 제의상 부정하고 불경한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그렇게 땀을 내게 하는 두터운 의복들은 거룩한 제의상 합당치 않은 것이었다(Delitzsch, Schroder). 실로 이러한 옷에 관한 규례는 거룩한 제사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의 영적, 육적 정결의 유지를 암시한다(롬 6:13).
=====44:19
본절에 대해서는 42:14 주석을 참조하라.
=====44:20
머리털을...길게 자라게도 말고 - 이러한 머리에 대한 금지 규례는 이미 율법에 명시된 바 있다. 곧 전자의 행위는 죽은 자에 대한 애통을 표현하는 이방적 풍습인 까닭에 금지된 바 있으며(레 21:5), '길게 자라게'(* , 예쉴레후)는 원어상 '느슨하게 하다', '풀어 헤치다'란 뜻으로 그 금지 규례는 레 10:6에 기술된 것처럼 그 머리를 제멋대로 자라게 놔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 머리털을 깍기만 할 것이며 - 곧 창조자의 창조 의도에 따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라는 의미로서(고전 11:14) 이는 그 창조자되신 하나님께 백성을 대표해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들의 합당한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Schroder).
=====44:21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 이미 레 10:9에 명시된 바 있는 이 규례는 나실인의 경우와 같이 세상과의 단절이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룩한 안뜰에 들어가는 자로서의 그 영혼의 성결과 하나님의 거룩을 대하는 신앙 정신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Schroder).
=====44:22
제사장의 아내 선택에 관한 규례이며 이러한 규례는 특별하게 구별되어 성전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 그들의 결혼 생활 또한 무흠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모세 율법에서는 제사장에 있어 부정한 여인과 이혼한 여자와의 결혼 금지를(레 21:7), 대제사장은 이에 더하여 과부와의 결혼 금지와 처녀와의 결혼 규례를(레 21:14) 구별하여 명시했었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모든 제사장들에게 포괄적으로 적용시키고 있으며 특별하게 제사장의 과부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44:23
본절과 24절은 제사 업무를 제외한 제사장들의 일반적인 직무를 기술한다. 거룩한 것과...가르치며...분별하게 할 것이며 - '가르치며'(* , 야라)는 '겨누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다'란 문자적 의미로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가리키기 위해 손가락을 뻗는 것을 말한다. 또한 '분별하게'(* , 야다)는 '알다', '깨닫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본 구절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그들이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규례와 교훈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깨닫게 함으로써(22:26 비교;레 10:10;신 17:10-12;33:10) 그들로 하여금 바른 영적 안목과 영적 분멸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이다(말 2:7).
=====44:24
송사하는 일을...재판할 것이며 - 이는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적 특성을 보여주는 구절로 신정 체제 하에서 제사장의 직무가 종교적 관할권 외에 교육(23절), 사법권(신 17:8 이하;19:17)에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그 재판의 준거가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라는 점에서 종교적 성결과 더불어 사회 정의의 실현 또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암시한다. 모든 정한 절기에는...거룩케 하며 - 이는 레 23장에 명시되어 있다.
=====44:25
죽은 자로 인한 부정의 발생과 그 부정에서 정결케 되는 규례가 27절까지 이어진다. 시체를...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 율법에 있어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레 21:1-4;민 6:6, 7;19:11-19), 이는 죽음이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단절시킨 죄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이기 때문이다(창 3:19). 제사장은 그러한 부정한 세체로부터 자신의 성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부모나...더럽힐 수 있으며 - 모세 율법에서는 이러한 근친의 시체라 할지라도 대제사장만은 그 부정의 허용에서 제외되었다(레 21:11). 그러나 본서에서는 모든 규례들이 그러한 구분없이 제사장에 적용되고 있다.
=====44:26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 - 모세 율법보다 한층 더 강화된 정결 규례가 주어진다. 율법에 있어서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되는 기한을 칠 일이었다(민 19:11 이하). 따라서 본 구절은 그 정결례 기간이 지난 후 칠 일의 기한을 더 설정함으로써 새 성전에서의 거룩과 성결을 특별하게 강조한다(Delitzsch).
=====44:27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 새 성전의 제사장들은 그 부정에 대한 정결의 기한이 끝났을지라도 그들의 제사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죄제(레 4:3-12)를 드려야 했다.
=====44:28
새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준수해야 할 규례의 진술에 이어 본절부터는 그들이 그렇게 봉사한 대가로 주어질 분깃을 말한다. 한편 본절에서 기업(* , 나할라)은 이스라엘 각 지파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받고 분배받은 토지를, 산업(* , 아후자)은 각 사람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소유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마은 새 성전의 제사장들 또한 이전과 같이 아무런 토지나 재산을 분배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민 18:20;신 10:9;18:1). 그러나 그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분깃이 되시리라는 말씀을 통해 제사장들의 탁월한 위상을 드러내 주고 있다(Schroder).
=====44:29
본절과 30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깃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 이러한 제사의 제물들은 모두 제사장들의 응식(應食)으로 돌려질 것이다(레 10:12-15;민 18:8-10;신 18:8 참조). 한편 '번제'는 희생 제물을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인 점에서, '화목제'는 그 제물을 제사장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함께 먹는 것이란 점에서 각각 제사장의 응식이 되는 제사가 아니었다.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 - 여기서 '구별하여'(* , 헤렘)는 원어상 '격리하다', '성별하다'란 뜻의 '하람'(* )에서 유래된 말이므로 본 구절은 백성들이 자신의 소산 중에서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친 모든 예물들을 가리킨다(레 27:28).
=====44:30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 '거제'(* , 테루마)는 제사장이 그 예물을 제단 위에서 높이 들었다가 내려놓는 제사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게로 부터 받는 것을 상징한다(출 29:28;레 7:14, 32;민 15:19-21). 밀가루(* , 아리사) - 이는 문자적으로 '빻은 가루', '가루 반죽'이란 뜻이다. 혹자느 이를 '껍질을 벗긴 곡식'(Gesenius)이나 그냥 '곡식'(Meier)으로 이해하나 그보다는 '첫'이란 말과 함께 제사 때 거제의 제물로 드려진 '처음 익은 곡식의 가루 떡'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민 15:20, 21).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 본 구절이 '네'를 포함해 28절부터 지시된 2인칭 대명사는 제사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림으로써 제사장들이 그 분깃을 받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말 3:10 참조).
=====44:31
레 22:8의 반복이다. 여기서 죽은 것(* , 네벧라)은 문자적으로 '시체'를 뜻하며 자연사한 시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찢긴 것(* , 테레파)은 '동물들에 의해 물려진 찢긴 시체'를 가리킨다(4:14;출 22:31). 이는 율법에서 일반 이스라엘 백성이나 타국인이 먹었을지라도 부정한 것으로 언급되었다(레 17:15). 그러므로 거룩한 성결을 유지해야 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삼가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드려진 예물을 그들의 분깃으로 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한 부정한 것들이 결코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Ewald).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광경과 성전 봉헌에 대한 규례를 기술하고 있는 전
장(43장)에 이어서 본장은 성전의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들에 대해 언급한다. 즉 에스
겔은 성전에 대해 묘사한 후에 미래의 예배의 신성한 기준을 묘사하면서, 당시의 백성
들에게 현재의 예배 의식을 재평가해보도록 요청했다. 선지자는 성전 제사장의 의무를
설명하고(44장), 성전 제사장을 위한 땅의 할당을 묘사한 후(45:1-12) 여호와께 드려
질 제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45:13-46:24).
이처럼 제사를 섬기는 자들에 대해 설명하는 본장은 (1) 성전 출입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8절), (2) 레위인들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중반부
(9-14절), (3) 제사장들에 대한 규례를 기록하고 있는 후반부(15-31절) 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장은 성전을 섬기는 자들이 매우 거룩하여야 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한폄, 본장의 내용들은 제사장에 관한 언급에 있어서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내용과
비교되고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구분 |출 39:27-29 |레 21:1-9 | 겔 44:15-31 |
+-----+----------------------+-----------------------+----------------------+
|주제 |제사장들의 옷에 대한 |제사장들의 성결에 대한 |제사장들의 성결과 의복|
| |규례 |규례 |,음식 제공에 대한 규례|
+-----+----------------------+-----------------------+----------------------+
|문맥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
| |야 생활 기간 동안 지 |숭배 사건 이후 다시 율 |백성들의 회복을 묘사하|
| |켜야 할 율법을 명하는 |법을 수여하는 문맥 |는 환상의 문맥 |
| |문맥 | | |
+-----+----------------------+-----------------------+----------------------+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서 레위기와 본서의 내용은 서로 비슷한 역사적 정황을 배경
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출애굽기에서의 성막 건립에 대한 명령(출 35:10)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출 32:1-10) 이후에 주어졌고, 에스겔의
성전 환상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포로 시기에 주어졌다. 이러한 사
실은 성막이나 성전의 생활이 주로 속죄와 관련된 삶이 될 것을 암시해주며, 동시에
속죄의 삶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제사의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새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례와 제사장의 자격, 그
리고 그들에게 돌아갈 기업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이스
라엘 제사장들이 저지른 죄악을 신랄하게 지적하신 다음, 새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신
실히 섬겼던 사독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된다고 규정하신다. 이 제사장
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을 받게 되는데, 백성의
중보자답게 각종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본장
은 성전 사용의 지배적 원리가 오직 거룩이므로 제사장은 온전하게 헌신해야 함을 깨
닫게 된다.
1. 성전 출입에 관한 규례(44:1-14)
하나님의 천사가 에스겔을 성전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성소와 지성소에
인도하는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는 본 단락은 처음 부분(1절)에서 이전에 인도되었던
표현 방식(41:1;42:1;43:1)이 그래도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새로운 내용의
시작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본 단락의 위치는 본서의 최종 결론부라고 할 수 있
는 마지막 부분(40-48장) 가운데 두 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새로운 성전의 건축
을 다루고 있는 첫 번째 부분(40-43장)에 이어서 새로운 예배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대목(44-46장)의 처음 시작이다. 에스겔은 성전의 주변적인 건물에 대하여 기술하고
나서 이제는 성전 예배에 대하여 집중하면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성전에 출입할 수 있
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동쪽 문이 닫힌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3절), (2) 이방인들에 대한 규칙을 기술하고 있는 중반부(4-9절), (3)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 대한 직무를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0-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서 지칭되고 있는 왕은 누구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3절). 우선 이 왕을 다윗 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희
박하다. 왜냐하면 본 단락에서는 이 왕을 다윗 왕으로 해석해야 할 아무런 암시도 주
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메시야로 해석을 하는데,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45:22에서 그 왕이 죄와 관계된 속죄제를 드리는 대표
로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진 대표로서
속죄제를 드린다는 것은 교리적으로 옳지 않고, 더구나 이 왕이 한 아들을 갖고 있었
다는 사실(46?16)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그러므로 본 단락의 왕은 다윗 왕이나 메
시야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실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 )는 왕이
라는 번역보다 지도자라는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 여하튼 본 단락의 왕이 누구인지
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회복된 성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중심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성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1-3절). 성전 내부
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주로 인간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인간
들(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 구별된 사람들
이었고, 그 성전의 식양 역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성전의
일들이 표면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깊
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에스겔은 성전 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권한
을 천명함으로써 성전의 출입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계
9:7).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성결하게 보존해야 한다(4-10절). 성전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를 따라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는 않는다. 레위인들은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이 성전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성전의 책임을 맡은 레위인들은 성전을 더
럽힘으로써 언약을 위반하였다(7,8,10절). 그 결과 직분이 격하되어, 성전문을 지키고
번제에 쓰이는 희생 제물을 잡는 책임이 맡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용서
하시고 직분을 회복시키시지만, 자기 일에 불충한 자는 더 작은 일을 맡기신다(마
25:21,28,29).
2. 사독 제사장들의 의무(44:15-31)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역사 가운데 성전의 순결을 지키지 못했던 역사를 언급하
고 있는 문맥 속에서 본 단락은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이 성전의 성결을 지켰다는 사실
과 앞으로 성전에서 있을 제사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될 것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역사 가운데 있었던 실례를 환상의 내용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성전의 계시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무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본 단락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반적으로 배
도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게 성전에서 자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던 사
독 가문의 제사장들의 믿음을 소개하며 성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사독 제사장들의 구체적인 일들에 관해 열거하고 있는 전반부(15-27절),
(2) 사독 제사장들의 기업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28-31절)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독의 계열은 레위 사람의 제한된 집단인 제사장 계열의 한 지파
였다. 사독은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솔로
몬을 왕으로 충실하게 섬겼기 때문이다(왕상 1:32-35;2:26,27,35).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였지만,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충성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이
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체적으로 배도의 역사이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
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했었던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이런 자들을 통
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과 교훈을 정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사장은 생활의 제 영역에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17-22,25-27절). 첫째
의복에 있어서 구별되어야 한다(17-19절). 그들은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어야 하며 가는 베관을 머리에 쓰고 베바지를 입어야 한다(출 28:39-43). 왜냐하면
양털 옷을 입을 경우에는 민첩하게 행동할 수 없고, 땀을 흘리게 되어 불결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 제사장들은 바깥 뜰에 있는 백성 앞에 나갈 때, 베옷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제사 의식의 거룩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백성들이 옷에 접촉하여 거룩하게 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머리털
을 면도로 밀어도 안 되며 길게 길러도 안 된다(20절). 머리털을 미는 해위는 이미 율
법에서 창조자를 모독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금지되었으며(레 19:27;21:5), 나실인들처
럼 머리를 기르는 행위는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로서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쥬지하는 데
부적당하기에 허락되지 않았다(레 10:6). 셋 째,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21절). 제사
장들은 영혼의 정결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금주를 실천해야 한다. 넷째,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 수 없으며, 오직 이스라
엘 족속의 처녀나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수 있다(22절). 제사장의 거룩은 여호와
의 거룩과 연결되므로(레 21:4,15) 결혼에 있어서도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죽은 시체에 접촉해서는 안 된다(25-27절). 만약 친척의 죽
음으로 더럽혀질 경우에는 7일의 기간이 지나야 정결케 되고(민 19:11-19), 안뜰과 성
소로 들어가려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2) 제사장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차이를 백성들에
게 교육해야 한다(23,24절). 그들은 스스로 거룩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서 어떻게 예배하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레 10:11;말 2:7) 송사에 대해서는
공의롭게 판단해야 한다(신 17:8-13;19:17). 그럴 때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출
19:5)로서 온전함을 유지하게 된다.
(3) 제사장의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다(28-31절).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
치는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등의 제물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열매와 첫 밀가루 그
리고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 등 거룩한 것으로 살아간다(레 10:12-15). 왜냐
하면 그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먹을 수 없다.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에
합당한 하나님의 몫으로 살아간다.
이상과 같은 본장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교
회의 축복을 열고 닫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마 16:19). 성전의 문을 열고
닫는 데 결정적인 행사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교회의 생과 사, 축복과
저주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의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지
만 철저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롬 12:1,2). 성도의 시민권은 본질적으로 하늘
에 속해 있다(엡 2:6). 그러므로 세상속에서 하늘 나라의 가치관을 실현해야 한다.
(3)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의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알고,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벧전 2:9).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제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 삶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신분에 감사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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