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그룹들 머리 위...보좌 형상 같더라 - 이는 1:26과 같은 묘사이다. 이는 첫 이상 가운데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두 번째 이상 가운데서 계시하심을 암시한다(8;2-4).
=====10:2
가는 베옷 입은 사람 - '가는 베옷'에 대해서는 9:2 주석을 참조하라. 앞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인치는 사역을 행했으나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 집행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충성된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성실하게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룹 밑 바퀴 - 1:15을 참조하라.
그 속에서 숯불을...흩으라 - 여기에서 '숯불'은 '소멸하시는 불'(히 12:29)로서 그룹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1:13에서는 그 하나님을 보좌하며 수종하는 네 생물의 모양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숯불'은 불의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또는 그 도구를 상징한다(24:11;삼하 22:9; 시18:8,12,13;140:10). 그리고 숯불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죄악을 소멸해 정결케 하는 역할도 함축하고 있다(사 6:6,7). 그런데 여기서 이 베옷 입은 자가 숯불을 예루살렘 성읍 위에 흩는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행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이전에 에스겔 선지자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삼등분해 불사르고 칼로 치고 흩으라하신 비유에서도 암시되었다(5:1, 2, 12).
=====10:3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 '성전 우편'은 일반적으로 성전 남편을 가리킨다. 이는 '투기의 우상'들이 세워져 있는 성전의 북문이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8:3, 5) 제단의 남쪽을 가리킨다(Keil).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 '구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외적인 한 현상이다(출 16:10; 19:9; 33:9; 40:34; 민 9:15; 왕상 8:10). 따라서 구름이 성전 안뜰(제사장의 뜰)에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그곳에 임재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4
여호와의 영광이...문지방에 임하니 - 9:3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가득하였고 -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결과 무지개빛 형상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이 충만히 비춰진 것을 가리킨다(1:28).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본질적으로 아름다우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임을 나타낸다.
=====10: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들리는데 - '바깥 뜰'이란 성전의 뜰 중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거하는 안뜰과 담으로 구별되어진 곳으로서 백성의 뜰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이는 안뜰(제사장의 뜰)보다 지형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음성 같더라 - 본 구절에서 묘사된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솨다이'(* )로서 일반적으로 족장시대 때부터 불리워진 하나님의 성호이다. 이 성호는 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분, 우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창 17:1;35:11;출 6:3).
=====10:6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명령에 철저한 순종을 보였던 가는 베옷 입은 자(9:11)는 본절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 있다.
바퀴 사이...바퀴 옆에 서매 - 전자의 '바퀴'는 1:15, 16, 20과는 달리 히브리어로 '라갈갈'(* )인데, 이는 집합 명사로 '바퀴들'을 뜻한다. 후자의 '바퀴'는 이전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로 '오판'(* )인데, 단수로 '바퀴'를 뜻한다. 특히 이 바퀴는 가는 베옷 입은 자가 가까이 가서 서게 된 한 바퀴를 지칭한다.
=====10:7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 여기에서 '불'은 2절에 언급된 '숯불'을 뜻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이 불을 그둡들 사이에서 한 그룹으로부터 취하여 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여 계시는(1:26-28;9:3) 하나님에 의해 비롯되어지고 싱행 되어짐을 뜻한다.
=====10:8
그룹들의 날개 밑에...나타났더라 - 1:8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특히 여기에서 이 말씀을 반복한 것은 7절에서 그룹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 활동한 것, 즉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한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0:9
내가 보니...모양은 황옥 같으며 - 이는 1:15, 16의 반복적 말씀이다. 특히 본절에서 네 바퀴들이 각각 한 그룹 곁에 있는 것은 바퀴가 하나님을 보좌하여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로되 각 그룹과 연계되어 일치하게 실행함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영적 존재로서 사역자들이 서로 일치하고 질서있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은 한 뜻과 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부응하는 일이다(행 1:14;고전 14:33).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는 이 땅의 사역자들, 즉 교회의 사명자들에게도 요구되어진다(고전 14:40;빌 4:2).
=====10:10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있는 것 같으며 - 이는 1:16의 반복적인 말씀이다. 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10:11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행하며 - 그룹들이 움직일 때 서로 분열되거나 불일치하지 않고 혼연 일체(渾然一體)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함을 가리킨다(1:9, 17, 21 참조). 특히 여기에서 '머리 향한 곳으로'란 네 그룹 중 하나님께서 가시기를 원하시는 방향에 있는 그룹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룹이 서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0: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눈이 가득하더라 - '바퀴'를 '몸'과 '등', '손', '날개' 등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 것은 바퀴가 위의 요소들과 같이 네 생물들에 속한 각 부분임을 시사한다(1:15 참조). 그리고 1:18에서는 네 생물들 곁에 각각 있는 바퀴들 주위에 눈이 가득하다고 언급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네 생물들의 전존재에 눈이 가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보좌하고 수종하는 영적 존재로서 모든 사실과 사건들을 통찰하고 인지(認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으로는 그 네 생물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통찰하시고 알고 계심도 의미한다.
=====10:13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 - 여기에서 '바퀴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페님'(* )은 6절 후반부에 언급된 '바퀴'의 복수이다. 그리고 '도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갈갈'(* )은 6절 전반부에 언급된 '바퀴'라는 말과 같은유형의 말이다. 이는 히브리어 동사 '가랄'(* , 구르다, 돌다)에서 유래되었다. 본 구절에서 이 말은 바퀴의 특성, 즉 굴러가도록 원형(圓形)으로 된 특징에 따라 명명되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이 바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네 생물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신속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존재임을 암시해준다.
=====10:14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얼굴이더라 - 본 구절은 1:10의 반복적인 말씀으로 1:10의 묘사와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일 뿐이다. 1:10에서는 동쪽을 기준으로 할 때 사람의 얼굴 모습을 처음에 언급하고 그 다음에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 순서로 언급했으나 본 구절은 세 번째인 소의 얼굴 모습을 가진 그룹부터 언급하고 있다. 이는 에스겔 선지자가 소의 얼굴 모습을 가진 그룹 쪽, 즉 북쪽 방향에서 이 네 그룹들을 본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Wycliffe). 그리고 또 다른 점은 1:10은 세 번째 생물의 얼굴 모습을 소의 얼굴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그룹의 얼굴'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들에 의해 1:10의 '소'라는 말을 잘못해서 '그룹'이라는 말로 쓴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Carley). 그러나 히브리어 자음의 구성으로 보아 '소'와 '그룹'을 필사자가 혼동하여 잘못 옮겼을 가능성을 지극히 희박하다. 한편 본 구절의 '그룹'이라는 말 앞에는 관사 '하'(* )가 붙어 있는데 이는 에스겔 선지자가 본 그룹이 이전에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심판의 불을 취하여 준 바, 그 그룹을 말하는 것 같다(7절).
=====10:15
그룹들이 올라가니 - 이는 19절을 예시하는 말씀이다. 이전에 그룹들은 하나님을 수행하고서 성전 우편에 서 있었다(3절).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 숭배를 하고 타락한 결과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떠나심에 따라 그룹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좌해 그곳을 떠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고 있다(18절).
=====10:16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아니하며 - 그룹들과 바퀴들이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응함을 암시해준다(1:19 참조).
=====10: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있음이더라 - 1:21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생물의 신 - 이에 대해서는 1:20 주석을 참조하라.
=====10:18
여호와의 영광이...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며 타락한 결과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시고 당신의 처소를 떠나시는 장면이다(8:6;신 31:16 참조).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중심지인 성전에서 떠나심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영광을 잃게 됨을 함축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결과 이전의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시기와는 달리 곤궁함과 비참에 처해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 그룹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활동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그룹들은 각각 네 날개를 가지고 있다(1:6). 이중 두 날개로는 피조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감추는 데 쓰이고, 나머지 두 날개는 활동할 때 서로 펴서 연관되게 한다(1:11, 23). 이와같이 그룹들이 날개를 펴 서로 연결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상호 협력의 의미를 암시한다.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 - 이는 8:3의 '북향한 문', 8:14의 '북문'과 같이 성전 바깥 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동쪽 입구의 문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 문지방에서 이제 좀더 바깥 쪽인 동문에 이르러 떠나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루살렘 성읍 동편 산에 머무시다가 온전히 떠나신다. 그리고 후에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기간이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회복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은 이 떠나셨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오신다(43:1-9).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시되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 여전히 은혜로써 대하심을 보여준다(레 26:4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의해 멸망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 신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10:20
그발 강가 - 이 강은 바벨론에 위치한 강으로 이 강 부근에서 에스겔과 이스라엘 포로들이 살고 있었다(1:1;3:15).
이스라엘 하나님의...생물이라 - 생물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보좌하며 그분을 수종들며 수행하는 그룹들이 하나님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권위상 그들이 하나님의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권위면에서 최상에 계신 분으로서 권위 그 자체이시다(출 15:1;시 113:5 참조). 그리고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롬 13:1).
=====10:21
각기 네 얼굴과...있으니 - 1:6, 8의 반복적인 말씀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기서 이전에 보았던 이상을 반복하여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가 본 이상이 전혀 상상에 의한 허상이 아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Calvin).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3:7)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3:4-11).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직분을 맡은 사명자로서 그의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전해야만 했었다(3:11, 16-21).
=====10:22
그 얼굴의 형상은...그러하며 - 1:10-14을 참조하라.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 - 각기 네 얼굴을 가진 네 생물들이 진행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해 나아가고자 원하는 한 방향으로 전진한다(11절;1:9, 17, 20). 이것은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일치하는 자세로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예루살렘에 대한 잔혹한 심판 명령(9장)에 이어지는 본장은 좀더 구체적으로 예루
살렘 멸망의 명백한 징조를 환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여기서 에스겔이 소개한 환상은
숯불을 성빠읍에 뿌리는 행위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모습니다. 이와 같은
언급은 이미 앞 부분(5장;8:18;9:5-7)에서 거듭 강조된 사실로서 하나님의 심판 의지
를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본장은 (1) 예루살렘 성읍이 불로 심판받는 장면을 묘사하는 전반부(1-8
절), (2) 네 그룹의 모습과 이동 원칙에 대해 기술하는 중반부(9-17절), (3)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광경을 언급하는 후반부(18-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를 좀더 세분하면, (가) 숯불을 던지라는 하나님의 명령(1,2절), (나) 가는 베옷 입은
자기 숯불을 취하여 던짐(3-8절), (다) 그룹의 모습(9-14절), (라) 그룹의 움직임
(15-17절), (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하서 떠남(18, 19절), (바) 그룹의 형상의 동일
성(20-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이스라엘의 죄가 하
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본장은 본서의 다른 부분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전반부(1-8
절)는 9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다만 앞에서는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구원의 인을
친 반면, 여기서는 불 심판을 수행하는 당사자로 나타난 점이 다르다. 또한 중반부
(9-17)는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첫 번째 환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자유주의 학자
들은 동일한 편집자가 요약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룹
을 타고 성전에서 떠나가는 장면을 기술하기 위한 서전 묘사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으로 후반부(18-22절)는 11장 마지막 부분(11:22-25)에서 결론적으로 언급이 이루어진
다. 이처럼 에스겔은 다른 부분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
다.
또한, 본장은 전반부(1-8절)에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말한 후에 후반부(18-22절)
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를 떠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반부에
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를 더 한층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
서 예루살렘 성전에 좌정하신 것은 그들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경배와 영광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범죄하기 때문에 성소를 떠
나시며, 참혹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본장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는 하나의 상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4장에서 예루살렘 포위 장면은 비유적인 것일지라도 실제로 바벧론 군대에 의해
일어날 일에 대한 예시이며, 5장의 온역과 기근과 칼에 의한 심판도 비유적인 행동을
통해 묘사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바벧론 군대에 의해 성취되었다(왕하 25:1-7). 그러
나 본장에서 나타난 바 하나님께서 불을 흩게 하신 행위는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기보다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통체적으로 상징하는 표현이다(해
12:29). 이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행위는 15, 16, 21-23장, 24:1-14 등에서 비
유적으로 또는 직접적인 선고를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다. 물론 성경 역사상 소돔과 고
모라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의해 실제적으로 멸망당한 예가 있기도 하다(창
19:23-29). 그러나 본장의 불심판은 이스라엘 땅에서 역사적으로 시행되는 내용은 아
니며,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의 예표라고 볼 수 있다(계 8:1,2,7;16:8,9).
이상과 같은 본장은 하나님의 영광과 죄의 함수 관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설령 하나님께서 거처하시기로 작정한 예루살렘 성
전이라 랗지라도 불의와 범죄로 타락할 때는 더 이상 내주하시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
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확인되었다.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성전 안에서 문 지방 쪽으로 이동한 후(4절;9:3) 이어서
동편 감람 산으로 갔다. 즉, 지금까지 계속 그룹 가운데 좌정하셔서 백성들에게 말씀
하신 하나님께서(출 25:22;레 16:2) 이제 백성들이 저지른 극악한 죄로 인하여 성전문
에서 심판을 명하시고(2절) 떠나시는 것이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을 근심케하고(삼상 15:11) 하나님의 임재를 불가능하게 만든
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성도를 구원하시고 감싸기도 하시지만, 공의에 입
각하여 단호하게 징벌하시는 분이다(삼상 16:14;삿 16:20). 그래서 구약은 하나님을
질투의 하나님으로(출 20:5;34:14) 묘사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질투의 불'(신 29:20;
습 1:18)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신약에서도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이심이니라'(히
12:29)고 묘사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안식과 자유, 즐거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
고 그의 은혜를 누리며 살되(마 11:28;롬 5:2,10,11;갈 5:1)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도록 깨어 근신해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라고 언급하였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을 따라 정결한 삶을 유지하
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의무와 특권이 있다.
1. 가는 베옷 입은 천사의 심판 예시(10:1-8)
8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모습이 폭로되었고, 9장에서는
예루살렘 거민들에 대한 잔혹한 살육이 언급되었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다시 한번 예
루살렘의 심판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던
유황불처럼(창 19:24,25) 이스라엘 성읍이 무참하게 파괴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심판의 주체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소
개하는 장면(빠절), (2)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명령(2절), (3) 그룹들의 현
위치와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3-5절), (4) 심판 집행자의 심판 준비(6-8절)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한편, 전장(9장)에서 가는 베옷 입은 천사는 다른 여섯 명 천사, 즉 예루살렘에 심
판의 형을 집행하는 천사들과는 달리 중보적인 입장에서 경건한 자들의 이마에 구원의
표를 하는 자로 묘사되었다(9:3-7). 그러나 본장에서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자로 언급되어 있다. 이런 천사의 이중적인 사역은 하나님께서 구원과 심판,
사랑과 공의의 이중적 속성을 지닌 분임을 암시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가장 잘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
생자를 죽이심으로 공의를 나타냈고(사 53:6;요 1:29) 주님을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
심으로 사랑을 표현했다(요 3:16).
또한, 본 단락에서 가는 베옷 입은 천사가 그룹 밑 바퀴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불을 직접 받은 것은(2,8절)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
지 않고 오직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에 의해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해준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이미 5장과 9:5-7에 나타난 예루살렘 심판의 본질과
특성에 암시되어 있었다. 하나님 외에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해 창조
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그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으며, 다른 피조물
들을 심판하거나 판단할 자격이 없다. 단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아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대행할 경우에는 예외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통
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
다"(시 99:1)라고 노래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친히 온 세계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유일하신 분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심판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초자연적 방법
으로 피조계를 엄중하게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백보좌 심판을 기억
하며, 더욱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 그룹들의 모습과 행동 원칙(10:9-17)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게 되는 장면(1-8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그룹
과 바퀴의 환상이 중점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룹의 형상과 조화로운 움직
임을 소상히 보여 주시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그룹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전반부(9-14절), (2) 그룹의
움직임에 대해 기술하는 후반부(15-1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존재임을 밝
힘으로써 하나님의 위엄과 광대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본문은 1:15-21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다만 1장이 네 생물의 출현과
함께 네 얼굴과 네 날개, 다리 모습 및 그룹들의 이동 원칙 등을 밝힌 데(1:5-14) 이
어 마지막으로 바퀴와의 관계를 피력한 데 비해 본 단락은 그룹들과 바퀴와의 관계를
묘사한 다음 전체 모습에 대해 간단히 눈과 네 얼굴 모습 정도를 언급할 뿐이다. 또한
1장에서는 그룹들이 하나님을 수종하는 종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이상 중에 나타난
것을 액면 그대로 묘사한 반면 본문은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그룹 밑 바퀴 사이'
(2절)에서 심판의 불을 취한 바 그룹과 바퀴와 상호 연관성을 특별히 강조하여 묘사했
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세계를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인도하신다(11, 16,17절). 그룹들은 움
직일때 머리가 방향을 잡아주는 대로(욥 29:25) 일사 불란하게 행동한다(1:9, 17). 또
한 그룹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옆에서 같이 움직였다. 바퀴들은 독자적으로 이동하지
않고 오직 그룹들이 조종하는 대로만 따라간다. 이와같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지혜로운 계획과 삽리에 의해 이끌려 간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정확히 감찰하신다(12절). 에스겔은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들레에 눈이 가득하다고 기술한다(1:18).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통찰력에 해한 강조로서 하나님께서 제한된 이해와 능력을 가진 인간과는 달리 모든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결코 외모에 속지 않는다. 만
약 인간이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다면 반드시 커다란 대가를 지불받게 된다(행 5:5,
10;히 4:12, 13).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앞에서 모든 가식적
인 태도를 버리고 온전한 태도로 생활해야 한다.
* 그룹에 대한 고찰.
1. 어원 : 히므리어로 '케루빔'(* )이나 그 뜻은 불분명하다. 어떤사람은
아카디아어의 '중재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는 '붙잡다',
'빈틈없이 지키다'의 뜻을 지닌 말로 보기도 한다.
2. 정의 : 일반적으로 영적 존재인 천사의 한 계급에 속하는 존재로 본다. 유대 전
통에서는 스랍(Seraphin)들과 함께 천사 중 최고의 계열에 속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3. 숫자 : 전체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5;10:9,12에 보면 넷으로 나타나기
도 한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종교적 건축물에서 그룹이 복수형으로 나타내진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그 숫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4. 역할 : 그룹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보좌해주는 조력자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
행한다. 때로는 '두루 도는 화염검'과 함께 타락한 사람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 먹
지 못하도록 지키는 감시자(창 3:24)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거나(2,
7절) 하나님의 조좌의 병거를 운반(18, 19절;1:16, 17;출 25:22;민 7:89;삼상 4:4;시
80:1)하기도 한다.
5. 형태 : 그룹은 성경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사람, 사자
(41:19), 황소, 독수리 등의 네 가지 얼굴(14, 21, 22절; 1:6, 10)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개 또는 네 개의 날개(1:6, 11;왕상 6:24;사 6:2) 그리고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을
가졌고(8, 21절;1:8) 송아지 같은 발바닥이 있다(1:7).
3.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남(10:18-22)
앞에서 범죄한 예루살렘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8절)과 그룹들의 모습(9-17
절)을 언급한 에스겔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들과 함께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묘
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당신이 가시적인 임재 처소
로 지정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1) 성전 문지방을 떠나
는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한 부분(18절), (2) 성전의 동문에 머무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그리는 부분(19절), (3)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하고 수행하는 그룹들의 외적인
모습을 간략하게 언급한 부분(20-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시 5:4) 악과 함께 유하지 않음
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은 여호와의 영광이 가증스러운 우상으로 가득 찬 성전에 계속
머물수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18, 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율
법,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소유로 인하여 교만에 빠졌고, 이방의 풍습을 좇아 가증
한 우상을 숭배하면서도(8:5, 10, 11-16) 언제나 안전하리라는 거짓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렘 7:4). 이와같은 언약 백성의 위선적 태도는 하나님을 분노케 했고, 급기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죄로 부패한 곳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사 66:3, 4) 성전을 피난처로 생각하는 유다 백성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바벧론 군대를 사용하여 징계하신다(5:12). 성전은 바벧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모든 기구들은 탈취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역하고 마음이 굳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긍휼을 베푸사 남은 자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이상에서 신약 시대의 성전인 우리는 커다란 경계심을 갖게 된다. 만약 성령의 전인 우리가 음행을 하면 그리스도의 지체를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것이다(고전 6:15-18). 그러므로 신자는 죄를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전 6:20).
그룹들 머리 위...보좌 형상 같더라 - 이는 1:26과 같은 묘사이다. 이는 첫 이상 가운데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두 번째 이상 가운데서 계시하심을 암시한다(8;2-4).
=====10:2
가는 베옷 입은 사람 - '가는 베옷'에 대해서는 9:2 주석을 참조하라. 앞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인치는 사역을 행했으나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 집행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충성된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성실하게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룹 밑 바퀴 - 1:15을 참조하라.
그 속에서 숯불을...흩으라 - 여기에서 '숯불'은 '소멸하시는 불'(히 12:29)로서 그룹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1:13에서는 그 하나님을 보좌하며 수종하는 네 생물의 모양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숯불'은 불의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또는 그 도구를 상징한다(24:11;삼하 22:9; 시18:8,12,13;140:10). 그리고 숯불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죄악을 소멸해 정결케 하는 역할도 함축하고 있다(사 6:6,7). 그런데 여기서 이 베옷 입은 자가 숯불을 예루살렘 성읍 위에 흩는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행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이전에 에스겔 선지자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삼등분해 불사르고 칼로 치고 흩으라하신 비유에서도 암시되었다(5:1, 2, 12).
=====10:3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 '성전 우편'은 일반적으로 성전 남편을 가리킨다. 이는 '투기의 우상'들이 세워져 있는 성전의 북문이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8:3, 5) 제단의 남쪽을 가리킨다(Keil).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 '구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외적인 한 현상이다(출 16:10; 19:9; 33:9; 40:34; 민 9:15; 왕상 8:10). 따라서 구름이 성전 안뜰(제사장의 뜰)에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그곳에 임재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4
여호와의 영광이...문지방에 임하니 - 9:3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가득하였고 -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결과 무지개빛 형상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이 충만히 비춰진 것을 가리킨다(1:28).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본질적으로 아름다우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임을 나타낸다.
=====10: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들리는데 - '바깥 뜰'이란 성전의 뜰 중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거하는 안뜰과 담으로 구별되어진 곳으로서 백성의 뜰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이는 안뜰(제사장의 뜰)보다 지형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음성 같더라 - 본 구절에서 묘사된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솨다이'(* )로서 일반적으로 족장시대 때부터 불리워진 하나님의 성호이다. 이 성호는 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분, 우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창 17:1;35:11;출 6:3).
=====10:6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명령에 철저한 순종을 보였던 가는 베옷 입은 자(9:11)는 본절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 있다.
바퀴 사이...바퀴 옆에 서매 - 전자의 '바퀴'는 1:15, 16, 20과는 달리 히브리어로 '라갈갈'(* )인데, 이는 집합 명사로 '바퀴들'을 뜻한다. 후자의 '바퀴'는 이전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로 '오판'(* )인데, 단수로 '바퀴'를 뜻한다. 특히 이 바퀴는 가는 베옷 입은 자가 가까이 가서 서게 된 한 바퀴를 지칭한다.
=====10:7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 여기에서 '불'은 2절에 언급된 '숯불'을 뜻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이 불을 그둡들 사이에서 한 그룹으로부터 취하여 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여 계시는(1:26-28;9:3) 하나님에 의해 비롯되어지고 싱행 되어짐을 뜻한다.
=====10:8
그룹들의 날개 밑에...나타났더라 - 1:8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특히 여기에서 이 말씀을 반복한 것은 7절에서 그룹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 활동한 것, 즉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한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0:9
내가 보니...모양은 황옥 같으며 - 이는 1:15, 16의 반복적 말씀이다. 특히 본절에서 네 바퀴들이 각각 한 그룹 곁에 있는 것은 바퀴가 하나님을 보좌하여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로되 각 그룹과 연계되어 일치하게 실행함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영적 존재로서 사역자들이 서로 일치하고 질서있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은 한 뜻과 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부응하는 일이다(행 1:14;고전 14:33).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는 이 땅의 사역자들, 즉 교회의 사명자들에게도 요구되어진다(고전 14:40;빌 4:2).
=====10:10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있는 것 같으며 - 이는 1:16의 반복적인 말씀이다. 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10:11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행하며 - 그룹들이 움직일 때 서로 분열되거나 불일치하지 않고 혼연 일체(渾然一體)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함을 가리킨다(1:9, 17, 21 참조). 특히 여기에서 '머리 향한 곳으로'란 네 그룹 중 하나님께서 가시기를 원하시는 방향에 있는 그룹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룹이 서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0: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눈이 가득하더라 - '바퀴'를 '몸'과 '등', '손', '날개' 등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 것은 바퀴가 위의 요소들과 같이 네 생물들에 속한 각 부분임을 시사한다(1:15 참조). 그리고 1:18에서는 네 생물들 곁에 각각 있는 바퀴들 주위에 눈이 가득하다고 언급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네 생물들의 전존재에 눈이 가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보좌하고 수종하는 영적 존재로서 모든 사실과 사건들을 통찰하고 인지(認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으로는 그 네 생물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통찰하시고 알고 계심도 의미한다.
=====10:13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 - 여기에서 '바퀴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페님'(* )은 6절 후반부에 언급된 '바퀴'의 복수이다. 그리고 '도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갈갈'(* )은 6절 전반부에 언급된 '바퀴'라는 말과 같은유형의 말이다. 이는 히브리어 동사 '가랄'(* , 구르다, 돌다)에서 유래되었다. 본 구절에서 이 말은 바퀴의 특성, 즉 굴러가도록 원형(圓形)으로 된 특징에 따라 명명되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이 바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네 생물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신속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존재임을 암시해준다.
=====10:14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얼굴이더라 - 본 구절은 1:10의 반복적인 말씀으로 1:10의 묘사와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일 뿐이다. 1:10에서는 동쪽을 기준으로 할 때 사람의 얼굴 모습을 처음에 언급하고 그 다음에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 순서로 언급했으나 본 구절은 세 번째인 소의 얼굴 모습을 가진 그룹부터 언급하고 있다. 이는 에스겔 선지자가 소의 얼굴 모습을 가진 그룹 쪽, 즉 북쪽 방향에서 이 네 그룹들을 본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Wycliffe). 그리고 또 다른 점은 1:10은 세 번째 생물의 얼굴 모습을 소의 얼굴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그룹의 얼굴'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들에 의해 1:10의 '소'라는 말을 잘못해서 '그룹'이라는 말로 쓴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Carley). 그러나 히브리어 자음의 구성으로 보아 '소'와 '그룹'을 필사자가 혼동하여 잘못 옮겼을 가능성을 지극히 희박하다. 한편 본 구절의 '그룹'이라는 말 앞에는 관사 '하'(* )가 붙어 있는데 이는 에스겔 선지자가 본 그룹이 이전에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심판의 불을 취하여 준 바, 그 그룹을 말하는 것 같다(7절).
=====10:15
그룹들이 올라가니 - 이는 19절을 예시하는 말씀이다. 이전에 그룹들은 하나님을 수행하고서 성전 우편에 서 있었다(3절).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 숭배를 하고 타락한 결과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떠나심에 따라 그룹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좌해 그곳을 떠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고 있다(18절).
=====10:16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아니하며 - 그룹들과 바퀴들이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응함을 암시해준다(1:19 참조).
=====10: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있음이더라 - 1:21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생물의 신 - 이에 대해서는 1:20 주석을 참조하라.
=====10:18
여호와의 영광이...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며 타락한 결과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시고 당신의 처소를 떠나시는 장면이다(8:6;신 31:16 참조).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중심지인 성전에서 떠나심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영광을 잃게 됨을 함축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결과 이전의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시기와는 달리 곤궁함과 비참에 처해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 그룹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활동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그룹들은 각각 네 날개를 가지고 있다(1:6). 이중 두 날개로는 피조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감추는 데 쓰이고, 나머지 두 날개는 활동할 때 서로 펴서 연관되게 한다(1:11, 23). 이와같이 그룹들이 날개를 펴 서로 연결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상호 협력의 의미를 암시한다.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 - 이는 8:3의 '북향한 문', 8:14의 '북문'과 같이 성전 바깥 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동쪽 입구의 문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 문지방에서 이제 좀더 바깥 쪽인 동문에 이르러 떠나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루살렘 성읍 동편 산에 머무시다가 온전히 떠나신다. 그리고 후에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기간이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회복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은 이 떠나셨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오신다(43:1-9).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시되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 여전히 은혜로써 대하심을 보여준다(레 26:4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의해 멸망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 신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10:20
그발 강가 - 이 강은 바벨론에 위치한 강으로 이 강 부근에서 에스겔과 이스라엘 포로들이 살고 있었다(1:1;3:15).
이스라엘 하나님의...생물이라 - 생물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보좌하며 그분을 수종들며 수행하는 그룹들이 하나님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권위상 그들이 하나님의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권위면에서 최상에 계신 분으로서 권위 그 자체이시다(출 15:1;시 113:5 참조). 그리고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롬 13:1).
=====10:21
각기 네 얼굴과...있으니 - 1:6, 8의 반복적인 말씀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기서 이전에 보았던 이상을 반복하여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가 본 이상이 전혀 상상에 의한 허상이 아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Calvin).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3:7)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3:4-11).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직분을 맡은 사명자로서 그의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전해야만 했었다(3:11, 16-21).
=====10:22
그 얼굴의 형상은...그러하며 - 1:10-14을 참조하라.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 - 각기 네 얼굴을 가진 네 생물들이 진행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해 나아가고자 원하는 한 방향으로 전진한다(11절;1:9, 17, 20). 이것은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일치하는 자세로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예루살렘에 대한 잔혹한 심판 명령(9장)에 이어지는 본장은 좀더 구체적으로 예루
살렘 멸망의 명백한 징조를 환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여기서 에스겔이 소개한 환상은
숯불을 성빠읍에 뿌리는 행위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모습니다. 이와 같은
언급은 이미 앞 부분(5장;8:18;9:5-7)에서 거듭 강조된 사실로서 하나님의 심판 의지
를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본장은 (1) 예루살렘 성읍이 불로 심판받는 장면을 묘사하는 전반부(1-8
절), (2) 네 그룹의 모습과 이동 원칙에 대해 기술하는 중반부(9-17절), (3)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광경을 언급하는 후반부(18-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를 좀더 세분하면, (가) 숯불을 던지라는 하나님의 명령(1,2절), (나) 가는 베옷 입은
자기 숯불을 취하여 던짐(3-8절), (다) 그룹의 모습(9-14절), (라) 그룹의 움직임
(15-17절), (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하서 떠남(18, 19절), (바) 그룹의 형상의 동일
성(20-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이스라엘의 죄가 하
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본장은 본서의 다른 부분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전반부(1-8
절)는 9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다만 앞에서는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구원의 인을
친 반면, 여기서는 불 심판을 수행하는 당사자로 나타난 점이 다르다. 또한 중반부
(9-17)는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첫 번째 환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자유주의 학자
들은 동일한 편집자가 요약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룹
을 타고 성전에서 떠나가는 장면을 기술하기 위한 서전 묘사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으로 후반부(18-22절)는 11장 마지막 부분(11:22-25)에서 결론적으로 언급이 이루어진
다. 이처럼 에스겔은 다른 부분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
다.
또한, 본장은 전반부(1-8절)에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말한 후에 후반부(18-22절)
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를 떠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반부에
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를 더 한층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
서 예루살렘 성전에 좌정하신 것은 그들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경배와 영광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범죄하기 때문에 성소를 떠
나시며, 참혹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본장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는 하나의 상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4장에서 예루살렘 포위 장면은 비유적인 것일지라도 실제로 바벧론 군대에 의해
일어날 일에 대한 예시이며, 5장의 온역과 기근과 칼에 의한 심판도 비유적인 행동을
통해 묘사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바벧론 군대에 의해 성취되었다(왕하 25:1-7). 그러
나 본장에서 나타난 바 하나님께서 불을 흩게 하신 행위는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기보다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통체적으로 상징하는 표현이다(해
12:29). 이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행위는 15, 16, 21-23장, 24:1-14 등에서 비
유적으로 또는 직접적인 선고를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다. 물론 성경 역사상 소돔과 고
모라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의해 실제적으로 멸망당한 예가 있기도 하다(창
19:23-29). 그러나 본장의 불심판은 이스라엘 땅에서 역사적으로 시행되는 내용은 아
니며,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의 예표라고 볼 수 있다(계 8:1,2,7;16:8,9).
이상과 같은 본장은 하나님의 영광과 죄의 함수 관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설령 하나님께서 거처하시기로 작정한 예루살렘 성
전이라 랗지라도 불의와 범죄로 타락할 때는 더 이상 내주하시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
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확인되었다.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성전 안에서 문 지방 쪽으로 이동한 후(4절;9:3) 이어서
동편 감람 산으로 갔다. 즉, 지금까지 계속 그룹 가운데 좌정하셔서 백성들에게 말씀
하신 하나님께서(출 25:22;레 16:2) 이제 백성들이 저지른 극악한 죄로 인하여 성전문
에서 심판을 명하시고(2절) 떠나시는 것이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을 근심케하고(삼상 15:11) 하나님의 임재를 불가능하게 만든
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성도를 구원하시고 감싸기도 하시지만, 공의에 입
각하여 단호하게 징벌하시는 분이다(삼상 16:14;삿 16:20). 그래서 구약은 하나님을
질투의 하나님으로(출 20:5;34:14) 묘사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질투의 불'(신 29:20;
습 1:18)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신약에서도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이심이니라'(히
12:29)고 묘사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안식과 자유, 즐거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
고 그의 은혜를 누리며 살되(마 11:28;롬 5:2,10,11;갈 5:1)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도록 깨어 근신해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라고 언급하였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을 따라 정결한 삶을 유지하
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의무와 특권이 있다.
1. 가는 베옷 입은 천사의 심판 예시(10:1-8)
8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모습이 폭로되었고, 9장에서는
예루살렘 거민들에 대한 잔혹한 살육이 언급되었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다시 한번 예
루살렘의 심판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던
유황불처럼(창 19:24,25) 이스라엘 성읍이 무참하게 파괴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심판의 주체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소
개하는 장면(빠절), (2)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명령(2절), (3) 그룹들의 현
위치와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3-5절), (4) 심판 집행자의 심판 준비(6-8절)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한편, 전장(9장)에서 가는 베옷 입은 천사는 다른 여섯 명 천사, 즉 예루살렘에 심
판의 형을 집행하는 천사들과는 달리 중보적인 입장에서 경건한 자들의 이마에 구원의
표를 하는 자로 묘사되었다(9:3-7). 그러나 본장에서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자로 언급되어 있다. 이런 천사의 이중적인 사역은 하나님께서 구원과 심판,
사랑과 공의의 이중적 속성을 지닌 분임을 암시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가장 잘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
생자를 죽이심으로 공의를 나타냈고(사 53:6;요 1:29) 주님을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
심으로 사랑을 표현했다(요 3:16).
또한, 본 단락에서 가는 베옷 입은 천사가 그룹 밑 바퀴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불을 직접 받은 것은(2,8절)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
지 않고 오직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에 의해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해준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이미 5장과 9:5-7에 나타난 예루살렘 심판의 본질과
특성에 암시되어 있었다. 하나님 외에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해 창조
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그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으며, 다른 피조물
들을 심판하거나 판단할 자격이 없다. 단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아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대행할 경우에는 예외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통
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
다"(시 99:1)라고 노래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친히 온 세계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유일하신 분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심판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초자연적 방법
으로 피조계를 엄중하게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백보좌 심판을 기억
하며, 더욱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 그룹들의 모습과 행동 원칙(10:9-17)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게 되는 장면(1-8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그룹
과 바퀴의 환상이 중점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룹의 형상과 조화로운 움직
임을 소상히 보여 주시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그룹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전반부(9-14절), (2) 그룹의
움직임에 대해 기술하는 후반부(15-1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존재임을 밝
힘으로써 하나님의 위엄과 광대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본문은 1:15-21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다만 1장이 네 생물의 출현과
함께 네 얼굴과 네 날개, 다리 모습 및 그룹들의 이동 원칙 등을 밝힌 데(1:5-14) 이
어 마지막으로 바퀴와의 관계를 피력한 데 비해 본 단락은 그룹들과 바퀴와의 관계를
묘사한 다음 전체 모습에 대해 간단히 눈과 네 얼굴 모습 정도를 언급할 뿐이다. 또한
1장에서는 그룹들이 하나님을 수종하는 종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이상 중에 나타난
것을 액면 그대로 묘사한 반면 본문은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그룹 밑 바퀴 사이'
(2절)에서 심판의 불을 취한 바 그룹과 바퀴와 상호 연관성을 특별히 강조하여 묘사했
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세계를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인도하신다(11, 16,17절). 그룹들은 움
직일때 머리가 방향을 잡아주는 대로(욥 29:25) 일사 불란하게 행동한다(1:9, 17). 또
한 그룹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옆에서 같이 움직였다. 바퀴들은 독자적으로 이동하지
않고 오직 그룹들이 조종하는 대로만 따라간다. 이와같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지혜로운 계획과 삽리에 의해 이끌려 간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정확히 감찰하신다(12절). 에스겔은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들레에 눈이 가득하다고 기술한다(1:18).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통찰력에 해한 강조로서 하나님께서 제한된 이해와 능력을 가진 인간과는 달리 모든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결코 외모에 속지 않는다. 만
약 인간이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다면 반드시 커다란 대가를 지불받게 된다(행 5:5,
10;히 4:12, 13).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앞에서 모든 가식적
인 태도를 버리고 온전한 태도로 생활해야 한다.
* 그룹에 대한 고찰.
1. 어원 : 히므리어로 '케루빔'(* )이나 그 뜻은 불분명하다. 어떤사람은
아카디아어의 '중재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는 '붙잡다',
'빈틈없이 지키다'의 뜻을 지닌 말로 보기도 한다.
2. 정의 : 일반적으로 영적 존재인 천사의 한 계급에 속하는 존재로 본다. 유대 전
통에서는 스랍(Seraphin)들과 함께 천사 중 최고의 계열에 속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3. 숫자 : 전체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5;10:9,12에 보면 넷으로 나타나기
도 한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종교적 건축물에서 그룹이 복수형으로 나타내진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그 숫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4. 역할 : 그룹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보좌해주는 조력자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
행한다. 때로는 '두루 도는 화염검'과 함께 타락한 사람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 먹
지 못하도록 지키는 감시자(창 3:24)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거나(2,
7절) 하나님의 조좌의 병거를 운반(18, 19절;1:16, 17;출 25:22;민 7:89;삼상 4:4;시
80:1)하기도 한다.
5. 형태 : 그룹은 성경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사람, 사자
(41:19), 황소, 독수리 등의 네 가지 얼굴(14, 21, 22절; 1:6, 10)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개 또는 네 개의 날개(1:6, 11;왕상 6:24;사 6:2) 그리고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을
가졌고(8, 21절;1:8) 송아지 같은 발바닥이 있다(1:7).
3.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남(10:18-22)
앞에서 범죄한 예루살렘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8절)과 그룹들의 모습(9-17
절)을 언급한 에스겔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들과 함께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묘
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당신이 가시적인 임재 처소
로 지정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1) 성전 문지방을 떠나
는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한 부분(18절), (2) 성전의 동문에 머무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그리는 부분(19절), (3)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하고 수행하는 그룹들의 외적인
모습을 간략하게 언급한 부분(20-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시 5:4) 악과 함께 유하지 않음
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은 여호와의 영광이 가증스러운 우상으로 가득 찬 성전에 계속
머물수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18, 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율
법,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소유로 인하여 교만에 빠졌고, 이방의 풍습을 좇아 가증
한 우상을 숭배하면서도(8:5, 10, 11-16) 언제나 안전하리라는 거짓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렘 7:4). 이와같은 언약 백성의 위선적 태도는 하나님을 분노케 했고, 급기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죄로 부패한 곳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사 66:3, 4) 성전을 피난처로 생각하는 유다 백성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바벧론 군대를 사용하여 징계하신다(5:12). 성전은 바벧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모든 기구들은 탈취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역하고 마음이 굳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긍휼을 베푸사 남은 자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이상에서 신약 시대의 성전인 우리는 커다란 경계심을 갖게 된다. 만약 성령의 전인 우리가 음행을 하면 그리스도의 지체를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것이다(고전 6:15-18). 그러므로 신자는 죄를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전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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