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예언한 대로 그 배는 멜리데란 섬에 걸렸다. "멜리데"는 현재 말타(Malta)란 섬
인데 피난처란 뜻이 있는 이름이다. 이섬은 시실리(Sicilia)섬의 남쪽에 있고, 둘레가
60마일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행 28: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 "토인들"이란 말(* )은 그 섬 사람들을 낮게 평가하는
의미의 명칭이 아니고, 그들의 방언이 알기 어려운 것을 지적하는 것 뿐이다. 그들의
친절은 인간에게 있는 본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일어난 것이
라고 함이 오히려 옳을 것이다.
행 28:3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
고 있는지라 - 학자들 중에는 현재 말타 섬에 독사가 없다는 이유로 이 귀절의 순정성
(純正性)을 의심한다. 그러나 1853년 류웡(Lewing)이란 학자는 이 섬에서 독사를 보았
다고 증거하였다(Lenski). 설혹 지금은 그 섬에 독사가 아주 없다 해도 이 문제는 다
음과 같이 해석된다. 어떤 지방에든지 인구가 많아지면 거기 살던 짐승들도 점차 쇠퇴
하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자취를 감추는 일은 우리가 경험하는 바이다. 란드
스버로(Landsborough)는 아란(Arran)섬에서 지내본 대로 거주민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
라서 독사들이 점차 없어졌다는 것이다(Hacket on Acts, 1858,p.446). 윌렝가
(Wielenga)는 여기 독사가 상징적 의미도 가진다고 말하였으니, 곧 "이 사건(독사가
바울을 물은 사건)은 옛뱀(마귀)과 교회(회복된 낙원)와의 전투의 상징이다."고 하였
다(Van Jerusalem Naar Rome, Derde Deel, 1928,p.446).
행 28:4-6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
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
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 토인들이 처음에는 바울을 살인 죄수로 억측하였다가 그의
권능을 본 뒤에는 그를 "신(神)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를 살인 죄수로 안 것도 잘
못이고 신이라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다. 인간은 인간을 너무 낮게 보는 병통이 있는
동시에, 너무 높이는 죄도 범한다.
디벧리우스(Dibelius)는 이 부분 말씀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바울을 높이기
위하여 누가(사도행전 저자)가 꾸민 이야기(eine freie lunkanische Bildung)에 불과
하다."고 하였다(Haenchen,Apostelgechichte, 1956,s.649). 디벧리우스의 이 말은 아
마도 이런 뜻이겠다. 곧, 이 기록이 본래의 역사적 사실이라면 바울이 자기를 신(神)
이라고 하는 토인들의 말을 시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그런 말이 이 부분에
전연 없는 것을 보니, 이 기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디벧리우스
의 이와 같은 말은 아무 증거도 가지지 못한것이다. 우리는 그 때에 되어진 일을 확실
히 다 알기 어렵다. 사실은 바울이 그들을 시정시키는 말을 했으나 그것이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때에 그 토인들이 바울을 신이라고 한 것이 사담(私談)이었다면
바울이 그들의 말을 시정시키지 않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선지자 엘리사도 나아만의
잘못된 말을 시정시키지 않고 그대로 지나간 일이 있다(왕하 5:18-19).
행 28:7-10
이 때에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 영접하는 자의 집에 유하면서 대접을 받고,
또 거기 사는 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 눅 10:8-9 참조. 한 때는 학자들이 이 부분
기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말하기를, 그 지방의 기후가 건조한 것만큼 "이질"(*
)같은 병은 없었을 터인데 이질(痢疾)에 대한 말이 나온 것을 보
면 이 기록의 신빙성이 적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도 실제로 이질이 그곳에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다(Hacket).
행 28:11-15
이 부분 말씀을 보면, 바울이 "보디올"에서 형제들(기독 신자들)의 위로를 받았고,
또 로마에 있는 신자들이 환영 나온 것으로 인하여 담력을 얻었다. 그는 여기서 그의
긴 여행고(旅行苦)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우리의 일평생 인간고(人間苦)가 커서 태산
같을 때도 있으나 그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도 간간이 있는 법이다.
"디오스구로"(* )는 제우스(Zeus) 신(神)의 아들들이란 뜻이
다. 이것이 그 때 사람들의 미신(迷神)으로 선부(船夫)들에게 수호신(守護神)으로 알
려져 있었다. "수라구사"는 사실리 섬의 동편에 있고, "보디올"은 이탈리아 남부의 주
요 항구로서 알렉산드리아의 곡식 배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여기서 로마까지
122 마일쯤 된다. "압비오"는 로마에서 40마일쯤 되고 "삼관"(Tres Tabernae)은 "압비
오"를 지나서 여행자들을 접대하는 여관이 많은 지방인데, 여기서 "로마"는 더욱 가깝
다.
행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
라 - 바울이 다른 죄수들과 공동적으로 수용되지 않고 "따로" 셋집에 있게 되었다(30
절). 그것은 백부장 율리오의 주선으로 그렇게 된 듯하다.
행 28:17-19
로마에 도착한 바울이 그곳에 있는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지도층 사람들)을 청하
여" 자기가 로마로 호송된 이유를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그
곳에서 유대인들에게 대한 자기의 책임(전도의 책임)을 이행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자
연스러운 순서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그의 순종이었다. 다시 말하
면, (1)자기 혈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함이 자연스럽다. 그 뿐아니라, (2)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유대 민족에게 메시야 약속을 주셨던 것인 만큼 이 약속 성취인 복
음을 먼저 그들에게 전하도록 되어 있다(롬 1:16).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전도 순서는
계시에 의존한 것이다.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19절 하반) -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들이 자기
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하였다.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여 이방 로
마에까지 오게 된 것이 얼른 보면 자기 민족을 걸어서 송사하려는 민족 반역자의 행위
같이 오해 받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 개인의 누명을 벗기 위하
여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 뿐이었다. 그러므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무슨 어려움
을 주지 않을 것이다(Grosheide). 25:8-11에 대한 해석 참조.
행 28:20
저자 누가가 이 부분을 기록한 목적은 다만 바울의 로마 여행을 진술함에 있지 않
고, 로마에 간 그가 그곳에서 전도한 사실을 알리려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 "이스라엘의 소
망"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시
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이 실현된 소망, 곧 예수 그리스도, 천국, 영생을 전파하기 때
문에 이렇게 쇠사슬에 매어 끌려 다녔다(Schlatter, Der Grund, weshalb er gefangen
ist, ist die Hoffnung Israels:Gottes Reich. Christus, das ewige
Leben.-Eulauterungen zum Neuen Testament, 1, p.1051)(意譯). 바울의 마음 속에 이
소망이 뿌리 박힌 한, 쇠사슬에 매이는 고난 같은 것은 문제도 안 되었다.
행 28:22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 일찌기 시므온이 예
수님에 관하여 예언하기를, "비방을 받는 표적"이라고 하였다(눅 2:34). 그와 같이 예
수님의 복음이 불신자들 앞에서는 비방을 받을 뿐이다. 예수를 진실히 믿을 수록 반대
를 받는 일도 있다(Gossner).
행 28:23
이 귀절은 바울의 근면(勤勉)에 대하여 말하여 준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되 힘
쓰는 자에게는 특별히 주신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 유대인들은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잘 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예언 성취로 오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
이라고 증거하였다.
행 28:24,25
바울의 전도를 들은 유대인들이 신자와 불신자로 나뉘었다. 이 세상에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렇게 두 파로 나뉜다. 이때에 바울은 불신앙으로 굳어지는 유대인
들에 관하여 사 6:9-10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증거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배척하
는 무리를 보시고 이 성귀를 인용하신 바 있다(마 13:14;막 4:12;눅 8:10). 이 성귀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이 더욱 강퍅해지는 사실을 지적한다. 같은 비를 맞지만
산 나무는 더 자라고 죽은 나무는 더욱 썩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 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더욱 생명이 풍성해 진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자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히려 강퍅해진다.
행 28:26,27
이 부분에 인용된 예언은 사 6:9-10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어떤 유대인들의 불신
앙이 우연한 일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까닭이라는 뜻이다. 이 성귀는 신약 성경에 여섯번이나 인용되었다. 마 13:14;막 4:12;눅 8:10;요 12:40;롬
11:8 참조.
행 28:28-31
이 부분에는 사도 행전 전체가 보여주는 요점을 다시 보여준다. 곧, (1)복음이 전
파되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대체로 그것을 반대하나 이방인들은 받는다는 것. (2)유대인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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