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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정해진 한 날 (말라기 4:1-3)

여호와의 위대하고, 가공할 날에 대해 예언되어 있다. 구름 기둥, 불기둥같이, 이것은 하나님에게 대적해 싸우는 애굽인들에게는 어두운 쪽을 돌려대고, 하나님을 추종하는 신실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광명의 쪽을 돌려댄다. "그날이 오리라." 즉 여호와께서 오시면, 여호와의 날이 오시리라. 또 이것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모두 가리킨다. 그 두 날은 정해져 있으며, 본문에 묘사되어 있는 특성에 잘 부합된다.

Ⅰ. 그 두 날에 모두, 그리스도가 자기를 거역한 자들에 대해서는 사르는 불이 되신다. 그의 오심의 날은 "풀무불 같다." 진노의 날, "맹렬한 분노" 의 날이다. 메시야에 대해서 이러한 것이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시 21:9). "주의 손은 주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내실 것이요," "그들을 주의 분노의 시각에 타는 풀무 같게 하시리라." 그래서 이 날은 공포의 날, 도시의 방화 같은 파괴의 날이며, 말라시든 나무들이 타는 숲의 파멸 같을 것이다. 아마 그런 것을 은유하는 것 같다(사 10:17; 18). "이스라엘의 광명이 불이 되리니, 그의 거룩한 분이 불꽃 같으며, 그것이 그의 숲, 그의 열매 맺는 들판의 영광을 소멸하리라."

다음을 살펴보자.

1. 누가 이 불의 연료가 될 것인가?-그것은 심령 속이 "교만한" 모든 자들이다. 바로 하나님을 비방하여 말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멍에를 지지 않으려고 목을 빳빳하게 하던 자들이다(" 얼굴에 교만이 가득하여"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통치에 굴하지 아니하는 자들-"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리라" 고 말하는 교만한 모든 자들이다). 그리고 "행실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 고의로 죄를 고집하며 하나님의 법에 모순되는 것을 일삼는 자들이다. 저들은 "계약에 대적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이니" 라는 한 예언자가 얼마 전 한 말과 같다(단 11:32).

모든 심성을 완전히 알고 계신 하나님은 "교만" 한 자들, 행위가 교만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시며, 누가 "악행" 을 하는 자인지 아신다. 이런 자들은 이 불에 "초개" 같으리라. 쉽게 소멸되며,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탓이다. 저들이 자신을 초개같이, 불에 잘타는 물질로 만들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무," "건초," 혹은 "초개" 인가! 그들은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금은, 보석" 인가? 저들은 "불속에 남을" 것이오, 그것으로 정결케 되리라(고전 3:13-15). 불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들은 "삼켜버리는 불" 앞에 "찔레와 가지 나무같이" 될 것이다(사 27:4, 5).

2. 이 불의 위력과 결과는 무엇인가? "그들을 사를 날이 오도다." 즉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또 파멸케 할 날이요, "뿌리든 가지든 남겨 두지 아니할" 날, "아들이든 조카든" (갈대아 의역판은 이렇게 되어 있다) 남겨 두지 아니할 날이 오리라. 즉 본인들과 그들의 후손까지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완전히 진멸될 것이다. "누가 여호와의 분노의 위력을 알리요?" "교만한 자와 행악자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 마침내는 절감하게 되고 말 것이다. "교만한 자들이 행복하도다" 고 말하는 자들이 어디 있는가? 그들은 마침내 철저한 불행에 빠지며, 저들이 현재 누리던 행복의 어떤 가지나 그 행복을 다시 소생케 할 뿌리가 도무지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루어졌다.

(1) 그리스도께서 가르침으로써, 교만한 바리세인들과 그밖의 행악자 유대인들을 비판하면서 공포의 말을 들려주시던 때에 이루어졌다. 또 하나님의 율법을 어지럽게 만든 장로들의 전통의 찌꺼기를 겨같이 태워버리는 불을 땅에 질렀을 때, 그것은 이루어졌다.

(2) 로마인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유대 민족 전체가 그루터기에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사라져버렸을 때 이루어졌다. 아마 본문의 말씀은 원칙적으로 이 사건을 지목한 것인 듯하다.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복수의 날(들)" 이 오리니, 그러한 취지로 기록된 모든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라고 했다(눅 21:22). 그때에는, 유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불 앞에 초개같이 되었으며, 독수리가 시체에 모여들 듯이 그 불길이 그들에게 집중되었었다.

(3) 이 말씀은 심판 날에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 곧 죽음에서 있을 심판(어떤 유대 학자들은 "악인들의 영혼들이 몸에서 빠져나오자, 즉시 형벌이 그 영혼들을 사로 잡는다" 는 말과 연관시킨다)과 특별히 최후에 있을 총괄적 심판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불꽃 속에 나타나시사," 교만한 자들과 "모든 행악자들" 에게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다. 그때에는 온 세상이 "풀무같이 탈" 것이요, 이 세상에다 마음을 두고 또 자기들의 분깃을 정해 놓고 있는 세상의 자녀들이 함께 망할 것이며, 그러고도 그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Ⅱ. 초림, 재림, 두 경우 모두 그리스도는 자기를 성실히 섬긴 자들, 즉 그의 이름을 경외하고 거기에 영광을 돌린 자들에게 즐거운 광명이 될 것이다(2절). 그런 자들은 악인들이 모독하고 유린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 주기 위해 저장된 자비와 위로가 있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어디로부터 이 자비와 위로가 그들에게 흘러가는가! "내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의의 태양이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 그 날은 온다. 그 날이 악인들에게는 폭풍우의 날이 되겠지만, 소돔에서 행했던 것같이(시 11:6),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불과 유황을, 그리고 무서운 역병을" 비같이 내릴 날이 오리라. 마치 "구름과 짙은 흑암의 날" 과 같다(암 5:18, 20). 그러나 바로 그 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청명하고 찬란한 날이 될 것이다. 지상에 다시금 태양이 빛나게 되리라. 불이 들의 도성들을 "살라버렸" 을 때, 그 도성들과는 자비롭게도 구별되었던 소알에 태양이 떠올랐다는 사실이 주목되어 있었다(창 19:23 참조).

이리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위로의 말이 들려진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넘어지는" 때에, 그들은 "즐거워 머리를 들게" 되리라. "저들의 구속이 가까이 왔음이로다" (눅 21:28).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의의 태양" 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게 분명하다. 그는 믿음있는 남은 자들에게 안전을 줄 것이다. 모든 자들이 일반적 파멸로 넘어지는 때에 그들을 구별하고, 고난과 당혹의 그 날에도 자기의 위로로 위로하리라. 그리스도는 유대 마을에 있는 자들을 "산으로 도망가라" 고 지시했었다(마 24:16).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해서 벨라에서 모두가 무사히 살아났다. 그러나 "의의 태양" 은 좀더 폭넓게 적용할 수도 있다.



(1) 길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 바로 그때 "의의 태양" 이 이 어둔 세상에 떠올랐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 이다. 참 빛이요, 태양처럼 낮을 만들고 날을 다스리는 대광명이다(요 8:12).

그는 "사람들의 빛" 이다(요 1:4).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태양과 같은 역할을, 영혼들에게 한다. 세상에 태양이 없다면 지하 감옥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이 없다면, 인류는 암흑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시며, 또 빛의 근원이시다(시 19:4-6). 그는 또 의로우신 구주이시므로, "의의 태양" 이시다. 의란 태양의 빛과 열을 말한다. 그의 의를 나타내는 그 말뜻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의는 인도하고, 가르치며, 고무한다.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영원한 의" 가 또한 그러하다. 그는 "우리에 대해 하나님의 의가 되셨다." 그는 "우리의 의의 주님" 이시다. 그러므로 "의의 태양" 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의화(義化)되고 성화(聖化)되며, 또 빛을 볼 수 있게 된다.

때가 되어, 의의 태양은 세상에 떠올랐고, "세상에 빛" 을 가져다 주었다(요 3:19). "위대한 빛" 을 주었다(마 4:16). 그분 안에서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주었도다" (눅 1:78, 79). "의" 라는 말도 때때로 자비와 긍휼을 뜻하기도 한다. 또 "하나님의 온화한 자비" 가 우리에게 임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였다.



(2) 그것은 또한 사람의 영혼에 들어온 성령의 은총과 위로에 적용될 수 있다. 그로티우스(Grotius)는 이 말을,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인 자들에게 성령을 주는 일, 그래서 그들의 심중에서 빛나게 하고 "위로자," "태양과 방패" 가 되게 하시는 일을 말한다고 이해한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경외심을 지닌 자들은 그의 "사랑" 도 지니게 될 것이요,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내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거기에 태양이 떠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3)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들이 될 것이다." "정직한 자들이 통치권을 잡게" 되는 일은 부활의 그 아침에 있을 것이다(시 44:14). 악인들은 "풀무같이 불타게" 되는 그날이 의로운 자들에게는 아침 광명같이 찬란하게 되리라. "새벽을 기다리는 자들보다" 더욱 간절히 의인들이 바라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2. 이 자비와 위로가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그가 "그의 날개 밑에" 혹은 그의 "광선" 속에 "치료를 가지고 떠오를 것이다" (우리 번역과 다소 차이가 남-역주). "태양" 이신 그리스도가 암흑 세계에 빛을 주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라, 병든 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오셨다. 포코크(Pocock) 박사의 말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런 격언을 가지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면, 질환이 줄어든다." 밤에 시들었던 꽃도 아침이면 소생한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의사다. 그러나 역시 위대한 의약도 되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길르앗의 유향이요 의사이시다. 그가 지상에 계실 때, 태양처럼, 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세상을 순회하셨다. "그는 각종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가 태양처럼, 모든 것을 치료하셨다.

혹자는 그는 "옷자락에 치료를 가지고" 오실 것이라고 읽는다. 그것은 "그가 옷가" 를 만졌던 여인의 이야기를 적용한 것이다(마 5:28, 30). 그러나 그가 몸을 치료하심은 세상의 영혼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왔음에 대한 그의 위대한 계획의 전조요, 그들을 건강한 상태로 바꾸사 즐거이 하나님과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3. 그것이 저들에게 주는 좋은 성과는 무엇일까?

(1) 그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치료된 자들이 밖에 나가 일을 하게 되듯, 너희는 나아가라." 영혼은 죽을 때 몸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또 몸은 부활 때에 무덤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마치 죄수들이 지하 감방에서 나오듯하게 된다. 광명을 찾고, 자유를 누린다.

" 봄철에 태양이 솟아오면, 땅 속에서 식물이 돋아나오듯, 너희는 나아가라." 혹자는 이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파멸에서 탈출하게 되는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또 이와 같이 의의 태양이 빛추는 영혼들은 세상에서 나온다. 즉 바벨론에서 빠져나와 "참으로 자유한" 자들같이 된다.

" 너희는 또한 자라게(뛰게) 되리라. 건강과 자유를 되찾았으나, 지식, 은총, 그리고 영적 힘이 자라게 되리라." 의의 태양이 비추는 자들은 "완전한 사람" 을 향해 성숙해 간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지혜롭고 선량하게 된 자들은 바로 그 은총으로 더 지혜롭게 더 선량하게 된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들의 길이 "점점 더 빛나 마침내 완전한 낮에 이르리라" (잠 4:18). 그들의 성장이 (본문에서는) "외양간의 송아지" 의 성장에 비교되어 있는데, 송아지는 빨리 힘있게, 그리고 쓸모있게 성장한다. 너희는 자라되, "들의 꽃같이 가냘프고, 힘없고, 쓸모없이 자랐다가 곧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외양간의 송아지같이 자라리라." 이것을 한 랍비는 "육(고기)과 기름(지방분)에 있어 크게 자라라" 고 해석했다. 육과 기름은 둘 다 하나님의 제단과 사람의 식탁에 요긴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의 태양이 비추는 성도들의 성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모두를 영예롭게 해 준다.

혹자는 이렇게도 읽는다. "너희는 자랄 것이다" 를 "너희는 너희 자신을 움직일 것이다." 혹은 "기뻐받게 되리라." 외양간의 송아지같이 뛸 것이라는 말이다. 송아지들은 외양간에서 풀려나오면 마구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즐거워할 것임을 의미한다.



(2)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이 원수들을 이기게 되리라(3절).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라." 악인들이 그들을 짓밟으며,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고 그들의 영혼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악인들을 밟을" 날이 올 것이다. 악인들은 그리스도의 도약판이므로, 역시 저들의 도약판이 되기도 할 것이다(시 110:1). 그리고 교회의 "발 앞에 경배" 하러 올 것이다(계 3:9). "나이 많은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신자들이 신앙에 의해서 "세상을 정복할" 때, 저들 자신의 위대한 욕심과 정욕을 제압할 때, 평화의 하나님이 사람을 저들의 앞 아래서 파쇄하실 때, 그때에 저들은 악인을 밟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을 모함하던 유대인들에 대해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된 때에, 이 약속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너희 발 밑에 있던 때와 같이 되리라" 는 그 약속이다. 그들은 "밟힐" 뿐 아니라 짓밟혀 "오물" 이 되리라. "그들을 불사를" 날이 오리니, 그때에 이들은 저들을 재같이 밟을 것이다. 의인들이 "영속적인 생명" 에 들어갈 때, 악인들은 "영속적인 경멸" 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의인들이 악인들을 직접 이기지는 못할지라도, 의로우신 하나님이 악인들의 멸망 속에서 빛나게 될 때, 의인들은 바로 그것에 승리의 찬가를 보내게 되리라. 영광에 들어간 성도들은 만민을 다스리는 권력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린다" 했다(계 2:26, 27). 이것을 "너희가 하리니, 내가 이것을 한 그 날에이니라."

성도들의 승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승리 덕분임을 기억하자. 그것은 저들이 이룩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확보해 주신 승리이다. 말씀하시기를 "와서, 너희 발로 이 왕들의 목을 밟으라" 고 하신다.

혹자는 본문을 이렇게 해석한다. "내가 정한 곧 정할 날에, 내가 현저하게 만들 그 큰 날에, 너희는 기쁨으로 말하기를, 이 날은 여호와께서 만드신 날이로다 하리라." 예루살렘 파괴의 날을 "여호와의 크고 영화로운 날" (행 2:20)이라고 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께서도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그같은 표현을 하셨다. 그것은 "세상의 끝" 과 "최후 심판" 에도 적용될 만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말씀 속에 하늘에서 오는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계시가 있었고, 이 땅에도 무서운 광경을 야기시켰고, 그래서 시간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저 영광스런 변천에 대한 한 예형이 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의 파멸에서 이 같은 예언이 이루어짐은, 만물의 황폐를 말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확신케 해 준다. "분명히 말하건대, 내가 속히 가리라." 그리스도, 곧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에게는 천지 간의 모든 권력이 맡겨져 있다.

 

4:2 없음.

 

4:3 없음.

 

4:4

엘리야 약속 (말라기 4:4-6)

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존경하고 복종해야 한다(4절). "내 종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것을 지켜 행하라. 또 "내가 호렙 산에서 그에게 명한 법," 곧 "모든 이스라엘을 위해" "율례와 법도" 로 준 불 같은 법을 지키라. 10계명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법, 의식법, 형법 등 그때 거기서 준 모든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것을 살펴보자.

1. 구약 성서의 첫 기자 "모세" 에 대해서, 마지막 기자 "말라기" 가 언급하고 있는 영예로운 말을 보자.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그를 "내 종, 모세" 라고 불렀다.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성서 기자들이 비록 서로 엄청난 시대적 차이를 두고 살고 있지만(모세에서 말라기까지는 근 1000년이다), 그들은 모두 일치하고 있고, 서로 지원하고 있으며, 동일한 성령의 작용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모세의 율법" 에 대한 영예로운 말을 보자.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명하신" 바이다. 그는 그것을 자기의 법이라고 시인하셨고 그것을 "모든 이스라엘을 위해," 그 나라의 국법으로 명했다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존귀케 할 것이요 영예롭게 하리라."

율법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다. 그것도 우리를 위해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바로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혜택을 우리가 기대한다면(히 8:10),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 그 명령 중 어떤 것은 영구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율법과 관련해서, 우리의 의무를 요약해 보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율법을 망각하는 것이 그것을 범하는 모든 사례의 밑바탕이다. 그것을 올바로 기억한다면,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율법은 필요할 때마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즉 명령 자체를 기억할 뿐 아니라 그 효력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율법을 기억하라" 고 명령하는 것이 양심의 직능이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당부가 왜 여기에 나와 있는가?

(1) 이 예언자는 많은 타락상을 책망했으며, 예배와 생활의 불법성을 많이 지적했었다. 이제는 잘못된 바를 개선하기 위해서,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고 당부할 뿐이다. "그 법칙을 지키라. 그렇게 해야만 모든 것을 하게 되리라." 그는 저들이 "이미 받은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라" (계 2:24, 25).

(2) 교회는 오랫동안 예언자들을 향유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상한 사자들이었다. 이제는 그들의 책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세의 율법이 폐기되었다" 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때가 지난 달력이 아니다. 새로운,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못쓰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억하자. 예언자들이란 율법을 확인해 주고 해설해 주고, 그 의무를 강화해 줄 뿐이다. 따라서 계속 "율법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지식의 상당한 진보를 이룩한 지금이지만, 그 진보된 지식으로 처음의 신앙 원리를 더 잘 지키도록 해야 하는 법이다. 예언서를 연구하는 자들, 또 묵시록을 연구하는 자들은 여전히 모세의 율법과 네 복음서를 기억해야 한다.

(3) 이제는 교회 안에 잠시 동안 예언이 그치게 되었고, 예언의 영이 "복음의 사자" 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될 터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 법칙에 따라 살게 하며, 그 약속을 믿고 살게 하라.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이 있는 이상 환상과 계시를 못본다하여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성경이 우리의 안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가장 "확실한 예언의 말씀" 이요, 우리가 "영들을 시험할" 시금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예언자들은 없어도 성경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그의 뜻을 준행할 수 있다.



(4) 저들을 메시야의 임재와 그의 복음의 전파, 그리고 그의 나라의 건립을 기대해야 한다. 바로 그 대망에서 저들이 "율법을 기억해야" 하며, 거기에 준하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메시야가 "기꺼이 복종한 자들" 에게 가져다 줄 위로를 기대할 수 있다.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고, 그 율법이 주는 빛에 따라 살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혜택을 누리게 되리라. "가진 자," 그리고 그 가진 것을 잘 이용하는 자에게 "더 주고, 풍성히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Ⅱ.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산 소망을 간직해야 하며, 엘리야 예언자의 출현에서 그 시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5,6절). "보라, 내가 엘리야 예언자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예언의 영은 잠시간 그쳤고, 단지 율법에만 의지해야 하지만,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각자에게서 그것이 소생하리라" (눅 1:17). "율법과 예언자는 요한까지니라" (눅 16:16). 저 새벽별이 등장하기까지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교회의 동일한 빛으로 존속했다.

하나님의 증인이 없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아니하듯이, 증인이 없는 교회도 하나님은 허락지 아니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의 광명은 점점 높이 떠 올라 대낮에 이른다. 저들이 지금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실 것이다. 곧 엘리야를 보내시리라.

다음을 관찰하자.

1. 여기서 보내겠다고 한 이 예언자는 누구인가? 그는 "엘리야" 라고 했다. 유대 학자들은 아합 시대, 이스라엘에서 예언했던 엘리야라고 이름하는 그 예언자를 뜻한다고 보려 한다. 그러나 또 어떤 자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같은 영(정신)을 가진자를 예언자라고 본다. 유대인들이 요한에게 물었을 때, 바로 그 같은 여러 감정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당신은 엘리야입니까? 곧 그의 이름을 지닐 그 예언자입니까?" (요 1:19-21)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세례 요한이 오리라 했던 엘리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마 17:10-13). 또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이는 오리라 했던 엘리야니라" (마 11:14). 또 "보라. 내가 내 사사를 보내노라" 고 했다(마 3:1; 11:10).

엘리야는 대단히 내핍적이고, 고행을 하며, 하나님께 대한 열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또 죄를 견책하기에 대담했고, 변절자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의무의 자세로 향하게 하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세례 요한도 바로 그 영과 권능을 힘입었으며, 엘리야처럼 회개와 개혁을 전파했다. 엘리야시에 엘리야에 대해 그랬듯, 모든 사람이 요한을 예언자로 보았고, 그의 세례는 "하늘로부터" 유래한 것이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하나님은 이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하려 할 때, 이전에 그가 쓰셨던 그런 사람을 다시 나게 할 수 있으며,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에게 엘리야라는 사람의 영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2. 그는 언제 올 것인가-메시야 출현 전이다. 메시야 출현은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요, 유대 교회와 민족의 파멸의 서곡이므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의 도래" 라고 일컬었다. 세례 요한은 "다가올 진노" 를 말해 줌으로써 이 사실에 대한 정당한 경고를 주었다. 그리고 도피의 길을 가리켜 준 것이다. 또 "그리스도의 손에 키" 가 있어서, 그것으로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케 할 것을 알려 주었을 때, 바로 그 일을 한 것이다(마 3:7, 10, 12 참조).

그리스도가 처음 오셨던 그날은 그가 다시 오실 그 날과 같았다-그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큰 기쁨의 날이요,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큰 두려움의 날" 이다. 이 날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파견되었다. 이 사실을 충고하여, 사람들로 준비하고 맞이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3. 파견된 사명은 무엇인가-" 그가 아비의 마음을 그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그 아비에게로 돌리리라." 즉 그가 이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런 시도를 할 것이다. 그의 교훈과 세례가 직접 그 같은 역량을 발휘할 것이요, 많은 사람에게서 성공을 거두리라. "그가 많은 사람들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하나님의 일의 도구가 될 것이다. 즉 여호와 저들의 하나님에게로 돌아서게 하리라. 그래서 그들로 그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리라" (눅 1:16, 17).

영혼을 하나님과 그 의무에로 향하게 함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대한 최상의 준비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요한에 대해서 이 같은 약속이 있다.



(1) 그가 사물의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즉 자기 백성의 자녀들에게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죄와 불경건의 강력한 위세에 대담하게 맞서게 할 것이요,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파멸하리라. 이것을 가리켜 "만물을 회복하려는 그의 도래" 라고 했다(마 17:11). 즉 그것들을 바로 잡아, 바른 길로 흘러가게 하기 위한 도래라는 것이다.

(2) 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교훈을 전하리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요, 변화를 초래하리라. 그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빠르고, 권능있으며,"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분별" 한다. 아직도 철저히 개혁되지 아니했던 많은 심령들이 그의 사역으로 인해서 양심이 일깨워지리라. 그의 사역에는 바로 그러한 영과 권능이 있다.

(3) 그가 자녀들과 더불어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키고, 아버지와 더불어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켜(혹자는 그렇게 읽는다), 하나님과 그 의무의 길로 인도하리라. 그는 노소를 막론하고 회개를 촉구할 것이요, 그의 수고는 헛되지 않으리라. 늙어가는 많은 아버지들, 자라나는 많은 자녀들이 그의 사역에 의해 개혁되리라.

(4) 그리해서 그는 인척들 사이에 사랑과 일치감을 소생케 하고 확신케 해 줄 것이며,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결속되게 함으로써 서로 간의 유대가 더욱 확실하게 할 것이다. 그는 "한 마음" 과 "한 영혼" 의 신실한 모든 신하들이 될(행 4:32) 하늘 나라를 위해서 길을 마련할 것이다.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가 될 것이요, 모든 원수를 멸절하리라.

4. 어떤 견해로, 이 사명을 띠고 올 것인가?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으려" 함이다. 즉 이스라엘 땅, 유대 나라를 멸할까 함이다. 저들은 저들의 불경건과 불인내에 의해서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는 모든 악을 구별해낸다.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로 칠 준비를 하셨다. 그들을 완전히 파멸하며, 집안을 치며, 죽은 자를 저주로 칠 각오를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저들이 회개할는지를 다시 한 번 시험하려 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저들에게 회개를 선포케 하려고 세례 요한을 보내신다.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의 회심이 저들의 멸망을 막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어떤 자도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또한 그의 분노를 어느 때고 기꺼이 돌이키려 하신다. 저들이 하나같이 회개했다면, 저들의 회개가 하나님이 바라는 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요한의 세례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거절했고, 그래서 결국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되고 말았다(눅 7:30). 또한 저들의 땅 역시 저주를 받아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있다(메튜 헨리는 이스라엘 독립 이전의 사람임-역주).

징계, 곧 십자가로 "그들을 치는 자에게로 돌아서지 않는" 자들은 저주로 공격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사 9:13). 이제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주로" 칠 때, 파멸할 때가 다가 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어떤 사람은 구약 성서의 마지막 말이 저주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저주가 지상을 위협하고 있다(슥 5:3). 우리는 그것이 우리 탓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그리스도를 우리로 환영케 하려는 것이다. 반면에 신약 성서는 복 중의 복으로 끝났다. 그 복이 이 저주를 물리치고 우리를 포옹하도록,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포옹하도록 하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4:5 없음.

 

4: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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