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1

제사장직 (말라기 2:1-9)

앞 장에서 이야기된 것이 제사장들에게 지시되었다(1:6). 즉 "만군의 주가 네게 말하기를,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라는 것이었다. 앞 장에서 그들에게 책망된 죄는, 저들이 제물에 대하여 범죄한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바침으로써 조금은 변명이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마땅이 그랬어야 할 만큼 선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사장들의 잘못이 아니라, 백성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앞에서 책망된 타락에 대해 여기서는 근원을 캐고 있다. 즉 제사장의 잘못은 백성들의 선생으로서, 율법의 해설자, 산 신탁으로서의 죄책이었다. 이것은 아직도 복음의 사역자들의 손에 남아있는 역할의 일부이다(비록 제사장들처럼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율법에 있어서의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목사와 교사로 택함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권면이 특별히 그들에게 관계되어 있다. 만일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보다 훌륭하게 가르쳤더라면, 백성들은 보다 좋은 제물을 가져왔을 것이므로 그것은 제사장들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 "너희 제사장들아! 순전히 너희에게 이르노라(1절). 즉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선하신 뜻과 그를 올바르게 섬기는 길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했던 자들이니라." 교회의 치리자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알자. 명령을 내리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계명을 주고 있다. 아니, "너는 내가 너희에게 보낸 명령을 알게 할 것이다" (4절). 저들은 그 일에 대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1. 각성과 개혁을 위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너희는 그 효험에 의해서 그 근원을 알게 될 것인데, 그 효험은 무엇을 행하는가에 따라서 오리라." 우리들 안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에게 하셨다는 것과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 인 "말라기" 의 말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일반적으로 모두에게가 아니라 특별히 우리에게 보내진 말씀임을 알게 되리라.

2. 또는 저들에게 선언된 경고가 성취됨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댓가로, 이 계명을 보낸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은 헛된 것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는 것이다. 이러한 명령은 제사장들에게 내려진 것이다. 그들에게 보내졌음을 그들이 알아야 한다. 다음에서 그 책망의 특별한 방식을 살피자.

Ⅰ. 여기에 그 거룩한 백성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인용된다. 그 언약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위임이었으며, 그들의 영광의 특권이었다. "만군의 여호와" 가 저들에게 계명을 보낸 것은 이 언약을 세우기 위함이셨다(4절). 그의 언약은 "그가 명한 말씀" 이다(시 105:8). 여호와는 그 명령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당시에 선지자를 보내셨는데, 그 계명은 그들이 모독했다고 해서 삭제될 수 없는 것이었다. 레위족은 자기 족속(특별히 아론의 후손)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영광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내려 준 영광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라(5절). "내 언약은 생명과 평강이다." 온 이스라엘 족속과 맺은 특별한 언약 외에 단 한 족속과 맺은 제사직에 대한 언약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봉사해야 하는 언약이며, 그러한 조건 속에서 제사직의 모든 특권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아론의 족속은 제사장족이 되고, 하나님의 존귀와 예배를 위해 구별된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특별한 나라, 곧 "제사장의 민족" 이었던 것과 같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견지해야 했듯이 이스라엘은 열방에서 그의 이름을 견지해야 했다. 각기 정도는 다르나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었다(2절). 하나님은 비천한 종들인 그들과 언약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게 하셨으며, 그 행위 속에서 그들을 받아들일 약속을 하셨다. 이것이 "생명과 평강의 언약" 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영혼에 생명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신앙의 도움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즉 죽은 자에게는 생명을, 억눌린 자에게 화평을 가져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충실하고 양심적으로 자기의 직무를 행하는 제사장들에게는 이 언약이 생명과 평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모든 악으로부터 안전한 평화를 누릴 것이며, 모든 선의 정수를 포함하는 생명을 누리게 되리라.

여기서 말한 제사장직 언약은 영적인 제사장은 신자들 모두가 함께 누리는 참된 은혜의 언약이다. 그 언약은 생명과 화평의 언약이다. 그 언약은 영원한 화평과 영원한 생명을 모든 신자에게 확신케 하는 것이며, 이 세상과 장차 온 세상에까지 모든 행복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 언약은 레위족이 다른 족속과 구별되어지고, 다른 족속처럼 계수되지 아니할 때에, 레위 지파 전체와 맺은 것으로, 백성들 중에 택하여, "증거의 장막에 지목되었을 적에" (민 1:49, 50), 하나님께서 "레위인은 내 백성이 되리라" (민 3:12)고 말씀하신 그때에 맺어진 것이다. 그 언약은 아론과 맺은 것인데, 그당시 그와 그의 후손은 "제사장의 직능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고 택함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론은 "여호와의 성도" 라고 불리웠다(출 28:1). 그 언약은 특별한 기회에 아론의 후손인 비느하스와 그 종족에게 맺어졌던 것이다(민 15:12, 13). 거기서도 제사직의 언약은 여기서처럼 "화평의 언약" 이라 불려졌다. 왜냐하면 그 언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생명과 평강의 엄청난 축복은 하나님께서 그와 레위와 아론과 비느하스에게 주신 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그 자손에게 생명과 평강을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유익과 유용성을 위한 이런 은덕으로 그들에게 영광을 부여하신 것이다. 저들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신 것처럼(시 68:18) 남에게 주기 위해 받을 것이다. 이제는 이 언약의 내용을 좀 더 살피자.

1. 언약의 근거. "두려움으로 그는 나를 경외하였다." "그리고 나의 이름 앞에서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레위족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떨림과 그 이름에 대한 존경심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였다. 그들이 금송아지 숭배자에 대하여 아주 용감하게 대했을 때, 그 열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이러한 축복을 베푸셨으며, 그들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일에 초대하셨다(출 32:26). 비느하스도 역시 하나님의 법도와 두려움에서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다. 역병이 있게 되자, 그는 "시므리와 고스비니" 를 찔러 죽였다(시 106:30, 31).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만이 "생명과 평강" 의 언약의 유익을 바랄 수 있음을 명심하자. 하나님께 대해 열심의 증거를 보이는 자는 어렵지 않게 기독교 제사장 직분의 영광스러운 특권으로 보상될 것이다. 혹자는 이 일을 허락으로 생각지 않고, 조건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가 나를 두려워 할 것이라는 조건에서, 내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을 주셨다면, 그분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경외하기를 원하신다.

2. 이 언약으로 인해서 제사장들에게 맡기어진 영광을 살펴보자(7절).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使者)이며" 생명과 평강, 언약의 사자가 된 것이다. 언약의 중재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 협정을 주선하기 위해 고용된 심부름꾼, 혹은 대사로서이다. 제사장들은 살아 있는 신탁에 따라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입" 이었다. 바로 이것이 레위인이 해야 했던 직무였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해서 레위인은 "그의 형제나 자식을 알지 아니했으므로, 저들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칠 것이다" (신 33:9, 10).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보냄을 받는 것과 사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 고용된다는 것은 영광스런 일임을 주목하자. 이때부터 저들은 사자(천사)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학개는 "여호와의 사자" 로 불리웠다.

아래의 사항이 저들의 직무였다.



(1) 사역자의 직무는 무엇인가? "제사장은 지식을 입술에 간직해야" 하며, 그 지식을 백성들로부터 취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백성들에게 전해야 한다. 제사장은 반드시 지혜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에 익숙치 못하고 그 일을 준비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새 것과 옛 것을 창고에서 꺼내 놓는 훌륭한 청지기가 되기 위하여, 지혜를 쌓아야 하며, 쌓은 지식을 잊지 않고 지속시켜야 했다. 그들은 머리만이 아니라 입술에 지혜를 간직해야 하며, 간직할 뿐만 아니라, 준비하고 혀 끝에 간직하여, 경우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입에 전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명철을 가진 자의 입술이 많은 사람을 지혜로 먹이는 것" 을 본다(잠 10:31, 21).

(2) 백성들의 의무는 무엇인가? "백성들은 제사장의 입술에서 율법을 구할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인 제사장들의 말씀을 듣고, 청종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관해서 묻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말씀을 더 잘 알게 되며, 그 말씀에 대한 오해를 미리 방지하게 되며, 고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알며, 확실하고 분명하게 아는 데 깊이 관심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데 열심을 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관해 물어야 한다. 즉 "주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라고 말이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문제를 의논해야 할 뿐만 아니라 (" 율법과 증거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자에게 반드시 의뢰해야 한다. 우리가 육신과 재산의 일로 의사나 법률가와 의논하는 것처럼, 영혼의 문제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가르침과 권면을 받기 원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자에게까지도 하나님의 법도를 의례히 알려 주고 하나님의 법을 알려고 하도록 해야 한다(잘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딤후 2:25). 들을 뿐만 아니라 질문하는 것도 저들의 의무이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찌되었느냐?" "네가 물으려든, 물으라" (사 21:8, 11, 12 참조).

백성들은 제사장의 입술에서 위안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기에서 율법도 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의무의 길에 서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의무가 위로의 통로임을 알게 될 것이다.

Ⅱ. 제사장의 직무에 있어서, 많은 선조들이 보여 준 기억할 만한 충성과 열심의 기념비가 있다. 이것은 곧 이 같은 선례를 망각하고 그처럼 영광스러운 선조의 위험에서 타락하는 것은 저들의 죄가 그만큼 가중한 것임을 언급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했던 자들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현존의 모든 증거를 취소하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경건한 제사장들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살펴보자(6절). 그들이 밟아야 했을 그 발자취가 얼마나 훌륭했으며, 그들과 함께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 즉 그가 행한 바가 얼마나 위대한가 보자.

1. 그는 대단히 선량했다. 그는 성서 말씀에 강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의 입에 진리의 법이 있어서," 그의 입에서 그 법을 묻는 자들에게 사용되었다. 그의 모든 율법 해설에는 다소간 진리의 법이 나타났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은 법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그 법으로 다른 사람을 치리했다. 그는 권위있는 자(그의 모든 말은 법이었다)처럼 말했고, 청렴결백한 지혜를 가진 사람처럼 말하였다. 그 말하는 것은 "진리의 법" 이었으며, 진리는 곧 법이었고, 사람들을 명령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진리로써 통치하신다. "진리의 법" 이 그의 입술에 있었다. 그의 견해는 곧 훌륭한 법이었다. "그의 입술에 부정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만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자기 목적에 이용하거나 자신을 즐겁게 하거나, 문의하러온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 언제나 율법이 말하는 것을 말했다. 그는, 랍비처럼 깨끗한 것을 불결하다 하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그의 가르침과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에게 이런 영예로운 증거(testimony)를 허락하신다. 그는 나와 함께 평화와 공평 가운데 걸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그와 함께 동행하였다. 그의 마음가짐과 생활의 면모는 그의 가르침과 고백에 일치했다. 그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를 찬양하는 것을 자기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걷도록 택함받았던 제사장답게 살았다(삼상 2:30). 그의 말은 조용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였으며," 자비심을 일으키는 자였으며, 사람들 중에 모범이 되었다. 그는 화평 중에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스스로 화평할 수 있었고, 또 화평케 하는 자이었다. 또한 그의 말은 정직하였다. 그는 어떠한 잘못도 행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양심의 의무를 일깨웠다. 그는 공평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평등의 법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의와 일치하는 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위로부터 온 지혜는 먼저 온전하고, 그 다음에 화평케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 가운데서 제사장들은 양떼의 모범이 되도록 화평과 공평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관심해야 한다.

2. 그가 무슨 선한 일을 했는가를 보자. 그는 그 직무에 대한 목적을 수행하였다. 즉 그는 "많은 사람을 부정함에서 돌이키게 했다." 그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자기의 직무로 삼았으며, 하나님은 그의 놀라운 성공으로 그의 수고에 면류관을 씌우셨다. 그는 많은 영혼을 사방으로부터 구하는 일에 도왔다. 하늘에는 일찍이 그들이 알고 있었던 많은 보화가 있다. 목회자는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한편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지닌 자 중에서도 회개하는 일이 필요하며, 죄악에서 돌아서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저들이 이런 일에 도구로서 사용된다면, 이 일을 영광으로 여겨야 하며, 자기의 수고에 대한 후한 보답으로 여겨야 한다. 인간을 자기의 은혜로서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Ⅲ. 당시의 제사장들에게 내린 준엄한 책망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 있던 법과 모범을 어겼다. 그들의 많은 구체적 죄목들은 전 장(前章)에서 보았다. 우리는 수많은 타락이 제사장들의 불충실과 부주의에 의해서 있었고, 안식일 모독, 하나님의 전(殿)에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것, 잡혼 등이 당시에 유대 교회에로 기어 들어오게 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느 8장). 그들에게 내려진 책망이 일반적인 말로 나와 있다.

1. 저들은 법칙을 범하였다. "너희는 바른 길에서 떠났다" (8절). 너희는 하나님이 명한 바른 길에서 떠났으며, 경건한 선조들이 걸었던 길에서 떠나갔다. 직무를 맡은 자들이 백성들을 빗나가도록 인도할 때, 그것은 백성들에게 불행이다. "너희는 내 도를 지키지 아니했다. 너희 자신 지키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내 백성들로 그것을 지키게 해야 될 직무를 행치 않았다" (9절)고 하였다.

2. 저들은 신뢰를 배신하였다. "너희는 레위의 언약을 범하였다. 언약의 큰 뜻을 거역했으며, 백성들을 좌절시켰다. 너희는 마치 너희 직무가 너희 자신을 살찌게 하며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만 있으며, 결코 하나님의 영광이나 인간 영혼의 선함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닌 양,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것이 레위의 언약을 부패케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직무의 목적을 악이용한 것이며, 통제해야 할 그런 육적인 세속 일을 하는 자들을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언약의 유익을 상실케 되었으며, 저들 자신도 타락하게 되었다. 저들은 언약을 "헛된 것으로 만들었으며," 저들에게 물려 준 생명과 평화를 잃었다. 우리가 양심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약속을 이행하리라고 기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저들이 책망받는 저들의 죄는 바로 "율법을 편벽되게" 했다는 것이다(9절). 저들에게 주어진 율법 가운데서 저들은 자기의 의무를 골라서 선택하곤 했다. 그들은 이렇듯 자기들의 기호에 따라 의무를 지키기도 하고 안지키기도 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올바른 마음을 소유한 자들은 "주님의 모든 계명을 존경하는" 반면에, 이것은 위선자의 소행이다.

또는 그들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가시켰다. 여기서 그들은 "얼굴을 알았다" (원문은 그런 뜻이다). 저들은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저들은 원한이 있는 자에게는 협잡하고 자기와 안면이 있는 자에게는 친절히 대하고자 율법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하였다. 저들은 자기의 마음을 이끌게 하는 이해나 마음의 기울어짐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날카롭게 대할 죄를 묵인했다. 하나님은 율법을 세움에 있어서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 또 율법을 이행하지 않는 자에 대한 심판에서도 그러하다. 그분은 "가난한 자보다 부자를 더 눈여기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리나 교훈을 전함에 있어서 사람들의 외모를 본다면, 그 제사장과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다(딤전 5:21 참조).

3. 저들은 마땅히 구원했어야 했을 사람의 영혼에다 많은 해악을 끼쳤다. "너희가 많은 자들로 율법에 거치게 하였도다." 그것을 범함으로써 "율법에 빠졌" (난외의 주와 같이)을 뿐만 아니라, 가르침과 제사장들의 모범에서 용기를 얻어서, 고의로 "율법에서 넘어졌다." 마치 율법이 죄의 일꾼이 된 것이다. 이래서 "홉니와 비느하스" 저들의 사악함으로 인해서 "여호와의 희생 제물을 가증스럽게" 만들었다(삼상 2:17). 하나님의 율법이 "거침돌" 이 되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음에 이르는 냄새" 가 되고, 그리스도 자신이 "걸림돌" 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사악한 생활을 하는 신앙인들 이상으로 이런 일에 더 이바지하는 것은 없다. 그런 자들 때문에 "신앙은 모두 장난이라" 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것은 정말로 "걸림돌" 이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이유는 없지만, "이런 죄를 짓게 하는 자들에게 화 있으라."

4. 저들이 섭리와 말씀으로 공히 징계에 놓였을 때도, 저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즉 "유의하려 하지 않아서"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저들은 죄를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기에, 저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는 저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우리가 마음에 간직하지 않으며 감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가 듣는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다. "너희가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다." 회개와 개심으로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마음에 두어야 하며,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알려지는 모든 일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영예를 찬탈하는 일은 나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과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임무를 받은 사역자들이 하니님께 대항해 버티는 것은 더욱 사악한 일이다.

Ⅳ. 여기에 하니님께서 신성모독과 모욕을 일삼는 제사장들에게 내리신 심판의 기록이 있다.

1. 제사장들은 저들의 즐거움을 잃었다(2절). "나는 이미 네 복을 저주하였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일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했으며, 선한 일을 하면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 저들은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기를 기원했으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아멘" 이라 말하던 것을 저주로 바꾸셨다. 마치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변하게 하셨던 것과 같다. 더럽혀진 백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으며, 타락한 제사장들도 역시 백성에게 복을 빌어 줄 수가 없다. 그런 자들은 모두 그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된다. 저들은 보상받을 위로도 없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내린 축복을 저들이 그릇되이 씀으로서 복이 저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은 저들에게 주어진 책망을 마음에 두지 않음으로써 저들 자신을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런 존재로 만들었다.

2. 저들은 저들의 신용을 잃었다(9절). "그러므로 나도 너희를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다." 저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는, 그도 저들을 귀하게 하셨고, 명성을 옹호해 주셨다. 저들이 "화평과 공평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무를" 지키는 동안은, 저들이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심을 얻었다.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존경심과 가치를 부여해 주었다. 저들은 정말로 존경받는 사역자나 제사장의 모습을 하였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레위의 언약을 더럽혔을 때는, 그로 인해서 일반 백성의 눈에도 비천하고 악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질서를 존중하면 할수록, 불경건한 자들을 더욱 미워하게 된다. 저들의 소행과 나쁜 행위가 이런 경향을 재촉한다. 하나님 자신은 그 사건 속에서 자기의 손길을 인정하시며, 그들 위에 내린 심판이 정당한 것이 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심판의 목적도 달성하실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그의 상과 과일을 더럽게 만들었다" (1:12). 그런고로 하나님은 정당하게도 저들을 경멸하셨고 저들을 더럽게 만드셨다. 저들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였으므로, 하나님도 저들을 드러내 보이셨다. 죄가 어느 사람에게나 견책을 사지만, 제사장들에게는 특히 더하다. 더럽혀지고 사악하고 추한 제사장들은 이 땅 위에서 가장 비천한 짐승과도 같다.

Ⅴ. 여기에 그들에게 내려진 진노의 선고가 있다. 이 예언자는 이것부터 시작한다(2,3절). "만약 너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둔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돌이켜지고 만사가 형통하지만, 너희가 사악한 길에 계속 머물면 운명의 소리를 들으리라. 너희 죄가 곧 너의 멸망이 되리라." 그러나 그것은 "만일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1. 그러면, 저들은 하나님의 저주에로 떨어질 것이리라. "내가 네게 저주를 보내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의 진노는 기록한 말씀의 경고에 따라서 그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율법의 명령을 범하는 자는 자신을 율법의 저주 아래 두는 것임을 알자.

2. 제사장들처럼 부름받은 일이나 누리는 특권이 그들을 깨끗하게는 못하리라. "나는 너의 복을 저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이나 백성에게 복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가 풍년을 맞을 때에는 역병이 일 것이며, 또 자손에게 역병이 될 것이다."

3. 저들이 11조를 냈던 땅의 열매도 저들에게는 위안이 되지 못하리라. "보라! 나는 네가 뿌린 씨앗을 썩게 하리라. 네가 심은 곡식은 땅 속에서 썩을 것이며, 결코 다시 나오지 못하리라. 그 결과로 필요한 양식이 부족하게 되고, 기근을 당하리라. 그러므로 제단에 아무런 소제물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요, 그래서 제사장들은 제단을 떠나리라." 또는 그들이 전한 말씀의 씨앗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전한 가르침에 대해 축복을 거부하겠다고 위협하신다. 그러므로 저들의 수고는 헛되고 말 것이다. 마치 씨가 썩으면 농부의 수고가 헛되듯이 말이다. "저희는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 한 경고와도 상통한다(렘 23:32).

4. 하나님은 제사장과 그들의 예배를 거절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고 싫어하시는 만큼 그들에게서 즐거움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나는 네 얼굴에 똥을 뿌릴 것이다. 바로 엄숙한 제물의 똥을 뿌리리라." 하나님은 제사에 바쳐진 제물을 두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희생 제물의 기름을 기뻐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똥을 그들의 얼굴에 뿌림으로써, 불쾌감을 나타내실 것이다. 사실은, 그가 "더 이상 쓸데없는 봉헌물을 내게 가져오지 말라. 분향이 내게는 가증스런 것이 되었도다" 고 말씀하셨을 때, 이미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똥이라고 생각해야 할 신앙의 외적 행위에만 안주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도 영접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수치와 당혹을 당하게 될 것이다.

5. 마지막으로, 저들의 무서운 파멸이 모든 것의 끝장이 될 것이다. "너희는 그것과 함께 제하여질 것이다" (3절). 그들은 희생 제물의 똥으로 뒤덮혀, 그것들과 함께 내버려질 것이다. 그때 어떤 청소부가 너희를 내다버릴 것이다.

 

2:2 없음.

 

2:3 없음.

 

2:4 없음.

 

2:5 없음.

 

2:6 없음.

 

2:7 없음.

 

2:8 없음.

 

2:9 없음.

 

2:10

불법적인 결혼 (말라기 2:10-17)

타락한 행동은 원리의 타락의 결과이며, 그 소산이다. 사람의 마음과 생활이 악한 것은 저들이 지닌 나태한 무신론적인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구절에서 우리는 바로 그러한 경우를 본다. 여기에서 그 밖에 다른 일을 그릇되게 다루는 자들을 보는데, 그일은 저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생겼다.

Ⅰ. 저들의 행실이 얼마나 타락했던가를 살펴보자. 대체로 말해서, 저들은 "각각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였다" (10절). 하나님께 대하여 거짓된 자가 이웃에게 진실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11조와 제물에 대하여 궤사를 행하였고, 하나님을 배신하였다. 그러므로 양심이 타락하였으며, 양심의 결속과 끈이 끊어져서, 불의와 거짓된 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인간관계와 자연적인 사랑의 유대까지도 똑같이 깨어졌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여기 나타난 궤사는 그 당시에 느헤미야에서 불평했던 압제와 강탈의 예와 같다고 한다(느 5:3-7). 그때에 그들은 자기 조상의 하나님과 선조의 언약을 잊어버려서, 자기들의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사 1:20). 그러나 여기의 경우는 역시 느헤미야 13장 23절에서 불평되었던, 결혼에 관한 잘못에 관련된 듯하다. 이 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한 두 가지 일이 그들이 비난받는 이유이다. 그 일은 이방 여인을 취한 것과, 자기 나라의 여인을 이유없이 버린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일에서 그들은 궤사를 행했으며, 거룩한 언약을 범하였다. 전자는 선민의 언약에 대한 경멸이며, 후자는 결혼 계약에 대한 경멸이었다.

1.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을 더럽힌 장본인은 저들이 분명하게 금지하고 배척했던 바 이방 여인과 결혼이다(신 7:3). 여기서 살펴 볼 것이 있다.

(1) 저들이, 이 언약에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실하게 대하여야 하며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1] 분명히 언약에는 저들이 그런 결혼을 멀리해야 된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런 조건에서 저들에게 선을 베푸셨다. 그 조건이란 그들이 이방인과 섞이지 않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들이 "열조의 언약," 저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이다. 따라서 그 언약의 유구한 역사와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나라를 하나로 되게 하는 커다란 특이성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언약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녔으나, 마치 언약에 매여있지 않은 사람들처럼 언약을 파괴했다.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과 맺은 질서를 따르지 않고, 불순종으로 사는 자는 조상의 언약을 더럽히는 자들이다.

[2] 저들은 한 몸으로 연합한 특별한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특별한 영예를 보존하는 일에도 연합해야 했다.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를 갖지 않았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지 않았는가?" 우리는 모두 "그분의 후손" 이 아닌가? 우리는 "한 핏줄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그렇다. 확실히 우리는 그러하다. 하나님은 인류 모두의 공통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이며, 서로의 이웃이다. "그런 즉, 거짓을" 버려야만 한다(엡 4:25). 그리고 어떤 형제에 대하여도 궤사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유대인만 국한해서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우리는 한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야곱이 있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있다" 는 것을 저들은 자랑삼았다. 그러나 이방인과의 잡혼에 의해서 저들이 영예를 져버리자,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지 아니하였느냐? 즉, 우리를 한 백성으로 만드셨으며, 우리 스스로 한 나라를 이루게 하여, 다른 나라와 구별시키고, 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했는가? 또 이 때문에 우리는 독특한 존귀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아니한가?" 교회의 설립자되시며 아버지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생각하고, 우리는 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며, 모든 타락을 막아야 한다.



[3] 저들은 이웃 나라와 구별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봉헌된 민족이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물이었으며" (렘 2:3), 그와 함께 언약을 맺었으며, 하나님의 이름과 찬양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했으며 기뻐하셨다. 그 백성들 가운데 세워진 성소는 그가 "사랑하는" "여호와의 거룩함" 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나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내가 원하므로 여기 거하리라" 고 하셨다. 그러나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 해서, 그 백성은 이 거룩함을 더럽혔으며, 존귀함을 땅에 떨어뜨렸다.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자기들의 온전함을 지키는 데 관심을 쏟는다. 그들이야말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떠나지 못하게 하며, 존귀함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께 그들이 바치는 것의 목적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어떻게 궤사를 행했는지를 살펴보자. 그들은 저들의 특이한 영예를 유지하기 위해 규정한 바로 그 일을 스스로 더럽혔다. "유다는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 해로움은 그 여인이 이방의 딸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하나님은 "열방" 을 지으셨고, "열방의 왕이" 되신다), 그 여인이 이방신의 딸이었다는 사실이며, 저들의 뜻에 따라 저들의 선조들이 섬기던 거짓 신을 섬기고 예배하는 데 익숙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랍비들은 포코크(Pocock)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자는 마치 자기를 우상에게 양자드는 것 같다" 고 말한다. 저 옛 세상의 타락도 "인간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간의 잡혼으로" 시작되었다(창 6:2). 비록 더 나쁜 어감의 표현이긴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비난된 것과 같은 사건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방신의 딸들과 결혼하였다." 바로 이점에서,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다" 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는 저들이 기본적으로 "사랑했어야 할 여호와의 거룩함을 모독했으며" (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저들 자신의 존귀를 천하게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 가증스런 일을 저질렀다" 고 했다. 잡혼은 하나님에게는 가증스러운 것이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특별히 불신자와 인연을 맺음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는 것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혐오스런 일이다.

(3) 하나님께서 저들을 얼마나 엄하게 다루실 것인가를 살펴보자(12절). "여호와께서 이방신의 딸들과 결혼하는 그런 일을 하는 자를 끊어 버리시리라." 사실 그들은 스스로 거룩한 민족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이방인과 결합하여 "이스라엘 단체에서 소외"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하나님은 "그를 삭제하여 버리시고 그에 속한 모든 것도 빼어버리시리라." 원문의 뜻은 그런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자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끊어질 것이며, "거기에 사는 사람으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죄를 범한 "주인과 학자," 교사와 가르침을 받는 자를 절단하시리라. "장님이 된 인도자와 장님을 따르는 자는 웅덩이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난외를 보면, "깨우는 자와 대답하는 자가 모두" 빠지리라 했다. 선생은 그의 문하생들을 불러 그런 일을 하도록 고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곱의 장막 밖으로 내쫓길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 나라에 속한 자로 여기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들도 이방 여인과 결혼하면(에스라 10장 18에서 제사장이 행한 모든 일을 볼 수 있다) 그도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며, 야곱의 장막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처럼 여호와의 전에서 버림받게 될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죄를 범했다고 생각한 대제사장의 아들 하나를 제사장직에서 쫓아냈다(느 13:28).

2.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축복을 위해서 정하신 결혼 계약을 경멸하고, 이방 여인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본국에서 취한 여인을 학대하며 내쫓았다. 그때에는 이처럼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였다. "너희가 이런 일로 행했다" (13절). 이것이 제 2의 비난 조항이다. 죄악된 길을 가는 것이 내리받이길이다. 한 언약을 범하는 것은 또다른 죄악에로 통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1) 여기서 비난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저들은 자기의 아내에게 행했어야 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1] 그들은 아내와 다투었다. 그들의 생활이 고되게 했다. 그래서 저들이 기쁨으로 행해야 할 절기 때에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아내와 가족을 데리고 왔을 때에, 모두가 기쁨을 잃어버렸다. 가련한 아내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사정을 감히 알리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아파했다. 그래서 그 아내들은 하나님께 탄원하였으며, 부르짖음과 울음, "눈물로 제단" 을 덮었다. 이것은 한나의 예에서 설명된다. 그녀의 남편이 다른 아내를 취하였기 때문에(그렇지 않았으면 자상한 남편이었겠지만), 그때 이후로 불만이 솟았으며, 그들이 예배하러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적마다, "속이 타서 울었고, 영혼의 쓰라림 속에 잠겼으며 식음을 전폐했다" (삼상 1:6, 7, 10). 이러한 일이 본문에서 여인들에게 발생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예배자에게 요구하신 즐거움과는 정면으로 대립되므로,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저들의 제물을 더 이상 중히 여기지 아니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섬기는 선한 주인께서는 눈물이 아니라 기쁨으로 제단을 덮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주목하자.

여기에,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해 울며" (겔 8:14), 예배자의 피가 제단에 흘러넘치는(왕상 18:28) 그런 제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상을 섬기려고 하나님의 제단을 떠난 자들에 대한 힐책이 나타나 있다. 남들로 하나님께 즐겁게 예배하는 일을 막는 일이 얼마나 사악한 일인가를 보라. 비록 의무를 다하지 않을 생각을 하는 것이 저들의 까다로운 성미에서 나온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을 까다롭게 되도록 부추기는 자들의 잘못" 이 더욱 큰 것이다. 배우자들이 거룩한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곧 "저들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벧전 3:7).



[2] 저들은 서로를 배신하였다(14-16절). 저들은 서로의 약속을 이행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재산을 탈취하고, 아내에게만 주어야 할 사랑을 첩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3] 그들은 이혼 증서를 주어, "저들을 저버렸으며," 그들로부터 돌아섰다. 아니, 아마도 저들은 모세의 율법이 기록한 의식도 행하지 않고 그런 일을 했을 것이다(16절).

[4] 이 모든 일에서, 그들은 "그들의 옷으로 학대(폭력)를 위장했다" (우리 번역과 다소 다름). 저들은 아내를 못살게 했으며, 귀찮게 굴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내를 아주 사랑하며 보호하는 체하였다. 허울 좋은 가식을 내세우거나, 그러한 가식을 화려한 의상으로 뒤덮는 일은 모독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2) 이러한 비난의 증거와 그 비난을 가중케 하는 원인을 살펴보자.

[1]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증언으로서도 충분히 증명된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증거하셨고(증인이 되셨고)(14절), 너와 그녀 사이의 결혼 계약을 증거하셨으니, 그것은 너희가 결혼에의 충실과 성실에 관하여 그에게 호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또 그 계약을 범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증거자가 되셨으며, 결혼 계약을 경멸하여 행하는 모든 궤사에 대한 증거로 이제 너와 그녀 사이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신실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모든 계약과 또 그 계약 파괴에 대한 증인이 되셨고, 또 그의 증거는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그 일은 학대받은 사람을 고려할 때 크게 악화되어진다.

첫째, "그 여자는 네 아내이다. 네 살 중의 살이며, 뼈 중의 뼈요, 네가 세상에서 관계하는 인척 중에 네게 가장 가까운 자이며, 백년해로해야 하는 자이다."

둘째, "그녀는 네가 젊었을 때 취한 아내이다. 그녀는 그녀가 가장 예뻤을 때에 네 애정을 받은 자이며, 네가 첫번 선택했으며, 너와 오랜 생(生)을 같이 살아온 자이다. 네가 젊은 시절에 택한 연인을 나이든 후라 하여 꾸짖음과 모멸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

셋째, "그녀는 네 짝이다. 그녀는 너의 슬픔과 기쁨을 오랫동안 나누어 왔다."

아내를 종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남편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즐거이 의논하는 반려자로 삼아야 하며, 그의 짝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 기쁨을 나누는 친구로 여겨야 한다. 그녀는 "너의 짝" 으로 약속된 자가 아닌가?

넷째, "그녀는 네가 언약한 아내이다. 그녀가 신실하게 대하는 동안에는, 그녀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 아주 굳게 맺어진 네 언약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일생 동안의 언약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너와 함께 약정한 자이며, 그렇기에 소홀히 다룰 수 없고,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서약이 너희 사이에 있다. 기혼자는 언약했던 바를 이행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가끔씩, 자기들의 결혼 계약을 기억하며 재음미해야 한다.



(3) 남녀가 저들의 목적을 위해서 거룩한 사랑과 화평 가운데서, 분쟁이나 헤어짐 없이 함께 결혼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1]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15절). 한 아담을 위해 하나님은 한 하와를 만들지 아니하였던가? 그것은 아담이 다른 여인을 취하여 그녀로 시기케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레 18:18). 또 아담이 다른 여인을 맞기 위해 하와를 버렸는가? 아담이 무죄 중에, 존귀하게, 기쁨의 동산에 있을 적에, 한 여인으로만 아내를 삼게 제한한 것은 결혼의 법을 너무 제한적이라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악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의 여분을 소유하고 계신다." 또 다른 하와를 만들 수 있었으나, 아담을 "자기의 조력자" 로 만들 계획을 하셨으므로, 그에게 "한 아내" 만을 갖게 하셨다. 만약 하나님이 다른 아내를 만들어 주었다면, 아담은 하나님의 "조력자" 가 되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한 남자를 위해 한 여자를 지으셨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경건한 자손" -곧 "하나님의 자손" (원문의 뜻이다)을 "구하고자 함이었다." 하나님의 형상를 지닌 자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자손,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손을 구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율법에 따라서 "자기 아내" 를 "단지 하나" 만을 가져야 함(고전 7:2)은, 저들로 순결함과 거룩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며, 성적인 욕망의 지배 밑에서 짐승처럼 살지 않게 하며 그렇게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본성에 가장 근사하게 참여하는 자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하나님의 규례대로 거룩한 결혼으로 탄생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려는 자녀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손" 이 되게 하며, 태어날 때와 같이 하나님의 지시와 통치에 따라 자라가게 하기 위함이다. "여호와에게 귀중히 여김 받는 세대" 가 될 거룩한 자손의 생산이 결혼 제도의 커다란 목적 가운데 하나임을 알자. 그러나 이것은 역시 부부생활은 정결해야 하며, 결혼을 강제로 해서는 안 되는 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자손이 경건한 자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결혼)계약의 자녀로서 거룩하다." 이것은 은혜의 계약의 모형이다. 결혼 계약은 잘 보전되었더라면, 경건한 자손을 구하고 확보하려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신비스러운 결합이 될 터였다(엡 5:25 참조).

[2] 하나님은 "그가 연합한 것을 분리시키려는 자들을 아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1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분리하는 것(이혼)을 미워하노라." 하나님은 "그들 마음이 완악함으로" 인하여 이혼하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허락했다. 아니, 오히려 제한하셨다(마 19:8).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셨다." 특히 "모든 이유로 인해서" 이혼을 행하는 자들을 "미워하셨다" (마 19:3). 남편으로부터 달아난 아내, 그리고 아내를 난폭하게 대하고 아내를 저버리는 자들, 또는 아내에게 줄 사랑을 다른 여인에게 주는 남편들, 그리고 서로 간의 사랑의 결핍 때문에 합의 하에 별거하여 사는 남녀들, 바로 이런 자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든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와 같은 행실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4) 이 모든 일에서 나온 주의를 살피자. 그것이 두 번 나와 있다(15절).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서 어려서부터 취한 아내에게 배신을 행하지 말라." 그리고 16절에도 있다. 죄를 짓지 아니하려는 자들은 반드시 "저들의 심령을 삼가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죄악이 심령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저들은 자기의 마음을 충심으로 지켜야 하며, 열심으로 그 마음을 살펴야 하며, 엄격히 그 마음을 다스려, 거기에 죄가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답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영적 상태" 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심령을 삼가 지켜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올바른 사랑을 주며 좋은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궤사를 범할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우리 자신을 배반하게 된다면, 과연 누구인들 배반하지 않겠는가?

Ⅱ. 이러한 모든 타락된 행실의 원인이 된 저들의 원리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살피자. 그 원인을 그 근원에까지 거슬러 살펴보자(7절). "너는 너의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다." 저들은 말씀의 깨우침을 피하려 했으며, 하나님의 행위를 헐뜯음으로써 자신들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저들의 방어는 저들의 거침돌이 되었으며, 저들의 자기 옹호는 저들의 죄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가 되었다. 저들은 자기들의 말로 여호와를 모욕했으며, 종종 그런짓을 반복했다. 그런 자가당착 행위를 오랫동안 계속했는데, 그 일이 곧 "여호와를 괴롭게 한 것이었다" (사 7:13 참조). 저들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과거에 행한 것처럼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에 지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의 물줄기를 중지시켰다. 또한, 저들은 하나님이 세계를 다스림에 그만 지쳤고, 관심두지 않는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사람들이 저들의 악하고 타락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를 주장하며, 사악하고 타락한 행위를 옹호함으로써 자기들의 무신론을 변명하는 소리를 듣는 일은 하나님에게라도 다소 지겨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치 선지자들을 인해서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행했다는 듯이, 그들은 아주 뻔뻔스런 말을 했다. "언제 우리가 주님을 괴롭게 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를 괴롭게 하였는가? 우리가 그를 괴롭혀 드린 괘씸한 말이 무엇인가? 죄악적인 말은 저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늘 아버지를 분노케 했음을 알자.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의 항변에 대한 증거를 준비하셨다. 저들은 적어도 마음속으로 두 가지를 말했다(생각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괴롭게 한 것이다.

1. 저들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인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교리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해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악을 미워하신다. 죄악을 볼 수 없을 만큼 "정결한 눈" 을 가지고 계신다. "죄악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 (합 1:13).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는 신(神)이 아니시다" (시 5:4). 그런데 저들은 뻔뻔스럽게 말하기를, "모든 악이 여호와의 눈에는 선하게 보이며, 그는 그것들을 기뻐하신다" 고 했다. 그들은 이유도 없이 죄많은 자들이 잘사는 것을 보고 이런 악한 추측을 했다(3:15 을 보라).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나 미움은 단지 인생들의 눈 앞에 나타난 것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부자인 사람들은 "여호와의 눈에 선한" 자들로 봐야 한다는 식이다.

혹은 저들은 그렇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를" 결심하면서도, 아직도 자기들은 "여호와의 눈에 선하다" 고 생각하여, "하나님이 자기들을 기뻐하신다" 고 믿기로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엄하시지 않다는 핑계로, 그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말했으며, 하나님도 "자기들과 거의 같다" 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죄의 친구로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요, 자신들을 속이는 것이다.

2. 저들은 하나님이 세계의 의로운 지배자가 됨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종종 말한 대로 우리가 말하고 행한 대로 헤아리시기 위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던 그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그는 세상을 포기하셨으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그는 자기가 심판하러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가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는가? 그는 우리를 보지도 생각지도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도전이며, 실제로 그에게 "최악의 일" 을 행하라고 대드는 것이다. 유대 교회 말기에 이같이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듯, 또한 기독교 교회의 말기에도 이 같은 자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언약을 폐기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보라! 심판이 문 앞에 이르렀으며," 심판의 하나님이 "가까왔도다."

 

2:11 없음.

 

2:12 없음.

 

2:13 없음.

 

2:14 없음.

 

2:15 없음.

 

2:16 없음.

 

2:17 없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289 나훔 메튜 헨리 주석, 나훔 01장
288 나훔 메튜 헨리 주석, 나훔 02장
287 나훔 메튜 헨리 주석, 나훔 03장
286 하박국 메튜 헨리 주석, 하박국 01장
285 하박국 메튜 헨리 주석, 하박국 02장
284 하박국 메튜 헨리 주석, 하박국 03장
283 스바냐 메튜 헨리 주석, 스바냐 01장
282 스바냐 메튜 헨리 주석, 스바냐 02장
281 스바냐 메튜 헨리 주석, 스바냐 03장
280 학개 메튜 헨리 주석, 학개 01장
279 학개 메튜 헨리 주석, 학개 02장
278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1장
277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2장
276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3장
275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4장
274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5장
273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6장
272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7장
271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8장
270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9장
269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10장
268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11장
267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12장
266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13장
265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14장
264 말라기 메튜 헨리 주석, 말라기 01장
» 말라기 메튜 헨리 주석, 말라기 02장
262 말라기 메튜 헨리 주석, 말라기 03장
261 말라기 메튜 헨리 주석, 말라기 04장
260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1장
259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2장
258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3장
257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4장
256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5장
255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6장
254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7장
253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8장
252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09장
251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0장
250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1장
249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2장
248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3장
247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4장
246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5장
245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6장
244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7장
243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8장
242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19장
241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20장
240 마태복음 메튜 헨리 주석, 마태복음 21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Next
/ 24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나눔고딕 사이트로 가기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